< 달랏에서의 기차 여행 >
출발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허겁지겁 기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서 숨을 고르며 창밖을 봤다.
' 오랜만에 이런 기차를 타는 것 같네.'
20여 분간 달리는 기차 안에서의
창밖 구경은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달랏 사람들의 이야기를 bgm으로 들으며,
기차의 기적 소리를 들으며.
달랏에서 다시 낯선 곳으로 떨어졌지만
이제는 이런 낯섬에 두려움이 크지는 않다.
아무런 정보 없이 도착했지만,
구글 지도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뜻밖의 친절을 받게 되는데...
걸어서는 오지 못한다며
식당 사장님이 데려다준 플라워 가든.
아니.. 이런 건 예상을 못 했는데요?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여행러는 덤덤하게 혼자서 사진을 찍는다.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린푸억 사원까지 구경을 하고는
오늘의 여행이 끝났다.
베트남 달랏 한달살기를 하면서 다른 어떤 도시보다 유명 관광지를 찾아가지 않았던 생활이었는데요. 자주 여행을 하진 않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오래 남고 좋았던 기차여행 이야기를 해볼게요.
오전에는 잠시 일하고, 점심시간에 맞춰 떠난 여행이었어요.
코스 1. 달랏 기차역 → 짜이맛 역
헐레벌떡 올라탄 기차
베트남 달랏 여행지 추천
달랏 기차역은 옛날 80, 90년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도착한 짜이맛 역 동네에서도 다양한 것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1박 2일로 다녀와도 괜찮을 일정이었다. 다음에 간다면 꼬옥 천천히 즐겨 봐야지.
(언제일지 모르는 게 함정 ^^)
달랏 역 ↔ 짜이맛 역 시간표 | |
달랏 → 짜이맛 |
짜이맛 → 달랏 |
05:40 |
06:40 |
07:45 |
08:45 |
09:50 |
10:50 |
11:55 |
12:55 |
14:00 |
15:00 |
16:05 |
17:05 |
너무 여유롭게 출발을 했다가 기차가 출발하는 막바지에 탑승을 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려니까 '늦을 것 같으니 그냥 타세요.'라고 해서 헐레벌떡 기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기차역에 도착하면, 주차비도 내야하고 역 안으로 들어가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여유롭게 가는 게 좋다.
기차 출발 20분 전에 도착하면 딱일 듯?
자리에 앉아 위 사진에 보이는 역무원에게 표를 구매했다.
다행히 VIP석이 있었는데 타고나서야 든 생각은 꼭 VIP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달까. 물론 테이블이 있으니 카메라와 가방을 올려둘 데가 있어서 편했다.
달랏 기차역 요금표 | |
VIP1(앞 방향) |
150,000 vnd |
VIP2 (옆 방향) |
135,000 vnd |
soft (푹신한 의자) |
126,000 vnd |
hard (딱딱한 의자) |
108,000 vnd |
VIP1밖에 자리가 없어서 선택지도 없이 구매(왕복권)를 했는데 가격차이가 크지 않아서 뭔들.. 역무원은 짜이맛 역에 도착하면 1시간 후에 돌아오라고 했는데 이때 갑자기 든 의문 하나가 들었다.
' 짜이맛 역 출발 시간에 맞춰 돌아오면 안 되나요?'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가능은 한데 자리 지정이 안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차피 vip석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라서 알겠다고 하고, 기차 시간 마지막까지 머물기로 했다.
※ 지정된 시간에 돌아오지 않으면, 출발할 때는 vip석에 앉았더라도 돌아오는 기차에 다른 누군가 예약이 되어 있으면 남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천천히 이동하는 기차, 역 안에 있는 직원
.... 창밖의 시골 풍경
달랏 기차역은 공간 자체가 포토 타임용이라 기차를 타지 않는 여행가도 있다는데, 기차를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기차여행보다 훨씬 느린, 천천히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기에. 물론 촬영 때문에 바깥 구경을 하며 오롯이 멍만 때리진 못했다.
드넓은 농장, 현지 집들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나오는 하늘도 속이 시원했다.
20여 분이 지나고, 낯선 동네에 도착했다.
코스 2. 짜이맛 역 맛집, Latino coffee
뜻밖의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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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온 게 아니라 짜이맛 역의 풍경이 정말 좋았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봤을 것 같은데 계획 없이 온 곳이라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몰랐다.
배가 고파 어디 먹을 데가 없나 둘러보던 중 가까운 곳에 가게 하나가 보였다.
기차역에서 걸어서 1분 걸리려나.
역을 나와 길을 건너지 않고 뒷길로 돌아가면 Latino Coffee 가게가 보인다. 배가 너무 고파서 고민할 필요도 없어서 들어섰는데, 한국인이 꽤나 왔는지 한글로 적힌 메뉴판이 있었다.
볶음면이 맛있다는 리뷰를 봐서 주문했지만 재료가 소진됐다기에, 메인메뉴가 3개뿐인데도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에는 추천을 받기로 했다. (왜 고민을 한겨 ㅎㅎ)
사장님이 라면이 맛있다고 해서 선택을 하고는 메뉴판을 다시 구경하는데 번역이 재미있었다.
면스프라니.. 어떤 음식이었기에 면스프라는 단어로 번역이 됐을까?
배만 채울 생각으로 진짜 기대를 하나도 안 했는데,
'아니, 이렇게 맛있다고?'
올려진 재료도 푸짐하고 국물도 시원하고 면은 쫄깃쫄깃했다. 양도 꽤나 많아서 리뷰가 높은 것에 새삼 공감을 했다. 무엇보다 사장님이 굉장히 친절했는데 한국 인사도 해주고 이런저런 설명도 해줬다.
배부르게 라면을 다 먹은 후 사장님에게 근처 가볼 만한 데를 물어보니 몇 군데 알려주길래 가까운 곳 한 곳 정도를 선택했다.
린푸억 사원이 유명했지만 사장님이 추천해 준 꽃 정원을 먼저 가본 후 시간이 남으면 가보기로 했다. 아보카도 아이스크림을 들고는 지도를 보며 걸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Latino coffee 사장님이 스쿠터를 타고서는 급히 나를 불러 세웠다. 뭐지?
' 정원 가는 거예요? 거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에요. '
' 아, 걸어서 갈 수 없어요? 알겠ㅇ.. '
' 스쿠터 타세요. 남편이 데려다줄 거예요.'
아니... 이런 상황은 생가지 못했는데?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돈을 드린다고 해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걸어가는 방향을 보고는 달려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안 그랬으면 한참을 걸어갔을 테니) 나를 붙잡아준 것에 그치지 않고 이런 친절까지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없는 영어 있는 영어 다 쏟아부었는데도 결국은 스쿠터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렇게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달렸다.
코스 3. 플라워 가든
천국의 계단이 있는 수국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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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곳이 수국 정원이라는 것을.
현지인들만 몇 명 있는 게 다인 조용한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사진에만 보이는 곳이 다인 줄 알았는데 뒤로 엄청난 양의 수국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천국의 계단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천국의 계단보다 달 모양 계단이 사진 찍을 때 더 재미있었다.
혼자 온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지 이국적인 외모 때문인지 오랜만에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더워 죽겠는데 청재킷 입고 있어서 쳐다본 걸까?)
군데군데 포토용 장소가 있어서 수국을 밟지 않게 만들어 둔 것도 좋았다.
' 이 많은 수국을 누가 관리하고 있을까. '
다른 사람들이 한참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수국 정원을, 지평선을 바라보며 쉬었다.
계획 없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예전의 나였다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이렇게 때때로 생각지 못한 세렌디피티를 만날 때는 무작정 여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틀을 벗어남으로써 발견하는 것들이 있으니, 그게 또 재미있어서 문제 생길 걸 알면서도 버리질 못한다.
그렇게 '참, 좋구나.'를 연발하고서는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들어올 때는 스쿠터를 타고 온 이 길을 걸어가자니 꽤나 먼 거리였던 거다. 하필 백팩이 아닌 숄더백을 메고 와서 걷는 내내 가방을 오른쪽으로 들었다 왼쪽으로 들었다를 반복했다. 또 하필 날씨가 정말 좋아 햇빛이 내리쬐는데 나무 한 그루 없는 그런 곳이었다.
불과 몇십 분 사이에 좋고 힘듦이 번갈아 왔다.
'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전혀 모르는 낯선 길 속에서 현타를 느끼며
찻길을 향해 한참을 걸었다.
코스 4. 린푸억 사원
시간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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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분을 걸어 다행히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이동하는 중에 시간을 확인하니 마지막 기차 시간까지는 널널한 것 같아 린푸억 사원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린푸억 사원에 도착한 후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많을 것 같아 피하려고 했는데 평일이어서인지 관광차가 많지는 않았다.
사원을 찾아다닐 정도로 열정적이진 않는데,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많이 접하는 장소여서인지 문양이나 건축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시간이 짧아 천천히 즐기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북적북적한 느낌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16:55 ... 짜이맛역으로 돌아와 기차에 올라섰다.
출발할 때는 촬영을 한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돌아올 때가 되어서야 풍경들이 오롯이 눈에 들어왔다.
저녁에 들어서기 전의 햇빛을 받으며 창가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구경을 했다. 기차 안에는 한 커플, 역무원, 그리고 나 이렇게 넷밖에 없었다.
덜컹거리는 기차소리만이 반복되었다.
...
일과 여행을 함께할 때면, 오롯이 여행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곤 하는데 달랏에서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여행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도 즐거운 일상이 잦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하기도 쉬웠다.
규칙적인 생활, 상쾌한 아침, 잦은 빗소리, 조금은 서늘한, 취향의 카페를 찾았다는 즐거움, 소소한 여행지들..
이곳에 머무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 베트남 달랏 한달살기 다른 편 보기
언젠가 도시별 한달살기를 생각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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