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란 우리가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했다고 믿는 어떤 행위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슬픔이다. p. 393 <에티카>중에서 인생의 절반을 살고 보니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태도는 지나버린 것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후회로 얼룩진 과거를 되돌아보고 남은 인생은 이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학창 시절에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것, 20대를 더 풍성한 경험으로 채우지 못한 것, 가족들에게 더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것,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모질게 대한 것, 친구라는 이유로 의심 없이 믿었던 것, 허투루 시간을 낭비한 것, 건강을 신경 쓰지 않은 것, 거짓으로 나의 허물을 덮으려 한 것, 약함을 숨기려 강한척했던 것 등 수없이 많은 후회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한 송중기 님 주연의 <빈센조>라는 드라마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사는 빈센조 변호사의 '후회는 살아서 겪는 최악의 지옥이다'라는 강렬한 한마디였다. 오늘은 <강신주의 감정수업> 중에서 '후회'라는 감정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철학자 강신주 님이 말하는 후회는 무엇이며 사람들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후회의 지옥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머스 하디의 <캐스터브리지의 읍장>에서 만난 후회 아내의 어리석은 선택도, 엘리자베스 제인의 탄생도 모두 스물한 살 때 저지른 자신의...
배고픔이든 고독이든 뭐든 타인의 고통이 사무치는 것이 사랑이니까. 내가 배고프고 내가 외로운 것보다 그가 배고프고 외로운 것이 더 아프다. p.11 프롤로그 중에서 육아에 진심인 아빠라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이 많다. 어느 날 우연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어긋난 사랑을 주제로 한 철학자 강신주 님의 강연을 영상으로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 영상을 통해 아이를 향한 넘치는 사랑이 되려 그들에게는 고통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강신주 님은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통해 사랑이란 사랑하는 이의 고통에 사무쳐 그 고통을 달래줄 수밖에 없는 마음이라 말한다. 밤늦게 귀가한 가족을 위해 한 공기의 밥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그가 느끼는 시장함(고통)을 덜어주려는 사랑의 실천이다. 가족의 배고픔을 내 것으로 여기기에 식사를 차리는 수고를 감수하면서 그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자칫 그 사랑이 그를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경계해야 한다. 한 공기의 밥만으로도 그를 충분히 행복하게 할 수 있음에도 우리는 두 공기, 세 공기의 밥을 제공하면서 배고픔(고통)을 넘어서는 또 다른 고통을 선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강신주 님의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세상에 회의감을 느끼고 낙담하며 자살을...
욕망(cupiditas)이란 인간의 본질이 주어진 감정(affectione)에 따라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essentia) 자체이다. p.181 욕망 中에서 오늘은 <강신주의 감정수업>중에서 '욕망'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지, 사회적·문화적인 요소에 반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겉으로 꺼내어 놓지 않으면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사람은 욕망뿐만 아니라 비겁함과 나약함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부정하며 살아간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 행동하는 것이다.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그 감정에 반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기를 포기하고 노예로서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한 대로 행동하는 존재이며 노예는 그런 주인의 욕망에 따라 자신이 바라는 것들을 부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참 어려운 부분이라 여겨진다. 본능적인 욕망에 따라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욕망을 꾸역꾸역 눌러가며 살아가다...
절망(desperatio)이란 의심의 원인이 제거된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슬픔이다... 공포에서 절망이 생긴다. p. 212 절망이라는 감정은 언제 우리에게 다가올까? 살면서 몇 번의 좌절을 통해 '절망스러움'을 느껴보았다. '임용고시', '어머니 건강 악화', '친구의 배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 당시 힘들어했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는듯하다. 특히, 어머니가 암이 전이되어 다시 한번 힘든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난 후 검사 결과를 듣는 순간은 잊혀지질 않는다. 이미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순간 어머니께서 지으신 표정 속에서 나는 절망이라는 감정을 보았다. 암 환자를 겪어본 가족들은 알겠지만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며 들었던 생각은 암이 죽던지 내가 죽던지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싸움 같았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치료에 응하셨던 어머니는 그 결과를 듣는 순간 삶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사라졌을 것이다.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는 것에 직면하는 순간 우리는 절망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존경하는 철학자 강신주 님의 <감정 수업>중에서 '절망'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강신주 님은 이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 '더 리더(The Reader)의 원작으로 유명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비루함(Abjectio)이란 슬픔 때문에 자기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우리는 감정을 통해 삶의 희열을 느끼고, 추억을 만들고, 설레기 시작한다. 하지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에도 어러 차례 감정의 변화를 느끼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다. 반대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지금의 삶을 살아내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이 가며 겪는 모든 일에 무감각해진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무미건조해질까? 심장이 쥐어짜는 스트레스도 없겠지만 가슴 벅찬 감동이나 기분 좋은 두근거림조차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평소에 존경하는 철학자 강신주님의 <감정수업>은 곁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게 되는 친구 같은 책이다. 사람이 느끼는 수십 가지 감정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강신주님은 이 책에서 48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중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특히 내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감정부터 하나씩 파헤쳐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비루함'이라는 감정이다. 노예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