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5년만에 가진 둘째의 세돌이었다.
둘째의 시간은 광속으로 간다더니
정말 그렇다.
뭔가 힘들긴 힘들었고,
뭔가 헉헉하며 키우긴 했는데,
섬세하게 기억나는게 아니라
후루룩 지나온 느낌이다.
그만큼 정신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첫째 키울 때와 달라진
나의 마음가짐도 작용한 것 같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나눌까 한다.
아이를 키울 때는
보통 '아이의 기질'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 못지 않게
부모의 기질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양육이란 부모와 아이가
소통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신을 지우고
평생 아이를 위해서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첫째를 키울 때
나는 이 지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내 어머니가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분이셔서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부모란 저래야 한다'를
온몸으로 체득한 채 부모가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때는 까마득히 몰랐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아이를 낳고나니
서서히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울 때 수면부족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는 걸 전혀 몰랐다. 모른 채로 당하니 대책이 없더라. 점점 미쳐가는 나를 보며 '이 사람이 부모자격이 있는지'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는 대학 때 이에 대해 살아있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대학때 농촌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대학 선후배들과 열흘 가량 농민과 흡사한 삶을 사는 일이었다. 문제는, 농활에 가면 밤은 짧고 낮은 길다는 것이다. 낮에는 농사 짓고, 일을 해야 해서 낮이 길고, 또한 밤이 되면 매일 술자리가 이어졌다. 농활에서 마시는 술은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쪽잠을 자고는 새벽 5-6시경 기상해 또다시 농사를 짓는 나날이 이어졌다.
이틀째까지는 그래도 버텼던 것 같다. 삼일 째부터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나는 멍한 정신으로 동료들과 대화도 못할 만큼 지쳐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만 그럴 뿐 다른 선후배들은 너무나도 멀쩡한 것이었다. 명확히 말하면, 실제로 멀쩡하지는 않았겠지만, 몽롱한 정신을 자력으로 차릴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있더라는 것이다. 허나, 나는 달랐다. 아마 그 무리에서 그런 사람은 나 하나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죽하면 동기가 "너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라면서 농활 내내 나를 신경 썼을까.
1년 같았던 열흘을 보내고 집에 와서는 몇날 며칠 잠만 잤던 것 같다. 그렇게 푹 자고 나니 다시 살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숙면과 충분한 수면시간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잠을 못 자면 하루를 망칠 뿐더러 나 자신의 컨트롤 타워가 무너져버리는 사람이라는 걸.
그걸 알아차리는 경험을 했으면서도, 나는 실전육아를 하면서 이 지점을 간과해버렸다. 일단, 육아에 있어서 수면부족이 일상인지 전혀 몰랐고, 농활에서의 기억이 10년이 훌쩍 지나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몰랐다.
만약 내가 스스로 '나는 수면이 부족하면 인사불성이 되는데. 이 부분에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면, 그때 어떤 육아를 했을까?
친정엄마께서 나에게 '너는 역마살이 꼈냐?'라고 할 정도로, 나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성인이 된 후로는 해가 떠있을 때는 거의 밖에서 생활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집은 고리타분한 장소였다. 나는 사람을 만나러 나간다기 보다는, 바깥공기를 마시고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돌아다니고 싶어서 나갔다. 그냥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나가 돌아다니면 살아있음을 느꼈고, 뭔가 하루를 알차게 보낸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일상이 집이었다. 다 나의 무지 탓이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집에서만 살아야하는지 전혀 몰랐다. 왜 그렇게 모르는 게 많았냐고 묻는다면, 1) 나는 내 주변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고 2)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이 너무 바쁘고 일상이 바빠서 그들에게 치밀하고 세세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나는 방송작가로 일을 했는데, 방송작가의 일이란 새벽 별을 보고 출근해서 다시 새벽 별을 보고 퇴근하는 일상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그랬다.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못 나가는 삶이 있다니. 이렇게 집에서만 살아야하는 삶이 있다니. 밖에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집에서 육아를 해야 한다는 환경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내 기질이 육아를 더 고통스럽게 받아드린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매우 엄하고 무서운 분이셨다. 늘 혼나는 삶이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웃는 일이 간혹 있었는데, 바로 내가 '이쁜 짓'을 할 때였다. 성적표를 우수하게 받아오거나, 아버지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잘 하거나, 돈을 잘 벌어오거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아버지가 원하는 바를 맞추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유년시절부터 성인까지 쭉 살아온 후에 엄마가 되었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고통이 닥쳤다. 바로 내가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모유가 잘 나오지도 않고, 아이가 단잠을 자도록 잘 재우지도 못하고, 그저 아기가 행동하는대로 맞춰보려고 허둥대는 나를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이런 모지리가 '나'라니.
내 전문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싶어도, 다시 돌아가기는 요원해졌다. 방송국 일은 일정하지가 않아서 어느 날은 일이 넘쳐서 며칠 밤을 새고, 어느 날은 일이 없어서 공을 치기도 하기 때문에, 일관된 일상을 요하는 아기를 키우면서 병행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서 나의 '쓸모'를 획득해야 하는 것일까. 전혀 없었다. 그럴 방법이. 결국 나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으로 나의 쓸모를 획득하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상황으로 점점 몰려갔다.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어찌어찌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그런 길로 점차 몰려갔다.
허나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나 혼자 용 쓴다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 키운다'라는 기준도 저마다 다르다. 무엇이 잘 키우는 것인지 모호하다. 인간을 키우는 일을 평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마치 정답이 없는 문제를 맞춰야 하는 수험생이 된 형국이랄까. 잘해보려 애를 쓰면 쓸수록 마치 스스로 족쇄를 감는 기분이 들었다. 유쾌하지도, 성취감이 들지도 않았다.
이렇게 모지리같은
초보엄마시절을 보내고,
이제 나는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지난 달, 둘째의 세 돌이었다.
둘째의 세 번째 생일케이크에
초를 켜면서
첫째의 세돌과는 다른 나를 느꼈다.
첫째 세돌 때는
대부분 힘든 기억이 떠올랐는데,
둘째 세돌 때는
별로 떠오르는 기억이 없는 것이다.
그저 무탈함에 감사하다고 해야할까.
이렇게 아이를 키울 수 있다면
셋째를 키워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스쳐가는 것을 보면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둘째는 세돌인 지금까지
가정보육을 하고 있다.
첫째 때는 친정어머니께서 도움을 주셨는데,
둘째는 오롯이 나 혼자서 키웠다.
그런데도 저런 생각을 한다니.
이것은 혁명 아닌가?!
첫째 육아와 둘째 육아의 가장 큰 차이를 말하라면, 바로 '나를 알고 모르고의 차이'라고 말하겠다. 큰 아이를 키울 때는, 나를 확인하고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작은 아이는 이미 '인정한 나'로서 키웠다. (두 아이의 터울이 5년이나 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단 하나의 차이지만 이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거대한 차이다. 내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힘들어하고 좋아하는지 등 자기기호와 자기내면을 알고 있다는 것은 육아 뿐 아니라 인생살이에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내 기질, 취향, 성격을 알고 둘째를 키웠더니 가장 달라진 점은, 자기관찰과 자기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뭔가 욱하는 감정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멈칫하게 된다. 내 컨디션이 안 좋으면 왜 안 좋은지 비교적 명확하게 안다. 내가 부족한 잠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밤에는 꼭 숙면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잠자리에 들면서 스마트폰은 꺼버리거나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둔다. 아이들이 잘 때 나도 그냥 자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잔다.
집 안에만 있으면 답답해하는 내 성향을 알아차린 후에는, 갑갑하면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간다. 그게 비록 동네어귀 작은 벤치일지라도 나무를 보고 바람을 쐬는 것이 내 정서에 도움이 된다. 효능감을 가지고 싶어서 글쓰는 일도 계속 하고 있다. 종종 내가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컬럼제안을 받거나 출간 제의가 오면 에너지가 솟아 오른다. 이런 효능감은 아이를 키우는데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준다.
나를 알게 해준 첫째에게 깊이 감사한다. 부족한 엄마라도 좋다고 해줘서 더더욱 감사하고 소중하다. 그때의 미안함은 평생 나눠서 갚으며 살 것이다. 나를 인정한 채로 키운 둘째가 무난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감사하다. 만약 나를 인정하고 키웠는데도 소용돌이 같은 육아를 겪었다면 나는 차원이 다른 고뇌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두 아이는 무난하게 자라주고 있다.
나를 인정하니 감사하는 삶에 가까워진 것 같다. 일상이 감사하고, 별일 없는 것이 감사하다. 무탈함에 감사하게 되고, 존재 자체로 감사하게 된다.
사실 둘째 세돌 기념으로 '종합선물세트 포스팅'을 쓰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상황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고 있어서 물리적인 시간이 여의치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겨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라도 내 감상을 기록해놔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이 감정과 느낌은 시간이 지날 수록 옅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돌 생일이 한달이나 지난 시점에라도 기록할 수 있어 감사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와 소통하면서
나의 인간성을 하나하나 공개하는 일과 같다.
아이의 기질과 부모의 기질이 퍼즐처럼 맞물리는 것이 양육이다. 하기에 아이의 기질 만큼이나 부모의 기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기질을 파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MBTI 검사 같은 심리검사를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내가 추천하는 최고의 방법은 글쓰기다.
글을 쓰면 나를 돌아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어느 때 유쾌하고 불쾌한지, 어느 때 만족하고 불만족하는지를 점진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첫 아이를 키울 때 아마 내가 블로그에 글을 써나가면서 '나 공부'를 계속 하지 않았다면, 둘을 낳든 셋을 낳든 나를 알아차리는 것은 요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마친 '엄마의 내면아이 글쓰기'를 통해서도 다시금 깨달았다. 참여한 20명의 엄마들 중에서 치열하게 글을 쓴 10여명의 엄마들이 본 글쓰기를 통해서 삶이 달라졌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는 본 글쓰기를 자발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3명이 팀을 짜서 내가 만든 주제에 맞춰 이번 여름동안 내면 글쓰기를 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종료 후 어떤 반응이 올지 무척 기대된다. '나 공부'를 하는 엄마들이 주변에 많은 것이 감사하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모님들을 응원합니다:)
from. 미세스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