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대학로 데이트코스,
연극 기억의 숲
기본 정보
연극 > 드라마극 80분
기간 2024.06.08. (토)~2024.07.31. (수)
시간
수, 목, 금 19:00
토, 공휴일 15:00, 18:00
일 16:00
(* 매주 월요일, 화요일 공연 없음)
장소 지즐소극장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쭉쭉 올라가서 길도 한 번 건너고, 좀 더 올라가야 하는 지즐소극장.
이번엔 이곳에서 대학로 연극 기억의 숲을 보았다.
저 조그마한 오두막 느낌의 박스가 바로 티켓부스.
공연 시작 30분 전에 티켓 오픈.
길쭉하고 빳빳한 티켓이었다.
앞쪽엔 대학로 연극 기억의 숲 포스터가 그려져 있었는데 위로 뻗은 나무와 안개의 포스터라 그런지 이렇게 긴 티켓의 모양이 꽤 잘 어울렸다.
뒤쪽엔 손으로 쓴 관람 일자, 그리고 좌석 번호.
그 아래엔 연극 오백에 삼십 관람 할인권이 있었다.
오백에 삼십도 좋은 연극이었지.
연극 기억의 숲을 보고 나서 밥 먹고 쉬다가 오백에 삼십을 보러 가면 대학로 데이트코스로 딱이다!
대학로 연극 기억의 숲 리플렛은 제법 알찼다.
겉면에는 공연 시간이나 장소, 러닝타임 등에 대한 기본 정보가 적혀 있고 안쪽엔 시놉시스 등 내용이 있었다.
시놉시스
취조실에 마주앉은 정신과 의사와 죄수.
죄수는 17명의 무고한 여자들을 살해한 후 자신의 집 지하실에 있는 사물함에 넣어 둔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연쇄 살인마였다.
정신과 의사는 죄수의 기억을 더듬어 그가 왜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가는데.
꽁꽁 숨겨 두었던 죄수의 기억 속엔 학대의 기억, 그리고 뜻밖의 비밀들이 숨겨져 있었다.
과연 그들이 찾아낸 기억은 무엇인가?
연극 기억의 숲
대학로 연극 기억의 숲 2024.06.29 낮공 캐스팅보드.
무채색의 사진, 텅 빈 배경.
사람들은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각자의 한마디로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김윤수 배우|의사 역
박예린 배우|엄마 역
박태현 배우|아들 역
지즐소극장은 공간이 작다 보니 좌석도 많지 않았다.
이렇게 봐선 좌우로 길어서 사이드석의 시야가 불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막상 보면 전부 잘 보였다.
단차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시야는 좋은 편.
다만 의자 자체가 굉장히 불편했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인데도 의자가 낮아서 좀 불편했다.
게다가 쿠션감도 썩 좋은 건 아니라서 앉아 있다 보면 엉덩이랑 허리가 아파 왔다.
그리고 지즐소극장의 천장에선 종종 물소리가 들렸다.
대학로 연극 기억의 숲의 무대는 조명이 예뻤다.
그리고 뭔가 공간이 좁고 거칠단 인상을 받았다.
지하실 느낌을 살려서 어둡고 좁고 갇힌 듯 보였다.
한쪽엔 책상과 책장이 놓여 있고, 정면의 벽엔 거울 혹은 액자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벽엔 의문의 문들이 기이하게 달려 있었다.
드나드는 용도는 분명히 아닌 문엔 바깥에서 거는 잠금 장치도 살짝 보였다.
대학로 연극 기억의 숲은 기대 이상의 연극이었다.
뻔하게 흘러갈 수 있는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추리극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정말 생각지 못한 반전이 있었다.
그래서 더 흥미진진한 공연!
죄수복을 입은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여자 의사를 원했지만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남자 의사 한 사람뿐이었다.
죄수는 바로 뒤돌아서 나가려 했지만 의사는 "여자 의사들은 무서워서 안 온다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범죄자라서가 아니라 여자를 골라서 살해한 사람이라 두려워한다는 것이었다.
남자 의사는 허세도 있고 그 이상으로 겁이 많고, 어떻게든 죄수의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죄수도 점점 마음을 열고 과거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으며 공연이 시작됐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 정신과 의사가 꽤 가볍고 귀여운 인물이라 보기에 훨씬 편해졌다.
어둡고 무겁기만 했다면 보기 힘들었을 텐데, 중간중간 귀엽게 분위기를 풀어주니 몰입하기에도 좋았다.
정신과 의사는 최면 치료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으로 사람의 잠재 의식 깊숙한 곳에 봉인된 기억을 끄집어내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 있었다.
의사는 그 능력으로 이 죄수가 '왜' 여자들을 열일곱 명이나 무참히 살해했는지 알아내려 했다.
죄수의 살해 욕구의 기저엔 '엄마'가 있었다.
말을 할 때는 엄마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해야지.
다정한 목소리, 어쩐지 슬픈 눈빛.
죄수의 엄마는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한없이 여려 보이고, 아들만 바라보는 사람.
이때까지 대학로 연극 기억의 숲 분위기는 잔잔했다.
그러나 과거를 회상하던 아들이 내뱉은 대사 하나가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러니까, 니가 뭘 잘못했냐고!
날씨가 좋은데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는 이유로, 예쁘다는 이유로 집 지하실로 끌고 들어온 여자가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라고 했다는 이유로.
남자는 뭘 잘못했냐고 다그치며 무섭게 변했다.
'잘못했어요.' 그 한마디가 남자의 트리거였다.
의사는 습관적으로 라이터 뚜껑을 여닫았다.
찰칵, 탁, 찰칵, 탁.
지금부터 당신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제가 하는 말은…….
전생이 고양이였던(?) 이 의사는 사실 죄수를 만나기 전에 그의 엄마와 먼저 상담을 했었는데.
그 엄마는 아들의 기억과 많이 달랐다.
아들, 죄수의 기억 속엔 두 명의 엄마가 있었다.
무서운 엄마, 그리고 한 대 때리면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연약한 엄마.
의사는 두 사람의 기억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암전 때 가끔 배우들이 자리를 옮기곤 했다.
대충 '움직이겠구나.' 예상을 했는데도 배우들의 위치에 따라 깜짝깜짝 놀라 버렸다.
소리는 안 질렀는데 놀라서 움찔 팔을 떨었지.
와, 특히 죄수랑 눈 마주쳤을 때 좀 무섭긴 했다.
눈을 데굴데굴 굴려서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표정 좀 섬뜩하더라구.
의사랑도 눈이 마주쳤는데 이상하게 의사 앞에선 괜히 쑥스러워서 시선을 피하게 됐다.
나는야 의사가 인정한 예쁜 곰팡이(?).
이제 눈을 감으면 그날의 진실이 떠오르게 됩니다.
찰칵, 탁, 찰칵, 탁.
라이터 소리와 함께 찾는 그날의 일.
그리고 더 깊은 곳에 숨은 또 다른 진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나고 구성이 꽤 괜찮아서 흥미롭게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대학로 연극 기억의 숲.
정말 기억의 숲속에서 헤매는 듯한 기분이었다.
안개 낀 숲속에서 단 하나, 진실이 담긴 문을 향해 나아가는 세 사람의 이야기.
극의 구성도 괜찮고 달력 쓰는 거나 문을 사용하는 연출 같은 것도 좋았는데 배우들 연기가 가장 좋았다.
풀어 줄 때 풀어 주고, 긴장시킬 땐 긴장시키고.
그 인물을 잘 표현해 내서 더 좋았던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추리극, 대학로 연극 기억의 숲.
놀라는 장면도 있고 예상 밖의 내용도 있어서 몰입하게 되는 흥미로운 연극이었다.
요즘 날도 더우니 약간 서늘한 이런 연극으로 대학로 데이트코스를 짜 보는 것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