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들의 영원한 주제곡으로 불릴만한 명곡 I Am Woman으로 스타가 된 그녀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전기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후대에도 그녀의 드라마틱했던 순간들이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의 히로인으로도 여겨지지만,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과 끼가 충만했던 아티스트로서 팝/컨트리 분야에서 70년대 두각을 나타냈던 그녀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호주 멜버른 출신의 헬렌 레디는 70년대 팝 음악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가수 중 하나였으며, 호주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아티스트로 팝 역사의 레전드 여성 아티스트 중 하나로 남아있다. 헬렌 레디가 팝 스타의 지위를 넘어서 레전드급 아티스트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사람들의 뇌리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녀의 시그니처 송인 I Am Woman 때문이다. 이곡은 1972년 11월에 발매된 그녀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당시 헬렌 레디는 데뷔 앨범 I Don't Know How to Love Him (1971년)의 성공 이후에 자신의 위치를 레벨업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셀프 타이틀로 발매했던 두 번째 앨범의 뜨뜨미지근한 반응속에 그녀는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방향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바로 여성의 인권이었다. 헬렌 레디는 호주의 비평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릴리안 록슨(Lillian Roxon)의 영향으로 여성 인권 운동에 참여하게 된 후 긍정적인 여성...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 췌장암 투병 끝에 현지 시간으로 8월 16일 향년 76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타계 대변인 그웬돌린 퀸(Gwendolyn Quinn)은 “소울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아레사 프랭클린의 타계 소식을 전하게 되어 몹시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다. 그녀는 8월 16일 오전 9시 50분에 디트로이트의 자택에서 76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이 그녀의 임종을 지켰다. 정확한 사인은 신경내분비췌장암(pancreatic cancer of the neuroendocrine)으로 판명이 났다고 아레사 프랭클린의 담당의사인 디트로이트의 카르마노스 암 센터의 필립 필립스가 확인했다. 우리 일생에 가장 힘겨운 순간 중 하나이며, 우리의 마음의 고통을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우리의 여장부이자 우리 가족의 단단한 주춧돌을 잃었다. 그녀는 자식, 손자, 조카들, 친척들에게 무한의 사랑을 베풀던 존재였다. 또한 전세계의 팬들과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사랑과 응원, 격려를 받았다. 다시 한 번 팬들과 친구/동료들의 위로와 기도에 감사를 드린다. 아레사 프랭클린을 향한 당신들의 깊은 사랑은 그녀의 업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임을 확신하게 만든다. 비통함에 젖어있는 유족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길 요청드리는 바이다”라고 성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