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추천
6720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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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우유, 피, 열 저자 단시엘 W. 모니즈 출판 모모 발매 2023.02.10. 분홍이야말로 여자 색이지. 키라의 말이 끝나자 키라와 에바는 칼로 손바닥을 그어 새어 나오는 피를 새하얀 우유가 가득 담긴 야트막한 그릇에 떨어뜨린 다음 핏방울 천천히 퍼져나가 작고 붉은 꽃들을 피워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p.15) 우유, 피, 열. 이건 무슨 조합이야. 이 책을 받았을 때 내가 처음 생각한 것은 이 말이다. 이 세 가지 단어는 무슨 연관이란 말인가. 더욱이 첫 장면이 우유 위에 피를 떨어뜨리는 여자들이라니. 이 책에는 스산하고 슬프며 만질 수 있다면 서늘함이 느껴질 것 같은 여자들이 여럿 등장한다. 총 11편의 단편이 묶인 이 책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시각이나 촉각 등이 느껴진다. 문장에서 온도가 느껴진다고 적는 지금도 이 표현이 맞는지 고민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그렇다. 서늘하다. 묘한 게 첫 장부터 끝까지 스산한데, 그렇다고 책이 덮어지지 않는다. 이상한 여자들이 궁금하고, 이상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본다면 정답이라고 동의해줄 것 같다. 분명 이상한데 이상한 여자들이 계속 궁금해지고,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이 이상한데,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 책은 그래서 우리 이야기 같고, 현실 어딘가에서 충분히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얘기 같다. 이 책을 스토리 그대로 만나는 ...

202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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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나탈리

괜찮아, 나탈리 1: 네 모습 그대로 충분해 저자 마리아 스크리반 출판 한빛에듀 발매 2023.01.30. 나이를 먹어 주책이 되어가는 건지, 최근 초등학생 대상의 그래픽 노블을 보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책 속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모습도 너무 대견했고, 그 옆에서 응원해주는 '진짜 친구'들의 모습도 너무 멋져보였던 것! 나를 울린 <괜찮아 나탈리>는 어쩌면 엄마의 입장이기에 더욱 가슴이 찡한, 우리아이들의 성장기라는 생각이 든다. <괜찮아 나탈리>의 주인공 나탈리는 창의적이고 선한 아이지만 자신감이 부족하다. 그래서 자신감넘치는 친구 릴리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릴리는 소위 '잘나가는 친구'랑 놀기위해 몇년간 절친이었던 나탈리를 버린다. 아니, 버린 정도가 아니라 괴롭힌다. 그런데도 나탈리는 릴리에 대한 우정을 버리지 못하는데, 새로 사귄 친구들이 이 과정에서 조언을 하기도 하고 위로도 하기도 하며 나탈리의 편이 되어준다. 결국 나탈리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이 잘하는 일, 진짜 자신을 사랑하는 친구를 알게 되며 또 한단계 성장하게 된다. 창의적이고 착하지만 마음이 단단하지 못한 나탈리를 보며 나는 나의 모습도, 우리 아이의 모습도 투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릴리가 나탈리에게 함부러 구는 장면에선 화가 나고, 속이 상하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을 사귀며 나탈리가 변해가는 과정에서는 안도하고 기뻐했다. 우리아이도 나와 비슷한 ...

2023.02.15
5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 인생책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 인생책 저자 가우르 고팔 다스 출판 수오서재 발매 2023.01.30. 삶이 바로 그렇다. 우리가 풍성하게 축복받을 때 그 축복들은 우리의 가슴으로 흠뻑 스민다. 하지만 오직 우리가 그 축복들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올바른 마음가짐이 있을 때만 그것이 가능하다. 가슴이 감사의 마음으로 흠뻑 젖었다면, 우리는 연민심과 봉사, 나눔, 보살핌, 베풂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된다. (p.67) 100을 채우기 위해 하나를 쫓아다니느라 99를 사용하는 것을 잊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내 삶에서 한 가지를 배웠으며, 그것을 전적으로 믿는다. 목적지를 기다리지 말고, 여행하는 동안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다.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말라는 것이다. (P.87)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 인생책>. 아 제목을 보고 눈치챘어야 했는데. 겁도 없이 한밤중에 이 책을 펼쳐 든 나는, 구구절절 맞는 말에 목이 아프도록 고개를 끄덕이고서야 깨달았다. 왜 이 책이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 인생책인지. 물론 이 책 자체가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고 손닿는 곳에 늘 두고 싶은 '갓생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깨닫는 '나의 인생'만이 오직 나의 것이기에 내 인생은 누구에게 빌려 얻을 수 있음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하기에 이 책은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 인생책'인 것이다. 즉, 타인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 나의 삶을 여러 면으로 바라보고,...

2023.02.11
5
열린 어둠

열린 어둠 저자 렌조 미키히코 출판 모모 발매 2022.12.21. 소녀는 문득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샌가 자신의 몸에도 빛의 날개가 생겨 어둠 속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비하고 똑같이, 작년 4월 교통사고가 난 뒤부터 화석이 되어버린 몸이 자유롭게 하늘을 헤엄치고 있었다. 왜 울어? 나는 정말 기분 좋게 하늘을 날고 있는데. (p.97) 책을 읽기 전에 출판사의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반전에 놀라지 않으면 100%환불하는 이벤트를 한다고 하기에, 도대체 얼마나 대반전의 소설이기에 이렇게 장담하나,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난 후? 평소 웬만한 추리소설 내용도, 드라마도 내용도 찰떡같이 맞히는 나지만, 환불받으러 못 간다. 답이 되었는가? 쫄깃한 반전의 소설, <열린 어둠>. 일단 한번 읽어보셔라. 원래 나는 짧은 분량의 글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재미있을 만하면 끝이 나버리기도 하고, 책을 많이 읽다 보니 뒤의 내용을 워낙 잘 맞추는 터라 단편을 읽으면 금세 내용을 다 알아버려 재미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 그런데 이 책은 9개의 이야기를 모은 것인데도 소름에 소름을 더하는 느낌이랄까? 다른 일을 해가며 짬 날 때마다 단락 하나씩을 읽으면서도 어찌나 흡입력 있는지 긴 책 한 권 뚝딱 읽은 느낌을 받았다. 책을 자주 읽지 않는 사람들도 이야기가 짧아 더욱 집중하기 좋고, 장마다 다른 재미가 있어 마치 과자 선물세트를 읽듯 여러 ...

2023.01.16
4
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저자 아오야마 미나미 출판 모모 발매 2022.11.28. 사랑하는 사람이 한없이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다. (p.231) 봄의 따뜻한 기운이 그런 멋진 3년을 예감케 했다. (p.106) 기적 같은 일이다. 지금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이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빌었다. (p.15) 만약 당신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당신은 언제로 돌아갈 것인가? 지금의 나라면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한 드라마처럼 기억을 가진 채 과거로 가서 주식을 사고, 땅을 사는 등 부자가 되는 노력을 했을 것 같다. 오늘의 주인공은 길에서 고양이를 구하고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었다. 이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졌음에도 처음에는 참 시시하게 능력을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그잔이 엎질러지지 않게 하기. 그 5초를 위해 자신의 목숨의 5배를 사용해야 한다는 설정에 사실 공감이 조금 안 되기도. 아무튼, 주인공은 결혼 3년 차에 죽어버린 첫사랑을 되살리기 위해 11년 전으로, 사건이 일어나던 시점으로 돌아간다. 무려 자신의 생명, 55년을 사용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은 미노리의 행복을 지켜준다. 일본 특유의 감성이 뚝뚝 묻어나기는 하지만, 풋풋한 첫사랑의 장면들이 예쁘게 묘사되었고, 번역이 매끄러워 책은 순식간에 읽어진다. 마지막 장면...

2022.12.25
4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저자 안드레아 바츠 출판 모모 발매 2022.11.28. 거절할까. 싫다고 하고 그날 말고 다음 날 출발하자고 할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놀라운 일들은 탄광 갱도 같았고 나는 그곳에 막 발을 들여놓은 참이었다. 싸늘한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p.189) '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제목을 여러 번에 걸쳐 읽었으나 쉬이 감이 오지 않았다. '거기'가 아니라 '여기'라고 한 이유는 뭘지, 또 여기라면 왜 '없다'가 아니라 '없었다'인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표정이 없는 두 여자, 그리고 '우린 오늘 밤 시체를 묻고 여길 떠날 거야'라는 띠지에서부터 섬뜩함이 느껴지는 이 책은 이미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마리끌레르 올해의 책, 넷플릭스 영상화 확정까지 이미 '핫'한 상태. 긴긴 겨울밤, 심심함에 집어 든 이 책은 단숨에 지루함을 꿀꺽 삼키고 나의 잠까지 싹 빼앗아 달아났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흐름을 놓지 않기 위해 바빴다. 이야기가 종횡무진 빠르게 흐르기 때문에 “왜 이렇게 흘러가지?”라는 생각이 든 장면을 몇 번이나 만나야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야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야 했는지 알게 되었고, 이 이야기가 얼마나 숨 막히도록 짜인 이야기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두 여자의 상황 해결방법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

2022.12.09
6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 해방1 freed

해방 1 저자 E L 제임스 출판 시공사 발매 2022.11.17. 아나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바라는 건 그녀의 안전이었다. 아나가 없는 삶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불쾌한 이미지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레이, 그만, 그만해 병적인 생각들을 통제해야 했다. 집중해 그레이, 있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춰. 아나와 함께 (p.271)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133주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52개국에서 1억 5천만 부 이상이 판매된 그야말로 '대박 도서'. 영화화되면서 더욱 흥행한 '가장 유명한 로맨스'라는 평을 받는 책이지만, 영화는 판매된 티켓수만큼 혹평가도 많았던 것 같다. 혹평의 이유는 대개 성적인 (그것도 대중적이지 않은) 부분에 너무 과하게 치중한다는 평이 많았는데, 나는 그것이 책에서 다뤄진 부분들이 영화에서는 빠른 화면전환 등의 한계으로 인해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은 탓이라 생각한다. E.L 제임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해방'은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를 제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주체적이고 감정적인 여주인공이 아닌, 냉철하고 감정변화가 크지 않은 남주인공 그레이의 시점에서 쓰인 책이라, 로맨스로서도 부족함이 없으나 심리적 묘사도 부족함이 없다. 이미 서로를 잃어보기도 하고, 여러 위기를 겪기도 한 크리스천 그...

2022.12.03
6
우산의 비밀

우산의 비밀 저자 정명섭,장아미,심진규,임지형 출판 팩토리나인 발매 2022.02.10. 그날 이후, 울릉도 주민들은 번갈아 가며 독도에서 며칠씩 머물렀다. 고기잡이도 하며 일본 배가 오는지 지켜보는 것이었다. (p.126) 내가 독도에 있을 때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소중한 건 있을 때 잘 지켜야 한다는 거야. (p.156) 우리 집 앞의 초등학교는 '독도수호지정학교'로, 독도와 역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고 독도 체조를 하며, 1년에 한 번씩 '독도수호발표회'를 연다. 등원 길마다 학교 울타리에 붙은 독도 현수막들 덕분에 아이는 자연스럽게 독도에 대해 배우게 되고, 나는 독도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해주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독도의 모습은 여전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기에 현수막 문구들이 더 찡하다. 그래서일까. '우산의 비밀'이라는 제목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동한 것은. 이 책은 독도 엔솔러지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여 '독도'를 주제로 한 여러 작품을 모은 책이다. 청소년들이 독도에 대해 이해하고, 독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라 판단된다. 신라 시대,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독도를 배경으로 한 여러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으며 독도에 대한 배경 지식을 자연스레 습득하고,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 사실 '독도'라는 주제의 여러 작품을 모을 생각을 한 것도 신선했...

2022.11.23
6
파친코1

파친코 1 저자 이민진 출판 인플루엔셜 발매 2022.08.05. 내가 여기를 좋아하는 거 같지? 아니야. 난 여기가 싫어. 하지만 난 여기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 너 가난해지기 싫잖아. 창호야. 넌 내 밑에서 일하면서 잘 먹고 잘 벌었어. 그래서 이런저런 이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지. 당연한 일이야. 애국심은 그저 이념이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이념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잊게 돼.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는 지도자들은 그 이념에 지나치게 심취한 삶들을 이용하지. (p.362)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야기이기에 '파친코'를 모르는 이가 오히려 드물 것 같다. 책과 드라마 둘 다 흥행했다 보니 소개나 리뷰 등에서도 자주 등장했으나, 되도록 선입견이 이 책을 소화하고 싶어 타인의 리뷰를 일부러 읽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감정적으로 다소 치우치고, 내가 가지고 있던 얕은 지식에 기반했을지도 모를 글을 남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왜 제목이 파친코일까 궁금했다. 책을 읽고 난 지금은 본인에 뜻과 관계없이 '타인의 조작'에 의해 흐르는 조선인들의 애환이나 삶을 빗대어 이야기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익을 위해 핀을 조작하여 '사기도박'의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게임으로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 시절 우리 민족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고 막연히 말이다. 이 책의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만 다룬다면 일제강점기를 ...

2022.11.08
5
중금

중금 1 저자 임정원 출판 비욘드오리진 발매 2022.10.10. 중금 2 저자 임정원 출판 비욘드오리진 발매 2022.10.10. “살려달라고 하였으니, 진정 죽어야겠습니다.” 뒤주 속의 사내는 몽두를 쓰고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되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진행해온 모든 계획이 후포로 돌아간다. “살려달라고 하였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달려왔다. 이제 그만 뒤주에서 나오너라” 뒤주 밖의 남자도, 뒤주 속의 사내도 그리할 수 없다는 걸, 그리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안타까웠다. (p.16)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사도. 뒤주에 갇혀 죽어간 세자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도세자의 얼굴(사실은 배우의 얼굴)이 여럿이기에 사실 뒤주에 갇힌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이 색다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400페이지로 2권 분량의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뒷장이 궁금하여 일어날 수도, 잘 수도 없었던 것. 이제야 나는 하룻밤에 드라마 한 편을 정주행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사도세자?'하는 마음이 드는 분께 감히 말한다. 이 책은 분명 사도세자의 이야기지만, 사도세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살기 위해 죽어야 하고, 살리기 위해 죽어야 하는 이와 궁전의 벽돌이나 풀 한 포기처럼, 있지만 없는 듯 살아가는...

2022.11.04
6
사랑의 쓸모

사랑의 쓸모 저자 이동섭 출판 몽스북 발매 2022.10.28. 그는 폴과 구속되지 않되 깊은 관계를 원한다. 그가 편할 때 전화 걸고, 그녀의 집에 드나들며, 약속을 변경하며 독신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그녀만 사랑한다고 확신하면서도 그녀가 자신에게 무엇인가 요구함을 느끼면서도, 자기가 그녀를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 (p.14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내게는 '취미'라는 말로 부를 말한 것이 '책'뿐인 듯하다. 너그러운 범위에서는 몇 개쯤은 더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취미의 정의, '애정과 책임감을 느끼고 좋아하는 활동'에 부합하자면 책뿐인듯하다. 다소 심심한 삶이라는 단점이 있으나, 그래도 그 덕에 나는 꽤 많은 책을 읽었고, 좋은 책을 인생의 굽이에 다시 읽으면 다른 감상을 준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사랑의 쓸모'를 읽으며 또 한 번, 나의 인생 여정에 따라 그 모든 문학이 새로운 감상과 생각을 안겨줌에 감탄했다. 개츠비의 사랑이 확고함인지 불장난인지, 오셀로의 행동이 미련함인지 씁쓸함인지 단언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때로는 그들을 이해하고, 때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그러한 까닭에서다. 작가는 “'문학은 혼자 읽고 생각해서 각자의 답을 찾아간다.'라는 말에 기대어 나는 17편의 명작으로 사랑에 대한 나름의 답과 질문을 기록...

2022.10.30
5
흑백합

흑백합 저자 다지마 도시유키 출판 모모 발매 2022.09.20. ‘아빠는 매사에 그런 면이 있었어.’ 기일 다음 날이었다. 카메라, 쌍안경,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쓰는 아버지. ‘그런데도 한번 싫증 나면 눈길도 주지 않았다니까.’히토미 고모가 했던 그 말에 흑백합 오센에 대한 비정함이 더해져 가오루가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p.200)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이 왜 반전 미스터리 추리소설인가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저 청춘들의 첫사랑이 야기 같았기 때문. 책의 곳곳에 반전이 숨어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했음에도 '그래서 어디가 반전이지? 뭐가 속임수지?'하는 생각으로 꽤 읽어나가면서도 뭐가 반전일지 알아채기 쉽지 않았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나는 아! 하고 깨달았고, 그때야 비로소 와, 하는 감탄이 나왔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만 놀랄 수 있는 책. 눈앞에 널린 복선이 복선인지도 모르고 잔뜩 거두어드리는 책. 원래 이 소설은 2010년에 이미 한국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사실 그 자체가 글의 완성도나 인기를 어느 정도 보장한다고 볼 수 있는데(새 책조차 읽히지 못하는 게 많은 세상에서, 신간 소설들을 재치고 십여 년 지난 글을 다시 출판하는 것이니.) 처음에는 이 책을 왜 굳이,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이 책을 되살리지 않을 수 없었겠다 싶어졌다. 그만큼 스토...

2022.10.24
5
금주령

금주령 1 저자 전형진 출판 비욘드오리진 발매 2022.08.12. 금주령 2 저자 전형진 출판 비욘드오리진 발매 2022.08.12. 타인을 도운 일로 수모를 당했다면, 수모를 기억할 것이 아니라 베푼일을 기억하라는 말이엇다. 수모 당한 일로 원한을 새기기보다는 베푼 일을 떠올리며 덕을 쌓으라는 그 뜻은 어떤 경전의 구절도 담지 못한 깊은 가르침이었다. (p.28) 역사서 좋아하고, 사극 좋아하는 내가 이 책을 그냥 지나칠리가 없다. 금주령을 배경으로 암울한 시대를 그리는 스토리라기에 단박에 집어들었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16페이지까지 이어지는 등장인물소개에 덜컥 겁이 났다. 분명 나는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이 페이지를 여러번 들랑날랑거리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럴 겨를도 없이 이야기에 빠져 읽기도 바빴다. 혹시 두꺼운 책장과 수많은 등장인물에 이 책을 포기하려고 했다면 그러지 말 것. 2권이 끝인게 아쉬워질테니 말이다. 이야기는 꽤 빠르게 진행된다. 1733년에 시작된 이야기는 1697년 장길산과 양일엽의 만남으로 가기도 하고 1761년까지 바삐 흐른다. 고요한 술도가에서 전국을 배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다시 고요한 마을에서 목련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이 책의 작가는 분명 오랜세월 이 이야기를 구상하여 한 칸 한 칸 블록을 맞추듯 이...

2022.09.22
3
제저벨

제저벨 저자 듀나 출판 네오픽션 발매 2022.08.16. 항해사는 서서히 환상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전쟁의 잔혹함과 무의미함 때문은 아니었다. (...) 그녀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전쟁이 허망할 정도로 조악한 가짜라는 것이었다. (p.91) 우리나라 sf소설계의 간판스타 듀나 작가님의 신간소설인 '제저벨'을 읽었다. 사실 나는 sf를 많이 읽은 편이 아니라 적응하고 이해하기 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으나, 뒤로 갈수록 몰입력이 있어,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아마 다음에 sf를 다시 읽으면 한층 더 재미있게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크루소는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는 없는' 지긋지긋한 행성이다. 성장하지도 버려지지도 않은 잊혀진 행성에서 작게나마 변화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제저벨' 뿐이다. 제저벨은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에너지 공급을 할 수 있는 함선으로 선장, 의사, 항해사, 엔지니어, 요리사 등이 승선하여 여러 우주를 떠돌며 불시착한 이들을 구조하는 등의 일을 하는 떠돌이 배다. 이토록 멀고, 낯선 배경을 바탕으로 하지만, 인간 본연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여전히 차별하고, 종교를 맹신하기도 하며, 바이러스나 기생충 등에 두려움을 가지기도 하는. 사실 우주라는 다른 세계로 옮겨갔을 뿐, 우리의 현재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 들어 sf의 개연성결핍을 막아주는 기분이었다. 살기 위해 처절히 싸워야하는 것은 현재나 미래나 같은...

2022.09.22
8
종말주의자 고희망

종말주의자 고희망 저자 김지숙 출판 자음과모음 발매 2022.08.08. 그냥 알았어. 일종의 혀 말기 같은 거야. 학교에서 혀 말기에 대해 배운 적 있어? 누구한테는 당연히 말리는 게 누구한테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잖아. 나한테는 그랬어. 명확했어.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 (P.45) '종말주의자 고희망'.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건물주이자 잘 되는 국밥집의 손녀지만, 내면은 먼저 죽은 동생으로 가족들과 데면데면함을 유지한테 살아가는 딱한 중2. '갑작스레 찾아온 불편한 침묵'으로 표현되는 가족의 아픔은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성장시키고, 말하지 않는 아이로 키운다. 유일하게 믿고 지내는 삼촌은 삼촌대로 자신만의 사춘기를 겪는다. (사춘기가 뭐 별건가.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 사춘기지) 그러나 '종말주의자'라는 수식어와 달리 희망이도 삼촌도, 부지런히 성장한다. 그 시간을 희망은 소설을 쓰며, 삼촌은 자신을 꺼내 보이는 것으로 이겨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결국, 종말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이야기의 전반에 널리 깔려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단단한 마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말하는 “종말”은 어쩌면 졸업 같은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졸업은 헤어짐의 개념도 있으나, 한 칸 한 칸 올라가는 성장의 개념도 가지지 않나. 작가의 종...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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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툰-주홍글자

주홍 글자 -한빛비즈 문학툰 저자 미등록 출판 미등록 발매 미등록 처음 주홍글자를 읽었던 날이 여전히 선하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주홍글자(많은 분이 주홍글씨로 알고 계시지만, 이는 오역과 더불어 영화나 노래 등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를 읽고 분노에 휩싸였다. 종교인의 부도덕함, 남편이라는 작자의 음흉한 술수, 마녀사냥하는 사람들까지. 어린 나의 눈에도 그것은 비겁하고, 부끄러운 행동으로 보였다. 주홍글자를 두 번째 읽을 때는 신입사원으로서 거의 모든 것이 힘들고 부당하다 느꼈던 상태였기에 분노보다는 절망감을 느꼈고, 이번 기회에 세 번째 주홍글자를 만나며 슬픔이 나를 뒤덮음을 느낄 수 있었다. 훌륭한 작품은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을 준다. 어쩌면 그 맛에 책을 읽는 것이겠지. 당신은 누가 제일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간통을 저지른 헤스터? 그를 그런 상황에 내몰고도 자신의 목적대로 모두를 이용하는 칠링워스? 자신의 성직자 자리를 위해 모든 것을 묵인하고 혼자 아파한 것을 속죄로 착각하는 딤스데일? 욕을 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가장 피해자는? 간통을 저지른 모든 죄를 덮어쓴 헤스터? 그의 딸로 태어나 삐뚤어진 성격으로 자라버린 펄? 아내에 대한 원망으로 악마가 된 칠링워스? 죽음으로 속죄하는 딤스데일? 바로 이 포인트가 슬픈 이유다. 이 책에는 잘한 사람도 없고, 잘못하지 않은 사람도 ...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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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툰 - 레 미제라블

레 미제라블 -한빛비즈 문학툰 저자 미등록 출판 미등록 발매 미등록 지난번 문학툰 '빨강머리앤'에 이어 이번에는 '레 미제라블'이다. 아마 레미제라블 원서는 읽지 않았어도 빵을 훔쳐 감옥에 간 장발장은 모두 알 듯하다. 인간에 대한 여러 면과 깊은 고찰을 할 수 있는 엄청난 문학작품인 레 미제라블은 안타깝게도 꽤 많은 이들이 장발장이 빵을 훔치고 감옥에 19년이나 살고 나와, 주교님을 잘 만난 덕분에 선한 사람이 되어 산다는 내용만 많이 기억하는 것 같다. 그 안타까움을 한꺼번에 씻어줄 책이 바로 이 문학툰이 아닐까? 사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혁명이나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많아 쉬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로 접하시는 분들이 꽤 많은데, 영화도 그리 가벼운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레 미제라블의 내용을 쉽게 표현하면서도, 원내용을 잘 살린 만화라니! 이 책에 빠지지 않을 방법이 없다. 팡틴의 안타까운 인생도, 장발장의 내면도, 자베르 경감의 내면까지도 매우 잘 살렸다. 심지어는 코제트의 안타깝고도 사랑스러운 모습까지 그대로 나타내다니~ (아기 코제트 너무 사랑스러운 거 아니야? 이를 뺀 팡틴의 모습은 눈물이….) 레 미제라블은 아무래도 원작 자체가 조금 더 성숙하고, 깊은 내용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그대로 주기 다소 우려스러운 장면은 조금 있으나 (팡틴의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 아닌 선택을 한 매춘), 사실 그 자체가...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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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세계에서 이 눈물이 사라진다 해도

오늘 밤, 세계에서 이 눈물이 사라진다 해도 저자 이치조 미사키 출판 모모 발매 2022.07.28. 나는 바로 안과 밖을 구별한다. 도루는 그때까지 밖에 있었다. 친해졌어도 경계는 완전히 풀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그날, 달라졌다. (p.77)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내가 감히 작가님들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나, 소설은 저명한 작가님들 책을 읽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로맨스 소설은 더더욱 읽지 않았고, 드라마도 거의 보지 않았었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내가 가진 시간에 비해 읽을 책이 너무 많았던 것? 그러다 꽤 여유 있는 요즘, 그동안 읽지 않았던 소설들을 무지막지하게 읽었다. (이북 구독서비스를 늘 이용해왔으나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이기에 많이 이용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부지런히 이용 중이다.) 여전히 다른 책의 비중이 높고, 스포일러 없이 리뷰를 쓸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10대 이후, 소설의 매력에 다시 풍덩 빠져있달까. 아마도 내가 읽는 책 중 가장 말랑말랑한 책이 아닐까 생각하는 오드리의 책들. 이번에 읽은 '오늘 밤 세계에서 이 눈물이 사라진다 해도' 역시 이미 30만 부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이자, 영화화가 예정된 눈물 펑펑 쏟는 책이라고 하기에 냉큼 읽었다. 물론 나도 콧물을 훌쩍이며 읽었고. 이 도서의 전작인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고 해도'의 스핀오프로, 더불어 읽으면 ...

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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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삼촌

철수 삼촌 저자 김남윤 출판 팩토리나인 발매 2022.07.20. 경고. 당신이 이 책을 아직 만나지 않았다면 늦은 밤이나, 잠시 짬을 낸 시간에는 절대 이 책을 펼치지 마시오. 중간에는 덮을 수 없으니까. 이미 꽤 늦은 시간, 잠을 잘까, 책을 조금만 더 읽을까 하는 고민 끝에 '철수 삼촌'의 손을 덥석 잡았다가 결국 이 시간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이 텁텁한 뒷맛에 잠을 쉬이 들지는 못할 것 같다. 글이나 내용이 텁텁하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세상에 얼마든 있을 법한 내용이라서 세상의 맛이 텁텁하다. 부디 책 속에서나 이런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에서 텁텁하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연쇄살인범'. 잘생긴 표지 일러스트와 달리 설명부터 섬뜩하다. 그러나 이 책은 무섭기보다는 슬프고, 슬프기보다는 씁쓸하다. 책을 덮은 뒤에는 맥주나 소주가 아닌 따뜻한 보리차 한잔을 먹고 싶어지는 책이다. 무슨 말을 해도 이 책의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고민스럽기는 하나, 이 책이 받은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심사평'에서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나고 싶은 작품이다.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책 내용은 한 줄도 적지 않을 생각이지만, 책 한 권에서 정말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말은 남겨두고 싶다. 처음 몇 장에서는 '환멸'을, 이어서는 '긴장감'. 그 뒤에는 '답답함'과 '공포'에 이은 '걱정'과 '분노'까지. 보통 여름밤에는 스릴러나 ...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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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갈증

녹색 갈증 저자 최미래 출판 자음과모음 발매 2022.06.20. 정상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세상을 내려다본다면 내가 지금까지 미루어놓았거나 실패했던 일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과의 내기 같은 거였다. 터무니없어도 한 번쯤 믿어보는 거. 정말 그렇게 될 거라는 듯 가슴이 벅찼다. (p.55) 녹색과 갈증. 어떻게 이 두 단어를 합쳐놓았을까. 사실 내가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했던 생각 그거였다. 해설에서 소유정 문학평론가가 풀이해두었듯 에드워드 윌슨은 녹색 갈증을 '다른 형태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한다는데, 내가 읽은 최미래의 녹색갈등은 에드워드 윌슨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었다. 분명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을 담고 있으나, 그녀의 갈증은 한결 목이 마르다. 바싹 말라버린 낙엽 같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이나 내가 이 책을 읽은 소감을 기록할 수 있을지 망설였다. 이 책의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호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이 책의 '막힘 속의 해소감'을 내가 스포일러 없이 잘 이야기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점을 정리하자면, “미칠 것 같은 나날들 사이에 마신 놀랍도록 차가운 맥주의 맛” 같았다. 건조하고 결핍된 이들 사이에서도 분명히 살아가는 이유, 숨을 쉴 수 있는 시공간이 존재하는 것. 각박한 삶 속에서도 살아가게 하는 이유는 존재하는 것....

2022.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