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눈부신 어느 날, 트래펄가 광장을 가로질러 내셔널 갤러리로 - 아래층에서부터 입장 대기줄이 있는 인기 전시회는 카라바지오가 그린 마지막 작품을 보여준다. 전시는 2024년 7월 21일까지, 무료입장. Salome receives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about 1609-10 @The National Gallery, London. Bought, 1970 정확한 기록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남기고 간 화가, 카라바지오. 1671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이십 대 때 로마로 가서 빠른 성공을 이루지만 폭력적이고 괴팍한 성격이 결국 화를 불러 서른넷에 살인을 저지른 도망자가 되었다. 이전 밀라노에서도 싸우다가 베네치아를 통해 로마로 도망왔는데, 살인자가 되어 나폴리에 숨어들게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국가 연합으로 카라바지오는 다른 나라로 망명한 셈이다. 위 작품은 나폴리에서 그린 작품. 깜깜하고 좁은 전시실에서 찍을 수 있는 사진 품질은 겨우 이 정도. 런던에 있다면 꼭 보러 가기를. 전시가 끝나면 원래 소장처인 나폴리로 돌아간다. 중세부터 여성의 지위 향상을 논할 때 등장하는 성녀 우르술라, 4세기 경 기독교를 신봉하는 잉글랜드의 공주로서 이교도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성지순례를 허락받았다. 수백 명의 시녀를 대동하고 로마로 떠났던 신앙심 깊은 우르술라는 돌아오는 길에 칭기...
볼 때마다 빙긋 미소가 짓게 만드는 사람들을 그리는 프란스 할스 대형 기획전이 열렸다. 언젠가 할스의 작품을 한데 모아놓은 전시를 보고 싶다고 십 년째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역시 런던, 런던에서 보다니! 전 세계 미술관에 흩어진 주요 작품뿐만 아니라 개인 소장 중인 작품도 많이 모셔온 내셔널 갤러리 덕분에 호강했다. 런던에서 지난 1월 말에 는 끝난 전시지만,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서 같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16 Feb 2024 - 9 June 2024 The Lute Plaver, About 1623, Musée du Louvre, Paris, Paintings Department 화가의 생애를 기록한 회고전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처음부터 완성된 스타일을 타고난 건지 할스의 작품은 연도별로 큰 차이 없이 일정해서 작품 완성 시기를 파악할 필요가 없는 전시회였다. Pekelharing (The Merrv Drinker) About 1625, (Museum of Fine Arts Leipzig) The Laughing Cavalier, 1624, The Wallace Collection, London 초상화 인물들 사이를 설렁설렁 걸어 다니면서 눈길이 마주치는 인물 앞에 섰다. 알 수 없는 미소의 의미가 궁금할 때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한참 바라보며 미소만 주고받았다. Portrait of Pieter van den Br...
그동안 내셔널 갤러리에서 유료 전시를 찾지 못했던 이유는 (아직도 다 보지 못한) 상설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데다 크고 작은 무료 기획전이 상시 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상설전은 국가별, 연대별, 미술사조별로 이어지고 기획전은 그중의 한 부분을 잘라내어 깊이 파고드는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기획전은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 위주로 구성하지만 "무료"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작품들을 다른 미술관에서 상당히 많이 대여해오는 덕분에 내용은 무척 알차다. 내셔널 갤러리를 찾는다면 상설전뿐만 아니라 무료 기획전도 눈여겨 보기를. 현재 열리고 있는 무료 기획전 중 하나, 초기 르네상스 화가, 페셀리노 회고전. 1942년 피렌체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코 페셀리노의 본명은 따로 있지만 유명 화가로 이름난 외할아버지 별명이었던 Pesello(완두콩이란 뜻)이 姓으로 굳어졌다. 아버지도 화가였지만 일찍 돌아가셨고, 피셀리노는 외할아버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기본기를 탄탄히 쌓았다. 스무 살 무렵 이미 대형 성당 등에서 큰 수주를 받으며 일찍이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던 페셀리노는 교황 니콜라스 5세에게 바쳐진 화려한 채색사본을 완성함으로써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 KING MELCHIOR SAILING TO THE HOLY LAND about 1445-50, Egg tempera and oil (?) on panel, Clark Art Insti...
듬성듬성 빠진 머리카락 사이 드러난 두피와 축 늘어진 살갗 위 도드라진 점은 화려한 머리장식으로도 숨길 수 없고, 풍파 진 세월의 흔적은 타이트한 코르셋도 막을 수 없다. The Ugly Duchess, 1513 누가 왜 이 여인을 화폭에 담았을까. 그녀는 어떤 사연을 품고 살았을까. 두 폭으로 완성된 남녀 초상화는 벨기에 안트베르펜 화가 Quinten Massys(1466-1530)의 작품이다. 현재 여자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고 남자는 개인 소장품이라 나란히 함께 걸린 모습을 보기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귀한 장면을 보여준 곳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 무료 기획전. An Old Man, 1513 중세 부르고뉴 귀족 여인들이 착용했던 뿔 모양의 여자 머리장식처럼 남자도 스타일리시한 모자가 먼저 눈길을 끈다. 여자가 기괴한 가상의 캐릭터 같다면 남자는 그 당시 존재했을법한 중년처럼 보여서 한눈에 커플로 보이는 작품은 아니다. 제목대로 그로테스크한 늙은 여자의 별칭은 고급스러운 의복에 어울리게 못생긴 “공작부인"으로 불리는데, 실제 했던 인물인지 전해지는 바 없다. 그녀의 탄생은 의외의 인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손끝, 발명가로도 유명한 이 이탈리아 화가는 민속 우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그림으로 재탄생 시키기 좋아했다. 다빈치의 오리지널 드로잉은 분실됐지만 동시대 화가들과 후배들까지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따라 그려서 남겼다. 마시스...
15세기 피렌체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세련된 색감에 반한 밤, 이제 완전히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온 내셔널 갤러리, 금요일에는 저녁 9시까지 문을 연다. 스물아홉 살 프랑스 대사, 그리고 그의 절친인 프랑스 주교.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오랫동안 여러가지 설명을 반복적으로 들어왔지만, 오늘 밤 보자마자 저절로 튀어나온 말. 요즘으로 치자면 그 시대의 허세샷이 아닐까? 보통의 집안 출신은 절대 택할 수 없었던 고위 공무원 직업을 가진 젊은이들이 고급스러움은 물론 최첨단 유행을 달리는 패션을 두르고, 과학부터 예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며 지구본에는 자신의 가문을 당당히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어둔 셈이다. 게다가 인스타 한 줄 감성 글귀와 꼭 같은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는 해골까지 - 야간 개장이라서인지 관람객들의 연령층이 부쩍 젊어진 분위기라 옛날 그림도 요즘의 것들로 느껴졌다. 프란스 할스의 붓질이야말로 hip하지! 증축을 거듭한 내셔널 갤러리는 꽤나 복잡한 동선으로 움직여야 할 만큼 전시실이 많은데, 현재 세인즈버리 윙이 리노베이션에 들어갔다. 그래서 메이저 작품들이 빠진 건 아쉽지만 전시실이 크게 줄어서 진짜 하이라이트만 볼 수 있게 되어 관람이 여유로워졌다. 이 와중에 개인 전시실을 사수한 화가들은 반 아이크, 렘브란트, 루벤스. 렘브란트의 집과 암스테르담 2015년 9월 어느 월요일의 암스테르담 주말의 혼잡했던 시간이 곳곳에 ...
정확히 백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게인즈버러의 블루 보이를 만나러 - Mar. 2022 내셔널 갤러리 내 무료입장 기획전 Gainsborough's Blue Boy Right : A Knight with his Jousting Helmet in about 1554-8 by Giovanni Battista Moroni(1520/4-1579) Left: Portrait of a Man in 1526 by Moretto da Brescia(about 1498-1554) 블루 보이에게 가는 길, 이렇게 맥락이 딱 맞아떨어지는 작품들을 "무료" 기획전 동선 위에 얹어두는 센스! Grand Manner Portraiture 1500 - 1900 사제지간으로 알려진 Moretto가 그린 브레시아 귀족 집안의 아들과 그의 제자 Moroni가 그린 아버지, 마주 보는 이 두 점의 초상화는 신이나 왕이 아닌 일반인을 실물 크기로 그린 최초의 초상화라고 알려져 있다. Elizabeth Stuart, Queen of Bohemia in 1642 by Gerrit van Honthorst(1592-1656) 메인 전시를 보기 전 에피타이저랄까, The Balbi Children in about 1625-7 by Anthony van Dyck (1599-1641) 반 다이크의 그림을 전시회 애피타이저라 부를 수 있다니, 런던에서 부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
10월의 마지막 날, 겨울이 성큼 온 듯 바싹하고 쌀쌀한 오후. 내셔널 갤러리 산책, 예약한 사람만 입장 가능했다. 아마도 미술관 상황에 따라 입장 방침이 오락가락하는 듯. 오랜만에 낮은 땅, 플란더스 풍경을 보니 익숙함 때문인지 눈도 마음도 괜히 편안해지는 것만 같았다. A View of Het Steen in the Early Morning, probably 1636, Peter Paul Rubens(1577-1640) 레이스 지붕 장식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플랑드르 풍의 건축은 루벤스가 말년에 구입한 성, 그가 얼마나 취향 있는 귀족적인 생활을 영위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루벤스의 집 : Rubenshuis 안트베르펜 중심가에 있는 루벤스의 집 도심 속 쇼핑가 바로 옆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푸릇... blog.naver.com 오늘 풍경의 주인공은 베니스, 베니스라면 카날레토 그리고 그의 조카 벨로토. Venice: The Grand Canal facing Santa Croce, about 1738 Bernardo Bellotto(1722 - 1780) 조카의 베니스, Venice: S. Pietro in Castello, 1730s Canaletto(1697 - 1768) 삼촌의 베니스. Venice: The Grand Canal with S. Simeone Piccolo, about 1740 Canaletto(...
피사로가 그린 세잔, 1874 런던 템즈 강가를 그린 시슬리와 모네, 그리고 인상파의 선구자로 알려진 부댕 Without the fog, London would not be a beautiful city. It’s the fog that gives it its magnificent breadth. Monet, first stay in London 1870-71 Fox Hill, Upper Norwood in 1870, Camille Pissarro 1870년부터 71년까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동안 파리에서 이주한 인상파 화가들의 아지트, 런던 마네, 모네, 피사로, 시슬리 등등...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왔던 이 유명 인사들은 파리와는 사뭇 다른 대도시 런던을 화폭에 담았다. The Gare St-Lazare in 1877, Monet 모네는 전쟁이 끝날 무렵 런던을 떠나 네덜란드 잔담에 잠시 머무르며 전쟁 후풍까지도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 파리로 돌아갔다. 모네가 머물다 : 잔담 모네가 머물렀던 네덜란드 도시, 잔담 장난감처럼 생긴 레고 집이 모인 잔담과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 사이... blog.naver.com 징집을 피해 찾은 런던을 잊지 못한 모네는 30년 후 런던을 재방문,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방문을 이어가며 런던 풍경을 백여 점이 넘게 남겼다. The Boulevard Montmartre at Night in 1897,...
The Adoration of the Kings, 1564, Pieter Bruegel the Elder(active1550/1; died 1569)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전시실 Room 14는 네덜란드The Netherlands라 불리지만, 오늘날 영토로 보자면 벨기에 북부 네덜란드어권 출신들 중 16세기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아두었다. Adoration of the Kings, c.1515, Gerard David(active 1484 ; died 1523) 브뤼헤, 겐트, 안트베르펜, 루벤 등 도시국가로 독자적 경제와 문화를 꽃피웠던 이 땅은 오백년간 부르고뉴 공국 치하에 있었지만, 부르고뉴의 마지막 후손 부귀공 마리가 합스부르크와 혼인하면서 다음 세대부터 합스부르크 왕가에 귀속되고, 또 마리의 손자대에 와서는 결혼으로 얽힌 역사로 인해 스페인령의 네덜란드가 된다. 그 땅이 바로 프랑스어로는 플랑드르Flandre, 네덜란드어로는 블란데런Vlaanderen Landscape with the Flight into Egypt, 1563, Pieter Bruegel the Elder(active1550/1; died 1569) 일찍이 부유한 상공인 계급이 우세했던 플랑드르의 부자들은 수많은 종교화를 의뢰해 예수님과 함께 자신들의 얼굴을 남겼다. The Virgin and Child Enthroned, with Four Angels, c....
여름. 일요일 오후. 다정한 볕과 나른한 평화. 그런 기분 좋은 단어들이 절로 떠오르는 쇠라의 물놀이. Bathers at Asnières in 1884 Studies of Bathers at Asnières &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by Georges Seurat 2014년 여름,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열렸던 쇠라 단독 전시회, 서른두 해 짧은 생애였고 예민한 성격 탓에 작품 수가 현저히 적은 화가의 귀한 전시였다. 쇠라, 점묘법의 대가 : 크뢸러 뮐러 미술관 서른둘에 요절하면서 오십여 점의 작품을 남긴 쇠라의 주요 페인팅 스물세 점과 스물네 점의 드로잉을 걸었... blog.naver.com 쇠라의 점묘법이 확실히 드러나 결실을 맺은 대표작들은 책에서나 보았을 뿐, 오래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처음 봤던 쇠라 작품은 점묘법을 온전히 소화하기 전의 작품으로 크뢸러 뮐러가 소장한 말기 작품인 La Chuhut(The Can-Can)과 같은 화가라는 것이 놀라울 만큼 다른 분위기! The Channel of Gravelines, Grand Fort-Philippe, 1890, Georges Seurat(1859 - 1891) 내셔널 갤러리에는 초기, 중기, 말기작이 나란히 걸려있어 쇠라의 점묘화 발전 경향이 뚜렷이 보인다. 색채학부터 광학 이론까지 망라...
지난 몇 번의 주말 미술관 관람 및 도심 나들이 이후 될 수 있으면 주말은 집순이로 지내고 어떻게든 주중을 즐기기로 했다. 예상대로 금요일 오전 텅 빈 버스 :-) 날씨가 맑아질수록 어디든 인파가 몰릴 수밖에 없으니 흐린 날이 반갑다. @National Gallry, London 입장은 세인즈베리 윙으로 하고 정해진 루트에 따라 일방통행으로 관람하고 퇴장은 반대쪽 트래펄가 광장 쪽으로만 가능. 아마도 2009년이 마지막 방문, 언제나 붐비던 공간이 비어있으니 이렇게 넓고 밝은 곳이었나 싶은, 완전 새로운 곳에 온 기분이 들었다.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코로나 때문에 좋아진 부분은 쾌적한 미술관 관람인 듯;;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입장정원을 현저히 줄였으니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한산하고 차분한 공간을 거닐 수 있고, 번거로운 예약을 무릅쓸 만큼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관람 예절도 좋아서 한 작품도 놓칠 일 없이 집중도가 최상으로 유지된다. 현재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 전시관은 A, B, C 루트로 나눠져 운영되는데 이탈리아를 보고 싶었던 나는 A를 선택했다. 유난히 여행 계획이 많았던 작년 첫 여행지가 이탈리아였기에 갈 수 없었던 곳에 대한 그리움이 자라는 요즘, 이탈리아 그림여행. 13세기까지 그리스 정교회 이콘화 영향이 선명한 이탈리아 종교화는 14세기에 들어 그림 속 얼굴과 복장이 이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