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를 두고 '미술 올림픽'이라 할 만큼 86개국 국가관에 언론 집중도가 높지만, 개인적으로는 매회 달라지는 비엔날레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두 개의 메인 전시장을 꼼꼼히 보는데 집중했다.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 두 지역에 각각 메인 전시장이 있고 그 속에 소주제로 전시회가 엮여있는데, 그중 가장 재밌는 전시는 바로, Italians Everywhere. 브라질 출신인 비엔날레 총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의 뼈 때리는 질문과 예의 바른 유머가 섞인 이 전시회에는 20세기 디아스포라로 제3세계를 떠돌아야 했던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두었다. 세계에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가장 많은 나라는 바로 브라질! 언뜻 보면 유럽이나 미국에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많을 것 같지만, 남미에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벽이 아닌 공간에 조각처럼 회화를 세우는 형식의 전시 기법으로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건축가, Lina Bo Bardi가 개발한 '유리 이젤'을 사용했다. 리나는 1914년 로마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교육받고 일을 시작했지만, 2차 세계 대전 때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전적으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살기 어려워지자 브라질로 이주했다. 상파울루 미술관 건물이 그녀 작품으로, 리나는 1992년 사망했지만 2021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여했다. 각종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이민자들을 탓하며...
Foreigners Evervwhere (Self-portrait) Stranieri Ovunque(Autoritratto), 2024, Claire Fontaine(Founded in Paris, 2004, Based in Palermo, Italy) 이방인은 어디에나 -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동안 소외되었던 부류의 예술가들을 조명했다. 외국인, 원주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주류 미술계에 편입될 수 없었던 사회적 위치에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쌓아간 예술가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학문의 태생적 이유로 서양 위주의 시선이 당연한 미술계에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아트페어에 개념보다 사실적 얼굴을 중심으로 꾸리기란 쉽지 않았을 테다. 남미 출신으로 처음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에 선임된 아드리아노 페드로사(58)는 브라질인이자 퀴어 큐레이터다. 우경화되어가는 세계 정치 추세 속에서 당분간은 미술계 주변부 인사이자 퀴어가 이렇게 큰 아트페어의 총감독을 맡기란 어려울 거라 고백한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얼굴들을 선보이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담은 비엔날레 사진 속에서 인물들만 꺼내어 보았다. 오랜 기간 외국에 살고 있고 여행도 종종 하는 편이라 낯선 얼굴들에 익숙하다고 여기며 살았는데 웬걸! 아직 모르는 나라, 이해하기 힘든 문화, 낯선 얼굴들이 너무나 많아서 놀라움의 연속이...
아버지 이름이 뭐꼬? 본가가 어디고? 항렬이 어떻게 되노? - 족보 따지는 일이 흔한 한국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해가 더 잘 될 것 같은 2024년 베니스 호주관 작품, 올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호주 작가, 아치 무어는 몇 개월에 걸쳐 전시실 벽에 자신의 집안 족보를 써 내려갔다. 전시실 중앙에 위치한 서류더미는 무어가 조상들에 대해 조사하면서 쌓인 문서다. 1970년, 호주 퀸즐랜드주에서 원주민 어머니와 영국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치 무어는 Kamilaroi/Bigambul 부족에 속한다. 멀티미디어 작가로서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과 호주 역사 탐구에 몰두한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작품은 알고 볼수록 등골이 서늘해지는 작품으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묘비 사진을 찍는 듯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작품이라 한 수상 평가가 이해되는 지점이다. 호주 원주민들의 이름은 대부분 영국의 것을 차용해서 단순히 이름이나 성만으로 그 출신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작가의 배경을 알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작가 이름, 생년과 고향, 어느 부족 출신인지까지 정확히 명시한다. 그런 정보가 "예술"을 바라보는데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출신을 부정당하고 문화를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진짜 이름이 없었다. 진짜 목소리가 없었다. 원래 호주 원주민들의 이름은 태어난 지역명이나 부족명, 직업에서 따왔고 성은...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는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져있는데 바다를 끼고 걷는다면 눈을 쉬어갈 수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처음이라 한국관이 가장 궁금했다. 한국관은 자르디니에 위치. 한국은 1995년부터 참가해서 국가관 건축도 같은 해에 마무리되었다. 예술의 전당 등을 설계한 한국의 대표 건축가 김석철과 베니스 출신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가 디자인했다. 반가운 한국어 전시 설명 :-) 그런데 작품은 어디 있죠??? 이것이 전부인가!?! 글을 읽어도 잘 모르겠고 공간을 바라보면 고개만 갸우뚱거리되는 장면만 이어졌다. <구정아 - 오도라마 시티》 작가의 작품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한국의 냄새였다. 향기는 뭔가 좋은 냄새만 나야 할 것 같아서 좀 더 다양한 종류를 표현하기 위해 "냄새"라는 단어를 썼는데, 영어로도 "odor"를 사용하고 있었다. 킁.킁. 별 냄새 안 나는데? 내 의아한 표정과 의심스러운 발걸음을 눈치챘는지 안내원이 다가왔다. 그래서 저는 무슨 냄새를 맡아야 하는 거죠?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향기를 은은하게 퍼트리는 장치가 되어있었지만 솔직히 아무 향도 나지 않았다. 열정적인 설명에 몇 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듯한 반응을 보여주긴 했지만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바닥에서도... 창밖에서도 향이 난다...고 했다. 한국인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을 향한 오픈콜로 냄새에 대한 한국의 기억을 모았고, 600여 편의 글을 바탕으로 1...
올해 이탈리아에 갈 일이 있긴 했지만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갈지는 몰랐기에 준비하는 내내 계획이 틀어질까 봐 설레는 마음을 꽁꽁 숨겨두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에 관심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행사가 아닐까 싶다. 워낙 국제적인 미술 축제라서 오픈 전부터 관련 기사가 쏟아지는데, 정작 오프닝 후에는 언론의 관심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려서 신기할 뿐이다. 4월 말에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는 11월 말에 끝이 나는데, 행사 기간이 워낙 길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혼잡을 예상하고 갔지만 6월 말의 베니스 비엔날레는 매우 한산했다. Mataaho Collective(Founded in Aotearoa, New Zealand, 2012 Based in Aotearoa, New Zealand) 이런 식의 미술 전시는 마치 전집을 읽는 것과 같아서 짧은 기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접어야 했다. 무조건 전집을 다 읽는 것보다 문맥을 잘 이해하고 실망이든 감동이든 얻는 점이 있어야 독서의 의미가 있듯 비엔날레도 마찬가지, 아무리 시간에 쫓긴다 하더라도 자기만의 속도로 봐야지 남는 게 생길 테다. 물론 엔터테인먼트로 재미만 쫓는 것도 나쁠 것 없지만, 줄거리만 아는 책이 인생을 풍성하게 하기란 어렵듯 미술 전시에서 작품의 선과 색감만 탐하다 보면 의미를 잃고 만다. 그래서 비엔날레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 꼭 들러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