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마다 어떤 주제로 작은 기획전을 열어두었을지 기대하게 만드는 덜이치 미술관, 런던에서는 드물게 유료로 운영하는 작은 미술관이지만 늘 볼거리가 넘친다. May, 2022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Philips Wouwerman의 그림 위조 논란을 다룬 이 전시회는 관람자가 탐정이 된 것처럼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 배열과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필립스 바우베르만은 1619년 네덜란드 하를럼에서 태어났다. 신교 탄압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와 벨기에서 올라온 다양한 기술자들 덕분에 하를렘의 산업은 크게 번창했고 초상화를 의뢰할 만한 부유한 중산층이 급속히 늘어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시절이었다. 하를렘을 대표하는 화가, 프란스 할스와 함께 공부했다고 전해지는 필립스 바우베르만은 평생 600여 점이 넘는 대량 작업을 한데다 상업적 성공으로 부유하게 살았다. 문제는 그의 사후에 터졌다. 당대 명망 있던 전기 작가가 필립스 바우베르만이 다른 화가의 드로잉을 훔치는 것으로 작업량을 크게 늘였고 이로 인한 금전적 이득을 챙겼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필립스 바우베르만이 선배 화가 드로잉이 가득 든 가방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 드로잉을 바탕으로 작업했다는 이 주장은 여러모로 설득력 있었다. 필립스 바우베르만보다 스무 살 연상으로 같은 고향 출신 화가, Pieter van Laer는 살아생전 여행을 많이 했던 화가로 로마의 일상 풍경을 잘 담아내...
네덜란드 대표 식문화라면 이 자판기를 제일 먼저 꼽겠다. 저래 봬도 자판기 안에 있는 튀김류와 버거 등 간편식이 즉석으로 조리되는데, 자판기 뒤에서는 주방이 바삐 돌아가고 있다. 높은 인건비 등을 자판기 유행의 이유로 꼽을 수도 있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이 그저 선호하는 방식 같다. 네덜란드 시골에 살 때 농장 직거래 생산물을 사러 가면 농부가 아닌 자판기가 맞아주었으니. 달걀 사러 가는 길 하루 종일 낮은 구름과 뿌연 안개가 낀 오늘은 비가 올 듯 말 듯 공기 중 습기가 알알이 다 느껴지는 답답... blog.naver.com 네덜란드는 전 세계 커피, 티, 카카오, 허브 등 다양한 농산물과 식재료를 모아 중개하는 곳으로 식품 가공업이 크게 발전한 나라다. 크래프트 하인즈 등 세계적 식품 회사가 네덜란드에 연구소와 공장을 두고 있는데, 실제 네덜란드에서 살던 동네에서는 하루 종일 초콜릿 냄새가 났다. 그래서 카카오 가공류, 초콜릿을 활용한 제품이 다양하고 저렴하다. 코코아 마을, 잔세 스칸스 비 오는 날 커피향이 유독 더 짙게 느껴지듯 비를 이고 온 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날 특히 더 진한, 코코아... blog.naver.com 그래서인지 네덜란드에서는 푸드 바스켓, 먹거리 선물을 주고받는 일도 흔하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네덜란드스러운 먹거리" 쇼핑을 하고자 한다면 이 정도 - 정말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브랜드 제품들이다. ...
Flying Fish, 1993, Carel Visser (1928- 2015, NL) @Departure Hall 3 네덜란드를 드나드는 중심 관문,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는 공공미술 백여 점이 흩어져 있다. 인테리어의 일부분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작품도 있고 공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주 큰 규모의 작품도 있다.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귀여운 이미지도 있고 도통 그 의미를 알 수 없을 것 같은 모양도 있다. 스키폴 공항에는 미술 작품만 전시하는 공간, 네덜란드 국립 미술관 분관도 있다. (지난 전시가 2024년 11월에 막을 내린 후 영구 폐관이라는 소식이 있는데, 확실하진 않다.) 베르메르와 렘브란트의 고향인 네덜란드는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미술사조를 발전시켰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도 많이 소장한다. 베르메르와 렘브란트 : Rijksmuseum July, 2015 @Rijksmuseum 오전 내내 비바람으로 시작한 일요일, 미술관에 관람객이 적을 테니 비도 좋다 ... blog.naver.com 작년 1월에 공항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만난 전시회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통해 그 시대의 밥상을 탐구한 전시회였다. (Nov 2023 - Nov 2024) Still Life with Fruit and Oysters, Abraham Mignon (1640-1679) Still Life with Fruit, 1673,...
고대 로마 시대 이전부터 자리한 오랜 도시지만 사실 런던은 17세기 대화재와 20세기 세계 대전 때문에 현대적인 건물 풍경이 많다. 덕분에 이름 모를 영웅들의 동상만큼이나 동시대 미술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REAL TIME, Paddington 2021, London (UK) by Maarten Baas 네덜란드 디자이너, 마르텐 바스의 시간을 그리는 남자를 만난다. 마르텐 바스의 가구 : Design Museum Gent 1978년생 네덜란드 디자이너 Maarten Baas의 회고전과도 같은 단독 전시회 @Design Museum Gent 데슈... blog.naver.com ALERT, Imperial College 2022, by Antony Gormley 안토니 곰리의 최신작을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다. 안토니 곰리 : White Cube Gallery 올해 첫 전시회 막을 내리는 전시가 유독 많은 올해 1월, 놓치기 아까운 전시회. 나이가 들수록 잘 연마된 ... blog.naver.com STREET LIFE, Docklands Light Railway 2009, by Machael Craig-Martin 지하철역 출구를 잘못 찾아헤매다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벽화를 만났다. 아무리 큰 전시회라고 해도 이 정도 대형 작품은 야외 미술으로만 가능할 테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회고전 : Royal Ac...
지난해 가을/겨울 시즌 RA 앞마당 조각은 회고전과 연계한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작품으로 새파란 가을 하늘과도 잘 어울렸지만 한겨울 회색빛과는 더 잘 어울렸다. Self-portrait (aqua), 2007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은 아일랜드 태생이지만 어릴 적 아버지 직업을 따라 미국과 콜롬비아에서 교육받았다. 역사와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이후 예일대 페인팅 코스에 다녔다. 당시 예일대는 색채 교육으로 유명한 화가 요제프 알베르스의 영향으로 일찍이 추상미술이 일반적이었고 알렉스 카츠 등 미국의 추상 미술을 선도하는 작가들이 강사였기에 크레이그-마틴의 작품 세계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Untitled (art/blue), 2024 말장난 같은 언어와 낙서 같은 그림이 같이 있어 그라피티 같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색상 때문에 팝아트로 보이기도 하는 크레이그-마틴의 후기 회화 작품이 가장 아이코닉하다고 할 수 있지만, 테이트 모던이 소장한 설치작품이야말로 개념예술가로서의 크레이그-마틴의 작품 세계를 관통한다. Oak Tree, 1973 & On the Table, 1970 Oak Tree, 1973 선반에 물 한 잔 달랑 놓인 이 작품은 그 옆에 붙은 텍스트와 함께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이게 무슨 아트야? 저게 작품이라고?? 이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아직도 이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이 생생하다. 당시 미술관 소속 전문...
100% 포르투갈 와인만 선보이는 포르투갈 음식점, 그래서인지 와인과 페어링에 신경 쓴 식사 메뉴가 돋보였다. 의외로 베지테리안 요리가 맛있었는데, 한겨울 채소로 어떻게 이런 맛을 냈을까?! 유럽은 지금부터 정말 힘든 겨울이다.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장식이 철수했고 들썩이던 연말 분위기도 지나고 연초의 산뜻한 기분도 지금쯤이면 가라앉는다. 앞으로 두어 달, 밤낮 구별없이 축축하고 어두운 날들 속에서 바닥을 모르고 깊이 가라앉는 기분을 위해 햇볕 나라 음식을 종종 찾는다. 이베리아반도의 햇살을 상상하며 먹는다. 그래서 기억나지 않는 메뉴 이름을 몽땅 햇살 음식이라 부른다. 쨍쨍한 햇볕 아래 익어간 포도를 담은 와인을 마시며 광합성을 하는 기분을 느낀다. 포르투갈 음식은 스페인 음식에 비해 간이 약하달까, 덩달아 와인도 덜 선명하지만 싱그러운 느낌이 좋다. 에그타르트는 필수니까, 디저트 코스로 먹기. 런던의 한겨울 식생활. 일반 슈퍼마켓에서는 찾기힘든 재밌는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영국 사이트, 마침 할인 기간 :-) Sous Chef Cooking Shop - Cook Something Amazing Today Buy hard-to-find ingredients, world ingredients and cooking equipment for the home cook and professional kitchen. Sous Chef is ...
작년에 열린 사전트의 대형 회고전은 패션에 포커스를 두고 있어 영국과 미국의 명문가 패셔니스타들이 화려한 사전트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대거 등장했다. 그중 인도에서 사업을 크게 일으킨 페르시아계 유대인이자 인도인으로 태어난 사순 가문의 자녀들은 영국 귀족으로 자리 잡아 사전트와 같은 시대를 살며 얼굴을 많이 남겼다. '사순'이란 성은 지금도 뭄바이(옛 봄베이)부터 중국 상해까지 근대 무역 중심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했다. 같은 가문이 영국에도 단단히 뿌리내린 셈. Lady Sassoon (Aline de Rothschild), 1907 사순과 함께 또 다른 세계 금융의 거물급,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태어나 사순 가문의 며느리가 된 레이디 사순의 초상화 - 이번 사전트 전시회에서 한 전시실을 온전히 다 차지한 첫 작품으로 걸렸었었다. 존 싱어 사전트 : Tate Britain 한 화가의 특징에는 한 사람의 성격만큼이나 여러 면모가 있는데, 올해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린 기획전에서... blog.naver.com The Countess of Rocksavage (Sybil Sassoon), 1922 레이디 사순은 사순 집안의 맏며느리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두었는데, 사전트는 이들과도 친분이 깊었고 초상화를 그렸다. 이 전시의 처음과 마지막을 엄마와 딸, 사순 가문이 열었던 셈이다. 중세 오스트리아 여왕의 초...
요란한 도심 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분이 들었던 순간, 우연히 본 도서 행사는 온전히 영어로 진행되고 있었다. 저자와의 만남, 낭독회, 책 판매가 한꺼번에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차분한 분위기 좋았다. 우리는 흔히 국적과 민족을 동일시하지만 한국 밖을 벗어나 보면 한 국가 안에 정말 다양한 민족이 자연스럽게 섞여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인도 행사지만 영어로 진행되고 책 내용은 인도지만 저자들의 국적은 세계적이었다. 특히 오랜 항구 도시 뭄바이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도인"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도서 행사 및 미술 전시가 열린 곳은 데이비드 사순 라이브러리, 유대계 인도인의 이름으로 문을 연 도서관이다. David Sassoon Library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왕실의 곳간지기로 활동하던 유대인 가문의 수장인 데이비드 사순은 18세기 말에 오스만튀르크 제국에서 대가족을 이끌고 봄베이로 이주했다. 타타 가문과 마찬가지로 사순도 아편과 면화 무역 같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주요 아이템을 통해 더 큰 부자가 되었다. 데이비드 사순은 자식을 14명이나 두었는데 대부분 영국에서 귀족 작위를 받았고, 금융 외에도 출판 등 영국 근대 산업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결혼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간 사순의 후손들은 군인, 정치인 등 각국의 엘리트 계층에 편입되었고 로스차일드와 같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금융계의 큰손이다. ...
Gateway of India 뭄바이에 도착할 때까지 예상치 못했던 인도의 휴일, 1월 26일, 우리네 제헌절과 같은 인도 헌법 제정일인 Republic day가 낀 주말이었다. 색다른 번잡함이었지만 (놀랍게도!) 어느 정도의 질서 유지가 실현되고 있었다. 1911년 영국 왕 조지 5세의 인도 방문으로 세워진 기념문 아래에는 사진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인도식 제스처에 익숙해진 남편 덕분에 우리 주변에는 사진사들이 (거짓말처럼!) 얼씬도 하지 않았다. 델리 하늘을 이고 산책한다는 의미란 안팎으로 회색빛 델리. 수년 전, 그러니까 인도에 닿기 전, 네덜란드에 사는 아들을 방문하신 인도 친구 부... blog.naver.com 기념문과 마주하고 있는 타타 그룹 소유의 타지마할 호텔이 언뜻 보였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인도인들이 드나들 수 없었던 영국식 고급 호텔에 대항해 타타 창업주가 세운 호텔, 타지마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부러 호텔에 구경 가는 관광객들이 있다더니 보자마자 이유를 알겠더라는. 타타 컬렉션 : 뭄바이 미술관 뭄바이에는 그 이름도 거창한 Chhatrapati Shivaji Maharaj Vastu Sangrahalaya, 줄여서 CSMVS라... blog.naver.com 뭄바이행 비행기표를 발권할 때까지 정확히 몰랐다. 봄베이가 뭄바이인 줄. 서울이 일제강점기 일 때 경성이었듯이 뭄...
뭄바이에는 그 이름도 거창한 Chhatrapati Shivaji Maharaj Vastu Sangrahalaya, 줄여서 CSMVS라 부르는 역사 박물관 겸 미술관이 있다. 규모가 커서 그냥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헤매다가 발견한 게인즈버러와 컨스터블, 그 이름을 따라 타타 컬렉션을 만났다. Jamsetji N. Tata(1839-1904) by Edwin Ward (British, 1859-1933) 타타 가문이 이끄는 인도의 국민 기업 타타는 식품부터 철강, 자동차, 항공까지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지분을 가진 초대형 기업이다. 대우중공업을 인수하는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며 인도 내에서는 특히 자선사업을 널리 펼치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타타 가문은 조로아스터교를 따르는 페르시아계 인도 민족, 파시(Parsi) 출신이다. 위 초상화는 타타 그룹 창업자, 잠세트 타타, 종교 지도자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뭄바이에서 공부한 후 무역회사를 시작했다. Adoration of Magi, Studio of Bonifazio de' Pitati, Veronese (1487-1553) 유럽의 유대인들처럼 인도의 파시들은 근대 산업사회를 이끌었는데,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진행한 사업 중에는 아편 무역 비중이 컸다. 이외에도 타타 그룹의 사업에는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국민이 사랑하는 기업으...
특별한 이벤트 없이 작업실 붙박이로 있다가 새해가 되어버려서인지 유독 해가 바뀌는 경계가 모호해진 2025년. 바쁘다 아프다 괴롭다 하면서도 뒤돌아보면 때마다 할 일은 다 하고 지낸다;; 연말부터 새해 연휴까지는 꼭 집에서 보내려고 하는데, 올해부터는 새해 다음날 거주 지역을 벗어난 일일 나들이하는 리추얼을 만들기로 했다. 해가 나면 기온이 떨어져 강추위를 견뎌야 하고, 기온이 오르면 축축한 회색빛을 감당해야 하는 런던의 겨울, 연초에 북쪽에는 눈이 많이 왔다지만 여긴 며칠이고 비가 내렸다. 이전에는 비바람 부는 겨울날 따뜻한 티타임이 간절했는데, 드디어 벽난로 열기가 뜨거운 펍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는 맛을 알게 되었다. 새해 기분이 구정까지 이어지는 한국에서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지나자마자 장식이 다 내려가고 1월 2일이면 벌써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매일매일 더 많은 크리스마스 나무들이 길거리에 나뒹굴면 연말에 넉넉해졌던 마음도 싸늘해지는 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시간들에 익숙해질 것 같지만 잊음이 잦은 나는 해마다 새롭다. 조류관찰자의 겨울 : London Wetlands Centre 이렇게 화창한 겨울날은 무조건 걷기! 일 년 365일 중 크리스마스 당일, 단 하루를 제외하고 364일 문을 여... blog.naver.com 그래서 만든 이벤트, 과연 갈 수 있을까 ㅎㅎ 화가 루시안 ...
베니스 비엔날레 행사장 중 하나인 아르세날레 근처에는 무료입장 가능한 국가관이 여럿 있었다. 홍콩 국가관 -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베니스 구옥 분위기가 홍콩스러워서 놀랐다. 공간을 사로잡은 작품의 힘이었을까. 아제르바이잔관 - 평생 가볼 일이 있을까 싶은 나라를 미술을 통해 여행했다. 수년 전 네덜란드어 어학당에서 아제르바이잔 출신과 그룹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과하게 권위적이라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내 나이를 알고 바로 꼬리를 내렸던 그녀;; 예의는 바르다고 좋게 기억해야 할지 젊은이가 벌써부터 꼰대 기질이 충만해 안쓰러웠다고 할지. 한 나라의 이미지를 한 개인이 이런 식으로 만들기도 한다. 미술로 다시 배운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안 해안에 위치한 나라... 의외로 젊고 세련되었던 몽고관 - 여기까지, 아르세날레 본전시 입구 앞 무료 입장 국가관. 행사장 내에 지정 국가관을 가지지 못한 국가들은 베니스 곳곳에 국가관을 운영하는 것 같았다. 입장료를 내고 둘러보는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행사장은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각각 본전시가 열리고 국가관이 모여있다. 옛 조선소와 해군기지가 있던 아르세날레, 공간과 너무나 잘 어울렸던 클레어 퐁텐의 설치작품,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 Arena for a Tree, AN ART INTERVENTION BY KLAUS LITTMANN 바다와 캐널로도 이어져서 아르세날레에 바로 정박하는...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브라질 국가관 작가였던 베아트리스 밀라제스(1960-)가 2024년에는 V&A와 협업으로 응용 예술 분야 파빌리온 작가로 소개되었다. 강렬한 색상이 돋보이는 작품은 멀리서 보면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잡지와 오프 컷 포장지 등 다양한 재료를 믹스해 만드는 콜라주였다. 그 외 대형 회화는 V&A가 소장한 다양한 텍스타일을 모티브로 했다. 1980년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각 미술 학교를 다녔고, 1985년 유럽에 와서 마티스와 몬드리안의 선명한 원색을 재발견한 베아트리스, 실제로 그녀가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바로 V&A라고 한다. 과거 프리즈 아트페어 이벤트 중 하나로 베아트리스가 영감을 얻고 동질감을 느낀 V&A 소장품 열두 점 등을 소개할 만큼 국가와 문화를 뛰어넘는 끈끈한 관계가 있어서였던지 이런 컬래버레이션 전시가 가능했던 것 같다. 보존 관련 문제로 베아트리스가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과 연관 있는 V&A 오리지널 텍스타일이 같이 전시되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쉬운 점, 대신 화가가 소장하는 여러 나라의 빈티지 앤티크 텍스타일을 같이 소개했다. Kimono, ca.1960 (made) / The Golden Egg by Beatriz Milhazes, 2023. Acrylic on linen. V&A가 소장하고 있는 기모노를 영감으로 발전한 회화 - 배경을 알고 보면 당연히 텍스타...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뮤지엄, 줄여서 V&A라고 부른다. 곧 이스트 런던에도 문을 열 예정이고 전국에 몇 군데 있지만 켄싱턴이 본관이다. 규모가 어마어마한 데다 소장품 종류도 전 세계 고대 유물과 전통 공예를 비롯해 의상, 보석, 회화와 사진까지 아우르니 V&A에서 도대체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자주 접한다. 단 한 번만 방문했다면 전혀 이상한 관람 소감이 아니다. 지난 4년 동안 매달 한 번씩은 꼭 V&A를 다닌 나도 갈 때마다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니 말이다. 그만큼 넓고 깊은 박물관이자 미술관! V&A 넓고 깊은 뮤지엄 ft. 빅토리아 여왕의 다비드 예쁘고 기발한 소품들이 많은 뮤지엄 숍이 멋지고 티타임 즐기기 좋은 정도라고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방... blog.naver.com 빅토리아 여왕 치하에 세워진 V&A에 빅토리아 시대의 최고 명예로운 화가였던 레이튼의 작품이 남아있단 사실은 당연하고도 신비롭다. 세월에 따라 건물이 증축되고 실내 디자인 변화도 컸기 때문에 이전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던 레이튼의 프레스코 장식화는 이제 복도 한쪽 벽화로 남아있다. 그 때문인지 레이튼의 행적을 뒤따르다 보면 그 유명했던 화가의 명성이 어떻게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었는지 파고들게 된다. 런던을 방문한 Flaming June 작년 2월부터 한시적으로 영국 왕립 미술원에서 무료 전시 중인 레이튼 경의 플레이밍 준이 이번 주 주말...
2024년 마지막 산책은 그리니치에서, 오랜만에 높은 곳에 오르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몇 개월은 지난 것 같은데 겨우 지난주 월요일, 2주 전이라니;; 새해가 겨우 열흘 지났다니! 드라마 없는 삶을 지향하지만 일일시트콤 찍는 기분으로 사는 요즘, 그 배경이 런던이라는 사실이 제일 웃긴다. 벌써 어색하게 보이는 사진 속 빛나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어수선한 연말 분위기, 그 속에서 우리는 건전하고 깔끔하게 서점 카페에서 만났지. 덕분에 지난해 마신 커피 중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셨고, 정말 의외의 책을 발견했다. 한글이 선명한 이 그래픽 노블은... 신상옥 영화감독과 최은희 배우가 납북된 사실을 토대로 그려졌다. 아, 외국인들은 한국을 북한을 우리의 역사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 하긴, 모국어로 뉴스를 전해 듣는 나도 이젠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비현실적이니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그려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치의 잔인함을 나열한 책은 읽을 수 있어도 파친코 같은 일본 식민지 시대가 배경인 책은 읽기 힘들고, 2차 세계 대전 영화는 볼 수 있어도 6.25 전쟁 영화는 도저히 볼 엄두가 안 날 때마다, 내가 한국인임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자각한다. 이유 없이 늘 마음이 향하는 곳은 모국이고, 절절히 그리워하진 않더라도 안녕을 기원하는 곳도 고향이다. 지하철에서 파리바게뜨 케이크를 든 런더너가 괜히 반가운...
작년 2월부터 한시적으로 영국 왕립 미술원에서 무료 전시 중인 레이튼 경의 플레이밍 준이 이번 주 주말을 끝으로 내려간다. 1895년 영국 왕립 미술원에 전시했던 이 작품은 세월에 따라 주인이 바뀌면서 지금은 푸에르토리코의 폰세 미술관이 소장한다. 거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하니 다시 영국에서 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다. 그 외에는 이 작품을 꼭 봐야 하는 이유를 떠올리기 힘든데,,, 작품이 그려졌던 빅토리아 시대의 성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가 사라졌고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만큼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드문 기회니까 한 번쯤 보는 건 어때? 하고 데려간 친구는 이 작품이 유난히 기분 나쁘다고 했다 ㅎㅎㅎ 너 정말 내 친구 맞구나 ㅋ 레이튼 자화상, Portrait of Frederic, Lord Leighton, P.R.A, 1888, George Frederic Watts RA (1817 - 1904) 플레이밍 준을 그린 레이튼 경은 1878년부터 1896년까지 영국 왕립 미술원장 자리에 있었다. 당시 화가로서 성취할 수 있는 최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했던 레이튼은 재능을 갈고닦으며 평판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사생활에 매우 신중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RA Summer Exhibition을 런던 여름 시즌의 주요 사교 축제로 굳힌 인물도 레이튼, 하지만 공식 활동 외에는 개인적 기록이 전무해서인지 그의 이름...
Rana Begum, No.1367 Mesh, 2024, Powder-coated galvanised steel mesh / Barbara Hepworth [1903-1975), Single Form (Nocturne), 1968 런던 테이트 브리튼 다음으로 영국 근대 미술품을 시기별로 잘 전시해둔 미술관으로 알려진 Pallant House Gallery Marie Laurencin (1883-1956), Colette (Girl with Pearl Earring), 1934 Ben Nicholson [1894-1982), 1946 (still life - cerulean), 1946 Fernand Léger(1881-1955),The Red Gear (Still Life in Red and Blue) 1939 & Henri Hayden (1883-1970), Cubist 1919, 1919 지방 소도시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근대 유럽의 유명 화가들과 영국 근대 대표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점씩 다 소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탈리아 미래파 작품까지 있어서 소장품 컬렉션의 출신, 시기, 스타일이 뒤죽박죽한 느낌도 들었다. 게다가 소장품 전시는 18세기 퀸 앤 양식으로 지어진 저택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있는 데다 중간에 기획전도 섞여 있어서 작품만 따라다니다 보면 길을 잃기 딱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더 좋을 수도 있다 :-) Rachel W...
2025년, 새해 첫 나들이는 치체스터. 성당 내부로 쏟아지는 햇볕 덕분에 어느 때보다 성스럽게 느껴졌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치체스터 대성당, 이름은 "성당"으로 해석되지만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영국 성공회 교회가 되었다. 위와 같은 성당의 주요 스테인드글라스도 구약과 신약을 같이 담고 있어 특이했는데 역시... 그 옆에는 정치적 종교개혁의 주인공 헨리 8세가 성당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묘사된 그림이 남아있다. 1530년대 지역 화가, Lambert Barnard (1485-1567)가 그린 전형적인 튜더 왕조 스타일로 현존하는 이 양식의 기록화로는 영국에서 가장 큰 크기라고 한다. 게다가 당대에 바로 기록된 작품이라 헨리 8세의 얼굴이 가장 사실적이라고도 하는데, 역시 우리가 미술관에서 만나는 비율 좋고 잘 생긴 헨리는 보정의 결과물이었음을... 로마시대 타일 바닥도 발굴된 그대로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 교회 자리에 그 당시 로마인의 대저택이 있었을 거라 추측한다. 이쯤 되면 치체스터 동네 성당은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면모가 더 분명한 듯. 노르만과 고딕 양식이 섞인 전형적인 영국 중세 성당 디자인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높다는 탑의 높이나 지역 주민 전체가 입장할 수 있다는 규모로나, 치체스터 대성당은 종교적인 위치보다 공동체 중심으로서의 입지가 더 단단해 보였다. Tapestry design for Chicheste...
길거리 소들을 보호하는 붉은 힌두교 사원에 들렀다. 유기견 보호소 같은 분위기인데 신자들은 소 여물을 한 바가지씩 사들고가 소에게 먹이면서 기도를 했다. 이 지역의 왕과 형제들이 공부했던 곳이란 전설이 남은 지하 동굴은 여러갈래의 터널로 이루어져 있어 땅속의 미로 같았다. 오늘날에는 기도처로 이용되기에 영화에나 나올법한 복장의 사제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지난번 인도 남부 코친에서는 성당, 북부에서는 모스크, 이번에 중부에서는 힌두교 사원에 들리게 되었다. 이런 종교적인 장소야말로 긴 역사와 복잡한 문화를 농축해둔 공간이라서 여러모로 진한 경험이었다. 럭나우, Bara Imambara 2017년 12월, 럭나우 Luck-now, 그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괜히 운이 좋아질 것 같은 도시 이슬람 왕조... blog.naver.com @Bhartrihari caves 인도 기념품으로 많이 주고받는 링 모양의 분수 위로 우뚝 솟은 남근상과 마주하는 소는 한 세트로 힌두교의 3대 신 중 시바를 상징한다. 아무리 들어도 금세 잊어버리고 꼼꼼히 읽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힌두교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절대적으로 내 개인적인 문화적 배경 탓이지 종교에 대한 차별이 아니다. 종교를 일상의 습관이라 여기는 내가 인도에 거주한다면 때마다 힌두교 사원을 찾을 태다. 연말이면 벨기에서는 성당에 지금은 성공회 교회에 종종 가니까 말이다. 다 같은 ...
시켜놓고 보니 다 노란색. 읽을 수도 없고 사진을 봐도 맛을 상상할 수 없는 메뉴판을 앞에 두고 힌디어 하는 친구가 열 명이 넘는 인원의 주문을 받아 적어서 직원에게 넘겨주면 주방에서 하나씩 하나씩 음식이 나오던 작은 식당이었다. 인도, 금주의 날들 인도에 머무는 동안 최대 국경일 중 하나인 인도 공화국 건국 기념일을 맞았다. 1947년 8월 15일에 영국에... blog.naver.com 인도 중부 지역의 매운맛에 호되게 당한 나는 어차피 먹는 둥 마는 둥 하겠지만, 그래도 순한 음식 치즈 도사를 앞에 두고 눈싸움을 했다. 너 얼마나 매울 거니?! 매운맛과 튀긴 음식에 대한 수용치가 낮은 나는 런던에서 먹는 인도 커리와 홍콩식 딤섬이 제일 맛있다;; 적당히 전통식을 바탕으로 현지인들 입맛에 맞춘 음식을 편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비슷한 성향이라서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목소리 높여 자국 문화와 전통을 늘어놓으며 음식을 권하는 일없다. 아무리 말이 안 통하는 현지 식당이라고 해도 힌디어를 한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메뉴 선택을 요구하지 않을뿐더러 적당히 알아서 각자의 음식을 주문하고 실패와 성공 요리를 에피소드로 남긴다. 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을 먹는 것으로 채우지 않을 만큼 편안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테이블에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각자 다른 음식을 먹으며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문득, 식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