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CONY's Column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발코니석에서 보는 클래식 리뷰 | 조성진의 라벨 앨범을 바라보는 여섯 개의 시선 UNIVERSAL MUSIC 제공 풍자와 반항 정신, 찡그린 표정으로 미소 짓는 프랑스 음악의 본질은 부정적인 요소를 배제하려 애써도 ‘모순’ 그 자체가 매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존재가 시작되는 동시에 기분 좋은 수수께끼가 시작되는 프랑스의 피아니즘을 언어적 수단으로 파악하려는 것은 분명 무리인 바, 이성과 감성 모두를 동원해 파악할 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정돈된’ 모순은 모리스 라벨의 세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른바 ‘세공’이라는 면에 방점을 두고 라벨의 피아니즘을 분석한다면, 텍스트 안팎에서 풍기는 무시무시한 완벽함이 듣는 이들로 하여금 해석의 이상적인 방향을 찾아내기 어렵게 만든다.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조성진의 탁월한 라벨 음원이 출시된 후, 나름대로 기준점으로 삼았던 과거의 명연들을 돌아본 것도 효과적인 지름길을 훑고 감을 잡기 위해서였다. 쇼팽과 드뷔시를 차례로 정복하며 여러 차례 프랑스의 유산과 전통에 대해 강조한 적이 있었던 조성진이었기에 가급적 나도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의식의 방향을 공유하려는 욕심도 있었다. 오만에 가까운 당당함으로 건조한 뉘앙스를 전면에 내세웠던 발터 기제킹(1895-1956),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탐미성으로 온기가 느껴졌던 모니크...
Club BALCONY 매거진 115호 (2025년 1~3월호) 中COVER Story루도비코 에이나우디를 만나는 계절 현대음악의 거장 루치아노 베리오와 함께 음악을 공부한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현대음악 작곡가들 중 어떤 이들이 무균실 같은 곳에서 새로운 음 소재와 음색을 실험했다면, 어떤 이들은 무한한 경이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자연으로 향했다. 에이나우디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어느 아침의 어스름한 햇빛, 어느 여름밤의 오묘한 온기, 꽁꽁 얼어붙어 있던 빙하가 녹아내리던 순간을 포착하고, 그 안에서 음악의 가능성을 찾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때로 거대한 대자연의 풍경을 닮은 데가 있었고, 어떤 곡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지극히 아름다운 햇살 같았다. 거대한 대자연부터 일상의 순간까지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감각을 지녀서일까, 그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되는 클래식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가디언지는 그에 대해 이렇게 소개할 정도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아마도 그 음악이 에이나우디의 곡인 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세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악가이자 클래식 음악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그가 오는 4월 2일 수요일, 세종문화회관을 찾는다. 서울에서의 공연을 한 계절 앞둔 어느 날, 에이나우디와 음악에 관...
BALCONY's Column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윤무진의 플레이리스트 | 여기 담담한 위로가 있어 – 2025 대원문화재단 신년음악회 지난 연말의 일들로 예년처럼 새해를 맞이하기가 어려웠던 2025년 1월 10일 토요일. 이날 오후 5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대원문화재단의 2025 신년음악회에 참석했다. 미처 전하지 못한 새해 인사를 건네느라 분주한 사람들이 평년과 다를 바 없는 연초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공연장 로비. 그 모퉁이에 홀로 서서 나는 생각했다. 작년에 이어 여기 다시 온 이유를. 보이지 않는 결속 여느 악단의 정기 공연과는 다르게 느슨하게 시작되는 신년음악회 특유의 분위기를 어느덧 좋아하게 된 것일까? 살짝 가벼워진 공기를 가르며 등장한 김주영 피아니스트의 인사 후에는 대원문화재단의 지난 활동을 소개하는 영상 청취가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공연 첫 곡은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 과거에는 베토벤의 다른 작품에 비해 음악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곡인데, 최근 들어 부쩍 자주 듣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 곡의 흔치 않은 편성. 한 번의 연주로 세 명의 솔리스트를 만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함께 무대에 오른 피아노의 김대진과 바이올린의 임지영, 그리고 첼로의 김두민. 이들을 묶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확실한 연결고리가 있었...
BALCONY's Column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허명현의 명연주 | 콩쿠르가 알아본 아레테 콰르텟, 이젠 관객들이 알 차례 아레테 콰르텟은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되어 무대 위에 섰지만, 사실 이들의 실력은 이미 각종 콩쿠르로 한참 전에 증명되었다. 2021년 프라하 봄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2023년엔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2024년엔 리옹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젊은 연주자들이 콩쿠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뤄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공연장 무대보다 콩쿠르에서 먼저 이들의 재능을 조금 먼저 알아보았는데, 이젠 관객들이 알 차례였다. ⓒ Kumho Cultural Foundation 이번 신년음악회는 왜 콩쿠르가 아레테 콰르텟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준 무대였다. 아레테 콰르텟은 첫 공연부터 야심 차게 하이든의 ‘십자가 위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골랐다. 제목 그대로 성경의 구절을 총 9개의 악장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각 악장은 언어로 표현된 구절을 음악으로 바꿔 표현한다. 우선 연주의 가장 큰 특징은 아레테 콰르텟이 이 작품이 작곡되었던 시기의 연주 방법을 고집했다는 점이었다. 피치를 시대에 맞게 조절했고, 바로크 활을 사용했다. 기존의 활보다 기능은 제한적이지만 훨씬 순수하고 투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또 제1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제2바...
Club BALCONY 매거진 115호 (2025년 1~3월호) 中CONCERT HIGHLIGHT깊게 느끼고 즐겨라, 2025년의 클래식 라인업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뒤로하고 힘차게 시작하는 2025년이다. 클래식 공연계는 성대하고 다채로운 무대들의 라인업을 발표했다 새해를 여는 신년음악회 각 공연장들은 풍성한 프로그램이 가득한 신년음악회로 새해를 맞이한다. 1월 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국립관현악단의 신년음악회가 있다. 박천지 지휘자와 함께 국립창극단 대표 소리꾼 이광복·최용석·유태평양·김수인으로 구성된 ‘국歌대표’, 비브라포니스트 윤현상과의 협연으로 신명나는 무대를 만든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작곡된 ‘하나의 노래, 애국가’도 들을 수 있다. 1월 9일, 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의 주인공은 2025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아레테 콰르텟이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을 연주한다. 서울시향의 신년음악회는 1월 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얍 판 츠베덴 지휘, 김서현(Vn) 협연으로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박쥐> 서곡 등을 연주한다. 1월 11일 예술의전당에서는 대원문화재단의 신년음악회가 열린다. 요엘 레비의 지휘로 KBS교향악단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으로 희망을 노래하며 김대진(Pf)과 임지영(Vn), 김두민(Vc)...
BALCONY's Column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신예슬의 듣는 생활 | 더 깊은 환상 속으로, 예브게니 키신의 현재 처음 키신의 연주를 접한 건 십여 년 전, 한 영상을 통해서였다. 청년 키신은 새하얀 정장을 입고 베토벤의 소품 ‘론도 카프리치오, 잃어버린 동전에 대한 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또르르 굴러가는 동전의 장식까지 상상하게 만드는 그 연주는 정교하고, 화려했다. 완벽한 테크닉으로 거침없이 표현하고 드러내는 연주. 그게 내가 키신의 연주에 대해 가져 온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20일 예술의전당, 키신의 연주는 젊은 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음표들을 정확하게 쫓으며 완벽함, 화려함, 생생함의 극치를 들려주던 시기가 있었다면 50대에 들어선 그가 찾는 것은 음표와 음표 사이, 음악 안에 더 꽁꽁 숨겨져 있는 깊은 심상인 것 같았다. ⓒ이은비/CREDIA제공 소나타에서 판타지로 첫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7번이었다. 포르테와 피아노를 짧은 호흡으로 오가는 이 곡에서 키신은 격정적인 변화를 만들지 않고 조금은 담담하게 연주를 이어 갔다. 넓게 보면 이 정도의 변화는 별일 아니라는 듯 하나하나에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훨씬 자극적으로 연주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저 느리게, 음악이 손끝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했다. 음악의 세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어른의 연주란 이런 것일까 싶은 묵직한 연주였...
BALCONY's Column 클럽발코니 온라인 칼럼허명현의 명연주 |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2019년, 마리스 얀손스가 세상을 떠나고,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다음 지휘자로 사이먼 래틀을 지목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이번 아시아 투어는 그들의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빈체로 투어를 함께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양일간 모두 무대에 섰다. 첫날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둘째 날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 두 연주 모두 굉장히 공들여 준비한 느낌이 났지만, 개인적으론 베토벤 연주가 조금 더 편하게 들렸다. 브람스도 대화, 베토벤도 대화가 컨셉이라면, 브람스는 심오하고 다양한 토픽으로 심각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느낌이 강했고, 베토벤은 마치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듯 자연스러웠다. 실제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서양음악사의 모든 피아노 협주곡을 통틀어서 가장 어려운 작품에 속한다. 곡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아무리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에게 집중한다고 해도, 곡이 가진 매력을 100% 다 꺼내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3악장에서 조성진과 오케스트라가 만든 앙상블은 귀한 순간이었다. 피아노와 첼로의 대화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목관의 질감이 절묘하게 입혀지니 공연장이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순간이 등장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에서 참 꺼내기 힘든 순간을 조...
Club BALCONY 매거진 114호 (2024년 10~12월호) 中CREDIA Special지금, 가장 특별한 연주자들이 그리는 어떤 별자리 크레디아 아티스트들이 모여 만드는 최고의 기획공연, 스타즈 온 스테이지가 12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장유진, 첼리스트 문태국,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그리고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함께할 <스타즈 온 스테이지>부터 문태국의 <바흐>,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의 <그대가 꽃이라면>, 대니 구의 <HOME>, 홍진호의 <첼로의 숲>, 조수미 콘서트까지 열린다. 깊이 있는 작품 탐구부터 대중과의 가장 가까운 소통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클래식을 소개하는 공연들을 만날 수 있다. 몇백 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여전히 우리에게 전해지는 음악이 있다. 그 음악은 오랜 고전의 반열에 올랐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새로운 느낌을 선사하고, 현재의 시선으로 봐도 보석같이 정교하게 세공된 악상들로 가득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빛바래고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었을 이 음악의 가치를 우리가 여전히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오늘날의 시선’으로 다시 비추어 준 연주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전이 지닌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보여 주는 동시대의 방식들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지금, 클래식 문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