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채널 최신 피드 리스트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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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 1-2. 속세의 불국정토, 불국사

    [2024.12.15, 불국정토] ■ 불국정토를 꿈꾸는 경주 불국사(佛國寺) 토함산 서쪽 기슭의 불국사는 751년 (경덕왕 10년) 김대성 재상이 석조물을 목조 가구식으로 축조하여 불국세계를 지향하는 사찰을 설계하였으며, 불국사는 대웅전, 극락전, 무설전, 비로전, 관음전 구역으로 회랑과 계단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 •대웅전 •무설전 •비로전 •관음전 •극락전 ] ● 청운교/백운교와 자하문 불국사 경내는 석단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는데, 석단의 위는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 석단 아래는 범부의 세계를 나타냅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석가모니불의 불국으로 통하는 자하문은 청운교/백운교(국보 23호)를 통해 들어갑니다. 청운교/백운교는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천(天)을 상징하는 것으로, 욕심을 정화하면서 걸어 올라가는 다리입니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紫霞門)이 있는데, 자하문이란 붉은 안개가 서린 문이라는 뜻으로, 이 자하문을 통과하면 세속의 속박을 떠나서 부처님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을 상징하는 관문입니다. ( 대웅전은 수리중이어서 2019년 방문때의 사진) ● 불국사 다보탑 & 석가탑 불국사의 사상과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다보탑(국보 20호)과 석가탑(국보 21호)의 배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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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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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 1-8.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

    [새벽답사팀, 2024.12.14, 감은사지] ■ 감포 감은사지 삼층석탑 (국보 112호) 감은사지에 나란히 서있는 동서쌍탑은 상하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형태로, 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후 쌍탑 사찰형태로 가는 최초의 가람배치입니다. (감포 감은사지 동탑은 수리중!)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고자 세운 사찰로, 이 석탑을 세운 시기는 682년(신문왕 2년)입니다. 감은사지석탑의 특징은, 탑의 각 부분들이 여러 개의 부분석재로 조립된 것으로, 전각에서 추녀는 목조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붕받침 등에서 전탑(塼塔)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와 같은 석탑양식은 이후 건립되는 석탑의 전형으로 정립되었습니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피라미드 만큼이나 크다는 느낌을 주어, 탑 탐방을 하게 영감을 준 석탑입니다 ! #감은사지동서삼층석탑, #국보112호, #탑블로거, #타워블로거, #TopBlogger, #TowerBlog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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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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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 6-8. 경주 장항리사지 오층석탑

    [2024.12.14, 장항리사지] ● 장항리사지 서오층석탑 (국보236호) 경주 토함산 동쪽기슭의 장항리 계곡 위에 두 탑을 세우고, 금당을 배치한 통일신라의 사찰터에, 오층석탑, 석조불대좌 등이 남아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흔하지 않은 오층쌍탑 배치구도로, 오층석탑의 초층탑신에 새겨진 금강역사상은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각 부의 비례가 아름답고 조각의 수법도 우수한 8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석조불대좌는 원형으로 아랫단은 팔각으로, 윗단에는 연꽃을 조각하였으며, 석조불상은 국립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복원중에 있는 듯 합니다. #경주장항리사지오층석탑, #국보236호, #장항리불상, #TowerBlog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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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이미지 수6
    [탑] 11-9. 경주 석굴암 삼층석탑

    [2024.12.14, 석굴암] ● 석굴암 삼층석탑 (보물 911호) 경주 석굴암 삼층석탑은 8각원당형 기단위에 네모난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높이 3m의 석탑입니다. 원형, 8각과 4각이 조화를 이루는 9세기 통일신라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3층석탑입니다. 기단부가 8각원당형의 특이한 모습은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보물223호)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오랫만에 친구와 같이 석탑탐방으로 의미있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경주석굴암, #국보24호, #석굴암삼층석탑, #팔각원당형석탑, #보물911호, #TowerBlog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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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이미지 수7
    [탑] 232.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 보물지정

    [2024.12.12, 국가유산사랑 Vol.241] ●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 보물지정 1588년 사명대사(유정)가 지은 내연산 보경사 금당탑기 (內延山寶慶寺金堂塔記)의 기록에서 '고려현종 14년(1023) 사찰에 탑이 없어 청석으로 5층탑을 만들어 대전 앞에 놓았다'는 내용이 있어, 보경사 오층석탑이 1023년에 건립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은 보경사 대적광전 앞에 위치한 높이 약 4.6m의 석탑으로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으로 탑신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석탑의 1층 탑신석 정면에 문비형과 함께 자물쇠와 문고리 조각이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석탑에서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승된 사리신앙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층과 2층 옥개석 하부의 물끊기홈 기법은 1층 탑신석의 문비와 자물쇠 조각 기법은 1010년에 건립된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보물53호)과, 1031년에 건립된 칠곡 정도사지 오층석탑 (보물357호)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보경사 오층석탑 또한 고려 석탑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은 조성 시기에 관한 기록이 있고, 11세기 석탑의 전형적인 조성 기법과 양식 등이 잘 나타나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으로 귀중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천개심사지석탑, 칠곡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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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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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마이 블로그 리포트] 데이터로 찾아보는 내 블로그 마을

    ♤ 2024년 한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가 선정됐어요! 도량(跳梁): 살쾡이가 이리저리 날뛰는 모습, 발호(跋扈): 물고기가 통발을 뛰어넘는다는 뜻, 2024 마이 블로그 리포트 블로그 마을로 초대합니다: 지금 내 블로그 마을을 확인해 보세요! event.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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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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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民無信不立] 신뢰는 국가 존립의 근본

    [2024.12.7, 안개 자욱한 아침에] ● 공자왈(孔子曰), 백성의 신뢰를 받지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다 (民無信不立) 공자(孔子)는 제자인 자공(子貢)에게 정치의 본질을 간략하게 설명했습니다. "안정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백성이 필요한 풍족한 먹을거리(足食), 외부의 위협을 막는 군사력(足兵), 그리고 백성과의 신뢰(民信) 입니다" 자공이 질문합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군사를 포기하라”고 답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와 신뢰가 유지된다면 군사력의 부재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공은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가지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공자의 답변은 명확합니다. “먹을 것을 포기하라. 사람은 굶주릴 수 있지만, 신뢰가 없으면 나라는 설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신뢰는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는 근본입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정치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으며, 경제력과 군사력도 결국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온다는 뜻입니다 ! 《 안개가 걷히지 않은 일요일 아침에... 》 #민무신불립, #民無信不立, #논어顔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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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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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뉴스] 26. 트럼프 입맛에 딱... 워싱턴 ‘현대차 브로셔’

    [2024.11.25, 조선일보] ● 현대차, 트럼프 당선 후 美에 홍보책자 배포 미국 내 투자, 일자리 창출 규모 등 담아 ‘미국인과 미국의 번영을 위한 현대차그룹 (HMG for American People & Prosperity)’. 지난 5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 뒤 현대자동차가 미국의 정부 기관과 연방 상·하원 의원실, 주요 싱크탱크 등에 배포한 홍보용 책자(Brochure)다. A4 용지 두 장짜리 단출한 분량이지만 현대차가 1986년 미국에 진출한 뒤 미국의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기여했고, 첨단 기술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미국 회사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시각적 이미지를 앞세워서 보여준다. 세계 각국 정부와 주요 기업들이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와 원활한 관계를 맺기 위해 워싱턴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가 선제적으로 뿌린 작은 책자가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현직 싱크탱크의 중견급 연구원은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분위기가 어수선한데 미국도 아닌 외국의 기업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외접촉 (Outreach)을 한 경우는 아직 없어 워싱턴 정가에서 빠르게 소문을 타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현대·기아·제네시스를 합친 총 미국 내 딜러샵 숫자(1862)와 올해 미국에서 생산한 차량 대수(70만+), 올해 미국 내 사회공헌 기여 금액(6800 만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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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이미지 수7
    [안동소주] 24. Since 1200년대… '가장 오래된 위스키' 안동소주 세계화 추진

    [2024.11.29] ● 가장 오래된 안동소주 세계화 추진 안동소주는 750여 년 전인 1200년대 후반 고려 충렬왕 때에 일본 원정을 위해 안동에 주둔하고 있던 몽골군의 증류주 만드는 기술이 전수되어 가양주로 전해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상품화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 나온 ‘제비원 소주’ 였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전통주 발굴에 나서면서 안동소주 만드는 비법이 경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는 민속주안동소주, 명인안동소주, 일품안동소주, 명품안동소주, 회곡안동소주 등 9개 업체가 안동소주를 만들고있으나, 만드는 방식이나 맛, 병 모양 등이 제각각인 데다 규모가 영세해 세계화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북도는 작년 2월 안동소주 업체 6곳과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로 견학을 다녀왔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업체들이 협회를 만들어 스카치 위스키의 전통과 품질을 지키고 양조장을 관광명소로 운영 중에 있었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당시 충격이 컸다”며, 두달 뒤 안동소주 업체 9곳이 ‘안동소주협회’를 세웠고, 경북도는 안동시와 ‘안동소주 세계화 추진단’을 만들었습니다. 작년 12월 경북도는 스카치 위스키처럼 안동소주 품질 기준을 만들었는데, 안동에서 생산된 쌀 등 곡류를 100% 사용하고 안동 소재 양조장에서 생산된 증류식 소주에만 새 ‘안동소주’ 브랜드와 병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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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이미지 수26
    41. 초겨울의 기록적인 폭설

    [2024.11/27~28] ● 기록적인 폭설, 50cm 온세상을 덮은 폭설, 지구온난화의 결과물이라니, 든든한 눈가래를 준비해야겠다 ! ● 11/27 : 25cm ● 11/28일에도 25cm ● 눈에 파묻힌 남천을 살려내고... #폭설, 용인 50cm 폭설...출근길 마비·휴업까지 - https://v.daum.net/v/20241128101937298 용인 50cm 폭설...차량 고립 출근길 마비·휴업까지 [앵커] 용인에는 50cm 미터가 넘는폭설이 내리면서 출근을 포기한사람들도 속출했습니다. 용인 수지에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오동건 기자! [기자] 저는 용인 수지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 와 있습니다. [앵커] 지금 보기에도 눈이 상당히 많이 쌓여 있는데 어떤 상황인 겁니까? [기자] 문제는 지금도 눈발이 계속 날이고 있다는 겁니다. 조금 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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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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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 115.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2024.11.24, 청풍명월] ●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보물546호) 제천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은 청풍문화재단지에 있는 높이 3.4m의 석조불상으로, 소발머리에 큼직한 육계를 지녔으며, 원만하고 커다란 얼굴에 두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뚜렷한 삼도와 당당한 어깨를 표현하였습니다. 수인은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취한 것으로 보이며, 통견의 대의는 옷주름이 두껍게 처리되었고, 옷자락이 양쪽 팔에 걸쳐져서 발 아래까지 늘어지며 옷주름은 U자형으로 층을 이루면서 길게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둥근 연화대좌에는 단판의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대좌의 윗부분에는 불상의 두발이 양각되어 있으며, 뒤쪽에는 불신을 끼운 것으로 보입니다.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의 대좌와 불신을 결구한 높이 3.4m의 대형석불로, 고려전기에 유행하는 큰기둥 모양의 거불양식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1971년 보물(546호)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충주댐 건설로 자리하고 있던 청풍면 읍리가 수몰되어 청풍문화재단지로 옮겨졌습니다. #제천물태리석조여래입상, #보물546호, #청풍문화재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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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이미지 수33
    [절] 9-2. 지리산 봉우리들을 꽃잎 삼은 남원 실상사​

    [2024.11.14, 남원실상사 ] ■ 신라 구산선문 실상사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지리산 여러 봉우리를 꽃잎으로 삼아 꽃밥 중심자리에 앉은 실상사는 여느 산사와 달리 평지에 자리해 있습니다. 신라의 구산선문 중 최초의 산문인 실상선문의 본찰로 우리나라 불교사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 증각대사(홍척)가 창건하였습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절 마당에 삼층석탑이 동서로 나란히 서 있고, 중앙에 석등과 보광전이 있으며, 보광전 옆에 약사전이 있습니다. 현재의 약사전 자리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는 도선의 말을 듣고 건립하였다고 전합니다. ● 실상사 돌장승 해탈교를 건너기 직전 왼쪽편에 돌장승 하나가 있는데, 높이 약 3m로 큰 장승이며, 오른쪽의 1구는 수해때에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해탈교를 건너면 돌장승 2기가 서 있는데, 왼쪽이 ‘대장군’, 마주보고 있는 장승이 ‘상원주장군’ 입니다. ● 실상사 보광전 실상사 보광전은 1884년(고종 21)에 월송대사가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며, 본존불은 조선시대에 조성하였고, 좌우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은 원래 극락전에 아미타불과 함께 봉안되었던 것으로 월씨국(베트남)에서 모셔왔다고 전합니다. ● 실상사 동서삼층석탑 (보물 37호) 실상사 3층석탑은 2중기단위에 3층탑신을 올린 신라시대 석탑으로, 동서 양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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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이미지 수23
    [절] 196. 목각탱화를 소중히 지켜온 실상사 약수암

    [2024.11.14, 약수암] ● 남원 삼정산 약수암 남원 약수암은 실상사 산내암자로, 실상사에서 남서쪽으로 약 1㎞ 떨어진 삼정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암자에서 항상 맑은 약수가 솟아 약수암(藥水庵)이라 이름 지었답니다. 1724년(경종 4) 천은스님이 창건하였고, 1901년 지월대사가 중수하였으며, 1782년(정조 6) 조성된 '실상사 약수암 목각탱화'로 유명합니다. 목각탱화는 나무에 불상 등을 조각하여 불상뒤에 거는 불화양식으로, 조각이면서 탱화의 기능을 함께 갖고 있는 보물인데 우리나라에 6개 정도의 보물 목각탱이 있습니다. ■ 보물 목각탱화 ● 문경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국보321호) ●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989호) ● 상주 남장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922호) ● 남장사 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923호) ● 서울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748호) ● 남원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421호) ●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 421호) 1782년에 조성된 실상사 약수암 목각탱화 국내에 남은 몇 안 되는 목각탱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불상들의 모습과 배치구조, 정교한 세부조각 등은 조선 후기 목각탱화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가로 183㎝, 세로 181㎝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을 나누어, 하단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관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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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이미지 수21
    [절] 195. 국보10호 석탑이 있는 백장암

    [2024.11.14, 산내면 백장암] ■ 남원 서룡산 백장암 (百丈庵) 남원 산내면 서룡산의 백장암은 828년(신라 흥덕왕3) 증각대사(홍척,洪陟)에 의해 선종(禪宗)의 뿌리인 실상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때 실상사가 화재로 폐허가 된 이후에는 백장암이 중심사찰로 승격되기도 했습니다. 백장암의 이름은 선종(禪宗)의 기틀을 세운 당나라의 선승 백장(百丈)스님에서 유래되었는데, 그는 중국 백장산(百丈山)에서 수도하면서 <선원청규>를 제정하였으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 는 노동도 선(禪) 수행이라 설파하였습니다. 현재 백장암에는 백장암 삼층석탑(국보10호), 백장암 석등(보물40호), 조선초에 제작된 백장암 보살좌상 (전북 유형문화재 166호) 등의 국보급 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 백장암 삼층석탑 (국보10호) 높이 5m의 백장암 삼층석탑은 기단부의 구조와 각부의 장식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는 공예 석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단부는 정방형의 지대석 위에 별석의 탑신 굄대를 얹고 그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올렸는데, 굄대의 측면에는 난간을 돋을새김한 것이 특별합니다. 탑신부의 초층 옥신석(몸돌) 4면에는 보살입상과 신장상 2구씩을, 2층몸돌에는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 2구씩을, 3층의 4면에는 1구씩의 천인상(天人像)을 돋을새김하였으며, 2층과 3층 몸돌 하단에는 난간을 돋을새김으로 둘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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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이미지 수33
    [절] 194. 지리산을 조망하는 금대암

    [2024.11.14, 함양 금대암] ■ 함양 지리산 금대암(金臺庵) 지리산 전체를 조망하는 부처님 자리라는 뜻의 금대지리(金臺智異)는 함양8경 중 하나로, 금대암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모습은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양마천 일대에 3대(三臺 : 금대, 무주대, 도솔대)가 있는데, 금대에는 금대암(金臺庵), 무주대에는 상무주암(上無住庵), 도솔대에는 도솔암(兜率庵)이 자리하고 있는데, 특히 금대암의 나한전 뒤로 솟은 커다란 바위는 탁 트인 전망과 더불어 에너지가 분출되는 곳으로 좌선 최적 장소로 보입니다. 금대암은 656년 행우(行宇)가 창건하였고, 통일신라말에 도선(道詵)이 나한전을 지어 중창하였으며, 1430년(세종 12)에 행호(行乎)가 인근의 안국사와 함께 중창하였다고 전해옵니다. 현재 금대암에는 대웅전과 나한전이 있고, 유물로는 금대암 삼층석탑, 동종, 신중탱화 등이 있으며, 금대암 입구의 약 600년 수령의 전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령이 많은 전나무로 기록되어 1998년 경남기념물 2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금대암 삼층석탑 (경남유형문화재 34호) 금대암 삼층석탑은 조성수법을 감안할 때, 1430년(세종 12) 암자를 중창할때 조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석탑은 커다란 바위를 기단삼아 3층의 탑신부를 올린 형태로, 탑신석(몸돌)과 옥개석(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하였는데, 몸돌의 양쪽 모서리에 우주(隅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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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이미지 수14
    40. 지리산의 가을

    [2024.11.14] ● 지리산의 가을 풍경 지리산의 가을을 보러 지인집에 들렀는데, 등산은 하지 않은채 풍성한 대접 받고서, 앉아서 단풍 유람하고 왔습니다! <문필봉 창암산의 가을> <지리산 전체를 조망하는 금대산> <천년석탑이 지키는 백장산> <꽃무릇이 월동준비하는 수청산> <목각탱화를 품은 삼봉산> <보물유산이 가득한 실상사> <파초의 꿈이 이루어지는 덕전마실> #지리산의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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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이미지 수45
    [미술관] 42. 석파정 서울미술관

    [2024.11.8, 서울미술관] ● 석파정 서울미술관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에서는 신사임당부터 김환기, 이중섭, 천경자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사를 대표하는 대가들의 걸작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 [신사임당] --- 초충도 (16세기) 곤충과 풀잎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표현한 16세기 작품으로, 섬세하여 5만원권 화폐에 도입된 신사임당의 명작들입니다. '초충도'가 실제인줄 알고 '닭이 그림을 쪼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 [ 이중섭 ] --- 황소 (1953)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술품 <황소>는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던 통영 시기의 작품으로, 황소의 기세는 어려운 현실을 이겨내려는 이중섭 화가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이중섭의 엽서화> 이중섭의 미공개 편지화를 최초로 공개합니다. (활을 쏘는 남자 & 열매를 그대에게) (하나가 되는) (우주 01, 03, 04) • [ 이응노 화백 ] --- 수탉 • [ 김기창 화백] --- 태양을먹은새 • [ 천경자 화백] --- 자화상 • [ 김창열 화백 ] --- 회귀 • [ 서세욱 화백 ] --- 사람들 • [ 김환기 화백 ] --- 십만개의점 • [ 정상화 화백 ] --- 무제 • [ 이우환 화백 ] --- 바람과함께 • [ 이대원 화백 ] --- 사과나무 • [ 권용래 ] --- Light in light & External Flame • 모빌 (빛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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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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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 탐방] 41. 대원군의 별장, 석파정(石坡亭)

    [2024.11.8, 석파정] ■ 대원군의 별서(別墅), 석파정 (石坡亭) 인왕산 북동쪽의 바위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석파정은 본래 조선후기 영의정을 역임한 안동김씨 김흥근이 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이였습니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에게 매매를 수차례 제안하였으나 이를 거절하자 계략을 세워 아들 고종을 행차케 하여 하룻밤 묵게 하였고, 임금이 묵고 가신 곳에 신하가 살 수 없다하여 김흥근의 소유를 포기하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대원군은 난을 치는 등의 활동장소로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종의 임시거처로도 사용 하였습니다. 대원군은 위엄 있는 바위들로 둘러싸인 풍경에 감탄하여 자신의 호를 석파(石坡)로 짓고, 이곳을 석파정(石坡亭)이라 불렀습니다. 현재 석파정은 안채, 사랑채, 별채와 정자로 4개동만 남아 있으며, 흥선대원군 사후 50년간 후손들이 소유했다가, 한국전쟁 뒤에는 '콜롬바 어린이집'과 '성콜롬바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주)쌍용으로 넘어가서 총수 별장으로 사용되었으나, '98년 부터 석파문화원 소유가 되었습니다.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26호로 지정되었으며, 서울미술관 개관과 함께 2012년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석파정은 빼어난 산수를 배경으로 풍류와 예술적 정취에 대한 이상을 전해주는 도심속 정원입니다. 정선(鄭敾), 창의문(18세기, 33×30cm) ● 또 다른 서울의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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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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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탑] 231. 석파정 삼층석탑

    [2024.11.8, 석파정] ● 석파정의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 서울미술관에서 밖으로 연결되는 흥선대원군의 별서(別墅)인 석파정 (石坡亭)의 개울 건너편 언덕에 탑이 있는데, 이곳 명칭을 따서 석파정 삼층석탑이라 합니다. 이 삼층석탑은 2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리고 상륜장식을 올린 삼층석탑으로 화강암 재질의 높이 4.5m에 이르는 석탑입니다. 원래 경주의 개인 경작지에서 무너져 있던 탑재를 수습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석파정 공개를 앞둔 2012년 6월경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하층기단은 저석, 면석, 갑석이 일체로된 4개의 판석 되어 있으며, 면석에는 모서리기둥(우주)과 2개의 가운데기둥(탱주)이 있고, 하대갑석 윗면 가운데에는 2단 받침이 있습니다. 상층기단은 각각 4개의 판석으로된 면석과 갑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면석에는 면마다 모서리기둥과 1개의 가운데기둥이 있으며, 상대갑석 아랫면에는 부연이 있고, 윗면 가운데에는 2단각형 받침이 있습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석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모서리기둥이 모각되어 있습니다. 지붕돌의 지붕받침은 5단이며, 지붕돌의 낙수면은 완만하고, 전각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으며, 상륜부에는 노반만 남아 있습니다. 하층기단에 모서리와 가운데기둥이 2개씩 모각되어 있고, 상층기단의 받침이 2단으로구성된 형태로 보아, 경주의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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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유적답사 [Exploring for the Ruins at 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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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문화재] 30. 113년 만에 고향 원주서 우뚝…국보 '지광국사탑' 복원 완료

    [2024.11.05, 연합뉴스] ● 1천975㎞ 유랑 끝에 유적전시관에서 완전한 모습 갖춰…12일 기념행사 일제강점기에 무단 반출되고 전쟁으로 큰 상처를 입었던 '비운의 탑'이 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고향에 다시 선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강원 원주시는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복원을 완료했다고 5일 밝혔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에 승려에게 내리는 최고 법계인 '국사'(國師)를 받은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특히 6·25전쟁 때는 폭격을 맞아 약 1만2천개의 파편으로 조각나는 등 큰 피해를 봤다. 이후 국립고궁박물관 뜰에 서 있던 탑은 2016년 전면 해체·보수 공사에 들어가 약 5년간 보존 처리 작업을 했고, 지난해 8월 부재 상태로 고향인 원주에 돌아왔다. 원래 있던 법천사지를 떠나 약 1천975㎞에 달하는 유랑 생활을 마친 셈이다. (2024년 11월 12일 기념행사예정) 아쉽게도 원래 서 있던 탑비 앞쪽이 아니고,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내부에 세워졌습니다. (용인호암미술관 앞마당의 재현탑) ¤ 참고자료 : 연합뉴스 #지광국사탑, ● 113년 만에 고향 원주서 우뚝…국보 '지광국사탑' 복원 완료 (출처 : 연합뉴스) - https://naver.me/57VJE7Io 113년 만에 고향 원주서 우뚝…국보 '지광국사탑' 복원 완료 1천975㎞ 유랑 끝에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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