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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돌아온 이들을 기다렸던 것은... (다시 조선으로 / 이연식)

다시 조선으로 저자 이연식 출판 역사비평사 발매 2024.10.31. 이연식의 『조선을 떠나며』를 읽고 참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책은 2012년에 나왔지만 나는 2016년에 읽었다, https://blog.naver.com/kwansooko/220894880410). 해방을 생각하면서도 식민지 땅에 살던 일본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못해왔던 것이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어떻게 일본으로 돌아갔고, 일본은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보게 된 일이었다. 떠난 사람들이 있으면 돌아온 사람들이 있을 터, 10여 년 만에 낸 『다시 조선으로』는 『조선을 떠나며』을 냈으면 응당 나와야 하는 책이다. 돌아온 사람들? 떠난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인식의 자장 안에 들어와 있었으련만 생각해보면 이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해방되던 무렵 한반도로 돌아온 사람들의 숫자는 약 2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당시 한반도의 인구가 1600만 명 가량이었으니 정말 많은 숫자다. 모두 사연을 가지고 떠났거나 강제로 잡혀갔던 이들이니만큼 그들이 돌아오고 고향에 대한 안온함을 느꼈으면 좋았으련만 사정은 그러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도 험했고, 돌아오고 나서의 삶도 팍팍하다 못해 참담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점점 차가워졌다. 너무 많았고, 한반도(이 책에서는 대부분 남한...

9시간 전
포르노그래피, 혹은 현대사회에 대한 절망 (소립자 / 미셸 우엘벡)

소립자 저자 미셸 우엘벡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09.11.30. 소설의 제목이 ‘소립자(Automized)’. 마치 물리학 서적의 제목 같다. 물론 내용에 소립자, 즉 물질의 기본 단위에 관한 게 있다. 그렇다고 그게 중심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말 제목을 ‘원자화’ 같이 달았으면 내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런 생각을 해보니 그게 더 맞겠다 싶다). 주인공은 둘이다. 미셸 제르진스키와 브뤼노 클레망. 형제다. 성(姓)이 다른 걸 봐서 알 수 있듯 아버지가 다르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다 같은 중학교에서 만난다. 둘은 서로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살아간다. 미셸은 과학자다. 전공을 굳이 얘기하자면 분자생물학, 혹은 생물물리학 정도다. 똑똑하지만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과 교류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반면 대학교수 자격도 있는 교사인 브뤼노는 평생을 성(性)을 탐닉하면서 살아간다. 브뤼노가 평생을 갈구하고, 혹은 좌절하는 성에 대한 탐닉은 완전히 무절제한 것이었다. 그에 비해 미셸은 누구와도 성적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를 사랑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나벨과의 관계도 거부하고 오랫동안 헤어져 살아갈 정도다(끝내는 다시 만나 아나벨의 호소에 관계를 맺지만 너무 늦은 것이었다). 소설은, 특히 브뤼노와 관련된 장면에서는 거의 포르노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적나라한 묘사와 상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요한 ...

1일 전
경제학자, 어쩌면 예언자, 어쩌면 해결사 (사람을 위한 경제학 / 실비아 나사르)

사람을 위한 경제학 저자 실비아 나사르 출판 반비 발매 2013.07.29. 이 책을 읽다 중간 여백에다 이렇게 적었다. “경제학자, 어쩌면 예언자, 어쩌면 해결사, 혹은 허풍쟁이” 경제학이란 학문을 제대로 공부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나의 경제학, 내지는 경제학자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인상에 그치고, 피상적일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피상적인 인상도 하나의 평가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래전 대학 입학 후 처음 접했던 경제학은, 당시의 조류에 따른 것이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아니 당시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치우친 것이었다. 사실 경제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정된 관점에서 해석되는 정치학이었고, 사회학이었다. 시야가 조금 넓어지면서 서로 대립되는 관점의 경제학을 읽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시일이 좀 지나서였다. 나의 시각은 이동했지만 어느 지점을 건너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이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느 근처에서 헤매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실은 그 헤맴이 얕긴 하지만 공부의 결과이고, 고민을 싹 티우고, 생각의 여지를 주는 것이라 여긴다.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 (원제: “Grand Pursuit: The Story of Economic Genius”)는 다시 한번 경제학에 대한, 경제학자에 대한, 그리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나의 시각을 넓히고 흔들어댄다. 원제처럼 ‘거대한’ 흐름을 만...

4일 전
'지식'의 존재 이유 (지식의 탄생 / 사이먼 윈체스터)

지식의 탄생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 출판 인플루엔셜 발매 2024.08.30. 사이먼 윈체스터가 ‘지식’이라는 매우 보편적인 주제, 따라서 매우 어려운 주제를 다룬 책을 냈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그의 책들을 (최소한 번역된 책들을) 거의 다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우연한 기회에 『완벽주의자들』을 읽게 되었고, 그 이후 『교수와 광인』, 『세계를 바꾼 지도』, 『태평양 이야기』, 『영어의 탄생』, 『중국을 사랑한 남자』, 『크라카토아』로 이어졌다. 모두 2020년 한 해에 읽은 책들이다. 사이먼 윈체스터라는 저자를 알고서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이렇게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 쓸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역시 보장할 수 있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궁금했던 것은 그가 왜 ‘지식’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 쓰고자 했는지와 이 방대한 주제를 어떻게 접근했는지였다. 우선 직접 밝힌 이 책의 논점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사라지고, 따라서 생각의 깊이가 얕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렇게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된 현상 자체가 지식의 결과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식의 가치를 되찾고, 나아가 지혜에 이를 수 있는지를 지식을 얻고 전파하는 다양한 수단과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2024.11.18
세렌디피티로 창조된 음식의 세계 (세렌디피티 / 오스카 파리네티)

세렌디피티 저자 Farinetti, Oscar 출판 레몬한스푼 발매 2024.07.10.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1754년에 영국의 호레이스 월폴이 스리랑카의 옛 이름 세렌딥(Serendip)에서 가져와 만들어낸 말이다. 세렌딥와 세 왕자들이 세계를 여행하며 원래 찾지 않았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이야기에서 착안해서 실수에 의해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발명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BTS의 노래 제목에도 쓰일 만큼 이제는 특별한 용어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발명과 발견이 이 세렌디피티에 의한 것이다. 사실 제목을 보고, 몇 목차를 훑고 책을 골랐는데, 내용은 조금 예상을 벗어났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을 보다 광범위하게 여겨 세계적으로 성공한, 낯익은 상품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책이 다루는 것들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그렇다고 실망스럽진 않다. 음식에 이렇게나 세렌디피티에 관해 이야기할 게 많다는 게 신비할 지경이다. 생각해보면 음식만큼 세렌디피티가 많이 적용되는 분야도 드물 것 같다. 새로운 음식은 잘 고안된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우연히 들어간 재료에 의해 아주 색다른 맛을 내고 인기를 얻는 경우가 흔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수의 미학’으로부터 비롯된 음식의 세계는 비단 유명한 음식뿐만 아니라 오늘도 우리 곁의 식당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음식의 세렌디피티에 관한 책이고, 저자가 세계적인 음식 체인점의...

2024.11.18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드디어 읽다

비글호 항해기 저자 찰스 다윈 출판 리젬 발매 2013.09.10. 오랫동안 벼르던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다 읽었다. 이런 책을 다 읽으면 일단 뿌듯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은밀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어떤, 폐쇄적인 모임의 일원이 된 느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찰스 다윈은 1831년 피츠로이 함장의 제안을 받고 고민하다 나중에 장인되는 외삼촌의 조언과 도움으로 해군 측량선 비글호에 승선한다. 애초의 계획보다 더 길게 5년 가까이 비글호에서 지냈고(배에서만 지낸 것은 아니지만), 돌아와서는 당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1839년 『비글호 항해기』를 냈다. 이미 비글호 항해 도중, 그리고 돌아와서 발표한 논문들과 채집물로 학계에서 유명해진 시점이었지만, 『종의 기원』을 내는 데는 아직 20년 전을 기다려야 했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를 1845년에 2판을, 1860년에는 3판을 출판했다. 지금 많이 읽히는 건 3판이고, 지금 내가 읽고 정리하는 『비글호 항해기』도 3판을 번역한 책이다. 『비글호 항해기』는 일기를 기초로 하고 있고, 대체로 날짜 순서로 구성했다. 하지만 날짜 순서대로만 적지 않고 있다. 각 장마다는 끝에 따로 생각을 정리하거나 과학적 견해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건 비글호 항해 도중의 생각뿐만 아니라 이후에 발전된 생각과 견해들이다. 말하자면 경험의 유사성을 묶고 있다. 『비...

2024.11.17
지식인의 글쓰기 교본 (글쓰기의 감각 / 스티븐 핑커)

글쓰기의 감각 저자 스티븐 핑커 출판 사이언스북스 발매 2024.06.30. 『빈 서판』,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지금 다시 계몽』. 이런 책을 쓴 스티븐 핑커를 글쓰기 책으로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책은 그 두께에 비해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스티븐 핑커가 글쓰기 책을 냈다고 했을 때 그저 글 잘 쓰는 학자가 글쓰기에 대한 소회를 엮은 책이라고 여겼는데, 웬걸 그게 아니다. 본격적인 글쓰기 교본이다. 인간의 인지와 언어를 진화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그가 『아메리칸 헤리티지 영어 사전』의 어법 패널의 의장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영어로 글을 쓸 줄은 알지만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직접 소개하고 있다. 과제 보고서를 쓰는 학생, 블로그, 칼럼, 리뷰를 쓰는 비평가나 작가 지망생, 학계, 관료, 법조계 인사, 의학계 연구자 등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글쓰기 조언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류에 내가 꽤 많이 속해 있다. 한국어 독자로서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읽을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일반적인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고, 또 하나는 ‘영어’ 사용법에 관한 내용이다. 앞부분도 그렇지만 뒷 부분도 나에게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앞의 내용은 어쩌다 ‘작가’라는 타이틀도 가...

2024.11.17
그림에서 질병 혹은 질병에 걸린 화가 읽기 (명작 속 의학 / 김철중)

명작 속 의학 저자 김철중 출판 자유의길 발매 2024.08.02. 그림을 가지고 참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림에서 읽어낸 질병 이야기도 꽤 있었다. 이번에는 의학 전문기자가 쓴 그림 속 질병 이야기다. 그런데 아마도 신문의 기사로 쓰였던 글이라서 그런가, 각각의 이야기들이 상당히 짧다. 읽기에 좋은 면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읽다 마는 느낌이 반복되는 것 같다. 게다가 그림 자체에서 질병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떤 질병으로 고생하고, 죽은 이야기가 많다. 그림 자체와는 상관없는... 그렇다면 명작 ‘속’의 의학은 아니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 책의 미덕을 찾자면 다양함과 함께 우리나라 의사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해서도 좀 더 본격적인 목소리가 담겼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원래 여기 글의 태생적 성격이 그런 거라 여긴다.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을 고르자면 역시 자신의 앓는 질병의 흔적이 고스란히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이다. 백내장 때문에 풍경화가 점점 추상화가 되어간 클로드 모네, 디지털리스 혹은 압생트 때문에 황시증이 의심되는 고흐가 그린 그림이 유난히 노란색과 소용돌이가 많게 된 것, 렘브란트의 화풍이 입체감이 돋보이는 이유가 외사시 때문이라는 것, 섬세한 붓터치로 여성의 몸동작을 그려냈던 에드라르 드가가 아마도 망...

2024.11.16
스토리 전개를 뛰어넘는 위대함,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저자 도스토예프스키,표도로 도스토예프스키 출판 민음사 발매 2012.11.01.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이다. 1880년 발표했고 속편 격인 작품의 1부를 기획했지만, 다음 해 여동생과 상속 문제로 다툰 후 각혈하면서 폐동맥 파열로 숨졌다. 1821년에 태어났으니 딱 60년을 살다갔다. 고전, 명작으로 꼽히면서 많은 사람들이 읽고 논문과 감상을 남긴 만큼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터이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이 작품을 제목 그대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성격과 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 그리고 조금은 불분명하고, 앞의 3형제들이 형제로 인정하지도 않았겠지만 표도르의 사생아이므로 형제로도 묶일 수 있는 스메르쟈코프를 중심에 두고 정리해보려고 한다. 소설 속에서 카라마조프 가의 3형제에 대해 가장 간략히 정리하고 차이를 지적한 인물은 재판정에서의 검사다. 드미트리에 대한 재판에서 검사는, 이반은 ‘유럽주의’, 알렉세이는 ‘민중적 근원들’을 대변하고, 드미트리는 ‘러시아 자체’를 대변하는 듯 하다고 한다. 이 표현이 3형제를 정확히 상징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는 도스트예프스키의 의중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나는 거기에 보태 야생의 날 것 같은 드미트리, 이...

2024.11.16
'죄'의 의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저자 도스토예프스키 출판 민음사 발매 2007.09.20.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민음사) 3권, 마지막 권은 온전히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중심 이야기는 친부 살해의 혐의를 받고 이송된 드미트리(미챠)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에 대한 재판 전후 과정과 장면들이다. 앞서 살인의 장면을 건너뛰면서 독자들에게 정말 살인범이 누구인지를 모호하게 설정한 도스토예프스키는 4부에서 그 전모를 밝히고, 재판 과정을 소상히 보여준다. 진짜 살인범이 누구인지는 둘째 이반과 하인이자 사생아 스메르쟈코프의 대화에서 밝혀진다. 이반은 형이 진범이라고 여겼으나 스메르쟈코프와의 이전 대화를 기억해내고, 사건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대화 끝에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다. 그런데 그 사건의 진상에는 자신의 ‘죄’도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병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재판을 하루 앞두고 스메르쟈코프는 자살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묻어버리고 만다. 재판에서는 검사와 변호사의 논거가 길게 이어진다. 검사는 여러 증언과 함께 심리적인 증거를 내세우며 살인범으로 드미트리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그는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반면 유명 변호사인 페츄코비치는 검사의 주장에 대해 낱낱이 반론을 펴면서 방청객의 환호를 이끌어내고, 눈물까지 자아내게 한다. 드미트리가 범인이라는 심리학적 증거는 똑같이 드미트리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도 될 수 있는 거였다....

2024.11.16
추리소설을 방불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 저자 도스토예프스키 출판 민음사 발매 2007.09.20.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민음사) 2권은 조시마 장로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실은 1권에 붙어야 맞는 이야기이긴 하다. 실제로도 이 이야기까지가 2부에 해당하고, 2권의 100쪽이 넘어가야 3부가 시작된다. 2권의 핵심은 3부의 이야기, 즉 알렉세이(알료샤)가 수도원을 나오게 되는 이야기, 드미트리(미챠)가 아버지 표도르를 죽이고(정말 죽였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돈을 훔쳤다가 잡혀 심문을 받는 이야기다. 특히 후자의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구성을 지니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미챠가 아버지가 점찍은 여인 그루셴카의 마음을 얻기 위한 돈 3000루블을 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다 결국은 구하지 못한다. 그루셴카가 옛 연인의 전갈을 받고 다른 마을(모크로예)로 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분노하며 놋쇠 공이를 들고 아버지의 집으로 간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버지의 집 담장을 넘어간 미챠가 문 앞에서 그루셴카와 약속한 신호를 하는 장면까지 보여주고는, 바로 하인 그리고리가 깨어 낯선 침입자를 쫓고, 미챠가 놋쇠 공이로 그리고리를 쳐서 쓰러뜨리는 장면으로 바로 넘어간다. 나중 장면을 보면 아버지 표도르가 살해되었으므로, 아버지 침실 배게 밑에 놓였던 돈이 없어지고 미챠의 손에는 돈이 쥐어진 상태이니 범인은 누가 보더라도 맏아들인 미챠인...

2024.11.16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 그리고 스메르쟈코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저자 도스토예프스키 출판 민음사 발매 2007.09.20. 3권에 이르는 장편소설의 첫 번째 권은 그 다음의 이야기까지 독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원래 작가가 세 권짜리로 의도했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소설의 앞부분은 늘 그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배경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앞으로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암시한다. 그런데 그게 매력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전 명작이라고 소문 난 작품이라고 해도 다를 바는 없다. 첫 번째 권이 도무지 따라가기 힘든 지경이라면 손을 놓아버릴 게 분명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첫 번째 권은 카라마조프 가(家)의 구성원들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그들 사이의, 그들과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자식들을 버릴 정도로 이기적이며 탐욕 가득한 호색한 오십 대의 지주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와 어머니가 죽은 후 버려지다시피 한 상태로 성장하여 20대가 되어 아버지를 찾아온 세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가 주축을 이루고(그들은 배다른 형제다), 표도르의 사생아로 여겨지는 하인 스메르쟈코프(그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앓았던 질병인 간질을 앓고 있다)와 드미트리의 약혼녀인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아버지인 표도르와 장남인 드미트리가 결혼하고 싶은 안달하는 그루센카...

2024.11.16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삶 (파친코 2 / 이민진)

파친코 2 저자 이민진 출판 인플루엔셜 발매 2022.08.25. (『파친코』 1권과 2권을 모두 읽고 정리한다. 그러나 2권을 중심으로) 1910년부터 1989년까지의 재일교포 가족 4대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영화화되어 더 많이 알려졌지만 소설로도 충분히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한반도에 남은 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과 같은 일들을 겪지 않았지만, 조선인이라는 신분을 떼어낼 수 없었다. 그들의 자식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어를 쓰면서 살지만 조선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힘들기에 그들이 택한 것이 바로 파친코였다. 파친코를 통해서야 돈을 쥘 수가 있었다. 파친코는 재일교포의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상징한다. 공부 대신 일을 택한 모자수도, 공부를 통해 신분의 상승을 노리고 와세대대학에 입학한 노아도,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도 결국은 파친코 사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들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마치 정해져 있던 것처럼.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은 노아다.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런 노아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은 내가 상상할...

2024.11.15
단지 살아남기 위해 (파친코 1 / 이민진)

파친코 1 저자 이민진 출판 인플루엔셜 발매 2022.08.05. 『파친코』 1권의 제목은 ‘고향’이다. 소설 앞에는 “고향은 이름이자 강력한 말이다.”라는 찰스 디킨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 소설이 고향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고향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고향은 고국으로 확장되어 읽을 수 있다. 나라를 잃고 고향, 혹은 고국 조선, 한반도를 떠나 타국으로 건너간 이들의 처절한 생존의 이야기인 것이다. 소설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들의 몸부림이 역사를 인식하면서 거대한 대의를 따라 움직인 게 아니라 정말로 단지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는, 그러니까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특별한 삶을 기록했다는 얘기다. 세기가 바뀌며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져 가는 가운데 부산 영도의 나이 든 어부와 아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 하숙을 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이 낳은 아들 훈은 언청이에다 한쪽 발이 뒤틀린 기형아였지만, 반듯하게 자랐다. 훈은 가난한 집 막내딸 양진과 결혼하고, 훈과 양진은 부모의 하숙집을 물려받는다. 그들의 아들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지만, 정상으로 태어난 딸 선자는 부모의 지극정성으로 살아남았고, 훈과 양진은 사랑으로 키운다. 그런데 선자가 일본에서 건너온 (제주 태생의) 부유한 생선 도매상 한수와 사랑에 빠지고, 그가 유부남인지도 모르는 상태...

2024.11.15
독일어 단어에 독일인의 삶이 있고, 우리의 삶이 있다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 이진민)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저자 이진민 출판 동양북스 발매 2024.09.10. 독일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게 어떨까 싶었던 생각은 첫 단어(파이어아벤트, Feierabend)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싹 사라졌다. 언어가 사람과 사회를 이야기한다. 이 평범한 진리를 매우 흥미롭게 알리고 있다. 독일어에서도 단어에 관한 책이니 독일 말을 쓰는 사람들과 그들이 얽혀 살아가는 모습을 말해주는 것은 당연할 듯한데, 이 책은 그걸 넘어서 그들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한다. 다름과 비슷함을 함께 이야기한다. 독일 말의 단어는 독일에 대해 으레 생각해왔던 것을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지허하이트(Sicherhei)와 같은 말인데, 안전, 안전성 같은 뜻을 지니고 있지만 보다 넓게 독일인의 철두철미한 대비 정신을 말해준다. 그런데 독일에 대해 생각해왔던 것을 반전시키는 단어도 있다. 킨더가르텐(Kindergarten)과 같은 말이다. ‘아이들을 위한 정원’이라고 풀 수 있는 이 말은 영어에도 있지만 미국보다 독일에서 보다 더 아이들을 위한 정원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글을 통해 나타나는 저자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독일의 뼈저린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단어도 소개한다.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와 같은 말에 쓰인 아르바이트(Arbeit)와 같은 단어가 있고, 슈톨퍼슈타인(Stolpers...

2024.11.15
수학과 과학만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현대 문명의 위태로움 (스텔라 마리스 / 코맥 매카시)

스텔라 마리스 저자 코맥 매카시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3.11.30. 현대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 코맥 매카시는 2023년 세상을 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었는지 그 소식이 뉴스로 다뤄지지는 않았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로드>의 원작자였음에도. 『스텔라 마리스』는 짝이 디는 『패신저』와 함께 코맥 매카시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여러 문학상을 휩쓴 『로드』 이후 16만의 작품이었고, 이후 몇 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패신저』와 『스텔라 마리스』를 앞에 두고 무엇을 먼저 읽을까 조금 고민을 하다 『스텔라 마리스』를 먼저 골랐다. 사실 읽기 전에는 이 두 작품이 짝이 된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읽다 보니 ‘보니’에 대한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했었어야 이 소설이 성립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어딘가는 『패신저』였다. 그렇다고 읽는 순서가 꼭 『패신저』 먼저, 『스텔라 마리스』 나중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스텔라 마리스』는 많은 게 독특하다. 코맥 매카시 작품으로서도 독특하고, 코맥 매카시라는 이름을 지우고서도 독특하다. ‘바다의 별’이라는 뜻을 지닌 ‘스텔라 마리스’.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고, 위스콘신주에 위치한 정신의학과 환자를 수용하는 시설이다. 1972년 10월 스무 살의 얼리샤는 스스로 이 시설을 찾아왔다. 이미 두 차례 이 시설에 입원했던 적이 있...

2024.10.07
최악을 넘어선 최악의 살인마 - 홀리(스티븐 킹)

홀리 저자 스티븐 킹 출판 황금가지 발매 2024.08.16.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착각으로 밝혀지지. 악에는 끝이 없어.” 코로나19의 상황이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병원의 응급실이 넘쳐나고, 백신을 맞았는지를 서로 확인한 후에야 마스크를 벗고(혹은 그대로 쓰고 있거나), 코로나19를 부정하고, 나아가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고(특히 미국은 더 그랬다), 그러다 탐정 홀리의 어머니는 코로나19로 사망하고 만다. 이 팬데믹 상황이 소설에서 범죄나 해결에서 결정적인 설정은 아니지만, 인물들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는 중요하다. 홀리가 혼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니게 된 것도, 결국은 파트너가 코로나19에 걸렸기 때문이다. 더 중요하게는 이런 설정이 소설을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드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특기다. 소설이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이 소설이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범죄도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게 여기기에는 너무나도 참혹하기 기괴하지만 말이다. 코로나19로 어머니가 죽고, 파트너마저 입원하면서 탐정 사무소는 휴업 중인데, 홀리 기브니에게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사라진 딸을 찾아달라는 호소. 경찰은 가출이라며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정말 가출이라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사를 시작...

2024.10.06
2
근대를 살다간 인물들 (근대를 살다 / 김경일)

근대를 살다 저자 김경일 출판 성균관대학교출판부 발매 2024.08.15. 우리의 근대는 불행했다. 제3세계의 근대성은 서구의 식민주의와 함께 얽혀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더욱 복잡했다. 우리는 우리보다 아주 조금 빨리 근대성을 받아들인 같은 아시아 국가의 식민지가 되었으니 근대라는 개념은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다. 민족주의가 근대화를 멈칫거리게 하기도 했지만, 그 근대화를 강제로 이식한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이 되기도 했다. 동아시아의 가치를 내세우면 서구의 무조건적인 근대화에 대한 비판으로서 가치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일본의 논리에 동조하는 형식이 되기도 했다. 아무튼 복잡했다. 복잡했기에 그 근대의 시기를 살다간 인물들의 스펙트럼도 무척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해 보이는 이념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결국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경우도 많고,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의 이념적 배경도 다양했다. 그런 ‘근대를 살다 간’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근대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긴 여러 부작용과 오류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에 대한 힌트가 될 것이다. 김경일 교수가 여러 근대인들의 삶과 여정, 사상을 연구하고 기록한 이유다. 일부를 조금씩 요약해 본다. 가장 먼저 유길준과 윤치호를 비교하고 있다. 최초의 유학생으로 가장 먼저 서구의 근대화를 접한 이들이다. 그들은 똑같이 서구의 높은 수준의 문명...

2024.10.05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기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 앤드루 릴런드)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저자 앤드루 릴런드 출판 어크로스 발매 2024.09.20.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을 느끼다 대학 들어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는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하게 시력을 잃게 되는 병이다. 우리말 제목 그대로 ‘점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 저자에게는 5% 남짓의 시각이 남아 있다. 조금씩 시력을 잃어가는 저자는 어쩌면 인정하지 못했던 ‘눈먼 자들의 나라(The Country of the Blind, 이 책의 원제다)’로 들어가면서 이 책을 썼다. 법적 맹인의 지위를 얻고 지팡이를 펼친다. 가족들과 주변의 이해를 구하고, 앞으로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눈멂’의 철학적, 역사적 의미를 찾고, 눈멂을 비롯한 장애에 대한 상반되는 태도에 대해 깊게 고찰한다. 이 책은 그런 탐색과 고찰의 과정이다. 그의 시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뜻밖에 알게 된 것들이다. 많은 현대의 기술들이 장애인들을 위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휠체어 장애인들이 투쟁으로 얻어낸 건물들의 경사로(여기선 ‘커브 컷(curb cut)’이라고 한다)가 이제는 유모차나 카트를 미는 부모나 노인,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앓은 아들을 위해 개발한 수(水)치료 펌프는 이제 월풀 욕조로 발전되었다. 정보 기술은 더욱 그...

202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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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인간의 내면을 그린 화가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 이미경)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 저자 이미경 출판 더블북 발매 2024.08.08. 에드바르 뭉크 하면 연상되는 그림은 뭐니뭐니 해도 <절규>다. 현대인의 절망이 드러난 그림이라고 한다. 물론 이 그림에 얽힌 사연은 잘 알려져 있다. 뭉크 개인사와 자연 현상에 관한 얘기다. 그런 특수한 상황을 보편적 감정으로 승화시킨 뭉크는 대단한 화가다. <절규>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애틋하게(?), 혹은 가장 감정 이입해서 보아온 그림은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이다. 뭉크가 말년에 그린 자화상이다(뭉크는 정말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양복을 입고 침대와 시계 사이에 반듯하게 서서(정확히는 반듯하게 서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이다. 스페인독감에서 회복된 후, 이제 평생 두려워했던 죽음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노년의 쓸쓸함과 이제 모든 것을 두고 갈 수 있다는 편안함이 함께 드러나는 그림이다. 또 관심이 가는 그림도 있다. <아픈 아이>와 <유산>, <스페인독감에 걸린 자화상> 같은 그림들이다. 뭉크의 개인적 아픔이 드러난 그림이기도 하지만, 모두 감염병과 관련된 그림들이다. 매우 타산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림이다. 뭉크는 고흐와 함게 인간의 내면을 그린 최초의 화가다. 고흐보다 더 극적으로 내면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고, 그 느낌은 불안하고, 어두웠다. 거기에는 비극적인 가족사와 그것을 받아들인 ...

202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