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것들의 거대한 세계 저자 대나 스타프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매 2024.11.13. 이런 책을 만나면 행복하고, 다 읽고 나면 뿌듯해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나름대로의 유구한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끼지만, 이처럼 구체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찬 책을 읽으면 더더욱 그렇다. 생명의 다양성을 많이 얘기하는데, 여기서 느끼고 배우고 확인하는 것은 그저 그렇다고 인식하는 관념적인 다양성이 아니다. 실제로 느끼고 인식하는 생명 발달의 다양성이다. 한 가지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한 가지 과정으로만 말할 수 없는,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형태와 과정을 통해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경이롭고, 어쩌면 찬란하다. 어떤 경우에는 감동스럽고, 어떤 경우에는 감탄스럽다. 그리고 때론 안타깝다. 해양생물을 통해 발달을 연구해온 저자가 ‘어린 것들’, 즉 ‘새끼’를 통해 그런 지구상 생명의 다양성과 신비를 보여주고자 한 것은 정말 신의 한수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흔히 다 자란 성체의 모습과 생리적 현상을 통해 그 생물을 이해하곤 하지만, 실제로 지구상에 대부분의 동물은 새끼들이다. 그 새끼들이 살아남아야 성체가 되고, 다음 세대의 새끼를 낳고, 끝없는 생명의 고리, 진화의 흐름을 이어갈 수가 있다. 새끼들이 어떻게 나오고, 그것들이 어떤 적응을 통해 살아남아 성체에 이르...
우아한 방어 저자 맷 릭텔 출판 북라이프 발매 2020.05.25. 면역이라는 인체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메커니즘을 밝히고, 이를 치료에 적용해온 과학자와 의사들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네 명의 환자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면역 전문가가 글쓰기를 익혀 쓴 게 아니라, 기자(저자 맷 릭텔은 <뉴욕타임스> 기자다)가 많은 과학자, 의사, 환자 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면역학을 익히며 쓴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비유들은 저자가 과학자들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라 과학자라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들이고, 이것이 면역학에 대해 생소한 이들에게 무척 큰 도움을 줄뿐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면역학을 겉핥기로만 배운 나 같은 사람에게도 무척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 방금 밝혔듯이 이 책은 네 명의 환자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저자의 친구이자 암의 일종인 호지킨병에 걸린 제이슨, 동성애자로서 HIV에 감염된 밥, 골프 선수였으며 유능한 기업인으로서 열정적인 삶을 살다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스성 관절염과 루푸스에 걸린 린다 보먼, 그리고 역시 자가면역질환 환자 메러디스. 그리고 면역이라는 현상을 발견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어떻게 그 현상이 외부로부터 침입한 병원균을 비롯한 외부 물질을 물리치는지를 알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면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한 질환과 증상들에 ...
죽음의 죽음 저자 호세 코르데이로,데이비드 우드 출판 교보문고 발매 2023.06.15.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가? 세금을 회피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이니 그른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죽음도 마찬가지란다. 모든 생명체가 맞이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여기는 죽음을 인간이 피할 수 있다는 말이 허황되게 들리지만 죽음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죽음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과학적인 근거는 실제로 실질적으로 죽지 않는 생명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균이나 효모 같은 것들은 동일한 세포로 분열하면서(약간이 돌연변이를 수반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영원한 삶을 지속한다. 게다가 식물이나 동물의 경우에도 수천 년을 사는 것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죽음을 세포의 문제라고 한다면 영원한 살아가는 세포가 있다는 것은 죽음을 회피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영원한 삶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노화에 관한 것이다. 노화 역전! 노화 역시 인간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를 비롯한 적지 않은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이 책은 노화 역전이 가능하다고, 노화 역전으로 벌어지는 긍정적인 일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많은 문헌들을 바탕으로 주장하고 있다. 과연 가능할까?...
하나의 세포로부터 저자 벤 스탠거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발매 2024.09.30. 모든 생명은 단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된다. 하나의 세포가 생겨난 후 분열을 거듭하면서 최종적인 유기체로 발생하는 과정은 가장 신비한 과정 중의 하나다. 과학은 2백 년 전부터 이 과정에 대한 이해를 더하면서 적지 않은 것을 밝혀왔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의사이자 발생생물학자인 벤 스탠거는 과학자들이 하나의 세포부터 유기체가 발생하는 과정을 밝혀온 이야기, 그래서 지금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그것들이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더 밝혀야 할지를 이 책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발생학, 유전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진화생물학, 미생물학, 줄기세포 생물학, 암생물학 등등의 학문 분야를 넘나들고 있는 저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지금도 이 질문이 수수께끼이자 해결하지 못하는 질문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과학적으로 달걀이 먼저임이 분명한데, 저자는 이를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바로 배아, 즉 세포 하나에서 생명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운명의 결정, 즉 본성(nature)와 양육(nuture)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한 세포의 운명이 어디까지가 유연성을 지니며, 또 언제부터 결정되는지의 문제는 오랜 발생학의 과제였고, 과학자들은 이를 어느 정도는 해결했다. 그리고 이 해결 과...
세 개의 쿼크 저자 김현철 출판 계단 발매 2024.10.15. 1963년 ‘머리가 다섯 개 달린’ 천재 이론물리학자 머리 겔만은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에다 ‘쿼크(quark)’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쓴 (정말 읽기 어려운 소설) 『피네간의 경야』 2부 4장에 나오는 “마크 대왕을 위한 세 개의 쿼크!”에서 가져온 말이었다. 『피네간의 경야』에는 사전을 찾아도 나오지 않는, 기이한 단어들이 가득한데 쿼크도 그중 하나였다. “마크 대왕을 위한 세 개의 쿼크!”라는 말도 정작은 무얼 의미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실은 잘 모른다. 물리학은 물론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겔만은 이 난해한 소설에서 쿼크라는 이름을 가져왔는데, 처음에도, 그리고 꽤 오랫동안 쿼크라는 물질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단지 수학적인 계산을 위해 필요해서 도입한 개념일 뿐이었다. 그렇게 계산을 위해서 도입한 쿼크는 결국 실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제는 겔만이 그 이름을 생각할 때 고려했던 “세 개의 쿼크”가 아니라 여섯 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제 물질의 근본 입자는 원자가 아니라 쿼크다. 『강력의 탄생』에서 1895년 뢴트겐이 엑스선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1947년 이전에 유카타 히데오가 예측한 강력의 존재를 확인하는 파이온을 찾아내기까지의 역사를 그린 김현철 교수가 이번에는 그 이...
한국인의 기원 저자 박정재 출판 바다출판사 발매 2024.09.06. 현대 한국인, 혹은 한반도인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이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인정되오던 바가 있었다. 저 멀리 바이칼호로부터 시베리아, 몽골 고원 등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북방계와 남쪽의 섬으로부터 유입된 남방계가 어우러져 현대 한국인의 조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 대한 믿음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조금은 모순적인 인식인 듯하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위의 공고한 인식이 흔들리고 있다. 고인류의 뼈에서 DNA 추출해서 연구한 결과 현대 한국인의 주류는 북방의 라오허(요동)에서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반도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역시 일본인의 주류가 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늘고 있다. 생물지리학을 전공한 전공인 저자는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이후 어떻게, 왜 이동했는지, 어떤 경로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반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추론하고 있다. 학문의 성격상 완전히 증명할 수 없기에 ‘추론’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상당히 객관적인 증거를 토대로 펼치는 저자의 추론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많은 사실들을 설명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저자는 인류의 이동을 추동케 한 가장 주된 원인으로 ‘기후 변화’로 꼽고 있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
비글호 항해기 저자 찰스 다윈 출판 리젬 발매 2013.09.10. 오랫동안 벼르던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다 읽었다. 이런 책을 다 읽으면 일단 뿌듯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은밀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어떤, 폐쇄적인 모임의 일원이 된 느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찰스 다윈은 1831년 피츠로이 함장의 제안을 받고 고민하다 나중에 장인되는 외삼촌의 조언과 도움으로 해군 측량선 비글호에 승선한다. 애초의 계획보다 더 길게 5년 가까이 비글호에서 지냈고(배에서만 지낸 것은 아니지만), 돌아와서는 당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1839년 『비글호 항해기』를 냈다. 이미 비글호 항해 도중, 그리고 돌아와서 발표한 논문들과 채집물로 학계에서 유명해진 시점이었지만, 『종의 기원』을 내는 데는 아직 20년 전을 기다려야 했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를 1845년에 2판을, 1860년에는 3판을 출판했다. 지금 많이 읽히는 건 3판이고, 지금 내가 읽고 정리하는 『비글호 항해기』도 3판을 번역한 책이다. 『비글호 항해기』는 일기를 기초로 하고 있고, 대체로 날짜 순서로 구성했다. 하지만 날짜 순서대로만 적지 않고 있다. 각 장마다는 끝에 따로 생각을 정리하거나 과학적 견해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건 비글호 항해 도중의 생각뿐만 아니라 이후에 발전된 생각과 견해들이다. 말하자면 경험의 유사성을 묶고 있다. 『비...
돌파의 시간 저자 커털린 커리코 출판 까치 발매 2024.07.10. 커털린 커리코. 202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다. 그녀의 이 자서전을 2024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직후 읽었다. 커리코가 mRNA 백신과 관련한 업적으로 수상했고, 올해는 microRNA에 관한 업적으로 주어졌으니 2년 연속 RNA에 관한 업적이 인정받은 셈이다. 그런데 커털린 커리코의 자서전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노벨상을 수여하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어나고 주로 치료용으로 개발되던 mRNA 기술을 백신 쪽으로 신속히 전환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받게 되는 시점까지다. 아마 이 책을 마무리하던 시점에는 자신이 언젠가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2023년이 아니더라도. 커리코는 헝가리 태생이다. 공산주의 국가였던 헝가리에서 태어나 제약을 받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런 덕택에 대학에까지 진학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대학 시절부터 연구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연구의 길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한다(자서전에서 읽기 전부터 그녀가 미국으로 건너갈 때 딸의 인형에 비밀스럽게 돈을 숨겨간 일화는 잘 알려진 일화라 알고 있었다). 커리코는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평생의 연구를 RNA에 집중했다. ...
나라는 착각 저자 그레고리 번스 출판 흐름출판 발매 2024.03.02.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렇게 이 책은 다소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특히 ‘나’라고 하는 인격체는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는 서로 동일한지, 동일하지 않다면 ‘나’라는 존재는 과연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인식론에서 이 논의를 시작한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분야다. 이런 학문 분야의 논의를 바탕으로 저자는 자아가 있는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즉 뇌의 ‘발명품’이다. 이는 자아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는 기억이 불완전한 데서 시작한다. 기억이란 일관되고 연속적인 흐름이 아니다. 장면이 불연속으로, 그것도 압축되어 저장된 것을 뇌가 제멋대로(그러나 그럴듯하게) 이어 붙여 이야기(서사)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기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은 불완전하다. 그런 기억에서 비롯된, 즉 과거의 나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자아이기 때문에 자아는 뇌의 발명품이고 시뮬레이션인 것이다. 이러한 기억과 자아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이것을 잊고, 또 무시한다. 저자는 이를 분명하게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나’라는 존재가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
해부학자의 세계 저자 콜린 솔터 출판 해나무 발매 2024.09.30. “해부학은 허공에 존재하지 않았다. 해부학의 발전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형성되었고, 종교적 관행에 의해 제한되거나 잔혹한 전쟁과 부상병 치료 중에 발전했으며, 해부학 자체나 전혀 다른 분야의 기술 혁신으로 진보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넘치는 호기심과 용기로 실험에 도전한 과학자들이 주도했다.” (361쪽) 우리는 자신의 몸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특히 피부 아래에 존재하는 기관과 조직, 그리고 그것들의 연결 관계는 겉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을 알아내는 학문을 해부학(解剖學, anatomy)이라고 한다. 인간은 무엇이든 알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동물이고, 그 알고자 하는 대상 중 맨 처음에 놓인 것은 바로 ‘우리 몸’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해부학은 아주아주 오래된 학문이다. 물론 아주 오랫동안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많았다. 심장과 뇌의 기능을 두고도, 피가 순환하는 것인지, 생겼다가 그냥 없어지는 것인지, 자궁에 여러 개의 방이 있는지 등등을 두고 잘못된 해석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조금씩 우리는 알아 나갔다. 늘 바른 방향으로 진전된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우리 몸의 진짜 모습을 알아 나갔고, 우리 몸 각 부분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그것들 각각이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지를 알아 나갔다. 무려 5000년의 여정이다. 콜린 솔터의...
5개 원소로 읽는 결정적 세계사 저자 쑨야페이 출판 더퀘스트 발매 2024.08.21. 역사를 어떤 물질을 매개로 서술하는 책은 많이 나와 있다. 그런 책들 각각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점은 어떤 에피소드를 선택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느냐다. 그게 신선하면서도 적절하며, 누구라도 긍정할 수 있는, 그런 소재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일단 선택한 다섯 개 원소는 그다지 독특하지 않다. 찾아보면 ‘다섯’ 개라는 숫자가 좀 독특하긴 해도, 금(Au), 구리(Cu), 규소(Si), 탄소(C), 타이타늄(Ti)과 같은 원소 자체는 매우 낯이 익고, 누구라도 고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타이타늄 정도가 다른 것들에 비해 조금 낯이 설까 싶은 정도다. 그러나 세계사를 통찰하는 데 원소를 이야기하자면 반드시 언급해야만 하는 것들이니 이건 시비 삼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원소들을 세계사 속에서 찾은 이야깃거리는 아주 신선하다. 금에 관해서는 태평양을 발견한 발보아와 그의 부하이자, 그를 배반하고 잉카 제국을 정복한 피사로의 이야기다. 그들은 황금을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갔고, 그만큼 금의 유혹은 역사 내내 뿌리칠 수 없는 것이었다는 식이다. 구리에 대해서는 뜻밖에도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얘기를 한다(정말 뜻밖이다). 원래 노란색이었던 자유의 여신상이 녹이 슬면서 지금과 같은 신비로운 색이 되었다는 얘기며, 실제 문제는 구리에 낀 녹이 ...
세상에 나쁜 세균은 없다… 인류사 바꾼 미생물 이야기 [출처] - 국민일보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0533403&code=61171511&sid1=cul&sid2=0004 세상에 나쁜 세균은 없다… 인류사 바꾼 미생물 이야기 몰랐다.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같은 미생물들이 인류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생물 학자로 www.kmib.co.kr 몰랐다.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같은 미생물들이 인류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생물 학자로 역사 읽기를 좋아한다는 저자는 “역사에 기록된 미생물은 대체로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면서도 “인간 역사에 두려움을 드리운 경우에라야 존재감이 두드러져서 그렇지 무서운 미생물을 전체에서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책에는 무서운 얼굴을 한 미생물이 많이 등장하지만 시작은 착한 미생물이다. 인류의 시작부터 즐거움을 선사했던 술과 관련된 효모다. 술은 곰팡이의 친척쯤 되는 단세포 생물인 효모에 의해 당이 알코올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다. 인류가 술을 어떻게 즐기게 됐는지에 관한 이론 중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이 있다. 잘 익은 과일에서는 껍질에 있는 효모의 도움으로 자연 알코올 발효가 일어난다. 이 ‘과일...
불완전한 인간 저자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 출판 현암사 발매 2024.07.10. 진화의학, 또는 다윈의학에 기초해서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존재의 불완전함을 다룬 책은, 조지 윌리엄스와 랜돌프 네스의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로부터 시작해서 무척 많다. 여기 또 하나의 책 스페인의 진화인류학자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의 『불완전한 인간』이 놓여 있다. 그저 이 분야에 그렇고 그런 책 하나를 더 얹어 놓는 책일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다른 시각, 혹은 더 나아간 시각을 보여주고, 우리에게 무언가를 더 남겨주는 책일까? 인간이 걸리는 질병은 진화적으로 의미가 있으며, 대부분 석기 시대의 몸이 현대의 급속도로 변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 설명한다. 그 질병에는 치매도 포함되어 있고, 노화도 포함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노화, 불안, 암, 감염, 심혈관 사고, 신경 퇴행성, 폭력,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을 들여다보면, 진화적으로 형성되었고, 그렇게 설명할 수 있다. 어떤 것들은 유전자의 다면발현 때문에, 혹은 과거에는 생존에 유리했으나 상황이 바뀌었지만 아직 제거되지 못했기에, 아니면 인간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특성이기에 그것들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성의 목록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질병’들이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과의 불화로 생긴 것들이라는 것을 아는 것, 즉 진화...
태양을 만드는 사람들 저자 나용수 출판 계단 발매 2024.01.30. ’태양을 만든다‘. 거창한 것 같다. 당연한 거창한 일이다. 짐작은 간다. 지구에서 모든 생명체들이 이용하는 에너지 전부를 공급하는 게 태양이니, 바로 그 태양의 원리를 이용한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일일 터. 그렇다면 태양이 어떻게 수십 억 년 동안 타올랐으며, 앞으로도 수십 억 년은 거뜬하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야기는 바로 그 이유를 밝혀내는 데서 시작한다. 2005년 3월 6일, 뮌헨. 한 물리학자의 부고를 듣는 것으로 장면이 시작된다. 1940년대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으며, 1967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한스 베테.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무엇을 밝혔는가? 짐작할 수 있지만 태양의 비밀을 밝혀냈다. 질량이 에너지라는 것을 아이슈타인이 밝혔고, 그것을 이용해서 원자폭탄을 만들었지만 태양이 어떻게 그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지는 한스 베테가 밝혀냈다. 바로 핵융합. 수소끼리 충돌해서 헬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미세하게 감소하는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이다. 원자폭탄이 핵분열을 이용하는 것이니, 정반대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물론 핵분열이나 핵분열이나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한다는 원리는 동일하다). 핵융합으로 막대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그것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핵분열을 이용한 ...
수학은 알고 있다 저자 김종성,이택호 출판 더퀘스트 발매 2024.08.01. 김재경 교수의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이 수학을 생명 현상을 설명하고 응용하는, 자신의 연구에 기초한 책이라면 『수학은 알고 있다』는 유튜버로서 자신이 이해하고 설명해 온 과학, 그중에서도 수학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똑같이 수학이 세상을 설명하는 힘을 믿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아주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점은 같다. 『수학은 알고 있다』 역시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처럼 수학이 예측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고 있다. 회귀분석을 통해서, 인공지능을 통해서, 베이즈정리를 통해서, 지수법칙과 로그 계산을 통해서, 그리고 수학 모델을 통해서. 이렇게만 얘기하면 꽤나 어려운 수학 같지만(물론 조금 어려운 부분이 약간은 있다), 저자들은 (다행스럽게도) 수학 전공자가 아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기면서 아주 친근하게 접근하고 있다. 회귀분석이라는 강력한 방법은 체감온도나 다이아몬드 가격과와 같은 예를 통해서(여러 데이터를 가지고 한 줄의 선을 그려 미래를 예측한다니 놀랍지 않은가?), 인공지능과 관련해서는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나 신약 개발 방식의 예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인공지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혹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베이...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 저자 김재경 출판 동아시아 발매 2024.09.05. 이언 스튜어트가 『생명의 수학』에서 수학에 의해 생물학의 여섯 번째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을 때(https://blog.naver.com/kwansooko/220482934029) 고개는 끄덕였지만, 솔직히 말해서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 수학을 잘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전공을 정하면서 수학은 멀어져갔다. 수학을 구체적인 풀이 방식으로 접근하는 대신,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런 경우 수학을 생물학에 스스로 이용하는 것은 물론, 생물학에 적용된 수학을 이해하는 것도 실제적으로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자, 그런데 여기 우리나라 수학자 김재경 교수의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이 있다.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이지만 감탄을 거듭하며 읽었다. 그의 연구에 대해, 그의 표현 방식에 대해, 그리고 그 전망에 대해. 우선은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여기의 내용은 모두 저자인 김재경 교수의 연구에 기반해 있다. 그러니까 이른바 수리생물학의 역사라든가, 기본 개념이라든가, 경향이라든가 하는 것들, 즉 일반론을 싹 빼고 바로 자신의 연구를 설명한다(물론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은 소개한다). 이런 경우를 우리나라 과학자의 책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자신의 연구에 자신을 가지...
먼지: 거실에서 우주까지, 먼지의 작은 역사 저자 요제프 셰파흐 출판 에코리브르 발매 2024.07.22. 먼지 하나로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지는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책장을 펼치기 전 이 책으로 먼지에 대해 뭘 알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을 때, 우리 주변에 떠다니는 먼지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것들이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등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펼치자마자 이야기는 태초에서 시작한다. “태초에 먼지가 있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먼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먼지를, 물론 포함한다. 그러나 범위가 훨씬 넓다. 태초의 ‘먼지’처럼 우주의 시작에 생겨난 원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부터 시작하여 우리 거실에, 우리의 어깨에 내려앉은 먼지, 꽃가루,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혹은 그것을 막아줄 수 있는 먼지도 있다. 사막의 먼지도 있고, 화산의 먼지, 우주의 먼지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죽어 돌아갈 먼지도 있다. 이런 먼지들에 대해 요제프 세파흐라는 과학 기자는 ‘기자답게’ 풀어낸다. 감성보다는 사실 관계 위주로 말이다(늘 그런 건 아니고 가끔 감성적이긴 하다).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먼지로 인해 기후 변화가 일어난다는 내용이고, 그것을 막거나 늦추기 위해 다시 먼지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가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일면을 엿볼 수...
큐리어스 저자 리처드 도킨스 출판 페이지2북스 발매 2024.04.16. 존 브록만의 엣지 포럼(www.edge.org)과 관련된 책을 꽤 읽어왔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곳의 질문들이 상당히 의미 있고, 또 답변도 (역시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새겨 읽을 만하고, 또 재미있기도 하다. 가끔은 웹페이지를 방문해서 요샌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나 살피기도 한다. “어떻게 과학자가 되었나”와 같은 질문에 대답인 이 책은 이미 2004년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20년도 더 넘은 질문과 답변인 셈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과학과 과학자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그렇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특히 20년 전이나 지금은 더더욱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으니까. 그리고 여기의 답변을 남긴 과학자(좀 범위를 넓히긴 했다)들의 면면은 여전히 의미가 있는 이들이니까 그렇다. 요는 이 책은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26명의 과학자들은 주로 호기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과학이란 그런 것이니까. 과학이란 호기심에서 비롯한 것이니까. 그리고 그 호기심은 어린 시절에 길러진 것이니까... 그런데 그게 당연한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당신들, 즉 성공한 과학자의 어린 시절은 어떠해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처럼 26명이나 되는 이들에게 받을 필요가 없었을 터이다. 그들이 과학자로 성장하는 데는 하나의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실험 저자 필립 볼 출판 소소의책 발매 2024.06.20. 정말 아름다운 책.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이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 ‘아름다운’ 실험들을 소개하고 있다. 분야도 편향되지 않았다. 천체물리학, 고전물리학, 화학, 광학과 양자역학, 생명과학, 동물행동, 심리학 등 과학의 주요 분야를 망라하고 있고, 그것들에 대해 깊은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필립 볼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일 듯하다. 교양과학 서적들을 보면, 많은 경우 이론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상대성이론이라고 하면 아인슈타인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내고 설명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보어에서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의 이론을 주로 설명한다. 다윈의 진화도 마찬가지고, 유전 법칙에 대해서도, 유전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실험은 부차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입증한 실험이 없었더라면 그 이론들은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실험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보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실험은 이론을 가능케 하고, 이론을 입증하고, 이론을 넘어서 새로운 사실을 보여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과학 분야에서 실험은 모든 과정의 시작이자 끝인 경우가 많다. 필립 볼이 보여주는 실험과학의 세계가 바로 그런 실험과학의 세계다. 필립 볼은 ‘아름다운 ...
찬란한 멸종 저자 이정모 출판 다산북스 발매 2024.08.07. 이정모 관장. 무려 12년이나 공립과학관의 관장을 지냈기에 ‘관장’이란 명칭이 자연스레 붙는다. 대학에 있다 자신이 커뮤니케이터, 스토리텔러로서 더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교수직을 관두고 이쪽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 재능은 물론 말하기에서도, 글쓰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미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고, 이번도 마찬가지다. 이번의 주제는 멸종이다. 그런데 제목이 언뜻 아이러니하다. 멸종인데 찬란하다니.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면 무슨 의미에서 그렇게 제목을 지었는지 이해가 간다. 진화사는 멸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화를 통해 다양성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그건 맞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무조건 그런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물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앞선 생물이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은 멸종으로 드러난다. 지금 이 지구에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40억년이 넘는 지구의 역사 동안 무수히 멸종해간 생물을 딛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멸종은 ‘찬란한’ 진화의 중요한 과정일 뿐이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는 바탕이 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다. 소소한 멸종은 언제라도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인상 깊은 대멸종은 지금으로부터 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