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슴』은 1998년에 출간된 한강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등단한 지 일 년 만에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출간한 작가는 병행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장편 쓰기에 바로 돌입한다. 제주도 세화리에 사글 셋방을 얻어 『검은 사슴』의 서두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계획한 만큼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오지만, 3년이 지난 후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으로 완성한다. 두툼한 분량에서부터 느껴진다.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단단한 마음이. 그 마음에 화답하듯 『검은 사슴』이 받은 ‘한 젊은 마이스터의 탄생을 예감케 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서영채)이라는 찬사는 마치 한강 작가를 향한 오래된 예언 같다. 검은 사슴 저자 한강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7.12.20. 마이스터의 첫 장편 『검은 사슴』은 어떤 소설인가. 잡지사 기자 인영은 명윤과 함께 평생 탄광 사진을 찍는 장종욱(이하 “장”)이라는 인물을 취재하기 위해 강원도로 떠난다. 취재는 명분일뿐, 진짜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의선의 행방을 찾는 데 있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도시의 인구가 반으로 줄어든 폐광촌. 과거 번영했던 탄광 도시에는 쓸쓸함만이 남아있다. 겨울의 황량함을 헤치며 인영과 명윤은 의선의 희미한 자취를 따라간다. 쉽게 잡히지 않는 의선의 행방을 쫓는 길은 점점 더 어둠으로 들어간다. 사진작가 장이 사진을 찍기 위해 탄광의 깊은 어둠으로 내려...
밤사이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얼마나 눈이 쌓였는지 보려 창문 커튼을 열었는데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누군가 밤사이 발자국으로 글씨를 써놓은 것. 꾹꾹 하나하나 밟으며 글씨를 썼을 발자국의 주인이 궁금했다. 아침에 발자국 글씨를 보고 활짝 환해질 누군가의 표정을 상상하며 썼을까? 거기엔 이름이 없었다. 메시지의 수신자가 생략되어 있었다. 글씨 주위로 찍힌 동그라미가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에 비밀스런 암호일지도 모르겠으나, 그와 무관한 제 3 자로서 본 글씨는 그 자체로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사적이고 은밀한 메시지가 아니라 공공연하게 드러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선명하게 찍힌 글씨,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집에서 매트를 깔고 설렁설렁 스트레칭만 했던 나의 몸을 이끌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두 다리를 움직이고 두 팔을 움직이면서 러닝머신 위에서 빠르게 걸었다. 움직이고 나니 바닥에 고여있던 기운이 올라오는 기분. 4kg 아령을 두 손에 들고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투명의자에 앉는듯한 느낌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스쿼트를 했다. 근육을 자극하려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때까지 해야 하는데 몇 번 반복하다가 적당히 했다는 느낌에서 그쳤다. 그것만으로도 반짝 개운해졌으니, 나의 헐거운 운동은 내 몸을 바꾸는 게 아니라 기분을 바꾸는 건가? 나의 기분은 몸 상태에 따라 달라지니, 몸 관리가 기분 관리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아프지 않은 몸, 바이러스에 쉽게 공격당하지 않는 몸은 어떤 몸일까, 하는 호기심에 읽게 된 책, 빌 브라이슨의 『바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쓴 저자는 몸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말한다. 우리 몸에 대해 해부학적으로 접근하지만 어렵지 않다. 빌 브라이슨이 썼으니까. 그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몸의 안팎 구석구석을 살핀다. 56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말하지만, 사람의 몸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바디: 우리 몸 안내서 저자 빌 브라이슨 출판 까치 발매 2020.01.10. 가장 흔한 바이러스와의 불쾌한 만남은 감기이다. 몸이 으슬으슬해지면 감기에 걸리기 더 쉽다는 것은 누구나 ...
한강 작가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에는 1994년 등단작 「붉은 닻」을 포함하여 단편 여섯 편이 살려 있다. 내가 읽은 판본은 이정진 작가의 사진이 표지로 실린 2018년 개정판이다. 1995년에 나온 초판과 차이가 있는데 개정판에는 단편 한 편(「저녁빛」)이 빠졌고 단편의 배열 순서가 바뀌었다. 표제작 「여수의 사랑」이 맨 앞에, 「붉은 닻」이 맨 뒤에 실린 것은 초판과 개정판이 동일하다. 2024년 10월 이후에 나오는 『여수의 사랑』에는 띠지가 추가되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 여수의 사랑 저자 한강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18.11.09.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30년 전에 쓴 첫 소설집이 역주행하듯이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거슬러 올라가 읽기로 했다. 출간 연도순으로 여덟 작품을 읽는 이번 <한강 읽기>는 한국 작가의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동시에 한강 작가의 작품 여정을 따라가 보는 일정(1월부터 4월까지)이다. (마무리로 제주 오프모임을 계획 중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외국 서점에서도 한강 작가의 주요작(『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이 진열된 풍경을 보는 일이 신기하고도 기쁘다. 반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는데 『여수의 사랑』도 그중 하나.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전작 읽기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국내 독자와 외국 독자의 독서경험은 다를...
“졸업은 시작의 다른 말입니다. 꿈을 품고 나아가세요. 한번 실패는 끝이 아닙니다. 계속 나아가세요. 꾸준히. 그러면 원하는 곳에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단발머리 교장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최강한파를 기록한 엊그제 금요일에 아이의 졸업식이 있었다. 체육관 강당에서 진행된 졸업식이 끝나자 모두 바깥으로 나가야 했고 학교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칼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사진을 찍고 찍어주고...찍힌 사진을 보니 얼굴이 일그러진 듯 얼어있다. 졸업식 날 이후로 온 가족의 감기가 시작되었고 호되게 앓는 중이다. 어서 독감으로부터 졸업해야 한다! 올케의 선물. 화사한 존재감을 뽐낸 꽃 풍선. 6학년 졸업생 아이는 피카츄를 부끄러워해서 피카츄를 든 나와 사진을 찍으려하지 않았다... 한때 아이에게 열렬히 사랑받았던 피카츄인데.. 그럼에도 읽을 책은 쌓이는 중이다. 읽는 책이 읽을 책을 부르고 읽은 책은 다시 읽을 책이 된다. 1인 시사 미디어로 활동하고 있는 조현수님의 책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는 것들』은 열한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매개로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불평등을 말한다. 가령, <더글로리>에 나타난 학교폭력과 가정폭력, <애프터양>을 통해 생각해보는 다양한 가족의 가능성, <오징어게임>으로 본 능력주의. 대중에게 익숙한 영화와 드라마는 사회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그 안에서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인식한다면 ...
1. 설 차례를 지낸다. 새해 첫날은 일 년에 한 번 가족 모두가 한복을 입는 날이어서 미리 한복 상자를 꺼내 한복을 준비한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 비슷해 보이지만 한복을 입히면 일 년 사이에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된다. 기장과 소매가 눈에 띄게 짧아져 한복을 수선하고 입을 수 있는 모양새로 준비하고 나면 한해의 끝에 다다르고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새벽에 한복 머리를 도와주러 출장 미용사가 오신다. 청각이 불편한 미용사 분은 내 입모양을 살핀다. 그래도 내 말이 전달 안되면 나는 핸드폰으로 내용을 쓴다. 새해 새벽에 오셔서 온가족을 도와주시는 귀한 분 덕분에 무탈히 준비를 마치고 늦지않게 집을 나선다. 한바탕 난리법석이지만 이러한 난리 법석을 해야 비로소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구체적 실감을 갖게 되었으니, 이것은 결혼 후에 갖게 된 변화다. 좋든 싫든 매년 반복되는 의식은 몸에도 새겨지는지 어느새 루틴이 되었다. 비슷한 풍경의 반복이지만 졸린 눈을 비비면서 왜 일찍 일어나야 하는지 몰랐던 아이들이 이제는 큼지막한 복주머니를 손에 들고 알아서 세배할 준비(세뱃돈 받을 준비)를 할 만큼 자랐다. 아무 의미 없는 반복이 아니었던 것이다. 의미 없는 반복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충분한 시간이 쌓여야 알게 된다. 반복해야만 알게 되는 변화가 있다. 변화를 체감하기까지 시간은 더디고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아서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요즘이...
한강의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에서 제목을 빌려 적는다. 이 책을 읽고 싶지만 절판이라 읽을 수가 없다. 온라인 서점에 올라온 중고책 값이 무려 12만원이라 책이 다시 나오기만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다. 사랑을 둘러싼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이 사랑을 고통스럽게 하지, 사랑 자체는 고통이 아니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온 책 제목이다. 이 제목을 빌린 이유는 올해의 책과 책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저자 한강 출판 열림원 발매 2009.12.15. 먼저 올해의 사건이 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한강의 작품을 다시 읽고 새로 읽고 함께 읽는 계기가 되었다. 노벨문학상 작품의 원서를 궁금해하곤 했는데 이제 원서로 읽을 수 있게 되니, 번역서가 궁금해졌다. 『소년이 온다』 영국판 표지에는 한강 작가의 손글씨가 실려있다. 한글 제목을 병기한 번역서들. 한글 표지가 세계문학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제주어가 나오는데 제주 방언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주문 We Do Not Part 한강 작가『작별하지 않는다』영문판 (미국판) 저자 한강 출판 Hogarth Press 발매 미등록 한국어로 쓰인 작품을 한국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한국근대문학 연구자 입장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읽는다. 한국문학의 경사를 누구보다 기뻐...
블로그에서 내가 읽은 한강 작가의 첫 책을 찾으니,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라고 나온다. 2015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소설 보다 읽기가 수월하리라 생각하고 빌렸을 거다. 노래들에 대한 기억을 담은 산문집. 작가가 만들고 부른 노래를 시디로 만들어 부록으로 넣었다는 그 책은 현재 절판이다. 나와 한강 작가의 첫 (책) 만남은 '노래'인 셈이다. 그때 작가의 가만가만한 노래를 듣고 산뜻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같다'라고 말한 이유는 기억이 흐릿해서) 이렇게도 노래를 부를 수 있구나. 고요한 연못의 물결 같은 목소리. 숨소리와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노래의 일부가 되어버린 노래. 노래라고 하기엔 어딘가 심심한데 심심함이 자아내는 묘한 정직함이 베어 있는 노래.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눈물나는 그런 노래. 무엇보다 나는 작가가 용감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래를 잘 부른다 못 부른다의 테두리를 벗어나, 그저 자신이 만든 노래를 직접 불러 표현하는 작가의 모습이 용기로 보였던 것이다. 노래가 아닌 시를 부르는 느낌이랄까. 시가 노래이긴 하지만. 소설가가 아닌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작가에게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쓰는 일이 시 쓰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에 실린 '휠체어 댄스'가 시집에도 실려있다. 2013년에 나온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는 여덟 권의 책을 출간한 등단 20년차...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요 . . . '모던하트' 한겨레문학상 작가 정아은 별세 2013년 소설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정아은(49)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19일 출판계에 따르면 정 작가는 지난 17일 저녁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우리 마름모 출판사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 naver.me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자 정아은 출판 마름모 발매 2023.10.27.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저자 정아은 출판 마름모 발매 2022.05.31.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저자 정아은 출판 천년의상상 발매 2020.05.18. 엄마의 독서 저자 정아은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18.01.22. 잠실동 사람들 저자 정아은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15.02.02. 모던하트 저자 정아은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13.07.12. '김동률과 전람회' 故 서동욱, 한 달 전에도 SNS 활동했는데…갑작스런 비보 [종합] 한눈에 보는 엔터 소식 naver.me
‘AI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 올해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AI의 급속한 발전이 가져올 미래를 우려했다. ‘AI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 교수는 인공지능 기초연구를 확립했다는 공로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첫 노벨상을 수상 (존 호필드 교수와 공동 수상) 했다. 그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우리 자신보다 더 지능적인 디지털 존재를 만들 때 인간은 실존적 위협을 겪을 수도 있다고. 이것은 더 이상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AI의 지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AI, 결국 인간이 써야 한다 저자 이석현 출판 아이콕스 발매 2024.12.20. 책 『AI, 결국 인간이 써야 한다』에서 ‘AI가 주체가 아니라 인간이 주체가 되어 AI를 리드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AI의 통제권을 인간이 가져야 한다는 ‘AI의 아버지’의 주장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제목에서 ‘결국’이 강조하는 대상은 AI가 아닌 인간이다. 인간이 AI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작가로서 30년 넘게 이중생활’을 하는 저자는 ‘AI를 쓰면 쓸수록, 인문학적 내공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며 ‘기본은 결국 읽고 쓰고 말하기’라고 한다. ‘AI를 실무에서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아이덴티티와 ‘문학 소년’ 인문학적 아이덴티를 동시에 장착한 저자는 둘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A...
한강 노벨문학상 시상식은 밤 12시라고 했다. 12월 10일 밤12시를 그 전날 밤 12시인줄 착각하고 기다릴 만큼 내 마음은 이미 저만큼 앞서가 있었다.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시아 첫 여성 수상자인 한강 작가 수상의 벅찬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새벽에 깨어 축구경기를 보는 심정이 이런 건가? 다음날 나오는 뉴스로 보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 알았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생생한 현장을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기꺼이 깨어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2024 Nobel Prize award ceremony Join us live in Stockholm for the Nobel Prize award ceremony which takes place at the Stockholm Concert Hall, Sweden, on 10 December – the anniversary of Alf... www.youtube.com 한강 작가는 어떤 의상을 입고 나올까? 시상식 소감으로 어떤 말을 할까? 얼마 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들뜸인지. 어두운 시절에 한줄기 금빛 소식을 전해준 작가에게 고마웠다. 스웨덴 스톡홀름 현지 시각 오후 4시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은 한 시간 남짓 진행되었다. 짙은 블루 카펫에 새겨진 금빛 글씨 The Nobel Prize를 중심으로 노벨상 수상자들과...
『불멸』은 밀란 쿤데라 읽기의 마지막 산이었다. 높은 산(두꺼운 책)을 오르는데 필요한 것은 근력 (독서력)이나 지구력뿐 아니라, 적정한 환경도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불멸』 읽기는 새삼스럽게 확인시켜주었다.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모아야 하는 책 읽기란 얼마나 고단한가. 그런데 (단지 읽기 여정을 마쳐야 한다는 이유 말고) 왜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 한국은 극단적인 혼란에 서 있다. 문학의 역할은 △문학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그런 과정에서 자기 내면에 깊게 파고 들어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속 그런 행위를 반복하면서 내적인 힘이 생긴다.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결정하기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여분의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12월 6일 스웨덴 아카데미 한강 인터뷰 기자회견에서) 한강 작가는 문학을 읽으면서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쳤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결정' 하는 내적인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힘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힘을 갖추게 된다는 말. 『불멸』을 끝으로 약 100일간의 읽기 여정을 마쳤다.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라는 높은 산을 넘으면서 내적인 힘을 기르는 시간이었다고 믿고 싶다. <불멸>을 읽은...
12월 3일 밤, 갑자기 느닷없이 일어난 경악스러운 사태에 대해 책 벗이 말했다. ( 카프카 쿤데라 읽기 방에서) ‘카프카에스크적’이다. 카프카에스크는 끔찍하게 불쾌하고 무섭고 혼란스럽다는 뜻으로 카프카 소설에서 묘사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벌레로 변하고(그레고리 잠자)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당하는(요제프 K) 사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 카프카 소설 속 ‘시민은 자주 극단적인 몰이해와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는 정의는 지금 오늘과 비취 볼 때 전혀 이질감이 없다. 아 참을 수 없이 카프카에스크적이다 ! 카프카를 현대 소설의 세 성인 (다른 두 작가는 프루스트, 조이스)으로 일컬으며 카프카의 계보를 잇고자 하는 밀란 쿤데라는 그의 에세이 『소설의 기술』에서 카프카의 소설적 성취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말하고 있다. ‘그(카프카)는 인간의 행위를 결정짓는 내적 동기가 어떤 것이냐를 묻지 않습니다. 그가 제기하는 물음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그의 물음은, 내면적 동기가 더 이상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될 만큼 외부적 결정이 압도적인 것이 되어 버린 세계에서 아직 인간에게 남아 있는 가능성이란 어떤 것이냐는 거죠’ 소설의 기술 저자 밀란 쿤데라 출판 민음사 발매 2013.01.25. 너무나 압도적인 외부 현실에 짓눌린 인간의 무력함을 그리는 카프카의 소설은 ...
불면의 밤을 보냈다. 도무지 내릴 줄 모르던 아이의 열로 밤을 지새운 며칠이었다. 첫눈이 내린 날 아이는 맨손으로 눈싸움을 했고 그날 밤 급한 준비물이 있다며 밖에 나갔다가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나가기 전, 나는 아이를 말렸다. 이 늦은 시간에 굳이 나가야 하느냐고. 꼭 필요한 준비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이를 말리고 싶었다. 그런 날이 있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예감에 사로잡히는 날. 그날 새벽부터 아이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39도 고열이 지속 되었다. 동네 병원은 아침부터 환자가 많아 대기 시간이 길었다. 겨우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았다. 수액을 맞으니 조금 기운을 차린 아이는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준비물 전달하러 갔다 올게. 조금 생기가 도는 아이의 모습에 그럼 그렇게 하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때 아이를 말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 다녀오더니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고열과 함께 장염 증상까지 시작되었다. 온몸에 수분이 다 빠진 것처럼 아이는 메말랐고 평소에 말대답을 꼬박하던 아이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나흘 동안 4kg이 빠졌다. 인생 참 힘드네. 노래 후렴구처럼 아이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었다. 너무 자주 들으면 무감각해지는지, 나는 아이의 말을 그냥 흘려보냈다. 힘들다고 느끼는 기준이 큰 아이와 달라서였을까. 큰 아이는 좀처럼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분명히 힘들 것 ...
어제 오후 창밖에는 춤추듯 흩날리는 은행잎 오늘 아침 창밖에는 고요히 내린 눈 계절의 한페이지가 넘어간 느낌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출판 민음사 발매 2018.06.20.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첫 문장이다. 작가는 니체의 영원회귀를 도입부에 쓰면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대체 소설과 어떤 연관이 있기에 생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무거운 사상을 가져왔을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뿐이라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인생이 그림자같고 덧없다는 것. 쿤데라는 영윈회귀 사상을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삼아 삶이란 과연 가벼운지 아니면 무거운지, 얼마만큼의 무게를 갖는지(혹은 가져야 하는지) 묻는다. 쿤데라의 시도가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밀란 쿤데라가 그린 표지 그림 삶이 가볍다면 굳이 심각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einmal ist keinmal. 한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는 독일어 ...
주말에 가을비가 내리면서 날이 추워지더니 성큼 겨울에 들어선 느낌이다. 겨울 외투를 꺼내고 양말을 신는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내 마음에도 바람이 분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자각이 번지면서 발걸음에 괜히 힘이 들어간다.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진입하는데, 내 마음은 아직도 가을 언저리에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바깥 계절과 나는 엇박자가 난다. 이럴 때, 마음을 다독여줄 무언가가 간절하다. 주말 내내 끼고 읽은 책이 있다. 중문학자 이지운님의 『시절한시』. 부제는 ‘흔들리는 삶에 건네는 서른 여덟 편의 한시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도연명, 두보, 백거이...중국 시인들의 아득하고 멀게만 보인 한시가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한자로 쓰인 시를 알기 쉽게 번역하고 시인의 삶과 작품 배경을 친절히 설명한 덕분이다. 무엇보다 한시를 고대 유품처럼 그저 멀리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 지어 읽을 수 있는지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감상을 담았다. 한시 초보 독자를 안내하는 저자의 손길이 곡진하여 읽고 나면 마음의 온도가 올라간다. 시절한시 저자 이지운 출판 유노라이프 발매 2024.11.21. 고전 시 연구자로 이십여 년 동안 한시를 가르친 저자는 ‘덤덤한 연구 텍스트였던 한시가 돌연 생생하게 숨 쉬더니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중병에 걸려 오랜 치료를 받...
여름 내내 들고다닌 에코백이 있다. 올해 나의 최애 가방이 되어준 카렌 블릭센 에코백.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필명으로 더 알려진 카렌 블릭센의 얼굴이 앞면에, 작가의 이름이 뒷면에 프린트된 가방이다. 얼룩이 묻어 세탁기에 넣고 한 번 돌렸더니 사이즈가 줄어버렸다. 프린트된 그림도 흐릿해졌다. 아끼는 마음에 깨끗하게 쓰려 했다가 오히려 원래 모습이 희미해졌다는 슬픈 이야기. 흐릿해지기 전 무더웠던 올해 여름, 엄마는 아빠와 북유럽으로 칠순 기념 여행을 다녀오셨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세 나라를 여행하는 사진이 가족 단톡방에 계속 올라왔다. 나는 땀이 나서 얇은 옷을 입고 있는데 사진 속 엄마는 빨강 털모자에 빨강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그곳의 추위가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먼 나라 이야기였다. 더위에 지친 채 사진을 물끄러미 보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카렌 블릭센 박물관. 카렌 블렉센 박물관??? 거기도 갔어요??? 덴마크 여행 일정을 모르고 있던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알고 보니 카렌 블렉센 박물관은 덴마크 코펜하겐 외곽에 있는 작은 도시로 작가의 출생지, 롱스테드룬트에 있었다. 엄마, 디네센 기념품 하나 사주세요...... 엄청 힘들게 갔어 ㅎ 이미 다녀왔으니 살 수는 없고 에코백 산 게 있어서 그것 줄게 그렇게 카렌 블릭센(이자크 디네센) 에코백이 나에게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덴마크 코펜하겐 외곽에 ...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밀란 쿤데라의 작가 소개다. 단 두 줄. 2023년 그가 타계한 후 한 문장이 추가되었다. ‘2023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순하고 압축적인 소개를 조금 더 늘려본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아주의 브르노에서 1929년에 태어났다. 1975년을 기점으로 그의 아흔넷 인생이 체코에서의 삶(46년), 프랑스에서의 삶(48년) 절반으로 나뉜다. 정치탄압으로 프랑스로 망명 후 국적을 취득하고 프랑스를 문학적 조국으로 여긴 쿤데라는 2019년 체코 국적을 회복하나 귀환하지 않고 파리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고향 브르노로 돌아간다. 브르노에 쿤데라 묘지와 그가 기증한 저서로 채워진 쿤데라 도서관이 있다. 체코의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브르노에 있는 밀란 쿤데라 도서관. 문학 독자에게 프라하가 카프카의 도시라면 브르노는 쿤데라의 도시. 쿤데라가 1967년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 『농담』의 무대가 모라비아, 그의 고향이다. 소설은 주인공 루드비크의 귀향으로 시작한다. 고향을 마주한 그의 마음은 어수선하다.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 기억이 떠올라서다. 15년 전 스물 두 살 나이, 루드비크는 당에만 충실한 여자친구가 못마땅해서 ‘장난삼아’ 엽서 한 장을 보낸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의 엽서 농담은 농담이 아닌...
가을빛이 좋은 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마음 가는 대로 가도 좋지만, 든든한 지도가 있으면 더 좋겠다. 어디로 가야 좋을지 헤매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지도가. 지도의 미덕은 단순화다. 복잡한 길을 간결한 선으로 표시하고 장소도 간단한 기호로 표기한다. 나의 목적지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고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여기 지도의 미덕을 갖춘 책이 있다. 이른바 인문학 책 지도, 여르미님의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이다.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 저자 여르미 출판 센시오 발매 2024.10.14. ‘바닷가 옆 시골마을에서 매일 읽고 쓰며 살아가는 책 탐닉자, 책벌레, 그리고 치과의사. 네이버에서 누적 조회수 600만, 3년째 도서 인플루언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여르미 도서관’의 도서관장 여르미님은 이 책을 이런 분들에게 권한다. ‘마흔을 앞두고 막연하게 불안하거나 혹은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 공자 선생님은 마흔을 일컬어 주변에 미혹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잘 절제할 수 있는 ‘불혹’이라고 했지만 어디 그런가. 흔들리니까 마흔인지도. 동시에 마흔은 상징적인 나이일 뿐 막연하게 불안하거나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책이다. 인문학 필독서 50권이 불안을 잠재우고 새로운 삶에 대한 방향을 알려줄 수 있을까? 누구보다 저자가 인문학 책을 통해 인생에 대한 수 많은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