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채널 최신 피드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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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주의자_몽고반점_나무불꽃

    2007년에 출간된 『채식주의자』 개정판이 2022년에 나오면서 표지가 바뀌고 작가의 말이 추가되었다. (허윤진 평론가의 해설 ‘열정은 수난이다’ 글이 개정판에서는 빠졌다.) 각각 다른 지면에 발표되었던 연작 소설 「몽고 반점」, 「나무 불꽃」을 ‘채식주의자’의 장편소설로 부를 수 있도록 한 권으로 묶었다는 안도감이 초판 작가의 말에서 느껴진다. 이후, 2016년에 『채식주의자』가 국제 맨부커상을 수상하고 크게 주목을 받면서 작가는 다양한 독자 반응을 경험한다. 뜨겁고도 날카로운 오해와 관심들을. 고통스럽게 쓴 작품에 쏟아지는 날카로운 관심들을 지켜보는 작가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유해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하는 것이 책을 쓴 사람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는 이 소설을 껴안을 힘이 있다. 여전히 생생한 고통과 질문으로 가득 찬 이 책을’ 채식주의자 저자 한강 출판 창비 발매 2007.10.30. 채식주의자 저자 한강 출판 창비 발매 2022.03.28. "나는 인간만은 식물이라고 생각한다" 2016년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때를 기억한다. 기이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산문집을 제외하고 내가 읽은 한강의 첫 소설이어서 소설의 분위기와 인물에 공감보다는 질문이 따라왔다. 작가의 말대로 채식주의자는 고통과 질문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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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리빙디자인페어_파사드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초대권을 준다고 하길래 덥석 받았다. 날이 조금씩 풀리는 요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시기에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공간에 관한 모든 것을 전시하는 생활디자인박람회. 공간에 변화를 주고 싶은 바람이 마치 봄바람인양 포스터가 화사하다. 삼성동 코엑스 1층과 3층 홀에 하루에 다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부스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1층에서 먼저 입장권 팔찌를 받고 응원하고 싶은 업체가 3층에 있었으므로 나는 3층 D홀로 향했다. D홀에는 인테리어 관련한 브랜드가 모여있다. 3년 전 이사하면서 도배한 벽지가 신한벽지. 당시 만족스럽게 도배를 했던 곳이다. 신한벽지는 새로운 라인 ‘파사드’를 출시하여 부스 전면에 배치하고 있었다. 벽지가 집의 인상을 좌우한다고 하여 건물의 정면이라는 뜻의 ‘파사드’. 무엇부터 봐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직원분들이 친절히 설명을 해주고 벽에 전시된 벽지 샘플을 가져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샘플벽지가 넉넉히 준비되어 있어 부담없이 슥슥 뽑을 수 있다. 벽지 제품명이 화가 이름이다. 샤갈, 고야, 라파엘로... 샤갈의 그림을 벽에 걸 수 없지만 샤갈 벽지는 가능하다! 작은 샘플 만으로는 전체적인 느낌을 알 수 없으므로 포토월처럼 설치된 가벽에서 벽지의 느낌을 살펴볼 수 있다. 일반 벽지보다 두꺼워 내구성이 좋다고 한다. 나와 같이 갔던 인테리어 일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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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보라 스미스 번역_채식주의자 영문판

    <한강읽기> 를 시작하면서 같이 읽는 분들에게 질문을 드렸다. '내가 읽은 한강 작가의 첫 작품은?' 열여섯 분 중에 여덟 분이 『채식주의자』라고 답했다. (두번째 많은 표를 받은 작품은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가 2016년에 국제 (맨)부커상을 수상 하면서 한강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졌다. (실제로 읽혔는지와는 별개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 Han kang ' 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첫 작품이니 대부분의 외국독자들이 만난 한강의 첫 책도 『채식주의자』인셈이다. 『채식주의자』는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첫 번역작품 (번역 데뷔작) 이다. 영국에서 태어난 데보라 스미스는 캐임브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번역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 중국, 일본에 비해 한국어를 전문으로 하는 번역가가 없다는 것을 알고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이후 런던대학에서 한국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는데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시점이 이 무렵이라고 하니 (2012년에 원고를 받고 2013년에 번역 완성) 한국어를 배운지 3년 정도 만에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것이다 ! 그의 ' 첫' 번역 작품이 2016년에 국제 맨부커상을 수상하고 첫 번역으로 인연을 맺은 작가가 2024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데보라 스미스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숨은 조력자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외국 독자들은 번역가가 옮긴 문장을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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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전 오늘]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다시,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 저자 줄리아 크리스테바 출판 늘봄 발매 2022.07.30. 쥘리아 크리스테바 저자 존 레흐트,마리아 마르가로니 출판 책세상 발매 2023.01.10. "사랑이란 상처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지나간 사랑에 대해 말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상처 때문이다." 2019.2.23. 6년 전 오늘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1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는 1924년에 처음 만났다. 열여덟 살의 독일계 유대인 아렌트가 마부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하이데거가 강의하는 철학과목을 수강했을 때였다. 두 사람의 연인관계는 이후 5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11p) '연인관계’라는 말은 가십성으로 흘리기에 딱 좋은 표현이다. 스승과 제자로... 시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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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 내시경 검사

    생애 첫 대장 내시경 검사를 앞두고 김훈의 단편소설 「대장 내시경 검사」를 읽었다. 문학동네 2021년 여름호에 발표되었던 소설로 이듬해 나온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에 실려있다. ‘대장내시경 검사’라는 군더더기 없고 건조한 제목이 ‘김훈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김훈적’이란, 미사여구를 비롯한 장식을 최소화하고 살을 다 발라내 뼈만 남은 문장이다. 꾸밈없고 사실적인, 판단을 배제한 제목 ‘대장 내시경 검사’는 그 자체만으로 힘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초음파 화면으로 보는 내 안의 여러 기관들이 낯설면서도 어떤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것처럼. 문학동네 107호 - 2021.여름 저자 문학동네 편집부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1.06.08. 저만치 혼자서 저자 김훈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2.06.01. 소설은 대장 내시경 검사 과정 자체보다 검사를 앞두고 남자가 겪는 일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칠십 세 이상의 고령자가 내시경 검사를 수면으로 하려면 보호자가 필요한데 남자 화자는 보호자가 없어서 난감하다. 두 아이로 바쁜 딸에게 부탁이야 할 수 있겠지만 어려울 테고, 옛 직장 동료나 동창생에게 부탁하기도 어색하고 오 년 전에 이혼한 전처를 부르기도 마땅하지 않다. 곤란해하던 중, 요즘에는 ‘보호자 알바’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병원 측의 얘기를 듣고 남자는 집을 청소해 주는 도우미 여자에게 ‘보호자’ 역할을 부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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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서울

    "서울에도 예쁜 곳이 많은데 잘 안 알려진 것 같아요" 뉴욕에서 20년간 살았던 H는 서울이 뉴욕보다 살기가 더 좋다고 말했다. 이유는 안전, 청결, 편리. 카페에서 잠시 자리를 비워도 가방이 없어지지 않는 안전, 아파트에 쥐가 출몰하지 않는 청결, 포장 이사를 할 수 있는 편리가 (2년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일일이 손포장했다고) 서울에는 있었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 상상초월 뉴욕의 물가(팁과 세금!) 에 비하면 서울은 살만한 곳이라고. 그런데 H야. 나는 서울에서만 살아서 그걸 몰라. 얼마나 편리하고 안전한 곳인지를. 뉴욕에서 살아봐야 알 수 있을까 ? ㅎ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타임지, 뉴욕 타임스에서 일했던 H는 지금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H를 향한 나의 응원에는 변함이 없다. 중학교 방송반 시절 선후배로 함께했던 그 때부터. H가 말하는 서울의 문화 유산을 모르지 않는다. 600년 역사의 서울. 서울 종로에 있는 '이상의 집', 윤동주 문학관을 비롯한 문학 장소들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박완서의 『나목』 속 그때 그 시절 서울도 있다. 서울 문학 기행 저자 방민호 출판 북다 발매 2024.12.30. 나목 저자 박완서 출판 세계사 발매 2012.01.22. 결국엔 이야기인 것 같아. 밋밋한 장소가 특별해 보이는 것은 그 장소에 스며든 이야기가 있어서 라는 것을. 장소가 품은 이야기가 그곳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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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의 두 번째 장편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은 이전 작품과 달라졌다는 인상을 준다. 『여수의 사랑』과 『검은 사슴』이 흑백 이미지라면 『그대의 차가운 손』은 무채색에서 벗어나 채도와 명도가 올라간 느낌이랄까. 상실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인물들의 쓸쓸함의 정서가 앞의 두 작품에 있다면, (『검은 사슴』은 『여수의 사랑』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 『그대의 차가운 손』은 거기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작가의 의도된 변화인지, 아니면 변화의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1998년에 출간된 『검은 사슴』과 2002년에 출간된 『그대의 차가운 손』 사이, 작가는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다. 2000년 여름, 아들 효를 낳았는데 이듬해 2월 『그대의 차가운 손』 집필에 착수한다. 출산 전후로 작가는 병원에 입원할 만큼 많이 아팠다고 하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쉬지 않고 썼다. 멈추지 않고 쓰는 원동력이 무얼까. 작가에게 글쓰기는 밥 같은 것.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죽을 각오로 쓴다고 작가는 말했던가. 그의 타협 없는 집요함을 읽는다. ‘아프면서 쓰고 쓰면서 아팠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대의 차가운 손 저자 한강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02.01.18. 아팠던 경험이 『그대의 차가운 손』에 드러난다. 작가 H인 ‘나’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작가 한강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우연히 보게 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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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_눈_이창훈_유빙

    “점심 먹고 갤러리 갈래요?” 갤러리는 점심 장소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10년 가까이 만난 엄마들이지만, 을지로에서 먹는 점심은 처음이라 그냥 돌아가면 뭔가 헛헛했을 것이다. 그림이 공통의 관심사라는 점도 작용했고 무엇보다 아는 분의 갤러리라는 말에 솔깃했다. 마침 전시 오프닝 날이었다.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회색빛 그림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유빙. 이창훈. 작가 이름이 낯설었지만, 관장님의 친절한 설명에는 작가에 대한 무한 애정과 신뢰가 담겨 있어 호기심이 일었다. ‘유빙’이라는 이름 아래 전시된 작품들 이름이 공교롭게도 ‘한강’이었다. 한강 읽기를 하는 요즘이어서 그런가. 한강 작가를 바로 떠올렸으나 작가 한강이 아니라 유유히 흐르는 한강. <한강> 사진 연작은 사계절 동안 한강변에서 길은 물을 수석 모양의 틀에 담아 얼음으로 만들어 수동 필름 카메라로 담은 작품이다. 수석 모양틀에서 나온 얼음이 비슷해 보이지만 미세하게 다르고 사진이 구현하는 느낌도 달랐다. 같은 강물인데 계절을 달리하여 물을 담는다는 발상은 마치 ‘시간’을 형상화하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형상화해서 보여주는 것은 가능하다는 시도. 작품은 그 시도의 결과물이다. 한쪽 벽면에는 제작과정이 담긴 영상이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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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집중 왕

    신재섭 시인의 새 동시집 『왕집중 왕』. 양장본으로 된 표지에는 장난기 가득한 소년과 미소짓는 소녀가 그려져 있다. 색깔과 크기를 달리하여 강조한 '왕'에서 리듬감이 왕느껴진다. 이른 봄소식처럼 나온 동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동시집이다. 왕집중 왕 저자 신재섭 출판 초록달팽이 발매 2025.02.01. 시집을 열면 가장 먼저 나오는 시인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시 쓰는 시인(詩人)은 시 라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시인(市人)이다. 이 말은 시로 살아간다라는 말로도 들린다. 시 쓰는 일과 시로 사는 일이 다르지 않다는 것. 시인이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내가 하는 일은 (식물에) 물을 주고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눈 맞추며 고맙다, 말하기. 황금빛으로 물든 산길을 걸을 땐 말과 생각을 내려놓는다. 숲을 걸으며 발자국이 쓰는 시를 가만히 바라보기’ 가만히 바라본 시를 글로 옮기는 일 또한 시인이 하는 일이겠다. 눈을 맞추며 고맙다고 말하려면 잠시 멈추어야 한다. 온 감각을 열고 더딘 걸음으로 걸으며 바라본다. 신재섭 시인의 시쓰기 비법이랄까. 시집의 제목처럼 ‘왕집중’하여 마음을 다해서 볼 때 잘 보이지 않는, 낮고 여린 것이 보인다. 은지 이모네 공부방에 새 아이가 왔다 신발 벗을 때부터 알아봤다 왕집중 할 애라는 걸 가지런히 신 벗는 아이는 그 애와 나뿐이다 가만 보면 나보다 더 흐트러짐이 없다 역시 말하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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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첫 장편소설_검은 사슴

    『검은 사슴』은 1998년에 출간된 한강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등단한 지 일 년 만에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출간한 작가는 병행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장편 쓰기에 바로 돌입한다. 제주도 세화리에 사글 셋방을 얻어 『검은 사슴』의 서두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계획한 만큼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오지만, 3년이 지난 후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으로 완성한다. 두툼한 분량에서부터 느껴진다. 무언가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단단한 마음이. 그 마음에 화답하듯 『검은 사슴』이 받은 ‘한 젊은 마이스터의 탄생을 예감케 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서영채)이라는 찬사는 마치 한강 작가를 향한 오래된 예언 같다. 검은 사슴 저자 한강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7.12.20. 마이스터의 첫 장편 『검은 사슴』은 어떤 소설인가. 잡지사 기자 인영은 명윤과 함께 평생 탄광 사진을 찍는 장종욱(이하 “장”)이라는 인물을 취재하기 위해 강원도로 떠난다. 취재는 명분일뿐, 진짜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의선의 행방을 찾는 데 있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도시의 인구가 반으로 줄어든 폐광촌. 과거 번영했던 탄광 도시에는 쓸쓸함만이 남아있다. 겨울의 황량함을 헤치며 인영과 명윤은 의선의 희미한 자취를 따라간다. 쉽게 잡히지 않는 의선의 행방을 쫓는 길은 점점 더 어둠으로 들어간다. 사진작가 장이 사진을 찍기 위해 탄광의 깊은 어둠으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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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위의 발자국

    밤사이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얼마나 눈이 쌓였는지 보려 창문 커튼을 열었는데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누군가 밤사이 발자국으로 글씨를 써놓은 것. 꾹꾹 하나하나 밟으며 글씨를 썼을 발자국의 주인이 궁금했다. 아침에 발자국 글씨를 보고 활짝 환해질 누군가의 표정을 상상하며 썼을까? 거기엔 이름이 없었다. 메시지의 수신자가 생략되어 있었다. 글씨 주위로 찍힌 동그라미가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에 비밀스런 암호일지도 모르겠으나, 그와 무관한 제 3 자로서 본 글씨는 그 자체로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사적이고 은밀한 메시지가 아니라 공공연하게 드러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선명하게 찍힌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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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기억한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집에서 매트를 깔고 설렁설렁 스트레칭만 했던 나의 몸을 이끌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두 다리를 움직이고 두 팔을 움직이면서 러닝머신 위에서 빠르게 걸었다. 움직이고 나니 바닥에 고여있던 기운이 올라오는 기분. 4kg 아령을 두 손에 들고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투명의자에 앉는듯한 느낌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스쿼트를 했다. 근육을 자극하려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때까지 해야 하는데 몇 번 반복하다가 적당히 했다는 느낌에서 그쳤다. 그것만으로도 반짝 개운해졌으니, 나의 헐거운 운동은 내 몸을 바꾸는 게 아니라 기분을 바꾸는 건가? 나의 기분은 몸 상태에 따라 달라지니, 몸 관리가 기분 관리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아프지 않은 몸, 바이러스에 쉽게 공격당하지 않는 몸은 어떤 몸일까, 하는 호기심에 읽게 된 책, 빌 브라이슨의 『바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쓴 저자는 몸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말한다. 우리 몸에 대해 해부학적으로 접근하지만 어렵지 않다. 빌 브라이슨이 썼으니까. 그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몸의 안팎 구석구석을 살핀다. 56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말하지만, 사람의 몸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바디: 우리 몸 안내서 저자 빌 브라이슨 출판 까치 발매 2020.01.10. 가장 흔한 바이러스와의 불쾌한 만남은 감기이다. 몸이 으슬으슬해지면 감기에 걸리기 더 쉽다는 것은 누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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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읽기_여수의 사랑

    한강 작가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에는 1994년 등단작 「붉은 닻」을 포함하여 단편 여섯 편이 살려 있다. 내가 읽은 판본은 이정진 작가의 사진이 표지로 실린 2018년 개정판이다. 1995년에 나온 초판과 차이가 있는데 개정판에는 단편 한 편(「저녁빛」)이 빠졌고 단편의 배열 순서가 바뀌었다. 표제작 「여수의 사랑」이 맨 앞에, 「붉은 닻」이 맨 뒤에 실린 것은 초판과 개정판이 동일하다. 2024년 10월 이후에 나오는 『여수의 사랑』에는 띠지가 추가되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 여수의 사랑 저자 한강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18.11.09.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30년 전에 쓴 첫 소설집이 역주행하듯이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거슬러 올라가 읽기로 했다. 출간 연도순으로 여덟 작품을 읽는 이번 <한강 읽기>는 한국 작가의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동시에 한강 작가의 작품 여정을 따라가 보는 일정(1월부터 4월까지)이다. (마무리로 제주 오프모임을 계획 중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외국 서점에서도 한강 작가의 주요작(『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이 진열된 풍경을 보는 일이 신기하고도 기쁘다. 반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는데 『여수의 사랑』도 그중 하나.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전작 읽기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국내 독자와 외국 독자의 독서경험은 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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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 책, 읽는 책, 읽을 책

    “졸업은 시작의 다른 말입니다. 꿈을 품고 나아가세요. 한번 실패는 끝이 아닙니다. 계속 나아가세요. 꾸준히. 그러면 원하는 곳에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단발머리 교장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최강한파를 기록한 엊그제 금요일에 아이의 졸업식이 있었다. 체육관 강당에서 진행된 졸업식이 끝나자 모두 바깥으로 나가야 했고 학교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칼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사진을 찍고 찍어주고...찍힌 사진을 보니 얼굴이 일그러진 듯 얼어있다. 졸업식 날 이후로 온 가족의 감기가 시작되었고 호되게 앓는 중이다. 어서 독감으로부터 졸업해야 한다! 올케의 선물. 화사한 존재감을 뽐낸 꽃 풍선. 6학년 졸업생 아이는 피카츄를 부끄러워해서 피카츄를 든 나와 사진을 찍으려하지 않았다... 한때 아이에게 열렬히 사랑받았던 피카츄인데.. 그럼에도 읽을 책은 쌓이는 중이다. 읽는 책이 읽을 책을 부르고 읽은 책은 다시 읽을 책이 된다. 1인 시사 미디어로 활동하고 있는 조현수님의 책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는 것들』은 열한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매개로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불평등을 말한다. 가령, <더글로리>에 나타난 학교폭력과 가정폭력, <애프터양>을 통해 생각해보는 다양한 가족의 가능성, <오징어게임>으로 본 능력주의. 대중에게 익숙한 영화와 드라마는 사회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그 안에서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인식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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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첫 주

    1. 설 차례를 지낸다. 새해 첫날은 일 년에 한 번 가족 모두가 한복을 입는 날이어서 미리 한복 상자를 꺼내 한복을 준비한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 비슷해 보이지만 한복을 입히면 일 년 사이에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된다. 기장과 소매가 눈에 띄게 짧아져 한복을 수선하고 입을 수 있는 모양새로 준비하고 나면 한해의 끝에 다다르고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새벽에 한복 머리를 도와주러 출장 미용사가 오신다. 청각이 불편한 미용사 분은 내 입모양을 살핀다. 그래도 내 말이 전달 안되면 나는 핸드폰으로 내용을 쓴다. 새해 새벽에 오셔서 온가족을 도와주시는 귀한 분 덕분에 무탈히 준비를 마치고 늦지않게 집을 나선다. 한바탕 난리법석이지만 이러한 난리 법석을 해야 비로소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구체적 실감을 갖게 되었으니, 이것은 결혼 후에 갖게 된 변화다. 좋든 싫든 매년 반복되는 의식은 몸에도 새겨지는지 어느새 루틴이 되었다. 비슷한 풍경의 반복이지만 졸린 눈을 비비면서 왜 일찍 일어나야 하는지 몰랐던 아이들이 이제는 큼지막한 복주머니를 손에 들고 알아서 세배할 준비(세뱃돈 받을 준비)를 할 만큼 자랐다. 아무 의미 없는 반복이 아니었던 것이다. 의미 없는 반복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충분한 시간이 쌓여야 알게 된다. 반복해야만 알게 되는 변화가 있다. 변화를 체감하기까지 시간은 더디고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아서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요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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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올해의 책과 책을 둘러싼것들

    한강의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에서 제목을 빌려 적는다. 이 책을 읽고 싶지만 절판이라 읽을 수가 없다. 온라인 서점에 올라온 중고책 값이 무려 12만원이라 책이 다시 나오기만을 막연히 기다리고 있다. 사랑을 둘러싼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이 사랑을 고통스럽게 하지, 사랑 자체는 고통이 아니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온 책 제목이다. 이 제목을 빌린 이유는 올해의 책과 책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저자 한강 출판 열림원 발매 2009.12.15. 먼저 올해의 사건이 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한강의 작품을 다시 읽고 새로 읽고 함께 읽는 계기가 되었다. 노벨문학상 작품의 원서를 궁금해하곤 했는데 이제 원서로 읽을 수 있게 되니, 번역서가 궁금해졌다. 『소년이 온다』 영국판 표지에는 한강 작가의 손글씨가 실려있다. 한글 제목을 병기한 번역서들. 한글 표지가 세계문학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제주어가 나오는데 제주 방언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주문 We Do Not Part 한강 작가『작별하지 않는다』영문판 (미국판) 저자 한강 출판 Hogarth Press 발매 미등록 한국어로 쓰인 작품을 한국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한국근대문학 연구자 입장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읽는다. 한국문학의 경사를 누구보다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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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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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겨울_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블로그에서 내가 읽은 한강 작가의 첫 책을 찾으니,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라고 나온다. 2015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소설 보다 읽기가 수월하리라 생각하고 빌렸을 거다. 노래들에 대한 기억을 담은 산문집. 작가가 만들고 부른 노래를 시디로 만들어 부록으로 넣었다는 그 책은 현재 절판이다. 나와 한강 작가의 첫 (책) 만남은 '노래'인 셈이다. 그때 작가의 가만가만한 노래를 듣고 산뜻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같다'라고 말한 이유는 기억이 흐릿해서) 이렇게도 노래를 부를 수 있구나. 고요한 연못의 물결 같은 목소리. 숨소리와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노래의 일부가 되어버린 노래. 노래라고 하기엔 어딘가 심심한데 심심함이 자아내는 묘한 정직함이 베어 있는 노래.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눈물나는 그런 노래. 무엇보다 나는 작가가 용감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래를 잘 부른다 못 부른다의 테두리를 벗어나, 그저 자신이 만든 노래를 직접 불러 표현하는 작가의 모습이 용기로 보였던 것이다. 노래가 아닌 시를 부르는 느낌이랄까. 시가 노래이긴 하지만. 소설가가 아닌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작가에게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쓰는 일이 시 쓰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에 실린 '휠체어 댄스'가 시집에도 실려있다. 2013년에 나온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는 여덟 권의 책을 출간한 등단 20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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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기록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요 . . . '모던하트' 한겨레문학상 작가 정아은 별세 2013년 소설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정아은(49)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19일 출판계에 따르면 정 작가는 지난 17일 저녁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우리 마름모 출판사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 naver.me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자 정아은 출판 마름모 발매 2023.10.27.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저자 정아은 출판 마름모 발매 2022.05.31.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저자 정아은 출판 천년의상상 발매 2020.05.18. 엄마의 독서 저자 정아은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18.01.22. 잠실동 사람들 저자 정아은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15.02.02. 모던하트 저자 정아은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13.07.12. '김동률과 전람회' 故 서동욱, 한 달 전에도 SNS 활동했는데…갑작스런 비보 [종합] 한눈에 보는 엔터 소식 naver.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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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기록
    AI, 결국 인간이 써야 한다_'오십'에 시작하는 AI인문학

    ‘AI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 올해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AI의 급속한 발전이 가져올 미래를 우려했다. ‘AI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 교수는 인공지능 기초연구를 확립했다는 공로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첫 노벨상을 수상 (존 호필드 교수와 공동 수상) 했다. 그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우리 자신보다 더 지능적인 디지털 존재를 만들 때 인간은 실존적 위협을 겪을 수도 있다고. 이것은 더 이상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AI의 지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AI, 결국 인간이 써야 한다 저자 이석현 출판 아이콕스 발매 2024.12.20. 책 『AI, 결국 인간이 써야 한다』에서 ‘AI가 주체가 아니라 인간이 주체가 되어 AI를 리드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AI의 통제권을 인간이 가져야 한다는 ‘AI의 아버지’의 주장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제목에서 ‘결국’이 강조하는 대상은 AI가 아닌 인간이다. 인간이 AI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작가로서 30년 넘게 이중생활’을 하는 저자는 ‘AI를 쓰면 쓸수록, 인문학적 내공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며 ‘기본은 결국 읽고 쓰고 말하기’라고 한다. ‘AI를 실무에서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아이덴티티와 ‘문학 소년’ 인문학적 아이덴티를 동시에 장착한 저자는 둘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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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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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노벨문학상 시상식_ 수상 소감

    한강 노벨문학상 시상식은 밤 12시라고 했다. 12월 10일 밤12시를 그 전날 밤 12시인줄 착각하고 기다릴 만큼 내 마음은 이미 저만큼 앞서가 있었다.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시아 첫 여성 수상자인 한강 작가 수상의 벅찬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새벽에 깨어 축구경기를 보는 심정이 이런 건가? 다음날 나오는 뉴스로 보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 알았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생생한 현장을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기꺼이 깨어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2024 Nobel Prize award ceremony Join us live in Stockholm for the Nobel Prize award ceremony which takes place at the Stockholm Concert Hall, Sweden, on 10 December – the anniversary of Alf... www.youtube.com 한강 작가는 어떤 의상을 입고 나올까? 시상식 소감으로 어떤 말을 할까? 얼마 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들뜸인지. 어두운 시절에 한줄기 금빛 소식을 전해준 작가에게 고마웠다. 스웨덴 스톡홀름 현지 시각 오후 4시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은 한 시간 남짓 진행되었다. 짙은 블루 카펫에 새겨진 금빛 글씨 The Nobel Prize를 중심으로 노벨상 수상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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