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서 내가 읽은 한강 작가의 첫 책을 찾으니,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라고 나온다. 2015년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소설 보다 읽기가 수월하리라 생각하고 빌렸을 거다. 노래들에 대한 기억을 담은 산문집. 작가가 만들고 부른 노래를 시디로 만들어 부록으로 넣었다는 그 책은 현재 절판이다. 나와 한강 작가의 첫 (책) 만남은 '노래'인 셈이다. 그때 작가의 가만가만한 노래를 듣고 산뜻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같다'라고 말한 이유는 기억이 흐릿해서) 이렇게도 노래를 부를 수 있구나. 고요한 연못의 물결 같은 목소리. 숨소리와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노래의 일부가 되어버린 노래. 노래라고 하기엔 어딘가 심심한데 심심함이 자아내는 묘한 정직함이 베어 있는 노래.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눈물나는 그런 노래. 무엇보다 나는 작가가 용감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래를 잘 부른다 못 부른다의 테두리를 벗어나, 그저 자신이 만든 노래를 직접 불러 표현하는 작가의 모습이 용기로 보였던 것이다. 노래가 아닌 시를 부르는 느낌이랄까. 시가 노래이긴 하지만. 소설가가 아닌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작가에게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쓰는 일이 시 쓰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에 실린 '휠체어 댄스'가 시집에도 실려있다. 2013년에 나온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는 여덟 권의 책을 출간한 등단 20년차...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요 . . . '모던하트' 한겨레문학상 작가 정아은 별세 2013년 소설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정아은(49)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19일 출판계에 따르면 정 작가는 지난 17일 저녁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우리 마름모 출판사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 naver.me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자 정아은 출판 마름모 발매 2023.10.27.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저자 정아은 출판 마름모 발매 2022.05.31.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저자 정아은 출판 천년의상상 발매 2020.05.18. 엄마의 독서 저자 정아은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18.01.22. 잠실동 사람들 저자 정아은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15.02.02. 모던하트 저자 정아은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13.07.12. '김동률과 전람회' 故 서동욱, 한 달 전에도 SNS 활동했는데…갑작스런 비보 [종합] 한눈에 보는 엔터 소식 naver.me
‘AI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 올해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AI의 급속한 발전이 가져올 미래를 우려했다. ‘AI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 교수는 인공지능 기초연구를 확립했다는 공로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첫 노벨상을 수상 (존 호필드 교수와 공동 수상) 했다. 그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우리 자신보다 더 지능적인 디지털 존재를 만들 때 인간은 실존적 위협을 겪을 수도 있다고. 이것은 더 이상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AI의 지배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AI, 결국 인간이 써야 한다 저자 이석현 출판 아이콕스 발매 2024.12.20. 책 『AI, 결국 인간이 써야 한다』에서 ‘AI가 주체가 아니라 인간이 주체가 되어 AI를 리드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AI의 통제권을 인간이 가져야 한다는 ‘AI의 아버지’의 주장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제목에서 ‘결국’이 강조하는 대상은 AI가 아닌 인간이다. 인간이 AI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작가로서 30년 넘게 이중생활’을 하는 저자는 ‘AI를 쓰면 쓸수록, 인문학적 내공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며 ‘기본은 결국 읽고 쓰고 말하기’라고 한다. ‘AI를 실무에서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아이덴티티와 ‘문학 소년’ 인문학적 아이덴티를 동시에 장착한 저자는 둘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A...
한강 노벨문학상 시상식은 밤 12시라고 했다. 12월 10일 밤12시를 그 전날 밤 12시인줄 착각하고 기다릴 만큼 내 마음은 이미 저만큼 앞서가 있었다.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시아 첫 여성 수상자인 한강 작가 수상의 벅찬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새벽에 깨어 축구경기를 보는 심정이 이런 건가? 다음날 나오는 뉴스로 보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 알았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생생한 현장을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기꺼이 깨어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2024 Nobel Prize award ceremony Join us live in Stockholm for the Nobel Prize award ceremony which takes place at the Stockholm Concert Hall, Sweden, on 10 December – the anniversary of Alf... www.youtube.com 한강 작가는 어떤 의상을 입고 나올까? 시상식 소감으로 어떤 말을 할까? 얼마 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들뜸인지. 어두운 시절에 한줄기 금빛 소식을 전해준 작가에게 고마웠다. 스웨덴 스톡홀름 현지 시각 오후 4시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은 한 시간 남짓 진행되었다. 짙은 블루 카펫에 새겨진 금빛 글씨 The Nobel Prize를 중심으로 노벨상 수상자들과...
『불멸』은 밀란 쿤데라 읽기의 마지막 산이었다. 높은 산(두꺼운 책)을 오르는데 필요한 것은 근력 (독서력)이나 지구력뿐 아니라, 적정한 환경도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불멸』 읽기는 새삼스럽게 확인시켜주었다.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모아야 하는 책 읽기란 얼마나 고단한가. 그런데 (단지 읽기 여정을 마쳐야 한다는 이유 말고) 왜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 한국은 극단적인 혼란에 서 있다. 문학의 역할은 △문학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그런 과정에서 자기 내면에 깊게 파고 들어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속 그런 행위를 반복하면서 내적인 힘이 생긴다.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결정하기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여분의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12월 6일 스웨덴 아카데미 한강 인터뷰 기자회견에서) 한강 작가는 문학을 읽으면서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쳤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결정' 하는 내적인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힘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힘을 갖추게 된다는 말. 『불멸』을 끝으로 약 100일간의 읽기 여정을 마쳤다. 프란츠 카프카와 밀란 쿤데라라는 높은 산을 넘으면서 내적인 힘을 기르는 시간이었다고 믿고 싶다. <불멸>을 읽은...
12월 3일 밤, 갑자기 느닷없이 일어난 경악스러운 사태에 대해 책 벗이 말했다. ( 카프카 쿤데라 읽기 방에서) ‘카프카에스크적’이다. 카프카에스크는 끔찍하게 불쾌하고 무섭고 혼란스럽다는 뜻으로 카프카 소설에서 묘사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벌레로 변하고(그레고리 잠자)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당하는(요제프 K) 사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 카프카 소설 속 ‘시민은 자주 극단적인 몰이해와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는 정의는 지금 오늘과 비취 볼 때 전혀 이질감이 없다. 아 참을 수 없이 카프카에스크적이다 ! 카프카를 현대 소설의 세 성인 (다른 두 작가는 프루스트, 조이스)으로 일컬으며 카프카의 계보를 잇고자 하는 밀란 쿤데라는 그의 에세이 『소설의 기술』에서 카프카의 소설적 성취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말하고 있다. ‘그(카프카)는 인간의 행위를 결정짓는 내적 동기가 어떤 것이냐를 묻지 않습니다. 그가 제기하는 물음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그의 물음은, 내면적 동기가 더 이상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될 만큼 외부적 결정이 압도적인 것이 되어 버린 세계에서 아직 인간에게 남아 있는 가능성이란 어떤 것이냐는 거죠’ 소설의 기술 저자 밀란 쿤데라 출판 민음사 발매 2013.01.25. 너무나 압도적인 외부 현실에 짓눌린 인간의 무력함을 그리는 카프카의 소설은 ...
불면의 밤을 보냈다. 도무지 내릴 줄 모르던 아이의 열로 밤을 지새운 며칠이었다. 첫눈이 내린 날 아이는 맨손으로 눈싸움을 했고 그날 밤 급한 준비물이 있다며 밖에 나갔다가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나가기 전, 나는 아이를 말렸다. 이 늦은 시간에 굳이 나가야 하느냐고. 꼭 필요한 준비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이를 말리고 싶었다. 그런 날이 있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예감에 사로잡히는 날. 그날 새벽부터 아이는 열이 나기 시작했다. 39도 고열이 지속 되었다. 동네 병원은 아침부터 환자가 많아 대기 시간이 길었다. 겨우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았다. 수액을 맞으니 조금 기운을 차린 아이는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준비물 전달하러 갔다 올게. 조금 생기가 도는 아이의 모습에 그럼 그렇게 하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때 아이를 말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 다녀오더니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고열과 함께 장염 증상까지 시작되었다. 온몸에 수분이 다 빠진 것처럼 아이는 메말랐고 평소에 말대답을 꼬박하던 아이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나흘 동안 4kg이 빠졌다. 인생 참 힘드네. 노래 후렴구처럼 아이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었다. 너무 자주 들으면 무감각해지는지, 나는 아이의 말을 그냥 흘려보냈다. 힘들다고 느끼는 기준이 큰 아이와 달라서였을까. 큰 아이는 좀처럼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분명히 힘들 것 ...
어제 오후 창밖에는 춤추듯 흩날리는 은행잎 오늘 아침 창밖에는 고요히 내린 눈 계절의 한페이지가 넘어간 느낌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출판 민음사 발매 2018.06.20.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첫 문장이다. 작가는 니체의 영원회귀를 도입부에 쓰면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대체 소설과 어떤 연관이 있기에 생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무거운 사상을 가져왔을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뿐이라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인생이 그림자같고 덧없다는 것. 쿤데라는 영윈회귀 사상을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삼아 삶이란 과연 가벼운지 아니면 무거운지, 얼마만큼의 무게를 갖는지(혹은 가져야 하는지) 묻는다. 쿤데라의 시도가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밀란 쿤데라가 그린 표지 그림 삶이 가볍다면 굳이 심각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einmal ist keinmal. 한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는 독일어 ...
주말에 가을비가 내리면서 날이 추워지더니 성큼 겨울에 들어선 느낌이다. 겨울 외투를 꺼내고 양말을 신는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내 마음에도 바람이 분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자각이 번지면서 발걸음에 괜히 힘이 들어간다.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진입하는데, 내 마음은 아직도 가을 언저리에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바깥 계절과 나는 엇박자가 난다. 이럴 때, 마음을 다독여줄 무언가가 간절하다. 주말 내내 끼고 읽은 책이 있다. 중문학자 이지운님의 『시절한시』. 부제는 ‘흔들리는 삶에 건네는 서른 여덟 편의 한시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도연명, 두보, 백거이...중국 시인들의 아득하고 멀게만 보인 한시가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한자로 쓰인 시를 알기 쉽게 번역하고 시인의 삶과 작품 배경을 친절히 설명한 덕분이다. 무엇보다 한시를 고대 유품처럼 그저 멀리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 지어 읽을 수 있는지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감상을 담았다. 한시 초보 독자를 안내하는 저자의 손길이 곡진하여 읽고 나면 마음의 온도가 올라간다. 시절한시 저자 이지운 출판 유노라이프 발매 2024.11.21. 고전 시 연구자로 이십여 년 동안 한시를 가르친 저자는 ‘덤덤한 연구 텍스트였던 한시가 돌연 생생하게 숨 쉬더니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중병에 걸려 오랜 치료를 받...
여름 내내 들고다닌 에코백이 있다. 올해 나의 최애 가방이 되어준 카렌 블릭센 에코백.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필명으로 더 알려진 카렌 블릭센의 얼굴이 앞면에, 작가의 이름이 뒷면에 프린트된 가방이다. 얼룩이 묻어 세탁기에 넣고 한 번 돌렸더니 사이즈가 줄어버렸다. 프린트된 그림도 흐릿해졌다. 아끼는 마음에 깨끗하게 쓰려 했다가 오히려 원래 모습이 희미해졌다는 슬픈 이야기. 흐릿해지기 전 무더웠던 올해 여름, 엄마는 아빠와 북유럽으로 칠순 기념 여행을 다녀오셨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세 나라를 여행하는 사진이 가족 단톡방에 계속 올라왔다. 나는 땀이 나서 얇은 옷을 입고 있는데 사진 속 엄마는 빨강 털모자에 빨강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그곳의 추위가 전혀 실감 나지 않았다. 먼 나라 이야기였다. 더위에 지친 채 사진을 물끄러미 보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카렌 블릭센 박물관. 카렌 블렉센 박물관??? 거기도 갔어요??? 덴마크 여행 일정을 모르고 있던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알고 보니 카렌 블렉센 박물관은 덴마크 코펜하겐 외곽에 있는 작은 도시로 작가의 출생지, 롱스테드룬트에 있었다. 엄마, 디네센 기념품 하나 사주세요...... 엄청 힘들게 갔어 ㅎ 이미 다녀왔으니 살 수는 없고 에코백 산 게 있어서 그것 줄게 그렇게 카렌 블릭센(이자크 디네센) 에코백이 나에게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덴마크 코펜하겐 외곽에 ...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밀란 쿤데라의 작가 소개다. 단 두 줄. 2023년 그가 타계한 후 한 문장이 추가되었다. ‘2023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순하고 압축적인 소개를 조금 더 늘려본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아주의 브르노에서 1929년에 태어났다. 1975년을 기점으로 그의 아흔넷 인생이 체코에서의 삶(46년), 프랑스에서의 삶(48년) 절반으로 나뉜다. 정치탄압으로 프랑스로 망명 후 국적을 취득하고 프랑스를 문학적 조국으로 여긴 쿤데라는 2019년 체코 국적을 회복하나 귀환하지 않고 파리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고향 브르노로 돌아간다. 브르노에 쿤데라 묘지와 그가 기증한 저서로 채워진 쿤데라 도서관이 있다. 체코의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브르노에 있는 밀란 쿤데라 도서관. 문학 독자에게 프라하가 카프카의 도시라면 브르노는 쿤데라의 도시. 쿤데라가 1967년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 『농담』의 무대가 모라비아, 그의 고향이다. 소설은 주인공 루드비크의 귀향으로 시작한다. 고향을 마주한 그의 마음은 어수선하다.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 기억이 떠올라서다. 15년 전 스물 두 살 나이, 루드비크는 당에만 충실한 여자친구가 못마땅해서 ‘장난삼아’ 엽서 한 장을 보낸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의 엽서 농담은 농담이 아닌...
가을빛이 좋은 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마음 가는 대로 가도 좋지만, 든든한 지도가 있으면 더 좋겠다. 어디로 가야 좋을지 헤매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주는 지도가. 지도의 미덕은 단순화다. 복잡한 길을 간결한 선으로 표시하고 장소도 간단한 기호로 표기한다. 나의 목적지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고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여기 지도의 미덕을 갖춘 책이 있다. 이른바 인문학 책 지도, 여르미님의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이다.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 저자 여르미 출판 센시오 발매 2024.10.14. ‘바닷가 옆 시골마을에서 매일 읽고 쓰며 살아가는 책 탐닉자, 책벌레, 그리고 치과의사. 네이버에서 누적 조회수 600만, 3년째 도서 인플루언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여르미 도서관’의 도서관장 여르미님은 이 책을 이런 분들에게 권한다. ‘마흔을 앞두고 막연하게 불안하거나 혹은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 공자 선생님은 마흔을 일컬어 주변에 미혹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잘 절제할 수 있는 ‘불혹’이라고 했지만 어디 그런가. 흔들리니까 마흔인지도. 동시에 마흔은 상징적인 나이일 뿐 막연하게 불안하거나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책이다. 인문학 필독서 50권이 불안을 잠재우고 새로운 삶에 대한 방향을 알려줄 수 있을까? 누구보다 저자가 인문학 책을 통해 인생에 대한 수 많은 질...
비구름이 낮게 깔려 온종일 흐린 날, 카프카의 『성』을 읽었다. 짙은 안개와 어둠 속에서 헤매는 『성』의 주인공 K를 따라다니기에 더없이 적합한 날이었다. 성으로부터 ‘토지측량사’로 초빙된 K가 눈 속에 깊이 잠겨 있는 성 아래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 만난 K를 환대는커녕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남루한 행색의 30대 K를 맞아줄 사람은 없다. K가 토지측량사라는 사실을 보증하는 초대장이나 입증할만한 서류도 없어서다. K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관청에 전화를 걸고 서류를 찾으려 시도하지만 모두 헛수고다. 성 저자 프란츠 카프카 출판 창비 발매 2015.05.08. 문득 몇 달 전에 겪은 일이 떠올랐다. 아이 학교 일로 서류가 필요해 학교 행정실에 가서 서류를 요청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가 아이의 엄마인 줄 알 수 없으니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금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마친 나로서는 당연하게 서류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전혀 알지 못했다고 난감함을 표시했다. 행정실 선생님으로서는 뜻밖이라고 여기는 내가 난감했겠지만, 전에도 비슷한 일로 서류를 요청했을 때는 무난하게 했던 터라 나로서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증명서를 챙겨서 다시 올 만큼 시간이 없었기에 결국 담임선생님께 연락 드렸다. 담임선생님이 행정실에 직접 오셔서 맞습니다. 아이 엄마 맞아요. 라고 ‘증명’ 해주시고 나서야 나는 ...
드디어... 엄마 책이 나왔습니다. 엄마의 20년 동안의 여행기록 초고를 읽으면서 과연 책으로 묶일 수 있을까, 아득했는데 이렇게 책이 되어 나오니, 홀가분하네요? 드림셀러 편집자님과 여러 손길을 거쳐 책이 되기까지 옆에서 지켜본 한 사람으로 쓴 추천의 글입니다. 엄마는 글을 봐달라고 하셨어요. 엄마가 20년 동안 모은 여행의 기록을요. 오십에 시작해 칠십까지 이어진 여행을 엄마는 늘 글로 남기셨지요. 헤아려보니, 제 나이 이십 대에서 사십 대를 통과하는 시간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출산과 양육이 이어지는 시기여서 엄마의 여행을 자세히 몰랐던 저는 엄마의 여행기를 보며 엄마를 새롭게 알게 된 기분이었어요. 아, 엄마가 이토록 많은 곳을 여행했었구나. 엄마의 시간에서 벗어나 ‘박경희’라는 이름으로 여행한 시간이었구나. 프라하, 파리, 엑상프로방스, 니스, 밀라노, 마드리드, 톨레도, 세비야, 류블라냐, 아바나, 아스원, 트레비소, 리스본, 산토리니...도시의 이름은 끝없이 이어져요. 이 많은 도시를 여행한 엄마의 원고를 읽으며 저도 따라서 도시를 거닐었어요. 제가 모르는 낯선 도시를요. 엄마의 경험과 감상이 녹아든 글을 길잡이 삼아서 거닐고 나니, 그 도시들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거기엔 여행 가기 전 여행지를 공부한 엄마의 기대와 즐거움이 있었어요. 읽는 이에게도 전염될 만큼 여행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설렘...
책장 정리를 조금씩 하고 있다. 하루 날 잡아서 한꺼번에 하면 좋겠지만, 날 잡기를 미루다 보니, 영영 못 할 것 같아 조금씩 하기로 했다. 책 정리를 미루게 된 이유는 대책이 안 보여서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책은 대책 없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공간을 늘리거나 책을 줄여야 하는데 둘 다 안 되어서 책이 바닥에 쌓여 있다. 아이들에게 방 정리하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책 정리를 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일단 아이들 책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더이상 안 보는 책들을 솎아내 동네서점에 팔고 나머지 책들은 처분했다. 조카에게 줄 책들은 따로 챙겨두었다. 불필요한 책들이 사라지고 나니, 안 보이던 책들이 발견된다. 그 중 하나가 아이의 유치원 활동을 정리한 앨범들. 아이는 오랜만에 보더니, 마치 내가 언제 이런 걸 다 했느냐는 듯 흥미롭게 본다. 유치원 때가 참 좋았던 것 같아. 그래? 그때로 다시 가고 싶어? 아니.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이 좋다기 보다 다시 살기가 귀찮은거지. 다시 살기가 귀찮다고? 그런 말을 하다니, 많이 컸네. 13살 아이는 요즘 부쩍 크는 중이다. 사춘기를 통과하며 겪는 감정의 파고가 나에게도 상당히 영향을 미쳐 나도 같이 출렁일 때가 있다. * 동네서점에서 『디 에센셜 한강』을 구입했다. 장편(희랍어 시간), 단편(회복하는 인간, 파란돌), 시, 산문이 고루 실려있다. 한 권의 ...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관련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외신들 “한국의 카프카” 극찬 쏟아내’ 소설가 한강이 외국에서 ‘한국의 카프카’라고 불린다고 한다. 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에 나타난 ‘식물-되기’가 카프카의 소설 『변신』, ‘벌레-되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 환상적이고, 꿈같고, 비현실과 현실의 조화가 빚어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소설. 단순히 이해하면 그렇다. 한강 작가의 이름을 처음 접하는 외국 독자는 ‘한국의 카프카’라는 소개를 작가 이름보다 친숙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찬쉐는 ‘중국의 카프카’라고 불리는데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 '카프카'에서 힌트를 얻는 것처럼) 한강 작가는 카프카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한편으로는 작가의 결이 다른데 몇 가지 특징만으로 편리하게 분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세계문학에서 빠질 수 없는 카프카라는 이름은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를 호명하는 ‘극찬’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고유성인 동시에 대표성인 것. '한국의 카프카'라는 수식어에 사로잡힌 건 요즘 카프카를 읽고 있어서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된 다음 날, 카프카의 『소송』 줌 모임이 있었고 가시지 않은 감격과 흥분, 기분 좋은 충격 속에서 『소송』을 읽은 감상을 나누었다. 소송 저자 프란츠 카프카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0.03.15. 카프카는 『소송』...
와우, 한강 작가가 수상하다니!!! 소년이 온다(10주년 특별판) 저자 한강 출판 창비 발매 2014.05.19. The Vegetarian 채식주의자 (미국판) 저자 한강 출판 Hogarth Press 발매 2016.02.02. 채식주의자 저자 한강 출판 창비 발매 2022.03.28.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저자 한강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13.11.15. 이런 날도 오는군요....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한강) 작가 한강은 소설보다 시로 먼저 데뷔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기 전 ... blog.naver.com 흰 (한강)-새하얀 영혼에게 바치는 노래 한강의 소설 <흰>은 흰 것에 대한 이야기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수의. 작... blog.naver.com 소년이 온다 (한강) 작가 한강에게 소설쓰기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소년이 온다>는 '인... blog.naver.com 채식주의자 (한강) 왜 그녀는 육식을 거부했나 딸의 뺨을 거침없이 때리는 아버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력에 딸은 어렸을 ... blog.naver.com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 데보라 스미스- 번역이라는 예술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 꼭 가보고 싶었던 건, 데보라 스미스(<채식주의자>번역) 때문이었다. 다양한 ... m.blog.naver.com 채식주...
1.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다.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잠들지 않고 그대로 일어났다. 창밖을 보니, 울긋불긋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2. ‘13년 전 오늘’ 글이 떠서 보니 만 13개월 되는 아이의 걸음마를 기록한 글이다. 어딘가를 붙잡아야만 걷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스스로 한 발짝 떼었다고. 걸음마란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벼락처럼 순간에 이루어지는구나, 라고 써놓았다. 기저귀를 차고 뒤뚱뒤뚱 걷는다고.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뛰는 날이 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3. 그랬던 아이가 농구하다가 손가락이 골절되어 깁스를 하고 변성기를 맞이한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다. 깁스를 풀자마자 농구를 하러 나가는 아이를 붙잡고 이제 아침 저녁으로 날이 선뜩하니 긴 바지를 입으라고 말하지만, 나의 말은 아이에게 들리지 않는다. 들려도 흘려버리는 것이다. 4. 어느 날 갑자기 찬 바람이 불고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변하듯이 어떤 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서야 시간을 되돌려보며 씨앗이 되는 조짐들을 찾아보지만, 퍼즐을 맞추기 위한 사후적 해석이다. 요즘 읽는 카프카의 소설들은 어느 날 갑자기로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고 어느 날 갑자기 체포된다. 카프카의 장편 소설 『소송』의 시작,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 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
지난 금요일 <실종자> 줌 모임을 하면서 나온 말중에 하나. 카프카 소설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카프카'라는 이름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한다. 알베르 카뮈, 무라카미 하루키, 밀란 쿤데라가 극찬한 카프카인데, 뭔가 있을 거야...하는 마음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 맥락 없는 설정이 등장하지만, 이 모든 것은 ‘카프카적’이라는 말로 해명되고 과연 ‘카프카적’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불안, 고독, 소외, 부조리...카프카 소설을 읽는 키워드가 이제 익숙하게 느껴질 만큼 너무나 유명한 카프카. 유명함이 오히려 카프카 읽기를 방해하는 것 아닐까? 카프카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고 유머러스하며,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데. 실종자 저자 프란츠 카프카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3.11.03. 카프카의 첫 번째 장편소설 『실종자』는 처음에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아메리카’는 친구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의 미완성 소설을 발표하면서 붙인 제목으로 ‘실종자’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카프카는 미국을 배경으로 썼지만, 미국에 간 적은 없다. 책과 자료를 통해서만 미국을 보았을 뿐이다. 카프카는 미국이라는 공간에 열여섯 카를 로스만이라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청년을 던져놓는다. 던져진 존재, 카를 로스만은 낯선 미국 땅에서 과연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뿌리를 내린다는 것. ‘실종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