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은 오는듯하더니 벌써 가버린 것 같다. 논병아리가 보고 싶어서 지난 주말에 서울대공원 호수에 갔다. 미술관을 먼저 둘러보고 호수로 내려갈 때 스산한 바람이 불더니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 탓인지 논병아리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일상 스냅과 여행용으로 좋은 렌즈 작고 가벼운 렌즈를 찾던 중에 사진 커뮤니티를 통해 이 렌즈의 출시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내 정식 출시 전에 사전 예약 판매 행사를 하길래 재빠르게 주문했습니다. 당시 해외 판매가격은 99$였고, 저는 119,000원에 샀습니다. 풀프레임 카메라용 AF 렌즈치고는 가격이 싼 편이어서 허접한 물건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이 렌즈를 주문하고 며칠 후 국내 총판사에서 출시 기념 워크샵과 체험단 모집 소식을 들었습니다. 워크샵에 참석하고 싶어서 지원했는데 운 좋게 뽑혔어요. 워크샵의 내용은 제품을 먼저 사용해 본 현업 사진작가의 경험담과 작례, 그리고 활용 팁을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흥미롭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체험단에게는 제품도 하나씩 지급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개나 갖게 됐네요. 패키지 디자인은 다르지만, 제품은 같습니다. 초점거리 28mm / 조리개 f4.5 / 최소 초점거리 32cm / 두께 15.3mm / 무게 60g 스펙만 봐도 굉장히 독특한 렌즈입니다. 얇고 가볍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고요, 조리개가 4.5입니다. 이건 이 렌즈의 개방 조리개 수치가 아닙니다. 고정입니다. 조리개를 조절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마 그래서 더 얇고, 구조가 단순해서 싸게 만들 수 있었나 봅니다. 마운트 소재는 금속입니다. 전반적인 마감이 좋아서 손에 쥐어보면 단단하고 야무진 느낌이 듭니다. 렌...
중학교 때 수학 시간에 배운 것입니다. ‘p→q’ 이걸 설명하면서 선생님이 예시로 든 말이 ‘바람이 불면 비가 온다’ 였습니다. 살면서 보니 정말로 그렇더군요.
뭘 잘 모르던 시절에는 카메라 렌즈에 대해 밝고, 선명한 게 제일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화각의 렌즈 중에서도 무조건 더 밝은 렌즈를 구하려고 했죠. 가격이 훨씬 더 비싸더라도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저한테는) 얇고, 가벼운 렌즈가 최고입니다. LK삼양은 고품질의 카메라 렌즈를 만드는 국내 기업입니다. 삼양이 얼마 전에 아주 멋진 제품을 내놨어요. 이런 렌즈는 처음 봅니다. '리마스터 슬림' 시리즈입니다. 이 렌즈는 AF 구동장치가 있는 본체 모듈과 렌즈 모듈을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렌즈 모듈은 이번에 총 세 가지 모델이 동시에 발매됐습니다. '리마스터'라고 하면 예전의 것을 요즘의 가치나 수준으로 새롭게 만든다는 뜻인데요, 세 개의 렌즈를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그 '예전의 것'이 어떤 카메라인지 어렴풋하게 블러 처리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21mm f3.5 렌즈 뒤의 사진은 리코의 GR21 카메라입니다. GR21은 비슷한 디자인을 유지하며 지금도 GR Digital 카메라로 출시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카메라의 원형입니다. 당시 컴팩트 카메라에선 흔치 않았던 초광각 렌즈의 특성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28mm f3.5 렌즈는 미놀타의 TC-1 카메라를 모티브로 한 것 같습니다. 미놀타 TC-1은 컴팩트한 크기에도 뛰어난 매커니즘, 그리고 선명한 사진을 만들어내는 카메라로 유명합니다. 3...
스냅사진, 여행용으로 좋은 필름 카메라예요. 여러 카메라 제조사 중에 올림푸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제게는 '똘똘한 공돌이들'이었습니다. 다른 카메라들이 갖고 있는 기능을 모두 다 담고서도 어쩜 그렇게 작고 옹골차게 만드는지! 필름 카메라 시절에 올림푸스 제품은 다른 제조사와 같거나 더 나은 성능에도 크기는 작았어요. 제게 얼마 전에 '올림푸스 뮤' 카메라가 생겼습니다. 누가 줬어요. 외형은 지난 30년 세월의 풍파를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낡아 보였지만 기능은 모두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이 카메라의 장점은 잠깐만 사용해 봐도 알수 있습니다. 1. 작고 가볍습니다. 단지 작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모든 모서리를 둥글둥글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주머니에 넣고 빼기가 굉장히 편합니다. 스냅 사진용으로 이만한 제품이 없습니다. 2. 모든게 쉽습니다. 필름을 넣고 빼는 것뿐만 아니라 촬영하는 것, 전반적인 과정이 초보자도 한 번만 보고 들으면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3. 사진이 잘 나와요. 반셔터를 누르면 빠르게 초점이 맞춰지고, 노출이 부족하면 자동으로 플래시가 발광됩니다. 일상적인 환경에서라면 누가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옵니다. 4. 최소 초점거리 이와 비슷한 스펙을 갖춘 똑딱이 카메라들은 대부분 최소 초점거리가 80cm 이상인 경우가 많아요.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가 최소한 80cm 이상은 떨어져 있어야 초점이 맞는 사진이 찍...
갑자기 가을이었다. 선선해진 공기에 한낮에도 걷기가 좋아서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섰다. 해방촌에 가기로했다. 작년 여름에 갔었으니 일 년만이다. 점심부터 먹기로 하고 숙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유명한 만두전문점에 갔다. 미쉐린 가이드 스티커가 여러 장 붙어있었고, 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 전통만두와 샤오롱바오를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샤오롱바오는 내가 먹어본 것 중 제일 비싸고 제일 맛이 없었다. 맛은 없지만 모양이 귀여워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사진에는 두 개지만 원래는 여섯 개가 나온다) 미군 기지 담벼락을 따라 후암동 방향으로 걸었다. 마음에 드는 프레이밍을 하려고 뒷걸음질을 친다. 뷰파인더에 나무 그늘 쉼터를 넣고, 남산 타워를 넣고, 마을버스도 넣었다. 후암동 마을버스 종점과 그 일대는 옛 동네의 정취가 남아있다. “아이고...” 카메라에서 필름을 꺼내며 내뱉은 말이다. FM2와 똑딱이 카메라를 챙겨갔는데 둘 다 컬러 필름이 들어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똑딱이 카메라에서 나온 건 흑백필름이었다. 작년에 갔던 카페 위 하늘이 예뻐서 찍었는데... 레몬에이드를 파는 가게에 또 갔다. 다른 건 안 먹어봐서 모르겠는데 이 집은 자몽에이드가 정말 맛있다. 또 자몽에이드 한 잔을 사고, 뒤에 생과일들이 보이게 컵을 들고 똑딱이로 찍었다. 이 올림푸스 카메라는 최소 초점거리가 짧아서 이렇게 찍어도 잘 나온다. 색깔 참 ...
을지로3가역에서 내렸다. 고래 현상소에 필름을 맡기러 가는 길이다.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부터 어떤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게 보였다. 레트로한 분위기를 풍기는 간판과 크게 틀어놓은 올드팝, 가게 주변으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올디스 타코’. 멕시코 음식 타코를 파는 곳인가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라고 해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건 싫다. ‘맛있어 봤자 타코겠지..’ 라고 생각하며 늘 그냥 지나쳤는데, 지난 주말엔 같이 현상소에 갔던 친구가 궁금하다며 먹어보자고 했다. 먼저 키오스크에서 핸드폰 번호를 남기고 대기 번호를 받아야 한다. 이때 매장 안에서 먹을지, 밖에서 먹을지, 포장해 갈지를 정한다. 카카오톡으로 내 앞에 몇 명의 대기자가 있는지 안내메시지가 왔다. 기다리는 동안 매장 안팎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한참 기다린 후에 매장에 자리가 났으니 주문하라는 메시지가 왔다. 올디스 타코(5,900원), 비리아 타코(6,900원), 콜라(3,000원)를 주문했다. 요즘 외식 물가치고는 비싼 가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 안엔 테이블이 4개 밖에 없고, 의자도 없어서 서서 먹어야 한다. 내 입맛에는 올디스 타코가 더 맛있었다. 잘게 썬 고수를 잔뜩 올려주는데 그래서 더 맛있었다. 고수를 못 먹는 사람들은 주문할 때 빼달라고 미리 말해야 할 것 같다. 가끔 필름을 맡기러 가는 길...
며칠 전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사장님이 우리 방으로 오셨다. “이부장, 내가 스피커를 하나 가져왔는데 휴게실에 세팅 좀 해봐.” “무슨.. 스피컨데요?” “나도 잘 몰라. 니가 보면 알겠지. 휴게실에 갖다 놓으라고 했어.” 회사 카페테리아에 가보니 바테이블 위에 박스가 놓여있었는데... 드.. 드비알레?? 팬텀1!! 음질 손실 방지, 원천적으로 노이즈 발생을 없애기 위해 전선을 한 가닥도 쓰지 않고 만들었다는, 유튜브에서 리뷰로나 보던, 가격과 음질은 과연 비례할까 의구심이 들었던, 장바구니에 담아볼 엄두도 나지 않던, ... 바로 그 물건이었다. ‘쪼끄만게 보기보다 꽤 무겁네’ ‘리모콘이며 스탠드도 굉장히 고급스럽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언박싱을 하고 부속들을 끼워 맞췄다. 보통의 스피커와는 생김새도 완전히 딴판이다. 지난 주말에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봤는데(재미있음!) 스피커가 마치 그 에이리언 머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스탠드와 케이블을 조립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바닥에 둬도 되나? 테이블 위에 올려둬야 하나? 하다가 일단 소리부터 들어보자 하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뭐라고 말을 하는 듯 숨을 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우퍼가 부르르 떨렸다. 오오.. 이건 켜지는게 아니라 마치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악을 몇 곡 들어봤는데.. 와아.. 소리가.. 저음이.. 와아.. 어떻게 이래!! 내가 아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전시회 제목은 '절규'로 유명한 에드바르 뭉크의 <비욘드 더 스크림>이었다. 내방역에 내려 계단을 올라갔더니.. 비가.. 와아.. 정말 억수로 퍼붓고 있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들도 보였다.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펼쳤는데 비가 어찌나 거칠게 내리는지 우산을 써도 운동화며 가방이며 금세 젖어버리긴 마찬가지였다.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저만치 앞에서 우산이 없는 한 남자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세찬 빗소리에 뒤섞인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다.
밤 9시쯤이었다. 조금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평소 같지 않게 한산했다. 특이한건 시장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것이다. 관광객들을 보면 부럽다는 마음이 든다. 현실을 살아가는 무게는 다들 비슷하겠지만, 고달프기도 하겠지만 거기서 잠시 벗어나 홀가분해진 몸과 마음으로 이국의 풍경과 정취를 느끼고 마음껏 즐기기만 하면 되는 그 며칠간의 기분이 부럽다. 저녁은 먹었으니 배부르지 않은 안주에 간단하게 술 한잔하고 싶은데 뭘 먹을까 하며 돌아다녔다. 그래, 여기가 좋겠다. 외국인들에겐 인기가 없는 메뉴인지 마침 횟집들은 빈자리도 많았다. 2만 원짜리 모둠회 한 접시에 아나고, 연어, 문어, 숭어, 소라, 멍게 등이 적당히 섞여 나왔다. 제철이라고 소라가 굉장히 맛있었다. 그런데 왜 비가 오면 술을 더 마시게 되나.
사진 커뮤니티를 통해 니콘의 팝업 스토어 소식을 알게 됐다. 니콘의 헤리티지 라인업을 바탕으로 깔고 ‘오래된 취미’라는 제목을 붙인 행사였다. 제목을 보곤 영리하고 치밀한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카메라 제조사는 많지만 ‘헤리티지’라고 부를만한 브랜드는 별로 없다. 여기에 ‘오래된’이라는 말로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토요일에 사진 찍는 친구와 함께 성수동 행사장에 다녀왔다. 이제 팝업 스토어는 성수동에서만 해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생긴 걸까? 행사장 입구 옆 쇼윈도우 안에 니콘의 헤리티지를 상징하는 네 대의 카메라가 진열되어 있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F3, FM2, Z fc, Z f 였다. ( ↑ 이 사진을 제외한 나머지 사진들은 필름 카메라로 촬영된 사진 - 니콘F3 & Kodak 400 ) 이날 나는 F3를, 친구는 FM2를 갖고 나왔다. 둘 다 필름카메라다. Z fc와 Z f는 80년대 니콘의 필름 카메라 디자인으로 만든 디지털카메라다. 출시된 지 몇 달 됐는데 아직 실물을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고, 한번 만져보고 싶었다. 토요일이라서 관람객이 많았는데, 한번에 많이 몰리지 않게 통제하고 있어서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1층에는 4명의 작가가 Z f로 촬영한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 각각 식물관찰, 서울산책, 청춘포착, 과거회상을 주제로 한 사진들이었다. 내가 가장 공감했던 주제의 사진은 ‘박현성의 과거회상’이었다. ...
회사를 옮긴 지 한 달 정도 됐다. 퇴근할 땐 회사 앞에서 버스를 타고 상일동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야 하는데 번번이 이 버스를 놓치기가 일쑤다. 다음 버스를 타려면 칼퇴근한 보람도 없이 15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지도를 보니 회사 앞의 고덕천을 따라 1km만 걸으면 강일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1km는 내 걸음으로 10분,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처음으로 고덕천을 걸었던 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버스를 기다리지 않는다. 회사 건물 뒤편이 고덕천 산책로와 바로 이어져 있다. 폭이 4~5m 정도 되는 하천 양쪽으로 잘 닦인 산책로가 있고, 산책로 바깥쪽으로 자전거 도로가 보행로와 분리되어 있다. 처음에는 작은 청계천 같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다녀보니 인공하천인 청계천보다 더 생태하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하천 주변으로 주거용 건물들과 학교가 있어서 생활 친화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6월의 물가에는 짙은 초록의 갈대잎이 우거졌는데 가을에는 어떤 색과 모습으로 변할지 기대가 된다. 산책로 주변에는 누가 심은 건 아닐 것 같은 여러 가지 제철 꽃들이 아무렇게나 피어있어 하나하나 찾아보며 걷는 것도 재미있다. 개망초, 금계국, 맥문동, 수국, 꽃양귀비, 그리고 사진에 담지 못한 원추리, 루드베키아 외에도 많은 풀꽃이 피어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동물들도 많다. 아침엔 안 보이는데 저녁에는 꼭 ...
지나간 며칠 동안 서울은 한밤중에도 잠을 설칠 만큼 더운 날씨였다. 휴가철을 몇 주 앞둔 속초해변은 한낮의 햇살은 뜨거웠지만 바닷바람이 쉼 없이 불어와 시원했다. 오랜만에 강태풍과 여행을 다녀왔다. 강태풍은 요즘 연휴나 주말에 혼자 속초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온다고 했다. 이번엔 내가 따라나섰다. 바닷가에서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며. 대포항이 망가진 후로 나는 속초에 가면 주로 물치항에서 술을 마신다. 이번에는 친구가 즐겨 찾는 곳으로 갔다. 강태풍은 여행 전부터 고등어회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웬 철없는 고등어 타령이냐고 타박했다. 고깃배를 운영하는 집이라서 그런지 어항에는 내가 아직 이름을 모르는 생선도 많았다. 우리는 아는 생선들만 골랐다. 소쿠리에 오징어, 고등어, 물가자미 등등 둘이 먹을 만큼 생선을 담고, 어리숙해 보이는 사내 둘은 흥정도 없이 5만 원에 합의를 봤다. 아주머니는 선심을 쓰듯 멍게와 해삼 몇 마리를 더 얹었다. 두 사내는 잠시 후 내어온 상차림을 보며 5만 원에 이 정도면 훌륭하다며 낄낄거렸다. 또 잠시 후 아주머니가 노릇하게 구운 가자미와 임연수어를 한 접시 내줬을 땐 감동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안주가 다 굉장히 맛있었다. 고등어는 가을·겨울에 먹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제철보다 살이 단단하고 맛은 담백해서 오히려 더 나았다. 세꼬시는 고소하고 살짝 단맛이 입에 감치며...
화요일이었나, 직장동료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늘 점심시간엔 업무와 관련 없는 사소한 얘기들을 나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그날의 주제는 평양냉면이었다. 모두 평양냉면 마니아를 자처하며 저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냉면집은 어디인지, 냉면집마다 육수와 면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하는 얘기들이 오갔다.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평양냉면에 대해서라면 나 역시 누구보다 열띠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M이 말했다. “그런데 요즘 평양냉면은 너무 비싸서 사 먹기가 부담스러워. 보통 만 오천 원 정도 하는데 그 값이면 더 맛있는 음식도 많잖아?” 내가 끼어들었다. “더 맛있는 음식 어떤 거?” “뭐...뭐... 많지!” M은 어떤 음식을 특정하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평양냉면을 대신할 수 있는 음식은 없어. 그건 섹스 같은 거라고.” 누구는 크게 웃었고, 누구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토이 카메라'라고 하면 제조사나 사용자들이 싫어할까요? 제 기준으론 노출을 조절할 수 없으면 토이 카메라입니다. 아무튼 친구가 호기심에 샀는데 쓸 일이 없다며 저한테 줬습니다. 토이 카메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생김새는 예뻐서 장식용으로 두려고 했는데 냉장고에 필름이 남아돌아서 한 롤 찍어보기로 했습니다. -제품명 : KODAK EKTAR H35 -필름포맷 : 35mm (하프 프레임) -렌즈 : 22mm F9.5, 1군 2매 아크릴렌즈 -셔터 속도 : 1/100s -초점거리 : 1.5m ~ ∞ -플래시 : 내장 (AAA 건전지 1개 사용) -크기 : 110 (w) x 62 (H) x 39 (D) mm -무게 : 100g 하프 카메라는 35mm 필름 한 장에 두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관에 필름을 맡겨 스캔하면 풀프레임 이미지는 보통 3,000x2,000픽셀 해상도의 결과물을 받게 됩니다. 하프 프레임 이미지는 2,000x1,400픽셀 정도의 해상도입니다. 해상도가 낮으니 풀프레임 이미지에 비해 입자가 거칠게 보이고, (이 카메라의 경우) 렌즈의 특성상 원본 이미지는 선명도도 떨어집니다. 아래의 사진은 작게 리사이즈 되어 선명하게 보일 수 있으나 클릭해서 원본 크기로 보면 거칠고 흐립니다. *토이 카메라 & 일회용 카메라 사용 때 주의 사항 -감도 400 이상의 필름을 사용할 것 -맑은 날 실외에서 촬영할 것 -지붕 아...
요즘 삼채 소설책에 빠져있다. 나는 내방역에서 성수역으로 전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30분 정도의 거리인데,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체감 시간이 5분 정도로 줄어드는 것 같다. 청담대교를 지날 때 전철 안이 갑자기 환해지면 매번 속으로 '벌써?!' 하며 놀란다. 나는 예전에 읽은 <사피엔스>가 자동으로 분책이 되고 너덜너덜해진 이후로 종이책을 사지 않는다. 내가 샀다면 이 소설도 e-book을 샀겠지만, 총 3권 묶음을 생일선물로 받았다. 전체 분량이 거의 2,000쪽 가까이 되는데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실 때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는 있지만 책을 본 적은 없었다. 이 책은 혼술을 하면서도 읽을 정도로 재미있다. 작가의 엄청난 상상력과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과학 지식이 놀랍고 부럽다. 나는 빛과 시간을 다루는 장치라는 점에서 카메라가 일종의 타임머신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도 그렇다. 시간을 증발시켜 버린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수동에는 젊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팝업스토어가 많다. 점심시간에 성수동에서 일하는 방영이와 만나 같이 밥을 먹고 브롬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팝업스토어를 구경했다. 방영이도 나도 자전거를 좋아한다. 1975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1세대 브롬톤이 전시되어 있다. 가운데 프레임의 꺾어진 각도가 조금 다를 뿐 지금의 브롬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2005년에 산 내 브롬톤과 똑같은 색 조합이라서 더 반갑고 예뻐 보였다. 우와! 내 브롬톤이 벌써 20년이나 됐다니... 지난 겨울에 신세계 백화점에 갔다가 브롬톤 매장이 생긴 걸 봤는데 자전거가 아니라 옷을 파는 곳이었다. 디스커버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코닥, ... 등등 처럼 브롬톤 상표로 어패럴 사업을 하는 모양이다. 이 팝업 스토어와 브롬톤 전시도 그걸 홍보하기 위한 목적인듯했다. 옷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가죽 스트랩이 눈에 들어왔다. 브롬톤은 가죽 소재의 액세서리가 가장 많은 자전거다. 이건 용도가 뭘까? 점원들중에도 이게 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이 스트랩의 용도에 대해 각자 추측했다. 방영이는 바짓단을 묶는 밴드일 것이라고 했다. 그럼 길이 조절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브롬톤을 접었을 때 풀어지지 말라고 프레임을 결속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둘 다 틀렸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요즘은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면 먼저 현상을 하고, 다음으로 현상된 필름을 스캔해서 그 결과물인 JPG 파일을 이메일로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진관마다 이 결과물의 품질 차이가 있습니다. 컬러 사진의 경우는 대부분 비슷한데 흑백 사진의 경우 차이가 크게 날 때가 있습니다. 샘플 사진을 보겠습니다. 사진관에서 받은 사진입니다. 어두운 부분 계조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색정보가 없어서 포토샵으로 보정을 할 수도 없습니다. 36장짜리 필름 한 롤 전체가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진관에서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오퍼레이터가 직접 보며 노출과 컨트라스트를 조절해서 스캔하기도 합니다. 위 사진은 오퍼레이터가 개입하지 않고 자동으로 일괄 스캔한 결과물일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물을 확인도 하지 않고 보냈을 것입니다. 사진관에 다시 스캔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필름을 찾아와서 제가 직접 디지털 카메라로 스캐닝 했습니다. 좀 멀쩡한 사진이 됐네요. 이 내용은 일전에도 블로그에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디지털 카메라로 필름을 어떻게 스캐닝을 하는지에 관해 물어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디지털 카메라로 필름 스캔 하기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아날로그 필름을 디지털화(Digitizing)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선 ‘필름 디지타이징 어댑터’가 필요합니다. 니콘의 경우 ES-2라는...
사무실 내 책상 창밖으로는 성수역 고가 철로가 보입니다.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그 소리도 들립니다. 늦은 밤까지 야근하는 날에는 그 소리가 더 가깝게 들리지요. 블라인드를 올리면 마치 창문 앞으로 전철이 지나가고 있을 것 같습니다. 퇴근합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월차를 냈다. 오전에는 블루클럽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9천 원짜리 순대 국밥을 먹었다. (이야... 이게 의도한 건 아닌데...) 그리고 주민센터에 가서 사전투표를 했다. 오후에는 이미 한 달 전에 예매해둔 공연을 보기 위해 인천에 갔다. 각 지역에서 공연장까지 직행으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갔다. 셔틀버스를 '꽃가마'라고 하길래 뭔가 버스 외부의 래핑이라도 알록달록하게 꾸민 것인 줄 알았더니 그냥 고속버스였다. 처음 가본 인스파이어 아레나 공연장은 그 주변 시설의 규모는 으리으리하고, 눈을 뗄 수 없는 조명장치들은 어마어마했다. 공연장에서 호텔로 이어지는 아케이드 통로에는 카페와 식당들이 있다. 이 150미터 길이의 통로는 천장과 벽이 LED 디스플레이로 덮여있다. 내가 갔을 땐 숲을 테마로한 영상이 시시각각 화려하게 펼쳐졌다. 숲속에서 시간이 흐르며 낮과 밤의 풍경들이 변하는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이 쇼의 하이라이트는 매시 정각에 시작되는 고래의 등장이다. 작은 바다 생물, 가오리, 돌고래 등등이 지나가고 마지막에 엄청난 크기의 수염 고래가 유유히 지나가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나는 PUB에서 맥주를 마시며 공연 시간을 기다리리다가 이 고래의 유영을 두 번 봤는데 다시 봐도 놀랍고 재미있었다. '아름다움은 우리 시대의 진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공연장 앞 포토존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