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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가 있는 호수=C'est la vie
    이미지 수2
    조그만 동그라미

    해가 바뀌면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대부분 헛된 망상이었다. 현실적이기보다는 남을 부러워한 나머지 그럴듯해 보이는 누군가의 계획을 배끼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도전해 볼 만한 것인지 생각하기보다는 계획을 부랴부랴 세워놓고 일단 시작하면 마지막에 나온 결과물이 그래도 중간은 가겠지 하고 기대했던 것인지, 그조차도 지금은 모르겠다. 당시에 했던 계획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계획을 세우던 순간만은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고, 실제로 그때 세웠던 계획이 어느 정도 실현된 것도 있었다. 일 년이 끝날 무렵 새로운 계획을 세우면서 망한 인생을 리셋하는 것 같아서 안심도 되었고 아마도 당시의 오락가락한 정신에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내 계획이 인생을 리셋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일을 20년 이상 반복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허세가 가득한 인간이라서 다이어리에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자신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자신을 고찰하지 않고 세운 계획은 허공에 그린 그림 같다. 그리는 동시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망한 손짓에 불과한. 4년 전부터인가. 다독을 그만두고 한 권을 읽어도 깊이있는 독서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생각만 했지 어떤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자는 생각이라서 그랬는지 다독과 휘발이 반복되었다. 책이 눈앞 있으면 많이 읽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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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1.2. 집사는 여전히 공주 대접을 받으며 잘 지낸다. (궁금하다는 분이 종종 계셔서) 3. 딸아이가 책을 읽고 필사를 한 지 좀 됐다. 자기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일 년이 넘었다고 한다. 나는 그 아이가 가려는 방향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러나 적절할 때 멈추고 다시 전진할 것을 믿는다. 살다 보면 유턴해야 하는 사정도 생기고, 아예 시동을 꺼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그 아이의 모든 순간을 조용히 응원할 것이다. 아이들은 가만히 놔두면 된다. 부모는 자기 할 일만 잘 하면 된다. 자기 할 일은 다름 아니라 정직하고 선하게 사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 할 일을 잘하는 부모를 보고 삶의 방향을 정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이다. (내가 시종일관 정직하고 선했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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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며칠 만에 본 거울 속 얼굴은 까칠했다. 생각해 보니 뭘 바른 기억이 없다. 꼼꼼하게 세수를 하고 마스크 팩을 붙이고 앉아 차를 마신다. 책도 조금 읽는다.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매우 즐겁고 상쾌한 기분으로 하늘도 한 번 올려다보았다. 마음이 그득하고 흡족하다. 따끈한 스프 한 그릇 먹은 것처럼 속이 편하다. 청명하고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날. 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무의식적으로 살아 버리고 곧바로 망각해 버린 지난날들보다 가치 있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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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퇴근 후 연일 집회에 갔던 딸은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찬 바닥에 장시간 앉았던 탓이다. 어쩌다 일이 여기까지 왔는지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지난 일주일 내내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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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난생처음독서모임_김설 #포천도서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날 2024,12,12 🙇‍♀️ 빈자리 없이 꽉 채워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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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가 있는 호수=C'est la vie
    이미지 수14
    생존 소식

    시절이 혼란한데 사진을 올리는 게 맞나 오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 여기고 포스팅을 씁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모두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운 날씨임에도 대구에서, 인천에서, 각지에서 모여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난생처음독서모임_김설 채그로 스페이스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4다길 31 아리수빌딩 B1 601호 #계엄령 우리가 산에 다녀온 건 계엄이 선포되던 날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인왕산행은 행복했고 충만했다. 헤어지면서 또 오자고 약속도 했다.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을 달래며 쉬다가 뉴스에서 계엄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이날의 사진이 며칠 사이에 오래된 기억처럼 멀어져 버렸다. 사진첩 속 네 명의 뒷모습이 애틋하다.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면, 내란이 성공했다면 당분간 만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이런 일상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요즘 내가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은 적어도 나는 불행한 나라의 국민은 되기 싫다는 것이다. 윤동주문학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 서울한양도성길4코스(인왕구간)인증사진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 #역사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포천_난생처음독서모임_김설 #북토크 내일이네요. 반갑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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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서재가있는호수독서모임 #언어의무게_파스칼메르시어 파스칼 메르시어는 페터 비에리다. 비에리는 나의 인생 책 중 하나인 <자기결정>을 쓴 작가다. 소설을 쓸 때는 파스칼이라는 이름을, 그 외의 책에는 페터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가 이번에는 “우리의 시간을 멈추는 것은 아름다운 문장뿐이었다.”라고 말하며, 문학에 기대어 살아가는 고요한 삶에 관한 장편소설을 썼다. 야심 차게 책을 빌려 집으로 오는 동안 가방을 맨 오른쪽 어깨가 아플 정도로 무거웠다. 무려 629페이지나 된다. 책 읽기를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JTBC와 MBC를 번갈아 보고 있다. 도무지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구성원들의 푸념이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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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시절이 혼란한데 사진을 올리는 게 맞나 오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 여기고 피드를 씁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모두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운 날씨임에도 대구에서, 인천에서, 각지에서 모여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난생처음독서모임_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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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아무도대령에게편지하지않다_가브리엘가르시아마르케스 #헤세가사랑한순간들_배수아 #발레리선집_폴발레리 #산책안에담은것들_이원 #주디스헌의외로운열정_브라이언무어 #당선합격계급_장강명르포 #책스타그램#독서스타그램#책추천#소설추천#서는호수독서모임#독서모임#도서목록#읽기#추천도서#김설의서재#에세이추천#김설의북클럽#에세이추천#심독#글쓰기#인문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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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저녁 먹은 게 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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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무거운 하늘에서 가까스로 햇빛을 찾는다. 집사에게 한눈을 판 사이 식어버린 예가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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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어제의 사진이 하루밤 사이에 오래된 기억처럼 멀어져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왕산에 올랐었다. 사진첩 속 네 명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 애틋하다. 우리의 이런 일상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오늘 아침 내가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은 적어도 나는 불행한 나라의 국민은 되기 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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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가 있는 호수=C'est la vie
    유튜브,팟빵 소식

    설과 이틀간의 토크 김설작가 & 이틀이 책 수다를 떠는 곳입니다. youtube.com 설과 이틀간의 토크 (by 이틀) 에세이 쓰는 김설 작가와 소설 쓰는 이틀 작가간의 책을 빙자한 수다. naver.me (시작하며) 우리가 팟캐스트를 시작하는 이유 김설과 이틀이 팟캐스트를 시작합니다. 읽기와 쓰기라면 할 말 많은 우리, 좋은 책, 재미있는 책, 읽어볼만한 책, 주목하고 싶은 책, 권하고 싶은 책을 소개합니다. www.podbbang.com #설과이틀간의토크 #유튜브 #팟빵 #뽀샵함 2024년을 돌아보면 크게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없다. 좋은 일도 있었고, 없었으면 했던 일도 생겼지만 나쁜 일은 그때 잠시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뿐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좋은 일 역시 운이 따랐다고 여긴다. 56년쯤 살면 한 해 한 해가 특별한 일 없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걸 알면서부터는 널뛰는 감정이 잦아들었다. 나이는 사람을 그렇게 담대하고 무덤덤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 년, 딱 하나 후회되는 것이 있다. (말할 기회가 많아지고 만나는 사람이 늘어서인지) 잡담을 참 많이 했다. 잡담이 많으면 꼭 말실수를 한다. 집에 와서 꼭 후회하는 말. 내가 한 말을 주워 담고 싶어 이불킥한 게 두어 번 된다. 같은 실수를 덜 하기 위해, 잡담할 시간을 줄이고 대신 책 수다 할 시간을 더 만들었다. 고맙게도 동참해 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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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설과이틀간의토크 #유튜브 #팟빵 #뽀샵함 2024년을 돌아보면 크게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없다. 좋은 일도 있었고, 없었으면 했던 일도 생겼지만 나쁜 일은 그때 잠시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뿐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좋은 일 역시 운이 따랐다고 여긴다. 56년쯤 살면 한 해 한 해가 특별한 일 없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걸 알면서부터는 널뛰는 감정이 잦아들었다. 나이는 사람을 그렇게 담대하고 무덤덤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 년, 딱 하나 후회되는 것이 있다. (말할 기회가 많아지고 만나는 사람이 늘어서인지) 잡담을 참 많이 했다. 잡담이 많으면 꼭 말실수를 한다. 집에 와서 곱씹으며 후회하는 말. 내가 한 말을 주워 담고 싶어 이불킥한 게 두어 번 된다. 같은 실수를 덜 하기 위해, 잡담할 시간을 줄이고 대신 책 수다 할 시간을 더 만들었다. 고맙게도 동참해 준 사람이 있었다. 늘 그렇지만 거창한 계획도 없고, 그저 재밌게 놀려고 한다. 팟빵과 유튜브는 프로필 링크에 걸어두었다. @twodays.longm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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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가 있는 호수=C'est la vie
    이미지 수17
    12월이 시작되었네요

    책이라는 피난처가 필요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마다한 적은 없는데 오늘 새벽 만큼은 망설였다. 출발 직전에 봤던 뉴스에서 대설 직격을 맞은 곳이 화성이라고 말했다. 내가 가야할 곳이었다. 도착할 때까지 험난함의 연속이었지만 막상 책이야기를 시작하니까 역시 신이 났다 갑자기 내린 휴교령 때문에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천재지변을 어쩌겠나. 그들의 몫까지 많이 웃고 떠들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앉으니 젖은 신발이 보였다 발이 꽁꽁 얼었다는 걸 지금 알았다. 그때서야 추위와 졸음이 몰려왔다. 고생은 조금 했지만 결과적으로 귀한 독자 여섯을 만났다. #첫눈은 아름답게 시작했지만 과했다. #위매거진에 <추구하는 존재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열네 살 소녀들처럼 물장구를 치면서 까르르까르르 웃어젖히는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수영장에 가득 차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아…이 할머니들처럼 나이 들고 싶다. 본받고 싶은 사람이 전부 이곳에 있었기에 찾을 수 없었던 거구나.’“ 글 김설 @seolcynical 에디터 김수정 * 인터뷰 전문은 wee 38호에서 만나볼 수 있어요. * wee 홈페이지에서도 회원가입 하면 해당 기사를 읽어볼 수 있어요. 𝗠𝗮𝗴𝗮𝘇𝗶𝗻𝗲 wee. 38 되고 싶은 나 위매거진 , 나다운 삶을 기획하는 가족 wee 매거진은 ‘we are enough’의 약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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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아침에 딸이 "엄마! 요즘은 피부 속이 당긴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라고 말했다. "내년이면 28살이야" 라는 말도 덧붙였다. "엄마는 10년이 3년 같아" 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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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주말에 읽을 책이 남았고 넌 내꺼라고 고양이에게 찜 당하는 아침. 마음이 평온합니다. 자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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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책이라는 피난처가 필요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마다한 적은 없는데 오늘 새벽 만큼은 망설였다. 출발 직전에 봤던 뉴스에서 대설 직격을 맞은 곳이 화성이라고 말했다. 내가 오늘 가야할 곳이었다. 도착할 때까지 험난함의 연속이었지만 막상 책이야기를 시작하니까 역시 신이 났다 갑자기 내린 휴교령 때문에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천재지변을 어쩌겠나. 그들의 몫까지 많이 웃고 떠들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앉으니 젖은 신발이 보였다 발이 꽁꽁 얼었다는 걸 지금 알았다. 이제야 추위와 졸음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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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재가 있는 호수=C'est la vie
    이미지 수2
    굴뚝새와 떠나는 정원 일기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그 일대에서 목련 나무가 많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당시의 교정을 떠올리면 다른 나무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오로지 하얗고 탐스럽게 핀 목련과 하룻밤 사이에 전염병이라도 앓은 듯 죽음처럼 엎드린 목련 꽃잎만 기억난다. 그렇게 흐드러지게 핀 꽃이 진한 향기를 내뿜는데도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꽃 따위엔 일절 관심이 없는 소녀였다. 보통의 실내화가 아닌, 얇은 덧신을 신던 학교라 벌레를 밟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바닥만 봤지 목련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위 쪽을 올려다 볼 때는 송충이가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을까 겁을 집어 먹었을 때 뿐이고 작은 날벌레라도 보이면 꺄악 깍 요란스레 비명을 지르는 꼴사나운 계집애였다. 당시 단짝 친구는 양갈래 머리를 땋고 웃으면 반달눈이 되는 애였다. 그 애는 조심스레 까치발을 하고는 꽃의 목부분을 가만히 쥐고 향기를 맡거나 나무 주변을 공주처럼 핑그르 한 바퀴 돈 다음 나뭇잎을 따서 코팅해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는 천상 소녀였다. 걔는 내 어깨에 떨어진 벌레를 손가락으로 튕겨주고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나를 놀리며 지렁이도 지그시 밟아주고 소풍날 김밥 위에 떨어진 송충이도 덥석 집어 멀리 던져 주었다. 자연친화적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지만, 걔는 자연 앞에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작가는 자기 것도 아니고 남의 정원을! 공짜로 가꿔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지지대를 세워주고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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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lcynical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일대에서 목련 나무가 많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당시의 교정을 떠올리면 다른 나무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하얗고 탐스럽게 핀 목련과 하룻밤 사이에 전염병이라도 앓은 듯 죽음처럼 엎드린 목련 꽃잎만 기억난다. 흐드러지게 핀 꽃이 진한 향기를 내뿜는데도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꽃 따위엔 일절 관심이 없는 애였다. 일반적인 실내화가 아닌, 얇은 덧신을 신던 학교라 벌레를 밟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바닥만 봤지 목련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위 쪽을 올려다 볼 때는 송충이가 머리 위로 떨어질까 봐 겁을 먹었을 때 뿐이고 작은 날벌레라도 보이면 꺄악 깍 요란스레 비명을 지르는 꼴사나운 계집애였다. 당시 단짝 친구는 양갈래 머리를 땋고 웃으면 반달눈이 되는 애였다. 그 애는 조심스레 까치발을 하고는 꽃의 목부분을 가만히 쥐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향기를 맡거나 공주처럼 나무 주변을 핑그르 한 바퀴 돈 다음 나뭇잎을 주워 코팅해서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는 천상 소녀였다. 걔는 내 어깨에 떨어진 벌레를 손가락으로 튕겨주고 나 대신 지렁이도 지그시 밟아주고 소풍날 김밥 위에 떨어진 송충이도 덥석 집어 멀리 던져 주었다. 자연친화적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지만, 걔는 자연 옆에 있을 때 독특한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 책의 저자는 자기 것도 아니고  남의 정원을! 공짜로 가꿔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지지대를 세워주는 내 기준에서는 조금 신기한 사람이다. 그렇게 전국을 떠도는 생활이라니, 나는 읽는 내내 힘도 좋으시다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재미있었고 그게 끝까지 읽는 동력이 되었다. 작가는 양갈래 머리를 땋은 어린 시절의 내 친구 같았다. 어떤 책은, 나의 자아상을 점검하게 만든다. 자아 확인을 거치면서 깨닫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인간은 대체 어떤 인간인가? 어릴 때보다는 자연을 좋아하게 됐지만(진짜일까?) 여전히 자연이 무섭다. 딸에게는 엄마가 등산을 하는 건 기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산에 다니면서도 정원이나 풀밭에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한다. 나에게 있어 전원에서의 생활은 공허한 상상에 불과하다. 2000만원으로 시골집을 사서 고쳤다는 인스타그램의 릴스를 홀린 듯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인간이 나다. 내년 봄에 자기의 정원으로 홀연히 걸어들어가려는 친구에게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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