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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의 슬픔 - 누구보다 열등한 학생이었던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

    출판사마다 이렇게 달리 표기해야 할까 페나크(Pennac)를 꼭 페나크로 읽어야 할까 생각했는데, 이 책에는 페낙으로 써 있다. 페나크로 쓴 소설처럼과 몸의 일기가 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문학동네에서는 페낙이라 했는데, 그게 더 맞지 않을까. 본래 이름은 페나키오니라 하지만 페낙을 굳이 페나크로 써야 할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걸 수도. 우리말은 안 그래도 어렵지만, 외국 이름을 제대로 표기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 소설처럼 쓴 독서 이야기(소설처럼)도 재밌었고, 일기처럼 쓴 소설(몸의 일기)도 재밌어서 무슨 책이라도 다 좋을 것 같았다. 누구보다 열등한 학생이었다가 선생님이 되어 학교에 오래 머무른 소설가의 학교 이야기. 재미 없을 수 없겠다. 스스로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열등생과 부모와 선생 들이 공유한 고통, 학교가 빚어낸 그 슬픔의 상호작용에 대해. (21쪽)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 그리고 그로부터 겪게 되는 정신적인 충격을 다루는 책. (23쪽) 재미는 덜 했지만 공감을 많이 한 책 그런데. 기대보다 재밌진 않았다. 여러 가지 끄덕이며 읽을 만했던 정도. 사실, 공감할 수 있는 건 아주 많았다. 나도, 열등생까진 아니어도 학창시절 공부와 성적에 관해서라면 사연이 많다. 누구인들 그렇지 아니할까. 공부가 영 하기 싫을 때가 있지 않나? 놀기도 좋아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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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모른다 - 그럼에도 해맑은 아이들, 끝내 무너진 마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아, 이렇게 아픈 영화인 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봤다가, 무너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언제나 희망의 씨앗을 남겨주는 감독 아니었나? 많이 본 것도 아니라서 어떤 성향인지도 사실 잘 모른다만. 그런 줄 알았다. 이렇게 답 없는 먹먹함과 쓸쓸함을 안겨줄 줄이야.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영화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할 때도, 온몸으로 거부하며 애써 희망을 찾으며 봤지만 쓸모없었다. 안돼. 아냐. 이러지 마. 제발. 모르고 보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영화 왜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성향이 내가 아는 것과는 좀 다른가? 다른 영화에선 어땠지? 궁금해져서, 이것저것 좀 찾아 본다. 나무위키에서는 이 영화의 설명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 일단 장난기 있는 제목과 어린이들이 주인공이라는 기본 설정만으로 접근했다간 멘탈붕괴를 일으키기 쉽다. 왜냐면 실화가 다 그렇듯이 정말로 답이 없는 암담한 이야기이기 때문.' 밝게 보여준다고 밝은 영화는 아니다 아, 내가 바로 그랬다. 아이들이 다 너무 예뻐서, 마음 놓고 봤는데. 엄마가 참 철없는 사람이구나. 세상엔 그런 사람도 많지. 그런데. 볼수록. 뭔가 이상하다. 이 엄마는 너무 심한데. 이러면 안 될 텐데. 저렇게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라고. 그래도 아이들은 예쁘기만 하다. 그래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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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주앙 - 프렌치 오리지널 내한공연을 기다리며, 2005년 프랑스 공연실황을 보다

    돈 주앙 오리지널 온다니 이제 한번 보자 언제 사둔 건지 모르겠다. 노트르담 드 파리 보고 프랑스 뮤지컬에 빠져서, 로미오와 줄리엣 보고 더 빠지고. 십계까지 완전 반했다. 유행처럼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공연이 이어지더니, 목 빼고 기다려도 안 온다. 나는 다 영상물로 보고. 2012년 1월에야 겨우 오리지널 공연을 직접 가서 봤는데, 영어판이었다. 프랑스 뮤지컬을 왜 영어로 해주냐고. 불어가 지닌 맛이 뮤지컬을 더 재밌게 만든 것 같은데. 뮤지컬은 프랑스가 좋은데, 보기 쉽지 않다 프랑스 뮤지컬 가운데 돈 주앙이 있다는 걸 알고, DVD도 있다길래 샀던 것 같다. 이걸 아직도 안 봤다니. 프랑스 뮤지컬도 좋지만, 오페라나 발레가 난 더 좋았나 보다. 앞서 말한 세 작품보다 조금 못한 것도 같고. 특별히 재밌다 말하는 사람도 없고. 와서 해주지도 않고. 잊고 있었나 보다. 그러다가, 마침내. 올해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공연을 해준다고. 이젠 볼 때가 되었구나. 뮤지컬 같은 건, 미리 한번 보고 가는 게 좋다. 생각보다 감동하지 못하더라도, 내한공연은 한번 가볼까 싶다. 프랑스 뮤지컬 보는 건 영 쉽지 않고. 가격도 워낙 비싸서, 예술의전당에서 해줄 때 얼른 가야지. (다른 곳은 대개 더 비싸고, 공연장도 좋지 않다.) 한글 자막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하나 DVD를 틀었는데, 일단 실망. 화면비 4:3으로 된 영상이라 양 옆이 검은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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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아트센터인천 2025 신년음악회 공연후기

    새해를 너무 많이 기념하고 있는가 아트센터인천이 멀긴 하지만 음향이 워낙 좋다.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한다니 올해 신년음악회는 이걸로 가서 봐야겠다. 했는데. 예당도 가고, 천안도 가고. 세 번째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가야지.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2012년 신년음악회 때 만났으니, 13년만이다. 이거 은근, 많이 반갑다. 그때 있던 사람 누가 있을까.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도 있고 지휘자는 그때 그분이 아니었는데, 열정이 넘치는 분이었다. 빌리 뷔흘러. 1995년부터 지금까지? 오래도록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았다니, 연주 실력은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신년음악회에 잘 어울리는 흥과 끼를 보여주었다. 여전히 알록달록 색깔 있는 옷을 입고 나온다. 여성 연주자만 그러긴 했지만, 화려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붉은 옷을 입은 바순 연주자는 처음 본 듯. 좋았다. 색깔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음악과 춤과 노래가 있으면 (세상은 아름다워) 춤이 있는 공연이었다. 마리 브뢰유와 베르나르도 히베이루가 네 번쯤인가, 음악에 맞춰 멋지게 춤을 추었다. 어려운 동작들도 척척, 발레 공연 같았으면 중간에 박수도 몇 번 나왔을 만했다. 신년음악회고 하니, 춤과 함께 더 즐거운 공연이었고 대체로 보기 좋았는데, 마지막 곡이었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특히 좋았다. 곡도 워낙 좋고, 파랗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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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의 응답 - 여자의 몸에 대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들, 남자도 여자도 이 정도는 읽자

    질문과 답변이 아니었어, 맞나? 질의 응답이란 책이 있다고. 아, 이게, 묻고 답하고, 뭐 그런 얘기가 아니었구나. 부제는, '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 아, 그렇다면 더더욱, 한번 읽어볼까. 이런 책은, 읽어볼 생각도 못 했다. '성'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다른 성'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못한 것 같다. 왜 그랬지? 젊은 시절엔 그런 게 더 궁금했을 텐데. 다른 성에 대해 알고 싶은 건 뭐였을까. 그냥 야한 거? 숨어서 몰래 읽을 책은 아닌 것 같으니 의사들이 쓴 책이라, 그렇게 야하진 않다. 물론, 주로 성기 이야기를 썼으니 야하다고 할 수 있지만. 종류가 좀 다른 야함이랄까. 섹스 이야기도 있지만. 일부. 다섯 장 가운데 한 장일 뿐이고 그나마도 분량이 많지 않다. '생식기' 이야기로 시작해서 '분비물, 생리, 그밖의 피'에 대한 이야기, 그 다음에 '섹스' 이야기 조금 해주고, 책의 절반 이상은 '피임'과 '생식기에 생기는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몰래 읽을 그런 종류의 책은 아니란 얘기. 지하철에서 펼쳐들 수 있을까 하는 문제 그래서, 떳떳하게 읽기로 마음 먹었다. 음, 그러나. 이걸 지하철에서 어떻게 펼쳐들고 읽을 것인가. 책 표지를 벗겨보니, 좀 낫다. 이 정도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무슨 책인지 모르겠다. 나처럼 무슨 질문과 답변에 대한 책으로 알겠지. 그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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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일기 - 몸으로 쓰는 남자의 일생, 그 진하고 짠한 이야기 (다니엘 페나크 장편소설)

    책 디자인도 다이어리 같고, 일기로 알았지 이 책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하던 때가 있었다. 몸의 일기라. 흥미롭군. 이런 건 사실 큰 흥미는 느끼지 못할 때 하는 반응이다. 흥미롭게 보이긴 하지만, 아주 재밌을 것 같진 않을 때? 누군가 어렸을 때부터 나이 들었을 때까지 몸에 대한 일기를 쓴 책으로 알았다. 사실 그런 책이 맞긴 한데. 생각과 다른 건, 관찰 일기 같은 책이 아니고 소설이라는 것. 그치. 소설인지 몰랐다. 그건 아주 큰 차이다. 소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니엘 페나크가 썼구나. 이 사람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책 읽기에 대해 쓴 소설처럼을 아주 재밌게 읽었다. 날카로운 쓴소리와 재치있는 웃음이 담긴, 공감할 게 많은 책이었다. 소설처럼의 다니엘 페나크가 쓴 소설이구나 책에 대해, 그리고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책을 읽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돌려 보다가, 내게 특별한 책들을 골라 보기도 했다. 좋았던 책, 당연히 좋을 줄 알았지만 좋지 않았던 책, 좋긴 했지만 다시 읽고 싶진 않은 책. 이것저것, 책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 좋아하지만 그렇게 자유롭게 풀어본 적은 또 별로 없다. 그때 쓴 글의 제목은, 그냥 한번 뽑아봤어, 열두 가지 내 인생의 책. 정신은 됐고, 몸 이야기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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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풀 라이프 -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고른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오래 벼르던 영화들, 이제 보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담아둔 것이 많다. 많이 보진 못했다. 환상의 빛과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서너 편은 본 줄 알았더니, 두 편밖에 못 봤나 보다. 꼭 봐야지 생각하고 있는 영화가 아주 많은데.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브로커, 괴물. 아홉 편인가 보다. 오랜만에 넷플릭스 뒤져 보니 올라와 있는 게 많다. 바닷마을 다이어리하고, 나온 지 오래되지 않은 괴물 정도만 안 보인다. 하나씩 보고 있으면 괴물은 올라올 수도 있겠다.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딱 하나만 고른다면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림보'라 해야 하나, 어떤 '중간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이 죽으면, 마치 학교와도 같은 작은 마을에 일주일 동안 머무르며, 추억을 고른다. 간직하고 싶은 기억 딱 하나를 골라, 그것을 갖고 저 세상으로 간다. 다른 기억들은 모두 잊는다. 단 하나만 고를 수 있다는 것. 그건 참 몹쓸 일이지만, 가장 소중한 추억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에 가깝다. 영화 속 몇몇 사람들에게는, 안 좋은 기억을 두고 갈 수 있다는 것도 축복으로 받아들여진다. 기억 고르기, 추억의 장면 찍기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고르는 데 주어지는 기간은 사흘. 그걸 바탕으로 금요일까지 촬영을 하고, 토요일에 그 추억을 상영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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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 & 일 포모 도로 <비욘드> (아트센터인천 공연후기)

    카운터테너는 음반으로도 거의 듣지 않지만 내가 카운터테너 공연을 보러 가다니. 그것도 혼자, 인천까지, 그리고 내 손으로 R석을 끊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를린스키 누군지도 모르고. 연주곡도 거의 아는 게 없는데. 가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카운터테너 목소리를 실제로 들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이동규 공연도 간 적이 있고. 아무리 가서 들어봐도 난 이 '가성'이 영 좋지 않다.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는 카운터테너 오페라 가수이자,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비보이기도 하고, 인기 유튜버에 만능 엔터테이너 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와서 아주 좋은 가격에 공연을 해준다니, 구경하기 딱 좋지 않겠나. 이참에 한번 들어보자 이것저것 미리 좀 들어본다. 이번 공연에 해주는 비욘드(Beyond)도 듣고. 다른 음반도 몇 개 듣고.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슬픈 성모)는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 동영상도 있어서 재밌게 봤다. 이참에, 안드레아스 숄이나 필립 자루스키도 듣고, 프랑코 파지올리도 들어본다. 카페에 카운터테너 소개글이 올라와 있어서 쭉 들어보는데, 난 역시 카운터테너 좋은 건 잘 모르겠다. 누군가 프랑코 파지올리는 '파지올리'가 아니라 '파졸리'가 맞다고 바로 잡아준다. 애호가들은 이런 집착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도 맞고 나도 종종 따지고 들곤 하지만. 발음을 너무 원래대로 하려는 건 꼭 좋지는 않다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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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천안예술의전당 신년음악회 - 비엔나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 소프라노 임선혜

    금요일 퇴근길 정체를 무릅쓰고 천안으로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임선혜 소프라노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았다. "1월 10일 천안예술의전당에서 뵙겠습니다! ♥" 아, 보러 가야지. 일단 예매. 금요일 막히는 퇴근길을 뚫고 천안에 무사히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도, 올해는 내리 삼일씩 공연 보러 가는 건 좀 피하자 했던 생각도, 다 내려놓고. 임선혜 님이 천안에서 뵙겠다고 하니. 느낌표도 있고, 하트도 있다. 그 누구도 아닌, 임선혜 나중에 알고 보니, 조수미 소프라노가 부산, 울산, 충남, 서울(노원), 또 어디 하는지 모르겠지만, 비엔나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돌고 있다. 이날만, 천안만, 임선혜 소프라노와 함께 하는 것.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안그래도 이번엔 제야음악회나 신년음악회 다 임선혜 님을 뵐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잘 됐다. 노래가 세 곡밖에 없어서 아쉽지만, 세 곡이 어디냐 생각하기로 한다. 임선혜의 목소리로 딱 듣고 싶은 곡들로만 곡들이 다 좋다. 임선혜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할 만한 곡들이다. 그나마도, 잘 모르는 곡이던 슈트라우스 2세의 빈 기질, 왈츠 Op.354가 바뀌었다. 무려, 오페레타 '박쥐'에서 하녀 아델레가 부르는 '친애하는 후작님'. 임선혜의 목소리로 듣고 싶은 곡을 딱 하나 고르라면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바로 그 곡이다. 처음 본 순간을 돌아보자면 재밌는 건,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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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황동규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제1권

    새해가 되었다는 게 그렇게 실감나지 않고.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바뀐 게 없이 똑같은 날이고. 우리끼리 선을 그어서 이제부터 바뀐 거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해가 바뀐 게 좋은 모양이다. 뭔가 새로 시작하고, '새롭다'는 느낌을 자꾸 가져보려 한다. 해가 바뀐다는 건, 또 다시 365개의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거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새로 시작. 좋지 않나? 그동안 이고 지고 있던 것들 그냥 다 툭툭 털고. 새로운 마음으로, 지난 잘못은 조금 잊고, 안 좋았던 일들도 잊고, 하얀 종이 위에 새로 하나씩 써나간 다는 것. 다시 차곡차곡 쌓을 수 있다는 것. "새로운 해는 무얼 가져오지?" "365개의 기회." "과거를 용서한다는 것은 잊는 게 아니다, 미래에 기회를 주는 것이다." - 브론티스 조도로브스키 '한 해가 끝나면, 365개의 기회가 열린다. 바꾸고, 새롭게 하고, 계속 성장하기 위한.' 그런 마음으로, 시집을 하나 읽어보고 싶었다. 시를 읽으면서, 책을 읽는 것도 조금은 여유있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 열매를 거두기보다 씨를 뿌리는 마음. 시작이니까. 마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1권이 책더미 위에 올려져 있다. 지금은 611권까지 나온 그 첫 책. 1978년에 나왔다고.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재판 4쇄로 1996년에 나온 책이다. 책값은 4천원이고(지금 팔리는 같은 책은 12,000원), 최상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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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신년음악회 - 황수미, 김한, 선율, 송민규, 국립심포니, 국립합창단, 예술의전당 공연후기

    어라, 그래도 이건 가야지. (이것도) 새해는 신년음악회로 열어주면 좋다. 지난 해 마무리도 마침 제야음악회로 했다. 그렇다고 신년음악회를 너무 자주 가는 건 또 빛이 바랠 수 있으니 하나만 가자 생각하고, 2012년 신년음악회 때 참 재밌게 본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예술의전당 신년음악회가 연주곡도 연주자도 좋은 구성에 너무 착한 값에 올라왔다. 뒤늦게 들어가 보니, 매진. 취소표 기다리다 1층 그래도 나름 좋은 자리로 하나 건졌다. 그런 뒤에, 임선혜 소프라노의 천안 공연 소식까지 듣고. 결국, 신년음악회는 세 번을 가게 생겼다. 자주 만나니 더 좋게 들리는 작년에 황수미 소프라노 두 번 만났고, 임선혜도 두 번. 1월에 다시 황수미와 임선혜 님을 연이틀 번갈아 만난다. 얼핏 치열한 경쟁 같지만, 황수미 소프라노는 지금껏 네 번 만났고, 임선혜 소프라노는 이번에 가면 스무 번째 만남 같다. 나는 말하자면, 임윤찬은 못 보러 가도 임선혜는 보러 가고 싶은 사람이다. 임선혜를 워낙 좋아해서 그렇지, 황수미도 좋다. 그리고, 이제 목소리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들을수록 좋다. 이번 공연에서 세 곡 들려줬는데, 다 좋았다. 목소리가 참 맑고 예쁘면서도 힘차다. 거의 모든 연주자가 음반으로 들을 때보다 공연장 가서 들으면 좋지만, 성악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또 한 해 풍성하게 보고 듣고 즐기기를 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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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 있는 삶 - 열정, 위험, 불안, 고통, 피하고 싶은 것들과 기질의 부름 (마리 루티)

    이 많은 책 가운데 하나만 읽어야 한다는, 슬픔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다. 내가 읽기 시작하는 책 한 권은 항상 엄청난 경쟁을 뚫게 된다. 사두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대략 천 권은 되는 것 같다. 어느 것부터 읽어야 하나. 한 번에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장 그르니에는 이렇게 말했다. 선택은 자살과 가장 닮은 세상사이다. 왜냐하면 선택은, 현실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가능한 것들을 무효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 그르니에, 절대와 선택에서) 다음 읽을 책을 결정하지 못한, 불안 책이 한 권 끝나가면 벌써 불안하다. 다음에 읽을 책을 아직 골라두지 못한 까닭이다. (또, 선택은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담배 태우던 시절, 담배가 한두 개비밖에 남지 않았는데 새로운 한 갑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의 불안과 비슷하달까. 담배를 끊은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늘 거의 두 갑을 들고 다녀야 해서 주머니가 불룩해지는 거였다. 아무튼. 책을 골라 데려 오는 그 어려운 과정 어디선가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책방의 보관함에 담아 둔다. 꼭 읽고 싶은 책은 메모장을 열어 '읽고 싶은 책'에 넣어 둔다. 중고 책방을 한 번씩 뒤져보면서, 읽고 싶은 책의 깨끗한 중고책이 있으면 장바구니에 담아 둔다. 배송비를 낼 수는 없으니, 2만원이 넘을 때까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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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란 - 재밌게 볼 만은 했지만, 공감도 몰입도 하기 어려웠던, 다만 처절한 영화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 새해 첫 영화는 뭘 볼까, 고민. 이런 건 너무 고민하면 더 어려워진다. 아무거나 보자. 그래도, 아무거나 볼 수는 없으니 뭘 하나 고르긴 해야 하는데. 넷플릭스 영화 1위, 화란? 뭐지? 난 들어본 적이 없다. 모르는 건 아예 모르는 매우 약한 정보력. 이렇게 잘 모르는 건 검색 능력도 떨어지는데. 상도 많이 받고, 칸 영화제(76회)에 초청되기도 했고, 까다로운 영화평론가들도 극찬을 했다고? 낚였다. 두 소년의 진한 탄식, 그리고 패기와 과욕 이동진: 웅크려 늪의 일부가 된 소년과 발버둥 쳐 굴레를 벗으려는 소년의 진한 탄식의 2중주 (3.5/5) 박평식: 패기와 과욕이 뒤엉켜 끈적끈적 (6/10) 음, 이게 극찬이고, 호평인가. 이렇게 정확하게 찾아본 것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무래도 이상해서 확인해보니 이렇게 되어 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덜컥 영화를 보기 시작한 내 잘못이니, 누구도 탓할 수가 없다. 박평식 평론가가 평점을 조금 더 짜게 주는 편이니, 두 사람은 비슷한 정도로 봤다 할 수 있겠다. 박평식 평론가의 별 세 개면, '괜찮은 수작'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별 세 개 반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추천작' 정도 된다.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펼쳐 보이는 영화 이 정도면 볼 만은 한 영화라는 얘긴데, 나는 영 재미 없었다.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봐야 할 다른 많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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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얀 베를린필 1988 제야음악회, 빈필 1987 신년음악회 (블루레이, 17세 키신 협연)

    새해 첫 주말인데 새해 첫 주말. 감기에 사로잡혔다. 목요일 밤부터 어째 몸이 좀 안 좋은 느낌이 있다 싶더니, 금요일 오전에 조금 더 안 좋고. 오후 되니, 정신을 못 차리겠다. 아무래도 고생하지 싶어 병원에도 다녀왔는데. 일단, 아플 만큼은 아파야 조금 잦아들 것 같다. 견디는 수밖에. 금요일 업무를 진짜 겨우 마치고. 얼른 약을 먹기 위해 저녁을 먹고. 조금 걷자 생각한 게, 어쩌다 보니 서강대교를 건너게 되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서강대교 걸어서 건너가보는 건 7~8년 만인 듯. 밤에 건너는 건 처음이다. 이게 은근 무섭다. 마음이 졸아드니, 한참을 건너도 한참 남았다. 정말 세상 쉬운 게 없네, 다리 하나 건너는 것도. 몸도 안 좋은데 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서강대교 건너기 전, 여의도공원에서 찍은 서울달도 하나 올려 본다. 타보진 못했고. 아마, 탈 일 없을 듯. 열기구라고 보통 말하지만, 정확하게는 이게 헬륨가스를 이용한 가스 기구라 한다. 무섭긴 하지만, 멋지다. 사진 한 장 찍고. 언제부터 난 사진 찍는 병에 걸렸을까. 아무래도, 휴대전화 탓인 듯. 블로그 탓인가. 둘 다. 아, 그래서. 주말엔 몸이 안 좋아서 푹 쉬었다. 다행히 예매한 공연도 없다. 아플 때 잘 골랐네. 새해 첫 주말인데 통째로 날려서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잘 쉬었으니. 독감은 아닌 듯, 열도 안 나고. 몸살도 아닌 것 같긴 한데, 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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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등산 및 여행, 블로그 결산: 내가 다녀온 곳들과 237개의 글

    산에도 좀 덜 가고, 여행도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아들과 다녀온 유럽 여행이 컸다. 15박 17일? 평생 그렇게 여행 다녀본 적도 없고, 휴가를 그렇게 길게 써본 적도 없다. 설 앞뒤로 가면 일도 별로 없을 것 같았는데, 그때 마침 시작되는 프로젝트도 있고 회사에 여러 일이 생겨서 안절부절못했던 기억. 그래도 어쩌겠음. 돌이킬 수도 없고, 열심히 놀 수밖에.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3,500km를 돌았다. 하이델베르크 성, 철학자의 길, 슈바르츠발트(검은 숲), 노이슈반슈타인 성, 추크슈피체, 인스부르크 노르트케테, 베르히테스가덴, 잘츠부르크, 할슈타인, 빈(비엔나), 체스키 크룸로프, 프라하, 보헤미안 스위스 천국의 문, 작센 스위스, 드레드덴, 라이프치히, 다시 프랑크푸르트. 프랑스도 잠깐 다녀왔다. 스트라스부르 쁘띠 프랑스. 2,962m 추크슈피체에 오르니 입이 떡 벌어진다.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을 줄이야. 다만 너무 추워서 오래 있진 못하겠더라. 꿈에 그리던 베르히테스가덴, 마침내. 할슈타트도 기억에 진하게 남는다. 여길 언제,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스위스 가고 싶었는데 못 가고, 보헤미안 스위스와 작센 스위스로 대신? 그래도 다 좋았다. 놀랍도록 멋진 풍광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지난 겨울, 처음으로 아이젠을 사서, 이제 드디어 나도 눈 덮인 산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태백산 눈꽃 보러. 이런 걸 직접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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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클래식 음악/발레/무용/연극/오페라/창극/국악 공연 결산: 내가 본 것들

    2013년은 영화를 가장 많이 본 한 해였다. 115편. 2011년은 책을 가장 많이 읽은 해였다. 137권. 2024년은 공연을 가장 많이 본 해가 될 것 같다. 정확히 헤아려 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가장 많이 다녔던 2010년대 초반에도 60번? 아주 넉넉하게 잡아도 70번을 넘진 않았을 것 같다. 2024년에는 공연을 딱 백 번 갔다. 통계를 좀 뽑아 봤다. 어떤 공연을 얼마나 많이 다녔나. 어딜 그렇게 다녔고, 돈은 얼마가 들었을까. (이게 늘 궁금해서 통계를 내서 한번 보고 싶었음.) 구분 횟수 푯값 평균 클래식 66 27,315 오페라 7 31,000 발레 5 26,800 무용 6 18,333 창극 7 24,500 국악 4 23,250 연극 5 21,600 전체 100 26,363 클래식 음악 공연을 많이 갔고. 재즈 공연도 몇 번은 가곤 했는데, 이번엔 없다. 필하모닉스나 스미노 하야토가 조금 뉴에이지나 팝에 가까이 다가오긴 했지만, 우선 클래식에 기반을 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공연은 클래식 음악 좋아하는 사람 아니라도 가서 볼 만하다 생각했다. 국립창극단에 이어서 국립무용단에도 빠지면서, 국립공연도 많이 찾았다. 전체 평균으로 보면 공연 한 번 가서 보는데 드는 돈이 26,363원. 비싸다면 비싸지만,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것들 생각해 보면, 나는 계속 공연을 가겠다는 마음이다. 클래식 음악을 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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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영화 결산: 내가 본 영화 돌아보기

    2024년에 영화는 스물세 편을 봤다. 신기한 건, 2023년에도 그랬고, 더 놀라운 건, 2022년에도 그랬다. 어떻게 해마다 스물세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지. 한 달에 두 편 해서 스물네 편도 아니고, 스물 셋. 희한한 일이다. 헤아려 보기 전까진 전혀 몰랐다. 설마, 내년 아니 올해에도 스물세 편의 영화를 보게 되는 건 아니겠지? (참고로 2021년에는 45편, 2020년에는 74편의 영화를 봤다.) 극장에 가서 본 게 다섯 편인데, 명필름아트센터에서 네 편, 아트하우스모모에서 한 편. 블루레이로 두 편, DVD로 두 편, 넷플릭스로 열 편, 티빙으로 네 편. 본 영화들은 다 재밌었다. 별점 가장 낮게 준 영화 네 편이 패스트 라이브즈, 범죄도시, 서복, 유전인데, 각각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조금씩 있었을 뿐 보긴 다 재밌게 봤던 영화들이다. 다시 본 프라하의 봄이 가장 좋았고, 원작 소설인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다시 읽고 영화도 몇 번째 다시 본 건데, 이렇게 보면 조금 더 세세하게 영화에 담긴 것들이 보여 더 좋기도 하다. 완전 반했던 이민자도 다시 봤는데, 또 봐도 또 재밌긴 했지만 별 다섯 개 인생 영화까진 아닌 것 같아서 별점을 조금 내렸다. 올해 본 영화들은 다 재밌고 좋아서 어느 게 더 재밌다고 골라내기 어려운데, 프라하의 봄과 이민자 말고 또 정말 좋아서 또 보고 싶고 다른 사람들도 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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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독서 결산: 내가 읽은 책 109권, 올해의 책

    2024년에는 109권의 책을 읽었다. 2016년 137권보다는 한참 모자라지만, 2015년 105권을 넘어 지금껏 두 번째로 책을 많이 읽은 해가 되었다. 2019년부터는 일주일에 한 권 정도에서 조금 더 읽거나 덜 읽거나 했는데, 2024년에 어떻게 두 배를 읽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늘 읽던 대로 읽고, 책이 잘 읽혀서 조금 더 읽은 것 같은데. 며칠만 지나면 책이 한 권씩 끝나고 해서 약간은 성가시게 느끼기도 했다. 할 일도 많고, 쓸 것도 많고. 소설 54권, 시집 9권, 신화 1권, 희곡 1권, 만화 1권, 수필/에세이 29권, 철학/심리학 6권, 미술 관련 3권, 종교 2권, 경제/경영 1권, 독일 역사와 기초 독일어 책 1권씩. 서양 미술사는 수필로 넣긴 좀 애매한 것 같아서, 미술 관련 책은 따로 뺐고. 음악은 그냥 수필에 넣었는데, 음악 관련 책 헤아려 보니 8권이다. 소설을 참 많이 읽었다. 한국소설 좋아하는데 아껴둔다고 많이 못 읽고 있었는데,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조금 더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강, 하루키, 헤세, 도스토옙스키, 카프카 몰아 읽기도 좋았고. 티벳 사자의 서, 우리 글 바로 쓰기, 서양 미술사, 모비 딕 같은 책은 읽어야지 하고 오랫동안 생각만 했던 책들인데, 마침내 읽어 뿌듯하기도 했다. 죄와 벌, 데미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책 읽어주는 남자처럼 너무 좋아서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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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 (공연후기)

    8년 만에, 제야음악회 나처럼 음악 좋아하고 공연 좋아하는 사람들이, 뜻깊고 즐겁게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 제야음악회를 가는 것이다. 그래도 한참 못 가다 오랜만에 갔다. 2016년에 간 게 마지막이니 8년 만. 사실, 제야음악회든 송년음악회든 주로 임선혜 나올 때 열심히 갔다. 부천으로 갈까 예당으로 갈까 고민했는데. 부천아트센터가 소리도 좋고, 가격도 좋아서. 하지만, 연주자도 연주곡도 예술의전당이 좋았다. 즐겁게 마무리 할 수 없는 연말이었고 야외 광장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했다가, 공연장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국가애도기간으로 인해 이것도 없어졌다. 제야음악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차분한 마음도 있지만, 새해를 시작하는 들뜬 마음도 같이 있는 공연인데. 이번 공연은 원래부터 대부분 조용한 곡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시작과 끝을 경쾌하게 하고 싶었던 것인지, 첫 곡에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걱정없이! 폴카'(Op.271)가 있었는데. 엘가의 '님로드'로 바뀌었다. 애도나 추모를 위한 음악으로 종종 연주되는 곡이다. 너무 슬프게 울린 님로드 첫 곡이 끝나고, 한석준 아나운서가 간단히 설명을 하고 묵념도 했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지 않도록 진행을 잘 해준 것 같다. 슬픔이 담긴 음악이고, 생각할수록 참 슬픈 사고였다. 추모곡 하나, 묵념 한번으로는, 위로를 전할 수도,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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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잠깐 멈추기, 서 있기, 세상 보기, 아름다운 것들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을 때 '뉴요커'에서 4년인가, 일을 하던 패트릭 브링리는 형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상실과 허무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가'고 싶어한다. 한동안 고요하게 서 있고 싶었다고.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69쪽) 온종일 아름답기만 한 세상으로 그러다 어느 날 브루클린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그는 생각한다. 오랫동안 나는 뉴욕의 훌륭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왔다.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이 아니라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해결책이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가 온종일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속임수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 그렇게 2008년 가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69~70쪽) 영어판 제목과 표지가 더 좋은 것 같은데 그렇게. 십 년을 경비원으로 미술관에서 일하고. 브링리는 뉴욕 도시 여행 가이드로 직업을 바꾼다. 그 십 년을 한 권의 책으로 냈다. 이건 영어 제목이 훨씬 좋다. 번역된 책도 큰 인기를 끌었으니 한글 제목을 잘못 붙였다고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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