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애디 무어는 루이스 워터스를 만나러 갔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된다. 작은 판형으로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짧은 소설의 제목은 너무나 멋지게도, 밤에 우리 영혼은. Our Souls at Night. 가슴 떨리는 제목이다. 그리고 그 만큼 시적으로 흐른다. 한번 들면 놓을 수 없을 만큼, 물처럼 조용히 하지만 쉼없이 흐른다. 시냇물처럼 잔잔한 흐름으로 바다 같은 감동을 주는 소설이었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 섹스는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아니고요. 나야 성욕을 잃은 지도 한참일 텐데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9쪽) 애디 무어는 머뭇거리며 용감한 제안을 한다. 루이스 워터스는 머뭇거리며 용감하게도 제안을 받아 들인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고, 외롭고 쓸쓸하고 아무 일 없는 나날에 작은 파동이 생겨난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뒷골목으로 들어오면 마치 우리가 몹쓸 짓이나 망신스럽고 남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 같잖아요. (13쪽) 각자의 배우자와 사별하고 커다란 각자의 집에서 홀로 보내던 두 노인이 함께 밤을 보내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나누면...
언젠간 다 읽고 말 거야 시리즈를 다 읽고 싶은 책들이 있다.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전집. 펭귄클래식. 문학과지성사 소설 명작선, 한국문학전집.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민음사 모던 클래식, 오늘의 작가 총서.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등등등. 많기도 하다만, 이 정도는 읽어야 소설읽기는 일단락이 될 것 같다. 가끔은 이런 책들을 안 읽고 다른 책을 읽는 건, 죄는 아니더라도 뭔가 불경을 저지르는 느낌이다. 밥 안 먹고 과자를 먹는다거나 학교는 안 가고 학원만 다닌다거나 하는 정도의 죄책감은 든다. 어릴 때 이런 책들은 싹 읽었어야 하는 건데 생각도 하고, 아냐 이런 좋은 책들은 인생을 좀 알고 나서 읽어줘야 하는 거야 생각도 한다. 단편 젊은 느티나무, 장편 임진강의 민들레 강신재 소설집은 문학과지성이나 현대문학에서 나온 것도 있지만, 오늘의 작가 총서가 좋은 이유가 있다. 장편인 임진강의 민들레와 단편 젊은 느티나무가 같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 젊은 느티나무는 첫 문장부터 확 빠져들어서 정신을 추스리기 전에 끝나는 단편이고, 임진강의 민들레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집안의 장대하고 기구한 사연을 그린 대하소설급이다. 몰입이 좀 어려운 인물들이 그려진다 싶었는데, 전쟁이 터진 다음부터는 여명의 눈동자가 떠오를 만큼 흥미진진해진다. 금수저, 금배지, 삐딱한 시선 강신재 씨는 다이아몬드 수...
3대 여성 소설? 드디어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2016년에 오만과 편견을 읽고, 의외로(?) 너무 재밌어서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도 읽어봐야겠다 마음 먹었다. 제인 에어는 몇 달 안에 읽었고, 기대보다 더 재밌길래 폭풍의 언덕도 얼른 봐야지 생각했는데, 칠팔 년이 지나버렸다. 그런데.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은 공통점이 있는 소설들인가? 영국 여성이 쓴 소설이라는 것, 고전의 반열에 오른 19세기 소설이라는 점 정도? 여성 독자들이 많이 읽는 소설이라는 점에선 공통점이 확실히 있긴 하다. 비슷하다는 건 항상 그 큰 차이점들을 놓쳤다는 것 한국/중국/일본이 서양인들 보기 비슷해도 완전히 다 다른 것처럼, 이 세 소설은 분위기도 문체도 담겨 있는 사랑도 다 많이 다르다. 오만과 편견은 보다 순수한 사람들의 순수한 사랑을 다루고 있어 낭만적으로 읽히는 소설이고, 제인 에어는 파란만장 고딕 모험극이다. 폭풍의 언덕은 병적인 사람들의 병적인 사랑과 인생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인물들이 다 아프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해보이지 않는 사람들만 나온다. 인물이 많고 복잡한 것도 아닌데 왜케 헷갈리는지 오만과 편견은 여성다운 섬세함에 끌려 더 재밌게 읽은 소설이고, 제인 에어는 무협지처럼 신나게 읽어제낀 소설이었다. 폭풍의 언덕은 영 몰입하기 어려웠다. 인물들이 영 다가오질 않는다.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인물 관계도를 찾아...
이 작품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두려움, 환희를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보여 준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향해 있던 모든 이의 긴긴밤을, 그 눈물과 고통과 연대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긴긴밤』 속 전언처럼 우리 삶은 더러운 웅덩이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더러운 웅덩이 속에 빛나는 별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이야기한다. 오늘도 “별이 빛나는 더러운 웅덩이”를 타박타박 걷고 있을 아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 아동문학평론가 송수연 별이 빛나는 더러운 웅덩이를 걷는 우리에게 이제 시간이 조금 지나긴 했는데, 주변에서 하나둘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이 보였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건 아이들을 위한 책이건 동화를 굳이 찾아서 읽고 싶진 않았는데, 너무너무 아름다운 책이라며 추천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위에 인용한 구절이 확 마음을 끌었다. 동화 같은 감성을 자극하는, 책표지도 좋았다. 여운 깊은 이야기와 여백 가득한 이미지 긴긴밤은 자신이 코끼리인줄 알았던 코뿔소와 훌륭한 코뿔소가 되고 싶었던 펭귄이, 긴긴밤을 함께 하며 바다를 향해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참 예쁘게 담았다. 내용도 그렇고, 삽화도 그렇다. 이야기의 여운이 그림을 보며 마음속에 서서히 퍼진다. 그림책이라기엔 그림이 많지 않지만, 아름다운 삽화 덕에 마음에 다시 간직하고픈 책이...
사랑을 잃고 사랑을 찾는 일에 관한 책이라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도전적인 제목의 책을 사람들이 자꾸 좋다 한다. 제목을 일단 참 멋지게 붙였다. Why Fish Don't Exist 라는 영어 제목도 멋지고, 번역본도 적절히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잘 지었다. 진화론이나 인식론에 관련된 책일까. 이렇게 인기를 끄는 걸 보면, 도전적이더라도 너무 전문적이진 않게, 쉽고 친근하게 쓴 책이려니 했다. 이 책도, 꼭 읽고 싶긴 하지만 지금 당장 읽어야겠다는 급한 마음이 들지는 않는 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의 책으로 추천한 2022년 화제의 도서로 꼽을 만한 책이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는 궁금증이 가장 많이 생겼던 책이기도 했다.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맛집이, 대체로 정말 맛있기는 하지만 한 시간이나 기다려서 꼭 먹어야만 할 정도로 맛있지는 않더라 하는 생각이 이 책에 대한 기대였다. 좋을 것 같긴 하지만 너무 좋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을 것 같기는 한, 그런 기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기, 회고록, 과학적 모험담 소설은 아닌 걸 알았고, 인생을 담은 과학 에세이 정도 예상했다. 대충 비슷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생물학자의 이야기구나. 역경을 딛고,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경험을 한 이후에, 바닥에서 다시 일어나 한땀한땀 자신이 소중하다 생각하는 작은 일들을 묵묵히 해내서 기어이 ...
한 작가의 책들을 차례대로 쭉 읽는 재미 한 작가의 소설을 이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가끔 더 읽고 싶은 책을 먼저 읽기도 하지만, 대개 나온 차례대로 읽는다. 뭘 더 알아내고 싶어서라기보다, 나는 그게 재밌어서 그렇게 한다. 게을러져서 그런지 뭔가 애써 깊이 생각하는 게 잘 안 되는데, 이렇게 이어서 읽으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머리는 몰라도 마음이 알아채는 것들이 있다. 마음이 알아서 해보라고 나는 그렇게 공급을 해본다. 너무 바로 이어 읽으면 붙거나 엉키기도 해서 올해는 하루키를 읽고 있고, 헤르만 헤세와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있다. 카프카를 읽었고, 이제니의 시집들도 읽었다. 이어서 읽는 게 좋긴 하지만, 너무 따닥따닥 붙여 읽기는 싫다. 하나 끝나면 한숨 돌리고 싶다. 마음이 의무로 느끼지 않게 해줄 필요도 있다. 하나씩 건너뛰며 읽기만 해도 괜찮다. 한 권 읽고 곱씹는 동안 또 다른 걸 읽고. 같은 작가로 계속 읽으면 되새기다 뭔가 걸리거나 얽히기도 하니까. 계획은 싫은데, 책 읽을 계획은 좋다 유리알 유희만 남은 헤세는 이제 조금 쉬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도스토옙스키를 번갈아 읽으면서, 다른 책들도 읽으려던 참이었다. 한국소설을 너무 안 읽으면 또 아쉬우니, 오늘의 작가 총서를 하나씩 끼워넣는다. 나는 계획 세우는 게 참 싫은데, 책 읽을 계획은 좋다. 가만 생각하니, 음악 듣는 계획 세우는 것도...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시집이 좋지 한강 시집은 전부터 읽고 싶었다. 한강의 소설이 조금 불편하게 읽힐 때도, 시는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으로 나온 책은 웬만하면 읽고 싶어진다. 사람이 겉모양에 자꾸 빠지면 안 되는데. 문학과지성사 시집은 언제나 나를 홀린다. 안에 뭐가 들었을까 열어보게 만들고 마는 겉모양이다. 그리고, 대개 시집의 제목은 꼭 그 내용을 궁금하게 만든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무엇을, 언제, 왜 넣어 두었을까. 언제 꺼내서 어떻게 쓸까. 저녁이 뜻하는 건 무얼까. 편안함? 쉼?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면, 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될까. 그런 것들. 우리만 호들갑을 떠는 거였어 한강의 시를 읽으며, 이 시인은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과연 있었을까, 생각했다. 노벨문학상을 꿈꾸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영웅이나 우상이 되고 싶었을 것 같진 않다. 세상을 보고, 내면을 보고, 겉으로 드러난 세상의 속살을 들여다 보고, 사람들의 마음 속을 보고, 또 자기 속에 담긴 것들과 그 안에 더 깊숙이 숨겨진 것들을 보고, 그걸 쓰는 사람. 그게 시인이고. 작가다. 한강은 적어도 그런 사람 같다. 노벨상 인터뷰를 찾아 들어보며, 그 차분함에 반한다. 노벨문학상을 받고, 아들하고 차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겠다는 사람. 나는 작가란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살아가는 아픔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
김사인 시인은 시집을 딱 세 권 냈다. 밤에 쓰는 편지(1987년), 가만히 좋아하는(2006년), 어린 당나귀 곁에서(2015년). 첫 시집 나오고, 두 번째 시집은 19년 만에 나왔다. 대단하다. 19년이라니. 그리고 다음 시집은 9년 만에 나왔다. 그리고 또 9년이 지났고, 네 번째 시집 소식은 아직 전혀 없다.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라 들었다. 그래서 난 그 시집을 차례로 하나씩 들었다. 밤에 쓰는 편지는 시대의 아픔을 썼다. 아픈 시들이다. 아픈 시기였다. 어쩌면 그때는 '저항'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때 같다. 목에 가시가 박혀 있으면, 가시를 빼는 것말고 다른 것부터 할 수가 없다. 그랬다. 그랬던 것 같다. 19년 만에 나온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시집 제목 같은 시가 담겼다. 시인이 세상의 작은 것들에 눈길을 돌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시를 뺐을까? 잘 모르겠다. 가시는 뺐지만 상처는 남지 않았을까 싶다. 큰 가시 몇 개만 빠졌고. 작은 가시들은 여전히 온몸 구석구석 박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얘기만 아니라, 우리 얘기다. 아프고 한심하게도. 나는 이 두 번째 시집의 시들이 좋았다. 좋았던 시마다 옮겨오자니 길어질 것 같아, 우선 하나만 골랐다. 예뻐서. 이런 예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마음껏 예쁜 시를 쓸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 예쁨 속에마저 아픔이 담겨 있긴 하지만 말이...
이해를 포기한 순간 시가 살아났다. 이제니 시인의 세 번째 시집도 이어서 읽는다. 잘 몰라도 뭔가 그냥 읽는 재미가 있어서 자꾸 읽게 된다. 세 권쯤 읽으니 알 것도 같다. 시를 알 것 같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읽어야 재밌는지 알 것 같다. 이제니의 시는 그냥 모르는 채로 읽어야 재밌나 보다. 행간을 읽으려 애쓰지 말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안에 담긴 것들을 잡아내려 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써준 대로 읽으니 재밌다. 여기서 갑자기 왜 이 말이 툭 튀어 나왔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재미가 덜하다. 그래야 재밌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이해를 포기한 순간 시가 살아났다 해야 할까. 그냥 술술 읽고, 잘 모르겠으면 또 술술 읽고 이제는 골라낼 것도 없이 그냥 다 좋다. 어떤 시가 좋은지 골라내려 애쓸 것도 없고, 마음에 쏙 드는 토막이 어딜지 뽑아낼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또 토막내서 가져오는 나쁜 일을 하고야 말 거라는 것도 안다.) 술술 읽고 술술 좋아하기로. 이 시집은 그렇게 읽기로 했다. 잘 모르겠으면, 또 그냥 다시 한번 술술 읽는다. 이렇게 읽으니 읽는 맛이 참 좋다. 아 그 얘기 하려다 못했구나.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말들이 주는 재미를 이제야 느낀다고. 글이 흐르는 재미가 좋은 시 뜬금없다고. 잘 모르겠는 건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뜬금없는 말들이 꽤 튀어나오는 것도 맞기 때문이다. (심...
두 번째 시집은 잘 안 읽혔다. 첫 번째도 그랬었나? 그래도 처음 시집에선 가져올 글토막이라도 꽤 있었는데. 한참 이것저것 가져와 놓고 생각해 보니, 본디 시가 다 그렇지만 이제니의 시는 그렇게 읽으면 안 되는 거였다. 내가 가져온 것들은 시인이 어딘가로 가기 위해 가운데 놓은 징검다리들이었다. 그걸 밟고 시가 말하는 것들을 같이 느껴야 했는데,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징검다리만 밟고서는 예쁘네 좋네 한 것 같다. 할 수 없는 일이다.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것들이 늘 있다. 그때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스물 네 편 정도? 끄덕끄덕 하면서 넘기다가 분실된 기록을 만난다. 좋다. 여러 번 다시 읽어본다. 이제니 시는 결국 토막난 그 징검다리만 두들기고 말 것 같다. 아 참, 끄덕끄덕 한다는 건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하던 대로, 가운데 토막을 가져온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자꾸 하는 거,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 잎들은 눈부시게 흔들리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희미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지금 순간의 안쪽에 있는 것인가. 아니요. 당신은 지금 슬픔의 안쪽에 있어요. 슬픔의 안에. 슬픔의 안에 안에. 마치 거품처럼. 우리는 미끄러졌고 이전보다 조금 유연해졌다. 언젠가 내가 썼던 기억나지 않는 책 언젠가 내가 읽었던 기적과도 같은 책 지금은 그저 이 고통의 고통에 대해...
시를 이렇게 읽으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쏙쏙 빼서 되새기고픈 토막들이 있다. 따로 떼어두면 앙상해지고 뜻도 이어지지 않지만, 전체를 소화하지 못한 형편에 토막이라도 주워들고 이리저리 들여다 보고 있다.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전해오는 느낌이 좋고 입으로 자꾸 오물거리게 되는 말들이 좋다. 아마도 다르게 쓰였을 테지만, 생각으로 맴돌던 것들이 시 안에 들어앉아 아닌 척 자리잡고 있는 모습도 반가웠다. 어감이랄까, 정서랄까, 시를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내가 붙잡고 음미하는 척, 더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이렇게 잘 모르면서도 좋아할 수 있구나, 또 조금은 새로운 경험이다. 치마를 입은 우주 소년과 우비를 입은 지구 소녀. 시를 참 예쁘게 그렸네. 시를 읽을 줄 몰라도, 볼 수 있는 이런 시. 신기할 건 없지만, 귀엽다. 첫 시집 제목으로 쓴 아마도 아프리카부터 한번 들여다 본다. 왜 아프리카지?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를 때 나는 슬픈가 나는 위안이 필요한가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아주 조금 (104쪽) 뜬금없이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는 왜 생각하고 있을까. 동물원에 가서 본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왜 마음속으로 부르고 있을까. 아마도 슬프고 외롭고, 아프겠지. 아프리카는 아프니까 떠오른 낱말이겠지. 아프다고 아프리카 하고 있다고 아프지 않을 것도 아니고, 필요...
계속 '잘하고' 계속 '자라는', 이자람 이번에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이자람의 판소리는 무엇이건 가능하다. 탁월하게 재해석되고, 무대위에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관객과의 호흡이 자연스러워 더 몰입을 이끌고, 우리만의 해학이 가미되어 무장해제 시키고 만다. 말그대로 쥐락펴락, 웃기고 울리고, 이자람이 다 한다. 늘 자라서 '자람'이고, 뭐든지 잘해서 '잘함'이라고. 이자람은 하나의 장르다. 사천가, 억척가, 이방인의 노래, 노인과 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으로 사천가를 만들고,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로 억척가를 만들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 각색으로 이방인의 노래를 만들어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던 이자람. 노인과 바다는 과연 어떨까.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고, 모두 큰 기대를 안고 봐도 만족했던 나의 기대는 허락도 없이 커져만 갔다. 큰 무대, 더 당당하게 빛났던 이자람의 판소리 모두 작은 극장에서만 했는데 1,335석 규모의 LG아트센터 SIGNATURE홀에서는 어떨까. 공연장이 너무 큰 것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기우였다. 무대는 단촐했지만, LG아트센터라는 현대적 공간을 만나 너무 판소리적인 배경을 고집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건 대성공이었다. 단정하게 자리잡은 고수 한 명, 그리고 소리꾼. 이 두 사람은 무대 위의 거인이었고, 대규모 객석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바다속을 형상...
가능하면 원서로 읽고 싶은 욕심 다른 언어는 읽기 좀 버겁고, 영어만이라도 원서로 읽고 싶은 욕심이 크다. 하지만, 한글로 읽기도 시간이 모자란데 원서로 읽는 건 쉽지 않다. 사전 찾느라 자꾸 흐름이 끊기는 것도 문제고, 일단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대략 한 다섯 배 정도는 걸리지 않는가 싶다. 그래도 꼭 영어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있는데, 문체가 간결하여 읽기 쉬운 편이면서도 멋진 영어를 맛볼 수 있다는 서머셋 모옴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들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나 로마 제국 쇠망사도 영어로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나, 분량상 도전해보기 쉽지 않을 듯. 특히 로마 제국 쇠망사는 원서로 읽게 되면 아마 이 책만도 몇 년 읽어야만 할 것 같으니... 드디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다. 어디 적어둔 적은 없지만 버킷리스트에 들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노인과 바다 원서 읽기에 뛰어들었다. 막상 읽기 시작하니 굳이 큰 맘 먹지 않아도 될 뻔했다. 분량이 작고, 단어나 문장이 어렵지 않다. 매력적인 문장이고, 흐름이 무척 좋은 소설이다. 평이한 문장으로 생동감이나 현장감이 굉장히 잘 표현되어 있다. 한번 들면 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길이가 짧은 편이긴 하지만, 원서로 읽었음에도 한 나절 정도에 다 읽을 수 있었다. 근데 이거 무슨 내용이지? 너무 유명한 소설이지만, 내용도 전혀 모르다시피 한 상...
내 마음 속의 무진기행 무진기행을 세 번째 읽었나 보다. 한 번쯤 더 읽었을지도 모르겠고. 누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무엇이냐 물으면 내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이 무진기행이다. 그 별 일 없는 아련함이 마음 한 구석을 저리게도 하고 들뜨게도 한다. 뭐가 그렇게 좋을까.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들춰내지 않은 꿈이 들춰진 소설 같고, 꿈꾸다 말 수밖에 없던 꿈이 담긴 소설이다. 그리고 그 문장들. 안개처럼 희미하지만, 여행처럼 부유하고, 일상처럼 동여매는 문장들. 시처럼 수필처럼, 하지만 소설다운 문장들. 한국 최고의 단편 소설 무진기행에는, 흥미진진한 서사도 있고 매혹적인 묘사도 있다. 글로 그려지는 세상이 있고, 밖으로 스며나오는 내면이 있다. 긴장도 있고 여백도 있다. 단편 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것과, 독자가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게 담겨 있다. 나의 독서경험이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작가들이 김승옥의 단편을 모범으로 삼아 쓰고 있다는 냄새를 맡기도 한다. 딱히 그런 생각을 해보진 않았지만, 김승옥의 글쓰기를 내가 이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넘을 듯 말 듯, 경계에서 찰랑찰랑 나는 찰랑거림이 좋다. 말할 듯 말 듯. 말해진 것도 아니고 말해지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런 표현이 좋다. 어떤 일이 일어난 듯 일어나지 않은 듯. 일어날 것도 같고 일어나지 않을 것도 같고. 그 찰랑임이 긴장을 유발하고 또 그 팽팽...
꼭 한번 만나고 싶었던, 희랍어 시간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타지 않았으면 아마도 아직 못 읽었을 듯.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책과 사람은 인연이 중요하다. 관계는 의지로 되지 않고 인연으로 된다. 희랍어 시간은 꼭 읽겠다는 생각을 예전에는 왜 했을까. 기억나지 않고. 제목이 좋아서. 책 표지가 좋아서. 아마 그런 이유들. 아니었을까. 그 막막하고 먹먹한 세계로 이젠 기꺼이 눈이 점점 안 보이게 되고 있는 남자와,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 재밌다. 이런 데는 재미란 낱말을 쓰기 미안하지만. 느낌이 좋은 책이었다. 좋다는 말도 이상하려나. 아무튼. 한강에 자꾸 빠져든다. 그 알싸한 매력. 떨쳐낼 수 없는 슬픔과 아픔. 시 같은 글. 화자가 자주 바뀌는 것도 싫었는데 이제 익숙해지고 있다. 그 입체감을 즐기고도 있는 것 같다. 라틴어 수업보다 먼 느낌, 희랍어 시간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는 자연과학이 나란히 따라붙더니, 이번에는 희랍어와 그리스 철학이 그 자리에 있다. 나는 과학보다는 철학이 좋고 언어가 좋은가 보다. 이 소설의 나란함이 더 잘 읽혔다.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재미는 바람이 분다, 가라가 더 좋았다. 뭔지 모르겠는 느낌은 희랍어 시간이 좋다. 시 읽듯 소설 읽기에 이제 익숙해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은 다 읽고 나니, 이야기가 (조금은) 있는 (조금은...
크눌프, 삶으로부터의 세 이야기. 1994년 6월에 읽었으니 30년이 넘었다. 이 정도면 다시 읽기가 아니라 새로 읽기나 마찬가지다. 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다시 들었다. 역시 생각나는 게 별로 없다. 초봄 첫 번째 이야기는 초봄이다. 몇 주 동안 병원에서 지내야 했던 크눌프가 나왔을 때는 2월이었고 날씨가 고약했다. 잠시 머물 곳을 찾아야 했던 크눌프는 레히슈테텐에 살고 있는 무두장이 에밀 로트푸스를 찾아 간다. 사람들은 크눌프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자세히 써 있지는 않지만 그가 예의바르고 배려하는 마음을 지녔고 욕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겪은 일도 많고 깊이 생각한 것도 많고, 그러면서도 간섭과 고집은 없고. 물 흐르듯 살면서 바로 지금을 사는 사람. 로트푸스 부인의 유혹에 크눌프는 흔들리지 않고, 어린 하녀 베르벨레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춤을 추러 가게 된다. 두 사람은 고향이 같아 쉽게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 독일 여행 갔을 때 나도 첫눈에 반했던, 슈바르츠발트. 깊은 아름다움으로 온통 둘러싸인 곳이다. 춤과 노래와 비와 산책, 베르벨레는 이제 크눌프에 반했지만 크눌프는 여기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순간 속에 있는 영원을 사는 사람이고, 작은 것에서 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욕심도 집착도 미련도 없고,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롭다. 가진 것은 없지만 가지려는 마음이 없으니 다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 크눌프에 대한 나...
책장이 나타났다. 책이 하나씩 놓인다. 회사에 책이 몇 권 놓이더니, 아예 책장이 들어섰다. 커피를 내리며 한번씩 둘러보게 된다. 어디서든 책을 만나면 단 한 권이라도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있는 것이다.) 하루에 커피를 두 잔 마시면, 책장도 두 번 본다. 아까 봤을 때와 다를 리 없지만, 또 본다. 볼 만한 책은 별로 없다. 사람들이 가져다 놓기 시작했는지, 한 권 두 권 늘긴 했는데, 읽을 만한 책은 보이질 않는다. 참고로 나는 경제나 경영, 자기계발 관련 책도 관심을 갖고, 꽤 많이 읽기도 했다. 아쉽게도, 우리 책장엔 내가 읽을 책도 거의 없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도 거의 없다. 추천할 만한 책은 한 권 보이고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으로는, 짐 콜린스가 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가 보인다. 이 책은 좋다. 가장 좋게 읽은 경영서 가운데 하나. 오래된 책이지만, 특히 사업이나 기획하는 사람은 한번 읽어볼 만하다. 모 은행에선 이 책 이름을 딴 시스템도 있었다. 'G2G'(Good To Great)라고. 업무 프로세스를 좋게 만들어서 생산성을 높이는 프로그램 이름을 이 책에서 따서 붙였다. 아침의 피아노, 철학자 김진영이 쓴 애도 일기 볼 만한 책은 하나도 없구만, 하며 돌아서는데, 아침의 피아노가 보인다. 책 이름이 솔깃하다. 아침. 피아노. 철학자가 쓴, 애도 일...
한 작가의 책들을 차례대로 쭉 읽는 재미 한 작가의 소설을 이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가끔 더 읽고 싶은 책을 먼저 읽기도 하지만, 대개 나온 차례대로 읽는다. 뭘 더 알아내고 싶어서라기보다, 나는 그게 재밌어서 그렇게 한다. 게을러져서 그런지 뭔가 애써 깊이 생각하는 게 잘 안 되는데, 이렇게 이어서 읽으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머리는 몰라도 마음이 알아채는 것들이 있다. 마음이 알아서 해보라고 나는 그렇게 공급을 해본다. 너무 바로 이어 읽으면 붙거나 엉키기도 해서 올해는 하루키를 읽고 있고, 헤르만 헤세와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있다. 카프카를 읽었고, 이제니의 시집들도 읽었다. 이어서 읽는 게 좋긴 하지만, 너무 따닥따닥 붙여 읽기는 싫다. 하나 끝나면 한숨 돌리고 싶다. 마음이 의무로 느끼지 않게 해줄 필요도 있다. 하나씩 건너뛰며 읽기만 해도 괜찮다. 한 권 읽고 곱씹는 동안 또 다른 걸 읽고. 같은 작가로 계속 읽으면 되새기다 뭔가 걸리거나 얽히기도 하니까. 계획은 싫은데, 책 읽을 계획은 좋다 유리알 유희만 남은 헤세는 이제 조금 쉬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도스토옙스키를 번갈아 읽으면서, 다른 책들도 읽으려던 참이었다. 한국소설을 너무 안 읽으면 또 아쉬우니, 오늘의 작가 총서를 하나씩 끼워넣는다. 나는 계획 세우는 게 참 싫은데, 책 읽을 계획은 좋다. 가만 생각하니, 음악 듣는 계획 세우는 것도...
드디어 읽긴 했는데 우리 글 바로 쓰기를 읽으니, 글을 쓰기가 무섭다. 이오덕 선생이 빨간펜을 들면, 글마다 온통 붉게 물들겠다. 나도 나름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할 수 있으면 제대로 쓰자고 늘 노력하는데, 이 책에서 바로잡는 대로 고쳐 쓰자면 너무 힘들 것 같다. 벌써 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엉망이 된 글을 쓰고 살아왔구나. 이대로 고스란하게 우리 글을 바로 쓰면서 살 수야 없겠지만, 일찍 이 책을 읽고 노력하며 글을 써왔다면 지금쯤 훨씬 부드럽고 나은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아이들 잘못은 어른들 잘못인데 초등학생들이 매일마다를 많이 쓰고 있는데, 알고 보니 학교 선생님들이 쓰는 것을 아이들이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다. 중국글자를 모르고 중국글자말을 쓰니까 이렇게 되니 중국글자를 가르쳐서 바로잡을 것이 아니라 아예 중국글자말을 안 쓰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날마다' 하면 될 것을 왜 매일이라 쓰는가? 그러니까 매일마다가 생겨나는 것이다. '매주마다' '매월마다' '매년마다'도 마찬가지이다. (1권 86쪽) 이런 구절을 만나고 나면, 선생님도 불쌍하다. 어디 겁나서 아이들 앞에서 말하고 쓸 수 있겠나. 누구나, 우린 너무 엉터리로 쓰고 있다. 한꺼번에 다 고칠 수는 없겠고, 하나씩 고쳐나가보자 마음 먹는다. 이오덕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다 바로잡지 못해도 하는 데까진 해보자. 무턱대고 순우리말로만 쓰자는 것도 아니고, 쉽고 자...
책을 그만 살 수도 없는 노릇 읽을 책이 몇 권이나 쌓여 있을까? 한 오백 권쯤 되려나? 넘겠지?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그래도 또 산다. 한낮의 우울은 4월 2일에 샀다. 전부터 찜해둔 거였는데, 언제 왜 꼭 읽어야겠다 생각했던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추천되거나 언급이 되어 관심을 가졌을 테고, 책 소개를 휘리릭 찾아보다 꽂혔던 게다. 그 포인트가 어디였는지 그런 게 늘 궁금한데 꼭 생각 안 난다. 생각난 김에 앞으론 그것도 적어둘까 잠깐 고민했지만, 말기로 한다. 너무 많은 걸 적는 건 부작용이 있다. 지금도 메모하는 게 너무 많은 편이다 난. 의외로 잘 읽히는 벽돌책 생각보다 책이 엄청 두껍다. 하드커버에 1,028쪽. 어지간하네. 들고 다니며 읽지는 못하겠다. 읽을 책도 많지만 아무튼 이걸 집어 들었다. 간만에 벽돌책 한 권 읽어 보자. 집에서만 읽은 것치고는 빨리 끝냈다. 일단 재밌다. 우울증 관련된 책이 어떻게 재밌을 수 있는지. 신기하지만 그렇다. 여러 전문용어와 어려운 약이름과 학술적인 내용도 상당히 담겨 있는데도 그렇다. 놀라운 책이다. 정말 많이 놀라고 감탄하며 읽었다. 어떻게 책을 이렇게 쓸 수가 있는 거지. 문학을 전공한 심리학 박사이자 소설가 저자는 앤드루 솔로몬. 일단 나이부터 확인해보자. 1963년 10월 30일생. 이 책이 나온 게 2001년이니 마흔이 되기 전에 쓴 거였다. 저널리스트, 심리학자, 소설...
아름다운 서점, 눈길을 사로잡은 책 한 권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으로 꼽히는 돈트북스(Daunt Books)라는 곳이 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가디언>이 '세계 10대 서점'으로 선정한 곳이다. 책을 잘 파는 서점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좋은 책을 선정하여 집중 배치, 그냥 훑어보려 왔다가 책을 사고 싶게 만든다는 건데, 나도 딱 그렇게 걸려들었다. 그래, 런던의 유명한 독립서점에서 책 한 권 사가자. 내게 제일 좋은 기념품은 책 아니겠는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라는 제목도,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한 브뤼겔의 '눈 속의 사냥꾼(Hunters in the Snow)'의 일부분을 활용한 책 표지도, 입체감 있게 도드라진 하얀 글씨와 부담을 줄여주는 가벼운 두께도, 딱 좋다. 클레어 키건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이 얇은 책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니 후회 없을 거였다. Daunt Books in London 새책을 사도 헌책으로 읽는 독서 습관 책을 새걸로 샀을 땐 바로 좀 읽어주면 좋을 텐데, 나는 꼭 헌책이 되어야 손에 잡히나 보다. 일 년이 지나고, 클레어 키건이 나름 유명세를 타고, 이 작은 책이 번역되어 우리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로 코너에 진열되고, 이웃들이 하나둘 리뷰를 올려주기 시작하고나서야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먼 곳에서부터 시작하자. 에르난 디아스의 트러스트를 읽어볼 계획이었는데, 때마침 데뷔작 먼 곳에서가 출간되며 책을 보내준다기에 받아서 읽었다. 기왕이면 데뷔작부터 읽기. 난 이 데뷔작이 참 좋다. 처음 시작과 그 설렘과 기대를 만난다. 공연도 가능하면 첫날 간다. 준비해온 것들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 무대에 올라온 사람들도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기대 속 긴장을 즐긴다. 결승전보다 난 개막전이 주는 설렘과 흥분이 좋다. 코맥 매카시가 쓴 허클베리 핀이라더니 에르난 디아스는 첫 작품부터 참 어렵고 멋지고 색다른 소설을 썼구나. 코맥 매카시의 소설이 주는 느낌과 비슷한 점이 많다. 개척시대의 거칠고 황량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날카로운 잔인성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무관심과 무덤덤. 생각이 너무 많아서는 살기 어렵고, 고통에 무뎌지지 않아서는 생명을 이어가기 어렵다. 설명보다는 묘사 위주로 건조하게 서술하며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잔인하고 거친 삶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코맥 매카시와 닮았다. 덩그러니, 세상 모르고, 말도 안 통하고 호크(매)라고도 불리우는 호칸은 스웨덴에서 태어나 어릴적 미국으로 온다. 그 과정에서 형 리누스를 잃고, 형을 만나기 위해 형이 말했던 뉴욕으로 가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발걸음을 자기 마음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내딛을 수 없다. 인간의 삶이 원래 다 그렇지, 격동의 시기를 산 사람들은 더 ...
원탁의 기사 이야기 불타올라라 아서 희망이여 빛이여 아득한 하늘이여~ ... 위대한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추억의 애니메이션 히트곡 중 난 거의 첫 손가락에 꼽는 이 곡을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 여자들은 잘 모르고, 나이가 열 살 정도만 차이나도 모르는 것 같다. 딱 그 몇 년, 그 시기에 만화를 보던 남자들만 아는 곡. 나 역시 이 만화를 어느 정도 좋아하고 얼마나 봤는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 그래도 이건 어쩌면 내 꿈 속에 각인된 동경이었다. 희망으로, 빛으로, 아득한 하늘로.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 무협지라도 아이들이 책을 읽었으면 그런 어릴 적 추억 탓인지, 조금은 만화 같은 책 표지 때문인지, 난 이 시리즈가 청소년용인 줄 알았다. 언젠가 읽어야지 생각하고 하나씩, (절판/품절로) 실은 무척 어렵게, 사두고. 아들방에 모셔두었다. 아이들이 이런 책이라면 읽지 않을까. 은하영웅전설과 김용의 무협지와, 아발론 연대기. 결국 아무것도 못 읽혔다. 세상에 둘도 없는 어여쁜 여자들이 계속 나옴 줄리아 오몬드를 보겠다고 영화 카멜롯의 전설(First Knight)을 본 후, 이 책을 꼭 읽어야지 마음 먹었다. 그리고도 거의 삼 년. 시간은 참 빠르게도 흘러만 간다. 드디어, 아발론 연대기를 읽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어라 이거 애들 읽는 책이 아니네. 남녀상열지사가 너무 많이 나온다. 묘사가 자세하진 않지...
바테스란? 바테스가 뭐여? 아, 그게 말이지, 창작비평동인 바테스라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들인지는 나도 잘 모르고, 책을 하나 읽었는데 쓴 사람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 뭔가 멋지더라구. 신들린 사람, 미래를 점치는 사람, 고대 시인을 라틴어로 그렇게 불러서, 바티칸도 거기서 나온 거라네. '분절화되지 않은 통합적 인간의 고대적 전형', 이 소개글 보고 반해서 훔쳐 왔지. 그렇다면 왜 파편들인가? 그런데 왜 파편이나 모으고 있는 거야? 전체와 통합을 추구하지만, 한 번에 그렇게 갈 수 없으니 하나씩 부분을 모아야겠다 생각한 거지. 하나씩 자꾸 모으다 보면 전체를 어림할 수 있지 않을까. 절대 진리에 이를 수 없을 때 (진리에 접근하려는) 성실한 시도만이 가치 있다 생각한 적이 있거든. 파편을 모아서 전체를 그려보자. 알아, 나도 말도 안 된다 생각하지만, 그거 말고 또 뭘 할 수 있겠어. 해보는 거지. 늘 바르게 쓰진 못하더라도 그렇게 1998년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이름을 '바테스의 파편들'로 쓰고 블로그로 넘어와서도 쓰고 있다. (버리기 아까울 만큼) 오래 썼다. 이오덕 선생이 쓴 우리 글 바로 쓰기를 다 읽고 나니. 우리 말 두고 '바테스'를 꼭 써야겠니? 외국말에, 어렵고, 보아하니 설명도 잘 못하고. 더구나, 파편이라니. 꼭 쓰려거든 조각이라 써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재주 없는 글쓰기 좋아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시집이 좋지 한강 시집은 전부터 읽고 싶었다. 한강의 소설이 조금 불편하게 읽힐 때도, 시는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으로 나온 책은 웬만하면 읽고 싶어진다. 사람이 겉모양에 자꾸 빠지면 안 되는데. 문학과지성사 시집은 언제나 나를 홀린다. 안에 뭐가 들었을까 열어보게 만들고 마는 겉모양이다. 그리고, 대개 시집의 제목은 꼭 그 내용을 궁금하게 만든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무엇을, 언제, 왜 넣어 두었을까. 언제 꺼내서 어떻게 쓸까. 저녁이 뜻하는 건 무얼까. 편안함? 쉼?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면, 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될까. 그런 것들. 우리만 호들갑을 떠는 거였어 한강의 시를 읽으며, 이 시인은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과연 있었을까, 생각했다. 노벨문학상을 꿈꾸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영웅이나 우상이 되고 싶었을 것 같진 않다. 세상을 보고, 내면을 보고, 겉으로 드러난 세상의 속살을 들여다 보고, 사람들의 마음 속을 보고, 또 자기 속에 담긴 것들과 그 안에 더 깊숙이 숨겨진 것들을 보고, 그걸 쓰는 사람. 그게 시인이고. 작가다. 한강은 적어도 그런 사람 같다. 노벨상 인터뷰를 찾아 들어보며, 그 차분함에 반한다. 노벨문학상을 받고, 아들하고 차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겠다는 사람. 나는 작가란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살아가는 아픔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
부처님 오신 날 특집, 헤세의 싯다르타 부처님 오신 날 기념으로 싯다르타를 읽기로 했다. 무수히 많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며 그런 생각을 그 동안은 왜 한 번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기특하게도 그런 생각이 떠올라, 역시 오랫동안 벼르던 책을 읽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었다면, 싯다르타를 읽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헤르만 헤세의 책은 이미 읽은 것도 아직 읽지 않은 것도 다 읽고 싶기 때문이고, '기왕이면 정신'이 발동하여 차례대로 읽기를 고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데미안을 읽기 전에 싯다르타를 읽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처님께서 휴일을 안고 오신 덕을 본다. 이런 책은 일단 집어들기만 해도 설렘 헤세도 좋아하고, 인도의 철학, 종교, 문학(?) 다 좋아하면서 싯다르타를 왜 아직 안 읽었을까. 나도 궁금하다. 사실, 난 이걸 이미 읽은 줄 알고 있었다. 기억과 기록을 모두 뒤져본 다음 그게 아니란 걸 얼마 전에야 깨달았지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고 읽을 책은 너무 많다. 일단 사두고. 부처님 오신 날 기념으로 싯다르타를 펼쳐들고 기분이 참 좋았다. 좋은 명분으로 때마침 좋은 책을 읽을 수 있겠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기 전의 설렘과 기다림보다 확실히 책을 펼칠 때의 그런 기분이 훨씬 좋다. 속살을 열어 첫 문장을 대하는 즐거움 집의 그늘진 곳에서, 나뭇배들이 떠 있는 강가의 햇살 속에서, 사라수 ...
카프카와의 첫 만남 아마도 고교시절이거나 대학 신입생 때쯤 되었을 거다. 카프카의 변신을 친구 집에서 만났다. 어딜 가나 책이 꽂혀 있으면 꼼꼼히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에겐 부엌 구경이 집구경인지 모르겠으나, 내겐 책구경이 집구경이다. 어느 출판사, 누구의 번역인지도 기억나지 않고, 책장에 진열된 책을 훑어보다 집어들고 그 자리에서 변신을 내처 읽었다. 충격적이었다. 뭐야 이거, 어느날 갑자기 벌레가 된 얘기를 왜케 진지하게 해. 비정상인데 자연스럽고, 비현실적인데 사실적이었다. 놀라웠다. 이후로 카프카는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었다. 늘 새롭고 생소한 기억력 오랜만에 변신을 다시 읽어보자, 생각했다. 독서기록을 뒤져보니, 변신만 놓고 보면 이번이 벌써 네 번째 독서다. 헐. 언제 그렇게 읽었지. 1992년에 문고판으로 카프카 중단편을 읽었더랬다. 변신만 읽고 카프카를 더 접해보고 싶어서 읽었나보다. 이게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변신 말고도 여러 단편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카프카의 작품세계를 처음 접하는 것만 같다. 보르헤스, 마르케스 등을 열심히 읽던 시절이라 그런가, 어려운 작가라는 느낌도 안 남아있다. 어쩌면 이렇게 완전히 생소할 수가 있지. 머나먼 카프카 카프카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카프카의 소설이 기대보다 내게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책을 계속 읽고는 있...
우리 주변의 이야기라 더 공감 가는 소설 IT 짬밥 좀 먹은 덕분인지 소설이 더 재밌게 읽혔다. 트렐로, 이스터에그 등 개발과 연관된 일을 전혀 접해보지 않았으면 생소할 단어와 설정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 툭툭 나오는 게 더 친근하다. '내성적인 개발자는 대화할 때 자기 신발을 보고 외향적인 개발자는 상대방의 신발을 본다'면서, 친절한 말을 해줬더니 개발자의 시선이 내 운동화 쪽으로 향하더라는 표현을 읽으면서는 완전 빵터졌다. 나보다 오래 개발 관련 일을 했던 지인은, 개발자는 대화할 때 자기 모니터를 보는데 옆자리 모니터를 보면서 이야기하면 상대방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거라 했다. 그냥 재밌다길래 읽었을 뿐인데 난 이 소설이 장편인 줄 알았다. 잘 살겠습니다를 재밌게 읽고,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더 재밌어지길래, 뒷얘기가 궁금해서 이어 뛰어들었더니, 홍콩 비행기표를 샀다더니 갑자기 후쿠오카로 날라간다. 어라. 가만있자. 등장인물 이름이... 안나는 어디 가고 갑자기 지유와 지훈이 나오나? 이게 혹시 단편집이었나? 참, 이 센스로 이 세상 살려니 오십 년째 힘들다. 후쿠오카, 유후인, 나도 가봤지 마침, 후쿠오카는 한번 다녀온 곳이라 또 다시 반갑다. 유후인의 료칸과 유카타. 혼자 소설을 읽으며 괜히 아는 체 하느라 고개를 끄덕여본다. 혼탕은? 경험이 없어서 끄덕일 수 없지만, 아마 동공 확대되며 읽었을 것 같다. 법무팀 송변의 굴곡진...
마침내, 읽다.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아마도 대학교 이삼학년 때쯤부터 읽어봐야겠다 마음 먹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읽자고 책을 사둔 게 1998년, 이제야 결국 읽었다. (읽어야지 하고 삼십 년. 세월 참.) 그땐 중고서점이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으니 새 책을 샀을 텐데, 책장에서 헌 책이 되어버렸다.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고, 이사만 몇 번쯤 했을까. 열 번? 초보자를 위한, 미술 이야기였어. 중간에 몇 번쯤 꺼내들긴 한 것 같은데, 막상 뛰어들지 못했다. 원제는 The Story of Art인데, 서양 미술사라 하지 말고 그냥 '미술 이야기' 정도로 제목을 달아주었으면 어땠을까. 왜냐면, 읽어보니 이게 그리 딱딱한 책도 아니고, 그리 어려운 책도 아니고, 미술의 역사를 썼다기보단 미술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비교적 쉽게 풀어놓고 있는 책이다. 연대기에 따라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쭉 훑었으니 미술의 역사를 알 수 있고, 서양 미술사라는 제목이 잘못된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 딱딱한 제목으로 난 쉽게 뛰어들지 못했던 것 같다. 다 이해 못해도 그 시도를 구경해보자. 완전 전문서적은 아니라 널리 읽히는 책이라고는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극초보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쓰려 노력한 (젊은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건 몰랐다. 서문을 읽으며 기대감이 더 커지고,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읽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럽 여행 가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