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들여다보려면 시집이 좋지 한강 시집은 전부터 읽고 싶었다. 한강의 소설이 조금 불편하게 읽힐 때도, 시는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으로 나온 책은 웬만하면 읽고 싶어진다. 사람이 겉모양에 자꾸 빠지면 안 되는데. 문학과지성사 시집은 언제나 나를 홀린다. 안에 뭐가 들었을까 열어보게 만들고 마는 겉모양이다. 그리고, 대개 시집의 제목은 꼭 그 내용을 궁금하게 만든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무엇을, 언제, 왜 넣어 두었을까. 언제 꺼내서 어떻게 쓸까. 저녁이 뜻하는 건 무얼까. 편안함? 쉼?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면, 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될까. 그런 것들. 우리만 호들갑을 떠는 거였어 한강의 시를 읽으며, 이 시인은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과연 있었을까, 생각했다. 노벨문학상을 꿈꾸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영웅이나 우상이 되고 싶었을 것 같진 않다. 세상을 보고, 내면을 보고, 겉으로 드러난 세상의 속살을 들여다 보고, 사람들의 마음 속을 보고, 또 자기 속에 담긴 것들과 그 안에 더 깊숙이 숨겨진 것들을 보고, 그걸 쓰는 사람. 그게 시인이고. 작가다. 한강은 적어도 그런 사람 같다. 노벨상 인터뷰를 찾아 들어보며, 그 차분함에 반한다. 노벨문학상을 받고, 아들하고 차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겠다는 사람. 나는 작가란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살아가는 아픔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
김사인 시인은 시집을 딱 세 권 냈다. 밤에 쓰는 편지(1987년), 가만히 좋아하는(2006년), 어린 당나귀 곁에서(2015년). 첫 시집 나오고, 두 번째 시집은 19년 만에 나왔다. 대단하다. 19년이라니. 그리고 다음 시집은 9년 만에 나왔다. 그리고 또 9년이 지났고, 네 번째 시집 소식은 아직 전혀 없다.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라 들었다. 그래서 난 그 시집을 차례로 하나씩 들었다. 밤에 쓰는 편지는 시대의 아픔을 썼다. 아픈 시들이다. 아픈 시기였다. 어쩌면 그때는 '저항'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때 같다. 목에 가시가 박혀 있으면, 가시를 빼는 것말고 다른 것부터 할 수가 없다. 그랬다. 그랬던 것 같다. 19년 만에 나온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시집 제목 같은 시가 담겼다. 시인이 세상의 작은 것들에 눈길을 돌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가시를 뺐을까? 잘 모르겠다. 가시는 뺐지만 상처는 남지 않았을까 싶다. 큰 가시 몇 개만 빠졌고. 작은 가시들은 여전히 온몸 구석구석 박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얘기만 아니라, 우리 얘기다. 아프고 한심하게도. 나는 이 두 번째 시집의 시들이 좋았다. 좋았던 시마다 옮겨오자니 길어질 것 같아, 우선 하나만 골랐다. 예뻐서. 이런 예쁜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마음껏 예쁜 시를 쓸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 예쁨 속에마저 아픔이 담겨 있긴 하지만 말이...
이해를 포기한 순간 시가 살아났다. 이제니 시인의 세 번째 시집도 이어서 읽는다. 잘 몰라도 뭔가 그냥 읽는 재미가 있어서 자꾸 읽게 된다. 세 권쯤 읽으니 알 것도 같다. 시를 알 것 같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읽어야 재밌는지 알 것 같다. 이제니의 시는 그냥 모르는 채로 읽어야 재밌나 보다. 행간을 읽으려 애쓰지 말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안에 담긴 것들을 잡아내려 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써준 대로 읽으니 재밌다. 여기서 갑자기 왜 이 말이 툭 튀어 나왔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재미가 덜하다. 그래야 재밌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이해를 포기한 순간 시가 살아났다 해야 할까. 그냥 술술 읽고, 잘 모르겠으면 또 술술 읽고 이제는 골라낼 것도 없이 그냥 다 좋다. 어떤 시가 좋은지 골라내려 애쓸 것도 없고, 마음에 쏙 드는 토막이 어딜지 뽑아낼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또 토막내서 가져오는 나쁜 일을 하고야 말 거라는 것도 안다.) 술술 읽고 술술 좋아하기로. 이 시집은 그렇게 읽기로 했다. 잘 모르겠으면, 또 그냥 다시 한번 술술 읽는다. 이렇게 읽으니 읽는 맛이 참 좋다. 아 그 얘기 하려다 못했구나.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말들이 주는 재미를 이제야 느낀다고. 글이 흐르는 재미가 좋은 시 뜬금없다고. 잘 모르겠는 건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뜬금없는 말들이 꽤 튀어나오는 것도 맞기 때문이다. (심...
두 번째 시집은 잘 안 읽혔다. 첫 번째도 그랬었나? 그래도 처음 시집에선 가져올 글토막이라도 꽤 있었는데. 한참 이것저것 가져와 놓고 생각해 보니, 본디 시가 다 그렇지만 이제니의 시는 그렇게 읽으면 안 되는 거였다. 내가 가져온 것들은 시인이 어딘가로 가기 위해 가운데 놓은 징검다리들이었다. 그걸 밟고 시가 말하는 것들을 같이 느껴야 했는데,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징검다리만 밟고서는 예쁘네 좋네 한 것 같다. 할 수 없는 일이다.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것들이 늘 있다. 그때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스물 네 편 정도? 끄덕끄덕 하면서 넘기다가 분실된 기록을 만난다. 좋다. 여러 번 다시 읽어본다. 이제니 시는 결국 토막난 그 징검다리만 두들기고 말 것 같다. 아 참, 끄덕끄덕 한다는 건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하던 대로, 가운데 토막을 가져온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자꾸 하는 거, 사는 게 다 그런 거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다. 잎들은 눈부시게 흔들리고 아무것도 아닌 채로 희미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인가. 나는 지금 순간의 안쪽에 있는 것인가. 아니요. 당신은 지금 슬픔의 안쪽에 있어요. 슬픔의 안에. 슬픔의 안에 안에. 마치 거품처럼. 우리는 미끄러졌고 이전보다 조금 유연해졌다. 언젠가 내가 썼던 기억나지 않는 책 언젠가 내가 읽었던 기적과도 같은 책 지금은 그저 이 고통의 고통에 대해...
시를 이렇게 읽으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쏙쏙 빼서 되새기고픈 토막들이 있다. 따로 떼어두면 앙상해지고 뜻도 이어지지 않지만, 전체를 소화하지 못한 형편에 토막이라도 주워들고 이리저리 들여다 보고 있다.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전해오는 느낌이 좋고 입으로 자꾸 오물거리게 되는 말들이 좋다. 아마도 다르게 쓰였을 테지만, 생각으로 맴돌던 것들이 시 안에 들어앉아 아닌 척 자리잡고 있는 모습도 반가웠다. 어감이랄까, 정서랄까, 시를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내가 붙잡고 음미하는 척, 더듬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이렇게 잘 모르면서도 좋아할 수 있구나, 또 조금은 새로운 경험이다. 치마를 입은 우주 소년과 우비를 입은 지구 소녀. 시를 참 예쁘게 그렸네. 시를 읽을 줄 몰라도, 볼 수 있는 이런 시. 신기할 건 없지만, 귀엽다. 첫 시집 제목으로 쓴 아마도 아프리카부터 한번 들여다 본다. 왜 아프리카지?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를 때 나는 슬픈가 나는 위안이 필요한가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아주 조금 (104쪽) 뜬금없이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는 왜 생각하고 있을까. 동물원에 가서 본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왜 마음속으로 부르고 있을까. 아마도 슬프고 외롭고, 아프겠지. 아프리카는 아프니까 떠오른 낱말이겠지. 아프다고 아프리카 하고 있다고 아프지 않을 것도 아니고, 필요...
시간은 기억마다 다르게 흐르고 어떤 시간은 더디 간다. 이 년쯤 된 것 같은 일이 오륙 년쯤 전이기도 하지만, 일 년 반도 안 된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진은영의 첫 시집(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었던 게 일 년 반이 되지 않았고, 내용도 감상도 기억 나는 게 거의 없다. 그 시집이 좋아서 나는 진은영 시인이 니체에 관해 쓴 책도 사서 읽었다. 아마 그때쯤 이 시집(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십 년 만에 나온 시집이었고, 진은영의 시를 기다리고 있는 독자가 이렇게 많았었나 놀란 기억이 있다. 봄, 슬픔, 문학, 시인의 독백, 그리고 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에 일곱 단어가 명시되어 있었던가, 모르겠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의 소개글에 왠지 모르게 그게 적혀 있다. 기억하지도 못할 것 같고, 예전 시집을 다시 읽어도 이걸 나는 못 찾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일단 적어본다. (사실 나는 바로 그런 용도로 블로그를 쓴다.) '봄, 슬픔, 자본주의, 문학, 시인의 독백, 혁명, 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이라는 시집이 이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시들을 소개하고 있었던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이렇게 이 시집을 소개하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 읽기 시작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오래된 거리 같은 나 혹은 너 혹은 사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일단 제목이 참 좋다...
남는 시간을 잘 쓰는 게, 잘 사는 거 서초역에서 교대역 사이, 고객사 미팅이 끝나고. 신논현역 모임 약속까지 두 시간이 조금 넘게 남았다. 코로나 등으로 오래 만나지 못한 지인들이 그 사이 어딘가 많이 있긴 한데, 오랜만일수록 불쑥 연락해서 지금 차 한 잔 하러 가도 되냐 묻기 애매하다. 사무실로 복귀하자니 거의 바로 또 나와야 할 것 같고. 일단 조금 걷자. 애정하는 대형서점도 중고서점도 가까이 있는 강남역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친구라면 불쑥 찾아가도 좋겠지 역시 오랜만이긴 하지만, 친구가 근처에 있던 곳을 지난다. 친구라면, 오랜만이라도 불쑥 찾아갈 만하다. 아직 있을까? 없다 하더라도 이참에 통화라도 한번 해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 어, 종각으로 옮겼다고? 5년? 오래 됐구나. 하긴 가만 헤아려보니 그 친구 본 지 7년쯤 된 것 같다. 요샌 뭐 좀 간만이다 하면 툭하면 5년, 10년이다. 그래, 덕분에 목소리 한번 들었네. 잘 지내고, 다른 친구들 모아서 얼굴 한번 보자. 이러고 또 십 년 가는 건 아니겠지? 책을 살 때는 중고서점으로 중고서점 검색을 했더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가 있다. 잘됐다, 이거 은근 상태 좋은 중고책 안 보이던데. 얼마 전 영문학 교수로 있는 후배와 또 다른 후배를 만났는데, 미국 문학을 주로 한다니, 미국 작가 누가 있지, 막상 이름을 대라면 누굴 대야 할지 모르겠네, 헤밍...
시에 대한 몹쓸 동경이 또 다시 책, 이게 뭐라고였을까? 아니,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였던 것 같다. 황지우의 몹쓸 동경이 그저 언급되었는데, 몹시 읽고 싶어졌다. 몹쓸 동경에 대한 몹쓸 동경이 생겼다고, 그런 말장난은 그만하기로 했는데 잘 안 고쳐진다. 시집 한 권 정도라면 새책을 살까 하다가, 혹시 뒤져보니 집에서 가까운 중고서점에 최상 등급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시에 대한 동경이 향한 곳 우리 세대에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이성복이나 황지우를 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기형도, 진이정도 있지만 작품수가 워낙 적고, 윤동주, 김소월은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을 걸러낼 수 없었고, 지금에야 류근, 심보선이 읽히지만, 그땐 그랬다. 최승자나 허수경의 시도 대표성을 띠었지만, 시인을 떠올릴 때 나는 왠지 이성복, 황지우를 떠올렸다. 이성복의 시집을 하나씩 읽으며 난, 내가 지금 시를 읽을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 확인했다. 한 번은 더 만났어야 했을 황지우 시집 시를 동경하지만 막상 시를 많이 읽지 않았던 나는, 1983년에 나온 황지우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1994년에 사두고 2014년에야 읽었다. 그 아픔들이 여전하고, 읽으며 또 내내 아팠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시적 감동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고. 그렇게 내려두고 다시 황지우를 들지 못했다. 몹쓸 동경이 생긴 후, 다시 ...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띵똥 꿈꾸는섬님이 바테스님께 보내신 "아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책 선물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하긴 요즘 세상에 안 되는 게 없지. 주소를 입력하고 이틀 뒤였나, 책이 왔다. 누구의 어떤 시집일지 모르지만, 기대감이 생긴다. 가장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이웃이 보낸 책이라면, 내가 좋아할 가능성이 크다 예상해 본다. 내 취향을 아마 나만큼, 어떤 부분에서는 나보다 더 객관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다. 응원하고픈 시인이려니 하지만, 내가 어떤 의도대로 리뷰를 쓰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아시는 분이다. 시인의 시선과 호흡에 나를 맡겨본다. 좋을 거야, 일단 긍정으로 방향이 잡힌 채로 읽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처음부터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시집이었다. 너무 어렵지 않지만 너무 쉽지 않고, 내면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 길을 잃지도 않고 겉만 핥고 트렌디하게 우쭐하는 가벼운 시도 아니었다. 간결한 생각들이 창조적으로 고개를 내민다. 규칙과 불규칙을, 연상과 비연상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치고 빠지고 시치미 떼는 시인의 모습이 재밌다. 시 한 잔의 고마운 권유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시인의 독특한 시집을 읽고 난 뒤로 거의 몇 달 째, 재미 없는 책을 들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책에 빠질 마음이 들지 않는 시기에는, 책 선택도 대개 안 좋다. 좋은 책을 선택하면 독서를 피하기 어렵다는 걸 내 무의...
심보선 시집을 읽은 적이 없더라. 몰랐다. 그냥 기억 속에 맴돌기만 했던 이름이었구나. 관심 목록에 올라 있기만 했던 거였구나. 처음이라 생각하니 또 다른 기대가 생긴다. 백지에서 시작하는 건 좋은 일이다. 시집을 펼치고 시를 하나씩 맛보는데, 느낌이 좋다. 나같은 불량 독자가 시를 대하는 데 있어, 느낌은 아주 중요하다. 아니, 그게 전부라 말해도 좋겠다. 우리는 시를 분석하지 않는다. 난 대체로 이해도 포기하고, 그저 느낌만 찾는다. 감상이 전부다. 그나마도 통째로는 소화도 안 되고, 일부 통하는 걸 찾을 뿐이다. 그 작은 소통과 공감이, 내가 시에서 찾는 전부라 말할 수 있다. 때로 시인의 한숨이, 또 그 절망이, 오히려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된다.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전날 벗어놓은 바지를 바라보듯 생에 대하여 미련이 없다 이제 와서 먼 길을 떠나려 한다면 질투가 심한 심장은 일찍이 버려야 했다 태양을 노려보며 사각형을 선호한다 말했다 그 외의 형태들은 모두 슬프다 말했다 버드나무 그림자가 태양을 고심한다는 듯 잿빛 담벽에 줄줄이 드리워졌다 밤이 오면 고대 종교처럼 그녀가 나타났다 곧 사라졌다 사랑을 나눈 침대 위에 몇 가닥 체모들 적절한 비유를 찾지 못하는 사물들 간혹 비극을 떠올리면 정말 비극이 눈앞에 펼쳐졌다 꽃말의 뜻을 꽃이 알 리 없으나 봉오리마다 비애가 그득했다 그때 생은 거짓말투성이였는데 우주를 스쳐 지나는 하나의...
공감할 준비는 이미 완료, 상처적 체질이라니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만, 류근 시인의 상처적 체질이 상당한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꾸준히 읽히는 걸로 알고 있다. 시집이 읽혀봐야 얼마나 읽히겠냐만. 아무튼. 뭐가 있었나? 세상사에 어두운 나는 어느 시기에 어떤 일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통 어둡다. 어느 순간엔가 사람들이 류근 시인 이야기를 했고, 상처적 체질이 눈에 들어왔고, 한번 눈에 보이니 자꾸 보였던 것 같고, 제목부터 느낌이 확 오는 이 시집이 꼭 읽고 싶었고, 상처입은 영혼들이 체질적으로 상처투성이인 시인에게 위로받는 게 뭔가 너무 지지리궁상 같아서 조금은 묵혀두었다가 읽자고 결심 아닌 결심을 마음먹었던 것 같다. 18년 만에 첫 시집이라고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류근 시인은 2010년에 첫 시집을 세상에 낸다. 그게 바로 이 시집, 상처적 체질이다. 워낙 활동을 안 하니, 원래 부자다, 가난한 천재다, 천하의 한량이다, 극과 극의 소문으로 신비주의에 쌓인 시인으로 살았나본데, 인터넷을 좀 뒤져보니 이젠 여러 활동을 하고 있나보다. 페이스북도 열심히 하고, 산문집도 두 개나 냈고, 모르고 있었는데 2016년에는 두 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도 냈다. 시인의 시가 꼭 마음에 들지만, 산문집은 좀 뒤로 두고 어떻게든 이별은 읽어봐야겠다. 시인의 산문을 자꾸 접하게 되면, 시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