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202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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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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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연습 - 한국 단편 소설의 최고봉, 김승옥의 무진기행

내 마음 속의 무진기행 무진기행을 세 번째 읽었나 보다. 한 번쯤 더 읽었을지도 모르겠고. 누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무엇이냐 물으면 내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이 무진기행이다. 그 별 일 없는 아련함이 마음 한 구석을 저리게도 하고 들뜨게도 한다. 뭐가 그렇게 좋을까.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들춰내지 않은 꿈이 들춰진 소설 같고, 꿈꾸다 말 수밖에 없던 꿈이 담긴 소설이다. 그리고 그 문장들. 안개처럼 희미하지만, 여행처럼 부유하고, 일상처럼 동여매는 문장들. 시처럼 수필처럼, 하지만 소설다운 문장들. 한국 최고의 단편 소설 무진기행에는, 흥미진진한 서사도 있고 매혹적인 묘사도 있다. 글로 그려지는 세상이 있고, 밖으로 스며나오는 내면이 있다. 긴장도 있고 여백도 있다. 단편 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것과, 독자가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게 담겨 있다. 나의 독서경험이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작가들이 김승옥의 단편을 모범으로 삼아 쓰고 있다는 냄새를 맡기도 한다. 딱히 그런 생각을 해보진 않았지만, 김승옥의 글쓰기를 내가 이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넘을 듯 말 듯, 경계에서 찰랑찰랑 나는 찰랑거림이 좋다. 말할 듯 말 듯. 말해진 것도 아니고 말해지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런 표현이 좋다. 어떤 일이 일어난 듯 일어나지 않은 듯. 일어날 것도 같고 일어나지 않을 것도 같고. 그 찰랑임이 긴장을 유발하고 또 그 팽팽...

2020.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