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옌스 호닝의 '돈을 갖고 튀어라' 지난달 29일 덴마크에서 이슈가 되는 한 사건이 발생했다. 덴마크 쿤스텐 올보르 현대미술관에 걸린 ‘하얀 캔버스 2점’ 때문이다. 미술관에 하얀 캔버스라니, 그리고 그 캔버스 위에 무언가 뜯어낸 듯한 자국이 있다니, 이는 모두를 혼란에 빠트렸다. 작가의 실수 혹은 미술관 관계자의 실수일까? 아니면 진짜 예술 작품일까? 과연 이 이슈에는 어떤 사정이 있을까. 답을 먼저 말하자면, 이 하얀 캔버스는 작품이 맞다. 하얀 캔버스가 미술관에 걸리게 된 사정은 이렇다. 올보르 현대미술관은 Work It Out을 주제로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탐색하는 전시회를 열기 위해 작가를 찾던 중, 덴마크 예술가 옌스 호닝(Jens Hanning)에게 연락을 취했다. 평소 옌스 호닝은 노동, 권력, 불평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었다. ▲ 미술관 측에서 요청한 옌스 호닝의 작품 미술관 측은 그의 이전 작품 중, 과거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액자에 넣어 만든 작품을 재현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작품에 쓰이게 될 현금을 호닝에게 빌려주고, 2022년 1월에 그 금액을 다시 돌려받는다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작품 제작과 전시에 대한 대가는 따로 3,900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전시 개막을 앞두고 도착한 호닝의 작품은 앞서 언급했듯 텅 빈 하얀 액자였다. ...
돌아온 KIAF SEOUL 지난 주말, 삼성동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국 국제아트페어, KIAF SEOUL를 찾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KIAF는 2002년부터 시작된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아트페어다. 지난해는 예기치 못한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진행됐다. 하지만 올해는 20회를 맞이한 만큼, 다시 오프라인에서 예술 애호가들을 맞이했다. 국내 유수의 갤러리는 물론, 해외 유명 갤러리까지 총 10개국 170개 갤러리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특히 올해 KIAF의 인기가 심상치 않았다. 2년 만에 직접 컬렉터를 찾아온 대규모 아트페어라는 점에서 인기를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숫자다. 5일간 열린 KIAF에서 거래된 금액은 650억 원이다. VVIP만을 초대한 첫날인 13일에만 350억 원이 판매됐다. 오픈 6시간 만에 2년 전 KIAF 전체 기간에 판매된 총 금액인 310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일반 관객에게 오픈되기 전 방문할 수 있는 VIP, VVIP 티켓을 구하기 위한 중고거래도 활발했다.궁금한 마음으로 마지막 날인 17일, KIAF로 향했다. 일반 관객 대상 티켓도 전일 매진되는 탓에 몇 번을 새로 고침 해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었다. 과연 2019년의 KIAF와 어떤 점이 달라졌고, KIAF를 찾는 컬렉터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둘러보기로 했다. MZ는 예술에 투자한다 @KIAF SEOUL...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칠레 산티아고 출신으로 2016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여겨지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이다. 그는 일정 부분은 건축가가 짓고 나머지 부분은 입주하는 사람들이 채워나가야 한다는 인도주의*적인 건축 철학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동등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 인류의 공존을 꾀하고, 복지를 실현시키려는 박애적인 사상이다. 이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한 그의 건축 프로젝트가 바로 ‘반쪽의 좋은 집(half of a good house)’이다. 이는 저가 주택 건설에 대한 제한된 예산과 자원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혁신적인 접근일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함으로써 도시의 주거환경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바꾸고 향상시키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이다. Alejandro Aravena, Villa Verde Housing in Constitución(2013), Chile Alejandro Aravena, Villa Verde Housing in Constitución(2013), Chile 위의 사진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설계한 좋은 집 반쪽, 아래 사진은 입주자들이 채운 주택의 반쪽이다. 이 프로젝트는 칠레 이기케의 슬럼화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한 공동주택 사업의 일부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부분의 건축가는 한정된 정부의 보조금으로 값싼 부지에 넓은 집을 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뮤지엄 산 지난 주말, 오래 기다려온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뮤지엄 산은 작품을 감상하고 머무르는 미술관이자 풀숲, 그 뒤로 이어진 산의 풍경과 매끄럽게 어우러지는 자연의 공간이다. 몇 년 전, 사무실 책상 위에 쌓여가는 잡지 속에서, 나는 한 사진에 마음을 빼앗겼다.모 브랜드의 홍보팀으로 일하던 나는, 다양한 잡지를 정리하곤 했다. 매달 수십 권의 잡지가 며칠을 간격으로 도착했고, 책상엔 매번 잡지로 만든 산이 높아져만 갔다. 소속 브랜드와 경쟁사가 내놓은 신제품, 트렌드를 빠르게 훑어보는 중간중간, 좋아하는 인터뷰와 기사를 조금씩 찾아 읽었다. 새로운 전시와 아티스트, 미술관 소식을 다룬 기사를 빼놓지 않았다. 나중에 더 집중해 읽어보기 위해 쪽수를 다이어리에 적어 두곤 했다.그중에 가장 마음 깊이 남은 건 ‘뮤지엄 산’이라는 공간이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다가, 그 존재를 알고 산길을 따라 깊숙이 달려온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공간 같았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건물이었지만, 자연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모습이 좋았다.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공간, 산속에 숨겨진 미술관, 뮤지엄 산에 꼭 가보고 싶었다. 안도 다다오: 빛과 조화를 그린 건축가 [나는 건물 본체뿐만 아니라, 부지 전체를 Museum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여기에 와서 하루를 보내면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대중들에게 미술이 가장 흥미롭게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미술과 돈이 만났을 때’와 ‘미술과 범죄가 만났을 때’가 아닐까? 만약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이 다큐멘터리가 입맛에 맞을 것이다. 제목은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 (Made You Look: A True Story About Fake Art)>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미술품 사기 사건을 다룬다. 다큐멘터리 <당신의 눈을 속이다: 세기의 미술품 위조 사건> 포스터 이 사기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65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뉴욕의 명망 있는 갤리러인 노들러 갤러리(Knoedler Gallery)가 1994년부터 20년에 걸쳐 판매한 약 60여 점의 작품들은 모두 위작이었다. 노들러 갤러리의 전 관장인 앤 프리드먼(Ann Freedman)은 글라피아 로잘레스(Glafira Rosales)라는 자칭 미술품 중개인을 통해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과 같은 20세기 최고의 화가들의 작품을 샀다. 그리고 모두가 진품이라 믿고 있었던 그 작품들은 화가이자 수학 교수였던 첸 페이선(Pei Shen Qian)이라는 사람이 그린 위작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위작들은 20년에 걸쳐 총 8천만 달러(약 900억 원)에 팔렸고 작품 구매자는 일류 컬렉터뿐 아니라 갤러리와 유명 미술관도 포함됐다. (왼쪽부터) ...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로,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데 스테일(De Stijl) 운동을 이끌며 추상 형식을 통해 보편적인 실재(reality)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대중에게도 매우 친근한데, 그 이유는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이 건축, 디자인, 패션 등 생활 속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은 자연 세계의 것들, 곧 물질적인 것들은 계속해서 변하므로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우리 안의 ‘불변하는 어떤 것’을 중시했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불변하는 어떤 것’이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실재의 개념이다. 이 실재는 우주의 보편적인 원리이며, 몬드리안은 이를 통해 우리가 모든 것과 단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만의 사상을 통해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1878-1935)와 함께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 몬드리안의 '조화' - 대립간의 균형 몬드리안의 글에 따르면, 조형적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극단적 요소로는 ‘외면과 내면’, ‘물질과 정신’, ‘개인과 보편성’ 그리고 ‘여성적 요소와 남성적 요소’ 등이 있다. 몬드리안은 이러한 극단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연관되고 관계되...
한나 회흐(Hannah Höch), (1889-1978) “바이마르 공화국의 맥주배를 다다 부엌칼로 자르자.” 해당 슬로건은 독일 다다(Dada) 예술가 한나 회흐(Hannah Höch)의 작품 제목이다. 제목은 무언가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더 나아가 보는 이들이 자신의 메시지에 개입하기를 유도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바이마르 공화국의 맥주배는 무엇이며, 다다 부엌칼이라는 것은 또 무엇일까. 문장 안에는 다다 예술 운동의 정신과 한나 회흐의 가치관이 집약적으로 들어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다다와 베를린 다다, 그리고 ‘한나 회흐’의 작품에 대해 두 편으로 나누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다다와 베를린 다다 - 다다(dada)취리히에서 시작된 다다는 기본적으로 ‘반미술(anti-art)’을 주창했다. 1차 세계 대전의 발발 이후,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문화는 더 이상 지지를 얻지 못했고 예술가들은 권위적이고 전통적인 미술의 형태에 저항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전쟁은 이들에게 허무주의에 빠질만 한 실마리를 마련해 주었고,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과 자본주의 등은 전쟁 발발에 대한 원인으로 자리잡았다. 기존에 인정받았던 미학적인 가치들을 전복하는 것 이상으로 파괴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으며, 당시 다다이즘은 출발지인 취리히뿐 아니라 베를린, 하노버, 파리 등으로 확산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되는 양상을 보여 준...
올해 8월부터 내년 2월까지 열리는 <아트 오브 뱅크시> 전시는 개막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전시작 대부분이 원작이 아닌 복제품이었는데 원작자인 뱅크시의 동의 없이 진행된 전시였기 때문이다. 한국 뿐 아니라 현재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뱅크시 전시’들은 모두 ‘가짜(FAKE)’라며 자신과 아무 상관 없다고 뱅크시 본인이 직접 밝힌 상황에서도 작가가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어 허락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그의 이름을 내건 전시들이 줄을 이었다. 줄곧 상업 예술에 반대해온 작가의 작품으로, 아니 그 작품의 복제품으로 전시장을 채우고 작가와 관계 없는 전시기획사가 배를 채우는 데에 찝찝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뱅크시, ‘풍선과 소녀’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파쇄된 이후 ‘사랑은 쓰레기통에’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 포브스 뱅크시에 대한 또다른 최근 이슈는 2018년 경매에 나왔던 ‘사랑은 쓰레기통에’ 작품이 다음달 14일에 소더비 경매에 다시 출품된다는 것. ‘풍선과 소녀’로도 알려졌던 이 작품은 경매에서 낙찰과 동시에 파쇄돼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고 미술사에 길이 남을 에피소드를 탄생시켰다. 다가오는 경매에서 이 작품은 3년전 낙찰가인 15억원의 5배가 넘는 약 64억~96억원에 팔릴 것으로 추정되어 또한번 충격을 안겼다. 뱅크시의 파쇄 작업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는데 그는 이 작품이 경매에 나...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주변엔 이미 당신에게 익숙한 사물이나 풍경들이 하나쯤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손에 이미 쥐고 있을 핸드폰, 혹은 노트북, 테이블에 놓인 거울이나 가방, 손때묻은 지갑, 또는 작은 휴지 조각까지. 혹은 당신은 이미 당신에게 익숙한 당신의 방이나, 자주 가는 카페, 직장, 지하철 등에서 이 글을 읽고 있겠다. 그런데 여기,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다르게 보는 것'으로부터 상상력을 뻗어나가, 위트와 재치를 더해 자신만의 예술적 작업을 이어오는 작가들이 있다. 먹고살기 바빠진 팬데믹의 시국 속에서,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이 작가들의 작품들을 하나둘씩 살펴보자. 유쾌한 상상력을 통해 권태로운 일상 속 지끈지끈 달아오른 당신의 머리를 식혀주고, 이내 입가에 피식하고 미소가 맺히게 도울 세 명의 작가들을 소개한다. 빈센트 발 (Vincent Bal) : 사물의 그림자 + 낙서 = ? 빈센트 발(Vincent Bal, 1971년~)은 벨기에의 영화감독이자 그림자를 활용한 독창적인 아트들로 주목받는 아티스트다. 그는 일상적인 사물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낙서 같은 일러스트를 결합하여 독특한 예술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다음은 그의 작품들 중 일부이다. © 빈센트 발(Vincent Bal) 인스타그램 (@vincent_bal) © 빈센트 발(Vincent B...
*[도슨트 by 푸름]은 필자(푸름)가직접 체험한 문화예술을관객에게 말을 건네듯 소개하는 페이지입니다. 이건용 Bodyscape 삼청로 갤러리 현대에서 이건용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 중입니다! 이건용 작가는 현재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한국의 동시대 작가입니다. ‘장소의 논리’, ‘신체 드로잉’ 등과 같은 실험적인 작품으로 한국 미술사에 큰 영향을 준 그의 작품에서는 차분한 노련함과 뜨거운 열정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이번 갤러리 현대에서의 전시는 이건용 작가의 ‘신체 드로잉’ 시리즈에 집중합니다. ‘신체 드로잉’은 문자 그대로 신체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작품입니다. 한 작품을 그릴 때 작가는 한 자리에 서서 혹은 앉아서 자신의 몸 움직임을 100% 반영하려 노력합니다.이건용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움직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따라서, 감상자는 그의 작품과 마주함을 통해 단순히 회화만 포착하는 것을 넘어서서 한 편의 퍼포먼스를 관람하게 됩니다.그림과 함께 설명을 들어야 더욱 와닿을 이건용 작가의 작품이기에, 서론은 이만 짧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중 특히나 매력적인 것을 위주로 본격적인 도슨트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100% 아직 액자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캔버스 천 뒤에 섭니다. 그 천의 높이는 작가의 키와 비슷합니다. 그곳에서 천 너머로 손...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그림 속 철학 이야기 - 미술관에 '놀러 가는' 철학자가 있다. 십 대에 떡볶이집 드나들 듯, 이십 대에 술집 드나들 듯, 미술을 전혀 모른 채 미술관에서 놀던 그는 그림이야말로 철학의 가장 좋은 '스위치'임을 깨달았다.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은 미술이라는 스위치를 통해 철학이라는 집에 불을 밝혀주는 책이다. 저자 이진민이 그 집에서 하려는 것은 '놀이'다. 어떤 그림에 철학적 해석을 정답처럼 붙이는 게 아니라 그림을 도구 삼아 이런저런 생각을 실컷 펼쳐볼 수 있는 놀이. 하나의 작품을 눈에 담는 순간 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우주가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정답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정답을 찾겠다는 강박 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울 뿐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바라보며 '신은 죽었다'고 폭탄선언을 했던 니체를 떠올리는 것. 역사적으로 수없이 변주돼온 '정의의 여신'을 다룬 작품들을 보면서 왜 정의는 여신이 담당하며 그 여신은 어째서 안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엉뚱해도 좋고 발칙해도 좋고 틀려도 좋은 이러한 생각의 꼬리들이 이어지는 것 자체가 철학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다 철학자라고, 그럴듯한 교양이나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
《정상화》 그림을 보면서 캔버스의 뒤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평면 회화에서 3차원을 형성하기 위해 쓴 기법 때문이 아니라, 정말 캔버스의 무한하고도 끝없는 면을 말이다. 필자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3, 4전시실에서 열린 정상화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이 느낌을 잠시나마 경험했다. 사람의 신장보다 높게 걸린 정상화의 작품들은 4전시실에서부터 시작된다.이 전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추상화가인 정상화의 작업 세계를 담았다. 정상화 작가는 오래 단색조 화가라고 불렸지만, 지금까지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한 맥락적인 연구는 부족했다고 한다. 이에 국립현대 미술관은 정상화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함으로써 그의 작품을 다시 조명하고 있다. 전시는 총 다섯 섹션으로 나누어지며, ‘추상실험’, ‘단색조 추상으로의 전환’, ‘종이와 프로타주’, ‘격자화의 완성’. ‘모노크롬을 넘어서’ 순으로 이어진다. 추상실험 정상화, <작품68-7>,1968, 캔버스에 유채,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먼저 1 섹션, 추상실험(1953-1968)이다. 정상화 작가는 대학교 재학시절, 주로 구체적인 대상이 있는 정물화나 인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장에 처음 들어서면 그의 뚜렷한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다. 이 자화상에서는 섬세한 표현보다도 두꺼운 물감으로 명암을 올린 분위기가 더 먼저 느껴진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더해나가지 않고 오히려 빼는 작업을 ...
국립현대미술관이 구독형 아트 스트리밍 플랫폼 '워치 앤 칠 Watch and Chill'을 공개했다. 이름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에서 이들이 브랜딩 하려는 이미지가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다. 넷플릭스를 보듯 집에서 아무 때나 접속하는 미술관. 그리고 언젠가는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하는 미술관이 되고자 하는. 코로나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더 가깝고 친밀한 온라인 미술관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지금 '워치 앤 칠'에서는 첫 번째 전시로 《우리 집에서, 워치 앤 칠》이 진행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홍콩 M+ 미술관, 태국 마이암현대미술관, 필리핀 현대미술디자인미술관이 협업하여 미디어 소장품을 선보인다. 오프라인 공간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6 전시실(2021.8.24. – 10.24.)에서도 같은 내용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데 서울전의 전시가 끝나면 다른 세 미술관에서 순회될 예정이라고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그리고 아시아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에서 이와 같은 서비스를 선보이는 동안 대중들도 어느 정도 온라인 미술관에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제는 거대한 플랫폼이 되길 꿈꾸는 이 가상의 공간이 어땠는지 감상을 나눠볼 수도 있지 않을까.개인적인 취향을 털어놓자면, 2년 새 보았던 온라인 미술관 관람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
서울문화재단 시민청 기획전시 <605.2 ; 희망은 어디에 넣어 두었다.>는 서울시청 내 위치한 시민청 갤러리에서 9월 1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시민청 시민기획단 8인의 기획으로 사진, 평면회화, 영상 등 다채로운 11점의 작품들로 구성되었으며, 코로나19로 지쳐있는 시민들에게 잃어버린 또는 찾고자 하는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본다. 605.2 ; 희망은 어디에 넣어 두었다. ‘605.2’는 서울시 면적인 605.2km²를 의미한다.서울이 가진 여러 가지 색깔 중 유독 많은 이들은 어두운 면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서울에 남아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에서 그 답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서울의 과거에서부터 이어진 많은 이들이 희망을 찾아 헤매는 노동현장에서 생각의 끈을 이어볼 수 있다. 김민경, '링'( 2021), 단채널 영상, 3분 @김민경 김민경 작가는 ‘링’이란 작품을 통해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던 서울에 존재한 우리의 ‘노동’ 현실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는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서울이 가지고 있는 시대성까지 함께 부각하여 표현하였다. 송석우, 'Wandering Wondering #02'( 2019), 피그먼트 ...
20일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 포레에서 대규모 전시 ‘아트 오브 뱅크시: 위다웃 리밋(Art of Banksy: Without Limits)’가 개막했다. 그러나 전시의 진위 여부에 관해서 끊임없는 논란이 일고 있다. 홍보에 사용한 '아시아 첫 투어 뱅크시전(展)', ‘오리지널 전시’라는 문구가 거짓이라는 보도 때문이다. 주최사는 '오리지널(원본) 포함 150여 점'을 내세웠으나 그 중 오리지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27점. 나머지 120여점은 레플리카(복제본)다. 심지어 ‘아시아 첫 투어’ 전시를 내걸었지만 홍콩에서는 지난해 12월 전시가 열렸고, 현재 일본 나고야에서도 전시 중이다. 티켓 예매 Q&A창에서는 뱅크시의 오리지널 전시를 기대했던 대중들의 환불과 티켓취소 요청, ‘이거 사기 아닌가요?’라는 제목의 항의 글도 확인할 수 있다.항의 글에 대한 답변으로 주최 측은 ‘아시아 첫 투어’라는 홍보 문구에 대해서 '각자 다른 전시'라며 모두 뱅크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지만 전시 규모와 작품, 컨텐츠가 다르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세계적으로 뱅크시 전시를 기획하는 주관사는 총 3개로, 현재 티켓을 판매하고 있는 주관사에서의 아시아 첫 투어라는 의미였다.한 매체의 이러한 보도 이후 뱅크시 전시회의 포스터 등에는 '아시아 첫 투어', '오리지널 전시' 등의 문구가 모두 빠졌고, '오마주 전시'라는 설명이 추가됐다. 주관사는 '뱅크시'...
이 글은 왓챠에서 시청 가능한 <더 울프 오브 아트 스트리트(The Price of Everything)>라는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쓰였지만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아도 글을 따라가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다. 이 다큐멘터리는 예술과 돈, 예술과 시장을 주제로 미술계에 속한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예술과 시장이라는 대주제 안에는 무수한 쟁점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예술 작품의 종착지인 '미술관'과 '개인 컬렉션'에 초점을 맞춘다. 이 글은 <더 울프 오브 아트 스트리트> 를 보고 나온 미술인과 비(非)미술인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독자들이 스스로 이 대화의 또 다른 참여자라 생각하면서 글을 읽는다면 공감하고 반박하고 새로운 주장을 펼쳐보는 재미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예술과 돈이라...예술은 돈이라는 주제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네요. 특히 지금 시기에 보기 좋은 다큐멘터리였어요. 아트마켓, 아트테크, 컬렉팅 등등 요즘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만 봐도 예술시장 전반에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잖아요. 지금 미술시장이 완전히 호황기에요. 옥션 뿐만 아니라 아트페어, 갤러리 매출도 급격하게 늘었죠.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에서 6월까지 국내 경매사 8곳의 경매 매출액이 1438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배였다고해요. 불경기라...
현대의 한글은 더는 국어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술의 발달로 문자, 소리, 온도와 같은 아날로그 지표를 디지털 코드로 옮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영화의 컴퓨터 그래픽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재구성이 가능하다. 이런 세상에서 한글은 컴퓨터 공학자에게는 '이진법 코드'로 변환되어 새로운 프로그램을 생산했고, 디자이너들에게는 '서체'로 변환되어 폰트 시장을 만들었으며, 예술가들에게는 3D 프린팅과 같은 기술을 통해 새로운 '소재'로써 자리 잡았다. 이처럼 종이 위에 존재하던 한글이라는 아날로그 지표는 기술을 통해 우리 생활 전반으로 스며들었다. 여러 시도 중, 그 변화가 두드러지는 것은 미술시장에서의 활약이다. 과거에는 주로 서예가 한글을 사용한 미술로써 주목받았다면, 이제는 기술을 통해 한글을 꺾고 부수고 나누는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게 됐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서는 입체, 설치 작품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기에 한글을 활용한 입체, 설치 작품의 제작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글의 조합과 해체 한글은 20세기 초 주시경 선생이 붙인 이름으로, 그 근본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그래서 한글은 훈민정음의 창제원리, 그중에서도 음소 문자의 특성과 모아쓰기 방식으로부터 비롯된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먼저,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을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로 나누는 창제원리에 의해 음소 문자로 태어났다. ...
우리가 미술품과 민속품을 만나는 곳은 주로 미술관과 박물관이다. 박물관 상설전에서 주로 같은 시대나 지역으로 묶여 진열된 유물들을 보거나 미술관 기획전에서 특정 주제 아래 모인 예술 작품들을 감상한다. 작품들은 상설전이든 기획전이든 멋있고 화려하게 꾸며진 곳에서 최적의 상태로 우리를 맞이한다. 한편, 작품들과 유물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은 전시장이 아니다. 그곳은 바로 이들이 보관되어 있는 수장고다. 전시를 한 번 열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기에 새로운 전시를 자주 열기가 쉽지 않고 전시된 작품을 자주 바꾸기도 어렵다. 전시에 내보일 수 있는 작품의 수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들은 전시 기획자에 의해 선택을 받아야만 관람객들을 만날 수 있다. 수장고에서 벗어나 빛을 볼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작품들을 생각하면 왠지 짠하다. 그런데 요즘 이들의 슬픔을 달래줄 기회가 속속 마련되고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곳 미술관, 박물관의 ‘개방형 수장고’다. 국내에서는 2018년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하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2019년에 건립된 국립경주박물관, 그리고 지난 7월에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이하 파주 국립민속박물관)이 개방형 수장고를 가지고 있다. 필자는 지난겨울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했었고 얼마 전 파주 국립민속박물관을 다녀왔다. 미리 고백하자면, 창고나, 창고 같은 미술관...
오늘 소개할 전시관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다. 청주에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한지는 약 3년이 되었고, 이는 서울대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과천관, 덕수궁에 위치한 덕수궁관, 경복궁 동편의 서울관에 이은 네 번째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세 군데가 모두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어, 청주관은 최초의 비수도권 분관에 해당한다. 특히 청주관은 미술 작품의 보관 및 보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이곳에서 소장된 작품들이 관리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확인해볼 수 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발견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매력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청주관에 들어가는 길. 드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이다. 정면은 청주공예비엔날레 기념관. 우측이 국립현대미술관. 사실 나로서는 이번 청주관 방문이 가지는 의미가 굉장히 컸다. 학창시절을 과천에서 보낸 덕에 과천관에는 자주 드나들었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 서울에서 생활하며 서울에 위치한 두 개의 분관에도 여러 차례 방문하였다. 특히 덕수궁관의 경우 나의 자대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했는데, 집회와 시위로 얼룩진 나의 자대 생활에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항상 나에게 있어서 좋은 기운을 전해주었기에, 청주에 머무는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방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다른 국립현대미술관 분관들과 마찬가지로 청주관 역시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가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글에서...
벌거벗은 미술관-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 미술관에는 없는 미술 이야기 <책 소개> 미술의 눈으로 보면역사와 인류가 다시 보인다미술이 보여주는 반전의 대서사시!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풀어내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 안내자 양정무가 미술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환기하며 미술작품을 통한 사유와 감성의 확대를 모색한 책 『벌거벗은 미술관』이 출간되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미술의 장구한 역사를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미술사학자이자 '인문학의 꽃'으로 불리는 미술사를 대중화하는 데 노력해온 양정무가 오랫동안 미술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고민해오던 문제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집요하면서도 자상하게 풀어낸다. '미술은 왜 끊임없이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속성을 보여주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고전미술의 신화화 과정을 파헤치고, 미술관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던 무게감을 초상화의 무표정성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 밖에도 박물관과 시민사회의 함수관계, 화려한 미술 속에 담긴 질병의 그림자 등을 통해 인간이 미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축했는가를 살핌으로써 독자들을 미술에 대한 다각적인 성찰로 이끈다. 과거와 현재, 서구와 한국을 넘나들면서 펼쳐지는 설명은 직관적이고도 유려해서 저자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다. 풍성한 화보를 곁들인 양정무의 입체적 안내를 통해 독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