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이라는 단어는 공연 분야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다. 연극 속 인물의 서사에 단단히 몰입했다가도, 잠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음 챕터를 흡수할 준비를 하는 것이 관람객이 인터미션을 마주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이 인터미션을 전시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단편극을 한데 모아, 단편소설집처럼 한데 엮어두었다면? 우리가 잠시 여행을 떠날 이 단편극의 배경이 머나먼 옛날이라면? DDP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시나리오를 구현한 미디어아트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부니 별이 빛난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간송미술관의 국보급 소장품들을 생생한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대형 스크린으로 미디어아트 특유의 웅장한 영상미를 그대로 살려내면서도, 미디어아트만이 구현할 수 있는 장면들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시작이 1관의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간송의 혜안을 상징하는 국보로, 둥그런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정가운데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앞으로 전시장 안에서 펼쳐질 이야기의 모든 근본이 되는 한글이 훈민정음으로부터 쏟아져내려와 펼쳐지고, 이윽고 다시 빨려 들어간다. 언뜻 통로처럼 보이는 공간 역시 전시장이다. 겸재 정선의 여정이 담긴 '해악전신첩'이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있어, 정선을 따라 걷듯 금강산을 곁에 둔 채 공간을 느껴볼 수 있다. 해악전신첩 너머로는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마지막 여행지였던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우리는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숙소에 도착해서야 당장 내일 관광할 만한 것들을 급하게 찾아보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가우디. 안토니오 가우디는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로, 스페인 건축학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아 건축했다는 것. 이 정도의 정보만 안고 향한 구엘 공원은. 발걸음의 속도를 줄여 한국어 투어 가이드를 엿듣고 싶어질 만큼 흥미로웠다. 구엘이 가우디와 얼마나 끈끈한 관계이고, 본래 공원이 아닌 주택 단지 설립 프로젝트였으며, 언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이 되었는지 등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나를 사로잡은 건 그저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흙바닥. 불어오는 바람에 흙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으나, 그럼에도 걸음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기발한 가우디의 아이디어들이다. 딱딱한 직사각형의 벤치 자리를 뺏은 동그란 구 모양의 조형물, 나무줄기 어쩌면 파인애플을 닮은 기둥, 크고 작은 돌을 편견 없이 쌓아 올린 돌담. 그 위에 본인을 뽐내고 있는 야자수 나무들의 조화는 사랑스럽다. 메인 광장을 감싸고 있는 뱀 벤치는 인체에 맞게 구불구불 설계되어 편안함을 제공한다.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가우디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채롭게 빛나는 모자이크 타일이 눈에 띄는데, 이는 트렌카디스 기법이다. "깨뜨리...
저널리스트라는 꿈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성적표의 장래희망 칸은 항상 이 단어로 채워져있었다. 1학년 장래희망 : 기자 2학년 장래희망 : 기자 3학년 장래희망 : 기자 내가 기자의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바로 2014년, 중학교 3학년 때 큰 충격을 안겨줬던 한 사건이다. 전 국민이 함께 슬퍼하고 기도했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이다. 당시 많은 언론사에서 사고 이후 상황에 대해 많은 보도를 이어갔다. 그들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사고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제대로 된 팩트 체크 없이 신속하게 모든 정보를 전달하면서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렸고, 상처를 안겨주었다. 결국 많은 국민들이 언론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 역시 언론의 책임감에 대해 큰 실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실망감은 곧 다른 의미로 바뀌었다. 단순히 실망하고 고개를 돌리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직한 언론, 책임감 있는 언론의 중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대학에 진학한 나는 미디어에 대한 많은 강의를 들었다. 사회 속에서 미디어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과 자세, 팩트체크의 중요성, 언론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오보와 가짜 뉴스(Fake News)의 차이'에 대한 글을 쓰며 언론의 모습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만들어갔다. 많은...
베를린에 다녀왔다. 같은 독일인데도 편도 8시간이라니, 새삼 한국이 얼마나 작은 나라인가를 실감한다. 큰 도시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 따위 없는 편이지만, 베를린은 달랐다. 베를린으로 떠나기 며칠 전부터 괜히 히틀러와 나치 그리고 유대인 관련된 유튜브를 틀어놓곤 했다. 역사 심지어 세계사와는 더욱 친하지 않은 나지만. 분단국가 그리고 이방인으로 타국에 살고 있어서일까. 동독 서독 통일 그리고 유대인 학살 관련 내용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오전 10시 반 유대인 박물관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한 나는. 신호등 앞에서 둘 중 어느 건물이 유대인 박물관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청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어딘가 친숙한 바로크 양식 건물, 그리고 이곳저곳 그어져 있는 은색 금속 패널의 이질적인 건물. [“The official name of the project is ‘Jewish Museum’ but I have named it ‘Between the Lines’ because for me it is about two lines of thinking, organization, and relationship.”] - Daniel Libeskind 그 중에서도 1989년 베를린시에서 주최한 "Extension of the Berlin Museum with a Jewish Museum Department" 세계 공모전 속에서 탄생한 리벤...
24년 여름에 가장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 지구적인 행사는 무엇일까? 아마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하계 올림픽일 것이다. 개최지가 세계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낭만과 예술의 도시’인 만큼, 이번 올림픽은 장소적 매력을 살린 경기장과 다양한 패션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 또 국가별로 특색을 살린 의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세계인의 관심이 쏟아졌다. 물론, 올림픽 기간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은 단연 우리 선수들의 활약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태극기를 단 우리 선수들은 그간 훈련으로 쌓아온 역량을 마음껏 뽐내고 있고, 우리 국민들은 메달의 색과 개수에 상관없이 그들의 여정과 노력에 박수를 힘껏 보내주고 있다. 프랑스에서 거주하던 필자는 파리 올림픽에서 활약하는 우리 선수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올림픽과 같은 국가적인 운동 경기를 한국인들끼리 즐기는 분위기를 낼 수 없는데, 이런 아쉬움을 무마해줄 장소인 ‘팀코리아 하우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한국 대사관 근처에 위치한 팀코리아하우스에서는 올림픽의 한국 주요 경기를 중계하며 참여를 원하는 누구나 함께 응원을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최근 세계의 주목을 한껏 받고 있는 한국의 문화를 선보이는 공간을 마련해두어 ‘팀 코리아’의 범위를 ‘한국’이라는 국가를 응원하고, 한국에 애정을 비추는 모든 사...
길거리에 있는 무인 상점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매장을 고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인생네컷을 꼽을 것이다. 꼭 ‘인생네컷’이라는 상호가 아니더라도 ‘포토시그니처,’ ‘하루필름,’ ‘포토그레이’ 등, 다양한 종류의 무인 즉석 사진관들은 거의 한 거리에 하나꼴로 자리해 있다. 즉석 사진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 나 역시도 네 컷으로 나뉜 사진을 쥐고 거리를 걸으며 “왜 사람들은 인생네컷에 미쳐있을까?” 고민해보았다. 다시 실물 사진으로 ‘인생네컷 유행’을 실물 사진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자. 디지털로 사진을 저장하고 공유하게 된 이후로 사진을 일부러 인화하는 사람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으며, 스마트폰의 출시 이후 그 애호가들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 현실이다.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은 물어물어 찾아가야 할 정도로 줄어들었고, 폴라로이드와 같은 즉석 인화 사진기마저 일종의 ‘레트로’, 즉 과거의 추억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했을 때, ‘만질 수 있는 사진’의 재유행은 일종의 뉴트로 유행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즉석 사진이 디지털로 옮겨갔던 사진의 추억을 다시 실물로 가져온 것이다. 무인 즉석 사진관은 사진사의 부재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고객이 스스로 셔터를 누르고 자세를 잡는 등의 능동성을 올리며 만족도 또한 높였다. 사진사와 관리자를 따로 둘 필요 없는 데다가 관리자의 상주도 사...
애니메이션에 주인공이 등장인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장면이 나올 때가 있다. ‘빛의 시어터 –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 장면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몰입형 예술전시다. 무거운 문을 열고 전시장으로 들어가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약 1,000평에 높이 21M 정도의 공간은 그림과 음악으로 빈틈없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전시회장은 1층과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1층 정면에는 반원 형태의 스테이지가 있었다. 2층에는 브릿지가 있는데, 길을 따라가면 스테이지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스테이지 앞 바닥에는 천장을 비춰주는 장치가 있어서 2층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다 감상할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감탄을 차마 입 밖으로 뱉지도 못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2층에 있는 출입문을 통해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서 처음에는 2층에서 감상했다. 정면에 있는 스테이지와 바닥이 한눈에 들어왔고, 벽과 기둥까지 온통 그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2층은 출입문까지 그림으로 채워져 있어서 전시장에 들어온 게 아니라 시공간에 들어온 것 같았다. 앞과 뒤 그리고 양옆과 위를 올려다보며 그림에 둘러싸인 순간을 즐겼다. 작품과 잘 어울리는 음악까지 나와서 황홀했다. 착각의 늪 반원 형태의 스테이지는 작품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줘서 건축물의 외경이 상영될 때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바닥에 이국적인 문양이 펼쳐질 때는 진짜 그 건물 안에 들어간 것 같았고, ‘...
2024년 10월 25일부터 내년 3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가 진행된다. 전시에는 윤지영, 권하윤, 양정욱, 제인 진 카이젠 작가 총 4명의 후원 작가가 참여한다.올해를 대표하는, 특히나 그것을 대표하는 장소가 한국의 대표적인 국공립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다면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되는 4명의 작가는 전방위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보여야 할 의미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국립미술관은 미술에 깊은 관심과 더불어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 오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현대미술 작가라는 직업에 알맞게 자신과 자신의 작업이 이 공간에 놓인 이유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물론 이 작업은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단순히 국현미라는 태그를 따라온 관객도, 기술적이고 조형적인 찬란함 혹은 손에 잡히는 대부분이 공장제인 지금에 손으로 이룬 고도의 기술을 살펴보고 싶은 이들도, 이 욕망이 혼합되어 불분명한 대다수가 전시장을 찾는다. 서문에서 전시의 전경을 찾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가벼운 이유로 들어온 전시장은 깊은 동굴의 습기 같은 무게에 눌려있었다. 실제로 윤지영 작가의 작업을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의 작업은 비디오나 빛 이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암실이 조성되었으며, 제인 진 카이젠 작가는 ‘오로지’ 영상만 사용했기에 블랙 큐브 정도의 ...
도서관은 책들로 가득 찬 매력적인 공간이다. 도서관을 얼마나 자주 가는가? 혹은 좋아하는 도서관이 있는가? 한국에서는 흔히 도서관을 공부하는 장소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도서관은 책을 읽고 발견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한 공간이다. 이번 글에서는 도서관을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해 보자. 가장 먼저, 어떤 도서관을 방문할지 결정해야 한다. 집 근처의 도서관도 좋지만, 특별한 주제를 다룬 특화 도서관에 가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된다. 예를 들어, 의정부미술도서관처럼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도서관에서는 일반 도서관에서는 만나기 힘든 다양한 자료와 전시를 볼 수 있다. 도서관에 갈 때는 읽고 싶은 책이나 관심 있는 주제를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 좋다.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하거나 북튜버들의 추천 영상을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원하는 책이 소장되어 있는지, 혹은 대출 가능한지도 사전에 확인하자. 이렇게 준비하면 도서관 방문이 더 체계적이고 즐거워진다. 큐레이션 섹션 탐험하기 도서관에 도착하면 우선 자리를 잡기 전에 큐레이션 섹션을 둘러보자. 큐레이션 섹션은 대개 계절이나 특정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는 공간으로,도서관의 입구나 눈에 띄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는 내가 몰랐던 분야의 책이나, 현재 관심사와 잘 맞는 책을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다. 큐...
이 온라인 전시회를 접한 건 핸드폰을 만지다가였다. “어린이가 가장 먼저 배운 것; 차별과 폭력, 재난 속에서”라는 제목을 가진 전시에 대한 내용을 보던 나는 자연스레 링크에 들어가 보았다. 요즘 이런 주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던 나는 이 전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만든 거라는 정보도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전시에 들어가서 보면서 알게 된 정보인데, 올해가 제네바 아동권리선언 100주년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제네바 아동권리선언은 세계 최초의 아동권리선언으로, 1924년 9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연맹 회의에서 49개국 국제연맹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더 찾아보다가 세이브더칠드런 공식 블로그에서 올해 9월에 올린 블로그를 발견하였다. 이 블로그에서는 세계 최초의 아동권리선언인 제네바 아동권리선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또 지식채널e 다큐 ‘아이들을 구하라’에서도 에글렌타인 젭에 대한 내용을 봤다. 그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알게 되었고, 영상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다음의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사랑스럽지 않아도내 아이가 아니어도아이를 좋아하지 않아도아이의 권리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어른의 당연한 의무 과정을 순서대로 보면 세이브더칠드런의 창립자는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승전국이었던 ...
나는 이어폰으로만 음악을 듣는다. 나름 외부와 단절될 수 있는 노이즈캔슬링을 통해 음악의 세세한 부분까지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귀’로만 그 전율을 느낄 뿐이다. ‘오디움’에 대한 기대감은 나에게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경험을 넘어서, 오감을 통해 음악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어폰을 통해 듣는 음악은 분명히 세밀한 음색을 전달하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몰입감 있는 체험을 통해, 소리가 전하는 감정과 에너지를 몸 전체로 느낄 수 있는 곳 '오디움'에 다녀왔다. 귀로만 느끼는 소리에 대한 한계를 넘어 오감으로 소리를 느낄 수 있는 공간 ‘오디움’. 귀로만 듣던 음악 경험을 확장해 온몸을 써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오디움은 다양한 빈티지 오디오 기기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오디오 기기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오디오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쉽게 살펴볼 수 있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만들어진 다양한 스피커와 앰프를 통해 오디오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오디움의 컬렉션은 단순히 기기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이 오디오의 역사와 음악의 깊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디움은 사람들이 음악을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통해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곳...
로댕만큼 실력 있었지만, 평생 그의 그림자에 가려져 자신의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고 생각한 조각가가 있다. 로댕의 제자이자, 예술 동반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이 바로 그녀의 이름이다. 클로델은 이미 성공한 조각가였던 로댕을 조수로서 처음 만나고, 곧 그의 예술적 협력자이자 동시에 연인이 된다. 하지만 로댕은 이미 만나고 있던 연인이 있었고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 것이 클로델과 로댕의 관계가 끝난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클로델은 로댕에게 또 다른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로댕을 존경했지만, 동시에 그의 명성에 자신의 예술성이 가려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예술적 독립을 갈망하게 된다. 이런 복합적 이유가 그녀를 계속해서 불안하게 했고, 결국 정서적 문제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조각 <생명의 물결> 그런 그녀의 정서적 불안함이 무색하게 그녀의 작품은 스승만큼이나 유려하다. 그녀의 대표작인 ‘생명의 물결’은 왈츠를 추는 두 인물을 통해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두 인물은 서로에게 매우 몰입하고 있으며, 동시에 물결처럼 운동성이 있는 관계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파도처럼 너울 치는 여성의 드레스를 통해 카미유 클로델 특유의 섬세한 조각술 역시 목격할 수 있다. 이는 두 인물에 내재한 강한 동적 에너지를 암시한다. 로댕과 밀접한 예술적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로댕과 클...
제15회 광주 비엔날레를 관람했다.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제목으로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사실 내 흥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사전 지식 없이 처음 마주하는 그대로 작품들을 느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타이틀 이상의 자세한 조사는 하지 않고 기대 없이 광주로 향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관람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느낌과 영감들을 많이 선사하는 기회가 되었다. 분주한 학기 중 소중한 예술 향유의 시간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솔직하게, 전시를 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난해하다’였다. 대부분의 전시회가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최근 봤던 적지 않은 전시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해석이 어려운 작품들의 연속이었다. 그림은 물론, 크고 작은 조형물들까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것일지 한참을 바라보며 고민하게 되었다. 곧바로 이해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한 태도에서 벗어나 처음 먹었던 마음대로 작품 자체를 느끼려 노력했을 때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먼저 ‘판소리’라는 주제가 독특하게 다가왔다. 하나의 문학 장르이기도,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이기도 한 판소리. 그러나 정말 ‘판소리’의 역사나 형식만을 고리타분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소리’라는 두 필수적 요소를 이용하여 그 안...
시간이라는 권력 남용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졌다. 기약은 있어도 명백한 '거주함' 앞에서, 매번 휘둘렸던 시간을 이젠 내가 어찌해볼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서 4개월간의 어학연수 생활. 유치원생들과 나란히 하교를 한 후 남는 시간들은 베이징의 미술관으로 흘러들어간다. 나의 도시 서울에서는 전시회 나들이를 과업 취급하더니 이제서야 예술을 찾는 이중적 면모에 자조하지만, 그 입꼬리가 끝내 호선을 그리기를 바라며 첫 번째 행선지인 798 예술구로 향해보았다. 양쪽으로 즐비한 갤러리와 노천카페,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화방.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허세 섞인 느긋함과 결국 떠나야 하는 이방인이라는 조급함 사이, 생경한 템포의 걸음을 걷는다. 눈에 띄는 갤러리 문은 어디든 두드려보고, 공간과 작품을 눈에 담고, 팸플릿을 수집해 돌아와 온통 모르는 글자뿐인 전시 서문을 번역하는데 들인 시간은 평소 같았음 형편에 맞지 않는 사치였겠으나, 시한부 권력자 인생에서는 '나를 위한 선물'쯤으로 가벼이 넘길 수 있을 듯하다. 난 저명한 예술가들의 나라 프랑스도, 자본과 현대미술로 대표되는 미국도 가본적 없다. 이제 겨우 우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본 참이지만, 베이징 또한 예술 여행을 떠나와도 좋을 도시라는 증거를 모으고 또 이렇게 글로 펴내보려 한다. 베이징 예술의 중심, 798 예술구(798艺术区)...
국제 갤러리에 출품된 김윤신 작가 작품들. 사진 직접 촬영 올해로 어느새 3번째를 맞이한 프리즈-키아프(키아프리즈) 아트페어를 두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공통 의견이 있다. '키아프가 프리즈했다'는 말이다.키아프는 아트페어 동반자이자 세계적 미술축제인 프리즈를 적절히 벤치마킹하고, 동시에 국내 갤러리 부스 퀄리티를 높여 이런 평가를 받아냈다. 그랜드볼룸에 마치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과 같은 마스터피스존을 구성했고, 플러스를 통해 떠오르는 작가들을 조명했다.프리즈의 경우 이전 회차에서 보여줬던 600억 원대 피카소 회화, 수십억 원대의 샤갈 회화 등과 같은 대작은 적었다. 어깨를 가벼이 하는 대신 다채로움을 살렸다. 신진 작가 작품이 늘고, 아시아 작가의 비중을 높였다. 키아프는 해외 갤러리를 다수 들여오고, 프리즈는 한국 갤러리를 늘리며 함께 나란히 변화했다.올해도 7만여 명이 찾은 키아프리즈는 그림을 구매하기 위해 행사를 찾는 컬렉터만큼이나, 유수한 작품들을 관람하기 위해 모인 '관객'의 비중이 높다. 즉 대중이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전시장으로서의 역할을 도맡고 있단 의미다.그렇기 때문에 키아프리즈엔 관객이 페어를 통해 만나게 될 '경험'을 보다 섬세하게 큐레이팅할 무언의 의무가 주어지기 마련이다.관객의 시각에서, 3돌을 맞이한 키아프리즈가 지난 1, 2회와 비교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에 커다란 벽면에 그려진 색채가 너울 치는 그림, <전기의 요정> 앞에는 사람이 늘 북적인다. 본 그림은 작년 예술의전당 라울 뒤피전에 실제로 오지 못했지만, 라울 뒤피의 가장 대표적 작품이다. 그는 이 그림을 파리박람회를 기념해 의뢰받았다. 역대 최고 규모의 박람회였으며, 파리는 주제를 ’전기’로 내걸었다. 라울 뒤피는 파리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벽화를 그리기로 했다. 동시에 하늘에는 주제성에 맞춰 전기의 요정을 그리고 땅에는 전기를 사용하는 다양한 건축물과 시설들이 그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리 퀴리, 에디슨 등 역사 속 주요한 인물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주제성과 동시에 이 그림은 그의 화풍 역시 잘 드러내고 있다. 필자는 라울 뒤피의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그림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붓질은 자유롭고 역동적이다. 선이 뚜렷하거나 사물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경계를 넘나드는 가벼운 터치를 보여준다. 빛의 예술가이기도 한 라울 뒤피는 사용하는 색감도 항상 화사하다. 꽃은 그가 자주 그린 대상 중 하나였으며, 화사한 빛으로 그려진 뒤피의 꽃은 마치 꽃잎이 피어나는 순간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관객은 자신의 공간이 진한 봄의 분위기로 물든 경험을 한다. 그가 자주 그린 풍경화 중,...
어떤 건물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가장 먼저 런던에 있는 바비칸 센터가 떠오른다. 순전히 친구의 추천으로 방문했다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안은 채 돌아간 기억이 남아있다. 1년 후, 다시 바비칸 센터에 방문해 여전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상했다. 건물 하나를 보려고 런던을 가다니. 대체 어떤 점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그 이유와 함께 바비칸 센터를 소개한다. 바비칸과의 첫 만남 처음 방문했을 때는 정보가 없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바비칸 센터를 향하면서 이런 빌딩 숲속에 무엇이 있을까, 기대 없이 입장했다. 처음에는 카펫이 깔린 극장 홀이 나타났다. 영화관, 공연장, 도서관이 층층이 있는 공간을 지나 외부로 나가면 야외 정원이 나온다. 바비칸 센터의 여러 건물이 이 정원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중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거친 콘크리트 건물들에 숨은 반전 요소다. 공간을 마주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인공 연못이 높은 건물들과 대비되어 공간이 더욱 커보여 압도됐다. 모던한 홀을 지나고 계단을 올라 환한 야외 공간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개방감과 신선함. 처음 경험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에 조금씩 피어난 식물들과 아파트의 테라스들, 사람들의 대화 소리들이 이 공간의 살아있음을 일깨웠다. 코가 시릴 정도의 바람에도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오래된...
24년 여름에 가장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 지구적인 행사는 무엇일까? 아마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하계 올림픽일 것이다. 개최지가 세계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낭만과 예술의 도시’인 만큼, 이번 올림픽은 장소적 매력을 살린 경기장과 다양한 패션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 또 국가별로 특색을 살린 의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세계인의 관심이 쏟아졌다. 물론, 올림픽 기간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은 단연 우리 선수들의 활약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태극기를 단 우리 선수들은 그간 훈련으로 쌓아온 역량을 마음껏 뽐내고 있고, 우리 국민들은 메달의 색과 개수에 상관없이 그들의 여정과 노력에 박수를 힘껏 보내주고 있다. 프랑스에서 거주하던 필자는 파리 올림픽에서 활약하는 우리 선수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올림픽과 같은 국가적인 운동 경기를 한국인들끼리 즐기는 분위기를 낼 수 없는데, 이런 아쉬움을 무마해줄 장소인 ‘팀코리아 하우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한국 대사관 근처에 위치한 팀코리아하우스에서는 올림픽의 한국 주요 경기를 중계하며 참여를 원하는 누구나 함께 응원을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최근 세계의 주목을 한껏 받고 있는 한국의 문화를 선보이는 공간을 마련해두어 ‘팀 코리아’의 범위를 ‘한국’이라는 국가를 응원하고, 한국에 애정을 비추...
런던은 감히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미술관, 박물관, 전시, 길거리 예술이 잘 갖춰져 있다. 얼굴 없는 화가라고도 불리는 뱅크시부터, 고전적이지만 아름다운 서점들, 영화 촬영지, 그리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영국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까지. 대표적인 것들만 나열했는데도,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영국 생활 3주 차, 모든 문화예술을 접하진 못했지만 나의 문화생활 발자취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1. 던트북스/ Daunt books 런던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은 들어봤을 서점이다.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될 정도로 서점 문을 열면 분위기에 압도된다. 지하에서부터 2층까지 빼곡한 책들 사이에서 한국 도서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특히 던트북스는 각 국가별로 책장을 구분하여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아시아계 도서들이 함께 모여있다. 한국 도서로는 한강작가, 조남주 작가, 백세희 작가의 책이 메인으로 놓여있어 한국인으로서 핵심도서들이 자리 잡았다는 것에 흥미로웠다. 런던 서점들은 하나같이 에코백을 굿즈로 판매하고 있는데, 던트북스의 초록 간판과 분위기를 잘 담은 그린 캔버스 에코백을 추천한다.던트북스는 모든 책이 비닐로 쌓여 있거나, 판매용으로 구분되지 않고 전부 읽어볼 수 있었다. 나 역시 한국에서 읽었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영어 번역본으로 다시 한번 읽어볼 수 있는 경험도 했다. 다...
어느 순간부터 ‘생일 카페’, 줄여서 ‘생카’는 소위 ‘덕질’을 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이다. 아이돌 팬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최애’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카페를 대여해 그 곳을 아이돌의 사진이나 굿즈로 꾸민 것을 시작으로 생일카페라는 장소는 팬들이 모여 스타의 생일을 축하하고, 전시된 사진들을 보고, 온라인에서 알고 있던 지인을 오프라인에서 만나 친분과 공동체성을 다지도록 하는 공적 공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생일카페에 가면 특전 메뉴를 구매할 수 있는데 보통 관련 사진이나 글자가 새겨진 컵홀더를 기본으로 도무송, 스티커 같은 것과 함께 받을 수 있다. 사진이나 그림이 기본적으로 내부의 공간에 전시된 것을 넘어 해당 스타가 출연한 예능이나 음악 방송 영상이 재생되거나 팬들이 자체적으로 굿즈나 간식 나눔을 할 수 있는 ‘나눔존’도 있다. 주최 측에서 스타와 관련된 OO(스타의 이름)고사 같은 퀴즈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퀴즈를 채점해 선물을 주거나, 뽑기를 통해서 작게는 소소한 스티커부터 크게는 액자나 판넬처럼 (마지막 날의 경우) 전시물을 주기도 한다. ‘카페 투어’처럼 스타의 생일 카페를 여러 군데 방문해 컵홀더를 모으는 문화도 있다. 한국에서 생일카페는 주로 서울이나 경기권, 광역시 같은 도시에서 공간을 대여해 많이 열리는 편이고 가끔 해외에서 K-POP 소비자들이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