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저자 정세랑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0.06.05. 다시 자세히 읽으면서는 정세랑 작가가 자주 그려내는 유해한 남성성에 대비되는 성향들을 곱씹으며 읽었다. 정세랑 월드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 가운데 주요 여성 인물들이 사랑하게 되거나, 함께하게 되는 남성들은 유해한 남성성을 아주 조금도 지니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반면교사가 되는 또다른 표현들로 반복되곤 한다. 예를 들면 만만하게 분출할 곳을 골라 퍼붓는 공격성을 특히나 주의해야 한다는 식으로 자주 언급된다. 남성 캐릭터가 정세랑 월드에서 살아 남아 이야기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는 그 공격성 제로의 기준을 넘어서야 한다. 사랑은 그 다음 문제다. ⠀ <보건교사 안은영>의 홍인표도(부디 넷플 드라마에서도 꼭꼭 조신해주라), <시선으로부터,>의 아들과 사위들도, <지구에서 한아뿐>의 바뀐 경민도, <피프티피플>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남자 인물들도. 아 재훈이랑 재욱이도! 잔잔하게 반복되는 그들의 성향들을 읽다보면 마치 친언니가 없는 나에게, 이런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조언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몽글해진다. 반복되지만 기분나쁘지 않은 잔소리처럼. ⠀ 또 언니는 그런 말도 해준다. 좀 더 크게 꿈 꿔도 된다고, 더 욕심내면서 멀리 가야 한다고. 이런 조언들은 나를 포함한 모든 여성들에게 주기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나는 계속 정세랑 작가를 읽어야 할 텐데 이번...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저자 강화길, 최은영, 이현석, 김초엽, 장류진, 장희원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0.04.08.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읽은 김초엽 작가의 <인지 공간>. 김초엽 작가의 SF적 상상력은 늘 약하고 소외된 쪽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서 출발한 시선은 훨씬 더 깊고 넓은 우주로 퍼진다. 지금 여기에서 상상해보아야 할 어떤 미래로. 소설을 읽고 우주의 광활한 크기나 시간의 불가항력을 간접경험한 후에도 두려움보다는 땅에 두 발 붙이고 살아갈 믿음이 생긴다. 아마 상상의 출발지 때문이겠지. 장편도 기다려지고 김보라 감독님의 필터로 태어날 <스펙트럼>도 넘 기대된다..🪐 “그런데 거대한 구조물을 상상하다보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기억이 물리적 공간에 존재한다면 여기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 김초엽, <인지 공간> 작가 노트 중
복자에게 저자 김금희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0.09.09. 제주에서 열한살부터 열네살까지를 살았던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실감나는 제주 사투리가 자동으로 따라 읽혔다. 맞지 그랬지, 이런 말들을 했었지 하면서. 소설 속 공간인 고고리섬은 내가 살던 종달리 근처 우도랑 비슷하게도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더 반갑고 애틋하게 읽었던 복자에게. 아마 복자나 오세나 윤호나 영초롱은 그냥 묵묵히 각자의 실패와 무게를 견디며 멀리 떨어져 살아가겠지만, 여전히 끝이 가늠되지 않는 팬데믹 상황에서 전하는 담백한 편지가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이지만, 그들이 소설 중간 중간 제주의 전통음식부터 요즘 유행하는 음식들까지 먹으며 나눴던 이야기와 감...
명절에 읽으니까 더 리얼하구 소름끼치고 재밌는 <화이트 호스>. 소설 속 어떤 여성은 복합적이고 심각하게 가부장제에 결속된 가해자가 되어 폭력을 저지르는 한 가운데 기묘하게 서 있다.(손, 서우) 또다른 여성은 당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에게 냉정했던 할머니를,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이기적이었으나 내내 친절했던 할아버지 보다 미워한다. 그리곤 할머니를 미워하는 자기 자신을 또 미워한다.(가원) 그렇게 되물림되며 엉키는 굴레, 여성들끼리의 싸움인양 아무것도 모른다는듯 평온히 잠드는 남편. 몰라도 된다는 것도 권력이라는 것(음복)을, 소문과 험담으로 둘러싸인 과장된 여자는 사실 단 한 순간도 자기 자신일 수 없었다는 것(오물자의 출현)을. 겹겹이 싸인 이야기 끝에 남은 비밀들을 마지막에 가서 다 알게 되는 쾌감이란.. 농담하듯 건네는 서늘한 이야기를 엮는 솜씨가 넘 좋으시다. 짜릿해. “나는 동화 속의 공주가 아니고, 나는 너의 화이트 호스가 필요 없어.” 화이트 호스 저자 강화길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