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채널 최신 피드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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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저자 최은영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3.08.07. 상세보기 최은영의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속에 깃든 정서는 복잡하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희원은 늦깎이로 편입한 대학에서 그녀에게는 특별했던 젊은 여자 강사의 수업을 듣는다. 우연히 그 강사가 자신과 같이 늦깎이로 대학원에 다녔고, 여자이기에 연민을 느낀다. 희원에게 그 강사는 삶의 멘토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희원은 강사에게 삶을 이어가고, 그 끝을 보기 위해 끝까지 가 보게 만드는, 강렬한 빛은 아니지만 희미한 빛으로도 찬란히 빛날 수 있는 존재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희원과 강사의 관계는 <몫>에서 해진과 정윤의 관계와 유사하다. 교지 편집부 선배인 정윤은 여러모로 글을 잘 쓰는 선배였다. 해진은 그런 그녀에게 존경을 품지만, 실력이 떨어지고 권위적인 예비역 선배 용욱과 정윤이 사귀고 결혼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진의 동기 희영과 선배 정윤은 의견 차이로 대립하고, 급기야 기지촌 활동을 나간 희영이 병마로 유명을 달리하자, 정윤의 슬픔을 달래주는 몫은 해진의 어깨다.​<일 년>에서도 동성 간의 유대는 계속된다. 인턴사원 다희와 카플을 하는 정직원 지수는 동갑인 다희의 솔직한 태도에 서서히 마음을 놓는다. <답신>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자매의 애증을 다루고 있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 모를 나이에 나이 들고 변태 성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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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son
    이주하는 인류 / 샘 밀러

    이주하는 인류 저자 샘 밀러 출판 미래의창 발매 2023.07.20. 상세보기 필자의 블로그 닉 네임이기도 한 역마살이란 말이 있다. 정주하지 못하고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는 의미다. 역마살은 모험을 한다거나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도전이라는 의미보다는, 사실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한 말이다. 역마살이 부정적이라 함은 우리의 사고 속에 인간은 정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음이다. 그런데, 인간은 본디 이주하며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샘 밀러의 『이주하는 인류』다.​저자 샘 밀러는 이주가 인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이주에 비해, 한곳에 머물고 국가를 이루고 했던 정주는 오히려 그 역사가 짧다. 저자가 지목한 이주의 개념은 심리학자 그레그 매디슨의 주장에 기초한다. 이주는 서로 매우 상이한 다른 문화를 만나고 이를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주 정의를 거리나 국경에 기초하지 않고, 문화의 차이를 경험하는 것에 둔다는 개념이다. 저자는 이주의 역사를 원시시대 이전부터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인간 외 동물로 이주의 영향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첫 이주는 5억 3천만 년 전 가재지네가 물에서 육상으로 올라온 것으로 시작된다. 영장류가 나타난 것은 8천만 년 전, 영장류와 인간이 분화한 것은 5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인간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지만, 화살표로 표시될 만큼 단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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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son
    인간의 마음 / 에리히 프롬

    인간의 마음 저자 에리히 프롬 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2002.08.10. 상세보기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의 제자로 불린다. 구스타브 융과 대척 관계에 있던 프롬은 그렇다고 프로이트의 모든 이론을 신봉하지 않았다. 프롬의 저작 가운데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한 책이라면, 『인간의 마음』을 들 수 있다.​프롬이 『인간의 마음』에서 설명하려 했던 것은 인간은 과연 선 한가 악 한가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악의 정위Orientation 세 가지를 설명했다. 죽음에 대한 사랑과 자아도취, 그리고 근친상간적 고착이다. 이 세 가지 자체가 악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악한 이들은 세 가지 정위가 너무 강해 쇠퇴의 증후군을 형성한다. 대표적인 세 가지 정위의 최악의 케이스가 집대성된 인물이 히틀러다. 이 책의 곳곳의 좋지 않은 사례로 히틀러의 경우가 예시로 설명된다. 히틀러는 대표적인 자아도취자였고, 근친상간적 고착을 가진 자였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자아도취를 위해 타인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가는 퇴행을 일으켰다. 이런 사람이 악인이다.​프롬이 지목한 첫 번째 정위는 죽음에 대한 사랑이다. 필자도 소개한 그의 저서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이미 설명한 네크로필리아necrophilious다. 죽음에 대한 사랑은 프로이트도 지목했듯 일종의 항문 가학적 성적 도착倒錯이다. 시체와 부패, 배설물에 대한 집착,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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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son.lee.142687
    여름 휴가 겸 K리그1 21라운드 경기 원정 직관을 위해, 4개월 만에 다시 찾은 아름다운 제주. 승리하라 FC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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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마살 잡식 독서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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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s es sein? Es mus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그렇다. 밀란 쿤데라는 그의 역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소개된 유명한 구절 중 하나는 '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라는 표현이다. 주인공 토마시는 한 여인 만을 사랑하는 구속에 대해서 'Es muss sein'이라 화답했다. 토마시는 인생이 무거움을 택한 셈이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이 결정에 후회하지 않았다. 사실 이 구절은 베토벤의 작품 135번 4악장 작품 속에 베토벤의 에피소드에서 따온 말이다. 밀란 쿤데라가 인용하는 바람에, 베토벤에 관한 일화도 덩달아 유명해진 셈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출판 민음사 발매 2018.06.20. 인생에서 꼭 그래야만 하는 일들이 있을까?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듯한 우리 인생에서 꼭, 반드시,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은 인생의 무거움을 선사한다. 사회 제도가 주는 규약, 지켜야 할 의무, 따라야 할 법령.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는 많은 'Es muss sein' 들의 연속이다.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찬란히 빛나야 할 주인공을 갈구하면서도, 실상은 무겁게 자기 의무를 다하는 삶을 살아간다. 때로는 열정 때문에 눈에 콩깍지가 씌여 어떤 일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자기 스스로 그래야만 한다고 믿어버리는 순간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번 주는 이른 여름휴가다. 조금은 이른 시기에 여름휴가를 썼던 것은 바로 FC 서울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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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son.lee.142687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때문에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키보드 자판기 뒤에서 숨어 우리의 감정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종종 사이버 공간에서의 지나친 언어폭력과 인신공격으로 상처를 입는다. 사회적 신분이 철저히 숨겨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개인 정보는 인터넷 공간에 노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정보 보호하려 애쓴다. 홍채와 지문 등 생체 인식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간다. 그런데, 우리가 인터넷 공간에 뿌려대는 글도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재미있는 책이 있다.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W. 페니베이커가 쓴 『단어의 사생활』이라는 책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인은 매일 1만 6천 개의 단어를 사용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부지불식간 우리의 정체성과 성장 배경을 알 수 있는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무심코 작성된 이메일이나, SNS 메시지를 통해 작성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성격,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와 교육의 정도, 진위 여부, 감정의 변화, 권력 정도 등 다양한 개인의 성향의 거의 모든 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의 정도에 따라 개인의 사용하는 어휘의 수와 다양성은 어느 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단어의 풍부함에 주목했던 것이 아니다. 글 속의 개인의 성향을 알려주는 열쇠는 다름 아닌 기능어다. 기능어란, 대명사나 조서, 관형사 등의 단어다. 글의 내용보다는 이 기능어의 빈도나 종류에 따라 글의 작성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의미나 내용을 드러내는 명사나 동사보다도,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 주는 이 조용한 단어quiet words가 성격을 알려준다니! ​우선 대명사나 조사 등 기능어와 명사나 동사 형용사 등 내용어를 관장하는 뇌의 영역이 서로 다르다. 보로카 영역은 기능어를 제어하는 부분이고, 베르니케 영역은 내용어를 제어하는 곳이다. 기능어가 적절히 사용되려면 사회적 기술이 필요하다. 이 책은 기능어 중에서도 대명사의 사용 사례를 통해서 메시지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성향을 탐색하는 방법에 주목하는 듯하다. ​우선 상대적인 지위를 알려주는 것은 '나'와 '우리'의 선호도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우리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 반대로 지위가 낮은 사람은 나를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저자가 특히 주목했던 것은 우리라는 표현 속에 담긴 의미다. 문화권을 망라하고라도 우리라는 단어는 대략 다섯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나와 네가 같은 터울임을 강조하는 의미 외에 나머지 네 가지는 사실 나와 너를 서로 구분하는 의미가 강하다. 워터게이트 사건 전후의 닉슨 대통령이 나와 우리를 쓰는 빈도의 변화를 설명하는데, 높은 지위와 자아 존중감에 몰입된 사람은 나를 쓰는 일이 거의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일반인도 한 집단의 지도자가 되면, 나를 주로 쓰다가 갑자기 우리를 쓰는 빈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지위가 품격을 만든다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서도 증명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거짓과 참도 글에 나타날까? 그렇다. 진심을 말하는 경우는 글 자체가 길고, 더 어려운 단어를 쓴다. 또한, 긍정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덜 사용하고 세밀한 묘사와 정보를 지닌다. 여기서도 1 인칭 대명사의 사용이 언급되는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나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는 점이다. 나라는 단어는 신원 확인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는 점이 흥미롭다. ​반면, 거짓을 말하는 자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식의 수동 표현이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하거나, '맹세컨대' 와 같은 자기 수행적 표현이 많다는 것이다. 과도하게 약속을 따지고 법적으로 정당함을 따지는 자들 중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이 또 알려주는 듯하다. ​글은 사람의 감정도 남긴다. 행복할 때는 구체적인 명사를 슬픔과 분노에 빠져있을 때는 인지적 단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다. 긍정적인 경험을 할 때 사람은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반면, 우울증이나 슬픔에 빠졌을 때 우리보다는 나를 많이 사용한다. 이 책의 예시 중 가장 섬뜩한 부분은 나라는 표현이 우울증의 매우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사실이다. ✈ 서평 풀 버전은 Naver에서 <역마살 잡식 독서객> 검색! #역마살잡식독서객 #단어의사생활 #제임스W페니베이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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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son.lee.142687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의 제자로 불린다. 구스타브 융과 대척 관계에 있던 프롬은 그렇다고 프로이트의 모든 이론을 신봉하지 않았다. 프롬의 저작 가운데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한 책이라면, 『인간의 마음』을 들 수 있다. ​프롬이 『인간의 마음』에서 설명하려 했던 것은 인간은 과연 선 한가 악 한가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악의 정위Orientation 세 가지를 설명했다. 죽음에 대한 사랑과 자아도취, 그리고 근친상간적 고착이다. 이 세 가지 자체가 악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악한 이들은 세 가지 정위가 너무 강해 쇠퇴의 증후군을 형성한다. 대표적인 세 가지 정위의 최악의 케이스가 집대성된 인물이 히틀러다. 이 책의 곳곳의 좋지 않은 사례로 히틀러의 경우가 예시로 설명된다. 히틀러는 대표적인 자아도취자였고, 근친상간적 고착을 가진 자였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자아도취를 위해 타인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가는 퇴행을 일으켰다. 이런 사람이 악인이다. ​프롬이 지목한 첫 번째 정위는 죽음에 대한 사랑이다. 필자도 소개한 그의 저서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이미 설명한 네크로필리아necrophilious다. 죽음에 대한 사랑은 프로이트도 지목했듯 일종의 항문 가학적 성적 도착倒錯이다. 시체와 부패, 배설물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해, 장례식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과거에 집착하며 산다. 감상적이거나 법과 질서의 신봉자로 보이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죽음에 대한 집착을 반복 강박이라 부르며 인간의 본능이라 말했지만, 프롬은 이에 반대한다.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고 살아나가려는 삶에 대한 희망이 오히려 본능이라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를 믿었지만, 프롬은 살아가려는 에로스Eros를 믿었다. ​프롬은 삶을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어린 시절 애정 어린 사람과 더불어 살며, 사회적 부정인 차별이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삶으로써 삶에 대한 희망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안전 보장이 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안전 보장, 정의, 자유는 프롬이 주장한 삶에 대한 사랑의 핵심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현재의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 돌이켜 보게 된다. 조직이 우선시 되는 사회, 인간의 감정보다는 기계적인 성과가 더 신봉되는 사회, 물질을 소비할 수 있는 돈이 삶의 목표의 최우선이 되는 사회는 죽음을 사랑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은 악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프롬이 발견한 정위는 바로 자아도취다. 자아도취는 가장 원초적인 정위다. 우리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자궁 속 태아 시절부터 우리는 자아도취 상태에 살고 있었다. 자아도취는 태어나고 사회와 작용하면서 서서히 자기애에서 대상애로 발전된다. 즉, 사회화된다. 그렇지만 인간의 마음 깊은 저 아래 자아도취는 숨겨져 있을 뿐 없어지지 않는다. 자아도취도 적당한 자아도취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것에 대한 자아도취는 양성이다. 이런 자아도취는 일을 추진하는 에너지로 승화된다. 내가 성취한 것이 아니라, 내가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자아도취는 악성이다. ​악성 자아도취의 공통점은 타인과의 관계를 가질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조잡할 정도로 유아독존적이다. 미치광이는 기본적으로 이런 악성 자아도취자다. 모든 관심을 자기 자신에게만 둔다. 프롬이 지적한 악성 자아도취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지나치게 자기 이야기만 한다. 비난을 받으면 격렬하게 화를 낸다. 자아도취적 애착이 가져온 가장 큰 폐해는 합리적 판단의 왜곡은 물론 이성과 객관성의 손상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 프롬이 주목했던 정위는 근친상간적 고착이다. 사실 근친상간적 유대는 프로이트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리비도 이론의 핵심이다. 유년기의 성적 불만족은 한 사람의 인생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친다. 프로이트는 기계적 철학을 신봉하여 소위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보려 한 시도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의 의지가 성적인 불만으로 모두 설명됨이 옳았을까? 프롬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 서평 풀 버전은 Naver에서 <역마살 잡식 독서객> 검색! #역마살잡식독서객 #에리히프롬 #인간의마음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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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son
    단어의 사생활 / 제임스 W 페니베이커

    단어의 사생활 저자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출판 사이 발매 2024.06.20. 상세보기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때문에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키보드 자판기 뒤에서 숨어 우리의 감정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종종 사이버 공간에서의 지나친 언어폭력과 인신공격으로 상처를 입는다. 사회적 신분이 철저히 숨겨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개인 정보는 인터넷 공간에 노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정보 보호하려 애쓴다. 홍채와 지문 등 생체 인식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간다. 그런데, 우리가 인터넷 공간에 뿌려대는 글도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재미있는 책이 있다.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W. 페니베이커가 쓴 『단어의 사생활』이라는 책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인은 매일 1만 6천 개의 단어를 사용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부지불식간 우리의 정체성과 성장 배경을 알 수 있는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무심코 작성된 이메일이나, SNS 메시지를 통해 작성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성격,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와 교육의 정도, 진위 여부, 감정의 변화, 권력 정도 등 다양한 개인의 성향의 거의 모든 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교육의 정도에 따라 개인의 사용하는 어휘의 수와 다양성은 어느 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단어의 풍부함에 주목했던 것이 아니다. 글 속의 개인의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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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어의 사생활 / 제임스 W 페니베이커 24-058

    단어의 사생활 저자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출판 사이 발매 2024.06.20.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 때문에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키보드 자판기 뒤에서 숨어 우리의 감정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종종 사이버 공간에서의 지나친 언어폭력과 인신공격으로 상처를 입는다. 사회적 신분이 철저히 숨겨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개인 정보는 인터넷 공간에 노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정보 보호하려 애쓴다. 홍채와 지문 등 생체 인식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간다. 그런데, 우리가 인터넷 공간에 뿌려대는 글도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재미있는 책이 있다.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W. 페니베이커가 쓴 『단어의 사생활』이라는 책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인은 매일 1만 6천 개의 단어를 사용하며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부지불식간 우리의 정체성과 성장 배경을 알 수 있는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무심코 작성된 이메일이나, SNS 메시지를 통해 작성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성격,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와 교육의 정도, 진위 여부, 감정의 변화, 권력 정도 등 다양한 개인의 성향의 거의 모든 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의 정도에 따라 개인의 사용하는 어휘의 수와 다양성은 어느 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단어의 풍부함에 주목했던 것이 아니다. 글 속의 개인의 성향을 알려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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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마살 잡식 독서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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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독재자

    『단어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라는 사회심리학자의 책이다. 심리학자가 웬 단어?라는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의외로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이 책의 골자는 인간은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는 내용이다. 인간은 성별, 나이, 학력뿐 아니라 사회적 서열, 격식, 권력의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 중 한 가지 조금 더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하는 데,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나'라는 표현보다는 '우리'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또 다른 생각의 연결 고리를 촉발하고 말았는데, 유난히 '본인은~'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던 80년대의 군사독재자 전두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본인은~'도, 제임스 W 페이베이커가 제시한 정의에 의하면, '나'인 셈인데, 절대 권력의 제일 꼭대기에 있던 전두환은 왜 '우리'라는 표현 보다, '나'라는 표현을 더 즐겨 썼던 것일까? 아마도, 자아도취에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단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방법 보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즘에 더 빠져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한다. 많은 이들이 독재자를 이 부분에 주목했다. 민족을 이야기하고, 저들과 우리를 구분하려 했던 그들은, 사실 군중의 심리를 이용해 그들을 조정하려 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독재자는 자신 만을 바라본다. 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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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마살 잡식 독서객
    인간의 마음 / 에리히 프롬 24-057 (Part 2)

    인간의 마음 저자 에리히 프롬 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2002.08.10. (Part 1에서 계속) 그런데 왜 아버지에 대한 고착은 없을까? 이는 프롬의 다른 저작, 『사랑의 기술』에서 설명했듯,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부적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식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와 지켜야 할 윤리의 잣대 등 탄생 이후에 인간이 만들어내 집대성한 문화를 전수한다. 그것을 따라야, 비로소 아버지는 보상해 주기에 이르며, 무조건적으로 해주지 않는다고 프롬은 주장한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고착이 있을 수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것만큼 강력하지 않다. 그런데, 어머니의 근친상간적 고착이 무슨 문제일까? 사회에서 겪는 어머니는 가문, 지역, 국가, 민족, 인종, 종교 등 더 커다란 집단으로 사회화되었을 때 벌어진다. 인간은 자신의 어머니와 달리 '불멸의 어머니'를 꿈꾼다. 이들 확대된 '어머니'에 대한 광신적인 애착 상태가 문제의 발단이다. 이성적 판단이 불가해지고, 나의 집단이 아니라 판단된 사람들에 대해 인간이 아닌 것으로 느끼는 타자화 (그렇기에 이들을 헤쳐도 죄책감이 없다.)가 일어나고 집단 맹신주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광신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 외국인 혐오자, 민족주의를 가장한 차별주의자들의 모습이다. 프롬은 앞서 지목한 세 가지 정위, 즉 죽음에 대한 사랑, 자아도취, 그리고 근친상간적 고착이 최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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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마음 / 에리히 프롬 24-057 (Part 1)

    인간의 마음 저자 에리히 프롬 출판 문예출판사 발매 2002.08.10.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의 제자로 불린다. 구스타브 융과 대척 관계에 있던 프롬은 그렇다고 프로이트의 모든 이론을 신봉하지 않았다. 프롬의 저작 가운데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한 책이라면, 『인간의 마음』을 들 수 있다. 프롬이 『인간의 마음』에서 설명하려 했던 것은 인간은 과연 선 한가 악 한가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는 악의 정위Orientation 세 가지를 설명했다. 죽음에 대한 사랑과 자아도취, 그리고 근친상간적 고착이다. 이 세 가지 자체가 악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악한 이들은 세 가지 정위가 너무 강해 쇠퇴의 증후군을 형성한다. 대표적인 세 가지 정위의 최악의 케이스가 집대성된 인물이 히틀러다. 이 책의 곳곳의 좋지 않은 사례로 히틀러의 경우가 예시로 설명된다. 히틀러는 대표적인 자아도취자였고, 근친상간적 고착을 가진 자였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자아도취를 위해 타인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가는 퇴행을 일으켰다. 이런 사람이 악인이다. 프롬이 지목한 첫 번째 정위는 죽음에 대한 사랑이다. 필자도 소개한 그의 저서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이미 설명한 네크로필리아necrophilious다. 죽음에 대한 사랑은 프로이트도 지목했듯 일종의 항문 가학적 성적 도착倒錯이다. 시체와 부패, 배설물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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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 더 읽을 수 있음에도 책 읽기를 멈춘 달은 오랜만이다. 11권을 읽고 12 번째, 13 번째를 읽고 있지만 주말에 무리해서 완독하지 말고 7월에 포스팅을 하려고 한다. 물론, FC 서울 경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바람도 있지만, 뭔가 오늘은 나를 위해서 온전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 빼고, 천천히. ​6월에 읽었던 책을 돌이켜본다. 6월은 새로운 작가의 책보다는 기존에 좋은 느낌을 가졌던 작가의 다른 책들을 주로 읽었던 것 같다. 프랑스 작가 장 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 너무 감동적으로 봤던지, 그의 다른 책들을 둘러보다 만난,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나 『두 번째 산』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 그리고 김호연의 『나의 돈키호테』나, 임경선의 『다 하지 못한 말』,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도 그렇다. 물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읽었던 11권의 책 중 6권이 그런 맥락이니, 6월은 '익숙함에 기대어 봤던' 한 달이라 할 수 있겠다. 24-046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 장 폴 뒤부아 (6/2) 24-047 나는 초민감자입니다 / 주디스 올로프 (6/5) 24-048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6/6) 24-049 다 하지 못한 말 / 임경선 (6/9) 24-050 사람을 안다는 것 / 데이비드 브룩스 (6/10) 24-051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 (6/12) 24-052 나의 돈키호테 / 김호연 (6/16) 24-053 김치가 바라본 카레 세상 인디아 / 정은경 (6/18) 24-054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김미옥 (6/20) 24-055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6/21) 24-056 이주하는 인류 / 샘 밀러 (6/23) 6월 역마살이 추천하는 책은 쉽게 읽고 복잡하지 않는 책을 꼽았다. 평소 필자의 추천을 눈여겨보던 분들을 아실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것이 왠지 싫어지는 본격적인 여름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여행길에 휴가 중에 편하게 읽을 책들을 꼽아본다. ​1.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24년 작가 경력 속에 단 4 편의 소서란 썼다는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책이다. 아일랜드에서 실제 있었던 수녀원 소속 세탁소의 아동 학대 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그렇다고 끔찍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독자들의 상상에 맞기는 책이다. 독자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 하지 않았나? 대단한 작품이다. ​2. 『다 하지 못한 말』 / 임경선 여름에는 아무래도 달달한 연애 소설이 딱이다. 그런 면에서 임경선 작가는 남녀의 심리에 대해 정말 정통한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 남자와 여자의 속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 보는 재미와 과거와 현재 왔다 갔다 하는 구성을 통해 상당한 몰입감을 독자에게 안겨주는 소설이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 서평 풀 버전은 Naver에서 <역마살 잡식 독서객> 검색! #역마살잡식독서객 #24년6월독서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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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년 6월 독서 목록

    그만. 더 읽을 수 있음에도 책 읽기를 멈춘 달은 오랜만이다. 11권을 읽고 12 번째, 13 번째를 읽고 있지만 주말에 무리해서 완독하지 말고 7월에 포스팅을 하려고 한다. 물론, FC 서울 경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바람도 있지만, 뭔가 오늘은 나를 위해서 온전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 빼고, 천천히. 6월에 읽었던 책을 돌이켜본다. 6월은 새로운 작가의 책보다는 기존에 좋은 느낌을 가졌던 작가의 다른 책들을 주로 읽었던 것 같다. 프랑스 작가 장 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 너무 감동적으로 봤던지, 그의 다른 책들을 둘러보다 만난,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나 『두 번째 산』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 그리고 김호연의 『나의 돈키호테』나, 임경선의 『다 하지 못한 말』,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도 그렇다. 물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읽었던 11권의 책 중 6권이 그런 맥락이니, 6월은 '익숙함에 기대어 봤던' 한 달이라 할 수 있겠다. 24-046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 장 폴 뒤부아 (6/2) 24-047 나는 초민감자입니다 / 주디스 올로프 (6/5) 24-048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6/6) 24-049 다 하지 못한 말 / 임경선 (6/9) 24-050 사람을 안다는 것 / 데이비드 브룩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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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K리그1 20R 전북 vs FC 서울 : 대단원의 서막

    K리그 20R FC 서울의 전북 원정 경기가 있던 날이다. 글쎄, 난 시작 전부터 서울의 승리를 예상했다. 집사람에게도 5:0 정도의 대승이 예상된다고 말했으며, 네이버의 FC 서울 팬들의 승부 예측 투표에서도 '대승'을 찍었다. 그래서, 전주 원정 길에 두 번이나 예매와 취소를 번갈아 가며 갈등했다. 결국은 아내의 일정 때문에 원정길에 동참하지는 못했다. 직장 동료들한테도 오늘은 꼭 무슨 일이 날 것 같다고 말했던 바. 그리고 경기가 시작될 즘 이미 맥주 두 캔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서울의 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사실 경기 시작 전부터 이미 기세는 서울에 있었다. 공교롭게 양 팀은 소속 선수가 음주 파문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의 수비수 황현수 선수의 음주 운전 사실이 알려졌고, 전북은 김진수 선수가 음주 사실이 들통났다. 그런데, 사고의 대처가 달랐다. 서울은 사실이 알려지자 곧바로 황현수 선수와 계약 해지 수순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비해 전북의 경우는 김진수 선수가 음주 사실이 있음에도 이 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다. 공정을 중요시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것은 무엇으로 비췄을까? 게다가 김진수 선수는 전북의 주장이다. 서울의 캡틴, 제시 린가드 무려 7년 동안 리그 21경기, FA컵까지 합쳐 23경기 무패의 기록을 남긴 전북은 선수 관리도 그렇지만, 이미 그 마음가짐에서 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서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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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son.lee.142687
    흔히들 대한민국 축구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 말씀 많이 하신다. 해축보다 재미없다, 수준이 떨어진다 등 이런 말씀. 그러나 자국 리그의 발전 없이 축구 실력이 성장하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 경제학적으로 내생성장론을 절대 신봉하는 나로서는, K리그에 대한 사랑 없는 해축 신봉은 새로운 사대주의일 뿐이다. 생각해 보라, 손흥민, 김민재, 황인범 이런 선수들이 K리그 유스 시스템 없이 성장이 가능했을까? K리그 티켓은 일반석 ₩15,000원이다. 각종 제휴 포인트를 동원하면 더 저렴해진다. 영화 한편 값도 안된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피치 위에서 지열을 견디며, 오늘도 우리 K리그 선수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우리 축구를 사랑한다면, 국대 선수들의 플레이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지 말고, 가까운 K리그 구장을 찾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일단, K리그를 돕고 아울러 우리 축구의 선진화를 기하는 일일테다. ¡V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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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son.lee.142687
    필자의 블로그 닉 네임이기도 한 역마살이란 말이 있다. 정주하지 못하고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는 의미다. 역마살은 모험을 한다거나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도전이라는 의미보다는, 사실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한 말이다. 역마살이 부정적이라 함은 우리의 사고 속에 인간은 정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음이다. 그런데, 인간은 본디 이주하며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샘 밀러의 『이주하는 인류』다. ​저자 샘 밀러는 이주가 인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이주에 비해, 한곳에 머물고 국가를 이루고 했던 정주는 오히려 그 역사가 짧다. 저자가 지목한 이주의 개념은 심리학자 그레그 매디슨의 주장에 기초한다. 이주는 서로 매우 상이한 다른 문화를 만나고 이를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주 정의를 거리나 국경에 기초하지 않고, 문화의 차이를 경험하는 것에 둔다는 개념이다. 저자는 이주의 역사를 원시시대 이전부터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인간 외 동물로 이주의 영향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이주는 5억 3천만 년 전 가재지네가 물에서 육상으로 올라온 것으로 시작된다. 영장류가 나타난 것은 8천만 년 전, 영장류와 인간이 분화한 것은 5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인간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지만, 화살표로 표시될 만큼 단순하고 일방적인 이주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인류의 이주는 적어도 두 차례 이상의 복잡한 이동의 결과물이다. ​최초의 이주민이라 흔히 언급되는 네안데르탈인은 멍청하지도 말을 못 하지도 않았다. 또 그들을 멸종 시켰다는 사피엔스도 단번에 이주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가 공존하는 시기가 있었다. 때문에, 두 종의 이종 교배는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오늘날, 사하라 사막을 넘어 사는 현생 인류는 3~4%는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가지고 있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네안데르탈인이 멸종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사하라 사막을 넘은 적이 없는 흑인은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없다. 가장 긴 이주를 한 아메리카 대류의 남단에 사는 야간족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것은 2022년이다. 실제로 사라진 것은 야간족의 문화이지, 혈통이 아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최초의 정주가 일어났다고 믿어지는 지역이다. 기나긴 이주가 끝이 나고 1만 2천 년 전의 정주가 시작되었다 믿지만, 사실은 식량이 없어서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식량이 많았던 지역에 자연스럽게 모여 살았던 것은 아닐까? 인류 최초의 문명은 점유권의 시대에서 소유권의 시대로의 전환과 부동산 개념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가장 오래된 인간의 서사 <길가메시> 이야기는 이주와 정주가 선택이었음을 나타낸다. 오히려 가장 긴 이주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문헌은 <성경>이다. <성경> 속의 유대인은 이주의 끝판왕이다. 많은 민족들의 그들의 뿌리를 유대인으로 두고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민족들을 제외한 우리 모두는 네안데르탈인의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르사 힐에서 고대 유골이 발견되자 사람들은 강력한 카르타고 족 후손의 DNA가 드디어 밝혀질 수 있다는 희망에 열광했다. 하지만, '비자르의 청년'이라 불린 이 유골의 DNA는 페니키아의 것보다는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반도인의 DNA와 닮아 있었다. 종종 우리는 소위 역사 속에 큰 획을 그은 민족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려 한다. 그러나, 큰 획을 그은 민족이란 것이 있을까?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아리아인 등 인류의 고대와 현대사를 장식했던 이런 민족들이 원래 그 땅에 살았을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힌두의 전통을 가진 인도의 아리아인과 나치가 저들이 순수한 아리아인이라 칭했던 민족은 같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 저자는 유일한 인간의 발원지는 아프리카라고 인정하는 편이 어떻겠냐 주장한다. ​✈ 서평 풀 버전은 Naver에서 <역마살 잡식 독서객> 검색! #역마살잡식독서객 #이주하는인류 #샘밀러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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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son.lee.142687
    최은영의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속에 깃든 정서는 복잡하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희원은 늦깎이로 편입한 대학에서 그녀에게는 특별했던 젊은 여자 강사의 수업을 듣는다. 우연히 그 강사가 자신과 같이 늦깎이로 대학원에 다녔고, 여자이기에 연민을 느낀다. 희원에게 그 강사는 삶의 멘토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희원은 강사에게 삶을 이어가고, 그 끝을 보기 위해 끝까지 가 보게 만드는, 강렬한 빛은 아니지만 희미한 빛으로도 찬란히 빛날 수 있는 존재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희원과 강사의 관계는 <몫>에서 해진과 정윤의 관계와 유사하다. 교지 편집부 선배인 정윤은 여러모로 글을 잘 쓰는 선배였다. 해진은 그런 그녀에게 존경을 품지만, 실력이 떨어지고 권위적인 예비역 선배 용욱과 정윤이 사귀고 결혼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진의 동기 희영과 선배 정윤은 의견 차이로 대립하고, 급기야 기지촌 활동을 나간 희영이 병마로 유명을 달리하자, 정윤의 슬픔을 달래주는 몫은 해진의 어깨다. ​<일 년>에서도 동성 간의 유대는 계속된다. 인턴사원 다희와 카플을 하는 정직원 지수는 동갑인 다희의 솔직한 태도에 서서히 마음을 놓는다. <답신>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자매의 애증을 다루고 있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 모를 나이에 나이 들고 변태 성향의 선생님과 결혼한 언니와, 그런 그녀의 불행을 지켜봐야 하는 동생이 등장한다. ​최은영 소설에서의 여성 인물 간의 관계는 작가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유난히 빈도가 높은 여성 간의 심리적 갈등과 이를 통한 사건의 해결은 최은영 소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축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여성들의 절망과 유리천정에 부딪힌 그녀들의 절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꺾여버린 현실 속에서 그녀들의 연대는 애잔하다. 반면, 그녀의 소설 속에 비친 남자 인물들은 단면적인 성격을 가지며, 겉으로만 논리를 들이대며 시비를 따지고, 무례하거나 권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단순하고 위계 의식에 둘러싸인 인물들은 즐비하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희원의 말을 자르는 무례한 남학생이 그랬고, <몫>의 용욱 선배는 자신보다 똑똑한 정윤의 의견을 권위로 막아서려 했으며, <일 년>의 김 상무는 주인공 지수에서 치근덕댔다. <답신>의 형부는 한술 더 떠서 저열하고 음흉하기까지 한 빌런이다. 자칫 최은영 소설 속의 남자는 모두 권위적이고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파종>에서는 진한 남매의 정이 느껴진다. 이민혁과 이민주는 15살이나 차이 나는 남매다. 이혼하고 조카까지 낳은 딸 같은 여동생을 위해 헌신하는 오빠 민혁. 민주와 소리 모녀는 고난이 닥칠 때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삼촌 민혁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텃밭에 파종해야 하는 이런 봄날엔 더 말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남매 혹은 자매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쓴 다른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의 <지나가는 밤>에서 보이는 윤희와 주희 자매 사이의 애틋한 정을 보는 듯하다. <파종>에서의 오빠 민혁에게는 민주는 자신의 삶과 바꿀 수 있는 보호 대상이다. ​왜 최은영의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과거를 회상하는지? 강사 희원과 기자 해진은 인물들과 풀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공통점이 있다. <일 년>의 지수는 수술한 병원에서 다희와 우연히 조우하고 예전에 같은 직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돌이켜 본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주인공 희원도 자신이 강사가 되기 이전에 큰 이정표를 마련해 준 선배 강사를 회상한다. <몫>에서 해진도 병사한 동기 희영과 선배 정윤의 일화를 기억하는 형식이다. 이쯤 되면 최은영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 정형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 서평 풀 버전은 Naver에서 <역마살 잡식 독서객> 검색! #역마살잡식독서객 #아주희미안빛으로도 #최은영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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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son.lee.142687
    최근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페이스북 서평가 김미옥 님의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란 책이다. SNS 공간에서 기존의 서평과는 달리, 자신만의 독특한 독후감에 가까운듯한 서평을 쓰시는 분이다. 필자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김미옥 작가라는 분의 글을 처음 봤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잘 봤다는 생각이다. ​첫 번째는 서평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서평은 흔히 비평으로 일컬어진다. 때문에 등단하는 소설과 수필, 시 등과 함께 비평이 있을 정도다. 비평은 독후감과 어떻게 다른가? 독후감이 책을 읽은 후 자신이 느끼는 바를 주관적으로 써 내려간 글이다. 그에 반해서 서평이라는 것은 비평이다. 서평은 최대한 객관적인 자세로 써야 한다. 읽은 책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근거로 무장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 책이 좋다 싫다는 감정이 아니라, 이 책은 어떤 근거와 논리에 의해서 어떤 책으로 평가된다가 서평이다. ​그런데 김미옥 작가의 서평을 한데 모아 출간된 이 책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의 대부분의 서평은 독후감에 가깝다. 그렇다고 서평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형화된 틀은 언제고 변화하기 마련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우주의 만물이 움직이는 논리다.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어야 하듯, 서평이라는 것에 우리가 가지는 생각의 틀도 변화함이다. 필자는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유지하려 들면 생각도, 사회의 틀도 부패하기 마련이다. 변화해야 정상이다. ​두 번째 이유는 모 일간지에서 지적했던 이유와 같다. SNS라는 공간에서 특별한 목적 없이 이른바 덕후질을 했던 결과물들을 그대로 엮어 낸 것이 이 책이다. 김미옥 작가는 스스로 활자 중독자임을 자인했다. 책을 읽고 스스로 느낀 것을 그대로 페이스북에 올렸고, 대중은 그녀에서 파워 페부커라는 칭호를 선물로 안겨줬다. 작가가 이 책을 내기 이전에 이미 그녀는 서평 예의 인기 스타였다. 일간지가 주목했던 것은 독서를 소비하는 주체에서 독서를 하고 참여하는 주체로의 독자의 전환을 보여줬다. 누구나 그녀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 김미옥 작가라는 것이다. 김미옥 작가는 그런 어느새 독자가 작가로 참여하는 트렌드 세터라까지 불리고 있다. 말 그대로 김미옥 광풍이다. ​세 번째 이유는 단문에 지친 이들의 반격이다. 일반인들의 책 내기가 열풍이다. 실제로 책을 읽는 양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만 가는 이때에, 학계의 권위자나 유명 스타와 같은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글쓰기는 뭔가 엇박자로 느껴진다. 인간의 뇌는 영상이라는 필로폰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져 있는 상태다. 글보다는 영상이라는 중독성 강한 매체가 지배한다. 스마트폰은 단문이 지배하며 그나마 Z자로 읽는다. 문해력이 떨어졌다 여기저기서 문제의식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이 자신들만의 반격을 꾀하는 사회적 현상이 아닐까 한다. 마치 디지털 문명 속에서 아날로그의 반격을 꿈꾸는 이들을 소개한 데이비스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에서의 대중의 역린 현상을 연상시킨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그런 이유들에 의해서만 의미를 갖는 책은 아니다. 저자는 이미 일간지와 계간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어느 정도 글을 쓰는 내공이 이미 갖춰져있는 분임에는 틀림없다 하더라도, 독창적인 그녀 만의 서평 비법이 있는 듯하다. 간략하게 김미옥 작가의 서평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임팩트 있는 제목이다. 그저 책의 제목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함축할 수 있는 제목을 뽑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두 번째는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는 것이다. 긴 텍스트를 축약하고 핵심만 정리하는 것은 서평의 기본인데, 김미옥 작가는 기본에 충실하다. 다음은 연결인데, 책을 읽을 때 유사성이 연상되거나, 전혀 반대의 책들을 비교하여 소개하고 이들을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그런 다음이 네 번째로 몸글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고 자신이 느낀 부분을 솔직하게 쓴다. 이 부분이 김미옥 작가의 서평의 독창적인 부분이다. ✈ 서평 풀 버전은 Naver에서 <역마살 잡식 독서객> 검색! #역마살잡식독서객 #감으로읽고각으로쓴다 #김미옥 #파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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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우(豪雨) 대신 반가운 호우(好友)

    6월의 마지막 주, 남부 지방에서는 장마가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 때문인지 오후에는 간간이 바람도 불던 어제. 장마 호우豪雨 대신 반가운 호우好友들이 몰려왔다. 오늘은 반년 만에 회사 동기들을 만나는 날이다. 동기들이라고 해봐야 정통적인 동기의 개념은 아니다. 경력직으로 만난 우리는 나이가 같아 어느 순간 동기가 되었다. 각자 일하던 부서도 달라 일적으로는 엮일 일이 없었다는 것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였다. 그 어려웠던 코로나 팬데믹도 동기들 때문에 잘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다 2~3년 전부터 회사는 돈이 없어서 그런지, 그룹의 정책이 바뀌어서인지는 모르나, 하나둘씩 하던 사업을 접었다. 제일 먼저 필름 사업 쪽에 있던 동기 하나가 매각되며 사업과 같이 딸려 퇴사했다. EP(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쪽 사업을 하던 나머지 동기도 마찬가지로 사업이 없어지면서 새로운 사업에 매각되어 퇴사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오래 붙어있던 나도, 우리 사업도 이제 그룹에서 떠나 외부 사모펀드로 매각되었다. 우리 동기 셋을 만나게 해 주었던 그 회사와는 완전히 이별한 셈이다. 동기들은 못해도 1년에 두세 번 정도는 만나는 데, 한 동기가 다른 그룹사의 법인장이 되면서 갑자기 바빠지고, 다른 동기는 발가락까지 수술을 해서 올해는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정말 반갑지 않을 수 없는 동기들이다. 한 동기는 대우 상사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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