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흡입력으로 시작한 소설. 꿈속의 이야기와 자살을 위해 유서를 쓰는 화자 '나'의 이야기가 섞인다. 죽음이 나를 비껴갔음을 느끼는 순간,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하고 동시에 유서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힘든 순간을 지나온 한 사람이 자기 인생과의 작별을 앞둔 이야기인가? 하고 읽다가 이 소설이 역사도 함께 담은 소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써. 진짜 작별인사를. 제대로. 모두에게. 뭔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느꼈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에 궁금해졌다. 중반 이후에 나오는 시린 글을 읽기가 또 쉽지 않았다. 예전에 읽은 소설 <순이삼촌>을 읽은 기억이 없었다면 제주방언을 읽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제주 4.3 사건을 잠재적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알 수 없는 참혹함이 주는 감정을 견디지 못해서 중간 중간 책을 내려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시 붙드는 것은 한강의 은유적인 문장이 주는 힘 때문인 것 같다. 아무나 쓸 수 없는 글의 힘이 느껴지는 글맛. 그 맛이 좋다는 것은 나도 알 수 있었다. 그안에 공감이 가는 흐름들이 있었다. 그걸 쓰려면 생각해야 했다. 어디서부터 모든 게 부스러지기 시작했는지, 언제가 갈림길이었는지, 어느 틈과 마디가 임계점이었는지. 한강의 글은 (ㆍ) 마침표를 잘 읽고 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