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 민음사 발매 2017.08.07. [ 독서 기간 : 2024.08.26.(월) ~ 2024.09.13.(금) ] 나는 미도리를 사랑한다. 그건 오래전부터 분명히 알았다. 나는 다만 그 결론을 끌면서 회피했을 따름이다. …… 그리고 나는 나오코 또한 사랑했다.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묘하게 비틀어져 버린 사랑이기는 하지만, 난 분명히 나오코를 사랑했고, 내 속에는 나오코를 위한 꽤 넓은 자리가 손도 대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었다.(pp518~519) 벌써 9년 전이었네요. 「상실의 시대」란 제목의 책으로 읽었었던, 그때 쓴 감상문에는 등장하지 않는 구절입니다만, 2024년 두 번째의 독서는 위 구절을, 이 작품의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부분으로 꼽게 됩니다.[1] --- 9년 만의 재독(再讀)이 50대 중반의 남성이 되어버린 제게 남겨준, 이 작품의 줄거리는 그저, [1] 문학사상사에서 2000년에 펴낸, 「상실의 시대」에 실려있는 <한국어판에 부치는 작가의 서문> 속 다음 문장을 통해, 제 생각이 그리 어긋난 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 "제가 여기서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간명한 테마입니다."(p8) '나오코'와 '미도리'라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지닌 두 여성에게 양다리를[2] 걸친 스무 살 청춘남자 '와타나베...
헌치백 저자 이치가와 사오 출판 허블 발매 2023.10.27. [ 독서 기간 : 2024.05.03 ~ 2024.05.04 ] ◆ 이 소설 재미있어? 라고 누군가 제게 물었을 때, '읽는' 재미를 얻고자 한다면 사서 읽지 말고 도서관에서 빌려볼 것을, '읽은 후에 남겨지는 무언가'로서의 재미를 원한다면, 가능한 한 「법의 딜레마」[1]의 "1장 :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삶은 손해인가?"와 "6장 : 인간의 존엄은 형량 가능한가?" 부분만이라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하겠습니다. (물론 이건 제 기준에서고, 이런 선행 독서가 없더라도 이 작품이 지닌 온전한 의미를 이해하시는 독자도 많을 겁니다.) --- 이걸 넘어선 답변은 불가. [1] 윤진수· 한상훈 · 안성조 외, 「법의 딜레마」, 법문사, 2020. ◆ 당사자 문학 이라는 게 뭔가 대단한 것 같지만 --- "비장애인 작가가 바라본 장애인의 묘사가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가 작가인, 이른바 '당사자 문학'입니다"(p133)란 구절에서 볼 수 있듯, 새로운 장르는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1969년의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제가, 1910년 직후라는 역사적 공간을 '충분히' 공감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주변 어르신들 내지는 책으로부터 얻었던 간접 경험은 그 축적된 양과 질의 정도가 여하하더라도, 직접적으로 그 시기를 ...
날개의 날개 저자 아사히나 아스카 출판 미래지향 발매 2023.06.15. [ 독서 기간 : 2023.06.13. ~ 2023.06.16. ] 식사동 모 고깃집 광고 문구 보여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니나, 그 이면(裏面)에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를 보자면 세상이 달리 이해된다라는 사실은 여전히 낯선 경험인 경우가 많습니다.[1] '고기는 참숯에 구워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라는 고깃집의 광고는, 자신들은 참숯을 제공한다라는 (일종의 작은) 자부심을 내보이는 것이겠습니다만, 식당에 갈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마트에서 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후라이팬으로 '구워먹을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비아냥, 혹은 폭력이 될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해봅니다.[2] 사실, 이 광고 문구가 저를 기분 나쁘게 했던 건, 소고기건 돼지고기건 참숯 위 구리 석쇠보다는 돌판에 구워먹는 것을 압도적으로 더 선호하는 저의 개인적 취향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였었습니다만, 이건 그저 일 개인 수준에서의 선택으로 시작되고 거기서 바로 종결이 되기에 뭔 사회적 문제의 소지같을 걸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1990년 3월 9일 한 집에서 불길이 솟았다. 불길은 지하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화재 현장을 돌아보았을 때 그들은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방문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현...
애도하는 사람 저자 텐도 아라타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4.07.30. [ 독서 기간 : 2022.10.31. ~ 2022.11.01. ]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떠있는, 이태원 참사로 인해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는 내용의 이미지입니다. '애도(哀悼)'의 의미에 대해 사전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라 (아주 간략하게) 말해주고 있거늘,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 친구, 그 밖의 지인들도 아닌) 이름도 모를 정도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희생자들에 대해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처럼 (죽음을 슬퍼함이라는 의미의) '애도'를 표하는 (더 나아가 그들에게 '사죄'까지 하는) 그 진지한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가 궁금해, 오래 전부터 책장에 꽂혀만 있었던 이 소설을 찾아 펼쳤습니다. 자신 스스로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음에도, 특별한/타인을 이해시킬 수 있는 목적도 없이[1], 전도 유망하던 한 젊은이(사카쓰키 시즈토)가 이미 사망한 (낯선) 고인들을 '애도'하려 전국을 돌아다니는 스토리를 가진 소설입니다. 그 애도 순례와 연관된 세 명의 주변 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주인공 시즈토에 대한 서술을 풀어가고 있는, 매우 두꺼운 작품이지요. 당연히, 시즈토의 행동은 그가 접하는 사람들에게 의구심/의혹을 받습니다. (유별난) 종교와 관련된 행동이 아닐까? 정신병이 있는 건 아닐까? 심지어 모종의 사주를 받고 뒷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제목 :「울지마 인턴」 저자 : 나카야마 유지로 역자 : 오승민 출판사 : 미래지향 출판일 : 2020.05.15. 독서일자 : 2022.04.13. ~ 2022.04.16. 아메노 류지. 만 25세. 의사 1년차. 우는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p249) 줄거리에 대한 별다른 소개를 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인턴 1년차인 주인공이 겪는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 '우는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라는 마지막 한 문장으로, 그가 '진짜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잘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정도의 소개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면서, 이 소설은 저에게 '환자의 목표와 의사의 목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줍니다. …………………………………………… 환자의 목표는 당연히, 생명의 연장 혹은 질병의 나음이겠지요. 의사의 목표 역시 환자의 목표와 다르지 않습니다. 헌데! --- 질병의 나음이라는 목표와 생명의 연장이라는 목표가 서로 충돌하게 된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폐암 선고를 받은 미국의 베티) 할머니는 투병 중에도 담배 피는 것을 중단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할머니는 자신이 살던 방식대로 행복하게 죽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 박예슬 외, 「해피엔딩 : 행복한 죽음을 위하여」중 p189, 엔자임헬스, 2016. 이 소설의 저자처럼, 외과의사인 아툴 가완디는 그의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현대...
제목 :「천국까지 100마일」 작가 : 아사다 지로 역자 : 이선희 출판사 : 바움 출판일 : 2005.04.22. 독서일자 : 2022.06.17. 아사다 지로의 작품을 많이 읽어본 건 아니어, 겨우 두 작품만을 읽어보았을 뿐입니다만, 그 두 작품이, 고작 두 작품만을 읽어 본 작가를 향한 것 치고는 전례없는 큰 애정을 갖게 해주었었죠. 그 (경이로웠던) 두 작품의 메시지를, 굳이, 정말 '굳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단순화해본다면 저는,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 ('사무라이'라는 계급에 속해 있는 남자의 심정, 그 중에서도) '남편'으로서의 역할 「칼에 지다」 - (역시나 '사무라이'라는 계급에 속해 있는 남자의 심정, 그 중에서도) '아버지'로서의 역할 라고 적고 싶습니다. · · · "이 사내는 십삼 년 동안 원수를 찾았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오키치는 깨달았다. 그는 함박눈이 내리는 사쿠라다 문 앞에 이제껏 우두커니 서 있었던 것이다. 걸음을 내딛지도 도망치지도 차라리 죽지도 못한 채, 히코네의 홍귤나무가 새겨진 가마 곁에 십삼 년을 서 있었던 것이다. 긴고의 손에서 놓여난 사바시 주베에는 눈길에 떨어진 핏빛 동백을 움켜쥐고 울었다. 자신도 그날부터 줄곧, 이 동백 울타리 밑에 앉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사다 지로,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중 p198, 문학동네, 2013. 위의 구절을 읽는 순간, ...
제목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저자 : 이와사키 나쓰미 역자: 권일영 출판사 : 동아일보사 출판일 : 2011.05.01. 독서일자 : 2021.05.02. (출간되고 딱 10년 후에 읽었네요) 소설입니다. 하지만 순수 문학으로서의 소설은 아니고 (제가 앞서 읽었던)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의 내용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풀어주고 있는 책이죠. 일단 무지하게 재미있습니다. (이 책의 본 목적일)「매니지먼트」를 좀 더 쉽게 이해하고자 하는 의도로 읽어도, 행여 단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용도'로서의 소설로 읽어낸다 해도 이 책이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 거라는 걸 감히 장담할 수 있을만큼, 비록 그 결말은 뻔합니다만, 그 결말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분명 --- 아기자기하기도, 아주 잠깐이나마 긴장스러워지기도, 순간 울컥해지는 부분도 지니고 있는, 한 마디로 아주 잘 쓰여진 (노벨 문학상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의) 대중 소설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동네의 「롤리타」보다는 덜하지만) 50대 초반의 대한민국 남성이 들고 다니기에 적절해보이지는 않을 ('아청아청한'이란 경광등 어린 형용사의 오해도 가져올법한) 표지로 인해 (각잡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서만 독서를 할 수 있는 저야 상관없겠지만) 지하철 등지에서 감히 쉬이 펼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나마 우리나라 판본...
제목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저자 : 우타노 쇼고 역자: 김성기 출판사 : 한스미디어 출판일 : 2005.12.20. 독서일자 : 2021.04.10. ~ 2021.04.11. #1. 사놓은지 7~8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매년 이맘 때, 그러니까 --- 책의 제목에 맞게 '벚꽃이 지는 즈음'에 이 소설을 읽으려 했던 계획이, 매년 그 잠깐의 기간 동안 다른 일에 치여, 혹은 다른 책을 읽느라 이루어지지 못했었던 게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이루어졌네요. 어느 날 보니, 이 책의 리커버판까지 나왔더란말이죠. 아직은 일산에 벚꽃이 다 지지 않았음이 확인되어, 예의 '벚꽃 지는 계절'에 (드디어!) 읽어 낸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입니다. #2.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속는 재미'라면 이 작품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p518) - <옮긴이의 말> 중 추리소설의 기본은 '누가 - 왜 - 어떻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흔한 소재인) 살인 사건의 경우, 범인은 누구이며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 등이 한데 어우러져, 소설의 주요 모티브를 이루게 되지요. 독자들은 스토리를 읽어가는 도중, 나름대로의 '추리'를 해보게 되나, 예의 그들의 추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것으로 --- 해당 소설의 완성도/인기가 판가름되곤 합니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