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위한 경제학 저자 실비아 나사르 출판 반비 발매 2013.07.29. 이 책을 읽다 중간 여백에다 이렇게 적었다. “경제학자, 어쩌면 예언자, 어쩌면 해결사, 혹은 허풍쟁이” 경제학이란 학문을 제대로 공부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나의 경제학, 내지는 경제학자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인상에 그치고, 피상적일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피상적인 인상도 하나의 평가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래전 대학 입학 후 처음 접했던 경제학은, 당시의 조류에 따른 것이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아니 당시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치우친 것이었다. 사실 경제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정된 관점에서 해석되는 정치학이었고, 사회학이었다. 시야가 조금 넓어지면서 서로 대립되는 관점의 경제학을 읽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시일이 좀 지나서였다. 나의 시각은 이동했지만 어느 지점을 건너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이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느 근처에서 헤매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실은 그 헤맴이 얕긴 하지만 공부의 결과이고, 고민을 싹 티우고, 생각의 여지를 주는 것이라 여긴다.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 (원제: “Grand Pursuit: The Story of Economic Genius”)는 다시 한번 경제학에 대한, 경제학자에 대한, 그리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나의 시각을 넓히고 흔들어댄다. 원제처럼 ‘거대한’ 흐름을 만...
우아한 방어 저자 맷 릭텔 출판 북라이프 발매 2020.05.25. 면역이라는 인체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메커니즘을 밝히고, 이를 치료에 적용해온 과학자와 의사들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네 명의 환자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면역 전문가가 글쓰기를 익혀 쓴 게 아니라, 기자(저자 맷 릭텔은 <뉴욕타임스> 기자다)가 많은 과학자, 의사, 환자 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면역학을 익히며 쓴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비유들은 저자가 과학자들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라 과학자라면 그럴 필요가 없는 것들이고, 이것이 면역학에 대해 생소한 이들에게 무척 큰 도움을 줄뿐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면역학을 겉핥기로만 배운 나 같은 사람에게도 무척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 방금 밝혔듯이 이 책은 네 명의 환자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저자의 친구이자 암의 일종인 호지킨병에 걸린 제이슨, 동성애자로서 HIV에 감염된 밥, 골프 선수였으며 유능한 기업인으로서 열정적인 삶을 살다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스성 관절염과 루푸스에 걸린 린다 보먼, 그리고 역시 자가면역질환 환자 메러디스. 그리고 면역이라는 현상을 발견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어떻게 그 현상이 외부로부터 침입한 병원균을 비롯한 외부 물질을 물리치는지를 알아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면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한 질환과 증상들에 ...
죽음의 죽음 저자 호세 코르데이로,데이비드 우드 출판 교보문고 발매 2023.06.15.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던가? 세금을 회피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이니 그른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죽음도 마찬가지란다. 모든 생명체가 맞이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여기는 죽음을 인간이 피할 수 있다는 말이 허황되게 들리지만 죽음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죽음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과학적인 근거는 실제로 실질적으로 죽지 않는 생명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균이나 효모 같은 것들은 동일한 세포로 분열하면서(약간이 돌연변이를 수반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영원한 삶을 지속한다. 게다가 식물이나 동물의 경우에도 수천 년을 사는 것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죽음을 세포의 문제라고 한다면 영원한 살아가는 세포가 있다는 것은 죽음을 회피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영원한 삶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노화에 관한 것이다. 노화 역전! 노화 역시 인간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를 비롯한 적지 않은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이 책은 노화 역전이 가능하다고, 노화 역전으로 벌어지는 긍정적인 일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많은 문헌들을 바탕으로 주장하고 있다. 과연 가능할까?...
하나의 세포로부터 저자 벤 스탠거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발매 2024.09.30. 모든 생명은 단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된다. 하나의 세포가 생겨난 후 분열을 거듭하면서 최종적인 유기체로 발생하는 과정은 가장 신비한 과정 중의 하나다. 과학은 2백 년 전부터 이 과정에 대한 이해를 더하면서 적지 않은 것을 밝혀왔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의사이자 발생생물학자인 벤 스탠거는 과학자들이 하나의 세포부터 유기체가 발생하는 과정을 밝혀온 이야기, 그래서 지금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그것들이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더 밝혀야 할지를 이 책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발생학, 유전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진화생물학, 미생물학, 줄기세포 생물학, 암생물학 등등의 학문 분야를 넘나들고 있는 저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지금도 이 질문이 수수께끼이자 해결하지 못하는 질문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과학적으로 달걀이 먼저임이 분명한데, 저자는 이를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바로 배아, 즉 세포 하나에서 생명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운명의 결정, 즉 본성(nature)와 양육(nuture)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한 세포의 운명이 어디까지가 유연성을 지니며, 또 언제부터 결정되는지의 문제는 오랜 발생학의 과제였고, 과학자들은 이를 어느 정도는 해결했다. 그리고 이 해결 과...
세 개의 쿼크 저자 김현철 출판 계단 발매 2024.10.15. 1963년 ‘머리가 다섯 개 달린’ 천재 이론물리학자 머리 겔만은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에다 ‘쿼크(quark)’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쓴 (정말 읽기 어려운 소설) 『피네간의 경야』 2부 4장에 나오는 “마크 대왕을 위한 세 개의 쿼크!”에서 가져온 말이었다. 『피네간의 경야』에는 사전을 찾아도 나오지 않는, 기이한 단어들이 가득한데 쿼크도 그중 하나였다. “마크 대왕을 위한 세 개의 쿼크!”라는 말도 정작은 무얼 의미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실은 잘 모른다. 물리학은 물론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겔만은 이 난해한 소설에서 쿼크라는 이름을 가져왔는데, 처음에도, 그리고 꽤 오랫동안 쿼크라는 물질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단지 수학적인 계산을 위해 필요해서 도입한 개념일 뿐이었다. 그렇게 계산을 위해서 도입한 쿼크는 결국 실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제는 겔만이 그 이름을 생각할 때 고려했던 “세 개의 쿼크”가 아니라 여섯 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제 물질의 근본 입자는 원자가 아니라 쿼크다. 『강력의 탄생』에서 1895년 뢴트겐이 엑스선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1947년 이전에 유카타 히데오가 예측한 강력의 존재를 확인하는 파이온을 찾아내기까지의 역사를 그린 김현철 교수가 이번에는 그 이...
지식의 탄생 저자 사이먼 윈체스터 출판 인플루엔셜 발매 2024.08.30. 사이먼 윈체스터가 ‘지식’이라는 매우 보편적인 주제, 따라서 매우 어려운 주제를 다룬 책을 냈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그의 책들을 (최소한 번역된 책들을) 거의 다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우연한 기회에 『완벽주의자들』을 읽게 되었고, 그 이후 『교수와 광인』, 『세계를 바꾼 지도』, 『태평양 이야기』, 『영어의 탄생』, 『중국을 사랑한 남자』, 『크라카토아』로 이어졌다. 모두 2020년 한 해에 읽은 책들이다. 사이먼 윈체스터라는 저자를 알고서 빠져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이렇게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 쓸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역시 보장할 수 있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궁금했던 것은 그가 왜 ‘지식’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 쓰고자 했는지와 이 방대한 주제를 어떻게 접근했는지였다. 우선 직접 밝힌 이 책의 논점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사라지고, 따라서 생각의 깊이가 얕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렇게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된 현상 자체가 지식의 결과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식의 가치를 되찾고, 나아가 지혜에 이를 수 있는지를 지식을 얻고 전파하는 다양한 수단과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세렌디피티 저자 Farinetti, Oscar 출판 레몬한스푼 발매 2024.07.10.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1754년에 영국의 호레이스 월폴이 스리랑카의 옛 이름 세렌딥(Serendip)에서 가져와 만들어낸 말이다. 세렌딥와 세 왕자들이 세계를 여행하며 원래 찾지 않았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이야기에서 착안해서 실수에 의해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발명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BTS의 노래 제목에도 쓰일 만큼 이제는 특별한 용어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발명과 발견이 이 세렌디피티에 의한 것이다. 사실 제목을 보고, 몇 목차를 훑고 책을 골랐는데, 내용은 조금 예상을 벗어났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을 보다 광범위하게 여겨 세계적으로 성공한, 낯익은 상품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책이 다루는 것들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그렇다고 실망스럽진 않다. 음식에 이렇게나 세렌디피티에 관해 이야기할 게 많다는 게 신비할 지경이다. 생각해보면 음식만큼 세렌디피티가 많이 적용되는 분야도 드물 것 같다. 새로운 음식은 잘 고안된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우연히 들어간 재료에 의해 아주 색다른 맛을 내고 인기를 얻는 경우가 흔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수의 미학’으로부터 비롯된 음식의 세계는 비단 유명한 음식뿐만 아니라 오늘도 우리 곁의 식당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음식의 세렌디피티에 관한 책이고, 저자가 세계적인 음식 체인점의...
한국인의 기원 저자 박정재 출판 바다출판사 발매 2024.09.06. 현대 한국인, 혹은 한반도인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이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인정되오던 바가 있었다. 저 멀리 바이칼호로부터 시베리아, 몽골 고원 등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북방계와 남쪽의 섬으로부터 유입된 남방계가 어우러져 현대 한국인의 조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 대한 믿음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조금은 모순적인 인식인 듯하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위의 공고한 인식이 흔들리고 있다. 고인류의 뼈에서 DNA 추출해서 연구한 결과 현대 한국인의 주류는 북방의 라오허(요동)에서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반도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역시 일본인의 주류가 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늘고 있다. 생물지리학을 전공한 전공인 저자는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이후 어떻게, 왜 이동했는지, 어떤 경로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반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추론하고 있다. 학문의 성격상 완전히 증명할 수 없기에 ‘추론’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상당히 객관적인 증거를 토대로 펼치는 저자의 추론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많은 사실들을 설명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저자는 인류의 이동을 추동케 한 가장 주된 원인으로 ‘기후 변화’로 꼽고 있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
비글호 항해기 저자 찰스 다윈 출판 리젬 발매 2013.09.10. 오랫동안 벼르던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다 읽었다. 이런 책을 다 읽으면 일단 뿌듯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은밀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어떤, 폐쇄적인 모임의 일원이 된 느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찰스 다윈은 1831년 피츠로이 함장의 제안을 받고 고민하다 나중에 장인되는 외삼촌의 조언과 도움으로 해군 측량선 비글호에 승선한다. 애초의 계획보다 더 길게 5년 가까이 비글호에서 지냈고(배에서만 지낸 것은 아니지만), 돌아와서는 당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1839년 『비글호 항해기』를 냈다. 이미 비글호 항해 도중, 그리고 돌아와서 발표한 논문들과 채집물로 학계에서 유명해진 시점이었지만, 『종의 기원』을 내는 데는 아직 20년 전을 기다려야 했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기』를 1845년에 2판을, 1860년에는 3판을 출판했다. 지금 많이 읽히는 건 3판이고, 지금 내가 읽고 정리하는 『비글호 항해기』도 3판을 번역한 책이다. 『비글호 항해기』는 일기를 기초로 하고 있고, 대체로 날짜 순서로 구성했다. 하지만 날짜 순서대로만 적지 않고 있다. 각 장마다는 끝에 따로 생각을 정리하거나 과학적 견해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건 비글호 항해 도중의 생각뿐만 아니라 이후에 발전된 생각과 견해들이다. 말하자면 경험의 유사성을 묶고 있다. 『비...
글쓰기의 감각 저자 스티븐 핑커 출판 사이언스북스 발매 2024.06.30. 『빈 서판』,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지금 다시 계몽』. 이런 책을 쓴 스티븐 핑커를 글쓰기 책으로 다시 만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책은 그 두께에 비해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스티븐 핑커가 글쓰기 책을 냈다고 했을 때 그저 글 잘 쓰는 학자가 글쓰기에 대한 소회를 엮은 책이라고 여겼는데, 웬걸 그게 아니다. 본격적인 글쓰기 교본이다. 인간의 인지와 언어를 진화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그가 『아메리칸 헤리티지 영어 사전』의 어법 패널의 의장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영어로 글을 쓸 줄은 알지만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직접 소개하고 있다. 과제 보고서를 쓰는 학생, 블로그, 칼럼, 리뷰를 쓰는 비평가나 작가 지망생, 학계, 관료, 법조계 인사, 의학계 연구자 등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글쓰기 조언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류에 내가 꽤 많이 속해 있다. 한국어 독자로서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읽을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일반적인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고, 또 하나는 ‘영어’ 사용법에 관한 내용이다. 앞부분도 그렇지만 뒷 부분도 나에게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앞의 내용은 어쩌다 ‘작가’라는 타이틀도 가...
명작 속 의학 저자 김철중 출판 자유의길 발매 2024.08.02. 그림을 가지고 참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림에서 읽어낸 질병 이야기도 꽤 있었다. 이번에는 의학 전문기자가 쓴 그림 속 질병 이야기다. 그런데 아마도 신문의 기사로 쓰였던 글이라서 그런가, 각각의 이야기들이 상당히 짧다. 읽기에 좋은 면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읽다 마는 느낌이 반복되는 것 같다. 게다가 그림 자체에서 질병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떤 질병으로 고생하고, 죽은 이야기가 많다. 그림 자체와는 상관없는... 그렇다면 명작 ‘속’의 의학은 아니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 책의 미덕을 찾자면 다양함과 함께 우리나라 의사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해서도 좀 더 본격적인 목소리가 담겼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원래 여기 글의 태생적 성격이 그런 거라 여긴다.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을 고르자면 역시 자신의 앓는 질병의 흔적이 고스란히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이다. 백내장 때문에 풍경화가 점점 추상화가 되어간 클로드 모네, 디지털리스 혹은 압생트 때문에 황시증이 의심되는 고흐가 그린 그림이 유난히 노란색과 소용돌이가 많게 된 것, 렘브란트의 화풍이 입체감이 돋보이는 이유가 외사시 때문이라는 것, 섬세한 붓터치로 여성의 몸동작을 그려냈던 에드라르 드가가 아마도 망...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저자 도스토예프스키,표도로 도스토예프스키 출판 민음사 발매 2012.11.01.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이다. 1880년 발표했고 속편 격인 작품의 1부를 기획했지만, 다음 해 여동생과 상속 문제로 다툰 후 각혈하면서 폐동맥 파열로 숨졌다. 1821년에 태어났으니 딱 60년을 살다갔다. 고전, 명작으로 꼽히면서 많은 사람들이 읽고 논문과 감상을 남긴 만큼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터이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이 작품을 제목 그대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성격과 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 그리고 조금은 불분명하고, 앞의 3형제들이 형제로 인정하지도 않았겠지만 표도르의 사생아이므로 형제로도 묶일 수 있는 스메르쟈코프를 중심에 두고 정리해보려고 한다. 소설 속에서 카라마조프 가의 3형제에 대해 가장 간략히 정리하고 차이를 지적한 인물은 재판정에서의 검사다. 드미트리에 대한 재판에서 검사는, 이반은 ‘유럽주의’, 알렉세이는 ‘민중적 근원들’을 대변하고, 드미트리는 ‘러시아 자체’를 대변하는 듯 하다고 한다. 이 표현이 3형제를 정확히 상징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는 도스트예프스키의 의중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나는 거기에 보태 야생의 날 것 같은 드미트리, 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3 저자 도스토예프스키 출판 민음사 발매 2007.09.20.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민음사) 3권, 마지막 권은 온전히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중심 이야기는 친부 살해의 혐의를 받고 이송된 드미트리(미챠)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에 대한 재판 전후 과정과 장면들이다. 앞서 살인의 장면을 건너뛰면서 독자들에게 정말 살인범이 누구인지를 모호하게 설정한 도스토예프스키는 4부에서 그 전모를 밝히고, 재판 과정을 소상히 보여준다. 진짜 살인범이 누구인지는 둘째 이반과 하인이자 사생아 스메르쟈코프의 대화에서 밝혀진다. 이반은 형이 진범이라고 여겼으나 스메르쟈코프와의 이전 대화를 기억해내고, 사건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대화 끝에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다. 그런데 그 사건의 진상에는 자신의 ‘죄’도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병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재판을 하루 앞두고 스메르쟈코프는 자살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묻어버리고 만다. 재판에서는 검사와 변호사의 논거가 길게 이어진다. 검사는 여러 증언과 함께 심리적인 증거를 내세우며 살인범으로 드미트리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그는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반면 유명 변호사인 페츄코비치는 검사의 주장에 대해 낱낱이 반론을 펴면서 방청객의 환호를 이끌어내고, 눈물까지 자아내게 한다. 드미트리가 범인이라는 심리학적 증거는 똑같이 드미트리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도 될 수 있는 거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 저자 도스토예프스키 출판 민음사 발매 2007.09.20.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민음사) 2권은 조시마 장로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실은 1권에 붙어야 맞는 이야기이긴 하다. 실제로도 이 이야기까지가 2부에 해당하고, 2권의 100쪽이 넘어가야 3부가 시작된다. 2권의 핵심은 3부의 이야기, 즉 알렉세이(알료샤)가 수도원을 나오게 되는 이야기, 드미트리(미챠)가 아버지 표도르를 죽이고(정말 죽였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돈을 훔쳤다가 잡혀 심문을 받는 이야기다. 특히 후자의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구성을 지니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미챠가 아버지가 점찍은 여인 그루셴카의 마음을 얻기 위한 돈 3000루블을 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다 결국은 구하지 못한다. 그루셴카가 옛 연인의 전갈을 받고 다른 마을(모크로예)로 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분노하며 놋쇠 공이를 들고 아버지의 집으로 간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버지의 집 담장을 넘어간 미챠가 문 앞에서 그루셴카와 약속한 신호를 하는 장면까지 보여주고는, 바로 하인 그리고리가 깨어 낯선 침입자를 쫓고, 미챠가 놋쇠 공이로 그리고리를 쳐서 쓰러뜨리는 장면으로 바로 넘어간다. 나중 장면을 보면 아버지 표도르가 살해되었으므로, 아버지 침실 배게 밑에 놓였던 돈이 없어지고 미챠의 손에는 돈이 쥐어진 상태이니 범인은 누가 보더라도 맏아들인 미챠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저자 도스토예프스키 출판 민음사 발매 2007.09.20. 3권에 이르는 장편소설의 첫 번째 권은 그 다음의 이야기까지 독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원래 작가가 세 권짜리로 의도했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소설의 앞부분은 늘 그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배경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앞으로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암시한다. 그런데 그게 매력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전 명작이라고 소문 난 작품이라고 해도 다를 바는 없다. 첫 번째 권이 도무지 따라가기 힘든 지경이라면 손을 놓아버릴 게 분명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첫 번째 권은 카라마조프 가(家)의 구성원들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그들 사이의, 그들과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자식들을 버릴 정도로 이기적이며 탐욕 가득한 호색한 오십 대의 지주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와 어머니가 죽은 후 버려지다시피 한 상태로 성장하여 20대가 되어 아버지를 찾아온 세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가 주축을 이루고(그들은 배다른 형제다), 표도르의 사생아로 여겨지는 하인 스메르쟈코프(그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앓았던 질병인 간질을 앓고 있다)와 드미트리의 약혼녀인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아버지인 표도르와 장남인 드미트리가 결혼하고 싶은 안달하는 그루센카...
파친코 2 저자 이민진 출판 인플루엔셜 발매 2022.08.25. (『파친코』 1권과 2권을 모두 읽고 정리한다. 그러나 2권을 중심으로) 1910년부터 1989년까지의 재일교포 가족 4대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영화화되어 더 많이 알려졌지만 소설로도 충분히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한반도에 남은 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과 같은 일들을 겪지 않았지만, 조선인이라는 신분을 떼어낼 수 없었다. 그들의 자식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어를 쓰면서 살지만 조선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힘들기에 그들이 택한 것이 바로 파친코였다. 파친코를 통해서야 돈을 쥘 수가 있었다. 파친코는 재일교포의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상징한다. 공부 대신 일을 택한 모자수도, 공부를 통해 신분의 상승을 노리고 와세대대학에 입학한 노아도,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도 결국은 파친코 사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들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마치 정해져 있던 것처럼.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은 노아다.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런 노아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은 내가 상상할...
파친코 1 저자 이민진 출판 인플루엔셜 발매 2022.08.05. 『파친코』 1권의 제목은 ‘고향’이다. 소설 앞에는 “고향은 이름이자 강력한 말이다.”라는 찰스 디킨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 소설이 고향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고향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고향은 고국으로 확장되어 읽을 수 있다. 나라를 잃고 고향, 혹은 고국 조선, 한반도를 떠나 타국으로 건너간 이들의 처절한 생존의 이야기인 것이다. 소설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들의 몸부림이 역사를 인식하면서 거대한 대의를 따라 움직인 게 아니라 정말로 단지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는, 그러니까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특별한 삶을 기록했다는 얘기다. 세기가 바뀌며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져 가는 가운데 부산 영도의 나이 든 어부와 아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 하숙을 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이 낳은 아들 훈은 언청이에다 한쪽 발이 뒤틀린 기형아였지만, 반듯하게 자랐다. 훈은 가난한 집 막내딸 양진과 결혼하고, 훈과 양진은 부모의 하숙집을 물려받는다. 그들의 아들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지만, 정상으로 태어난 딸 선자는 부모의 지극정성으로 살아남았고, 훈과 양진은 사랑으로 키운다. 그런데 선자가 일본에서 건너온 (제주 태생의) 부유한 생선 도매상 한수와 사랑에 빠지고, 그가 유부남인지도 모르는 상태...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저자 이진민 출판 동양북스 발매 2024.09.10. 독일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게 어떨까 싶었던 생각은 첫 단어(파이어아벤트, Feierabend)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싹 사라졌다. 언어가 사람과 사회를 이야기한다. 이 평범한 진리를 매우 흥미롭게 알리고 있다. 독일어에서도 단어에 관한 책이니 독일 말을 쓰는 사람들과 그들이 얽혀 살아가는 모습을 말해주는 것은 당연할 듯한데, 이 책은 그걸 넘어서 그들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한다. 다름과 비슷함을 함께 이야기한다. 독일 말의 단어는 독일에 대해 으레 생각해왔던 것을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지허하이트(Sicherhei)와 같은 말인데, 안전, 안전성 같은 뜻을 지니고 있지만 보다 넓게 독일인의 철두철미한 대비 정신을 말해준다. 그런데 독일에 대해 생각해왔던 것을 반전시키는 단어도 있다. 킨더가르텐(Kindergarten)과 같은 말이다. ‘아이들을 위한 정원’이라고 풀 수 있는 이 말은 영어에도 있지만 미국보다 독일에서 보다 더 아이들을 위한 정원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글을 통해 나타나는 저자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독일의 뼈저린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단어도 소개한다.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와 같은 말에 쓰인 아르바이트(Arbeit)와 같은 단어가 있고, 슈톨퍼슈타인(Stolpers...
돌파의 시간 저자 커털린 커리코 출판 까치 발매 2024.07.10. 커털린 커리코. 202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다. 그녀의 이 자서전을 2024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직후 읽었다. 커리코가 mRNA 백신과 관련한 업적으로 수상했고, 올해는 microRNA에 관한 업적으로 주어졌으니 2년 연속 RNA에 관한 업적이 인정받은 셈이다. 그런데 커털린 커리코의 자서전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노벨상을 수여하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어나고 주로 치료용으로 개발되던 mRNA 기술을 백신 쪽으로 신속히 전환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받게 되는 시점까지다. 아마 이 책을 마무리하던 시점에는 자신이 언젠가는 노벨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2023년이 아니더라도. 커리코는 헝가리 태생이다. 공산주의 국가였던 헝가리에서 태어나 제약을 받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런 덕택에 대학에까지 진학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대학 시절부터 연구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연구의 길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한다(자서전에서 읽기 전부터 그녀가 미국으로 건너갈 때 딸의 인형에 비밀스럽게 돈을 숨겨간 일화는 잘 알려진 일화라 알고 있었다). 커리코는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평생의 연구를 RNA에 집중했다. ...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microRNA' 연구자에게 돌아갔군요. 오래전부터 이 분야에 주어질 것이라 얘기가 나돌았는데 드디어... NOBEL PRIZES 2024 Tiny RNAs with profound physiological importance Victor Ambros and Gary Ruvkun discovered microRNA, a new class of tiny RNA molecules that play a crucial role in gene regulation. Their groundbreaking discovery in the small worm C. elegans revealed a completely new principle of gene regulation. This turned out to be essential for multicellular organisms, including humans. MicroRNAs are proving to be fundamentally important for how organisms develop and function. Related articles Press release: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2024 Scientific background: For the discovery of microRNA and its 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