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눈이 다 녹지 않았다. 내리는 햇살에 남은 눈도 곧 녹을 것이다. 추위는 조금 누그러졌다. 하루 사이에 다른 풍경이다. 세찬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누구가 이 눈이 크리스마스에 오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올해는 열흘도 남지 않았다. 아쉽기도 하고 왠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도 크다. 동지였던 어제는 두 명의 친구가 왔다. 눈을 뚫고 온 친구들, 포장 해온 뼈다귀 해장국을 먹으면서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해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정치 이야기를 하다니, 나이가 먹은 거라고. 밤이 가장 짧은 동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두 친구는 동지가 지나면 봄이 오는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벌써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탄핵의 결과 그 이후를 말이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친구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가 문 앞의 택배 상자를 안으로 넣어주었다. 올해의 마지막 책이다. 크리스마스니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문한 책이라고 할까. 한강의 『디 에센셜: 한강』, 겨울이니까 『소설 보다: 겨울 2024』, 리뷰가 좋아서 궁금한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8월은 악마의 달』과 안톤 체호프의 『상자 속의 사나이』까지 네 권이다. 소설 보다: 겨울 2024 저자 성혜령,이주혜,이희주 출판 문학과지성사 발매 2024.12.09. 8월은 악마의 달 저자 에드나 오브라이언 출판 민음사 발매 2024.10.18. 상자 속의 사나이...
연말이다. 또 한 해를 살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아쉬움뿐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무엇이 그리 아쉬운가. 무엇이 그리 부족한가. 아니다. 모든 게 감사하다.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다는 것. 무탈하게 지내왔다는 것. 속 시끄러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다음으로 이어왔다는 것. 올 12월은 특별한 달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탄핵 가결, 촛불 집회.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모두가 뜨거웠던 순간. 앞으로의 과정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 고민의 시간을, 누군가 고민을 끝내고 선택의 시간을, 누군가 이전과 다른 삶으로 나갈지도 모른다. 박노해의 사진 에세이 『다른 길』에서 이곳이 아닌 그곳의 삶, 다른 삶을 마주하며 나의 삶을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을 잠시 잊어버렸을지언정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지 않을 때, 지금 이 길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질 때, 바로 그때, 다른 길이 나를 찾아온다. 길을 찾아 나선 자에게만 그 길은 나를 향해 마주 걸어온다. 나는 알고 있다. 간절하게 길을 찾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속에 자신만의 별의 지도가 빛나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진정한 나를 찾아 좋은 삶 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다른 길이 있다. (「그 길이 나를 찾아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시작은 누군가에게 쉽고 누군가에게는 어렵다. 남들이 보기에 뭐든 쉽게 시작하는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은 어려울 수 있다. 막상 시작하고 보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시작해야 알 수 있다. 시작하는 마음의 시작은 어디에서 올까. 시작하는 마음에 필요한 건 뭘까. 시작하기를 주저하는 마음을 독려하는 힘은 뭘까. 시작을 테마로 한 『시작하는 소설』을 읽고 한 동한 ‘시작’에 붙잡혀 있었다. 시작해야 할 것을 미루고 있는 내가 보여서, 미리 실수나 실패를 예상해서 시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시작하는 소설』 은 새해가 되면 작성하는 어떤 목표들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새 학년, 취직, 연애, 운동 같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작심 3일로 그친 운동, 100권 읽기 같은 보통의 목록. 그런 맥락에서 김화진의 「근육의 모양」은 가장 친근하고 익숙한 시작을 들려준다. 소설은 필라테스와 담배를 동시에 시작한 재인과 재인의 필라테스 강사 은영의 이야기다. 재인은 ‘해 본 것’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두 가지를 추가할 수 있었다. 얼핏 ‘해 본 것’이라고 하면 그냥 해보았을 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해보았다는 건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해보았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잘하거나, 성공 같은 것과는 별개로 더욱 대단...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산다는 건 같지만 모두가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나와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삶을 이루는 환경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이유로 친구가 되고 그런 거리를 두기도 한다. 아픔이나 상처에 공감하며 이해하거나 처음부터 그것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심리 때문이다. 허선화의 에세이 『나는 코아였다』에 대해서도 누군가 그런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나는 코아(알코올중독자의 자녀 COA: Children of the Alcoholics)란 단어를 몰라서 이 책이 궁금하기도 했다. 어쩌면 코아를 아는 이는 그래서 이 책이 불편하고 읽기 힘들 수도 있다. 지금은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안다. 도박, 마약 같은 범죄의 범주가 아니더라도 중독은 그 자체로 병이라고 인식한다. 정신의학과의 진료를 받아 상담이나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러나 70~80년대는 아니었다. 중독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남편이 술만 마시면 술 때문에 폭력적이 된다고 여겼다. 술만 아니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아내와 아이들은 남편과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했다.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 하지만 십 대의 저자에게 그렇게 말해준 이는 없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날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저자의 아버지는 교사였다. 꽤...
2024 마이 블로그 리포트 블로그 마을로 초대합니다: 지금 내 블로그 마을을 확인해 보세요! event.blog.naver.com 블로그를 정리하는 리포트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글과 이웃이 좋아한 글이 보인다. 글로 소통하는 공간. 블로그는 그런 곳이다. 2024년은 예년보다 블로그 활동이 미흡했다. 그럼에도 이달의 블로그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학·책, 일상이라는 키워드. 방문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네이버 인플루언서] 자목련 안녕하세요, 읽고 쓰는 자목련입니다. in.naver.com
김경미의 시집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가 궁금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시집의 제목 때문이다. 바다, 빗소리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나는 작약에 꽂혔다. 작약을 취급하는 세계라니, 그 세계는 마치 나의 세계 같았다. 시집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게 정확한 느낌이다. 잘 몰라서 읽고 잘 몰라서 좋다. 잘 몰라서 넘길 수 있고 잘 몰라서 다시 읽을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이런 시를 먼저 읽는다. 그냥 지금 우리의 마음 같아서. 우리의 현실 같아서. 단단하지 않더라도 소멸하지 않았던 어떤 믿음이 한순간에 망가졌다. 망가졌으니 고치면 그만이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서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냥 눈치를 보고 그냥 무리에 숨으려 한다. 해결과 수습은 시간 문제라는데,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행태를 지켜보자니 화가 난다. 늘 정확하게 네모반듯하거나 동그랗게 잘 지켜 준다니까 천 개의 연장통처럼 뭐든 다 들어 있거나 다 고쳐 준다니까 헛디뎠을 때 굴러떨어질 때 잘못 만났을 때 두드려도 문 안 열릴 때 두드린 적도 없는 문이 확 열렸을 때 해결과 수습은 시간 문제라는데 늘 시간이 없다 (「방법」, 전문) 시는 이래서 좋다. 나는 평론가가 아니니 내 맘대로 해석할 수 있고 내 감정에 끌리는 대로 취하면 그만이다. 다른 독자는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말이다. 얼마나 많이 배우고 얼마나 많이 실패하고 얼마나 많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고3이라는 시간은 딱 1년만 고생하면 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고3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동반하지만 이 시간만 지나면 뭔가 다 해결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냥 고등학교 3학년일 뿐인데 말이다. 강원도 고성의 바닷가 마을에 사는 ‘연우’가 어느 날 큐브에 갇힌 설정으로 시작하는 보린의 『큐브』에서도 마찬가지다. 연우도 고3이다. 이유도 모른 채 투명한 정육면체 큐브에 갇혀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연우를 찾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 연우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기력 그 자체다. 잠이 쏟아지고 잠에서 깨면 배가 고프다. 다행인 건 언제나 유부초밥이 있었다. 이상한 건 어디선가 ‘채집되었다’는 말이 나온다. 빨간 공, 언제나 같은 자리, 정육면체 한가운데 떠있다. 홀로그램 비슷한 것으로, 연우가 깨어날 때는 투병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모래시계처럼 아래에서부터 빨갛게 차오른다. 가끔 매미 소리를 낸 다음 메시지를 보여 준다. 넌 채집되었다, 근처에 먹을 게 있다, 의식을 통제할 거다, 내용은 딱 세 종류다. 공이 완전히 빨갛게 채워지면 큐브 안팎의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온다. 연우 자신만 빼고. (19쪽) 연우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데 어느 순간 ‘항상성 붕괴……부접합……조사종료……’란 말이 뜬다....
지난주에는 서울 경기권에 어마 무시한 첫눈이 내렸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첫눈이라는 걸 확인할 정도가 전부였다. 11월에 내린 첫눈과 함께 가을은 감쪽같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을은 아직 남아있다. 곳곳에서 붉은 단풍나무와 노란 은행잎을 볼 수 있다. 그래도 12월이니 마음은 겨울로 이동한다. 12월이라고 쓰고 보니 마음이 바쁘다. 딱히 잡힌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게 있는 것만 같다. 그런 게 있던가.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 한 해의 마지막이 달이라는 게 뭔가 압박으로 다가온다. 30일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 올해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 그러나 반문한다. 그럼 뭘 했어야 하지? 나름의 계획들은 언제나 그렇듯 무산되고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아, 모르겠다. 12월이라서 그런가 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책 이야기를 하자. 두 권이 주는 만족과 행복. 단 두 권이다. 어제 도착한 책이다. 김소연 시인의 『생활체육과 시』, 스콧 피츠제럴드의 『바질 이야기』. 표지도 너무 근사하다. 책 구매에 있어 표지가 미치는 영향은 이렇게 크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 작고 가볍다. 그러니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미루지 않고 바로 읽어야만 가능하다. 생활체육과 시 저자 김소연 출판 아침달 발매 2024.11.11. 바질 이야기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 출판...
주말에는 가족 모임이 있었다. 가족 모임이라고 해도 멀리 있는 조카나 일정이 맞지 않는 가족은 참여하지 않아서 온전한 가족 모임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남동생의 생일을 축하하며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실은 동생의 생일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내년에 결혼하는 조카의 남자친구가 인사를 하러 참여한다는 것. 요즘은 예식장 잡기가 어려워서 제일 먼저 예식장을 잡고 다음 일정을 진행한다고 하는데 조카의 경우도 그랬다. 주말 낮에는 양가 상견례가 있었고 저녁에는 우리 모임이 있었다. 장소는 중식당으로 정했다. 도착하니 이미 식당은 다른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11월 말이니 송년 모임이 많다고 했다. 연말 분위기가 전해졌다. 작은언니와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고 뒤이어 오빠 부부와 예비 신혼부부, 마지막으로 모임의 진짜 주인공인 남동생이 도착했다. 조카의 남자친구는 사진으로 본 것과 달리 예뻤다. 달리 예뻤다는 말이 오해의 소지가 있겠다. 실물로 보니 더 표정이 환하고 친근했다. 요리를 먹으며 대화가 오갔다. 조카의 결혼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청첩장을 받았고 그와 별개로 조카가 준비한 선물을 받았다. 마음이 이상했다. 그 전날 조카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조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본 기억 때문일까. 조금 복잡했다. 내가 신부의 엄마도 아닌데 말이다. 신혼여행지에 대한 이야기와 버진 로드 입장을 어떻게 하느냐 물었다. 아빠와 함께 들어간...
경험하지 않고 학습하지 않은 삶은 바깥에 있다. 일부러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면 생이 끝날 때까지 바깥에 존재한다. 자연스럽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되는 것, 소설이 아닐까 싶다. 윌리엄 트레버의 장편소설 『운명의 꼭두각시』을 읽으면서 그랬다. 아일랜드의 역사를 잘 모르는 나는 이 소설을 통해 그것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지독하게 아픈 역사의 상처와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에 대해서. 소설은 한편으로는 역사소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 그들의 사랑에 관한 소설로 각인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역사를 다른 소설을 바깥에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그 결과는 한강의 2024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진 건 아닐까. 윌리엄 트레버의 『운명의 꼭두각시』는 시대적 배경과 없다면 내가 느낀 것처럼 복잡하게 다가올 소설이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편에서 반대였던 독일군과 싸운 아일랜드가 독립을 원했지만 그것은 이뤄지지 않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기 위한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의 갈등과 싸움은 계속된다. 그 과정에서 배신과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서로를 적대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애나 우드컴은 영국인이지만 아일랜드 남자와 결혼했다. 킬네이에서 퀸턴 가문의 안...
겨울 근처를 서성인다. 이런 간식 때문이다. 올 겨울 간식은 바로 붕어빵이 아니다. ‘풀빵’이다. 잠깐 검색하니 이렇다. 그러니까 붕어빵, 호두과자, 계란빵 모두가 풀빵이라는 사실이다. 몰랐다. 풀빵은 철판으로 된 틀에 액체 밀가루 반죽물을 부어 굽는 한국의 빵류 음식을 이른다. 오방떡, 잉어빵, 붕어빵, 계란빵, 국화빵, 호두과자, 땅콩과자, 팥빵, 도미빵, 호빵, 타코야키 등을 풀빵이라고 할 수 있다. (위키백과) 엊그제 이 풀빵을 먹었다. 겨울의 맛이다. 호빵, 찐빵, 붕어빵 대신 올해 겨울의 첫 맛이다. 방송인 이영자의 말대로 봉지를 감싸지 않고 열고 들어온 언니. 소떡소떡의 맛을 알려준 이영자가 방송에서 호두과자를 사 온 매니저에게 한 말을 기억하다. 그 뒤로 항상 그 말이 생각난다. 이상한 연상작용이다. 아무튼 풀빵은 맛있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이의 손을 살피기 시작한 것 언제였을까. 어린 시절 퇴근하는 아빠의 손에 담긴 검은 봉지, 버스를 타고 장에 갔다 오는 엄마의 손에 든 봉지. 그 봉지에 담긴 건 무엇이었을까. 사랑이었을 것이다.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마음, 맛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 하루 종일 일하느라 수고한 아빠보다 더 반가운 봉지, 무거운 짐을 잔뜩 들고 오는 엄마보다 더 궁금한 봉지. 검은 봉지의 유혹이다. 요즘에는 붕어빵이나 핫도그, 꽈배기는 예쁘고 멋진 종이봉투에 담아주지만 그래도 간식 봉지는 검은...
인생에 연습이 있다면 잘 살 수 있을까. 아니다, 연습이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고 실전에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연습할 수 없기에 순간의 감정은 가짜가 아닌 진짜 최고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부끄럽고 후회로 남더라도 말이다. 윌라 캐더의 장편소설 『루시 게이하트』를 읽으면서 루시야말로 그런 삶을 살았구나 싶다. 추위에 떨지 않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춤추든 발걸음을 내딛던 루시, 어느 계절이든 쉬엄쉬엄은 루시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루시는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이 소설이 좋아서, 소설 속 루시를 상상하며 만나고 싶다. 살짝 상기된 얼굴에 긴장을 감추지 않는 표정을 상상한다. 루시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싶다.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했지만 루시를 아는 모든 이의 가슴에는 루시가 살아있을 것이다. 소설로 만난 모든 독자에게도. 작은 마을 해버퍼드 중심가에서도 1킬로미터쯤 떨어진 서쪽 끝자락에 살았던 루시는 피아노를 잘 쳤다.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피아니스트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시카고로 간다. 그곳에서 운명의 만남이 이뤄진다. 우연하게 듣게 된 성악가 서배스천의 노래를 듣고 스승의 추천으로 그의 연습 시간 반주자가 된다. 매일 서배스천의 연습실로 향하는 길은 루시에게 가장 행복한 길이 된다. 그건 서배스천도 마찬가지다. 루시를 통해 잊고 있던 생의 기쁨을 생각한...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안간힘을 쓰고 끊어질까 불안에 휩싸인다. 무엇으로부터 끊어지고 내쳐지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러다 한순간 알게 된다. 사는 건 언제나 불안과 두려움의 연속이며 그것과 화해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걸 알아차린다 해도 온전히 수긍하기가 어디 쉬운가. 오랜만에 읽은 조경란의 단편 「그들」 속 인물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아서. 그들과 우리가 너무 닮아 애처롭다. 「그들」은 영주와 종소 두 사람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노인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살고 있는 종소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지만 임용 과정에서 제외됐다. 어머니를 지켜보는 일은 힘들고 현재는 일자리가 없는 상태인 종소는 자신을 배제한 최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의 아내 영주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간다. 복수라니, 어떻게 복수를 하겠다는 말인가. 그에 반해 교수 남편을 두고 카페를 운영하는 영주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상하게 지금껏 지켜온 생활이 무너져버릴 거란 불안이 영주를 힘들게 한다. 단출한 에코백을 챙겨 카페에 출근해 보내는 시간이 영주에게 위안이다. 손님으로 온 종소가 남편과 아는 사이라는 걸 안 후에도 불편하지 않다.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교류가 오가는 건 아니다. 그저 뭐랄까. 서로의 불안을 조금 알아차리는 것 같...
초판으로 만났던 한강 작가의 첫 소설집. 현재는 사진만 남았다. 어느 해 가을 이 초판을 중고로 구매했다고 자랑한 H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특별판을 구매하고 초판을 정리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가 곁에 둔 『여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지난 10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가장 먼저 연락한 이도 H였다. 좋아하는 작가의 첫 소설집을 만나는 건 설레는 일이다. 소설가 한강,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의 소설은 언제나 어렵고 읽어내기 힘들다. 하여 다른 책에 비해 다소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도 그녀가 좋다. 더구나 『여수의 사랑』이라니, 여수 그곳은 내게 그리움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붉은 동백의 비단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여수의 오동도를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사진만 남았다. 『여수의 사랑』속 여수는 슬픔이었고 아픔이었다.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을 가진 정선, 그 반대로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자흔은 한 방을 쓰고 있었다. 보기에도 너무 다른 두 여자, 그들에게는 여수에 대한 고통과 그리움이 있었다. 부모에게 버려진 자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정선의 가슴속에는 가시처럼 여수가 박혀 있었다. 고향이 어딘지 모르는 자흔은 여수행 서울발 기차에 버려져 있었다. 자흔에게 여수의 바다는 엄마이기에 충분했다. 여수에서 아빠와 동생을 잃은 자흔에게 그곳은 지우고 싶은 공간이었다. 지난 10월에 한강의 노...
웬만큼 버릴 건 버렸다. 책 정리도 멈춤이다. 붙박이장도 정리했고 베란다의 상자 하나도 정리했다. 주방을 정리해야 하지만 주방은 나중에. 그릇과 잔을 보면 마음이 아플 것 같으니까. 크기별로 장만한 냄비와 찜기를 보면 살림을 잘 하고 싶었던 내가 떠올라서 조금 속상할 것 같아서. 그러고 보면 옷은 없는 것 같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버려서, 새 계절이 오면 사려고 했던 옷은 다른 계절에 밀리고 말았다. 원피스나 블라우스, 니트, 카디건을 보고 있지만 그뿐이다. 사는 즐거움이 없다. 이건 나쁘지 않다. 예쁜 옷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아닌데. 옷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고 책장을 정리하다 발견한 것. L자 파일에 수북하게 담긴 프린트물. 이게 다 뭘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 장을 읽어보니 바로 알았다. 신춘문예 당선작품이었다. 이맘때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이에게는 마지막 퇴고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새해가 밝고 1월 1일 자 신문을 살피던 때가 있었다. 신문사 별로 신춘문예 당선 소설을 읽던 때. 작가의 당선 소감, 이력을 읽고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읽었다. 신춘문예를 준비했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소설을 쓰던 시절도 없었다. 물론 마음에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인물을 만들고 몇 문단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읽는 독자, 읽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프린트물은 신춘문예 당선작품이었고 읽지 못했던 작가...
책장 정리를 하면서 한강 소설을 찾았다. 내가 가진 한강 소설은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띠지가 없다. 기념으로 소설을 살까 싶기도 하다. 대신 이번에 살펴보니 내 이름이 있는, 작가에게 직접 받은 사인본이다. 출간 당시 획일적인 사인이 아니라 서점 행사나 출판사에서 진행한 출판 기념회에서 아끼는 동생 J가 받아 보내준 책이었다. 고마운 J다. 13년 전 이 책을 받았을 때보다 더 반갑고 좋았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가 나를 위해 준비한 소설이었다는 게 고맙고 감사했다. 한강 특유의 고요함과 가만가만한 문장이 좋은 소설이다. 없는 소리를 상상하게 만든다. 집중하고 가만히 기다려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고 할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빛을 그린다. 조금씩 줄어드는 빛, 시간이 지나면 온전히 사라질 빛. 암흑만이 존재할 삶. 기척 없이 그녀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그의 얼굴 속에 새 같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 따스한 감각이 그녀에게 즉각적인 고통을 일깨운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147쪽)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은 아주 천천히 내게로 왔다. 처음 읽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침묵의 결이 느껴졌다. 그래서 아팠다. 들릴 듯 말 듯 한 가냘픈 음성이 있었다. 그래서 더 귀를 기울여야만 했다. 여자는 이혼을 했고 아이를 빼앗겼고 엄마가 죽었다. 모든 것을 잃은 여자는 어느 시절 말을 잃었던 것처럼 다시 말...
알람을 설정하고 하루 한 번 책을 정리한다. 알람은 이른 아침에 울리고 저녁에도 울린다. 처음엔 책 정리가 목표였는데 하다 보니 잡동사니도 정리한다. 버릴 것투성이다. 책은 어디에나 있다. 그랬다. 지난 주말에는 거실의 작은 2단 수납장에 있는 책을 정리했다. 내 책도 있었지만 그곳에는 작은언니의 책이 많았다. 합창 악보도 버리고 스프링 노트도 정리하고. 스프링을 빼느라 고생했다. 그러다 생각났다. 붙박이장에도 책이 있다는걸. 아, 책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나마 나는 욕실에서는 책을 읽지 않아 다행이다. 조카는 어렸을 때 욕실에서 항상 만화책을 읽었다. 학습만화 why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다. 조카가 나오지 않아서 밖에서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모른다. 제발 빨리 나오라고. 그랬던 조카는 이제 책을 읽지 않는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대출하던 습관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붙박이장에는 문학잡지가 있었다. 상태가 좋지 않다. 청소년 잡지답게 싱그러운 풋! 계간지도 읽었다. 다 지난 한때였다. 소설집으로 나오기 전에 가장 빨리 작가의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열심히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계절마다 계간지를 구매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모아둔 걸 보니 10년도 더 지난 것들이다. 그 이후로는 계간지를 구독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열정과 관심은 식었다고 할까. 아니면 아예 사라졌다고 할까. 시들해진 게 맞다. 더 이상 계간지를 ...
올해도 두 달 남았다. 아니 한 달하고 반이라고 해야 맞을까? 이맘때는 마음이 분주하다. 수험생도 아닌데 긴장도 하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아쉬움만 남는다. 그래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려 한다. 계획을 세우기 위한 준비물이 필요하다. 문구 덕후가 아니더라도 다이어리, 스케줄러, 달력 같은 걸 찾아본다. 예쁜 탁상달력을 고르고 다이어리를 살핀다. 그리고 이렇게 귀엽고 예쁜 일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일력을 꼭 구비하는 이에게 반가운 제품이다. 박스 패키지로 필요한 이에게 선물용으로도 좋다. 아마 센스 있는 선물이라고 좋아할 것이다. 2025 루나파크 일력 저자 홍인혜 출판 미디어창비 발매 2024.10.30. 루나파크의 루나(홍인혜)작가의 일력이다. 얼핏 잘 알려진 캐릭터가 전부일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아니다. 미공개 일러스트 373개를 수록했고 일주일을 잘 지내라는 무사기원 부적 포토카드 7종도 있다. 구성이 알차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낼 수 있도록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작가의 말처럼 일상을 지키는 게 가장 필요한 마음의 힘, 심력을 충전할 수 있는 365개의 응원으로 기분 좋은 하루를 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날그날에 맞는 메시지, 계절마다 놓치지 않아야 할 먹거리, 특정한 날을 의미 있게 보내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겼다. 일력을 넘길 때마다 어떤 말이 나올까 기대하게 된다. 주어진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도록, 소중한 ...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은 무엇일까. 눈을 감아봐야 알까. 아니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일까. 어쩌면 마음의 평정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제목만 보고 잠언 비슷한 글이 아닐까 짐작했다. 제목 때문에 에밀 시오랑이 생각나기도 했다. 생에 마지막 2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로 모두 9편의 짧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아내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1940년~1941년에 쓴 글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신기하게도 그가 살아온 시대는 80년 전인데 마치 지금의 우리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사는 건 결국 다 같은 것일까. 그는 말한다. 절망과 비탄이 가득한 삶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실패와 좌절 대신 웃음과 사랑을 바라보며 그래야 한다고. 그래서 이 짧은 9편의 이야기는 아프면서도 위로받는 기분이고 냉철하면서도 뜨겁다. 맨 처음 만나는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은 물질만능주의를 살면서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누가 봐도 초라한 행색의 청년 ‘안톤’은 가진 게 없다. 그러나 정작 안톤은 걱정이 없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타인에게 나누고 돈이 아닌 필요한 것들로 받는다. 아름다운 순환이라고 할까.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면 그만이다. 그런 마음은 최악의 인플레 사태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나에게 돈이란」으로...
한강의 두 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는 아끼고 좋아하는 소설집이다. 내가 구매한 책은 초판이고 책날개를 여니 2007년이란 메모가 있다. 낡은 책이 되었지만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어쩌면 작가는 이 소설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번에 다시 펼치며 눈에 들어온 글은 ‘작가의 말’이다. 개정판에는 다른 작가의 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평론가의 해설이 수록되었으니까. 나는 때로 다쳤다. 집착했고 욕망했고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움을 배웠고, 점점 낮아졌고 작아졌고, 그래서 더 가난한 마음으로 삶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오래, 깊숙이 들여다보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러는 동안 글쓰기는 나에게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숨쉴 통로였다. 때로 기적처럼, 때로는 태연한 걸음걸이로 내 귀를 끌고 갔다. 나무들과 햇빛과 공기, 어둠과 불 켜진 창들, 죽어간 것들과 살아 꿈틀거리는 것들 속에서 모든 것이 생생했다. 그보다 더 생생할 수 없었다. (작가의 말, 일부)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사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누군가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저 살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정해놓은 목표를 바라보고 살아갈 것이다.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주어진 숙명이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픔과 상처가 나의 몫이라는 게 때로 가혹하고 부당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