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추천
2520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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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널 미워해, 서이레

서이레 산문, <<미안해 널 미워해>>, 마음산책, 2024년 11월 출간 어떤 사람은 나중에 알고 싶어지기도 한다. '정년이'의 웹툰도 드라마도 보지 않았는데 이제야 궁금해진 것처럼. 에세이를 읽고 난 뒤에야 '정년이'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처럼.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지 고민할 때 봤다는 사주였다. 어디든 매달리고 싶었던 순간, 시크한 보살 님의 한 마디. "재능도 있고 잘 될 것 같은데. 자기 이름으로 책도 나올 것 같고. 상복도 있고. 나 같으면 할 거야. 계속해. 잘될 거야." (p197) 작가는 덕분에(?) 취직하지 않고 <<정년이>>도 무사히 론칭했다(p198)고 썼다. 이런 신기한 보살님 같으니. 그런 생각을 한 것도 맞지만, 그 말을 응원의 말로 받아들였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물론, 정말 재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비록 내가 보살은 아니지만) 위로의 말이 필요할 때, 아끼지 말아야겠구나. 뭐 그런 나만의 해석을 하게 됐달까. 작가의 이야기는,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좋은 자극과 힘이 될 것 같다. 그렇지 않더라도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된다는 '힘 있는 확언'이 필요한 이들에게도. '정년이'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에게는 '정년이' 탄생 비화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덧. 이 책을 읽고 <<삼체>>를 읽...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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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사랑을 연습한 시간》 신유진

《즐거운 어른》 이옥선, 《사랑을 연습한 시간》 신유진 두 권의 책을 주말에 읽었다. 두 권 모두 좋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각각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결국, 짧게 두 권을 모아 적는 건 길게 쓸수록 책에 대한 좋음보다, 내 마음속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꺼내놓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즐거운 어른》은 75세 작가의 '즐거운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사랑을 연습한 시간》은 신유진 작가가 어릴 때부터 마주했던 엄마의 책장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두 권의 이야기를 통과하는 건 '엄마'다. 나는 '엄마' 이야기에 무척 약한 사람이고,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부러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즐거운 어른》이 '엄마'이자 '자신'으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의 이야기라면 《사랑을 연습한 시간》은 엄마로부터 받은 '사랑'과, 엄마의 책장을 보며 자란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애써 '나의 엄마' 이야기를 포함하지 않고 나의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생각하기로 했다. 매일 책을 읽고, 공부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를 보고 자랄 나의 아이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아이들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즐겁게 살아갈 '나의 모습'을. 두 권의 책 다 추천하고 싶다.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자 '여성'들에게. 아이를 다 키우고 불현듯 찾아온 '자유의...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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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쓰기 위하여, 천쉐

천쉐, <<오직 쓰기 위하여>>, 글항아리, 2024년 9월 출간 우리 아마 다 알 거다. '글쓰기의 비법' 같은 거 어쩌면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냥 잘 쓰는 사람은 계속 잘 쓰고, 쓰고 싶은 사람은 계속 쓴다는 거. 그래서 무수히 많은 글쓰기 책을 만나면, 처음 드는 생각은 이거다. "뭐, 다 아는 얘기일 거야." 아마 70% 이상은 맞지 않을까. 다 아는 얘기. 늘 실천이 필요한 거고. 결국 쓰느냐 쓰지 않느냐의 문제라는 것도. 이제 <오직 쓰기 위해서>를 앞에 두고 말해보자. 글쓰기의 13가지 비법,이라는 부제 속 큰 줄기는 그렇다, 반 이상은 이미 알고,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다르다. 경험하고, 좌절해 보고, 실의에 빠져도 보고, 성공의 과정도 거치면서 내면에 단단하게 쌓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원론적의 이야기가 겉에 드러나는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자꾸 집중하게 된다. 빠져든다. 나를 믿으려면 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서문부터 좋았다. 다섯 페이지 남짓 담겨 있는 글을 읽으면서 문장 문장 줄을 긋고 싶었다. 서문의 제목은 "나를 믿으려면 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다. 작가는 어려운 가정 형편, 가장처럼 집안을 지켜야 했던 시절을 거치면서 글쓰기와 함께 생계를 위한 일을 놓지 않았다. 쓸 시간이 없다는 건 정말 핑계.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말이 왜 ...

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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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추천】 가장 별난 것, 메리 루플

메리 루플 / 가장 별난 것 / 카라칼 / 2024년 4월 출간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주는 격려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는 일이 죽이기니까요.(p17)"라는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앞 문장과 뒤에 이어지는 문장까지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하지만, 딱 이 한 문장만으로 압도되는 느낌이었달까. 작가는 저마다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어릴 때 빨리 커서 죽이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 조바심치지만, 나이가 들자마자 실상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온전해 깨닫게 된다고.(p17) 작가가 말하는 '노력'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보이는 무언의 선의다. 우리가 서로를 죽이는 일을 할 때 무언의 선의가 훨씬 더 많이 일어나야 한다고. 얼마 전에 읽은 작가의 <<나의 사유 재산>>을 읽은 뒤에는 <폐경>에 관해 이렇게 쓸 수 있다니...라고 생각했다. <<가장 별난 것>>을 읽은 뒤에는 <섹스>에 관해 이렇게 쓸 수 있다니... 생각했다. 그 글이 담긴 <눈>이라는 산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나는 섹스를 하고 싶다.(p13)' 글에서 작가는 눈과, 섹스와, 새와, 묘비(무덤)을 등장시킨다. 그것들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면 평온함이 남는다. 이 기이한 느낌이 뭘까,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그다음 글도, 그리고 그다음 글도 작가는 내내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했으...

202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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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덜 띄는, 이훤

이훤 에세이 <<눈에 덜 띄는>>, 마음산책, 2024년 11월 출간 기록적인 폭설이 첫눈으로 내리던 지난 며칠. 눈이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때마침, 한강 작가의 <<흰>>과 이훤 시인의 <<눈에 덜 띄는>>을 같이 읽고 있었다. 대체로 <<흰>>은 아침에 읽는다. 읽으며 필사를 하는데 '눈'과 연관된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러다 옮겨 적은 문장은 이랬다. 엉망으로 넘어졌다가 얼어서 곱은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던 사람이, 여태 인생을 낭비해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씨팔 그 끔찍하게 고독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 - <<흰>> 중에서, p55 슬픈데 알 것도 같아서 한참 머물렀던 문장이었다. 눈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하고 더럽게 하얀... 무언가라는 걸 갑자기 알게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나 이훤 시인의 <<눈에 덜 띄는>>을 읽으면서는, 이미 다 내린 눈이 포근하게 쌓인 도로 위, 지붕 위를 내려다봤다. 그런 것들은 위협적이지 않으니까 온 세상이 하얗고 고요하고 다정한 세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글이 그랬다. 어서 집에 가야지, 어서 집에 가자.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곳엔 온기가 있고, 안심이 있다. 천천히 읽다 보니 밤이 깊었고, 눈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눈에 띄지 않지만...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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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에세이 추천】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김도미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동아시아, 2024년 10월 출간 질병에 관한 혹은 치유에 관한 혹은 현재진행형인 몸에 드러나는 아픔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읽고 난 뒤 무어라 써야 할지 고민이 됐다. 누누이 말해왔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백 프로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타인도 나의 그것에 대해 그럴 거라고. 그리고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누군가 혹은 건너건너 누군가 '병에 걸렸다'거나 '치료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말을 아끼게 되는 이유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도 그저 말을 아끼는 쪽을 택했다. 그의 아픔이 공감됐다,라고 적는 건 거짓이니까. 김도미의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를 읽으면서 그야말로 나는 '자유'를 얻었다. 그건, 내가 마음껏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도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의 조심스러움은 그들에게 나의 말이 거만하게 들리거나 아직은 아프지 않은 이의 허세처럼 들리거나, 괜한 오지랖처럼 들릴까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 마음과는 반대로 '무슨 말이든 해야는 거 아니야?' 혹은 '뭐 이렇게 무신경해?'하는 말을 들을까 신경 쓰기도 했다. 내가 그렇듯, 아픈 몸을 살고 있는 그들 역시 누군가 애정이 깃든 마음으로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불...

2024.11.26
주말에 읽은 두 권의 책 《쓰는 생각 사는 핑계》, 《무지의 즐거움》

#쓰는생각하는핑계 #이소호 #시인 #에세이 이소호 시인이 펼쳐 놓은 쇼핑백 속에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쓰고자 하는 마음, 살고자 하는 마음, 애쓰는 마음, 버티는 마음......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무수히 사 날랐던 것들.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을 불행히도 소비밖에 몰랐다(p120)고 쓴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지만. 정말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소비만 남았을지 모르지만, 시인에는 이렇게 멋진 글이 남지 않았던가. (뭐 그런 어딘지 쓸쓸해지는 생각도 해보고) * ...... 무언가를 사랑하기 전에 공부하는 그때 들였다. 나는 문학을 너무 사랑했기에 내가 뭘 잘 쓰고 뭘 좋아하는지부터 살폈고, 아이돌을 좋아하기 전에 사회면에 나오지 않을 인물을 픽하기에 바빴고, 물건 역시 가치를 이해하기 전에 그 브랜드에 돈을 쓰지 않았다. 고로 문학을 포함하여 내 삶의 모든 것을 백화점에서 값을 치러 가며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감히 생각한다. p12 * 보들레르에게 튈르리 정원 부지를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백화점을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 백화점에는 꼭 소비 행위와 그 대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점도 영화관도 있다. 문화와 소비를 동시에 향유할 수 있는 진정한 즐거움이 거기 있다. 그리고 노동을 해야만 하는 이유도, 마감을 어기지 말아야 할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백화점에서 나는 생각했...

20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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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 최유수

최유수 에세이, <<환상들>>, 알에이치코리아, 2024년 10월 출간 아름다움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면 어떨까. 최유수 작가의 에세이 <<환상들>>을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움'을 상상했다.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상상하는 동안 기분이 좋아진 걸 보니, 아름다운 것, 아름답고자 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름다움은 '사람'을 생각할 때 커진다는 것도 글을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름다움은 참 도처에 널려 있구나 싶다. 마음만 연다면. 사람이, 인생이, 저마다 너무나 제각각이고 완전히 분리된 채로 자유로워서, 단지 그 하나의 사실로부터 소름이 끼치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 p26 진실로 자유롭기 위해서, 특별해지거나 대단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순수해지기 위해서...... 누구든지 자유로운 사람이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사람이야말로 아름답다. 그 원동력은 나의 바깥에 있지 않을 것이다. - p39 누군가는 타인을 지옥이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지옥이 보이기도 하고, 인류 전체를 바라보면 구원과 희망이 보이기도 하는 걸까...... 내가 타인을 바라보듯이 타인이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은 끔찍하고도 아름답다. - p118 묘한 느낌이 들었던 건, 작가의 글 속 '화자'...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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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이웃집 구틈틈 씨의 매일, 구틈틈

구틈틈, <<이웃집 구틈틈 씨의 매일>>, 청림Life, 2024년 11월 마음이 막, 몽글몽글해져요. 아이 냄새를 맡으면서 품에 꼭 안고 있을 때 뭉클해지는 순간 있잖아요. <<이웃집 구틈틈 씨의 매일>>을 읽는데 내내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막 간질간질하고, 아기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아기의 작은 손을 꽉 잡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구틈틈 "두 아이를 키우면서 전업 작가를 할 수 있겠어"라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는 마음으로 필명을 '구틈틈'이라고 지었다. 건축 사무소에서 7년간 일했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건축 현장을 다닐 정도로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다. 두 아이를 키우며 취미로 시작한 그림에 점점 빠져들었고 일러스트레이션과 만화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눈 뜨는 게 출근과 다름없는 엄마의 일상과 그 속에서 포착한 반짝이는 순간들을 담아낸 인스타툰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내며 사랑받고 있다. 오늘도 틈틈이 그리고 쓰고 키우며 행복을 발견하는 중이다. 인스타그램 @teumteum_koo <작가 소개 발췌> 육아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엄마'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상 이야기다. 너무 힘든데, 이상하게 또 행복한 것도 같고 행복한데, 우울한 엄마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와중에 아이들은 왜 이렇게 이쁜지. 그림으로 담아냈는데 이 아이들 팔닥팔닥 책 밖으로 뛰어나...

202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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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에세이】 내가 널 살아 볼게, 이만수 ⅹ 감명진

이만수 ⅹ 감명진, <<내가 널 살아 볼게>>, 고유명사, 2023년 1월 출간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 2012년에 만난 남자와 여자는 오랜 기간 함께 살고 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지는 않았다. 책 중간에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고, 이 책이 2023년에 출간되었으니 어쩌면 지금쯤 그들은 부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들이 여전히 알콩달콩 함께, 동거인으로 살고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그러겠지. "너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면서 왜 남들한텐 동거만 하래?" 그럼 나는, 새초롬하게 대답할테다 '해봤으니까. 결혼도 해보고, 아이도 낳아 키워 봤으니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인 게 결혼이라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안 하고 후회하는 것을 택할 거니까. 근데 이상하지. 같이 사는 건 똑같은데 왜 '동거'하면 달달한 로맨스가 떠오르고 '결혼'이라고 하면 뭔가 지지고 볶고, 복작한 이미지만 둥둥 떠다닐까. 결혼은, 하루하루 로맨스를 잃어가는 일이다. 그건 맞는 거 같다. <<내가 널 살아 볼게>>를 읽으면서 그래서 좋았던 것 같다. 어떤 로맨스를 자꾸 상상하게 돼서. 이런 장면들, 머리를 감고 나온 여자의 머리를 말려주거나, 사진 찍기가 너무 싫어도 여자를 위해 기꺼이 카메라 앞에 서거나, 어린아이 같은 남자를 하나하나 다 챙겨줘도 밉...

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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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추천】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 선우은실

선우은실,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 읻다, 2024년 10월 출간 문학비평가의 생활비평에세이. 하나도 웃기지 않은데 누군가 웃고 있다면, 그는 보통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다. 충분히 크게 화내도 되는데 대신 돌려 말하고 있거나 웃으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상황에서 위계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은 사람 또한 그 웃는 사람이다. ...... 웃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웃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부적절한 웃음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건 내게 끔찍한 웃음에 대한 경고가 된다. -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 중에서, p21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멋있나. 나는 대체로 피하는 사람이다. 어쩐지 예상이 되는 자리가 있으니까. 그곳에 가면 싫어도 웃어야 할 것 같고, 불쾌한 농담에서 화내지 못하고 미소를 지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자리는 애초에 가지 않는다. 당당하게 그 자리에서 웃지 않은 이야기에 웃지 않고, 불편한 농담에 맞받아치는 사람이고 싶은 건 오랜 바람이었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내내. 그리고 그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도 안다. 적어도 한국 사회의 직장문화에서. 선우은실 에세이 읽기의 즐거움은 글 도처에 깔려 있다. 어린 시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불편한 순간들, 혹은 즐거움들이 담겨있고 성인이 되어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 비...

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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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추천】 등을 쓰다듬는 사람, 김지연

김지연 에세이, <<등을 쓰다듬는 사람>>, 1984Books, 2024년 7월 출간 "사랑"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싶다. 각자가 기억하는 사랑의 첫, 모습을 떠올리는데서. 혹은 '사랑'하면 길게 잔상이 남는 어떤 이미지들을 떠올리는데서부터. 그런 책이었다. 그런 글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담아낼 수 없는 글. 누군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표정을 살피는 것처럼, 그림의 얼굴을 살피고, 만든 이의 시선이 응시하는 방향을 함께 바라보며 그림의 등을 어루만지는(p12) 이가 지어낸 글에 어찌 사랑이 담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 포근해서, 기분 좋아지는 글을 읽었다. 읽고 난 뒤에는 얼마간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그냥 그렇게 나도, 타인도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살면 좋겠다 싶었다. 어릴 땐 무지 견고하고 진중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너무 무겁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중력을 견뎌본 적 없는 천진한 가벼움 말고, 충분한 마음의 근력을 가진 사람의 우아한 가벼움. 그래서 예전보다 미술과 글쓰기를 더 미지근하게 좋아한다. 태워버릴 것처럼 내리쬐는 여름의 햇살은 내 삶도 말라붙게 만든다. 그보다는 따스한 봄빛 아래에서 촉촉하고 통통한 마음을 오래오래 돌보고 싶다. - <커다란 원과 미지근한 마음> 중에서, p59 사랑이 지나간 뒤에도 오래도록 남는 것은 말이나 활자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202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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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고쳐 쓰는 마음, 이윤주 (문장 발췌)

이윤주 산문, <<고쳐 쓰는 마음>>, 읻다, 2024년 8월 출간 * 다시 맞은 봄. 고궁에 가서 새순과 꽃봉오리들을 보았다. 움직여야 할 때를 절로 알아차리는 생명들은 매년 신기하고 감격스럽다. 움직여야 할 때를 위해 멈춰 있던 때가 그들에게 있었겠지. 나의 마흔도 사라져 버린 게 아니라 그다음을 위해 잠시 멈췄던 걸까. 겨우내 모든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맨몸을 드러낸 채 서 있던 나무들처럼.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돌아온 계절만큼 늙어 있긴 하지만. 직장도 없고 갈 데도 가진 것도 없지만. 사람은 원래 생의 절반쯤에서 길을 잃곤 한다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더라도. 중요한 건, 늦었음에도 그냥 하는 마음. <마흔, 멈춤> 중에서 p21 * 어른답게 산다는 건 나 자신이 세상의 일부임을 잊지 않는 것. 세상 어디에 불시착해도, 인생의 어느 지점에 던져져도, 동서남북에 따라 자신을 다시 설정할 수 있는 것. 얼마든지 세상과 인생과 다시 관계 맺을 수 있는 것. 그것은 동쪽 팔에 상처 난 기억으로 서쪽 팔을 핥아주는 일에 불과하다. 어른답게 살고자 하는 나는 더 이상 돌아버릴 것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돌고 있는 지구를 떠올려본다. <너의 동쪽 뺨> 중에서, p83 * 당신은 괜찮다. 괜찮을 뿐 아니라 하염없이 듣고 싶어 한다. 듣기는 일방적일 수 없다. 나도 당신...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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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추천】 나의 사유 재산, 메리 루플

메리 루플, <<나의 사유 재산>>, 카라칼, 2021년 2월 출간 박연준 시인이 산문집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에서 메리 루플에 관해 쓴 글이 있다. 메리 루플은 별난 작가다. 어떻게 별난지 묻는다면 '너무 뾰족해 주머니에 구멍을 낼 수밖에 없는 별처럼' 별나다고 하겠다. 별처럼 별나다니! 그녀를 표현하는 비유로 알맞은 것 같아서 혼자서는 흡족하다. (...) 한 존재의 뭉툭한 마음 귀퉁이를 뚫어주는 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메리 루플은 그런 일을 한다. 이게 그녀의 일이다. _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박연준, p184 이런 소개는 너무 궁금하게 하지 않나. 나는 잘 모르는 작가지만, 그때부터 머릿속에 계속 '메리 루플'을 담고 다녔다. 도서관에서 책을 발견하고 빌려오면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뿌듯했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와우. 이 감탄사에는 많은 의미가 남겨있는데, 좋다, 어머나, 이렇게, 이런 문장을, 뭐.. 그런 잡다한 좋음에 관한 많은 의미들이. 작가가 표현한 슬픔의 표현들, 폐경에 관한 글. 그랬다. 폐경에 관한 글을 읽으며 마치 내게 당장 당도한 것처럼 격렬한 감정을 느꼈던 거다. 작가가 슬픔을 색으로 표현한 글들. 색은 또렷하지 않은데 작가가 말할 때 어머, 그러네 싶어진다. 이런 책을 읽으면 한동안 멍해진다. 이걸 표현할 수 없어서 답답하고. 그런데 그 걸 박연준 시인은 '별처럼 별나다'고 시인처럼...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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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화가가 사랑한 밤, 정우철

정우철, <<화가가 사랑한 밤>>, 오후의서재, 2024년 9월 출간 밤은 우리의 몸을 재우지만 잠들어 있던 감성을 깨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진솔한 이야기가 시작되죠. 혹시 붓 터치에도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걸 아시나요? 물감을 두껍게 꾹꾹 눌러 바르며 사무치는 슬픔을, 부드러운 터치로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면 그곳에는 한 인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문득 그들이 표현한 밤의 역사가 궁금해집니다. 밤하늘이 이토록 다양한 색으로 우릴 덮어주고 있었다는걸, 밤의 그림을 되짚으며 알았습니다. 그만큼 풍부한 밤을 느끼기 위해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다섯 세기를 아우르는 101개의 밤을 담았습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밤은 어떤 역사를 담고 있나요? - 프롤로그 <추억을 그리고 위로를 전하는 밤의 역사> 중에서, p5 정우철 그림에 이야기를 입히는 도슨트. 작품 분석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미술 해설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과 예술을 한 편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시 해설가로 자리매김했다. ‘베르나르 뷔페’ 전, ‘툴루즈 로트레크’ 전, ‘호안 미로’ 전으로 이름을 알리고 이후 알폰스 무하,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앙드레 브라질리에 등의 전시 해설을 ...

2024.10.25
《문장 발췌》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이브 엔슬러

이브 엔슬러,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푸른숲, 2024년 4월 출간 이브 엔슬러 (Eve Ensler) 토니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극작가이자 작가, 사회운동가다. 대표작으로는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여성 200명을 인터뷰해 금기의 대상이었던 여성 성기를 둘러싼 고민과 남성 폭력의 기억을 담아낸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있다. 이 작품은 1997년 오비상Obie Award을 받았으며 희곡집 《버자이너 모놀로그》로도 출간되었다. 이외에도 7개월간의 자궁암 투병을 토대로 한 회고록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나는 감정이 있는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 등을 출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이름을 알렸다. 사회운동가로서 ‘브이데이V-Day’와 ‘원 빌리언 라이징 레볼루션One Billion Rising Revolution’을 조직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을 막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또한 인권운동가 크리스틴 슐러 데쉬베Christine Schuler Deschyrver, 201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드니 무퀘게Denis Mukwege와 함께 콩고민주공화국에 여성 폭력 생존자들을 위한 치유 및 지원 센터 ‘시티 오브 조이City of Joy’를 세웠다. 〈뉴스위크〉 선정 ‘세상을 바꾼 150명의 여성’, 〈가디언〉 선정 ‘100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에 이름을 올렸다. 현...

2024.10.24
3
내가 너에게 좋은느낌이면 좋겠어, 김민철 외 지음

김민철, 김하나, 하미나, 홍인혜, 황선우 지음 / <<내가 너에게 좋은느낌이면 좋겠어>>, 21세기 북스, 2024년 10월 출간 며칠 전, 이 책을 소개한 포스팅에 댓글이 달렸다. "저는 이 책 때문에 생리대를 샀잖아요.." 이게 무슨 말이지? 검색창에 바로 검색을 해봤다. 유한킴벌리 좋은느낌, 한글날 기념 행사 - 머니투데이 유한킴벌리가 한글날 기념 행사를 한다. 김민철과 김하나, 하미나, 홍인혜, 황선우 등 여성 작가 5인과 에세이집 '내가 너에게 좋은느낌이면 좋겠어'를 발간했고, 한글날인 오는 9일부터 사흘간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브랜드인 좋은느낌의 네이버 브랜드스토어에서 행사 상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에세이집을 증정한다. 또 자사 플랫폼 달다방에서 오는 16일까지 순우리말과 ... news.mt.co.kr 유한킴벌리 좋은느낌, 한글날 기념행사로 에세이집을 출간했다는 기사를 찾았다. 그제야 이웃 님이 남기신 댓글이 이해가 됐다. 그랬구나. 너무 좋은 이벤트다. 순우리말 브랜드는 좋은느낌은 2024년 한글날을 맞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소중하게 지켜가는 좋은느낌을 한글로 지어내고자 합니다. 오랜 시간 좋은느낌을 써온 여성들이 한 글자 한 글자 한글로 빼곡히 쓰여진 좋은느낌의 결정체인 '책'을 통해 이제는 좋은느낌을 읽으며 다정하고 편안한 기억을 공유하기를 바랍니다. 순우리말로 이루어진 좋은느낌이 한글날을 기념하는 방식. "좋...

2024.10.23
7
【인문학<심리학 책 추천】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변지영

변지영,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오아시스, 2024년 7월 출간 "항상 당신을 가로막는 건 언제나 생각'이었다!" 그랬다. 생각은 길고, 길어지면 생각에서 공상으로, 상상으로, 망상으로 이어진다. 대체로 그렇다. 걱정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일수록 좋은 생각으로 끝날 때보다 나쁜 생각으로 마무리되어, 마음에 쿵, 돌덩이를 하나 얹은 채 끝나게 된다. 아니, 끝나지 않는다. 돌탑을 쌓듯 계속 그 위로 쌓인다. 책 처방전이 있다면,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는 지금 내게 딱 알맞은 처방이었다. 그놈의 생각! 생각! 하면서 몇 주를 보냈으니까. 포스트잇을 얼마나 붙이면서 읽었던지. 일독을 하고, 포스트잇 붙인 페이지만 다시 읽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이 책에서 찾아낸 보물 같은 단어는 '자기 주제'다. 우리가 반복해서 겪는 어려움과 문제들은 나 자신의 감정 습관, 생각 패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통해 증폭될 때가 많습니다. 내 특유의 경향성 그리고 그 경향성과 관련된 '자기 주제'는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경험하는 사건들에도 영향을 끼치지요. 이를테면 자기 주제가 '소외되거나 혼자 남겨지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인 경우에는 늘 타인에게 맞추고 순응하다 보니 상대방이 함부로 대해도 꾹 참거나 웃음으로 넘기면서 갈등을 회피하는 일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 자기 주제가 '무시...

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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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추천】 몸과 이야기하다, 언어와 춤추다 / 이시다 센

여기 스물두 개의 동사가 있다. 만지다 / 건너다 / 돌아보다 / 낫다 / 고르다 / 달리다 / 이야기하다 / 기다리다 / 노래하다 / 잊다 / 울다 / 떨어지다 / 쓰다 / 입다 / 돌아가다 / 밀다 / 가시다 / 뛰어오르다 / 자다 / 그만두다 / 듣다 / 춤추다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쓰는 단어이기도 하고, 매일 우리가 하는 행동이기도 한 스물두 개의 동사가 글 안에서 굴러다니다. 마치 입안에 단어를 넣고 굴리듯. 뭔가 질감이 느껴지는 문장들을 만났다. 거칠기도 하고, 매끄럽기도 하고, 폭신하기도 한 느낌인데 그래서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흑백 요리사에서 안성재 셰프가 "모든 재료가 입안에서 다 느껴져요."라고 했던 음식평처럼. 다 느껴지는 게 싫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좋았다. 생생하게 감정이 느껴졌다. 실은 그래서 아팠다. 무심히 넘기고 싶은 감정이 있으니까. 아닌 척, 괜찮은 척하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그냥, 좀 그래도 되지 않아요?' 생각할 때마다 글이 붙잡아 말을 걸었다. '아니, 그러지 마. 제대로 응시해 봐. 그리고 피하지 마.'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말을 너무 많이 하고 했던 말도 기억해 두려고 애쓰다 보니, 오히려 모두 흐릿해진다. 잊어버리는 건, 앞으로 벌어질 일이 밝고 즐거워서일지 모른다. 맞아, 그렇다. 겨우 이르러 눈을 떴다. 너무 깊이 생각하면 좋지 않다. 그렇게 이불솜에는 ...

202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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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읽기, 이승우

'나'를 읽게 하지 않는 책을 도대체 왜 읽는 말입니까? 서문에 적힌 문장이다. 책을 통해 '나'를 읽을 때, 나는 '나'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같이 읽는(p7) 다는 말이 좋았다. 작가는 그러므로 읽기가 중요하고 '우리는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어야 한다(p7)'고 덧붙여 썼다. 그러려면 집중해야 한다고.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고. "집중하는 읽기를 고요한 읽기라고 바꿔 써도 되지 않을까요?" (p8)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엔가 깊이 몰두해 있는 상태를 고요한..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경험에 의하면, 집중해서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 고요한 읽기란 역시 쉽지 않다. 책을 읽으려고 하면 뭔가 자꾸 주변이 산만해지고, 안 찾던 사람들이 나를 찾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은 왜 그리 떠오르는지. 그러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설렁설렁 넘기게 되기도 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나를, 사람을, 세상을 정말 잘 읽기 위해서는 고요하게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요즘 많이 느끼는 중이라, 많이 공감이 됐다. 자기를 중심으로 어떤 사건(일)을 재구성해서 생각하는 게 '나'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요즘 몇 가지 일들로 마음고생을 좀 했다. 나는 나를, 타인을 생각하는 일에 고요와 반대로 조금 소란스럽게 대응했던 것도 같고. 여전히 조금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조금 차분해졌...

2024.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