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추천
31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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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하고 천박하게,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과 시인 이훤이 주고받은 편지

우정의 여러 모양을 생각해 봅니다. 저는 그걸 잘 모르겠어요. 내걸 다 내어주어도 좋을 그런 친구가 내게 있나, 그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함께 오래 잘 살아가고 싶은 누군가가 내게도 있나. 시인 이훤과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이 주고받은 편지를 읽다가 대책 없이 부러워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우정이 있구나, 하는 마음이었는지 그들의 글이 너무 좋아서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둘 다였을 거예요. 둘의 글은 정말이지 너무 좋았거든요. 이훤이 김사월에게 말해요. "어떻게 그런 가사를 쓰니." 저는 두 사람의 글을 읽다 혼자 중얼거립니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까." 편지는 세계를 다시 읽는 지침서 같은 거니까. 이 책은 둘이서 쓴 세계에 대한 일지이자 서로에 대한 목격담이고 자신에 대해 쓴 보고서다. 더 많은 타인에게로 향하는 광야의 우정이기도 하다. 그런 우정을 오래 원했다. 편지를 써도 삶의 어떤 부분은 해결되지 않는다. 우정이 모든 걸 구제해 줄 순 없으니까. 어떤 일들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 쓰고 읽는 동안 너도 그랬겠지. 앞으로도 그러겠지. 그러다 우리는 통신을 다시 건넬 거다. 수건을 주고받을 거다. - 휜, <2024년 10월 1일 사월에게> 중에서 우정이 모든 걸 구제해 줄 수 없고, 어떤 일들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순간에도 '그런 우정'이 있다면 한번쯤 넘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게 돼요. 나를 진심으로 가여워해주고, 인...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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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 센님(정세영) / 26만 유튜버 센님의 일본어 덕질 성공기!

중학교에 올라가는 큰아이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진 건 일 년 남짓. 처음엔 아빠와 함께 시작했다. 아빠가 틀어 놓은 <겁쟁이 페달>을 보고 난 뒤 슬슬 관심을 갖더니 <하이큐>를 보고 나서 홀딱 빠져들었다. 이후엔 혼자 이것저것 찾아서 보더니 어느 날 갑자기 선언했다. "나, 일본으로 유학 가고 싶어." 엥? 너무 급작스러운 전개이나, 아이의 호기심과 배움의 욕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서, "그래? 그럼, 일본어 공부 열심히 하고, 일본에 가서 뭘 공부하고 싶은지 고민해 보고, 고등학생 돼서도 계속 좋고, 공부하고 싶으면 본격적으로 준비해 보자." 대답하고 나니, 지나가는 말, 잠깐 스쳐갈 호기심일지 몰라도 괜히 내가 설렜다. 드디어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게, 좋아하는 게 생긴 것 같아서. 늘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였는데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배우고 싶은 게 생겼다는 게 우선 반가웠다. 같은 애니메이션을 여러 번 보는데, 한번은 자막 없이 보기도 하고 혼자 나름대로 공부도 하는 것 같아서 언제까지 이어지나 조용히 지켜보는 중이다. 『애니만 봤더니 일본어를 잘하게 된 건에 대하여』를 쓴 센님은 아이가 먼저 알았다. "엄마, 유튜브에 애니메이션으로 일본어 공부한 분이 있어." 이 책은 아이의 호기심 충족과,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싶은 엄마의 바람이 이어져 읽게 된 책이다. 책의 시작에 인용해 놓은 문장, "시작에 필요한 건 ...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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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천수이

천수이(변호사, 사회복지사) 달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더불어 함께'라는 가훈 아래 사회운동에 헌신한 부모님과 달리, 가난이 누구보다 싫어서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넬 때 마음이 편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대학 시절에 500시간 가까이 멘토링 봉사활동을 하고, 변호사가 되어서는 취약 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상담 자리를 택했다. 지금은 그 자리를 떠났지만, 틈틈이 마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인권 자문, 학교 밖 청소년·한부모 가정·스토킹 범죄 피해자 등을 위한 법률 지원을 하며 지내고 있다. 돈 잘버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으나, 돈이 필요하고, 가난하지만 법이 필요한 사람들 곁에 남은 변호사 천수이. 그가 써내려간 '법'이야기는 '사람' 과 '사랑' '돌봄'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돌볼 수 없다. 애정이 없으면 마음을 줄 수 없으니까. 그의 이야기 전체가 내게는 '돌봐주는 마음'이 되어 돌아왔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자리에 있기도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닐 거다. 당연히 누구나 할 수 없고,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일이고. 각각의 영역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을 테니까. 자신을 찾아온 이들을 내치지 않고, 마음으로 보듬어준 이야기...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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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에세이, 힐링에세이 /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홍

... 결국 다 좋아질 거라 믿어야한다. 그렇게 기뻐질 내일을 믿어야 한다. 당신을 울게 만든 일, 사람, 설움 반드시 지나갈 것이다.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주문 같아요. 제목만 소리 내서 읽어도 기분 좋아지는 책입니다. 우린 알죠, 모두 알죠. 오늘도, 내일도, 행복만 할 수 없다는걸요. 그런데도 자주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단어 중에 손꼽히지 않을까 싶을 만큼요. 사랑과 행복 중 우리는 어떤 단어를 더 많이 쓸까요. 책을 읽다 보니 사랑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겠더라고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사랑도 가득할 것 같고요. 그때의 그 사랑도, 행복도 결국 '나'부터 시작되어야 하고요. 언제부턴가 저는 '행복'이라는 말보다는 '기쁨'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기 시작했는데요. 어쩐지 '행복'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하게 느껴졌단 말이죠. 기쁨 여러 개가 모이고 모여야 행복이 될 것처럼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데요. 기쁨도 행복도 좀 거창하면 어때. 그래서 좋으면 됐지, 편해지면 됐지 싶더라고요. 각자가 원하는 만큼, 각자 가진 마음의 주머니에 가득가득 쟁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툭툭 꺼내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날까요. 4개의 장 제목을 모아보니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 행복은 불행을 이길 수밖에 없으니 사람은 결국 사랑으로 버틴다 함께 했던 날...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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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조앤 디디온

《상실》은 조앤 디디온이 남편 존 그레고리 던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떠난 뒤 1년여의 시간을 기록한 에세이다. 남편 그레고리 던은 2003년 12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독감이 악화되어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딸 퀸타나를 면화하고 돌아온 날 저녁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무런 예고 없이 떠나보낸 뒤 담담한 듯 버텨내지만 그녀는 고백했다. 남편이 살아돌아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다고. 에세이의 첫 문장부터 조앤 디디온이 그려낼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삶은 빠르게 변한다. 삶은 순간에 변한다. 저녁을 먹으러 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알던 삶이 끝난다. (p9) 든든하게 자신의 옆을 지켜주었던 사람이 아무런 예고 없이 떠나는 일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처음엔 그녀의 담담한 문장에 끌려 글을 읽다가 슬픔을, 비애를 꾹꾹 눌러 담아 써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언제든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자신을 가엾게 여길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심지어 절박한 욕구가 있다. 남편이 집을 나가거나, 아내가 집을 나가거나 부부가 이혼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헤어진 배우자는 좋든 싫든 촘촘한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기 마련이다. 사별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혼자 남는다. 두 사람의 삶...

20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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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 이야기와 쓰는 삶에 대하여 《친애하는 나의 글쓰기》 / 이영관, 곽아람, 김민정, 윤상진

이 책은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2023년 3월부터 8월까지 신문에 연재한 '파워라이터'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다. "셀링파워" 보다는 "다양성"을 보여주는 게 관건이었다고 한다.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수학자 김민형 등 각자의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저자, 소설가 김동식,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이슬아처럼 등단을 거치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책을 낸 작가들을 소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발췌) 저자의 손을 떠나 세상에 나온 책은 독자의 몫이지만, 한 가지 우려는 남는다. 이 책이 자칫 소수의 성공담으로 읽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문득 '나는 어디쯤 와 있는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는 타인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길을 바꿔도 괜찮은지 참고할 수 있다. 부디 이 책이 작가 지망생이나 작가를 위한 '글쓰기 지침서' 일뿐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하루를 버티고 내일을 그릴 수 있는 책으로 읽혔으면 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이영관, 곽아람, 김민정, 윤상진 작가의 말을 읽고, 바로 공감했다. 여전히 작가 지망생인(듯한)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 소수의 성공담' 인 것 아닌가. 하는. 읽다 보면 이해된다. 기획의도에서 말한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한마음이 무엇인지. 그래서 좋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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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남기는 사람, 정지우

'나는 나로 살기 위하여 심플해진다' 이 문장이 좋았다.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나로 살기 위하여 타인에게 휩쓸리지 않을 용기를 갖고 싶다. 타인을 삶에서 밀어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아서, 내가 타인에게 의미가 되기 위해 자꾸 노력하며 살기도 해서, 그래서 때때로 더 외로운지도. 작가의 다른 책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를 읽으며 좋았던 느낌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작가를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어떤 태도들을 배운다. 나를 대하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태도. 그게 글을 쓰는 이에게 장착될 때 어떤 글보다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을 거라 믿게 된다. *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일이란 내 삶을 점점 내가 좋아하는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내가 동의할 수 없거나 싫어하는 문화에 휩쓸려가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문화로 내 삶을 물들이는 일이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은 남의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삶과 나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내가 이길 것은 나 자신과 나의 문화일 뿐, 다른 누군가는 아니다. - <나에게는 경쟁자가 없다> 중에서, p20 * 나는 오직 나의 시간만을 살며, 그 시간으로 얻는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나의 자신감을 가지고 내 삶을 살 수 있을 뿐이다. 거기에 집...

202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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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추천 도서 : 에세이 편

새해, 새마음으로 읽기 좋은 에세이 세 권 추천해요. 이슬아 작가의 <<새 마음으로>>, 박준 시인의 <<계절 산문>>, 정은귀 번역가의 <<딸기 따러 가자>>입니다. 세 권 모두 마음을 말랑하게 하면서, 다잡게도 하는 묘한 책입니다. #새마음으로 #이슬아 #이웃어른인터뷰 지금도 큰 욕심이 없어. 입에 풀칠할 수 있고 마음 편하면 그걸로 됐다 싶어. 할머니하고의 세월을 돌아보면 정말 잘했다고 느껴. 요즘에는 그저께 만난 사람 얼굴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오래된 일은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 이상햐. 미안한 일들도 한스러운 일들도 어제 일처럼 기억나는데, 그런데도 나한테는 삶이라는 게 참 풍족한 것 같어. - 장병찬 할아버지의 인터뷰 중, p150 저는 이 책을 2022년 1월의 첫날 읽었어요. 그 이후 새해가 되면 '새 마음으로' 다시 찾아보게 됩니다. 다정한 어른들에게 듣는 새해 덕담 같아요. 이슬아 작가가 이웃 어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글로 엮어 놓은 책입니다. 응급실 청소 노동자 이순덕 - <나보다 더 고달픈 사람을 생각했어요> 농업인 윤인숙 - <버섯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이존자, 장병찬 - <나를 살리는 당신> 인쇄소 기장 김경연 - <색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인쇄소 경리 김혜옥 - <숫자를 맞추는 사람은 누구인가> 수선집 사장 이영애 - <고쳐지는 옷과 마음>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삶을 꾸려가는...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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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진정한스웩 <<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 실버 센류 모음집 2

센류(川柳)은 5·7·5인 하이쿠(俳句)의 형식을 빌려서 하이쿠(俳句)가 비속화된 것으로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읊은 곳케이(滑稽) 문학이다. 기고(季語)와 기레지(切字) 등의 제약이 없고 교카에 비해 전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내용을 담아 비속한 용어로 날카로운 풍자를 엿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세태를 풍자하는 대중문학으로 사랑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근세문학 [Early Modern Literature] (학문명백과 : 인문학, 임성규) '실버 센류'는 가볍게 도전할 수 있는 센류 창작을 통해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겨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익사단법인 전국 유료실버타운협회에서 2001년부터 매해 개최하고 있는 공모전 이름입니다. "괜히 진지해지지 마세요. 함께 하하 웃어주세요." 노년이라서 외로울 거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사람은 뭐, 각자 다 외로우니까. 내가 나이 드는 게 두려운 이유는 외로움보다 절실함이 남을까봐다. 삶에 대한 절실함, 경제적 문제에 대한 절실함, 뭐 그런 것들. 젊은 시절에도 전전긍긍 애쓰며 살았는데 노년까지 그렇게 살게 될까봐. 후회하고, 아쉬워만 할까봐. 걱정하기만 하면서 살까봐. 실버 센류 모음집을 읽다 보면, 맞다 하하 웃게 된다. 근데 곧 뭉클해지고 코 끝이 찡해진다. 모음집 1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이번 <<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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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우주를 지어줄게, 김은경·남지연

오십까지 4년 남았다. 올해 나는 마흔여섯 살이 되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이런 생각을 매년 한다. 아마 내년에도, 후년에도 하겠지. 그러다 어느 날 그럴 거다. "어머. 나 오십이야. 이제 오십 대라고." 그러고보니 같이 사는 남자는 올해 오십이 되었다. 2024년이 끝나는 날 밤 그에게 물었다. "오십이 되는 기분은 좀 달라?" 무미건조하게 그는 대답했다. "아니, 아직은." "아직은."이라는 말이 어쩐지 위안이 됐다. 그는 늘 너무 바르게, 계획대로 사는 사람이라 오십도, 갱년기도 자기 맘대로 감정 컨트롤이 되는 건가, 무서운 사람이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기에. 나의 오십은, 여전히 모르겠다. 어떤 오십을 맞이하게 될지. 차근차근 지금의 나를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살짝 두렵기도 하다. 오십은, 정말 '나'를 책임져야 하는 나이 같아서. 온전히. 핑계도 대지 못하고. 김은경·남지연 에세이 <<너에게 우주를 지어줄게>>는,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자는 마음으로 펼쳤지만 책을 다 읽고 덮을 땐 그래 뭐 별거 있어. 오늘 웃고, 오늘 맛있는 거 먹고, 오늘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자. 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두 사람 역시 30대, 40대를 바쁘게 치열하게 쉽지 않게 보냈다고 했다. 김은경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p99)'고 썼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공부도, 결혼(준비)도, 육아도 다시...

202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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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사람은 사랑에 이르다, 박나은

묘했다. 읽는 동안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따끔따끔 거렸다. 따끔따끔인지 간질간질인지 실은 잘 모르겠다. 아니면 오돌토돌 뭔가 돋아나는 느낌이었는지도. 웅크리고 있던 커다랗고 묵직한 물체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잘만큼 잤어. 숨을만큼 숨었어. 이제 슬슬 일어나 볼까. 하는 것처럼. 죽음만을 생각하며 산 지 1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고장 난 뇌의 회로 때문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만을 고민하며 살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나는 겁이 많았다. 뛰어내릴 수도, 손목을 그을 수도 없었다. 죽기만을 바라며 사는 삶. 아무런 존재가치도 남아있지 않은 삶을 종결할 용기조차 없는 자신에 지친 나는 누워만 있었다. 그렇게 누워만 지내던 어느 날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죽어지지 않으니 살아야겠어.' 누워만 있어도 배는 고파왔고 나는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차려주는 세 끼의 밥을 꼬박꼬박 먹었다. 나는 절대로 죽지 못할 테고 이대로라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지옥 같은 삶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었다. 그건 끔찍한 일이었다. 죽든가 아니면 제대로 다시 살아보든가. 나에게 남은 옵션은 두 가지뿐이었다. - <100일의 마법> 중에서, p95 두 가지 옵션 중에서 '제대로 다시 살아보든가'를 선택한 작가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100일 동안 108배를 했다고 한다. 그 사이 현대무용을 배우기 시작했...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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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추천】 속 깊은 무관심, 김수현

김수현 에세이, <<속 깊은 무관심>>, 낮은산, 2024년 6월 출간 '가족'의 모습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요즘 독서모임에서 읽고 있는 <<자기 앞의 생>> 속 모모와 로자 아줌마와 관계를 마주하며 '가족'이란 뭘까 다시 생각해 보는 중이고. 이혼 가정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아빠와 함께 살며 엄마를 자주 만났고, '이혼 가정'이라는 것만 빼면 엄마 아빠가 두 분다 존재하는 나름 그럭저럭 '가족의 모습을 갖춘' 채 살아왔다. 그래서 때로는 진절머리 나기도 했지만, 그게 또 나를 지켜주었을 거란 것도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점점 '더' 가족의 모습이 뭔지 모르겠다. <<속 깊은 무관심>>은 아빠의 죽음 이후 떠나버린 엄마 대신 할머니와 고모들, 고모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한 사람의 이야기다. 엄마를 따라갔을 거라고 믿었던 동생이 입양을 갔다는 걸 알게 된 '언니'의 이야기기도 하다. 불우의 세계가 온통 회색빛으로 채워져 있지만은 않다는 것, 어떤 부재와 부족이 삶을 통째로 남루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슬픈 시간을 한 발짝 건너면 웃을 일이 기다리고 있었고, 사방의 모든 문이 닫힌 것처럼 막막한 순간에도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왔다. 무엇보다 내겐 부모-자식으로 구성된 가족보다 더 넓고 유연한 가족이 있었다. 할머니와 고모, 고모부라는 이름을 단 가족 덕분에 부모 없는 내가 주저 없이 '엄마'...

20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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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삶,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물질적 삶>>, 민음사, 2019년 12월 출간 버지니아 울프 외에 여성 작가들의 글에서 많이 인용되는 또 한 명의 작가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아닐까. <상처없는 계절>(신유진), <쓰는 마음>(박연준), <끝내주는 인생>(이슬아),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권혁란), <사랑을 연습한 시간>(신유진)... 최근에 내가 읽은 책 속에서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문장을 만났다. 그때마다 그 문장이 수록된 작품을 찾아 읽었다. 신유진 작가의 <상처없는 계절>과 <사랑을 연습한 시간>에는 <물질적 삶> 속 각기 다른 문장이 담겨 있다. * "쓰게 될 것은 어둠 속에 이미 있다"는 뒤라스의 말을 생각하면, 버지니아 울프가 들불을 들고 어두운 방을 걸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찾던 것은 어둠 속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무언가일 것이다.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 있는 검은 덩어리, 그것은 발현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며, 해석과 해독을 요구한다. 메모와 스케치, 냉철한 시선으로 벗겨내기, 집요하게 파헤치기, 이 모든 노력을 통해 그 검은 덩어리를 분명하고 선명한 언어로 탄생시켜야 한다. <상처 없는 계절, 신유진> <물질적 삶>의 원제는 <살림살이>라고 한다. 작가는 여성으로, 딸로, 작가로, 한 사람으로 살면서 겪었던 '일상'의 경험들을 풍성한 언어로 다듬어 글 속에 담아 놓았다. 책 속에 수록된 <집>...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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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널 미워해, 서이레

서이레 산문, <<미안해 널 미워해>>, 마음산책, 2024년 11월 출간 어떤 사람은 나중에 알고 싶어지기도 한다. '정년이'의 웹툰도 드라마도 보지 않았는데 이제야 궁금해진 것처럼. 에세이를 읽고 난 뒤에야 '정년이'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처럼.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지 고민할 때 봤다는 사주였다. 어디든 매달리고 싶었던 순간, 시크한 보살 님의 한 마디. "재능도 있고 잘 될 것 같은데. 자기 이름으로 책도 나올 것 같고. 상복도 있고. 나 같으면 할 거야. 계속해. 잘될 거야." (p197) 작가는 덕분에(?) 취직하지 않고 <<정년이>>도 무사히 론칭했다(p198)고 썼다. 이런 신기한 보살님 같으니. 그런 생각을 한 것도 맞지만, 그 말을 응원의 말로 받아들였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물론, 정말 재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비록 내가 보살은 아니지만) 위로의 말이 필요할 때, 아끼지 말아야겠구나. 뭐 그런 나만의 해석을 하게 됐달까. 작가의 이야기는,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좋은 자극과 힘이 될 것 같다. 그렇지 않더라도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된다는 '힘 있는 확언'이 필요한 이들에게도. '정년이'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에게는 '정년이' 탄생 비화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덧. 이 책을 읽고 <<삼체>>를 읽...

20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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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사랑을 연습한 시간》 신유진

《즐거운 어른》 이옥선, 《사랑을 연습한 시간》 신유진 두 권의 책을 주말에 읽었다. 두 권 모두 좋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각각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결국, 짧게 두 권을 모아 적는 건 길게 쓸수록 책에 대한 좋음보다, 내 마음속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꺼내놓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즐거운 어른》은 75세 작가의 '즐거운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사랑을 연습한 시간》은 신유진 작가가 어릴 때부터 마주했던 엄마의 책장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두 권의 이야기를 통과하는 건 '엄마'다. 나는 '엄마' 이야기에 무척 약한 사람이고,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부러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즐거운 어른》이 '엄마'이자 '자신'으로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의 이야기라면 《사랑을 연습한 시간》은 엄마로부터 받은 '사랑'과, 엄마의 책장을 보며 자란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애써 '나의 엄마' 이야기를 포함하지 않고 나의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생각하기로 했다. 매일 책을 읽고, 공부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를 보고 자랄 나의 아이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아이들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즐겁게 살아갈 '나의 모습'을. 두 권의 책 다 추천하고 싶다.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자 '여성'들에게. 아이를 다 키우고 불현듯 찾아온 '자유의...

202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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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쓰기 위하여, 천쉐

천쉐, <<오직 쓰기 위하여>>, 글항아리, 2024년 9월 출간 우리 아마 다 알 거다. '글쓰기의 비법' 같은 거 어쩌면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냥 잘 쓰는 사람은 계속 잘 쓰고, 쓰고 싶은 사람은 계속 쓴다는 거. 그래서 무수히 많은 글쓰기 책을 만나면, 처음 드는 생각은 이거다. "뭐, 다 아는 얘기일 거야." 아마 70% 이상은 맞지 않을까. 다 아는 얘기. 늘 실천이 필요한 거고. 결국 쓰느냐 쓰지 않느냐의 문제라는 것도. 이제 <오직 쓰기 위해서>를 앞에 두고 말해보자. 글쓰기의 13가지 비법,이라는 부제 속 큰 줄기는 그렇다, 반 이상은 이미 알고,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다르다. 경험하고, 좌절해 보고, 실의에 빠져도 보고, 성공의 과정도 거치면서 내면에 단단하게 쌓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원론적의 이야기가 겉에 드러나는 것 같지만 읽다 보면 자꾸 집중하게 된다. 빠져든다. 나를 믿으려면 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서문부터 좋았다. 다섯 페이지 남짓 담겨 있는 글을 읽으면서 문장 문장 줄을 긋고 싶었다. 서문의 제목은 "나를 믿으려면 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다. 작가는 어려운 가정 형편, 가장처럼 집안을 지켜야 했던 시절을 거치면서 글쓰기와 함께 생계를 위한 일을 놓지 않았다. 쓸 시간이 없다는 건 정말 핑계.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말이 왜 ...

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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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추천】 가장 별난 것, 메리 루플

메리 루플 / 가장 별난 것 / 카라칼 / 2024년 4월 출간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주는 격려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는 일이 죽이기니까요.(p17)"라는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앞 문장과 뒤에 이어지는 문장까지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하지만, 딱 이 한 문장만으로 압도되는 느낌이었달까. 작가는 저마다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어릴 때 빨리 커서 죽이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 조바심치지만, 나이가 들자마자 실상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온전해 깨닫게 된다고.(p17) 작가가 말하는 '노력'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보이는 무언의 선의다. 우리가 서로를 죽이는 일을 할 때 무언의 선의가 훨씬 더 많이 일어나야 한다고. 얼마 전에 읽은 작가의 <<나의 사유 재산>>을 읽은 뒤에는 <폐경>에 관해 이렇게 쓸 수 있다니...라고 생각했다. <<가장 별난 것>>을 읽은 뒤에는 <섹스>에 관해 이렇게 쓸 수 있다니... 생각했다. 그 글이 담긴 <눈>이라는 산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나는 섹스를 하고 싶다.(p13)' 글에서 작가는 눈과, 섹스와, 새와, 묘비(무덤)을 등장시킨다. 그것들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면 평온함이 남는다. 이 기이한 느낌이 뭘까,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그다음 글도, 그리고 그다음 글도 작가는 내내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했으...

202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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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덜 띄는, 이훤

이훤 에세이 <<눈에 덜 띄는>>, 마음산책, 2024년 11월 출간 기록적인 폭설이 첫눈으로 내리던 지난 며칠. 눈이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때마침, 한강 작가의 <<흰>>과 이훤 시인의 <<눈에 덜 띄는>>을 같이 읽고 있었다. 대체로 <<흰>>은 아침에 읽는다. 읽으며 필사를 하는데 '눈'과 연관된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러다 옮겨 적은 문장은 이랬다. 엉망으로 넘어졌다가 얼어서 곱은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던 사람이, 여태 인생을 낭비해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씨팔 그 끔찍하게 고독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 - <<흰>> 중에서, p55 슬픈데 알 것도 같아서 한참 머물렀던 문장이었다. 눈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하고 더럽게 하얀... 무언가라는 걸 갑자기 알게 되어버렸다. 시간이 지나 이훤 시인의 <<눈에 덜 띄는>>을 읽으면서는, 이미 다 내린 눈이 포근하게 쌓인 도로 위, 지붕 위를 내려다봤다. 그런 것들은 위협적이지 않으니까 온 세상이 하얗고 고요하고 다정한 세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글이 그랬다. 어서 집에 가야지, 어서 집에 가자.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곳엔 온기가 있고, 안심이 있다. 천천히 읽다 보니 밤이 깊었고, 눈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눈에 띄지 않지만...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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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에세이 추천】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김도미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동아시아, 2024년 10월 출간 질병에 관한 혹은 치유에 관한 혹은 현재진행형인 몸에 드러나는 아픔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읽고 난 뒤 무어라 써야 할지 고민이 됐다. 누누이 말해왔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백 프로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타인도 나의 그것에 대해 그럴 거라고. 그리고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누군가 혹은 건너건너 누군가 '병에 걸렸다'거나 '치료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말을 아끼게 되는 이유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를 읽을 때도 그저 말을 아끼는 쪽을 택했다. 그의 아픔이 공감됐다,라고 적는 건 거짓이니까. 김도미의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를 읽으면서 그야말로 나는 '자유'를 얻었다. 그건, 내가 마음껏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도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의 조심스러움은 그들에게 나의 말이 거만하게 들리거나 아직은 아프지 않은 이의 허세처럼 들리거나, 괜한 오지랖처럼 들릴까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 마음과는 반대로 '무슨 말이든 해야는 거 아니야?' 혹은 '뭐 이렇게 무신경해?'하는 말을 들을까 신경 쓰기도 했다. 내가 그렇듯, 아픈 몸을 살고 있는 그들 역시 누군가 애정이 깃든 마음으로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불...

2024.11.26
주말에 읽은 두 권의 책 《쓰는 생각 사는 핑계》, 《무지의 즐거움》

#쓰는생각하는핑계 #이소호 #시인 #에세이 이소호 시인이 펼쳐 놓은 쇼핑백 속에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쓰고자 하는 마음, 살고자 하는 마음, 애쓰는 마음, 버티는 마음......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무수히 사 날랐던 것들.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을 불행히도 소비밖에 몰랐다(p120)고 쓴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니지만. 정말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소비만 남았을지 모르지만, 시인에는 이렇게 멋진 글이 남지 않았던가. (뭐 그런 어딘지 쓸쓸해지는 생각도 해보고) * ...... 무언가를 사랑하기 전에 공부하는 그때 들였다. 나는 문학을 너무 사랑했기에 내가 뭘 잘 쓰고 뭘 좋아하는지부터 살폈고, 아이돌을 좋아하기 전에 사회면에 나오지 않을 인물을 픽하기에 바빴고, 물건 역시 가치를 이해하기 전에 그 브랜드에 돈을 쓰지 않았다. 고로 문학을 포함하여 내 삶의 모든 것을 백화점에서 값을 치러 가며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감히 생각한다. p12 * 보들레르에게 튈르리 정원 부지를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백화점을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 백화점에는 꼭 소비 행위와 그 대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점도 영화관도 있다. 문화와 소비를 동시에 향유할 수 있는 진정한 즐거움이 거기 있다. 그리고 노동을 해야만 하는 이유도, 마감을 어기지 말아야 할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백화점에서 나는 생각했...

2024.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