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추천
18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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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젤과 소다수, 고선경

고선경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문학동네, 2023년 10월 출간 좋아하는 작가님의 블로그에서 고선경 시인의 시를 읽었다. 작가님은 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썼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시인이라니, 너무너무너무 궁금해져서 퇴근길에 도서관에 갔다. 다행히 대출이 가능해서 빌렸는데, 펼쳤다가 도서관에서 읽고, 집에 와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시가 재밌어서 좋았다. 그래서 단번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그게 끝은 아니라서 계속 다시 읽게 됐다. 재밌다는 건 독자인 나의 느낌이고, 어쩌면 시인은 너무 괴로워서 썼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외로워서. 아니면 고민이 많아서. 묘하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왜 재밌음을 재밌음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의미를 찾고 싶어지는 걸까, 재미없게. 그래서 나는 시인의 이런 시가 좋았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 담배는 끊었으면 좋겠고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사 먹고 싶지 가끔은 친구들에게 꽃이나 향수를 선물하고 싶어 오늘은 재료 소진으로 일찍 마감합니다 팻말을 본 사람들이 아쉬워할 때 나는 그 가게의 주인이 되고 싶지 매일이 소진의 나날인데 나를 찾아오는 발길은 드물지 돈을 많이 벌고 싶지 사랑도 하고 싶은데 잘하고 싶은 거지 나를 구성하는 재료의 빛깔과 질감 누가 좀 만져줬으면 좋겠어 옷장 속에서 남몰래 축축해질 때도 누가 나를 꺼내 좀 ...

6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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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발췌》 시 보다 2024_ 신이인의 시를 만나다

박지일, 송희지, 신이인, 양안다, 여세실, 임유영, 조시현, 차현준 / <<시 보다 2024>>, 문학과지성사, 2024년 11월 9월 출간 〈시 보다〉는 문지문학상[시] 후보작을 묶어 해마다 한 권씩 출간하는 시리즈로, 2024년 올해 네번째를 맞이했다. 처음엔 박지일 시인의 시가 궁금해서 펼친 시집이었다. 시인의 시도 좋았지만, 이 시집에서 만난 시인 중 내가 발견한 시인은 신이인 시인이었다. 발견했다는 건 좀 표현이 그렇지만, 시인의 시가 마음에 콕 들어왔으니 내게는 몰랐던 시인의 발견인 셈이었다. 오은 시인은 추천의 말에서 "시인의 시는 '나'로 출발해서 '나'로 돌아온다. 언뜻 당연한 사실처럼 보이지만, 이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읽을 때 적극적으로 짐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p85)고 했다. '나' 시작해서 '나'로 돌아온다는 말이 어렴풋이 이해됐다. 내가 시인의 시에 눈이, 마음이 번쩍 뜨였던 게 그 때문이었을까. 개인적 감상이지만 시인의 시를 읽으며 뭔가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콕콕 잘 해낼 것 같은 그런 후련함. 4. 이따금 글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 그들이 말하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싶어서 종이에 나열하고 고민한다 못돼 처먹은 친구 못돼 처먹은 선생 못돼 처먹은 감수성 못돼 처먹은 과거의 사랑 못돼 처먹은 무 못돼 처먹은 해 못돼 처먹은 기생충 죽지 말고 살았으면 너희들의 왕국...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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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번역하기, 캐시 박 홍

캐시 박 홍, <<몸 번역하기>>, 마티, 2024년 8월 출간 고백하자면, '마음' 님들과 함께 읽지 않았다면, 끝까지 읽지 못하고 '다음에 읽어야지' 하고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려워서. 실은 좋다, 아니다를 먼저 이야기하기 쉽지 않을 만큼 내가 가진 이해의 능력에서 벗어났다 자꾸. 시(詩) 만큼 독자 마음대로 이해해도 되는 분야가 없다고, 평소 자신 있게 이야기했지만, 이 책 속에 실린 시들은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는 걸까?'하는 의무이 자꾸 드는 거다. 뭔가 거대한 걸 담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마음대로 막 해석하고 받아들여도 되는가.. 하는 질문과 자주 마주해야 했다. 마지막에 정은귀 번역가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그 질문으로부터 끝내 자유로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 몸을 번역하는 것은 세상과 맞선 흔적을 다시 쓰는 일이다. 시집 '몸 번역하기'는 그 점에서 시의 언어로 기록된 고투, 상처의 흔적이다. - 정은귀, <거인에서 매친 년으로 이어 말하기> 중에서 '시의 언어로 기록된 고투, 상처의 흔적' 캐시 박 홍은 이민 2세대다. 197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는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할 것을 고집했다고 한다. 자라는 동안 집에서는 한국어를, 밖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며 지내야 했던 작가에게 모국어는 무엇이었을까. 번역가는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살아가는 과정이 시인이게는...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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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넓고 조용해 왜 노래를 부르지 않니, 김기형

김기형 시집, <<저녁은 넓고 조용해 왜 노래를 부르지 않니>>, 문학동네, 2021년 8월 출간 문학동네 [우시사] 레터를 구독하고 있다. 시집은 안희연 시인이 2024년 8월 보낸 레터에 적혀 있던 시 <9월생>을 담고 있는 시집이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잊은 적도 있지만, 언제가 이 시집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퇴근길 도서관에 들러 시집을 빌려왔다. 시집 제목 “저녁은 넓고 조용해/ 왜 노래를 부르지 않니”는 시 (「천사들이 나타난 것일까」)의 구절이다. 앉을 자리가 없어요 우리 모두 서 있어요 서성이는 것도 괜찮아 해가 떨어져도 다시 기도를 해도 처음부터 읽게 되어도 여기에서 비를 기다려도 조금씩 묽어져도 불을 끄고 불을 켠다 - 「천사들이 나타난 것일까」 부분 서성이는 것도, 해가 떨어져도, 다시 기도를 해도, 처음부터 읽게 되어도, 여기에서 비를 기다려도, 조금씩 묽어져도 괜찮다는 구절을 오래 읽는다. 안희연 시인은 말했다. "당신이 노래를 시작하면, 나도 따라 허밍 할게요. 내가 당신의 배음(背音)이 되어줄게요.(우시사 발췌)" 우리가 모두 얼마쯤은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그러니 그런 것쯤 괜찮다고 말해주는 시 같았다. 시집 속의 시들이 그랬다. 고요해 보는 이조차 그 안에는 그만 아는 아픔 같은 건 품고 있을 거라고. 조용히 통과해 가자고. 나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뒤의 세계를 알아요. 뒤를 붙 ...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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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추천】 우리 등 뒤의 천사, 니시 가즈토모

니시 가즈토모는 30,40대부터 이미 시에 동화된 운명이 자신을 어디로 이끌어가든 그 운명을 거스르기보다는 운명에 몸을 맡기고 시를 썼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순수해야 하고 참된 것을 향한 끝없는 정열이 필요합니다. 현실 생활에서 실제로 그리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시 가즈토모는 그러한 난관을 묵묵히 헤쳐나간 시인입니다. 알라딘의 마술 램프를 찾아서 말입니다.(서문, 오쓰보 레미코) 답답하다. 어느 책에서 어느 시인(혹은 소설가)이 옛 시집을 읽는 걸 즐긴다고 하며 <<우리 등 뒤의 천사>>를 언급했던 걸 읽고 호기심이 생겨 이 시집을 읽어야지 생각했다. 제목을 잊지 않으려고 바로 메모해 두었는데 정작 그 말을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난다. 어느 책에서 이야기했는지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다가도, 이 시집이 너무 좋아서 시집을 언급한 그의 글을 다시 읽고 싶어진 거다. 시집에 대해 뭐라고 했었는지 다시 너무 궁금해져서. 블로그, 다이어리를 싹싹 뒤져가며 어디 메모를 남겨두지 않았을까 찾았는데 여전히 못 찾고 있다. 아.. 답답해. 그런 답답한 마음과 상관없이 <<우리 등 뒤의 천사>>는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알게 되어 좋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마치 산문처럼 읽히기도 하고, 시인의 아포리즘처럼 읽히기도 하는 시구들이 여기저기서 마음을 찔러댔다. 덕분에 나도 한동안, 오래전 시인들이 남긴 시들을 찾아...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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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 최지은 시집

시인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를 읽지 않고, 시집을 먼저 읽었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에세이를 읽은 뒤 시집을 펼치니 아버지, 여름, 같은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에세이 속 장면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마, 시를 먼저 읽었어도 나는 시인의 다른 글을 읽어 보고 싶었을 것 같다. 에세이에서도 그랬지만, 시를 읽으면서도 아픈데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슬픔이 시인을 만나면 이상하리만치 따뜻해진다.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해 주고 싶어진다. 미적지근하게 주었던 사랑을 찐하게 듬뿍 나눠주고 싶어진다. 시집을 추천하고 싶은데, 시를 다 옮겨 적을 순 없어서 딱 한 편만 전문을 옮겨본다. 최선을 다했어요 여전히 나는 나 자신을 미워하고 꾸짖고 구박하는 여름 속의 나인데요 최선을 다했잖아요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사랑을 떠올리면 들렸어요 나를 멈춰 서게 하는 목소리 나는 자살 유가족입니다 수년 전 여름, 울리다 만 아버지의 전화 소리가 돌연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할 때 나 또한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요 멍해지는 여름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를 멈춰 서게 하는 사랑 또한 나의 여름 속에 있습니다 지난겨울, 어두운 골목길 통조림 뚜껑에 손을 베이고 한쪽 눈을 잃은 고양이 두번씩 눈을 깜박이고 만지지 않고도 손결을 느끼고 말하지 않고도 대화가 이어지던 그 밤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

20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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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이병률 시집

이병률 시집,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문학과지성사, 2024년 4월 출간 정확하게 사랑이다. 사랑한 적.... 있다, 사랑한 적... 있었다. 있다로 쓰든, 없다로 쓰든 결국엔 '사랑'인데, 시인의 시속에는 온통 사랑한 적 있었거나, 사랑하고 있거나, 사랑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이다. 사랑이 오지 않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사랑이라도, 그에게는 모두 사랑인 듯 '난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고<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들>'라는 시의 언어가 좋아서 사랑이 그런 것인가 싶기도. 사랑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난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은 이성적으로 나를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러기 떼의 숫자나 세고 돌아와도 되는 것입니다 (...) 사랑을 감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번 생의 암호를 풀 수 없을텐데 어떻게 이러고 삽니까 사랑이 후방에라도 있는 겁니까 <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들> 부분, p18 '사랑이 끝나면 말수가 줄어드는게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되어 미쳐 다닌다<과녁>'는 시구도, '아무 것도 아닌 것만이 진짜로 완벽하지<바람과 봉지>'라는 시구도,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원하는 나일 것이다<나는 압니다>'라는 시구도, '나여도 되고 그여도 좋겠단 생각을 할 때마다 인생의 윤곽을 뒤집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열쇠를 가진 나는 한 번만 더 그가 되겠다...

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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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박연준 시집

박연준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문학동네, 2024년 4월 출간 살고 싶다는 마음에 담겨 있는 진심이 뭘까. 싸우고, 투쟁하며 얻고 싶은 건 승리가 아니라 '존재의 인정'일지도 모른다.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는 게 아니라 우뚝, 서 있는 존재로서의 인정. 박연준 시인의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이라는 시집을 읽으며 '작은' '작다' '작은 것'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점점 더 작은 것으로 좁혀져 가는 게 결국 조금 더 크게, 크게, 더 크게 존재를 인정하는 일은 아닐까. 사랑은 어쩌면 부수적인 것. 존재를 확인받음으로 사랑을 깨닫게도 되는 것. 시집의 제목은 <불사조>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시인은 말했다. Q : 제목인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은 사랑이 죽었을까봐 걱정스러워하는 것으로도 읽히고 사랑이 아직도 죽지 않았을까봐 확인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이 제목을 어떻게 결정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A : 「불사조」란 시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는데요. 이 시를 단숨에 썼고, 쓰고 나서 흡족했던 게 생각나요. 드물게 시가 단박에 마음에 드는 거예요.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라는 말에는 사랑이 죽었을까봐 걱정하는 마음과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기 두려운 마음, 혹은 사랑의 죽음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두려운 희열’ 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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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추천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황인찬·안희연 엮음

황인찬, 안희연 엮음 / <<이건 단지 사랑의 습관>>, 창비, 2024년 3월 출간 창비시선 500 기념 시선집. 창비시선 401번부터 499번까지의 시인들의 시 중 한 편을 골라 엮었다. 시를 읽어야지 생각하는 건, 소설을 읽어야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라서 가볍게 책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다. 내게 시는, 마음껏 오독하며 읽고 싶은 대로 읽어버리는 분야다. 그래서 시가 어렵다고 느끼기보다 퍼즐을 맞추듯, 숨은 그림을 찾듯 내 마음에 꼭 맞는 한 편의 시를 발견하면 그걸로 기쁘다. 한 권의 시집을 펼치지 쉽지 않았다면, 이렇게 모아 둔 시집 한 권을 펼쳐보는 것도 좋겠다. 창비시선 401번으로 1948년생 시인 김용택의 <울고 들어온 너에게>(2016)가, 499번으로 2000년생 시인 한재범의 <웃긴 게 뭔지 아세요>(2024)가 출간되었다. 8년의 시간이 흐는 동안 기성 시인부터 신인까지 연령과 시대를 초월해 시인들의 시가 세상에 나왔다. 그러니 이 시집은 세대 초월, 시대 초월이 아닌가. 소개를 읽으니 되도록 출간된 순서대로 엮으려고 했다니, 첫 시부터 마지막 시를 읽는 동안 변해 온 시대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쩌면 변하지 않을 것. '사랑'. 사랑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각자가 정의하는 '사랑'을. Previous image Next image 출처 : 알라딘 책 소개 유병록 시인의 <아무 다짐도 하...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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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김승희,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창비시선, 2021년 출간 처음에 제목을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랑>>으로 읽었다. 다시 보니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이었다. '사랑'과 '사람' 받침 하나가 다를 뿐인데,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사람'과 '사랑' 또 뭐가 그리 다르겠어 해버리곤, 마음 가는 대로 또 시를 읽고 말았다. 시집 뒤표지 / 김민정 시인의 추천사 이 추천 사보다 시를 읽은 감상을 낫게 쓸 수 없으리라. 나는 단무지 마니아라지. 나는 베이컨 마니아라지. 나는 진실의 마니아가 꿈이라지. 나는 사람의 마니아를 꿈꾼다지. 진실의 마니아가 되고 싶고 사람의 마니아가 되고 싶어 나는 뼛속까지 노란 단무지를 씹고 하양 분홍 줄무늬가 앞뒤로 같은 베이컨을 굽는다지. (김민정 시인의 추천사 중)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무섭고, 차라리 속과 겉이 같은 단무지나, 앞뒤가 같은 베이컨이 되고 싶다는 시인의 시를 읽다가 정말 단무지나 베이컨이 되는 상상이나 하고 있다. 최근에 드라마를 보니 사람이 닭강정이 되기도 하던데, 단무지나 베이컨이 못 되리란 법 있을까. 시인들의 언어를 해석하려는 건 어쩌면 불필요한 사족. 그저 읽히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읽다가 좋으면 밑줄을, 더 좋으면 옮겨 적으면서 그냥 그렇게. 친절한 사람 꼭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아 친절한 사람은 피하고만 싶다 진실한 사람 내...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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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회 발코니>, 박세미 시집

박세미 시집, <<오늘 사회 발코니>>, 문학과지성사, 203년 11월 출간 박세미 시인의 시집 제목 『오늘 사회 발코니』는 오늘. 사회. 발코니. 로 끊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오늘, 당신의 삶은 어땠는지. 사회, 에서 당신의 노동은 괜찮았는지. 발코니, 앞에 선 당신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시를 읽으며 유독 끌렸던 단어가 '현관' '문' 이었다. 현관문, 이기도 했다. 사회로, 삶의 터전으로 나서기 위해 현관 앞에 서서 '문'을 열기 전, 크게 심호흡을 해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그 문을 열고 나서는 일상이 언제나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아는 이들이라면, 시인이 전하는 이야기에 공감할 확률이 높다. 불가능한 꿈처럼, 오늘도 문이 그의 앞을 굳건히 막아선다 그는 어제 잘라놓은 꼬리를 한참 쓰다듬는다 옆집에서, 윗집에서, 조금 먼 집에서, 차례차례 현관문 열고 닫히는 소리가 나는데, 그는 여전히 나가기 직전에 있다 「현관」에서, p33 비로소 문을 열고 우리가 당도하는 곳은 대체로 안전하지 않다. 그럼에도 자신 앞에 당도한 하루치의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기 위해 문밖으로 몸을 내민다. 시인은 오늘 내가 마주쳤을 무수히 많은, 문을 열고 나왔을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어디를 다녀왔을까. 그들의 삶은 오늘 평온했을까. 다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은 편안할까. 노동을, 삶을 귀하여 여기는 이를 마주...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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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추천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메리 올리버 / 독보적이고 활기찬 삶

메리 올리버,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 마음산책, 2024년 1월 출간 며칠, 일기장에는 '무기력' '자존감' '열등감' 같은 단어들이 적혔다. 펜으로 ㅁ을 쓰면서 이미 가라앉았고, o을 쓰면서 아팠다. 나를 사랑하는 일과 별개로, 여전히 나는 많이 흔들린다. 만약 '내가 좋아요. 지금 이대로의 내가요',라고만 말한다면 어쩌면 거짓말. '이런 나라도 좋으려고 애써요..., 지금보다 괜찮은 사람이 될 거예요', 같은 말이 어쩌면 진실. 직장 생활을 20년 넘게 했어도 적응되지 않는 일이 있다. 아니,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새롭게 다시 시작되는 일들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업무 영역에서도. 며칠은 남 탓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된 게 있는데, 모든 감정이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울적한 것, 내가 상대를 불편해했던 것, 나의 업무 능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건 아닌가 불안했던 것. 다른 누구도 아니 '나'로부터 기인한 불편과 불안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속으로는 나와 비슷한지도 모르나, 섣부른 짐작은 넣어두고) 다시 일기장에 썼다. '결국 모든 게 나에게서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의 순간,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다. ...... ' 메리 올리버의 시집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 나는 이 시집을 며칠 먼저 읽...

202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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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정신머리>, 박참새

박참새, <정신머리>, 민음사, 2023년 12월 출간 얼마 전에 읽은 문학 계간지 <릿터_45호> 에 실린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박참새 시인의 수상 소감을 읽고, 시가 너무 궁금했다. 생각해 보니, 2017년에 <릿터_9호>에 실린 제36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문보영 시인의 수상 소감을 읽고도 그랬다. 시인들은 수상 소감마저 시처럼 쓰는구나. 수상소감만큼이나 시가 좋았는데, (너무 안타깝고 슬프게도) 이 시들에 대해 아주 잘 설명할 재주가 내게는 없다. 나는 늘 시를 독자인 나의 마음대로 읽고, 오독하므로 그저 내가 (이유 없이, 있었어도 설명하지 못할) 좋았던 시들을 여러 번 읽고, 옮겼다. 박참새 (출처 : http://aladin.kr/p/XQhVL) 199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제4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상 : 2023년 김수영문학상 최근작 : <시인들>,<정신머리>,<출발선 뒤의 초조함> 잘 모르겠지만, (독자인 내게) 분명하게 느껴졌던 건 시를 쓰는 이의 에너지였다. 거침없음의 표본 같은 느낌. 시(글) 쓰는 자, 시(글)을 공부하는 자가 느끼는 고민을.... 뭐지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선생이 뭐라고 하든,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나의 방식 대로 쓸 테다, 하고 써버리는, 그런데 그게 그저 글이고, 시(詩)인 느낌. 아마, 문학을 공부하거...

2024.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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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위트 홈>, 이소호 시집

이소호, <<홈 스위트 홈>>, 문학과지성사, 2023년 4월 출간 이소호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나를 탐구하고 싶어진다. 진짜 나. 나를 둘러싼 모종의 음모가 있었던 건 아닐까 의심하게 되고, 탄생에 얽힌 무구한 역사를 알고 싶어진다. 한 사람을 채우는 모든 것, 피와 살 같은 것을 비롯해 모부와 조모부, 그들의 탄생과 살아온 삶의 궤적까지 쫓아가다가 어딘가에서 갑작스럽게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될 것만 같다. 시를 시로, 삶을 삶으로, 나를 나로, 명확하고, 적확한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진다. 내게 이소호의 시는, 언제나 찐이다. 가정주부로 살아온 자는 죽을 때도 주부로 죽는다 집안일에는 은퇴가 없으니까 내 꿈은 가정주부 사계절 일용직 시인은 비정규직이에요 저는 집이 없어요 재산도 없어요 저는 남편을 찾으러 여기 나왔어요 지금 가족은 너무 낡았어요 그러니까 내 꿈은 은퇴 없이 살고 싶어요 말을 더 덧붙여야 할까요? 엄마는 주부, 아버지는 교편을 잡고 동생은 호주에서 커피를 내려요 라고 결혼 정보 회상에 솔직하게 썼다 몇 번째인지 모를 그 남자는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이 름을 검색했고 도망쳤다 무슨 문장이 그를 달아나게 했을까? 나는 오늘의 진귀한 불행을 잊을까 타자기 앞에 손을 올린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빠는 소리쳤다 딸년은 고고하게 앉아 글이나 쓰고 있는데 내가 저 돈을 다 대야 한단 말이야? 당신도 희망을 버려 아빠는...

2023.10.15
<겟패킹>, 임솔아 시집(시 발췌)

임솔아, <<겟패킹>>, 현대문학, 2020년 3월 출간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발을 닦는다. 물이 닿아서 아파지고 아프면 물집이 생겨나고 또다시 단추가 사라져도 단추가 있따는 걸 잊어버리면서도 단추들을 모아두었는데. 차가운 컵 밑 물기가 고인다. 아픈 사람은 가만히 누워 끙끙거리기만 하고 대 답도 안하고 눈도 뜨지 않는다. 헛소리나 하고 자꾸 헛소리를 한다. 여기를 누르면 따뜻한 말을 해줘요. 걱정하지 말 래요 물웅덩이를 불러왔어요 선인장 하나를 더 불러 볼게요 기린하고 사슴도 보세요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어요 저녁을 부를까요? 눈이 오는 건 어때요? 눈이 쏟아지고 눈이 눈에 엉겨 붙는 건 어때요? 걱정하지 말라잖아요, 자꾸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말 을 하고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같은 반성을 해요 똑 같은 버스 똑같은 노선 똑같은 겨울 똑같은 회전 매 번 간절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고, 내일은 다를 거라 며 십 년 넘게 편지를 썼어요. 오래 사용한 부위는 매일 새롭게 아파진다. 뒤꿈치에서 투명하고 맑은 물집이 또다시 생겨난다. 또다시 모든 눈은 사라지고 우리는 계속 있다. 또다시 열심히 자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다. 너무 열심히 꿈을 꾸는지 눈꺼풀 속에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발자국이 발자국 모양대로 얼어간다. - <물집> 전문 겟패킹 저자 임솔아 출판 현대문학 발매 2020.03.30. 임솔아 소설집...

2023.10.08
<소멸하는 밤>, 정현우 시집 (시 발췌)

정현우 시집, <<소멸하는 밤>>, 현대문학, 2023년 1월 출간 너는 첫눈으로 휘갈겨 쓴 편지 같다 창가에는 네가 모르게 축문처럼 눈이 쌓이지 않는 저녁을 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엎드려 우는 등 뒤로 천사가 불고 가는 입김을 너는 모른다. 눈 오는 겨울밤 길을 서성이다 오지 않을 그 사람의 마음을 너는 모른다, 애인과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하던 시를 너를 기다리는 늙은 엄마는 더 영원한 마음으로 낡고 저 먼 곳으로부터 와 걸어서 와야 아는 슬픔을 너는 모른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나누고 고백하지 못한 한 사람의 마음을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기로 한 겨울에 그리 기다려도 오질 않는데 기억은 눈 젖은 길바닥에 혼자 짓밟혀 네 모든 것을 맹세하던 도시의 불빛 아래 버려진 너의 사랑을 너는 모른다 언 손 위로 눈을 털고 있는 제가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너는 모른다. _ <너는 모른다> 전문 소멸하는 밤 저자 정현우 출판 현대문학 발매 2023.01.25. 시집 속, 시를 읽으며 '마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만났다. 사라지고, 소멸하는 중에 끝까지 '마음'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더듬거리며 읽었다. 정현우 1986년 경기 평택에서 태어나 2015년 『조선일보』로 등단했다.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가 있고, <동주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 2019년 동주문학상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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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백은선 시집

백은선,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문학동네 시인선, 2023년 6월 출간 희망, 백은선 시인의 글을 읽으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굳이 잡으려 하지 않지만, 자잘자잘한 조각들이 모여 종국에는 '희망'에 가까워지는 것들에 대해. 화를 내고 싶어요 화를 내는 내가 가장 진실에 가까워요 그런 말을 하지 못해서 비 내리는 창가에 서서 물에 잠겨가는 육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래는 모든 창이 열리며 모든 창이 닫히는 순간에 도래할 것이고 우르르 쏟아지는 마음 여지없이 반복되는 나의 역할 차가운 김밥을 씹어 삼키며 밤을 기다린다 우리라는 말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우리에게 휘어지고 있는 손을 잘라버릴까봐 - <역할 바꾸기> 부분, p40 기후는 비, 비 오는 바다는 썰렁하고 입수금지 우산을 쓰 고 맨발로 해변을 산책했다 높은 파도 즐거웠어 너무나도 이제 이제 이제 나는 몇 번의 공로상을 받고 대출도 받았지 슈퍼에 가면 계란 우유 파 삼겹살을 사는 보통의 삶을 살고 싶었어 계속 이 계속되는 것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생활이란 부엌에 서서 새우깡을 뜯어 먹으며 노트북을 켜고 신문을 들춰보는 손과 눈의 역할을 세상에서는 뭐라고 부르는지 재밌다 재밌다 아아 재미있다 -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부분, o52 희망과 함께 오후의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신다 어젯밤에 나 꿈을 꿨어 차가운 계단에 앉아...

202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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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들>, 정은귀, 글이 태어나는 시간

정은귀, <<다시 태어나는 경이로운 순간들>>, 민음사, 2023년 7월 출간 우리 시를 영어로 옮기고, 영미시를 우리말로 옮기는 정은귀 번역가의 글을 좋아한다. 그가 옮긴 시도 좋고, 그가 직접 쓴 글도 좋고. '시를 오롯이 짝사랑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시가 자신을 사랑했다' 고백하는 프롤로그부터 좋았다. 책 속에는 시와 함께 걸었던 작가의 시간들이 담겨 있다. 번역하는 마음이 아니라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은 시와, 시를 통해 건너온 작가의 글에 위로받았다. 그렇네. 강가희 작가의 말처럼 책은 '위로'였구나. 작가가 읽은 시를 같이 읽었다. 모두 다 같은 마음으로는 아니었겠지만, 몇 편의 시는 오롯이 마음에 남았다. 걱정이 많은 요즘, 시와 함께 건널 수 있어 다행이다.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 것마저 다 낭비해 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 을 잘 넘길 것. ...

2023.08.10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황인찬

눈을 뜨자 사람으로 가득한 강당이었고 사람들이 내 앞 에 모여 있었다 녹음기를 들고 지금 심경이 어떠시냐고 묻 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꾸 말을 하라고 하고 그러나 나에게는 할말이 없어요 심경도 없어요 하늘 아래 흔들리고 물을 마시며 자 라나는 토끼풀 같은 삶을 살아온걸요 눈을 다시 뜨니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 고 있었다 지금 뛰어내리셔야 합니다 지금요 더 늦을 순 없 어요 자칫하면 모두가 위험해져요 무서워서 가만히 서 있는데 누가 나를 밀었고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 눈을 뜨면 혼자가는 먼 집, 눈 을 뜨면 영원히 반복되는 꿈속에 갇힌 사람의 꿈을 꾸고 있 었고 그러나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군 애당초 마음도 없지만 눈을 뜨니 토끼풀 하나가 자신이 토끼인 줄 알고 머리를 긁고 있었네 좋아,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전문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저자 황인찬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3.06.07.

2023.07.11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안미옥

단단한 껍질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출렁여도 단단한 사람이 된다 다친 무릎 위에 딱지가 앉는다 낫는 것이라는데 내가 겪는 시간을 모르는 채로 누군가 했던 말이 숨이 찬 순간마다 떠오른다 강하다고 믿고 싶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이제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일상이 뒤죽박죽이라면 조금 더 헤쳐놓아도 될까 - <선량> 부분 너는 어떤 악의도 없는 사람 선의도 없는 사람 좋은 뜻을 가진 많은 사람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 하다 그냥 걷거나 그냥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일 그냥 늦잠을 자고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는 일 어떤 악의도 없이 산다고 믿어버린다 - <호픈> 부분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를 화를 냈다 우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이 같은 것이라는 걸 몰랐다 참을 줄 아는 사람은 계속해서 참았다 모두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모두에겐 - <홈> 부분 어느 날엔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긴 울음은 이해가 되는데 긴 웃음은 무서워서 이 꿈이 빨리 깨기를 바랐습니다 왜 슬픔이 아니라 공포일까 이해는 젖은 신발을 신고 신발이 다시 마를 때까지 달리는 것이어서 웃음은 슬프고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끝까지 머금고 있는 것이어서 깨어난 나는 웃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페이지를 열고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와요 사랑 노래입니다 그냥 배울 수는 없고요 보고 배워야 가능합니다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 <사운드북>...

2023.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