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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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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추천】 그 녀석, 슬픔 / 안단테 글·소복이 그림

안단테 그림, 소복이 그림 / <<그 녀석, 슬픔>> / 우주나무 / 2024년 11월 출간 사랑하는 반려견 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아이는 매일 졸졸 쫓아다니는 쫑이가 없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친구들이 말을 걸어도, 같이 놀아도 즐겁지가 않았다. 엄마는 이제 그만 훌훌 털어버리라고 했다. 엄마의 다독임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녀석, 슬픔이 내내 아이를 쫓아다녔다. 학교에서는, 엄마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려고 노력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멍해졌고, 우울해졌다. 그때, 슬픔이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무엇 때문에 나를 피하는 거야? 왜 나를 감추려고만 해." 그 녀석, 슬픔이 나를 달래듯이 말했다. "나를 애써 감추지 않아도 돼. 참지 않아도 돼. 네가 하고 싶은 말, 나한테 다 해도 돼. 그래야 네 마음의 상처가 곪지 않아." 슬픔의 말을 들은 아이는 그제야 눈물을 흘렸다. 안간힘을 다해 참았던 말들을 쏟아 냈다. 그렇게 한참을 그 녀석, 슬픔의 품에 안겨 울었다. 아이는 이제 알게 됐을까. 꾹꾹 눌러 참는다고 잊을 수 있는 게 아니란걸. 미안한 마음이 가시는 게 아니란걸. 때로는 많이 슬퍼하고, 울고, 실컷 쏟아낸 뒤에야 보내지는 게 있다는걸. "내 품에 안겨 내 안에서 숨을 쉬고 나와 함께 울어. 네가 느끼는 대로 네가 하고 싶은 만큼." 그 녀석, 슬픔은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때로...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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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추천】 《줄리의 그림자》, 《작은 발견》

이번 주에 아이와 읽은 두 권의 그림책입니다. #줄리의그림자 #크리스티앙브뤼엘_글 #안보즐렉_그림 엄마는 줄리에게 "여자답게" 행동하기를 요구해요. "여자답게"는 정리를 잘하고, 조신하고, 고분고분하고, 예쁘게 옷을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매만지는... 보이는 모습입니다. 줄리는 엄마, 아빠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자신의 모습이 잘못된 것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공원에서 만난 친구(남자)는 반대의 고민을 해요. 사람들이 자신을 "남자가 아니라 여자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게 힘든 거지요. 어떻게 하는 게 남자다운 건지 몰라요. 우리는 많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스스로에게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은연중에 강요하면서 살았는지도요. 아이들은 고민해요. 자기답지 않은 행동과, 말을 할 때만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이지요. 사람들은 여자아이는 여자아이 같아야 하고, 남자아이는 남자아이 같아야 한다고 말해. 각자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권리는 없는 것처럼. 정해진 유리병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오이피클처럼 말이지?" . . "오이피클"처럼이라는 문장이 확 와닿았어요. 제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오이피클처럼 정해진 병안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었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나에게는 나다울 권리가 있어. 그럴 권리가." "나에게는 나다울 권리가 있어. 그럴 권리가." "나에게는 나다울 권리가 ...

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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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추천】 《여자아이의 왕국》, 《100만 번 산 고양이》

큰 아이가 학교에서 매주 두 편의 독서록을 써가는 과제를 하는데요, 금요일 오후가 되면 메시지가 옵니다. "엄마, 엄마학교 도서관에서 책 좀 빌려다 줘." 하고요. 매주 아이와 읽을 책을 고르는 건 은근 재밌어요. 이번 주에 빌린 책은 그림책 두 권입니다. 주말에 같이 읽었어요. #여자아이의왕국 #이보나흐미엘레프스카 #그림책 《여자아이의 왕국》은 초경을 시작한 여자아이의 마음을 담아낸 그림책입니다. 아이가 초경을 시작한 지 1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생각해 보니 아이는 그 전후로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제가 생리전 증후군도 심하고, 생리통도 심한 편이라 딸아이의 초경을 마주했을 때 기쁨과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에요. 너도... 그 험난한 길로 들어섰구나, 하는 마음에서요. 엄마들의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섬세하게 아이의 마음을 담아낸 것 같아 좋았고,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제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게 되었구나, 축하해 줄 일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여자라면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일이니까,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여자아이가 살다 보면 변화를 느끼게 되는 날이 옵니다. 짧은 말 몇 마디가 들려옵니다. "공주야, 오늘 너는 여자가 된 거야." 엄마는 여자아이를 무언가 특별하게 안아 줍니다. 아빠도 여자아이를 다른 때와는 달리 바라봅니다. 근데, 이건 찰나의 순간이잖아요. 엄마, ...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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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추천】 그 녀석, 걱정 / 안단테 글·소복이 그림

처음에 그 녀석은 좁쌀만 했다. 툭 털어버리려고 했지만 잘 안됐고, 좁쌀 만했던 녀석이 점점 커졌다. 잡아서 버리려고 했지만 요리조리 옮겨 다니며 잘도 빠져나갔다. 나는 그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녀석이 다른 아이들 눈에도 보일까 봐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에게 놀림받는 건 싫었으니까. 신기하지. 다른 아이들 눈에는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저 내 기분만 점점 나빠졌다. 짜증이 났고 아이들에게 다정하지 못했다. "너 무슨 걱정 있어?" 한 친구가 물었다. 나는 너무 놀라 식판을 놓쳤다. 창피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심하게 앓았다. 꿈속에서 같은 반 아이들이 나를 놀리고 욕하고 따돌렸다. 숨이 막혔다. 잠에서 깨어나자 그 녀석은 거인처럼 변해있었다. "나는 네 걱정이잖아. 네가 날 불렀으면서...... 이제 어쩔래? 날 어쩔래?" 그 녀석은 짓궂게 노래까지 불렀다. 나는 그 녀석에게 제발 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 녀석이 말했다. "네가 보내줘야 가지. 나를 보낼 수 있는 것도 너야." " 나를 똑바로 봐. 그리고 잘 생각해 봐. 너한테 왜 내가 왔는지." . . (책 내용 일부 발췌 요약) 그림책이 주는 위로는 깊다. 진하다. 짧은 문장과, 그림 한 장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게 놀랍다. 그 녀석, 걱정은 내가 불러와 찾아온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 보내주어야 갈 수 있다. ...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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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화가가 사랑한 밤, 정우철

정우철, <<화가가 사랑한 밤>>, 오후의서재, 2024년 9월 출간 밤은 우리의 몸을 재우지만 잠들어 있던 감성을 깨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진솔한 이야기가 시작되죠. 혹시 붓 터치에도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걸 아시나요? 물감을 두껍게 꾹꾹 눌러 바르며 사무치는 슬픔을, 부드러운 터치로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림을 자세히 바라보면 그곳에는 한 인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문득 그들이 표현한 밤의 역사가 궁금해집니다. 밤하늘이 이토록 다양한 색으로 우릴 덮어주고 있었다는걸, 밤의 그림을 되짚으며 알았습니다. 그만큼 풍부한 밤을 느끼기 위해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다섯 세기를 아우르는 101개의 밤을 담았습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밤은 어떤 역사를 담고 있나요? - 프롤로그 <추억을 그리고 위로를 전하는 밤의 역사> 중에서, p5 정우철 그림에 이야기를 입히는 도슨트. 작품 분석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미술 해설에서 벗어나 화가의 삶과 예술을 한 편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스토리텔링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시 해설가로 자리매김했다. ‘베르나르 뷔페’ 전, ‘툴루즈 로트레크’ 전, ‘호안 미로’ 전으로 이름을 알리고 이후 알폰스 무하,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앙드레 브라질리에 등의 전시 해설을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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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추천] 삼킬 수 없는, 빅토리아 잉

빅토리아 잉, <<삼킬 수 없는>>, 작은코도마뱀, 2024년 8월 출간 사랑하는 방법을 그것밖에 모르는데, 그 방법이 잘못된 거지. 너희 엄마가 변해야만 네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 아무도 완벽하지 않아. 엄마가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너 스스로 행복할 방법을 찾아봐. - 본문 중에서 밸러리는 어려서부터 '여자는 날씬해야 사랑받는다'고 배웠다. 그게 엄마의 사랑법이었다. 엄마는 밸러리가 무엇을 먹는지, 얼마나 먹는지 간섭했고, 살이 찌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다. 밸러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음식을 먹은 뒤 화장실로 가서 모두 토해버린다는걸. 친구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먹고, 돌아서면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토해내야만 견딜 수 있었다. 날씬한 자신이 뚱뚱한 친구보다 인기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자신이 더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여자아이들은 예뻐지려고 갖은 노력을 하니까, 내 방법이 특별히 더 힘든 건 아닐 거다."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밸러리는 '착하다'라는 말을 듣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넌 어딜 가나 잘할 거야. 항상 착한 학생이잖아. 네, 전 항상 착하죠. 그런 밸러리의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아빠의 죽음 이후였다. 아빠는 세상을 떠나며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밸러리는 아빠의 죽음 앞에 슬픔을...

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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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추천 《뚱뚱한 기분》, 재럿 러너 글, 그림

재럿 러너 글, 그림 / <<뚱뚱한 기분>>, 다산어린이, 2024년 4월 출간 4학년인 윌은 "너 뚱뚱해"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자신의 몸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윌은 다른 사람들의 몸을 관찰했다. "너 뚱뚱해." 닉이 말했다. 아니, 말을 한 게 아니라 말을 내뱉었다. 친구에게 "너 뚱뚱해"라는 말을 들은 이후, 다른 친구들은 마르거나 더 마르거나 아주 마르거나 했는데, 자신의 모습은 거대하게만 느껴졌다. 마치 괴물처럼. 윌의 머릿속은 "뚱뚱해"로 가득 찼고, 자신의 몸이 싫어졌고, 급기야 자신의 모든 게 싫어졌다. ...... 그때부터 난 화장실에 숨는 대신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속마음을 숨기는 법을 배웠다. ...... 기분이 나빠질수록 정말로 난 매일 조금씩 더 심하게 기분이 나빠졌지만 모든 게 더 좋아진 척을 하며 살았다. ...... 점점 더 그렇게 더 나 자신에게서 멀어져 갔다. 점점 더 그렇게 더 나의 슬프고 쓰레기 같은 비참한 삶에서 멀어져 갔다. 나는 먹고 또 먹었다. 더 점점 더 계속해서 더. "뚱뚱한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먹고 또 먹었지만, 더 기분이 나빠지는 윌. 더 깊게 빠져드는 나쁜 기분. 이런 경험, 나도 있는 거 같다. "노력을 해 봐."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벌써 9000번은 했던 그 말을 또 했다. "노력을 해 보라니까." 이건 어쩌면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말일지도 모...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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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인간》, 지구와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 구희 글·그림

구희 글·그림, <<기후위기인간》, 알에이치코리아(RHK), 2023년 1월 출간 저는 <<기후위기인간>>을 이념이나 윤리를 위해서 그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무사히 할머니가 되고 싶어서,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어서, '잘' 살고 싶어서 이 만화를 그렸습니다. 또한 착취에서 비롯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플라스틱을 덜 쓰고, 육식을 줄이며, 에너지를 아끼며 으레 가는 길을 따르지 않는 것. 용기가 필요하지만, 새롭고 숨통이 트이고 독특하며 의미가 있는 삶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 '리더십을 발휘하겠다' 그런 거창한 목표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왜 사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들을 많이 찾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 <머리말>에서, p5-6 저는 <<기후위기인간>>을 이념이나 윤리를 위해서 읽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지금 무언가 단단히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하루에 제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이 줄어들기는커녕 (배달음식으로) 점차 늘고 있다는 현실 자각, 무엇보다 지난달 부과된 2월분 사용 난방비가 40만 원이 넘게 나온 것을 확인한 뒤 잠시 믿을 수 없어서 멍했던 순간, 아이들 방을 정리하다 나온 비슷비슷한 종류의 쓰레기를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이 책...

2024.05.05
6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OBIE 두 여자>>, 유스티나 바르기엘스카

유스티나 바르기엘스카 글, 이보나 흐리멜레프스카 그림, <<OBIE 두 여자>>, 오후의 소묘, 2021년 12월 출간 너를 낳을 때, 네가 내 심장의 일부를 가져갔단다. 이제 너는 그걸 가지고 아무도 모르는 곳을 쏘다니고 있구나. 네 심장이 몸 밖에 있고 그게 어디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면 얼만 이상한 기분이겠니. 자전거를 타고 강으로 갔을까? 마리시의 집 일층 계단에 있을까? 아니면 얀카의 집에 있을까? 그렇게 돌아다니기엔 아직 어리지 않니? 멧돼지를 만나고 심장이 조각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식탁 아래나 옷장 속에 숨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 방에서 꼼짝 않고, 자전거도 타지 않으면 된다고 말이야. 잘못된 생각이었지. 심장은 자는 동안에도 부서질 수 있거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섭다며, 꼭 내 옆에서 자던 큰 아이는 이제는 "엄마랑 같이 잘래?" 하고 물어도 그냥 웃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열한 살과, 열두 살, 일 년의 시간이 몇 년의 시간만큼이나 아이를 달라지게 했다. 처음엔 당황했고, 그다음엔 서운했고, 또 그다음엔 걱정이 됐다. 이제 아이는 정말 어른이 되어 가나 보다. 이제 스스로를 지킬 줄 알아야 하는데, 혼자서 잘 하는 것 같지만 아직 내 눈엔 어린아이 같기만 한 걸. 어른이 되어도 부모의 눈에 자식은 아이 같기만 하다는 말을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나의 심장 일부를 가져간 아니는, 이제 그 심장으로...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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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추천 <큰오빠> 임양 글·그림

임양 글/그림, <<큰오빠>>, 샘솟다, 2024년 1월 출간 엄마와 둘이 살던 내게 새아빠가 생겼다. 곧이어 동생도 생겼다. 엄마가 아기를 낳으러 가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뭉클했다. 슬픈 감정 같기도, 안쓰러운 감정 같기도 했는데 다 읽고 나니 둘 다 아니었다. 안도였고, 희망이었고, 따스함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아이의 마음을 담담하게 그려 보인다. 새아빠가 생겼고, 동생이 생겼고, 갑자기 엄마를 잃어버린(빼앗긴) 기분을 느끼는 감정을. 동생은 자라면서 오빠 근처를 맴돈다. '오빠'하고 부른다. 아이는 상실과 채움을 같이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일은, 나의 짐작이나 상상보다 더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다. 짧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경험했다. 새 가족이 생겨서 다행이다, 오빠라는 책임감에 아이가 짓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 장면, 오빠와 동생이 팔베개를 하고 누운 그림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좋아서, 오래 바라보았다. 뭉클해서 사진으로도 담아 두었다. 큰오빠 저자 임양 출판 샘솟다 발매 2024.01.31.

2024.02.09
6
그래픽 노블 추천 <여자아이이고 싶은 적 없었어>, 쥘리 델포르트

"나는 정말 여자아이이고 싶은 적이 없었어." 그랬지. 나도. 여자아이이고 싶은 적 없었지만, 여자아이였고. 그게 그냥 늘 기본값. 달라질 수도, 달라질 리도 없다고 믿으며 살았다. 살았던 것 같다. 여성으로 산다는 게, 매일매일 '무사히 살아남기'를 바라는 일인 줄도 모르고. "내가 여자아이라는 게 속임수 같다고 느껴진 것은 몇 살 때였더라?" 몇 달 전부터 내가 노력하는 게 있다. 단어를 바꾸는 일이다. 나 자신이나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여자애를 여성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세상의 기본값은 원래 남성이었다는걸,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는 걸 늦게 알았다. 이제야 조금씩 눈을 떠가고 있으니 늦어도 너무 늦었나. 아니, 이제라도 알았으니 괜찮은 건가. "여자라는 게 속임수 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늘 스스로 증명해 보이려 고군분투 중이다. 그리고 그 끝은 늘 흐릿하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이렇게 말해주는 이야기들이 고맙고, 반갑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하다. 무수히 다양한 표현들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화려한 색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일이 마냥 즐겁지 만은 않다. 작가의 사색만큼이나, 읽는 독자 역시 생각에 빠진다. 질문과 질문과 질문이 이어지는 책. 결국, 스스로 대답을 얻어야 할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여성들)은 찾아내고야 말 거다. 최진영 소설가...

2024.01.24
11
그래픽 노블, 휴먼 만화, <자매의 책장>, 류승희

류승희, 그래픽 노블, <<자매의 책장>>, 보리, 2023년 7월 출간 여전히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하지만, 언제부턴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쉽게 장바구니에 담고, 배송도 빠르니 시간이 늘 아쉬운 내게는 차선의 선택인 셈이었다. <<자매의 책장>>을 읽고 서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그걸 오래 잊고 살았구나. 그립다. 나 역시, 퇴근 후 서점에 들러 책을 보면서 위로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결혼하기 전이었으니 너무 오래됐다.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면 여유롭게 책을 볼 수가 없어서, 늘 사야 할 책만 급하게 구입해 나오곤 했으니 서점의 위로를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이야기는 자매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후 3년이 지난봄으로부터 시작된다. 우주와 미주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 여전히 마음속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씩을 안은 채 살아간다. '어떤 죽음은 거짓말처럼 갑자기 다가오고, 어떤 죽음은 확실하지만 느리게 다가온다(p101)'는 우주의 독백. 결혼해 따로 사는 동생 미주의 부재가 여전히 낯선 우주. 아픈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다수의 직장인이 그렇듯 하루하루 노동의 고됨을 경험하고, 미주는 출산 이후 일을 그만두고 바쁜 남편 대신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육아를 하며 보낸다.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견디는 자매를 여전히 이어주는 건 '책'이었다. 위로가 되어 준 것도...

2023.08.23
9
【그림책 추천】 《인생은 지금》, 《난 나의 춤을 춰》

다비드 칼리 그림책 <<여전히 나는>>을 읽은 뒤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봤다. 도서관에 있는 두 권의 책을 빌려와 읽었다. #인생은지금 #다비드칼리 #세실리아페리_그림 드디어 은퇴야! 이제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있어. 은퇴 후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기쁨에 빠진 할아버지와, 그래그래, 그렇지만 우선 할 거 좀 하고 다음에 천천히,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왜 자꾸 내일이래? 인생은 오늘이야. 다 놔두고 가자. 어디로? 몰라. 그냥 숨이 찰 때가지 달려서 강물에 뛰어들자. 그리고 소리칠 거야. 당신을 사랑한다고. 대체 왜? 일일이 이유가 필요해? 그러다 시간이 다 가버린다고. 나랑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지 않아? 내 인생은 이미 여기 있는걸.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 지금도 흘러가고 있잖아. 가자! "인생은 쌓인 설거지가 아니야." 이 문장 너무 좋다.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게 인생. 인생은 지금. 인생은 지금 저자 다비드 칼리 출판 오후의소묘 발매 2021.03.15. #난나의춤을춰 #클로틸드들라크루아_그림 앞의 그림책이 은퇴 후 노년의 이야기를 삶에 빗대어 담았다면, <<난 나의 춤을 춰>>는 이제 막 살을 배워가는 아이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던 오데뜨. 그러다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책의 작가를 만난 뒤, 새로운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위의 그림책이...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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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추천】 여전히 나는, 다비드 칼리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헤어진(떠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그(그녀)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기억해 내고야 마는, 어떤 장면이. 너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널 기억해. 보고 싶고.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함께 먹든 음식, 함께 갔던 카페. 하나하나 선명히 떠올라. 마치, 고백하듯 읊조리는 장면들은 슬퍼서 아름다웠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던 해변에 다시 가고 싶어. 당신도 기억하지? 매번 만나던 개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잖아. 당신에게서 나던 숲 내음을 맡고 싶어. 여전히 그 향수를 쓰고 있을까? 여전히 나는, 당신과 별이 가득한 밤을 보내고 싶어. 한숨도 자지 않고 떠오르는 아침을 같이 맞이하고 싶어. ... 당신만 괜찮다면, 커피 한 잔 함께 마시고 싶다는 거야. 우리들의 카페는 기억하지? 그리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마주하고 있는 순간은, 슬프기만 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기다리는 마음이, 언젠가 마주하게 될 순간과 맞닿을 수 있기를. 여전히 나는 저자 다비드 칼리 출판 오후의소묘 발매 2024.09.05. 다비드 칼리 (글) 스위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며, 그림책, 만화, 시나리오, 그래픽 노블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합니다. 정기적으로 글쓰기 강좌를 열고, 여러 일러스트레이션 교육기관에서 강의를 하며 폭넓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5년...

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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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추천] 다섯 권의 그림책, 수많은 이야기

다섯 권의 그림책을 연이어 읽었어요. 뭐가 더 좋다 할 것 없이 다 좋았어요. 짧은 내용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짧지도 얕지도 않아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림책 좋아하신다면, 아직 안 읽어 본 책이 있다면, 적어 두셨다가 꼭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변화를꿈꾸는곳에시몬이있어 #유지연_지음 #김유진_그림 #씨드북 여성 최초로 유럽 의회 의장이 된 시몬 베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몬 베유의 출생부터 그가 이뤄낸 업적까지 천천히 따라갑니다. 그림책이다 보니 많이 생략되어 있지만, 중요한 내용은 쏙쏙 들어가 있어서 아이들과 같이 읽고, 조금 큰 아이들이라면 시몬 베유의 책을 찾아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시몬 베유의 이야기는 장영은 교수가 쓴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속 이야기입니다. 시몬 베유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베유는 따뜻하고 친절한 말로 우정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베유에게 우정은 관념이나 이론이 아니었다. 우정은 철저하게 "행하는 것"이었다.(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어쩐지 시몬 베유의 결단력, 용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 같았어요. '행하는 것'. 본문 속 발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사이로 미움, 분노 같은 날카로운 마음이 가득 들어차. 그러면 우리는 서로 싸우고 차별하게 될 거야. 변화를 꿈꾸는 곳에 시몬이 ...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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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파라다이스>, 소윤경 그림책

소윤경 그림책, <<호텔 파라다이스>>, 문학동네, 2018년 7월 출간 《호텔 파라다이스》에는 인도와 네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보고 느꼈던 저의 기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여행길에서 마주치는 건, 나 역시 하나의 작은 생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나 작은 벌레, 원숭이 한 마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지요. 그들과 다름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걷고 배가 고프고 지쳐서 잠이들어요. 여행이란 스스로에게 매몰되어 있던 일상을 접고 또 다른 생을 잠시 살아 보는 것이 아닐까요. - <작가의 말>에서 설렘이 가득 느껴지는 어느 가족의 여행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행은 커다란 선물 상자 같아."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모르는 선물상자를 앞에 두고, 조심스럽게 상자를 여는 순간, 예상치 못했던 선물에 깜짝 놀라고, 감동하고, 기쁜. 선물을 푸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여행. <출처 : 책 소개 페이지> 아무리 낯설어도, 금방 익숙해지는 여행지에서의 삶.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기도 하는 순간들. 작가는 여행의 순간순간을 멋진 그림과, 글로 담아두었다. 그림이 너무 예뻐서 처음부터 다시 보기를 몇 번을 반복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내게 여행은 또 다른 삶을 만나는 설렘보다 자주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이 크지만, 작가의 그림...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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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윤석남 · 한성옥 그림책

윤석남 · 한성옥 그림책,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사계절, 2016년 2월 출간 이 그림책을 발견한 건, 올해의 기쁜 일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다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라는 제목에 끌려 빌려왔다. 첫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스물일곱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다가 마흔 들어 내 방을 갖게 되었어요. 첫 그림과 글부터 마음을 찌르르하게 하더니, 끝까지 그랬다. 아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쩔 줄 몰랐다. 좋아서, 슬퍼서, 행복해서. 여자의, 엄마의 삶을, 그들로부터 시작되는 돌봄의 다정함을, 다정한 그림과 글로 담아두었다. '나'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가족'이야기로, 주변의 소중한 이들의 이야기로 확장하며 세상의 다정함을 모아 이야기를 부려 놓았다. (책 속 그림을 이미지로 옮겨 와 색연필과 수채의 느낌이 살지 않을 수 있다. 실제 그림책으로 보면 훨씬 더 좋다) 윤석남 작가는 주부로 살다가 나이 마흔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드로잉을 중심으로 작업하던 작가가 한성옥 디렉터를 만나 함께 작업하면서 그림책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래서인지, 그림책 속의 글들은 에세이처럼 와닿는다. 엄마로 사는 삶의 고됨을 자주 토로하고는 했는데, 작가의 그림과 글을 보니 세상 엄마들의 돌봄이 '다정한 세상'을 만드는 강력한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일에만 파묻혀 결혼은 늦게 하겠다는 딸을 환영했다는 ...

2023.10.25
그림책 읽는 10월,, 그림책 추천

10월엔 그림책을 읽고 있어요.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속에 소개된 책을 다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도서관, 서점, 찾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그림책들이 너무너무 많아요. 10월 그림책 읽기(1)_5권에 이은 4권의 그림책을 소개해요. #호텔파라다이스 #소윤경 호텔 파라다이스 저자 소윤경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8.07.20. #다정해서다정한다정씨 #윤석남 #한성옥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 저자 윤석남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2.02. #린할머니의복숭아나무 #탕무뉴 린 할머니의 복숭아나무 저자 탕무니우 출판 보림 발매 2019.02.26. #아빠나한테물어봐 #버나드와버_글 #이수지_그림 아빠, 나한테 물어봐 저자 버나드 와버 출판 비룡소 발매 2015.10.01.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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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생활, 서효인

어떤 아이든 그 단짝은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있겠지만, 어른인 우리는 모든 아이의 단짝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아이가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방긋 웃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그림을 그려주면 된다. 그 모든 행동이 마음으로 꼭 안아주는 일과 다르지 않다. p186 사랑을 아는 사람, 사랑을 알려주는 사람,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서효인 시인의 시를, 에세이를 읽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 또 그걸 알게 해주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이번엔 그림책. "아빠는 딸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엄마인 나는, 딸과의 대화가 너무 길고 길어서 자주 지치는데 아빠는, 아빠들은 좀 다를까? 우리 집을 봐도 좀 다른 것도 같고. 시인은, 그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찾을 방도가 없어서 그저 어린 딸들에게 자꾸 말을 건다고 했다. 시인과 두 딸의 대화가 궁금해서 읽다 보니 그림책 이야기에도 쏙 빠져들게 되었다. 읽고 싶은 그림책 또 잔뜩 생겼다. 100만 번째 삶에서 겨우 만나게 된 아이들과 100만 번 살아왔던 것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바람을 채우려고 우리는 오늘도 싫은 것들을 잘 참아내고 있다. 그중 가장 싫은 건 죽음이지만 죽음 싫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기에, 죽음과 사랑의 아이러니는 발생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요컨대 지금 이 ...

202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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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뜰에서>,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할머니의 뜰에서>>, 책 읽는 곰, 2023년 3월 출간 *바바(Baba)'는 폴란드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말입니다. '폴란드 이주자'라는 모계의 배경을 자랑스럽게 여긴 조던 스콧의 뜻에 따라 원문 그대로 옮겼습니다.(옮긴이의 말 발췌)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려면 나의 오래된 기억들을 같이 꺼내보게 된다. 나의 두 할머니는, 번갈아 가며 나를 키웠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살 때는 둘 다 바빠서, 엄마 아빠가 헤어진 뒤 아빠와 살 때는 어린 나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두 할머니가 차례로 떠나신 뒤, 그분들에게 한 번도 사랑을 제대로 표현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래도록 그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지금도 두 분을 떠올리면 그리움보다 먼저 죄송함이 앞선다. 조던 스콧의 <할머니의 뜰>은, 유년 시절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이들이라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일이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글귀마다, 아련한 그림마다 자꾸 멈추게 될지 모른다. 바바는 고속도로 옆 오두막에 산다. 바쁜 엄마, 아빠 대신에 아이는 바바가 해주는 아침을 먹고, 바바와 함께 등하교를 한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엔 바바의 텃밭으로 간다. 그곳엔 볼 것도 많고, 냄새 맡을 것과 먹을 것도 많다. 바바는 토마토 앞에, 오이 앞에, 당근 앞에, 사과나무 앞에 차례로 무릎을 꿇고 앉아요. 흥얼...

202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