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작가 전춘화가 지금까지 쓴 소설들을 모은 첫 소설집 『야버즈』. 책에 담긴 5편의 소설 모두 한국에서 처음 발표되는 작품들이다. ‘야버즈’는 오리 목에 붙어 있는 고기를 일컫는다. 이 생경한 음식은 중국에서는 익히 알려진 음식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름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며 차이나타운에 가야 겨우 맛볼 수 있다. 분명 가까이에서 존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낯설고 이질적인, 그래서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지레 선입견을 가지기 쉬운 야버즈라는 요리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서 가지는 위치와 닮은 구석이 있다. 전춘화의 첫 소설집 『야버즈』는 이러한 우리의 선입견 너머에 존재하는, 진짜 조선족의 삶을 비춘다. - 책 소개 발췌 전춘화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제18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이었다. 당선 후보작으로 수상집의 맨 마지막에 실려 있었다. 작품집 속 소설들은 잘 읽혔고, 좋았다. 대체로 내게 많은 소설들이 그렇듯. 그러다 마지막 작품으로 작가의 <여기는 서울>을 읽는데 첫 페이지부터 정신이 맑아지면서 다시 집중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소설의 마지막까지 읽고 한 일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 일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소설집이 『야버즈』다. 디아스포라 문학을 종종 읽어왔는데, 좋은 작품 앞에서도 '나와는 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다. 전춘화 작가의 소설은 '조선족'의 이야기를 ...
'삶과 죽음'이 '죽음과 삶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음을, 죽음은 결국 '삶'으로 완성되는 것임을 소설은 알려주었다. 노르웨이 피오르 해안가의 고요하고 작은 마을, 그곳에 닐스가 살고 있다. 닐스는 그곳에서 평생을 페리 운전수로 살았다. 수많은 삶을 실어 나르며 자신의 삶 역시 살아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새벽 5시 15분, 닐스 비크는 눈을 떴고 그의 삶에 있어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해야 하는 일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찾아 입고, 커피를 끓이고, 아침 식사를 마련하고... 배를 타러 갈 준비를. 평생 해 온 일이지만, 이날은 마지막 날이었고, 그가 태운 승객들은 살아 있을 때 닐스의 배에 탄 적이 있는 죽은 자들. 그들은 차례로 배에 오르며 닐스에게 말을 건넨다. 하고 싶었던 말, 자신의 삶과 죽음에 관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닐스는 듣는다. 그리고 닐스 역시,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천천히 되돌아본다. 천천히, 이 소설은 굉장히 느리게 흘러간다. 아니, 독자가 그렇게 느낀다. 마지막 날이라는 걸 이미 알아서, 어쩌면 독자인 나는 그 마지막이 조금 천천히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죽음 역시 이 소설에서는 천천히 진행된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생각하면서 마치 계획했다는 듯이. 닐스가 돌아보는 삶 속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
앤솔러지 ‘얽힘’의 첫 번째 프로젝트 《봄이 오면 녹는》. 이 시리즈는 양자 얽힘(Entanglement)의 과학적 개념을 모티브로, 우리의 삶이 개별적이면서도 우주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구현한다. 세 명의 작가가 독립적인 소설을 쓰면서도 서로의 세계관과 소재를 공유하며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는 새로운 방식의 프로젝트다. '얽혀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얽힌다는 것'은 내게 꼬여있다는 의미보다 '함께'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는 말이다. 조금 더 크게 확장하면 '연대'한다는 다른 말이 어쩌면 '얽힌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혼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혼자인 순간에도 나는 여러 사람들, 관계 속에 얽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아니라면 외로움을 느끼거나, 지나치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경험하지 못할 것 같다고.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 혹은 모임에서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고리가 끈질기게 들러붙어 나를 기어이 살게 한다고도 믿는다. '얽힘'이라는 주제로 엮인 소설이라는 설정부터 좋았다. 그 시리지의 첫 작가들은 성혜령, 이서수, 전하영이다. 그들은 '손절'이라는 주제로 각각의 이야기를 썼다. 그렇지. '손절'도 '얽힘'에 포함될 수 있지. 손절은 이별과 달라. 종선이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손절과 이별은 차원이 다르다고, 손절은 효용성을 따지는 행동이지만 이...
2025 제48회 이상문학상 예소연 그 개와 혁명 매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은 궁금해요. 2025년 이상문학상은 예소연 소설가입니다. 2021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등단 후 3년 만에 이상문학상 수상입니다. 1998년 등단 3년 만에 수상했던 은희경 작가 다음으로 빠른 수상이라고 해요. 저는 이 소설을 작가의 첫 소설집 『사랑과 결함』(문학동네, 2024)에서 읽었는데요. 실은 그 소설집에 수록된 <우리 철봉하자>라는 소설에 더 꽂혔었거든요. 이후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수상작품집 수상후보작으로도 만났는데요. 그때는 전춘화 작가의 <여기는 서울>에 꽂혀서 또 살짝 지나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문학상 대상 작품으로 만나니 내가 좋은 작품을 못 알아본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며칠 전에 서점에서 예소연 작가의 신작 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현대문학, 2025)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는데요. 같이 읽어 봐야겠습니다. 출처 : 알라딘 우수상 수상작은 한 편도 읽은 게 없더라고요. 수상작도 궁금하지만, 인터뷰도 너무 궁금해요. 얼른 읽고 리뷰도 남겨보겠습니다. 매해 이상문학상에 관심 가지셨던 분들, 찾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개와 혁명(제 4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25년) 저자 예소연,김기태,문지혁,서장원,정기현 출판 다산책방 ...
한국 소설 속 빛나는 명문장을 길어 올렸다. 묘사가 아름다운 글, 자의식이 섬세한 글, 상처를 보듬는 글, 그리움으로 물들인 글, 시처럼 설레게 하는 글 등 이 책에 실린 명문장들은 여러 아름다운 빛깔로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짧지만 시선을 멈추게 하고, 눈으로 읽지만 가슴으로 응시하는 글, 사람과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고, 온정을 돋게 하는 글, 좋은 글이란 언제나 감성을 먼저 번뜩이게 만든다. - 책 소개 발췌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한 책이었어요. 오래전 소설을 쓸 때, 텍스트처럼 옆에 끼고 읽던 소설들 속 문장들을 다시 만나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그랬지, 소설의 문장이 주는 감동과 위로 때문에 나도 소설을 쓰고 싶었지. 급할 것 없이, 천천히 느긋하게 한 문장씩 읽어내는 동안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세상의 소란스러움 잠시 잊었던 것 같아요. 그런다고 뭐, 세상이 바뀌니. 그럴지도 모르죠. 세상은 바뀌지 않을지도 몰라요. 매일 더 나쁜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질지도요. 그래도, 소설을 읽은 우리 마음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희망 조금 품어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모순 저자 양귀자 출판 쓰다 발매 2013.04.01.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저자 은희경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23.11.10. 꽃들은 어디로 갔나 저자 서영은 출판 해냄 발매 2014.02.05. 아홉살 인생 저자 위기철 출판 현북스 발매 2020....
독서 모임 추천 책 : 소설 문학은 힘이 있지요. 특히 소설이 주는 위안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소설 같아요. 혼자 읽어도 좋지만,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 나누시면 더더 좋을 책 추천해요. 매들린 밀러 / 이봄 / 2020 “마법은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야. 자기 스스로 찾지 않으면 못하는 거야.” 키르케 태양신 헬리오스와 오케아노스의 딸인 바다의 님페 페르세이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마법에 능한 님페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메데이아와 함께 마녀의 대명사로 간주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 매들린 밀러가 새롭게 창조한 '키르케'는 마법을 부리는 무시무시한 마녀 키르케가 아니라, 프로메테우스, 다이달로스, 오디세우스... 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매들린 밀러는 "‘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남성 세계의 방식과 달리한다."라고 했는데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어요. 500페이지쯤 되는 소설 한 권을 3주에 나눠 읽었습니다. 저의 경우 필사하면 읽다 보니 시간이 조금 더 걸렸겠지만, 아마 쭉 읽는다면 며칠 내에 휘릭 읽어낼 수 있을 만큼 가독성이 높은 작품이에요. 문학 작품이 주는 묘사나, 표현들도 좋았고요. '신화'라는 분야를 어렵게만 느꼈었는데 <키르케>를 읽으면서 흥미를 ...
겨울이 가기 전에 꼭! 읽어보세요! 추천하고 싶은 소설 세 권 오늘 출근길이 너무 춥더라고요. 추우면 괜히 몸을 웅크리게 되잖아요. 그래도 일은 해야 하고, 뭔가 마음이 날씨처럼 춥고 무겁더라고요. 혹시 모르잖아요, 그럴 때 좋은 소설 읽다 보면 잠시 추위를 잊게 될지도요 ^^ 📘 #눈이올정로도추운지 #제시카아우 소설을 처음 읽고 난 뒤 "아, 나는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아." 생각했어요. 제목에 '눈'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오히려 '눈'의 이미지 보다 '비'의 이미지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소설 속 '나'는 엄마에게 '일본 여행'을 제안해요. 머뭇거리는 방식으로 딸에게 응답한 엄마와 딸은 여행을 시작합니다. 어느 해 10월 그들의 여행은 도쿄에서 시작해 오사카를 거쳐 교토에서 끝납니다. 비 오는 거리를 걷고, 미술관에 가고, 공원을 함께 걸어요. 실은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그리 대단치 않거든요. 그런데 계속 마음을 쿡쿡 찌릅니다. 딸과 엄마. 그들은 굳이 가까워지려 애쓰지 않아요.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 꼭 가까워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꼭 서로를 온전히 사랑해야 하는 것도 아니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천천히 그들이 걷는 길을 따라 문장을 읽어보세요. 겨울, 차갑지만 따뜻한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날은 흐리고 추웠고 방에는 우리 두 ...
스물일곱 편의 짧은 소설이 담긴 소설집 『설명충 박멸기』는 기상천외하다. 표제작인 <설명충 박멸기>에서는 '설명하고 싶어 안달 날' 인물이 등장한다. 입안에 설명충이 들러붙어 누구라도 붙잡고 설명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남자가. 유행에 집착해 급기야 강아지처럼 네 발로 걷게 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어떤 유행>, 성적과 등수에 짓눌린 아이들은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르고(떠오르는 아이들), 갑질을 일삼는 부모 앞에서 <뿌직> 진실의 목소리를 내뱉는 선생이 등장하는(진실의 주둥이). 산타클로스에게 고용 착취를 당하는 루돌프가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특근>, 전염병에 걸려 소파에 붙어 사는 남편과 친정아버지가 등장하는 <전염병>, 게임하느라 육아와 가정에 관심이 없는 남편 대신 양육을 도와주고 아내의 마음까지 돌봐주는 개가 등장하는 <아내의 개>...... 어느 소설 하나 평범하지 않은 서서가 이어진다. 그런데 읽다 보면 알게 된다. 그냥 현실이구나. 현실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소설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과 다른 게 있다면, 깔깔 유쾌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 정말 현실에서 저렇게 응징하거나,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하게 한다는 것. 어떤 소설은 두 페이지가 넘지 않고, 대체로 다섯 페이지를 넘기지 않다. 짧은 분량 안에 담아내기에 무거운...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읽었다. 당선작 배수아 <바우키스의 말>, 수상 후보작 문지혁 <허레케인 나이트>, 박지영 <장례 세일>, 예소연 <그 개와 혁명>, 이서수 <몸과 무경계 지대> 잘 읽힌 소설도 있고, 잘 읽히지 않은 소설도 있고. 소설들은 무난했고, 좋기도 했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 실린 전춘화 소설가의 <여기는 서울>을 읽었다. 앞의 소설을 읽으며 무던했던 마음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씩 쿵쿵, 했다. 처음 만나는 소설가였다. 소설은 연길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하기 위해 한국에 온 재외동포의 한국 적응기처럼 읽힌다. 차이나타운 반지하 원룸에 짐을 푸는 순간부터 시작된 고된 서울살이. 재외동포 비자로는 단순 노무조차 쉽지 않은 현실.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해야 하고, 대학원 공부까지 해내야 하는 젊은 청년의 서울 살이 고군분투기. 읽다 보면 한 청년의 한국 적응기는, 우리 역사를 따라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된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많은 동포들의 삶, 그들의 자녀로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사는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역사다. 마지막에 '아버지, 여기는 서울입니다.'라는 문장은 이 소설을 딱 한 문장으로 정리해 놓은 것처럼 강하게 다가왔다. 연길에 살과 계시는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사회주의자인가?"라는 정치적 질문을 들어본 적이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서울에선 누군가 어던 식의 질문을 하든 연...
김화진 소설, <<개구리가 되고 싶어>>, 위즈덤하우스, 2024년 11월 출간 작가는 이 소설을 "야망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어떤 야망이든 상관없이 권태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진지하고 싶은 마음으로.(p67) 소설 속 가은은 권태에 시달리던 직장이다. 일이 재미없어 퇴사를 생각하다가도 굳이 퇴사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한 누구나와 비슷한 직장인. 권태에 시달릴 때 갑작스럽게 팀장이 되어, 퇴사가 아닌 직장에 남는,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직장인. 나의 권태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더 이상 회사에서 이유 없이 긴장하거나 오들오들 떨지 않는다는 것. 나쁜 점은 무엇에도 설레거나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 좋은 점은 누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것. 나쁜 점은 내게도 만족스러울 것이 거의 없다는 것. 좋은 점은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어 안달복달하지 않는다는 것. 나쁜 점은 아무것도 상관이 없어져서 벅찰 일도 없다는 것. 좋은 점은 예전만큼 근무 시간 내 심경이 일분일초 일희일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는다는 것. 나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업무에 사람에 빈정 상하는 일이 있어서 올라가는 일은 없어도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 - p16 소설은 그 지점에서 깊게 공감이 됐다. 어쩐지 나랑 비슷해. 20년 차 직장인이 되면 새로울 것 없는 일, 새로울...
모모. 로자 아줌마.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사랑'이 뭔지 '가족'이 뭔지 의문이 들 때마다 두 사람의 이름을 곱게 꺼내 불러보고 싶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한 혹은 '버려진' 이들로 보일지도 모를 두 사람 모모와 로자 아줌마. 그들이 보여준 사랑은 '아무리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관계라 하더라도 끝내 알지 못할 진짜 마지막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피를 나누고, 살을 나눠 갖는 '가족'일지라도 하지 못할 한 사람의 마지막을 끝까지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었다. 파리 빈민가, 아빠가 누군지도 엄마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지는 지도, 자신의 진짜 나이가 몇 살이고 생일이 언제인지도 알지 못하는 소년 모모. 돌봐 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을 거둬 보살펴 주는 로자 아줌마. 그들에게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로자 아줌마는 늙었고, 모모는 너무 어렸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서로 곁에 있어주는 것이었다. 흉한 모습을 보여도, 못난 모습을 보여도, 징글징글해도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것. 그게 그들에게는 사랑이었고, '가족'을 지키는 일이었다. 많은 문장이 마음에 남는 책이었다. 여러 버전 중에 일러스트가 있는 책을 읽었는데, 그림이 글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뭉클했던 것 같기도 하다.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
이유리 소설집, <<비눗방울 퐁>>, 민음사, 2024년 11월 출간 소설적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작가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소재와, 어딘가에 있음 직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발을 땅에 딛고 선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현실인가, 환상인가, 아니지 지독하게 현실적이지 생각하게 하는 작가다. 재밌다, 유쾌하다, 통통 튄다, 같은 말로 표현하기 부족한 작가다. 내게 이유리 작가는 그렇다. 엄마, 친구, 애인, 누구에게나 있을 사람들이 등장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는데, 갑자기 엄마는 AI로 나타나고(크로노스), 연인은 비눗방울이 되겠다고 한다(비눗방울 퐁). 애인과 헤어진 누군가는 남은 사랑을 팔기로 마음먹는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어쩐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같이 상상하게 하다가 종국에는 정말 그럴지도 믿고 싶게 한다. 누구나 이별을 하고, 누구나 남겨진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별'이라는 키워드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첫 소설 <크로노스>을 읽다 보면 이별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미련을, 사랑을 단박에 이해하고 싶어진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요양원에 모셨지만, 엄마의 모습을 한 '크로노스'를 집에 데려다 놓는 자매. 당돌하게도 시간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을 따와 저들의 이름으로 삼은 이 회사가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을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 데려다 놓는 약물이었다. 이 약은...
한강, <<흰>>, 문학동네, 2018년 출간 요란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폭설이 내렸던 며칠은 공포스러웠지만 지난 며칠에 비하여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었다. 2024년 겨울, 나는,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이는 학교 사회 시간에 계엄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했다 한 아이가 '그건 독재하려고 그런 거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정확히 어떻게 말해주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는 웃으며 "선생님은 그냥 조심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아." 하고 얼버무렸다. 조심해야 한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배워야 하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 걸까. 한강 작가의 <<흰>>을 읽는 동안 겪은 폭설, 계엄령 선포와 6시간 만의 해제, 철도파업과 크고 작은 사고들로 생과 사를 오가는 사람들의 기사를 접했다. 어쩌면 소설은 그렇지 않았는데, 작가가 의도한 게 전혀 아닐지도 모르는데, 나는 자꾸 작가의 소설에서 하얗고 흰 것이, 더럽혀지는 이미지들을 떠올렸다. 삶과 죽음이 뭉텅이로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아가고 싶은가. 그럴 가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라고 떨면서 스스로에게 답했던 때가 있었다. (p105) 우리는 지금 이런 질문을 하고, 대답을 유보한 채 매일매일의 사건들을 예의 주시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요즘보다 더 명확하...
조남주, <<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2024년 6월 출간 2023년 중학교 1학년인 딸 윤슬과 1993년에 중학교 1학을 다닌 엄마 수일의 영혼 체인지. 사춘기 딸과 사춘기 딸을 둔 엄마가 일주일 동안 뒤바뀐 채 서로의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다. 사춘기 딸은 엄마가 그냥 밉고, 그런 딸을 둔 엄마는 당최 딸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거 딱 알겠다. 지금 내가 딸과 딱 그런 상황이니까. 물론 아직까지는 딸이 나를 미워하는 것 까지는 아닌 것도 같지만.. 다행인 건가..) '도대체 왜?' 서로 가장 필요하고, 가장 힘들 때 그들은 바뀌었을까. 이 소설적 장치는 그 극적인 순간에 서로를 돌아보게 하면서 딸과 엄마 이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이해하고 공감해 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걸 거다. 읽으면서 생각한 건, '절대 나와 딸이 그 순간으로 서로 뒤바뀌는 일 같은 건 없으면 좋겠다'였다. 소설은 가족, 엄마와 딸이 뒤바뀐 시간 안에서 서로를 돌아보며 딸 윤슬은 '엄마는 그랬구나, 그때 엄마의 엄마(외할머니)는 그랬구나.' 이해하게 되는데, 1993년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엄마와 함께 살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니까. 나의 딸이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외롭고, 울적했던 감정들을 느껴야 할 테니까. 소설을 소설로 읽으며 유쾌해했어야 하는데,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당신의 나를 자꾸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나의 딸로 살아간다면? 이...
이장욱 소설,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2024년 1월 출간 소설의 중심이 되는 공간은 '해변 모텔'이다. 해안선이 조금씩 잠식되어 가는 섬. 그곳에 자리 잡은 외롭게 느껴지는 해변 모텔. 이상하지, 읽을수록 진짜 '해변 모텔'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삶이 힘들어 잠시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누군가가 목적지도 없이 차를 몰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될 것 같은 곳. 외롭기도 하지만, 조용히 스스로를 바라보게 해줄 곳. 나쁜 생각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오늘의 시간을 보내게 해줄 것만 같은 곳. 모수, 연, 천, 한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주고 싶었다. 아니, 다정하지 않더라도 그냥 소리 내어 한 번쯤 불러보고 싶었다. 도청 공무원이었다가 파면된 뒤 호텔을 운영하는 모수. 이혼 후 우연히 모수를 만나 조용히, 새로운 미래를 생각했던 연. 연극배우였으나 극중 인물에 몰입해 결국 자신이 지워져 버린다고 느끼는 천. 아나운서였으나 예상치 못했던 방송 사고로 방송국을 그만둔 천의 연인이었다가 떠나버린 한나. 모수가 죽은 뒤 해변 모텔을 운영하게 된 연과, 우연히 해변 모텔에 투숙하게 된 천의 목소리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들은 각자 모수와 한나를 추억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그들을 원망하기 보다 그저 받아들이고, 빈자리의 쓸쓸함마저 끌어안기를 택한 것처럼 보인다. 연이 모수...
파브리치오 실레이, <<행복한 가족>>, arte, 2023년 11월 출간 몇 페이지만 읽다 자야지, 하고 펼쳤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말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오래 잠들지 못했다. 책을 시작할 때, 첫 장에 적힌 <일러두기>가 눈에 띄었다. 책 발췌 [이 책에는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 성차별, 가스라이팅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으며, 학교 폭력, 동물 학대 장면을 일부 포함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행복한 가족>>은, 한 가족을 '행복'으로 몰아넣기 위해 '가족 내에서' 자행되어 온 폭력, 학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 사회적으로 볼 때 '정상가족' 범주에 들어갈 법한 네 명의 가족이 있다. 아빠는 밖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부양하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며 두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다. 딸은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아들은 '아들이라는 성별'로 특혜 받지만, 역시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빠 대신'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부여받는다. 아들은 몰랐다. 그저 엄마가 덤벙대는 사람이라서, 팔에, 얼굴에 멍이 드는 줄 알았다. 아빠는 아이들 앞에서 '엄마는 덤벙대는 사람이고, 잘 모르는 사람이라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걸' 강조한다. 아빠는 엄마를 돌보고 지키는 게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늘 강압과, 학대, 외...
한정현 소설집, <<쿄코와 쿄지>>, 문학과 지성사, 2023년 9월 출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쿄코와 쿄지>>에는 열 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등단작 <아돌프와 알베르트의 언어>를 프롤로그로 실은 게 흥미로웠다. 비단 그것만이 아니라 열 편의 소설을 읽는 내내 그랬다. 물론 '흥미롭다' 이상의 감정이었다. '놀라웠다'에 가까울 것이다. 각각의 소설 같지만, 한 편의 이야기 같기도 한 소설들이 매듭을 따라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표제작 <쿄코와 쿄지>는 단연 압권이었는데,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시대를 배경으로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서로의 이름 끝 자를 맞추기로 한 네 명의 친구들 경자, 혜자, 미자, 영자가 광주의 시대를 보내면서 마주한 삶과, 그들에게 찾아온(남은) '영소'. 영소를 맡아 키우게 된 경자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는 '영소'에게 전해진다. 그들의 이름은 혜숙, 미선, 영성이, 경녀였다. 아들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아들 대접을 받고 싶었던 혜숙, 신앙인이 되고 싶었던 미숙, 여자가 되고 싶었던 영성, 그들과 함께 있게 좋았던 경녀. 영소에게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살아냈던 80년대의 광주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차마 영소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거기 있던 모두가 그냥 살고 싶었던 거야. 엄마가 그렇게 말했을 때, 왜였을까. 나는 다시 물었다. ...
임솔아 장편소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문학동네, 2023년 9월 출간 먹먹하다. 책을 덮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습작 소설을 쓰던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계속 소설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오랜만에, 소설이 간절해진 순간이었다. (나는 이 글에서 소설의 줄거리를 쓰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 소설이 읽고 싶어지면 좋겠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안다. 누구나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을. 누군가는 드러내고, 누군가는 숨기고, 누군가는 애써 외면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나의 상처를 드러내지 못할 때, 나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위로가 되는 순간도 있다. 임솔아의 소설이 내게 그랬다. 너의 상처가 나의 위로가 되었구나. 너의 슬픔이 나에게로 와 우리의 슬픔이 되기도 했구나. 다행이다.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임솔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은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한 장면>의 마지막 구절,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를 제목으로 한다는 것 외에 뚜렷한 구성 없이 쓰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자신의 소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토록 모른 적도 처음이었다고.(p326) 소설에는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사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평가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저 곁에 선다. 나...
이지애 장편소설, <<완벽이 온다>>, 창비 교육, 2023년 8월 출간 소설을 읽으며 자주 생각한다. 소설은 현실보다 더 가혹한가. 현실은 소설보다 더 지독한가. 아마 다 다르겠지. 소설마다 다를 거고, 어떤 현실이냐에 따라 다를 거고. 그럼에도 자주, 소설에 기대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소설보다 나은 현실이기를. 괜찮은 삶이기를. 때론 덜 가혹하기를. 이지애 장편소설 <<완벽이 온다>>는 그룹홈에서 생활하다 만 18세가 되어 그룹홈을 나와 자립해야 했던 민서와 해서와 솔의 이야기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딱 그 경계에 있는 아이들. 여전히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할 아이들은 자립해야 한다고 떠밀린다. 자립 지원금 500만 원. 기사에서도 본 적 있다. 자립 청소년들이 겪어야 하는 거친 삶에 대해 다룬 기사들. 민서와 해서와 솔은 각각의 이유로 부모와 떨어져 그룹홈에 머물렀다. 각각의 이유는 달랐지만, 대체로 부모는 그들을 보살필 능력이 되지 않았거나, 보살필 마음이 없었다. 여섯 살에 아빠에게 버림받은 민서는 자립 후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간다. 아빠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설은 그룹홈에 살다가 변하겠다는 아빠의 의지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결국 지켜지지 못하고, 할머니마저 책임져야 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해수는, 퇴소 후 남자친구를 만나 임신을 하고 완벽한 가정을 꿈꾸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들의 ...
이꽃님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는다. 이전의 작품들이 꽤 알려져 있다는 것, 가끔 다른 분들이 올린 작가의 책 리뷰에 대체로 좋은 이야기가 가득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작가의 신작이자, 작가가 쓴 첫 연애소설이라고 했다. 이꽃님,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2023년 8월 출간 화재 사건 이후 가족을 잃고, 원치 않게 다른 사람의 속 마음이 들리게 된 유찬. 열일곱에 자신을 낳은 엄마가 대장암에 수술을 앞두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에게 가게 된 지오. 이야기는 두 아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다른 사람 속 마음이 들리지만 어쩐지 지오 옆에 있으면 그냥 평범한 아이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유찬과 그런 걸 알 리 없는 지오의 초반 투닥거림이 귀여웠다. 우연히 만난 두 아이들, 그 아이들을 둘러싼 정주라는 마을의 사람들. 유찬이 파헤치고 싶었던 진실과, 어른 유찬을 위해 어른들이 감추고 싶었던 진실까지, 이야기는 경쾌한듯하면서도 꽤 묵직하게 흘러갔다. 대체로 청소년 소설에서 느껴지는 선함(아이들 주변의 그럼에도 좋은 어른들이 있는)을 이 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 줄거리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 소설의 마지막에 대해서 만큼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 그건, 마지막에 가서 이 작가의 매력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