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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 퐁, 이유리

이유리 소설집, <<비눗방울 퐁>>, 민음사, 2024년 11월 출간 소설적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작가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소재와, 어딘가에 있음 직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발을 땅에 딛고 선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현실인가, 환상인가, 아니지 지독하게 현실적이지 생각하게 하는 작가다. 재밌다, 유쾌하다, 통통 튄다, 같은 말로 표현하기 부족한 작가다. 내게 이유리 작가는 그렇다. 엄마, 친구, 애인, 누구에게나 있을 사람들이 등장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는데, 갑자기 엄마는 AI로 나타나고(크로노스), 연인은 비눗방울이 되겠다고 한다(비눗방울 퐁). 애인과 헤어진 누군가는 남은 사랑을 팔기로 마음먹는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어쩐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같이 상상하게 하다가 종국에는 정말 그럴지도 믿고 싶게 한다. 누구나 이별을 하고, 누구나 남겨진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별'이라는 키워드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첫 소설 <크로노스>을 읽다 보면 이별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미련을, 사랑을 단박에 이해하고 싶어진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요양원에 모셨지만, 엄마의 모습을 한 '크로노스'를 집에 데려다 놓는 자매. 당돌하게도 시간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을 따와 저들의 이름으로 삼은 이 회사가 만들어 낸 것은 인간을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 데려다 놓는 약물이었다. 이 약은...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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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한강 소설

한강, <<흰>>, 문학동네, 2018년 출간 요란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폭설이 내렸던 며칠은 공포스러웠지만 지난 며칠에 비하여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었다. 2024년 겨울, 나는,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이는 학교 사회 시간에 계엄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했다 한 아이가 '그건 독재하려고 그런 거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정확히 어떻게 말해주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는 웃으며 "선생님은 그냥 조심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아." 하고 얼버무렸다. 조심해야 한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배워야 하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 걸까. 한강 작가의 <<흰>>을 읽는 동안 겪은 폭설, 계엄령 선포와 6시간 만의 해제, 철도파업과 크고 작은 사고들로 생과 사를 오가는 사람들의 기사를 접했다. 어쩌면 소설은 그렇지 않았는데, 작가가 의도한 게 전혀 아닐지도 모르는데, 나는 자꾸 작가의 소설에서 하얗고 흰 것이, 더럽혀지는 이미지들을 떠올렸다. 삶과 죽음이 뭉텅이로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아가고 싶은가. 그럴 가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라고 떨면서 스스로에게 답했던 때가 있었다. (p105) 우리는 지금 이런 질문을 하고, 대답을 유보한 채 매일매일의 사건들을 예의 주시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요즘보다 더 명확하...

202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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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 《네가 되어 줄게》, 조남주

조남주, <<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2024년 6월 출간 2023년 중학교 1학년인 딸 윤슬과 1993년에 중학교 1학을 다닌 엄마 수일의 영혼 체인지. 사춘기 딸과 사춘기 딸을 둔 엄마가 일주일 동안 뒤바뀐 채 서로의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다. 사춘기 딸은 엄마가 그냥 밉고, 그런 딸을 둔 엄마는 당최 딸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거 딱 알겠다. 지금 내가 딸과 딱 그런 상황이니까. 물론 아직까지는 딸이 나를 미워하는 것 까지는 아닌 것도 같지만.. 다행인 건가..) '도대체 왜?' 서로 가장 필요하고, 가장 힘들 때 그들은 바뀌었을까. 이 소설적 장치는 그 극적인 순간에 서로를 돌아보게 하면서 딸과 엄마 이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이해하고 공감해 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걸 거다. 읽으면서 생각한 건, '절대 나와 딸이 그 순간으로 서로 뒤바뀌는 일 같은 건 없으면 좋겠다'였다. 소설은 가족, 엄마와 딸이 뒤바뀐 시간 안에서 서로를 돌아보며 딸 윤슬은 '엄마는 그랬구나, 그때 엄마의 엄마(외할머니)는 그랬구나.' 이해하게 되는데, 1993년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엄마와 함께 살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니까. 나의 딸이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외롭고, 울적했던 감정들을 느껴야 할 테니까. 소설을 소설로 읽으며 유쾌해했어야 하는데,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당신의 나를 자꾸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나의 딸로 살아간다면? 이...

2024.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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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이장욱 소설

이장욱 소설,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2024년 1월 출간 소설의 중심이 되는 공간은 '해변 모텔'이다. 해안선이 조금씩 잠식되어 가는 섬. 그곳에 자리 잡은 외롭게 느껴지는 해변 모텔. 이상하지, 읽을수록 진짜 '해변 모텔'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삶이 힘들어 잠시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누군가가 목적지도 없이 차를 몰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될 것 같은 곳. 외롭기도 하지만, 조용히 스스로를 바라보게 해줄 곳. 나쁜 생각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오늘의 시간을 보내게 해줄 것만 같은 곳. 모수, 연, 천, 한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주고 싶었다. 아니, 다정하지 않더라도 그냥 소리 내어 한 번쯤 불러보고 싶었다. 도청 공무원이었다가 파면된 뒤 호텔을 운영하는 모수. 이혼 후 우연히 모수를 만나 조용히, 새로운 미래를 생각했던 연. 연극배우였으나 극중 인물에 몰입해 결국 자신이 지워져 버린다고 느끼는 천. 아나운서였으나 예상치 못했던 방송 사고로 방송국을 그만둔 천의 연인이었다가 떠나버린 한나. 모수가 죽은 뒤 해변 모텔을 운영하게 된 연과, 우연히 해변 모텔에 투숙하게 된 천의 목소리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들은 각자 모수와 한나를 추억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그들을 원망하기 보다 그저 받아들이고, 빈자리의 쓸쓸함마저 끌어안기를 택한 것처럼 보인다. 연이 모수...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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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소설, <행복한 가족>, 파브리치오 실레이

파브리치오 실레이, <<행복한 가족>>, arte, 2023년 11월 출간 몇 페이지만 읽다 자야지, 하고 펼쳤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말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오래 잠들지 못했다. 책을 시작할 때, 첫 장에 적힌 <일러두기>가 눈에 띄었다. 책 발췌 [이 책에는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 성차별, 가스라이팅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으며, 학교 폭력, 동물 학대 장면을 일부 포함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행복한 가족>>은, 한 가족을 '행복'으로 몰아넣기 위해 '가족 내에서' 자행되어 온 폭력, 학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엄마와 아빠, 딸과 아들, 사회적으로 볼 때 '정상가족' 범주에 들어갈 법한 네 명의 가족이 있다. 아빠는 밖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부양하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며 두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다. 딸은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아들은 '아들이라는 성별'로 특혜 받지만, 역시 '아들'이라는 이유로 '아빠 대신'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부여받는다. 아들은 몰랐다. 그저 엄마가 덤벙대는 사람이라서, 팔에, 얼굴에 멍이 드는 줄 알았다. 아빠는 아이들 앞에서 '엄마는 덤벙대는 사람이고, 잘 모르는 사람이라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걸' 강조한다. 아빠는 엄마를 돌보고 지키는 게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늘 강압과, 학대, 외...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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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코와 쿄지>, 한정현 소설집

한정현 소설집, <<쿄코와 쿄지>>, 문학과 지성사, 2023년 9월 출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쿄코와 쿄지>>에는 열 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등단작 <아돌프와 알베르트의 언어>를 프롤로그로 실은 게 흥미로웠다. 비단 그것만이 아니라 열 편의 소설을 읽는 내내 그랬다. 물론 '흥미롭다' 이상의 감정이었다. '놀라웠다'에 가까울 것이다. 각각의 소설 같지만, 한 편의 이야기 같기도 한 소설들이 매듭을 따라 연결된 느낌이 들었다. 표제작 <쿄코와 쿄지>는 단연 압권이었는데,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시대를 배경으로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서로의 이름 끝 자를 맞추기로 한 네 명의 친구들 경자, 혜자, 미자, 영자가 광주의 시대를 보내면서 마주한 삶과, 그들에게 찾아온(남은) '영소'. 영소를 맡아 키우게 된 경자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는 '영소'에게 전해진다. 그들의 이름은 혜숙, 미선, 영성이, 경녀였다. 아들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아들 대접을 받고 싶었던 혜숙, 신앙인이 되고 싶었던 미숙, 여자가 되고 싶었던 영성, 그들과 함께 있게 좋았던 경녀. 영소에게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살아냈던 80년대의 광주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차마 영소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거기 있던 모두가 그냥 살고 싶었던 거야. 엄마가 그렇게 말했을 때, 왜였을까. 나는 다시 물었다. ...

20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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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임솔아 장편소설

임솔아 장편소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문학동네, 2023년 9월 출간 먹먹하다. 책을 덮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습작 소설을 쓰던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계속 소설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오랜만에, 소설이 간절해진 순간이었다. (나는 이 글에서 소설의 줄거리를 쓰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 소설이 읽고 싶어지면 좋겠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안다. 누구나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을. 누군가는 드러내고, 누군가는 숨기고, 누군가는 애써 외면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나의 상처를 드러내지 못할 때, 나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위로가 되는 순간도 있다. 임솔아의 소설이 내게 그랬다. 너의 상처가 나의 위로가 되었구나. 너의 슬픔이 나에게로 와 우리의 슬픔이 되기도 했구나. 다행이다.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임솔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은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한 장면>의 마지막 구절,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를 제목으로 한다는 것 외에 뚜렷한 구성 없이 쓰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자신의 소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토록 모른 적도 처음이었다고.(p326) 소설에는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사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평가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저 곁에 선다. 나...

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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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완벽이 온다>, 이지애

이지애 장편소설, <<완벽이 온다>>, 창비 교육, 2023년 8월 출간 소설을 읽으며 자주 생각한다. 소설은 현실보다 더 가혹한가. 현실은 소설보다 더 지독한가. 아마 다 다르겠지. 소설마다 다를 거고, 어떤 현실이냐에 따라 다를 거고. 그럼에도 자주, 소설에 기대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소설보다 나은 현실이기를. 괜찮은 삶이기를. 때론 덜 가혹하기를. 이지애 장편소설 <<완벽이 온다>>는 그룹홈에서 생활하다 만 18세가 되어 그룹홈을 나와 자립해야 했던 민서와 해서와 솔의 이야기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딱 그 경계에 있는 아이들. 여전히 어른의 보살핌이 필요할 아이들은 자립해야 한다고 떠밀린다. 자립 지원금 500만 원. 기사에서도 본 적 있다. 자립 청소년들이 겪어야 하는 거친 삶에 대해 다룬 기사들. 민서와 해서와 솔은 각각의 이유로 부모와 떨어져 그룹홈에 머물렀다. 각각의 이유는 달랐지만, 대체로 부모는 그들을 보살필 능력이 되지 않았거나, 보살필 마음이 없었다. 여섯 살에 아빠에게 버림받은 민서는 자립 후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간다. 아빠의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설은 그룹홈에 살다가 변하겠다는 아빠의 의지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결국 지켜지지 못하고, 할머니마저 책임져야 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해수는, 퇴소 후 남자친구를 만나 임신을 하고 완벽한 가정을 꿈꾸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들의 ...

202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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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이꽃님

이꽃님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는다. 이전의 작품들이 꽤 알려져 있다는 것, 가끔 다른 분들이 올린 작가의 책 리뷰에 대체로 좋은 이야기가 가득했다는 것 정도가 내가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작가의 신작이자, 작가가 쓴 첫 연애소설이라고 했다. 이꽃님,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2023년 8월 출간 화재 사건 이후 가족을 잃고, 원치 않게 다른 사람의 속 마음이 들리게 된 유찬. 열일곱에 자신을 낳은 엄마가 대장암에 수술을 앞두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에게 가게 된 지오. 이야기는 두 아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다른 사람 속 마음이 들리지만 어쩐지 지오 옆에 있으면 그냥 평범한 아이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유찬과 그런 걸 알 리 없는 지오의 초반 투닥거림이 귀여웠다. 우연히 만난 두 아이들, 그 아이들을 둘러싼 정주라는 마을의 사람들. 유찬이 파헤치고 싶었던 진실과, 어른 유찬을 위해 어른들이 감추고 싶었던 진실까지, 이야기는 경쾌한듯하면서도 꽤 묵직하게 흘러갔다. 대체로 청소년 소설에서 느껴지는 선함(아이들 주변의 그럼에도 좋은 어른들이 있는)을 이 소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 줄거리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 소설의 마지막에 대해서 만큼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 그건, 마지막에 가서 이 작가의 매력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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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소설집

이유리, <<좋은 곳에서 만나요>>, 안온북스, 2023년 7월 출간 <작가의 말>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갈까' 아주 어려서부터 작가는 그게 궁금했다고 썼다.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갈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이다. 세상이 너무나 다채롭고 복잡하고 아름다워서, 한 번 머물다 가기에는 아무래도 아까운 곳이라서. 그런 의문은 이 세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사후 세계에 대한 이 긴긴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난 지금도 답은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사랑은 계속될 것을 믿는다. - 작가의 말, <사랑은 계속될 것을> 중에서, p294 책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을 다 읽고, 아니 읽으면서 너무 좋은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죽은 이들의 이야기가 가득 찬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내가 사는 현실이 비현실적인 세계처럼 느껴져서. 소설에서는, 죽은 이들조차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데 그렇게 반짝이는데 왜 마음이 묘하게 흐릿해질까 생각했다. 그 의문이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풀린 것 같다. 내가 죽은 이들조차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데,라고 느낀 건 정말로 작가가 인물들을 그렇게 표현해서다. 마치 살아 있는 이들처럼, 아니 살아있는 이들보다 더, 삶을 사랑하는 것처럼. '세상이 너무 다채롭고 복잡하고 아름다워서, 한 번 머물다 가기에는 아무래도 아까운 곳...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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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연작 소설

김화진, <<공룡의 이동 경로>>, 스위밍꿀, 2023년 8월 출간 주희, 솔아, 지원, 현우 그리고 공룡 피망이. <공룡의 이동 경로>는 <마음의 이동 경로>로 읽어도 무방하다. 각 등장 인물들의 시점으로 쓰인 다섯 편의 연작 소설은 결국 다섯 마음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그들은 어디서 만났다가 흩어지는지, 결국, 사랑이란 혹은 우정이란 그 안에 담긴 무수히 많은 감정의 파편이 어떻게 헤쳐모이는지 보여준다. '보여준다' 들려주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 게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이 소설에 대해 나 역시 '보여주는' 것처럼 말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출판사에서 올려놓은 소개 이미지를 빌려왔다. (출처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1910515&start=slayer) 공룡의 이동 경로 “친구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 친구를 잃지 않으리라고 과신했다. 잃어버리지 않는 친구,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마음의 이동 경로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다섯 편의 이야기, 김화진 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가... www.aladin.co.kr 더운 봄밤, 그들은 만났다. 우연히 어느 모임의 뒤풀이쯤에서 만난 그들은 한 테이블에 앉았다가 즉흥적으로 '되기 전 모임'을 만들었다. 아직 무언가가 되지는 못한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가 될 때까지 스스...

20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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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연인>, 이승은 소설

이승은, <<도망치는 연인>>, 창비, 2023년 7월 출간 두 사람 중 한 명이 말한다. "우리 헤어지는 게 좋겠어." 다른 한 사람의 대답은 "왜?" 이거나,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이거나 "싫어, 나는." 세 개 중 하나로 이어질 것이다. 질척거리는 연애나, 험악한 연애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대체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이별의 장면들도 비슷했다. 혹은 이런 드라마틱한 장면이 이어졌지. "내가 잘할게. 우리 결혼하자."이런 뜬금없는 전개 말이다. 헤어지자는 말 앞에, 그게 가장 좋은 일일까? 하고 되묻는 연인은, 헤어지지 않고도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겠구나.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다. <<도망치는 연인>> 속 여자와 남자는, 누가 더 가난한지 잴 것 없이 비등하게 가난했다. 그들은 젊었으나, 희망찬 미래보다 암울한 미래를 자주 떠올렸다. 가난한 연인은 서로의 가난을 경쟁하지 않았고, 누군가 형편이 나아지면 도와주고, 누군가 힘들어지더라도 지겨워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서로를 버리려 하지도 않았지만,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므로 적어도 서로에게 당당할 수 있었고, 서로의 삶에 자유로움을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모종의 음모처럼 보이는 일을 함께 도모하기도 했으나, 그것마저도 각자의 선택이었고 그러므로 일의 결과 유무에 ...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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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소설

최은영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문학동네, 2023년 8월 출간 다른 책 이야기로 먼저 시작하자면, 요즘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라는 웹툰을 읽고 있다. 말 그대로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모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그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책의 일 부분일 뿐이고, 소설 읽기를 폄하하는 내용은 절대 아니다) "뭐, 독서를 '소설 읽기'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긴 하지. 책 읽기 = 소설 읽기 그런 이들은 폭넓은 독서로 나아가지 못하고 마냥 소설만 접하겠지. 소설이 어때서요? 자칫하면...... 명징한 문체가 어쩌네, 농밀한 문체가 저쩌네... '문체 타령'이라는 사도(邪道)로 빠지지. - 이창현 글, 유희 그림 /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1>> 중에서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이 주는 강력한 힘이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작가의 <<밝은 밤>>을 읽으며 나는 '치유'라는 단어를 계속 떠올렸다고 적었는데, 이번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가만가만 문장 위에 손을 대보고 싶다고 적은 적도 있다. 어쩐지 문장에서 오돌토돌 어떤 질감이 느껴질 것만 같다고. 역시, 이번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전보다 더 명확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작가의 문장이 내 마음속 한 부분과 딱, 맞물리면서 문장들...

2023.08.13
6
저스트 키딩, 정용준 짧은 소설

정용준 짧은 소설, 이영리 그림, <<저스트 키딩>>, 마음산책, 2023년 7월 출간 <작가의 말>에서 다짐과 결심은 하지 않겠다고 작가는 적었다. 불쑥, 행복할 것이라는 말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불쑥, 행복이란 게 별거 아니라는 걸 알 것도 같았다. 나는 또 그렇게 작가의 소설에 굵은 별표 여러 개를 달아 두고, 야금야금 꺼내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문득,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게 될 것 같다. 내게도 '짧고 작은 이야기책'이 생겼다. 앞으로 기분이 좋을 예정이다. 가끔, 문득, 불쑥, 자주, 행복할 것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경쾌하게 엔터키를 누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백스페이스키를 눌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글쓴이가 되고 싶다. 이제 더는 소설이 좋다느니 소설을 계속 쓰겠다느니 같은 다짐과 결심은 하지 않을 테다. 다짐 없이도 살고 결심하지 않고도 쓰는 이 삶이 내게 읽을 것과 쓸 것을 계속 줄 것을 알고 있으니까. <작가의 말>에서, p9 그림, 이영리(책 수록) 아들은 물었다. 뭘 가르쳐 줬나요. 신 씨는 대답 대신 아들의 머리를 때렸다. 학교에서 상담을 하고 경찰서에서 진술을 했다. 아들은 자신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다가 옷을 벗었다.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잊을 수만 있다면 맹장처럼 잘라낼 수만 있다면 배를 가르고 머리를 갈라 이 기억...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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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족을 만드는 방법, 정은숙, 청소년 소설

정은숙, <<완벽한 가족을 만드는 방법>>, 창비, 2023. 아빠는 오래 공단에서 일했다. 힘들게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파트가 사라졌다. 우리는 방 두 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IMF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었다. 대단히 부유하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가난해진 것도 아니었는데, 한참 예민했던 고등학생에겐 모든 게 힘들고 짜증 나는 시절이었다. 아빠는, 엄마는 나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선빈이네 가족은 부유했다. 아빠의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엄마는 부잣집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우아하게 살았다. 선빈은, 큰 꿈은 없었지만 아빠의 재력 덕분에 곧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기 전까지는. 그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빠는 돈을 갚지 못해 구속되었다. 겨우 남은 돈으로 얻은 전셋집은 사기를 당했다. 엄마는 부잣집 사모님에서 하루아침에 전세사기를 당한 가진 것 없이 청소년 딸과 감옥에 간 남편을 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선빈이라는 아이는, 오래전 나와 비슷한 나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이 아이는 주눅들지도, 그다지 절망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참 신기했고, 좋았다. 물론 갑작스럽게 휘몰아친 상황들에 혼란스러워했지만 아빠를 원망하지도, 엄마를 미워하지도 않았다. "미워도 ...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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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 〈통영〉, 반수연

반수연 산문, <<나는 바다를 닮아서>>, 교유서가, 2022. 반수연 소설가의 산문 <<나는 바다를 닮아서>>와 소설집 <<통영>>을 같이 읽었다. 통영에서 태어나 1998년 캐나다 벤쿠버로 이주했고, 공장지대에 식당을 열고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카운터에 앉아 내내 책을 읽었다. 2002년 식당이 망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메모리얼 가든>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청탁도 없고 기억하는 이도 없이 잊히다 2014년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네 차례 재외동포문학상을 받았다. 등단 16년 만에 소설집 <<통영>>을 펴냈다. 짧은 작가 소개를 읽으며 1998, 2005, 2014... 가늠할 수 없는 숫자들을 곰곰 들여다봤다. 시간의 간극이 길어서 그 안에 작가가 살아냈을 삶을 짐작할 수 없었다. 소설을 읽으며, 산문을 읽으며 그 시간의 틈을 나름대로 묶어냈다. 작가는 '통영'이 싫어서 떠나고 싶었다고 했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내내 그곳을 그리워했음을. 그곳이 아니었다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임을. 반수연 소설집, <<통영>>, 강, 2021. 두 권의 책은 묘하게 닮았다. 표지도, 분위기도. 캐나다 벤쿠버는 레인쿠버라고 불릴 만큼 비가 많이 내린다고 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배가 많이 내린다고. 그렇게 주구장창 내리던 비는 4월쯤 되면 주춤하고, 그즈음의 숲을 사랑한다고 작가는 썼...

2023.07.25
완벽한 케이크의 맛, 김혜진

하지 않아서 좋았던 것, 하지 않았으므로 그가 지킬 수 있었던 것,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잃지 않았던 모든 것. 케이크의 맛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응축시켜놓은 것처럼 아주 진하고 깊다. - 완벽한 케이크의 맛 中 완벽한 케이크가 먹고 싶어지는 소설이었다. 그 순간은 완벽하게 혼자이거나, 완벽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좋겠다. 소설 속의 두 사람은, 고백하지 않아서 완벽해졌을지 모르지만 지금 내게 완벽이란 고백 같은 건 집어치우고 그저 맛있는 케이크를 야금야금 먹을 수 있다면... 같은 상상이다. 긴 소설에서 풀어 내는 작가의 문장도 좋지만, 짧은 한 편 한 편에 펼쳐 놓는 작가의 이야기도 참 좋구나. 작가의 이전 글들이 마음을 차분해지게 했다면 <<완벽한 케이크의 맛>>을 읽는 동안 기분 좋은 상상을 많이 했다. 상상과 현실과 과거의 추억들 사이에서 기분 좋게 헤엄쳤다. 그러다 또 살짝 차분해지긴 했지만. 주말엔 꼭, 완벽한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먹으며 아. 무. 것. 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 완벽한 케이크의 맛 저자 김혜진 출판 마음산책 발매 2023.05.30. # 이게 다 감염병 때문이라고, 그게 사람들의 불안을 키우는 탓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불안을 키우는 건 감염병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었으니까. 머리로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의심을 떨칠 수 없는 건 마음의 문제였으니까...

2023.06.23
사랑, 이별,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 / 정이현, 임솔아, 정지돈

결국 사랑이란 무엇일까, 세속과 세월에도 견디는 사랑의 힘은 어떤 모양일까를 들여다보는 작업이지 않을까 한다는 선의 말을 설은 잊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선우는 여기까지 와서 바닷새들의 뒷모습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 정이현, <우리가 떠난 해변에> 중에서, p29 사랑이 고정불변한 틀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도 착각 아닌가요? 사랑은 감정인데 네모 통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원형 통에 담으면 또 원형이 되는 거죠. ...... 애 엄마가 떠났어도 저는 우리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 안 합니다. 애를 낳고 살아온 세월을 그렇게 무 자르듯 끊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잖아요? 우리 부부가 지금 이렇게 됐다고 해서, 그때의 특별한 사랑이 사라지나요, 없어지나요? 아니요, 사라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아요. 하고 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다고 정말 그대로 있는 걸까요, 하고. - 정이현, <우리가 떠난 해변에> 중에서, p34 사랑, 이별,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 저자 정이현,임솔아,정지돈 출판 시간의흐름 발매 2023.04.10.

2023.05.15
루(ru), 킴 투이

프랑스어로 'ru[뤼]'는 '실개천'을 뜻하고, 비유적인 의미로 '(눈물, 피, 돈의) 흐름'을 말한다. 베트남어로 'ru[루]'는 '자장가' '자장가를 불러 재워주다'의 뜻이다. 킴 투이(저자 소개 발췌) 1968년 베트남 사이공 (현재의 호찌민)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가족과 함께 보트피플로 베트남을 떠나 난민 신분으로 지내다 1979년 말 캐나다에 정착했다. 작가 소개를 먼저 적는 건 <<루>>라는 소설이 지닌 배경 때문이다. 작가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했다. *디아스포라 문학 : 민족국가의 영토를 벗어나 이주국에 거주하는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다룬 문학을 말한다.(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작가가 보트피플로 난민 생활을 거쳐 캐나다에 정착하게 된 삶의 배경은 그의 소설적 기반이 된다. 소설 속 주인공 안띤이지만, 작가 스스로의 모습이 반영된 인물이지 않을까 짐작하게 한다. 베트남 전쟁을 겪고, 난민이 되고, 다른 국가에서 뿌리를 내려야 했던 역사 속에 '여성'들이 있었다. '누이'가 있었고, '어머니'가 있었다.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가정을 지키고, 살림을 꾸리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약하지만 강인했던 여성들. 사람들은 자꾸 잊어버리지만, 남편들과 아들들이 등에 무기를 지고 다니는 동안 여인들이 베트남을 짊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자꾸 그 여인들을 잊는 것은, 그녀들이 원뿔형 ...

2023.04.10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 제시카 아우

* 이 글의 마지막에 쓰고 싶은 말은,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이 소설 꼭 읽어보세요!"가 될 거다. 그러니 이 글을 읽지 않고 바로 소설을 찾아 읽어보셔도 좋겠다. 만약, 약간의 스포도 알고 싶지 않은 분이라면 더더욱. (사진을 클릭하면 책 소개로 연결됩니다). 말만, 매번 말만. 이런 순간이 종종 있는데 엄마와 여행을 하고 싶다...는 문장을 적을 때도 그렇다.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한 적이 있었나 아무리 떠올려 봐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가족여행도 그렇지만, 언젠가 엄마와 여행을 가야지. 글로 쓰고는 했다. 여전히 그 마음은 그대로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도 그대로다. 엄마, 여행 갈까? 이 말이 뭐 그리 어렵다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건 또 뭐 그리 어려울 일이라고 말이다. 여러 가지 복잡다난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안다. 아직 내가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라는걸. 소설을 읽고 다시 다짐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언제 실행으로 옮길 수 있을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아프다기보다 그저 조금 먹먹한 기분이랄까. 소설에서 '나'는 엄마에게 일본 여행을 제안한다. 엄마는 머뭇거리는 방식으로 딸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와 딸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일본에 가면 뭘 보러 가고 싶으냐고 내가 여행 전에 물으면 엄마는 뭘 봐도 기쁠 거라고 종종 대답했다. 한 번은 겨울에는 눈이 올 정도로 추운지 내...

2023.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