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벽계수야
220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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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풍미한 고전시가 / 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라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황진이 시조, 현대어 풀이 청산 속에 흐르는 푸른 시냇물아, 빨리 흘러간다고 자랑 마라. 한 번 넓은 바다에 다다르면 다시 청산으로 돌아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산에 가득 차 있는, 이 좋은 밤에 나와 같이 쉬어감이 어떠냐? 황진이 (진랑, 명월) 뛰어난 재주로 성리학적 학문적 지식이 해박하고 시와 그림에 능했다는 조선시대의 여인인데요. 그 시절 개성의 황씨 성을 가진 진사의 서녀로 태어나 전국적인 기생으로 유명했다고 하네요. 많은 선비들과 이런저런 인연과 관계를 맺으면서 전국을 유람하기도 했고, 그러는 와중에 많은 시조와 그림을 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 중에 대부분 사라졌고 남은 작품들도 저평가되어 보존되지 못했다고 하네요. 또한 출중한 외모로 당시 생불이라 불리던 지족선사를 10년 동안의 면벽 수도에서 파계시키기도 하고, 호기로 이름을 떨치던 벽계수라는 왕족의 콧대를 꺾어놓기도 하고, 당대 최고의 은둔학자 서경덕을 유혹하기도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답니다. 그래서일까요?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3절’로까지 불렸다고 하네요. 고전시가 배경 조선 종실이었던 이벽계수가 성격이 근엄하여 여자를 멀리할 뿐 아니라, 자신은 황진이조차도 아...

2024.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