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님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조심조심 읽었다.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불우한 청소년들. 이들이 마주할 세계는 어떤 모습이며, 삶이란 어떤 의미일까? 김애란 작가는 무슨 의도로 이들의 이야기에 '거짓말'을 첨가했을까?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김애란 베스트셀러 소설 서평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글, 문학동네 펴냄 거짓말의 의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란 친구가 말하는 다섯 문장 중에서 하나의 거짓을 찾는 자기소개 규칙이다. '명백한 거짓'으로 웃음이 유발되거나 추측과 질답이 이어져, 일방적인 설명보다 효과적인 소개법이었다. 그러나 세 인물들에게 우스운 거짓은 없으며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지우에게는 가족을 버린 아빠와 돌아가신 엄마가 거짓말 같았다. 죽음을 보는 소리는 본 대로 말하지 못하고 관계를 단절해왔다. 가정폭력으로 망가진 채운의 삶도 거짓으로 물들었다. 삶은 최소한의 희망마저 앗아갔고,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반복되었기에 이들에게는 삶 자체가 거짓말이었다. 이야기의 관점과 구원 이야기란 삶에 대한 은유이자 태도였다. 지우는 모험을 떠난 주인공이 성장해서 돌아오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쁜 일만 반복되는 자신의 삶과는 달랐으니까. 이야기에 "끝이 없으면 너무 암담"해서, 지우는 스스로 만들기로 하고 웹툰을 그린다. ⓒ yes24.com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채운도 불행한 이야기의 "시작을 ...
가까이 두고 자주 들춰보는 《월든》. 세계인의 인생 고전답게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명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는 건 모든 문장이 묵직하여 멈칫거리고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도 좋다는 《월든》을 끝까지 읽지 못한 이들에게 권해줄 책이 있다. 그래픽 노블로 만나는 소로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순간들 존 포슬리노 글, RHK 펴냄 미국의 인기 만화가 존 포슬리노는 《월든》에서 가져온 문장들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심플한 라인과 한 가지 색으로만 표현한 그의 그림은 소로의 철학처럼 심플하면서도 심오하다. 그래픽 노블을 통해 소로의 사상에 호기심을 품고, 나아가 자신의 삶을 탐구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한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소로가 랠프 왈도 에머슨을 스승이자 친구처럼 여기며 닮고 싶어 했다는 것. 그리고 하버드를 졸업한 뒤 형을 여읜 소로가 글쓰기만 하며 살고 싶었을 때 에머슨이 월든 호숫가 땅을 사서 소로에게 빌려주었다는 배경이 있었다. 왜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무덤을 파기 시작하는 걸까? 소로는 유산을 물려받는 일을 불운이자 절망으로 생각했다. 한 번 얻으면 버리기 어렵고, 그로써 아등바등 누추한 삶을 살게 된다고 여겼다. 문명에게서는 꼭 필요한 것만 취하고 적게 가지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자 그는 문명에서 멀어졌던 것이다. 소로는 철학자가 된다는 건 사상을 품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혜를...
일본 자유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부담되는 일은 일본어 회화다. 그래도 막상 여행에서 만족스러운 일 또한 더듬더듬 일본어로 소통해 본 경험이다. 그래서 놓을 수 없는 일본어 공부! 하지만 자주 가는 게 아니니 갈 때마다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불상사! 일본 미식여행 학습만화 마구로센세의 일본어 메뉴판 마스터 나인완 글, 브레인스토어 펴냄 그래서 매번 초보 일본어 책이나 강의를 기웃거린다. 여행 용어 위주로 간단하게 배우고 싶은데, 도서관에는 기초 일본어 회화책뿐이다. 어학 공부용으로 종종 듣는 네이버 오디오클립에도 마땅한 강의가 없고. 그러다가 눈에 띈 책이 《일본어 메뉴판 마스터》다. 동글동글 귀여운 마구로센세 캐릭터가 식당에 가서 주문하고 먹는 과정이 만화로 되어 있다. 공부가 아니라 그냥 재미난 만화 같은데 회화까지 습득할 수 있다니! 먹으러 일본 여행을 가는 분들에게는 최적의 학습만화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로컬 음식점을 좋아하는데, 관광객이 적은 지역의 메뉴판에는 오직 일본어로만 되어 있어서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파파고나 구글로 간단히 번역기를 돌려볼 수 있는 시대지만, 알아두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으니까. 초밥과 카페는 오사카, 이자카야는 교토, 튀김은 후쿠오카, 전골은 삿포로를 배경으로 그려서 지역 추천 음식들도 자연스럽게 소개해 준다. 75가지에 달하는 초밥 설명에서 놀라버렸다. 그림도 디테일하고 히라가나와 한자까지...
지나가다 보면 자꾸 따뜻한 기운이 번져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카페가 있다. 진초록 문과 입간판, 나란히 늘어선 풍성한 초록이들, 이름마저 귀여운 카페 <쿠아레비>다. 카페 이름은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하는 대표가 사강의 본명 '프랑수아즈 쿠아레'에서 따온 <쿠아레>에 <베이커리>를 뜻하는 B가 붙어서 만들어졌다. 로컬 문화와 건강한 빵을 만드는 은평 북카페 ☕ 쿠아레비 권순미 대표는 북카페 <쿠아레>와 독립서점 <책방비엥>을 거쳐 <쿠아레비>까지 책으로 지역 문화를 이끌어온 분이다. 권 대표는 공동육아를 위해 주거지 근처로 일터를 옮기기로 마음먹고 독립서점이 막 생겨나던 시기, 은평구 최초로 독립출판물을 큐레이션하고 판매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독립서점 <책방비엥>은 찾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서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대신 찾는 사람이 더 많았던 쿠아레비에서 독립출판물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책을 소개하고 있다. 열 테이블 남짓한 공간이지만 이곳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작가들과 협업하여 사진이나 그림 전시회를 열고, 올가을에는 진은영 시인의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을 주제로 큐레이션을 선보였다. 주제가 바뀔 때마다 유리 통창 레터링을 다시 할 만큼 진심인 곳이다. 카페 벽면이 미술관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감각적인 사진으로 둘러싸이기도 하는 곳. 너무나 아늑한 전시 공간이다. 카페에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큐...
'몸으로'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건드렸던 책인데 서평단 제안이 왔다. 읽는 내내 특별한 여행을 하는 기분과, 기쁘고 정직하게 일하고 싶은 욕구와, 멋진 친구들을 사귄 것 같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이 진정 널리 읽히길 바라며 서평을 써 본다. 노동과 환대를 교환하는 WWOOF 여행 에세이 프랑스에서 몸으로 90일 이반 글, 마음연결 펴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서평 《프랑스에서 몸으로 90일》은 퇴직 후 휴식을 위해 홀로 떠난 어느 가장의 이야기다. 휴식하기 위한 여행이라면 휴양지라거나 크루즈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택한 방식은 뜻밖에도 돈 들이지 않고 일을 하며 여행할 수 있는 WWOOF와 Workaway였다.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는 삶의 순례 여행 WWOOF는 유기 영농을 하는 농부들의 네트워크다. 게스트는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가에 머물며 하루 4시간씩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다. 자유 시간에는 휴식하거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Workawy는 더 유연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세계 통합 플랫폼이다. 워킹홀리데이와 유사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노동 시간이 짧아서 여유롭고, 워킹비자가 아닌 여행비자로 3개월 체류가 가능하며, 돈을 주고받지 않는다. 호스트와의 관계도 업무적이지만은 않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먹고 자고 함께 일하는 기쁨을 진솔한 문장으로 느낄 수 있었다. 휴식과 노동이 균형을 이룰...
《고화정담》은 '옛 그림을 두고 나누는 정겨운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조선시대 화가들의 다정함이 녹아든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다. 탁현규 저자는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조선 문화 절정기의 그림에 고유한 해석을 덧붙여 설명한다. 다정함이 녹아든 조선의 미술 고화정담 탁현규 글, 디자인하우스 펴냄 탁현규 저자는 우리나라가 경제성장과 비례하여 빠르게 전통문화와 단절되었고, 일상에서 여유와 건전한 놀이를 찾기 힘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활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며 여백과 쉼이 있는 전통문화를 권한다. 그의 권유를 따라 자연의 순리를 관조하고 정을 나누던 선비들의 발걸음과 시선을 따라가 보자. 영모도 영모란 새 깃과 짐승 털이고, 영모도는 날짐승과 들짐승을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털짐승 그림은 영·정조 시대 화원들에 의해 전성기를 이뤘다. 화원이란 조선시대 예조 산하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리는 일에 종사한 관직이다. 화원들은 관복의 그림이나 임금의 초상화를 그렸다. 임금의 얼굴을 그리다 보니 수염 그리는 기술이 좋아야 했다. 그래서 털짐승을 그리는 데도 능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재미난다. 근엄한 자화상으로 알려진 윤두서는 말 그림을 즐겨 그렸다. 변상백은 고양이, 정선은 닭, 정홍래는 호랑이 그림이 탁월하다. 변상백의 그림 속 고양이는 털이 바짝 서 있어서 촉감이 실감난다. 식빵 굽는 고약한 표정만큼 재미난 게 '변고...
보르헤스의 《픽션들》은 난해한 소설이다. 돌돌님이 내준 숙제를 두 달 지각해서 6년 만에 다시 읽으며 독서력이 나아졌는지 가늠해 보았는데 오히려 퇴보된 것 같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큼 읽으면서 자꾸 딴생각이 들고, 차라리 카프카가 쉽겠다는 허튼 생각도 든다. 문학으로 창조한 의미의 우주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글, 민음사 펴냄 보르헤스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마치 경이로운 현관에 서 있는 것 같았는데 둘러보니 집이 없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왜 이 난해한 책을 다시 읽고 싶었을까? <바벨의 도서관>과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너무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도 꽤 어려웠는데, 황당함이 느껴지는 그의 감상에 위안과 친밀감을 얻었다. (하지만 당신 소설도 만만치 않아요! 🤔) 《픽션들》에는 열여덟 편의 단편이 두 묶음으로 실려 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 8편, <기교들>에 10편이다. <두 갈래...>의 서문에는 단편들이 탐정 소설이자 환상 문학이며 다 읽고 나면 분명히 이해될 거라고 적혀 있는데 어림없는 소리다. 이 소설이 어려운 이유는 이중적, 은유적, 실험적이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든다. 기존 문학을 비틀고 재생산하기도 하고 다중 의미를 내포한다.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심이 들고, 다시 읽다 보니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보르헤스...
경복궁 서쪽 동네, 서촌 골목을 걷다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옛 모습을 간직한 복닥복닥 작은 점포들, 정감 넘치는 외관과 도란도란 분위기가 흘러넘쳐 시선도 몸도 나도 모르게 기웃거리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궁금했던 곳은 아이유의 <꽃갈피> 앨범 촬영지 대오서점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카페 대오서점 12:00 - 21:00 아담하고 낡은 한옥 건물이 돋보이는 대오서점은 1951년에 문을 열어 70년이 넘도록 영업중이다. 조대식 할아버지와 권오남 할머니 부부가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서점 이름을 지었다고. 당시로서는 참 민주적인 부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서점 유지가 어려워 할머니께서 카페로 운영하시다가 할머니도 돌아가신 지금은 외손자가 운영 중이란다. 알아볼 수 없게 벗겨진 간판, 낮은 기와지붕과 삐걱대는 하늘색 나무문에서 세월의 더께가 흠뻑 느껴진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지원은 없어서 음료와 기념품 판매 수익, 대관으로 운영중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라는 명예로운 역사를 유지하고 근현대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래도록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 기념품 엽서를 구매하면 마당을 볼 수 있고 음료를 주문하면 전체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촬영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으나 소장용, 블로그용 휴대폰 촬영은 가능하다며 너그러운 미소를 보여 주시는 가게 어르신. 방과...
수영이 너무 하고 싶은데 일정상 수영장에 못 가는 날이 계속되면 수영 책이라도 봐야 한다. 이번에 찾은 책은 제목도 표지도 귀여운 《어푸어푸 라이프》다. 자칭 저질 체력 만화가 씨유숨의 경험담을 담은 그림 에세이다. 수영으로 채우는 상쾌한 일상 어푸어푸 라이프 씨유숨 글 그림, 샘터 펴냄 20대 때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갔다가 심각한 저질 체력인 걸 알게 된 작가. 체력을 키워 보려고 영양제를 추가하고 잠을 늘리고 주말 외출을 자제했다는 그녀다. 운동만 쏙 빼고 기를 쓰다가 결국은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고, 좋은 기억이 있던 수영을 선택하면서 달라진 삶을 편안한 글과 귀여운 그림으로 보여준다. 수영 배우기의 첫 난관은 수영복 입기. 나도 경험했던 일이다. 실내 수영복의 세계도 심오해서 래시가드부터 5부, 3부, 민소매 등 다양하다. 다리 부분이 얼마만큼 파인지에 따라서도 로우컷, 미들컷, 하이컷으로 나뉘어 골반뼈와 엉덩이의 노출 수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너무 밋밋하지도 않고 흔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유니크한 디자인을 고르려고 온라인몰의 몇백 페이지를 훑었던 시간과 내 시력... 첫 수영복은 블랙에 핑크 레오파드였고 10년차 정도 되면서 블랙 배경에 노랑 잔잔하트, 그리고 핑크복숭아 수영복까지 세 벌이 됐다. 새벽 수영은 상쾌함을, 저녁 수영은 하루의 피로를 씻는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나도 몇 년은 새벽 수영을 ...
앞선 포스팅에서 캐드펠 수사 시리즈와 1권의 줄거리까지 소개해 보았다. 이번에는 1권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해석과 복선 위주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서평단 활동이 아니라 순전히 재미로 이어가는 서평이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복선과 결말 해석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엘리스 피터스 글, 북하우스 펴냄 복선 파헤치기 캐드펠 수사는 허브 가꾸기를 즐긴다. "허브란 바르게 사용하면 약초가 되지만, 과용하면 큰 해악(15쪽)"임을 그는 안다. 동유럽산 양귀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강력한 적인 통증"을 숙면으로 치유하는 양귀비가 범행 도구로 쓰이게 된다. 캐드펠의 식물 왕국에서 시중들던 콜룸바누스와 존 수사. 성녀 유골 원정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상속을 못 받는 차남 콜룸바누스는 고위 성직자가 되려는 야망이 있다. 종교열이 과해서 그가 졸도할 때마다 양귀비즙으로 치료해준 캐드펠은 명언을 남긴다. 종교적인 열정의 과잉 또한 과음과 다름없는 도덕적 문제야. 221쪽 관심사가 먹을 것뿐인 존은 어쩌다가 떠밀려서 수도사가 되었다. '명랑하고 둔감하며 외향적인' 인물이자 정력도 출중하단다. "이 별난 새는 언젠가 틀림없이 날아가 버릴 것(18쪽)"이라는 복선도 보인다. 제롬 수사는 부수도원장에게 절대복종하며 그의 야망을 위해 성녀의 계시를 받는 꿈을 핑계로 순례를 계획한다. 단조로운 일상에 음모가 깃든 사건이 발생하자 캐드펠은 오...
아직 경주에도 못 가본 한국 사람이 두 번 잠깐 가본 교토가 왜 종종 그리울까? 무엇이 이국인의 마음에 한 가닥 실을 심어 놓았는지.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를 읽은 건 그 물음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고유한 정서를 품은 도시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글, 예담 펴냄 '교토의 정서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이라는 제목의 서문. 바로 이거였다. 역사와 건축, 풍경으로 이름난 도시지만 교토만의 고유한 정서가 있었고, 나의 성향과 조금은 닮았다고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그녀는 세 번째 여행부터 관광명소가 아닌 일상적인 교토를 경험했다. 개인 점포들은 운영 철학이 확고했고, 사람들은 자부심이 높으면서도 겸손했다고. 그녀가 지향하는 인간상에 가까웠다는 이 도시와 사람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도쿄가 감각의 도시라면 교토는 정서의 도시였다. 일부러 숨겨 놓은 간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일러스트를 그린 오하시 아유미가 운영하는 잡화점 '이오 플러스'를 찾아가는 여정. 택시를 타고 주소지에 내렸는데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간판에 2층 골목 안에 꽁꽁 숨겨둔 이유는 뭘까? 유서 깊은 독립서점 '게이분샤 이치조치점'의 서점원이 차린 '마치야' 서점도 마찬가지였다. 입지나 상권은 생각지도 않고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가게들. 일반적인 장사 원칙이나 철학과는 달랐다. 그들의 의도는 일부러 찾아온 손님들이 여유롭게 둘러보도록 ...
늘 책을 끼고 사는 애서가라면 책읽기를 더 즐겁게 해줄 소소한 독서템에 마음이 흔들리는 법. 게다가 내년 캘린더와 다이어리를 장만해야 할 시기에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있어서 소개해 본다. 2025년 캘린더 다이어리 독서템까지 민음사 × 키오스크키오스크 29 리미티드오더 Season's Greeting Set 원고료를 지원받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고전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너무나도 친숙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98년 발간을 시작으로 400권을 넘어 여전히 출간되고 있는 인기 시리즈다. 가장 많게는 57만 부가 팔린 『호밀밭의 파수꾼』부터 『오만과 편견』, 『부활』, 『레 미제라블』 등 성장의 길목마다 힘이 되어 주었던 책들이 가득하다. 시절을 지탱해 준 고전 속 문장들 고전 읽기가 좋은 건 인생 문장을 만날 수 있어서다. 마음을 흔들고 어느 날 뒤통수를 때릴 것 같은 문장을 만나면 책갈피를 끼워 놓고 필사도 하고 마킹도 해놓아야 한다. 이럴 때 애정하는 독서템들이 있다면 독서 생활이 더 즐거워진다. 민음사에서 독서인들의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멋진 콜라보를 준비했다. 그래픽디자인 전문 스튜디오 키오스크키오스크와 협업하여 독서 다이어리와 캘린더에 독서템과 다꾸템까지 들어있는 세트를 만든 것. 'Classics are right'라는 컨셉의 시즌그리팅 세트에는 클래식 캘린더, 리딩 저널, 꾸미기 패키지와 박스로 구성되어...
《신의 물방울 2》는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와인이 지난 추억과 감정마저 되살린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다. 헤어졌던 연인들의 감정을 와인으로 되살리고, 아버지의 저택이 걸린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어릴 때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이별 장면을 떠올린 시즈쿠였다. 지난 추억과 감정까지 되살리는 와인의 맛과 향 신의 물방울 2 아기 타다시 글, 오키모토 슈 그림 마들렌 맛을 보고 향수에 젖어 어릴 때 기억을 수백 페이지나 꺼내 놓는 프루스트의 마르셀처럼 말이다. 나 역시 추억의 맛인 네슬레 거버 이유식과 가케우동, 시장 만두의 맛을 잊지 못해 오래도록 찾아 헤매는 중이다. 연인과의 헤어짐이 가장 아픈 순간도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풍겨온 전 연인의 향수향이고. 아무튼 그로써 와인에도 유산에도 관심 없던 시즈쿠는 어머니와 너무 어릴 때 헤어져서 희미한 기억들을 와인으로 되살리려 한다. 그러자면 아버지의 와인이 필요했고, 그래서 결국 유산 대결에 참여할 마음이 생긴다. 향과 냄새를 다루는 에피소드여서 관련 용어가 속속 등장한다. 와인에서 미묘하게 상한 맛이 나는 건 부쇼네라고 한다. 코르크 마개 때문에 와인에 곰팡이 냄새가 배는 것인데,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채기 힘들다고 한다. 시즈쿠의 경쟁자 토미네 잇세는 대결에서 이기려고 과하게 별 짓을 한다. 부르고뉴의 포도밭별로 흙을 가져와서 맛을 보고 누구네 밭인지 딱딱 알아맞히는 오버스러움을 보여준다....
합정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수다를 위해 뷰가 좋다는 카페 블러에 가보기로 했다. 루프탑 한강뷰 까눌레 맛집 합정 디저트 카페 블러 BLURR 13:00 - 23:00 블러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 28-10 4층 마포의 새로운 핫플로 뜨고 있다는 합정역 7번 출구 뒤편 합정 하늘길에 위치한 카페 블러. 하늘길에는 독립서점과 트렌디한 카페, 유니크한 상점들이 들어서며 매력 넘치는 골목이 조성되고 있다는데 이날은 어두워서 잘 못보고 지나쳐 아쉽다. 블러는 언덕 위 건물의 4층이어서 한강변에서 가깝지 않은데도 한강이 보인다. 건물 입구에 서면 왼쪽에는 계단이, 오른쪽 숨은 공간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카페로 들어서면 층고 높은 천장에 3면이 통창인 시원한 공간이 펼쳐진다. 북적북적 사람이 많아서 루프탑에 먼저 자리를 잡고 내려와 주문을 했다. 까눌레가 인기 있는 카페라는 명성처럼 다양한 종류의 까눌레가 보인다. 오너쉐프가 매일 직접 만든다는 전체적으로는 제주가 연상되는 돌 컨셉으로 이렇게 자연친화적인 매대였고 이미 소진되어 빈 접시도 많았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는 동안 발코니에 나가서 한강뷰를 감상했다. 건너편의 알록달록한 고층 빌딩들이 미니어처처럼 작게 보이고 전신 거울이 있는 포토 스팟도 있다. 지루하지 않게 구경하는 사이에 메뉴가 나와서 다시 루프탑으로 이동! 한강이 작은 호수처럼 보이고 국회의사당도 밝게 빛나는 가...
서울 간송미술관 관람을 앞두고 소장 작품들을 미리 살펴보자는 어진 친구의 권유로 《그림소담》을 읽었다. 탁현규 작가님은 간송미술관을 관람하고 한국미술에 심취하여 미술사 박사가 되고, 고미술 전문 해설가로 활동중인 분이다. 간송미술관의 아름다운 그림을 즐기는 법 그림소담 탁현규 글, 디자인하우스 펴냄 탁현규 해설가님은 미술을 '당대의 미감과 창의성이 담긴 문화의 꽃'이라고 표현했다. 명화를 통해 과거 시절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의미 없는 말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 없이 의미를 전해주는 그림을 만나는 행위는 하나의 치유라고도 보았다. 《그림소담》은 간송미술관의 그림 중에 탁현규 해설가님이 특히 아름답게 여기는 그림을 주제별로 선별하여 설명해주는 책이다. 그 주제는 꽃, 보름달, 해돋이, 봄바람, 푸른 솔, 독락, 풍류로 나뉘어 있다. 그림 해설이 좋은 건 서평을 읽고 쓰는 걸 즐기는 이유와 같다. 미처 못 보고 놓친 것들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같은 걸 보고 든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다. 특히 고미술을 음미하는 안목이 부족하여 이 책이 좋은 안내서가 되어주었다. 책에는 겸재 정선과 신윤복의 그림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그림들을 소개해 본다. 정선, <독서여가> 겸재 정선의 그림 <독서여가>. 그림 제목은 책에서 알려주지 않아 검색해서 찾았다. 방을 차지하는 건 책이 그득한 쪽빛 책갑이다. 그러나 툇마루에...
온화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매의 북커버가 도서 블로거님들 새 소식에 자꾸만 떴다. 누군데 도대체, 왜 나만 몰라? 하던 차에 북하우스 출판사에서 리미티드 에디션 10권 세트를 제공해 주신다는 서평단 제안에 덥석 수락을 했다. 엘리스 피터스 글, 북하우스 펴냄 캐드펠 수사 시리즈 클래식 블랙 리미ㅣ티드 에디션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서평 캐드펠 수사 시리즈와 작가 12세기 영국 수도원의 캐트펠 노수사가 혼란한 사회를 배경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 가는 이야기다. 인간 탐구와 인문학적 성찰을 담아 18년 동안 집필한 이 작품은 22개국에서 밀리언셀러를 달성하고 BBC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중세 영국 수도원 배경의 추리물이라고 해서 퀴퀴하고 꼬장꼬장할 거라는 예상을 뒤집은 생기로움과 유연함. 이래서 정세랑 작가가 빠져들만했구나! 고등학생 때 신나게 읽고 작가가 되어 다시 봐도 새로웠다는 추천사가 이해된다. 엘리스 피터스 작가 ⓒ bnk.kpipa.or.kr '세대와 언어를 뛰어넘는 역사추리소설의 마스터피스'를 창조한 작가는 1913년생 여성인 엘리스 피터스다. 캐드펠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작품으로 그녀는 영국 여왕의 훈장과 미국의 '에드거 엘런 포' 상을 받았다. 움베르토 에코도 그녀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장미의 이름》을 먼저 읽었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유사하면서도 캐드펠 쪽이 더 다채롭다. ...
책방 이름이 강렬하게 끌어당겼고, 윤성근 작가님의 책을 읽은 뒤에는 꼭 들러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곳. 그러나 영업 시간이 평범하지 않아서 두어번 헛걸음을 했던 <이상한나라의헌책방>에 드디어 입성을 했다. 윤성근 작가님의 중고서점 방문기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수목금토 15:00 ~ 20:00 녹번동 대로변 2층에 위치한 중고서점. 갈 때마다 시간이 어긋났다. 입구에는 영업 마감이 오후 7시로, 네이버 지도에는 8시로 되어 있었다. 7시가 다 돼가던 이날도 2층 창에 불이 꺼져 있어서 또 허탕이구나 싶었는데 입구에서 희미한 불빛을 발견했다. 이상한나라의 입구 낡은 건물에 좁은 입구, 연식이 느껴지는 나무 계단이었다. 계단 좌우로는 오래된 책들이 층층이 쌓여 있어서 둘러보기 바빴다. 그때 그 시절에 베스트셀러였을 관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야기 세계사 등 익숙한 제목들이 시선을 붙들어서 뒤늦게 올려다본 천장에는- 흐아아, 책들이 날아다니고 있다니! 이상한 나라 맞구나, 문에 저 도르래는 뭐야뭐야... 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 문을 열면 토끼나 트럼프 병정이 뛰어다니려나 싶고. 이런 기이한 센스와 독특한 취향, 넘나 좋다. 도르래가 달린 나무문에 나 있는 클래식한 창문. 엿보기에 딱 좋은 모양새다.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는데도 지나치게 끼리릭거려서 몹시 당황했다. 그런데도 인기척은 없...
피터 싱어가 쓴 《더 나은 세상》의 원제는 ‘현실 세계에서의 윤리’다. 젠더, 비만, 의료보험, 게임과 폭력, 부와 사치, 정치참여 등 일상의 윤리 문제를 주제별로 다루고 있다. 그밖에도 동물, 안락사, 인간복제, 난민, 환경, AI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한번은 고민했을 난제들을 포함한다. 그는 간결하고 논리적인 문장들로 질문과 함께 해결 방향성을 제시한다. 각 주제별로 세 장을 넘지 않는 분량이어서 수월하게 읽힌다. '동물의 권리에서 인간의 행복까지'를 주제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반박할 거리가 생기면 각자 고민해보면 된다. 나와 세상을 보다 가치있게 만드는 윤리 더 나은 세상 피터 싱어 글, 예문아카이브 펴냄 피터 싱어는 생명 윤리를 전공하고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동물 해방》 등을 집필한 철학자다. 동물을 차별하는 이들을 ‘종차별주의자’라고 규정하고 축산업을 반대하며 채식을 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자선단체를 운영하며, 빌 게이츠 부부의 기부서약 사이트 설립을 돕기도 했다. 살아가려면 소비를 해야 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성향과 상황에 따라 선택기준이 있을텐데, 피터 싱어는 그 기준에 윤리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리는 금기의 규범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취향처럼 주관적인 것도 아니기에 충분히 논의 가능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가 정의하는 윤리란 고통에 기반...
제목과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또 한 편의 추미스 장르 소설을 펼쳤다. 출간 3년차인데 여름마다 역주행을 했다는 베스트셀러 소설 『홍학의 자리』. 스릴러 장르에서 제대로 자리 잡았다는 정해연 작가를 이 작품으로 처음 접했다. 소설이어서 가능한 반전 미스터리 스릴러 『홍학의 자리』 정해연 글, 엘릭시르 펴냄 홍학의 자리 서평 술술 읽힌다는 평과 홍학의 의미를 알고 나면 놀란다는 가벼운 정보만 아는 상태였다. 과연 간결한 문장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도입부에서부터 짧은 몇 문장으로 몰입을 시키는 힘이 있었다.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두 번 다시 다현이 그의 품에, 시간에, 삶에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 고교생 다현의 죽음을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들의 밀당이 이어진다. 어떤 이는 의심받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이는 부적절한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죽은 다현과의 관계를 숨긴다.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풀어내는 데 과학수사와 심리수사가 한몫을 한다. 한국 미스터리 사상 전무후무한 반전과 예측 불가능한 결말! 홍보 문구가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범죄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매력은 '누가 죽였는가'를 시작으로 '왜 죽였을까'를 건너 '어떻게 죽었는가'로 정점을 찍는다. 그러고는 다시 '누가 죽였는가'로 돌아오게 되는 순환 구조다. 설계가 치밀하면서도 개연성 있게...
친구들과 다녀왔던 아산 외암민속마을. 가을 여행지로도,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좋은 곳이어서 소개해 본다. 아산 가볼만한곳 가을 여행지 추천 외암민속마을 외암민속마을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향촌의 전통가옥이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다. 500년 전 형성된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었고 한국의 살기 좋은 마을 1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상류층 기와집과 서민층 초가집 등 다양한 60여 채의 가옥이 어우러져 있고 후손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집, 민박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집이 이웃하고 있다. 감자 고구마 수확, 강정만들기, 고추장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매년 10월중에는 짚풀문화제 축제가 열려서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외암민속마을 저잣거리 외암민속마을 저잣거리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로 1030-14 외암파전 상전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로 1030-14 14동 1층 도착했더니 밥때가 돼서 저잣거리부터 찾았다. 유명한 전집이라는 <상전> 앞에서 푸근하신 할머님께서 어마어마하게 큰 전을 부치고 계셨다. 이걸 어떻게 지나쳐...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거대한 크기의 파전과 김치전! 여럿이서 아쉽지 않을 만큼 배부르게 전을 먹을 수 있다니! 친구님들은 술 없이는 안 되겠다며 막걸리 잔치를 벌였다. 푸짐하고 맛있어서 다음날 점심에 또 갔다는... 흥이 차오른 자리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