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내심 불안하다.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또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는지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그러나 어느 소설에서 “결국 서랍을 연 것은 나거든”이라고 말한 대로 그는 깊숙한 서랍을/세계를 불쑥 열었다가 다시 잘 닫곤 했다. 그의 소설을 아우르는 주제는 상실(결핍) 그리고 회복이다. 모든 인간이 극복해야 할 과제여서 그의 소설이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것일까. 무언가를 상실한 인물은 방황하다가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세계를 넘나들며 깨달음을 얻는다.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입구는 고속도로 한가운데나, 관람차에 숨어 있기도 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입구의 돌'과 연결된 깊은 숲속 오두막이다. 관념의 세계로 가는 통로이니 그 어떤 곳이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독자들에게는 그러한 환상의 세계를 열어주는 통로가 바로 하루키의 소설이다.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은 엄마와 누나를 잃고 유대가 없는 아버지를 둔 15세 소년이다. 그는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본명인 ‘다무라’와 직접 지은 이름인 ‘카프카’. 소년의 주위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으므로 두 개의 이름처럼 분리된 두 개의 자아끼리 대화를 나눈다. 두 자아 중 하나인 까마귀 소년은 소년보다 냉철하고 시야가 넓어서 주로 질문이나 제안, 충고를 던지고 소년은 그에 따라 답을 찾아간다. 하루키가 상정한 열다섯은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스스로 인지하고...
제목과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또 한 편의 추미스 장르 소설을 펼쳤다. 출간 3년차인데 여름마다 역주행을 했다는 베스트셀러 소설 『홍학의 자리』. 스릴러 장르에서 제대로 자리 잡았다는 정해연 작가를 이 작품으로 처음 접했다. 소설이어서 가능한 반전 미스터리 스릴러 『홍학의 자리』 정해연 글, 엘릭시르 펴냄 홍학의 자리 서평 술술 읽힌다는 평과 홍학의 의미를 알고 나면 놀란다는 가벼운 정보만 아는 상태였다. 과연 간결한 문장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도입부에서부터 짧은 몇 문장으로 몰입을 시키는 힘이 있었다.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두 번 다시 다현이 그의 품에, 시간에, 삶에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 고교생 다현의 죽음을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들의 밀당이 이어진다. 어떤 이는 의심받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이는 부적절한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죽은 다현과의 관계를 숨긴다.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풀어내는 데 과학수사와 심리수사가 한몫을 한다. 한국 미스터리 사상 전무후무한 반전과 예측 불가능한 결말! 홍보 문구가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범죄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매력은 '누가 죽였는가'를 시작으로 '왜 죽였을까'를 건너 '어떻게 죽었는가'로 정점을 찍는다. 그러고는 다시 '누가 죽였는가'로 돌아오게 되는 순환 구조다. 설계가 치밀하면서도 개연성 있게...
두 달 동안 빠져 지냈던 『삼체』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상상력이 닿는 시공간이 무한히 확장되었음을 느낀다. 두렵고 아득하며, 쓸쓸하면서도 희망적인 심경이다.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막막하지만 위대한 작품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 싶다. 2부 결말에서 면벽자 '뤄지'는 요람 시스템으로 삼체를 위협해 지구를 지켜냈다. 그럼에도 이들 사이에 존중이 싹트고,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그대로 끝났어도 완성도 높았을... 하지만 놀라기엔 이르다는 듯, 3부 내내 상황을 비틀고 찢고 흩뿌린 류츠신 작가였다. 삼체 3부 사신의 영생 - 줄거리 3부는 '청신'의 생애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위기의 세기, 저돌적인 상사 '웨이드'와 유능한 청신은 탐사정에 죽은 이의 뇌를 싣기로 한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녀의 동창 '윈톈밍'의 뇌였다. 윈톈밍은 어릴 때 다정한 대화 몇 마디를 나눈 그녀에게 별을 선물했고, 이 사실을 모르는 그녀를 위해 안락사를 택한다. 뤄지의 후계자로 '검잡이'에 뽑힌 청신은 위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를 간파한 삼체인은 지구를 장악하고 인류를 호주로 이민보낸다. 그곳에서 인류는 극도의 혼란과 궁핍을 겪는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던 중, 우주 어딘가에서 삼체의 좌표를 공개하자 삼체인들은 즉시 지구에서 철수한다. 우주도 넓지만 인생은 더 넓답니다. 떠나기 전에 '지자'는 청신에게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어 ...
『삼체』 2부는 1부에서 자살한 '예원제'의 딸 '양둥'의 비석 앞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수미상관 구조다. 그래서 끝까지 읽은 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게 된다. 천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한 양둥의 동창 '뤄지'와 개미 한 마리가 등장하고, 뤄지에게 예원제가 제안을 한다. 우주사회학을 연구해보는 게 어떻겠나? 삼체인을 지구로 끌어들인 예원제의 결자해지였을까? '지자'가 저 말을 들었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지자는 지구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으므로 어떤 계획도 들통나버릴 것이고 삼체인들의 함대는 400년 뒤면 도착한다. 이 위기에서 지구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삼체 2부 등장인물과 키워드 면벽자 1 타일러 :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이자 핵 전문가 면벽자 2 레이디아즈 : 반미 성향으로 사회주의를 일으킨 베네수엘라 대통령 면벽자 3 하인스 : 노벨상 후보 과학자이자 전 UN 집행위원장 면벽자 4 뤄지 : 양둥의 친구이자 우주사회학자 스창(다스) : 뤄지를 경호하는 안보부 직원 장베이하이 : 정신력이 뛰어난 군인 게이코 : 뇌과학자이자 하인스의 아내 키워드 : 패배주의, 도피주의, 에덴동산, 뱀, 의심의 사슬, 저주, 요람 면벽 프로젝트 삼체인들은 투명한 사고를 하는 존재여서 인류의 계략과 기만, 거짓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UN은 이를 이용해서 대응할 4인의 대표를 선발하고 '면벽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면벽'이란 '명상'을 뜻...
돌돌님의 적극 추천으로 읽게 된 거대하고 무서운 이야기. 아시아 최초로 휴고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어떤 SF 소설이나 영화와도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이 장대한 스토리를 넷플리스 드라마로 어떻게 연출했을까 궁금하지만 책부터 먼저 읽어야겠다. 물리학이나 우주공학 이론에 분량 자체도 많아 마음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1권은 450쪽이어서 들고 다니며 읽을만했지만 2권부터는 양장 개정판이라 무게가 상당해 가지고 다닐 수가 없다. 2권이 700쪽, 3권이 800쪽으로 진정 벽돌책이라 손목이 위험한 상태다. 먼저 인물과 줄거리를 정리해본다. 삼체란 삼체는 세 개의 물질 간에 작용하는 중력 법칙에 관한 물리학 용어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용어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톨스토이의 『부활』에 네흘류도프와 카츄샤와 시몬손의 관계를 삼체에 빗대어 말하는 장면이 있다. 두 소설을 함께 읽다가 연결성에 놀라고 반가웠다. 류츠신의 『삼체』에서는 세 개의 태양을 말하는 동시에, 세 개의 태양을 가진 은하계에서 발전된 문명 세계를 뜻한다. 우리 은하계는 하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질서있게 움직이고 있으므로 덕분에 행성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문명이 이어질 수 있었다. 삼체 문명에서는 세 개의 태양 작용을 예측하기 힘들고 에너지가 너무 세서 문명은 발전하고 파괴되기를 반복한다. 삼체인들은 온화한 기후가 유지되는 항세기에 문명을 이룩했다가 어둠이나 ...
허먼 멜빌을 다시 읽는다. 부유한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온갖 일자리를 전전한 뒤에 쓴 글을. 점원, 은행원, 농장 일꾼, 교사를 거쳐 포경선과 군함을 타고 남태평양을 떠돈 경험으로 쓴 『모비 딕』은 경외하며 읽었고 『필경사 바틀비』는 의문을 품은 채로 읽었으니 한 번 더. 60대 변호사인 화자는 필사원이나 필경사, 영어로는 scrivener(대서인, 공증인)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오래 일해왔다. 그들은 대체로 흥미롭고 별스러운데,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했던 남자에 대해 쓰지 않는다면 '문학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뉴욕 월가에서 노년까지도 안정적으로 일하는 화자는 새 직원을 채용했다. 놀라운 업무 속도를 보이는 바틀비에게 흡족해하던 그는 어느 날,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당황한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원서 대사는 다음과 같다. I would prefer not to... 다른 직원들이 가진 이런저런 단점조차 없이 일만 하는 것처럼 보이던 이가 점점 더 비협조적으로 변하자 그는 당혹스럽다. 필사 외에는 어떤 업무도 거절했던 바틀비는 급기야 필사까지 중단하고 퇴사 요구도 거절한 채 사무실을 점령한다. 연민과 분노, 자책과 포기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화자는 결국 바틀비를 남겨둔 채 사무실을 옮긴다. 그 뒤에도 버티는 그 때문에 골치가 아파진 사람...
가볍게 들었다가 묵직하게 내려놓았고, 재독하면서도 처음 읽는 것처럼 흥분되고 오싹했던 책 『칵테일, 러브, 좀비』를 소개한다. 여성 악한의 탄생, 물귀신의 서사, 애증하는 좀비와의 동거, 타임리프의 비극까지 조예은 작가만의 참신성이 돋보이는 단편집이다. 입소문이 자자했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리커버판이 나왔다. 리커버판은 강렬하지만 너무 직관적이다. 초판 표지가 은근히 좋았는데, 제목과 작가명은 조그맣게 배치하고 대각선으로 긴 가시가 표지를 차지한다. 날카로운 느낌표처럼, 인식을 갈라 상처를 내겠다는 것처럼, 닥치고 읽어보라는 자신감처럼. 소름돋게 참신하고 기이하게 아름다운 베스트셀러 공포스릴러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 글, 안전가옥 펴냄 초대 "내 목에는 17년째 가시가 걸려 있다" 채원은 목에 이물감을 느낀다. 어릴 때 생선을 잡는 장면을 목격하고 억지로 회를 먹은 이후로 쭉. 불편한 감각은 제 목을 갈라 가시를 꺼내고 싶은 충동으로, 날카로운 도구를 선호하는 취향으로 이어진다. 남자친구와 갈등하던 채원이 망상에 사로잡혀 폭력을 휘두르자 이물감이 사라진다. 채원과 유사한 경험이 있다. 어릴 때 순대 제조 과정을 봐서인지 내장류를 먹지 못한다. 닭껍질을 억지로 먹여서 탈이 나기도 했다. 몇 해 전 부산, 거부하는 내 접시에 꼼장어를 올려놓는 아빠 때문에 그 나이에 식당에서 울며 뛰쳐나갔다. 자상하지만 권유가 늘 과했다. ⓒ pi...
박상영 작가의 연작 단편집 『대도시의 사랑법』이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하여 다시 읽었다. 재독임에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글이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는지 그 한계 없음에 당황했고 그러자면 얼마나 커다란 결심이 필요한지 아주 조금은 알고 있기에. 유쾌한 버거움과 고독한 온기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글, 창비 펴냄 이 책에는 화자 '영'이 겪은 우정과 사랑을 시간 순으로 이야기한 「재희」와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라는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영'은 허구의 인물이자 작가 자신을 반영하기도 하기에 용기 내지 안간힘이 필요했다는 박상영 작가. 그의 소설은 대체로 가볍고 재미있게 읽힌다. 자전적 소설임을 감안할 때, 또는 허구일지라도 글로 꺼내놓기 전까지 얼마나 무거운 짐들을 부둥켜안고 있었을지 가늠해 보면 까마득하다. 정체성과 고독, 가정불화와 병간호, 취업 문제와 사랑앓이에 불치병까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삶의 거의 모든 비애를 이토록 유쾌하게 서술하다니. 「재희」는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으로 친밀해진 대학 동기와의 우정 이야기다. 둘 다 정조 관념이 희박했고 연애 현장을 들킨 김에 아무 남자나 만나서 논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이였다. 둘은 여성으로서 혹은 성소수자로서 어려움을 겪을 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인생이 고달픈 건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 친구 사이였다. 편의에 ...
조막만 한 얼굴에 똘망해 보이는 눈코입, 야무지게 팔짱을 낀 꼬맹이 토토. 1981년 출간 즉시 일본 출판계 역사상 최대 베스트셀러가 되고 세계적으로는 2,500만 부가 판매되었다는 책 『창가의 토토』의 주인공이다. 요란한 이력은 소박한 문체에 곧 묻혀 버렸다. 참다운 교육이 키운 선한 심성과 천진한 추억 『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테츠코 글, 프로메테우스 펴냄 작품 배경은 1940년대 초반이다. 소학교 1학년 토토짱은 호기심 많고 산만한 행동으로 수업에 방해가 되어 퇴학을 당했다. 지금이라면 ADHD 진단이 내려졌을 것이고 당시라면 아이를 다그치기만 했을 텐데 엄마는 토토에게 맞는 대안학교를 찾아 주었다. ⓒ 네이버 영화 엄마의 우려와는 달리 교장 선생님은 남다른 교육 철학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자연과 인접한 터에 자리한 도모에 학원. 학교 교실은 노후된 전철 차량을 활용하고 아이마다 올라갈 나무 하나씩을 지정해 주는 등 친환경적이었고, 마음껏 낙서를 허락하는 등 동심을 한껏 펼치게 해준다. 토토가 할 말이 없어질 때까지 4시간이나 이야기를 들어준 교장 선생님. 할 얘기가 없다는 친구에게는 만들면 된다며 용기를 불어넣는 모습도 감동이었다. "일어나서 뭐 했니?"라고 묻는 말에 아이가 "그러니까..."라고 머뭇거리자 할 말이 있었던 거라며 대수롭지 않은 말에 박수를 쳐 준다. ⓒ 네이버 영화 소아마비 친구를 나무 위로 끌어올리려다 ...
여름날 빗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놀았는지 기억하나요? 짙은 비구름이 깔려 하늘인지 물인지 구별되지 않는 공간. 두 아이가 알몸으로 내리는 비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색색깔로 내리는 비는 아이들의 주변에 동그란 파장을 만든다. 자연을 만끽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몸은 자체 발광하고 있다. 『삶의 모든 색』은 노르웨이에서 큰 사랑을 받는 일러스트레이터 리사 아이사토의 작품으로 시/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이야기는 여섯 개의 제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아이의 삶, 소년의 삶, 자기의 삶, 부모의 삶, 어른의 삶 그리고 기나긴 삶. 〈아이의 삶〉에서 아이들은 샛노란 해바라기 밭에서 꽃을 한 아름 안고 서 있거나, 민들레 언덕을 뛰어논 뒤 끈끈한 땀에 엉긴 채 단잠을 잔다. 파랗게 얼어붙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빨개진 볼을 하고 눈을 후후 불어서 하트를 만드는 놀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때의 호기심을 기억하나요?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는지 어두운 밤, 책으로 뒤덮인 벽과 책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몰랐던 세계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아이의 모습은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기도 했었다. 그 여름이 얼마나 더 푸르렀는지 기억하나요? 그때의 호기심을 기억하나요? 초록이 번지는 키 큰 나무숲 사이를 맨발로 폴짝거리는 아이의 모습은 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다. 세상을 탐구하며 그저 즐거웠던 시절. 천진난만하던 아이들은 소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해 더 앍고 싶어졌다. 관련 도서를 찾다가 신뢰하고 애정하는 문학비평가 양자오가 쓴 마르케스 평론서를 발견했다. 하루키에서 파생된 독서가 가지를 쭉쭉 뻗어가고 있다. 양자오는 『영원한 소년의 정신 하루키 읽는 법』을 읽고 알게 되었다. 그는 ‘~ 읽는 법’ 시리즈로 카뮈와 헤밍웨이의 작품을 평론하고 ‘~를 읽다’ 시리즈로 중국 고대 철학사상을 논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중인 대만의 인문학자다. 깊이 있는 비평을 일반인들도 쉽게 설명해줘서 좋아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해설은 결코 본문을 대신하지 못하므로 함부로 믿지 말고, 직접 읽고 스스로 관점과 견해를 마련하라고 조언한다. 그 말에 유의하면서 그의 안내를 따라가 본다. 소설 배경 이해하기 - 단일 문화와 내전 양자오는 마르케스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먼저 지역 특성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라틴 아메리카는 공통의 식민 역사와 브라질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가 공통 언어를 쓴다. 탈식민 이후 미국의 영향력 아래 내전을 겪는 과정까지 유사해서 별개의 국가라기보다는 ‘개별성을 초월하는 하나의 문화 단위’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년의 고독』은 끝없이 이어지는 내전과 함께 이야기가 전개된다. 혁명 영웅이 독재자가 되고, 이에 반발하여 내전이 일어나고 또 혁명이 이어지는 악순환. 이 비현실적인 현실 속 부조리로 인해 마르케스...
자그마한 카페에서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가 붙은 호프 자런의 『랩걸』을 다시 읽었다. 이 책에서 본 문장이 내내 아른거렸고, 좋은 책이라면 최소 두 번은 읽어줘야 하니까. 따뜻한 라떼와 호두쿠키와 책으로 충만했던 독서 시간을 보냈다. 실험실에 뿌리내리고 꽃피운 여성 과학자 『랩걸 LabGirl』 호프 자런 글, 알마 펴냄 버클리 대학 출신으로 조지아 공대와 존스홉킨스 대학 부교수였고 세계적인 과학자에게 주는 상을 수차례 수상한 호프 자런. 생물학 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에세이이면서 자서전이기도 한 이 책은 그녀의 빛나는 이력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자런은 과학자 아빠와 공부를 열망했던 엄마의 영향으로 실험과 식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과학도로 자랐다. 어린 시절에 놀이터였던 실험실은 이제 밤을 잊게 만드는 곳이자 믿음을 실현하는 곳이며 돈을 벌고 글을 쓰는, 세상이자 우주가 됐다. 자런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과학자답게 은유를 잘 활용한다. 버드나무가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라푼젤보다 신데렐라에 가깝다는 비유는 최고였다. 또한 삶의 과정들을 식물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식물 생장과 그와 유사한 경험을 들려줌으로써 둘 모두에게 애정이 샘솟도록 만든다. 씨앗은 적어도 1년에서 몇천 년을 기다리며 싹을 틔울 최적의 기회를 기다린다. 인간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작은 씨앗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텨왔다는 게 ...
좀 슬플 거라는 힌트 외에 아무런 정보 없이 보게 된 뮤지컬 「유진과 유진」. 좀 슬픈 정도가 아니라 손수건이 다 젖을만큼 눈물과 감정을 쏟아내게 한 수작이었다. 손수건 필수! 치유와 위로의 뮤지컬 『유진과 유진』 2024.07.06. ~ 09.22.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 5층 이금이 원작 / 이기쁨 연출 / 김솔지 작가 / 안예은 작곡 링크아트센터드림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길 123 링크아트센터드림 최근 밝은 뮤지컬과 추미스 연극만 봤었고 등장인물이 최소 셋에서 다섯 정도에 멀티맨 역할도 늘 있었는데 캐스팅보드에 단 둘만 소개된 게 낯설었다. 작은 의자 위에 맞대고 앉은 두 개의 가방. 괜히 안쓰러우면서도 외롭지만은 않아 보이는 상징적인 소품이었다. 오늘의 캐스팅 큰 유진 - 전혜주 배우 작은 유진 - 강혜인 배우 이 두 사람이 무대를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우려는 섣부른 생각이었다. 대단한 에너지를 보여준 두 배우였으니까. 뮤지컬 유진과 유진 줄거리 중학교 2학년 새학기, 엄마의 기대대로 공부만 하는 '작은 유진'과 밝고 털털한 '큰 유진'은 같은 반이 된다. 큰 유진은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를 알아보고 '그 일'을 언급하지만 작은 유진은 냉랭하다. 두 친구는 각각 정체성과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가족들과도 원만하지 않아 방황한다. 문득 작은 유진은 우는 아이와 소리 지르는 여자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그 일'을 ...
학생 때 배운 수학 중에서 평균만큼 일상에서 널리 사용되는 공식은 없다.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 머문 기간부터 키와 몸무게, 말하고 걷는 시점, 지능, 교육 수준, 결혼 시기와 자녀 수, 직장과 생활 수준까지도 평균과 통계를 기준으로 사고하고 평가한다. 우리의 인식은 언제부터 이렇게 숫자에 갇히게 된 것일까? 교육신경학자 토드 로즈는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평균이라는 허상’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역사와 문제점을 살피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의 목적은 당신을 평균의 횡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저자 토드 로즈 소개 토드 로즈가 평균에 주목한 건 자신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ADHD 장애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성년일 때부터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해야 했다. 생활보호 대상자였고 최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며 검정고시를 거쳐 야간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처음엔 직관에 따라, 그 뒤엔 의식적 결심에 따라’ 스스로 공부하고 진로를 찾아나갔다. 결국 그는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두뇌교육 책임자가 되었다. 일관된 교육 시스템에 숱한 좌절을 겪은 그가 스스로 꿈을 이룬 것처럼, 다른 이들도 각자의 경로를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면서 누구나 그럴 수 있도록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평균주의의 탄생 평균은 통계학의 아버지 아돌프 케틀레가 제시하고 찰스 다윈의 사촌이자 상인인 프랜시스 골턴이 발전시킨 개념이다. 이 개념을...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알게 된 김애란은 슬프지만 맑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작가로 기억한다. 단편집 『바깥은 여름』에 담긴 일곱 개의 이야기에서도 그러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상실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를 찾아온다. 크게는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일 수도 있고 연인에 대한 감정의 증발이거나 혹은 자녀의 성장일수도 있다. 어떤 상실은 자아가 쪼개지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김애란 작가는 상실을 경험하고 문 밖의 세상과는 다른 공간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 감내하는 아픔을 가만히 지켜보도록 독자를 이끈다. 「입동」은 어린 아이를 사고로 잃은 부부의 이야기다. 감히 짐작하기 힘든 그 슬픔의 무게가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라는 첫 문장에서부터 느껴진다.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이들의 일상적이지 않은, 질서가 무너진 대화가 위태로운 상황을 묘사한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과 이 책에 대해 작가는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들이 세상과 타인에게 느끼는 온도 차, 시차 때문에 가슴에 결로와 얼룩이 생기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다름은 곧 외로움이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외로움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타자의 고통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타인의 성공과 실패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놀란 듯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쉬운 판단과 사소한 실수는 다친 몸과 마음을 겨우 일으키려는 이들을 다시 주저앉힌다. 여름을 즐기는 사람...
『화차』를 통해 알게 된 미야베 미유키. 별명은 ‘미스터리의 여왕’이며 그녀의 작품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불린다. 대표작 『모방범』까지 읽고 나니 별명이 이해가 된다. 흡인력 넘치는 필력이 돋보였고, 시대 진단과 문제의식이 빛나는 작품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쭉쭉 나아가는 느낌이라면 미야베 미유키는 사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좁혀가는 느낌이랄까?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 물밑에 많은 서사와 관계가 얽혀 있다. 그녀는 천천히 고인 물을 빼내며 범죄자의 추한 실체를 드러낸다. 500쪽짜리 벽돌책 세 권인데도 진도가 쭉쭉 나간다.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 없었고 병행 독서를 하느라 오래 걸렸을 뿐, 몰입도가 굉장했다. 5년에 걸쳐 소설을 연재하는 동안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붙들고 있었을 작가의 정서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시대가 낳은 새로운 유형의 악인들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가 말해주듯 범죄자는 한 명이 아니다. 범인이 밝혀지기 전에도 드러난 후에도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잔혹한 사건보다 섬뜩한 건 범죄자의 심리였고, 자신감 넘치는 지능범의 자만과 과감성에 소름이 끼쳤다. 범인들은 스스로를 연출자나 지식인으로 여긴다. '환자에게 병명을 알려주고 수술 동의를 구하는' 의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을 즐기려고 방송사나 피해자 가족에게 범행을 자랑하기도 한다. 이런 괴물이 탄생한 배경에는 가정과 사회 모두...
『상실의 시대』가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8장 〈봄날의 아기 곰만큼 네가 좋아〉의 구체적인 애정 표현 방식이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직후 미도리가 와타나베에게 아무 이야기나 해 달라며 위로를 청하는 장면에서였다. “아주 사랑스러워”라는 와타나베의 말에 미도리는 이름을 붙여서 다시 말해 달라고 요구하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조른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말라붙어버릴 만큼 사랑스러워." 그러고도 더 멋진 말을 해달라는 미도리에게 그는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한다. 네가 너무 좋아, 미도리. 봄날의 곰만큼. 어리둥절해하는 미도리에게 와타나베는 ‘벨벳처럼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또랑또랑한 귀여운 아기 곰’과 네가 부둥켜안고 클로버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노는 멋진 장면만큼 좋다고 말해준다. 봄날과 클로버 언덕, 벨벳, 아기 곰과 종일 뒹굴기... 그 모든 것에 마음이 포근해진다. 보드라운 촉감이 만져질 만큼 섬세하고 동화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비유는 언제 읽어도 설렌다. 그 말을 듣고 미도리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해진다. 당시에 미도리는 와타나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몽땅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 미도리는 사랑스럽다는 말과 그 앞에 붙은 '아주'라는 강조에도 감응할 수 없었고, 잠들 때...
어떤 일은, 그리고 어떤 책은 의미를 이해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어 답답하고, 떨칠 수도 없어서 괴로운 상태. 그렇지만 애써 지워버리지 않고 그 의문을 간직한 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씩 이해의 틈이 생긴다. 어떤 오케스트라가 감미롭게 연주하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늘 그랬듯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니,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격렬하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흔들어놓았다. 13쪽 이 이야기의 이미지는 도입부의 한 문단에 담겨 있다. 혼란, 격렬, 다시 혼란 그리고 흔들림. 무라카미 하루키는 와타나베가 방황하던 시절을 ‘멀미 나는 시대’이라고 지칭했다. 개인적인 혼돈과 역사적 혼란이 맞물리던 시기였다. 가치관이 전복되고 자신이 누군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시간 속에서 사랑하고 이별하며 살아내야 했던. 상실의 무게감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헤세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나오코도 그랬던 것일까. 떠난 기즈키가 너무도 아름답고 강렬해서 그를 따랐을까. 그로써 와타나베는 또 한 번 가슴을 앓으며 방황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잃어버린 뒤 다시 찾을 수 없는 것들에게 삶 전체를 내어줘야 하는 것일까. 소설 속 관계에서 와타나베는 사이의 인물이었다. 기즈키와 나오미, 나가사와 선배와 하쓰미 그리고 나오미와 레이코가 시소의 양 끝이라면 ...
『용의자 X의 헌신』은 제목이 스포일러다. 그럼에도 결말이 놀라웠고, 지금껏 읽은 스물두 편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 가장 강렬했다. 가가 형사만큼이나 친숙해진 물리학자 유가와와 구사나기 형사가 등장하는 일명 ‘갈릴레오 시리즈’인데,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이들이 아니라 용의자다. 추리소설처럼 사건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인물의 내면 변화를 따라가는 이야기보다 서평을 쓰기 어렵다. 스포일러를 자제해야 하고, 사건을 해결해 주는 인물이 있으므로 독자가 생각해야 할 영역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히가시노의 책을 읽고 쓸 재료가 없어서 서평을 쓰지 못했지만, 이 책은 쓸 말이 많아서 못 썼다. 용의자 X의 헌신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출판 현대문학 발매 2006.08.10. 줄거리와 감상 포인트 누구의 시점에서 시작되는지에 따라 감정 이입의 대상과 깊이가 달라지는데, 이 이야기는 용의자 이시가미로부터 시작한다. 수학 교사인 그는 이웃에 사는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어서 매일 그녀가 일하는 도시락 가게에 들른다. 반면 그녀에게 그는 ‘벽에 난 금’처럼 알고는 있지만 의식하지 않는 존재다. 전남편이 찾아와 행패를 부려서 야스코와 딸 미사토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곤란에 처한 모녀를 도우며 이시가미의 천재성과 헌신이 조금씩 드러나는데, 그 정도와 깊이가 얼마만큼인가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 밖에도 여러 감상 포인트와 재...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세 번째 '~죽였다' 시리즈이자 그의 101번째 작품이다. 서점에 가거나 온라인 서점에 접속할 때마다 신작이 보이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신간이 나왔다. 그러니 한 작품만 주목받기도 어려울 텐데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출간 즉시 통합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오랜만에 등장한 가가 교이치로의 인기 때문일까? 게이고 소설 속 해결사인 가가 형사와 물리학자 유가와, 둘 다 매력이 넘친다. 가가는 '왜'에, 유가와는 '어떻게'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펼친다. 캐릭터로 추리 기법을 설정하다니,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답다.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줄거리 호화로운 별장 지대, 네 개의 별장 사람들이 매년 바비큐 파티를 즐긴다. 이번에는 다섯 가족이 모였고 인물이 소개되는 가운데 촉을 한껏 세워본다. 다들 조금씩 수상한 구석이 있는데 누가 범인이고 희생자가 될지, 가가 형사보다 먼저 알아채고 싶어서다. 인간이란 어차피 이런 생물이다. 겉과 속이 다른 게 보통이다. 그 여자도 그렇다. 그 정체를 아는 건 나뿐이다. 인물이 다 소개되기도 전에 의미심장한 구절이 등장했다. 이번 소설은 전개가 아주 빠르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범인이 등장하고 자백을 해버린다. 6명이 흉기에 찔리고 5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범행 동기에 대해 삶이 무의미하고, 자신을 무시한 사람들에 대한 복...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읽어야 하고, 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폭탄이라는 『군주론』. 이 책에서 말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정치철학이 위험하다는 건 알겠지만 책상을 치며 읽어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호기심을 참지 못해 또 고전을 펼쳤다. 경험과 통찰에 울분을 섞은 정치 지침서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글, 페이지2북스 펴냄 실질적인 내용보다는 평가와 해석이 관심사여서 여러 권의 책을 골라 읽었다.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마키아벨리의 인상이 날카롭기도 하고 온화하기도 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군주론 내용 요약 『군주론』은 군주국을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를 기술한 책이다. 군주국의 종류와 통치법, 전쟁의 기술과 군대 관리법, 군주의 덕목을 말하고 있다. 과거 로마나 프랑스에서 어떻게 군주국 통치에 성공했고 실패했는지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이탈리아 군주들의 실수를 거론하며 권고로 끝을 맺는다. 『군주론』 서두에는 메디치에게 바치는 헌정사가 실려 있는데, 내용이 오글거린다. '위대하신 전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 책과 함께 자신을 바친다나. 굽어보시면 부당과 불운을 견디며 사는 '소신'을 알게 될 거라며 신세 한탄도 끼워 넣었다. 결국 등용을 읍소하는 내용이어서 이 책을 재취업을 노리는 자기소개서라고 말한 학자도 있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 『군주론』 은 교황청의 검열을 거쳐 1532년에 정식 출판되어 유럽의 각 나라에 ...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에는 무엇이 있을까? 배움, 꾸준함, 예의, 소박함, 성의, 다양성, 다정…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는데 다정함은 아마 그중에서도 넓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본 순간 손이 저절로 이 책을 향했다. 꾸밈없이 여백이 많은 샛노란 표지도 좋았고, 웃는 듯 아닌 듯 연한 미소를 머금고 갸웃하는 눈과 입이 귀여웠다. 양장 뒤표지에 까만 명조체로 써진 글도 멋졌다. 무엇보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재미나게 읽은 터라 김혼비라는 작가명이 반가웠다. 살짝 얼려둔 마음들이 녹는 순간에 대하여 김혼비 작가는 주제 없는 글을 쓸 때마다 힘든 순간에 누군가의 다정함으로 털고 일어섰던 일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다정한 패턴이 마음의 악력을 만들어 주었다면서. 무너진 몸과 마음을 뜻하지 않은 누군가의 다정함이 일으킨 경험은 나에게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마음 씀씀이가 부족했던 날들을 고백한다. 좋아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일, 존재를 제한하는 단어를 써왔던 일, 맞춤법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일까지. 나 역시 활자에 예민해서 며칠 전에도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어느 공무원의 메일 속 맞춤법을 보고 자질을 운운했다. 맞춤법은 맞춤법일 뿐,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닌데. 다른 일화에서는 주변의 다정함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축구 동호회에서 만난 언니들의 “내 나이(50대) 되면 ...
제목만 듣고도 읽어보고 싶었던 책 『완전배출』. 건강 도서가 재미있기 쉽지 않은데, 입소문대로 흥미진진하고 신선한 충격을 주는 책이었다. 건강에 관해 궁금했던 거의 모든 의문에 답을 얻어서 속이 시원하다. 그 해법이 내 몸에도 해법이 될지는 실천해 보면 된다. 그가 식습관을 바꾼 이유 저자인 조승우 한약사는 혈관 질환이 낫지 않아서 스스로 해결하고자 뒤늦게 한약학과에 입학했다. 전공 공부와 함께 여러 관련서를 읽고 그가 얻은 결론은 '식약동원'이었다. 동양의학에 나오는 말로 '음식과 약은 하나'라는 의미다. 그는 현대 의료 시스템에서 생사를 다투지 않는 환자 관리는 부를 창출하는 영역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책에서 언급된 '평생 약을 친구로 생각하셔야 된다'라는 의사의 말을 지인들도 들었다고 한다. 저 말은 어쩐지 의료서비스 종신 구독자가 되었다는 알림 메시지 같다. 조승우 한약사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원했다. 호모사피엔스가 무엇을 먹도록 설계된 동물인지, 야생동물은 왜 비만과 질병이 없는지에 대한 답을 책에서 찾고자 했다. 결국 그는 '살아있는 인간은 살아있는 식물을 먹어야 한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발견했다. 사냥과 육식을 위한 날카로운 발톱이나 치아 대신 과일을 따고 채소를 뽑기 좋은 손목을 가진 현생 인류. 그러나 사피엔스의 섭식은 농업혁명 이후 쌀과 밀로 한정하여 익히거나 분쇄해 먹고 가축을 길러 육류를 불에 익혀 먹는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