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읽기 #61일차 오늘의 서평 어느 긴 하루 밤 - 클레어 키건 ‘푸른 들판을 걷다’ 사소한 고백이지만 ‘푸른 들판을 걷다’에 실린 단편소설들을 읽고 나서야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이 좋아졌고 왜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 계기가 단편소설이라는 게 나에게 특별하게 느껴졌는데, 소설에 대해 배우고 되짚어보게 된 점이 많아서인 듯하다. 특히 클레어 키건은 단편에서 시간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하는 일, 결말에서 남겨야 할 점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을 공간과 함께 섬세하게 엮어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곱 편 중에서 ‘푸른 들판을 걷다’의 첫 장은 단편에서의 도입부란 이래야 한다는 정석 같아 보인다. 성당에서 마을 사람들과 사제가 신부를 기다리고 있다. 결혼식이 열리는 날인데 신부가 늦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직접적인 문장은 없고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오르간 연주가가 바흐의 토카타를 한 번 더 천천히 연주했지만 의심의 전율이 신자석에 퍼져 나갔다.” 신부를 기다리는 사제가 고개를 들어 열린 문을 바라볼 때 “4월의 하늘에서 창백한 구름이 갈라지고” 있었고, 곧이어 “구름이 쪼개져 흘러가기 시작하더니”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나타난다. 이 첫 단락만 읽었는데도 의심의 전율, 창백한 구름, 갈라지다, 쪼개지다, 흘러가다, 라는 등의 어휘에서 작가의 의도 즉 이 결혼식에는 무언가 감춰진 사실이 있으며 누군가에...
#서평읽기 #60일차 오늘의 서평 [조경란의 얇은 소설] 소년은 행동한다 나는 오키나와라는 지명을 들으면 작가 메도루마 슌이 먼저 떠오른다. 한곳에 오래 사는 작가에게 거주지, 장소애(場所愛)의 의미가 소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특히 거의 십오 년 전에 처음 읽은 뒤로 성장소설을 떠올릴 때마다 다시 들춰보게 되는 단편 ‘투계’의 공간 역시 오키나와라 그럴 것이다. 성장의 가혹한 아픔을 겪는 소년 다카시의 생생한 감정과 마지막 행동 때문에라도 잊을 수 없는 단편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족한 어른들로 인해서 하지 않아도 되는 통과의례를 겪을 수밖에 없는 많은 소년에 관한 생각을 저버리기 어려워서도. 다카시는 초등학생이고 지금은 여름이다. 아버지 요시아키는 낚시, 분재 등 취미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투계에 빠져 있다. 직접 부화시킨 병아리를 키워 도박판에서 푼돈을 벌기도 하고 오키나와산 투계를 지칭하는 ‘다우치’ 사육법에 관해선 누구보다 박식해 인근에서 사람들이 배우러 찾아올 정도이다. 투계로 도박판을 벌이는 건 오키나와에서도 불법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다우치를 일회용품으로 취급하지 않고 단순히 돈을 버는 것도 목적이 아니며 “강한 닭을 제 손으로 키우고 소유하는 게 다우치 사육자의 긍지”로 알고 있다. 다카시가 5학년이 되자 아버지는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병아리 한 마리를 키우라고 주며 말했다. 네가 책임...
#서평읽기 #59일차 오늘의 서평 〈물욕의 세계〉(현암사, 2024)를 쓴 누누 칼러는 그린피스에서 소비자 대변인으로 6년 가까이 일하기도 한 환경운동가이자, 10년간 비판적 소비 연구를 하면서 윤리적 소비를 전파해왔다. 지은이는 두 가지 활동에 열심이었으면서도 자신의 쇼핑 욕구는 신념대로 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런 지은이는 이 책에서 쇼핑 중독의 원인을 여러 시각으로 헤쳐 보인다. 제일 먼저 나온 신경생물학적(혹은 행동생물학적)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할 때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오는데, 쇼핑에서 도파민 분비를 맛본 사람은 계속해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쇼핑에서 발생하는 행복은 도파민 가설로만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쇼핑 중독은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보다 우월한 삶의 양식으로 고정된 자본주의 시대의 습성으로, 특정 물건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기대(충족)만으로 행복해진 것이 아니다. 쇼핑은 집단 소속감을 주고, 자긍심을 갖게 하며, 유명인과 나를 한 인물로 만들어준다. 인플루언서들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활약으로 쇼핑 욕구는 더욱 뜨거워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그것이 무엇이든 어딘가에 이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일부로 남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지은이가 인용하기도 한 지그문트 바우만은 대담집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현암사,...
#초등추천도서 #역사동화 <위험한 행운의 편지>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한 소년이 독립을 염원하는 행운의 편지를 쓰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영수’는 우연히 친구들에게 ‘조선이 독립됩니다’라는 문장이 적힌 편지를 보내게 된다. 친구들도 위험을 무릎쓰고 그 편지를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어느 날, 이 편지가 일본인 교사에게 발견되어 반 친구들 모두 하루 종일 벌을 받게 된다. 이 작품에는 식민지 시대에 학생들이 얼마나 험악한 분위기에서 학교 생활을 했는지 보여준다. 일본인 교사가 목검을 차고 학생들을 위협하거나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일본어를 ‘국어’라고 하면서 강제로 교육시키고 조선어를 쓰지 못하게 한다. 또한, 일제 시대 때 친일파들이 어떻게 등장하고 왜 친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주인공 영수는 ‘황국 신민 서사’를 암기하지 못해서 혼나고 벌을 받는다. 황국 신민 서사는 일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수는 당연히 일본인이 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각종’과 ‘김대우’라는 친일파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삼촌으로부터 듣게 된다. 영수는 어이없어 하며 묻는다. “어떻게 조선 사람이 그럴 수 있어?”(p.100) 왜 그랬을까? 친일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품에서 보면, 급장인 병식이가 조선어는 필요없다며 출세를 위해서 일본어를 해야한다고 ...
#서평읽기 #58일차 오늘의 서평 박재용의 〈처음 만나는 자폐〉(이상북스, 2024)는 청소년용으로 나왔지만, 어른이 읽어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한국의 경우 아동 100명당 2.6명 정도가 자폐에 해당될 만큼 비율이 높다지만 자폐에 대하여 모르기는 청소년이나 성인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자폐란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결함’이 있고,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이나 흥미 또는 활동’을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언어상으로는 이처럼 명료하게 정의되지만, 자폐 증상은 상당히 폭넓다. 그래서 거의 모든 공식 영역에서 자폐증 대신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정신장애가 아닌 신경다양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전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부모가 자폐가 아닌 경우에도 자녀에게 자폐가 나타날 수 있다(육아 방식이나 태도는 자폐를 만들지 않는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자폐인의 상동행동은 감각이 외부 자극의 보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거나, 반대로 예민해진 감각을 분산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주변인이 보기에는 이상할지 몰라도, 자폐인에게는 꼭 필요한 행위이다. 또 맥락과 상관없이 말을 따라 하는 반향어는 자폐인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스트레스의 표현이기도 하다). 말이 서툴러 지능이 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자폐인은 한국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일 뿐, 자폐인이 곧 지적장애인인 것은 아니다. 예술가나...
#바다의생물플라스틱 #초등고학년추천도서 #환경도서 <바다의 생물, 플라스틱>은 아이들 수업을 위해 골랐던 환경도서이다. 슬쩍 제목을 보면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문제를 다뤘구나 짐작이 간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제목이 약간 이상하다. 플라스틱이 바다의 생물이라고? 아무리 바다에 플라스틱이 많다고 해도 그걸 생물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 환경 문제를 다루는 책이라고 하기에는 제목에서부터 표지 전체가 각양각색이다. 알록달록 화사하고 입체적이여서 색감이 좋다. 그런데 이내 씁쓸해진다. 파란색 바다와 황토색 모래 사장을 덮어버릴 만큼 플라스틱이 넘쳐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은은하고 산뜻한 색감의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바닷가. 바다 오염의 현주소이다. 표지 아래 한 소녀가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찾고 있다. 이 책의 화자인 해양생물학자 '아나'이다. 그녀가 바로 플라스틱을 바다의 새로운 생물로 여기고 '플라스티쿠마 마리티무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학명을 붙인 이유가 있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너무나 많아서 새로운 생물이라고 생각할 정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학명을 붙이고 연구하면 여러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이 다른 어떤 생물과 같은 무리인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어느 나라에 살든 어떤 언어를 쓰든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기 쉬워"(p.30)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다양한 각...
https://m.blog.naver.com/eijin1130/223651219823 서평단 모집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올해의 책 후보 안녕하세요. 책 읽고 기록하는 웬디에요. 여러분, 오늘은 제가 대박 책을 가져왔습니다. 정말 너무 멋진 책... m.blog.naver.com
#마음의지혜 #울산염포양정도서관 #비경쟁독서토론 단상 울산 한 도서관의 독서동아리 회원분들과 <마음의 지혜>로 토론을 하였다. 20대에서 70대 이상까지 다양한 세대와 함께 2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추석 연휴 때문에 서울에서 내려와 엄마가 신청한 토론모임에 오게 된 20대 청년 덕분에 토론 내용은 더 다양하고 활기가 넘쳤다. 70대 어르신들은 삶의 우여곡절이 묻어나는 인생 이야기를 펼쳐주셨고 40-50대 분들은 그 이야기가 많은 위로가 된다고 언급하셨다. 다만, 몇몇 분은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추임새를 넣거나, 중간에 끼어들곤 했다. 이내 "말 끊어서 죄송하다"고 말씀하셨고 다른 분들도 별로 게의치 않는 듯 보였다. 원래 동아리 모임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서 진행자로서 내가 "이 분 말씀 다 듣고 발언 기회를 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했어야 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한 회원분이 자신은 점묘화 같은 존재이며, 오늘의 모임이 하나의 점으로 자기 인생에 찍혔다고 표현하셨다. 좋은 영향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 독서동아리에 초대되어 잠깐이지만 나도 큰 에너지와 배움을 얻었다. 더 많은 독서동아리가 활발하게 일어나길 바래본다. 토론스케치 -별점 : 4점 2명, 3.5점 2명, 4.5점 2명 -소감 : 심리학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매우 유익하다. 교수님 강연 영상을 많이...
#문해력 #어휘력 #글쓰기 Previous image Next image 수업 진행 문해력 첫 수업은 항상 어휘력 키우기로 시작한다. 어휘력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나는 5가지 방법으로 진행한다. 단어 뜻 매칭, 문장 짓기, 빙고 게임, 팀별 스피드 퀴즈, 나만의 사전 만들기. 먼저 신문 기사를 읽고 모르는 어휘는 표시한다. 문맥 안에서 뜻을 유추해본다. 사전에 나온 단어 뜻을 보면서 어휘를 확인하고 그 중에 제일 생소한 어휘를 뽑아 문장 짓기를 해본다. 그런 다음 빙고게임을 하면서 새로운 어휘가 입에 붙도록 한다. 이어서 편을 나누어 스피드 퀴즈를 하면서 직접 단어를 설명해보는 연습을 한다. 나만의 사전 만들기는 A4 종이로 작게 미니책을 만들어 모르는 단어와 뜻을 개성있게 쓰거나 그린다. 후기 1시간 30분 동안 신문 기사 3개를 읽고 쓰다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첫 시간이라 나름 긴장하고 집중하는 아이들. 기사와 관련된 뉴스 영상까지 보면 생소한 내용도 대부분 다 이해가 된다. 퀴즈 중심으로 진행되는 수업에 대해 만족도가 높다. 대신에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사를 잘 골라와야 한다. 동시에 어휘 공부가 될 만한, 내용있는 기사를 찾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 3학년에서 6학년 사이 모든 아이들을 만족스러운 내용을 찾는 게 쉽지 않다. 3학년은 너무 어려워할까봐, 6학년은 시시해할까봐 고민이다. 짧은 길이의 기사이면서도 어휘가...
#독서일기 #크게그린사람 #인간다운삶 저자 은유는 주류매체가 주목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삶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인터뷰하여 책을 냈다.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사유를 자극"하고, "살아가는 일 자체로 모두의 해방에 기여"하며, "사람을 지나치지 못한 사람"들을 그녀만의 문장으로 크게 그리고 있다. 저자가 크게 그린 사람들은 장애, 의료, 돌봄, 여성, 노동, 정치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력한 질서에 '저항'한다. 이들의 차별화된 상황과 활동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저자의 세밀하고 다층적인 질문과 해석 덕분이다. 간결하고 단단한 문장으로 전달되어 낯설고 생소한 분야의 이야기도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그때 “내가 영(0)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선입견을 걷어내고 백지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소망을 이뤘다. 장애, 의료, 돌봄, 여성, 노동, 정치, 환경 등 삶의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나로 하여금 기꺼이 무로 돌아가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도록 인도해준 귀인들이다. (…) 이 시대의 인물 화첩이자 나만의 인생 수업 노트이고 인간학 교재인 이 책을 나를 아는 모든 이들, 나를 모르는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다. 좋은 이야기는 존재의 숨통을 틔워준다. 내가 보고 듣고 겪는 이야기가 나의 세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9-10쪽 크게 그린 사람들은 분노를 성찰로, 고립을 공존으로 바꾸는 이들...
#괴물들 #나쁜예술가 #기억하고기록하기 한국어판 <괴물들> 9월 출간 예정 한 때 뛰어난 작가, 가수, 영화배우, 영화감독들이 성폭력 범죄자, 소아성애자, 가정폭력범으로 드러나 많은 논쟁이 일어난 적이 있다. 책을 읽다보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나는 작품만 보고 좋아했다가 작가의 이면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충격이었고 좋아하던 작품도 싫어했다. 특히 친일파는 더더욱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번에 정희진 공부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김수영 시인이 아내를 구타한 가정폭력범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어제 봄밤 시를 읽으며 감탄했었는데.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 를 읽고 좋아서 여러 명에게 추천했는데 그녀는 유괴범이었고, 동경하는 버지니아 울프는 반유대주의자였다고. 아...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가 명백한 범죄자라면? 나는 그의 작품을 즐길 수 있는가. 작품을 인정할 수 있는가. 작가와 작품을 따로 봐야할까, 아니면 동일시 해야할까. 작품과 작가를 평가하는 보편적 윤리 기준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독자들 각자에게 맡기면 되는 것일까. <Monsters> 라는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정희진 샘은 저자의 의견을 전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역시 그녀의 답은 명료하다. 한 마디로 "작품과 작가를 평가하는 보편적 윤리 기준은 없다. 사람마다 작가와 작품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다 다르다. 작가나 독자...
#활활발발 #어딘글방 #글방이야기 글방은 일주일에 한 번 열렸다 닫히는 시공간이다. 글방이 끝나면 각자의 세계로 표표히 돌아가 좌충우돌 동분서주 삶을 살다가 일주일이 지난 후 한 편의 글을 품고 다시 만난다. 글 속에는 한탄과 푸념과 불안과 고민과 갈등과 낙망과 지향과 설렘과 종종 희망이 중층적으로 쌓여 있어 굳이 안부를 묻지 않아도 글쓴이의 심중을 짐작하고 근황을 파악하게 된다. 게이의 사랑과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폭력적 관계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자본이 영혼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공장식 축산, 그리고 동물해방과 장애인해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는 서로의 글을 통해 이해하고 공명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이 얼마나 긴밀하게 이어져 있는지 함께 추측하고 예감한다. 어긋나고 틀어지는 사랑의 행로, 유년의 가난과 허기, 자다가도 이불 킥을 하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들이 그나마 글쓰기의 자양분이 된다니 다행이라며 글방식 위무를 나눈다. 글쓰기 작법서 중에 제일 파격적인 책이다. 독특한 글방 이야기라고 봐도 기존 책들과 다르다. 글방지기와 글방러, 이곳에서 펼쳐진 글들 모두 기존 관념을 깨어부순다. 글방러 구성원, 글의 주제, 글 내용들이 무척 도발적이다. 내가 지극히 평범하고 고지식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사람, 작가에 대한 색다른 차원을 알게 해주었고 처...
#울산신선여자고등학교 #비스킷 #비경쟁독서토론 단상 울산 신선여자고등학교 학생들과 <비스킷>으로 토론하기 위해 도서실로 향했다. 입구에 붙여진 책에 관한 정보와 포스트잇들. 무엇보다 사서선생님의 환대에 큰 감명을 받았다. 환한 미소와 함께 다정하게 말을 건네시는 모습! 오시는 길이 힘들지 않았냐, 이런 토론 수업이 있어 신청할 수 있게 너무 좋았다, 학교로 와주셔서 감사하다 등. 또한 도서실 곳곳을 구경하면서 센스있게 꾸민 게시판이나 책 소개란에서 책과 학생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또한 토론을 위한 책상 위에 이름표와 작은 물병, 필기구까지 셋팅을 다 해놓으셨고 아이들이 오자 간식도 챙겨주셨다. 토론 직전에 사서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이 조금 소극적으로 임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마음 속에는 다들 생각이 있어요" 라며 잘 부탁드린다는 진심을 전해주셨다. 와~~ 정말 인상적인 사서샘!! 토론 시작 전부터 큰 힘을 받았고 토론 내내 즐거웠다. 토론 녹음한 내용을 다시 들어봤다.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말들이 많이 거슬린다. '-생각이 들어요' '혹시~' '한번' '어떤' '조금' '그런' '부분' '이제'. 자주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아이들 의견에 정리하는데 아이 말보다 더 길게 할 때가 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또 다른 말을 생각하다가 길어지는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 말을 더 끄집어 내려면 내 말을 하기 보...
#숭례문학당 #책통아 #중등독서토론 책소개 그림책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은 영국의 삽화가인 찰리 맥카시가 2019년 발표했고, 애니메이션으로 제자되기도 했다. 이 책은 저자가 평소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고 전한다. 소년은 집으로가는길에두더지, 여우, 말을차례대로 만난다. 네 주인공은 삶의 숱한문제들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고 받는다. 단상 전국에서 모인 7명의 중1-2학년들과 함께 줌으로 독서토론을 하였다. 참여자 대부분은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적극적으로 손을 드는 친구는 2-3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호명하면 한 두 문장이라도 생각을 나누었다. 의견이 바로 나오지 않을 때 나는 조급해진다. 논제를 다시 설명하거나 다른 질문을 추가해버린다.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에 내 의견을 두루뭉술하게 전하게도 한다. 아이들이 고민할 시간을 넉넉하게 주자. 침묵에 익숙해지자. 토론을 잘 하는 친구의 오디오 상태가 별로 안좋았다. 잘 듣고 적절한 반응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온라인 상황의 어려움 중에 하나이다. 한 친구는 비디오가 이상해서 오디오로만 참석하기도 했다. 이번 토론에서 나는 4번 논제에 대한 대답이 약간 피상적인 것 같아 따로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답이 없어서 일단 넘어가고 마지막 선택논제까지 한 다음에 다시 질문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심도 깊게 이야기를 나누...
#양산효암고등학교 #비경쟁독서토론 #너를위한B컷 진행후기 양산 효암고등학교에서 동아리연합 행사로 80여명의 아이들과 함께 비경쟁 독서토론을 진행하였다. 4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선생님 네 분이 한 팀씩 맡았다. 동아리는 시사, 말하기, 독서 등 책이나 토론과 관련된 동아리에 소속된 1,2학년 학생들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학당샘 덕분에 성사된 토론수업~! 비경쟁독서터론의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들어간 반의 아이들은 모두 전반적으로 조용했다.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 토론하는 아이들은 소수였다. 여러 동아리가 섞여 있어 분위기가 아직 어색해서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을 호명해서 의견을 물어보면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잘 전달했다. 20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토론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해봤는데 아이들 입장에서 산만했을지, 어땠을지 잘 모르겠다. 골고루 발언 기회를 주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잘 해야한다는 부담감도 커서 많이 긴장했다. 목소리 톤이 너무 높았고 끝나고 난 뒤 목이 아팠다. 처음 시작할 때 ppt가 안되서 당황했다. 내 소개와 비경쟁독서토론 설명을 위해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시간도 별로 없어서 조급한 마음으로 설명하다보니 약간 발음이 씹히고 똑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기 있는 높은 톤의 목소리로 진행한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
#울산이화중학교 #중등독서토론 #비경쟁독서토론 진행후기 7명의 중1 여학생들. 독서토론을 하고 싶어 신청한 친구들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또랑또랑하게 자기 생각을 열심히 말하는 아이들. 무척 인상적인 토론 현장이었다. 물론 어색하고 낯설어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자발적인 참여였기에 대부분 적극적이고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 토론수업 신청을 위해 오픈런 하신 선생님의 열정만큼! 이화중학교는 디지털기기 선도학교란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선생님을 대신할까요?> 토론 신청을 했다고. 원래 이 분야에 관심이 있던 친구들은 재미있게 읽었고, 전혀 관심없던 아이들도 읽으면서 지식도 쌓고 호기심도 생겼다고 한다. 전반적인 토론 흐름은 인공지능 기술이 편리하고 앞으로도 기대가 되지만 선생님을 대신할 만큼 신뢰가 가는 기술은 아직 아닌 것 같다는 방향이었다.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자기 생각을 나누었다. 토론 중간마다 짧게 정리하는 것이 토론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최대한 아이들 의견을 잘 듣고 "네 잘 들었습니다." 로 끝내고 싶은데 꼭 한 두 마디씩 보태게 되고, 흐지부지 끝나는 의견에는 세 네마디 거든다. 이번에도 좀 말이 많았다는 느낌이다. 지식책은 저자의 지식과 주장에 아이들이 고개만 끄덕일 뿐 딱히 의견을 보태기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장점과 단점 양측을 골고루...
#울산공업탑청소년센터 #인공지능은선생님을대신할까요 #중등독서토론 울산 공업탑 청소년 센터에서 중학생들과 <인공지능은 선생님을 대신할까요?>로 토론하였다. 토론 내내 하하호호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해줘서 즐거웠다. 내용의 질적인 측면보다 어떻게든 생각해서 한 마디라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고 노력한 아이들 모습이 기특하고 좋았다. 중간 중간에 책의 내용을 빌어 내 의견도 전달할 때 너무 가르치듯이 말하는 걸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다시 녹음을 들어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 그래도 내 말은 좀 줄여야겠다. 토론 전에 담당 선생님께서 토론을 제일 잘하는 친구 한 명을 뽑아달라고 하셨다. 아이들의 집중하는 태도를 위해 스타벅스 상품권을 걸었단다. 같이 온 강사샘께서 그건 좀 어렵겠다고. 비경쟁독서토론은 누가 토론을 잘 하고 못하고 평가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센터 샘이 조금 당황하셨던 것 같다. 어쩌면 강사와 토론 분위기를 위해서 일부러 애를 쓰신 부분이었는데 강사 둘다 거절을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 말을 이해하시고 알겠다고, 상품권 수여는 없는 걸로 하겠다고 했다. 경쟁, 정답이 없는, 비경쟁독서토론에 대한 이런 인식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어느 곳에서 한 순간이라도 경쟁, 정답, 평가가 없는 세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별점과 소감 -4.5점, 3.9점, 3.5점, 2.5점...
#울산동구청소년문화의집 #독서토론 #비스킷 토론스케치 울산 동구에 위치한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중학생들과 <비스킷>으로 독서토론을 진행하였다. 10여명의 아이들 모두 별점이 4점 이상. 처음으로 졸지 않고 책을 읽어봤다는 소감부터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내용과 주인공이 성장하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들이 비스킷을 구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 제성이 병원을 탈출하는 장면이 아슬아슬해서 좋았다고 한다. 또한 한 친구는 제일 마음에 드는 문장이 바로 "대형 사고를 치기 위해 운동화를 사고"라며 낭독하기도 했다. 작품은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버린 존재를 '비스킷'이라고 명명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비스킷의 존재를 그려낸다. 단계에 따라 희미한 정도는 다르다. 3단계가 되면 거의 보이지 않게 되고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한 토론자는 작가의 이런 설정에 대해 "현실과 잘 이어지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주인공 제성이 도와주려고 했던 비스킷 1단계인 '도주'는 중학교 때 학폭을 겪었다. 고등학교에 진학 뒤에는 아이들 눈에 튀지 않으려고 스스로 존재감을 지우려고 했다. 튀면 또 맞을까봐 영원히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 도주에 대해 토론자들은 아쉬움을 전했다. "과거의 기억이 끔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등학교에 가서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학폭을 당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스스로 존재감을 지우려는 건 ...
#독서일기 #수레바퀴아래서 #헤르만헤세 <단상> 맹렬히 굴러가는 수레바퀴. 그 바퀴 아래 무엇이 있을까. 바퀴는 무엇을 남겨두고 굴러가고 있을까. 우리는 수레가 무조건 잘 굴러가길, 원하는 장소에 정확하게 도착하길 바라본다. 그 바퀴 아래에 스러져가는 수많은 것들은 아무 상관없이 없다는 듯이. 열여섯 살 주인공 한스는 명성이 보장된 신학교에 입학한다. 모범생으로 생활하다가 하일너 라는 친구를 만나 우정과 시에 알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신학교의 공부와 규칙과 점점 멀어지면서 문제아가 된다. 신학교를 중퇴하고 집에 돌아와 기술자가 되기 위해 일을 하다가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공부 노예로 사는 한스의 마음은 늘 불안정하고 어둡다. 그래도 공부의 희열을 경험하고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또한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호수에서 낚시하며 수영을 즐기고, 이성에 관심 때문에 잠못이루기도 한다. 작가가 펼쳐내는 사춘기 감성을 읽다보면 나의 10대 시절이 떠오른다. 또한 나의 자녀들은 어떻게 이 시기를 겪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공식적인 사춘기 시절은 지났지만 정서적 사춘기를 겪는 지금 나의 모습도 생각하게 만든다. 학창 시절 나는 친구들을 너무 좋아하면서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서 수없이 번민했었다. 이중적인 내 모습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아파하며 꾸역꾸역을 공부를 해야 했...
#독후감작성법 #초등학생 #양산작은도서관 지난 시간 8명이었던 아이들, 오늘 3명이 빠지고 5명의 친구들과 함께 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못오겠단다. 아마 독후감 쓰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5명이 채워지지 않으면 사서샘이 곤란?해지기 때문에 신경이 좀 쓰였다. 이럴 경우는 어떻게 해야할까? 5명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3명이든 4명이든, 의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어쨌든 다행이 5명의 친구들과 함께 각자 독후감 쓸 책으로 독후감을 쓰고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리 활동지에 개요를 작성해와서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독후감 쓰기 전에 감상문에 필요한 어휘 공부를 하고, 프렙으로 감상쓰기를 연습해보았다. 이어서 독후감 쓸 책과 줄거리 요약,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하였다. 미리 쓴 개요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역시 쓰기 전의 작업이 중요하다. 그리고 스피치까지 하고 나니 독후감 쓰기는 생각보다 시간이 별로 안걸렸다. 그래서 적용점과 추천하고 싶은 사람과 그 이유도 적어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책을 읽게 된 동기(배경) - 요약 - 인상적인 장면 - 적용 - 추천 이유" 순서대로, 대략 4-5문단 정도로 적었다. 문단마다 문장을 좀 더 추가하여 밀도를 높히면 더 좋은 글이 되겠다. 그래도 2-3학년 아이들이 (5학년 1명 포함) 두 번의 수업을 통해 나름 잘 갖추어진 한 편의 독후감을 완성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칭찬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