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미술작품
2920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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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현대미술관 첫 방문기

   지난 주말, 개관 4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리옹 현대미술관(macLyon)에 다녀왔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3가지로, 각각 실비 셀리그의 개인전, 앙투안 드 갈베르의 컬렉션, 영국문화원과 리옹 현대미술관의 협업 기획전. 거두절미하고 '프랑스 아방가르드'라는 미술 용어가 납득되는 전시였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직역하면 '전위적인'이라는 뜻으로, 미술사적으로 기존의 전통과 관습을 탈피한 프랑스의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미술을 통칭한다.      실비 셀리그, 《돌아오지 않는 강》 1층 실비 셀리그의 개인전 《돌아오지 않는 강》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실비 셀리그는 프랑스 니스 출신의 여성 작가로 회화, 조각, 텍스타일 등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2022년 열린 제 16회 리옹 비엔날레에서 이름을 알린 작가는, 첫 미술관 전시인 이번 개인전에서 140미터 길이의 회화 〈돌아오지 않는 강〉을 중심으로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선보였다. 기이하고 엽기적인 시그니처 캐릭터가 일관되게 등장하는 것이 특징으로, 이를 주인공로 한 만화 형식의 회화 연작이 인상적이다. 상업적 조형물 같기도, 잔혹동화에 등장하는 크리처 같기도 한 형상의 조각 작품은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섬뜩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앙투안 드 갈베르 컬렉션, 《명령》 2층 앙투안 드 갈베르...

2024.05.30
공간에 숨을 불어 넣는 조경, 그리고 정영선.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다녀왔다. 정영선은 한국의 1세대 조경가이자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이다. 과연 조경을 전시하는 것이 가능할까? 작은 전시관에서 조경이 담고 있는 ‘예술’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을까? 전시를 알아보고 직접 찾아가기 전까지 들었던 의문이었다. 보통은 작가가 자신의 창작물 그 자체를 갤러리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시이다. 반면 조경은, 자연적인 땅에서 시작된다. 즉 자연을 캔버스 삼아 광활하게 펼쳐지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경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실내 전시를 통해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경선에게 조경이란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 삼는 종합과학예술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시를 관람한 후의 나는 이에 동의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사실은 이전에는 이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었으며, 앞으로도 공감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정도로 나는 조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이번 전시가 조경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경이로운 작업이며 그 과정 또한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작은 규모의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시가 특별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경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2024.05.23
경이롭게 느껴지는 그의 상상력에 대한 질문은 전시에서 답해준다.

 지난 3월부터 타나카 타츠야 작가의 MINIATURE LIFE · MITATE MIND가 시작됐다. 전시는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로 상상력을 발휘해 작은 세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대상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유하는 ‘미타테’ 라고 표현했다. 이 단어가 전시의 핵심이다.그의 세상 속에서 사물들은 원래 가진 특성 그 자체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형태는 같지만 크기와 배치에 변화를 주어 다른 것이 된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 미니어처 세상 속에서는 다른 것을 의미한다.     타나카 타츠야 작가에게 섬이라는 개념은, 아이스크림으로 정의할 수 있고 밥그릇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또는 빵이나 과일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솟아 있는 동그란 형태의 사물이라면 섬으로 정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눈앞에 놓인 일회용 컵 뚜껑을 보며 섬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꽂혀 있는 빨대는 섬에 있는 나무라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책상 위에 떠 있는 나만의 미니어처 섬을 정의해본다.반대로 그에게 테이프라는 사물은, 달팽이가 될 수도 있고 레드카펫이 될 수도 있고 소변기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어떤 사물이든 개념이든 ‘무언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사물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말장난하는 제목으로 재치 있게 지었다. 제목에 언어유희를 사용한 것처...

2024.05.17
관종의, 관종을 위한, 관종에 의한 전시

 지난 주말, 부산여행을 떠난 김에 부산현대미술관에 방문했다. 진행 중인 기획전은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 《능수능란한 관종》, 《마크 리: 나의 집이었던 곳》. 가장 윗층에서부터 차례로 세 전시를 모두 관람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은 《능수능란한 관종》이다. 이유인 즉슨, 최근 3년 간 본 전시 중 가장 '요상한'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라는 평범한 표현으로는 부족한 '요상한' 기획은, 말마따나 '능수능란한 관종'과 같았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신민의 거대한 모형 작품과 거울샷을 찍어야만 할 것 같은 작품 캡션, 그리고 미로형 동선을 빼곡히 채운 23팀의 작품까지. 전시장 내의 모든 요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소리치는 듯 했다.   정치와 예술    서문에 따르면, 본 전시는 현대 사회에서 관심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시대 예술의 관점에서 탐구한다. 예술, 광고, 정치 등의 영역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택하는 방법을 조명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모순,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창의성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전시장 내부에는 '예술'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 통용되는 주제가 제시된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관람을 이어가던 도중, 문화사회주의 연대기를 논하는 구간이 등장했다. 한 눈에 봐도 ...

2024.04.26
(구)일민미술관 인턴의 추천 코스

   광화문 근처를 지나가다 대형 전시 포스터에 눈길을 빼앗겨 본 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일민미술관을 방문해 본 적도 있으신가요?일민미술관에 대한 제 첫 기억은, 상경 후 처음으로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아가던 와중입니다.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에 온 저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문화 예술을 즐기기 위해 서울의 미술관들을 '도장깨기'하며 스무살을 보냈습니다. 유명한 국공립 미술관/박물관만을 찾아다니며 서울 곳곳을 탐험하곤 했는데, 일민미술관의 존재도 모를 시절에 우연히 미술관을 발견했습니다.   광화문 역 출구가 너무 많았던 탓에 교보문고로 바로 연결되는 4번 출구가 아닌 5번 출구로 나갔습니다. 출구 바로 앞 고풍스런 건물을 마주하곤 예쁜 생김새와 외벽의 현수막에 감탄하고 지나쳤던 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난해하기만 했던 현대미술에 흥미가 생기면서 처음으로 일민미술관을 방문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의 접근성 좋고 눈에도 잘 띄는 미술관이었음에도, 관심이 방문으로 이뤄지기까지는 왜 그렇게나 오래 걸렸을까요. 이전 전시들을 놓친 아쉬움을 여러분은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민미술관 방문 코스를 소개합니다. 전시가 주 목적이 아닐 지라도, 첫 방문 이후엔 미술관의 매력에 빠져 다음 전시를 기대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1 광화문 직장인들의 줄서는 맛집: 라멘 시미즈    이...

2024.04.18
미술관 나들이 코스, 대신 짜드립니다.

 지난 가을, 인턴으로 아트선재센터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아하는 동네의, 좋아하는 미술관으로 출근한다는 사실이 설레어 매일 들뜬 마음으로 출근하던 게 생생합니다. 대부분의 요일에는 점심을 거르고 부랴부랴 미술관으로 가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출근길에 있는 '우드 앤 브릭'에 들러 빵을 사서 먹으면서 걷곤 했습니다. 며칠 전, 함께 인턴으로 근무했던 친구로부터 '우리의 길빵(길에서 빵 먹기) 스팟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추억거리 하나를 잃은 기분이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트선재센터를 둘러싼 또 다른 맛집, 숨은 플레이스들을 기록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언젠가 아트선재센터를 방문하게 된다면, 아래 추천 코스를 따라가 보세요.   #1 간단한 점심 한 끼: 마음을 담아내면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북촌 맛집, 이름하야 '마담면'입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미술관 직원들도 자주 찾는다고 해요. 깔끔한 한그릇 식사에 감칠맛 나는 반찬들로 구성된 간단하고 정성스런 메뉴를 판매합니다. 꽤 가격대가 있는 근처 식당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서까래와 한옥 기둥 등 한국의 정서를 담은 내부 인테리어는 북촌 감성을 한껏 느끼게 해 줍니다. 고풍스런 북촌 길을 지나 만난 한옥 건물에서 따뜻한 점심 ...

2024.03.27
글로시에(Glossier.)가 Gen G를 만드는 법

 미국 gen Z를 강타한 뷰티 브랜드 글로시에(Glossier.). 나 또한 뉴욕 여행을 준비하며 무조건 가보고 싶었던 스팟 중 하나가 바로 글로시에 매장이었다. 특히 뉴욕에서는 소호와 브루클린에 매장이 존재하고, 나는 그 두 매장을 모두 방문하여 상품들을 구매했다. 이 글을 통해 그 경험으로 얻은 감상을 정리하려 한다.   글로시에(Glossier.)의 시작 : people first and products second    내 감상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일단은 글로시에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 이 생소하고 트렌디한 브랜드는 어디서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을까. 글로시에 창업주인 에밀리 웨이스(Emily Weiss)는 뉴욕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W 매거진에서 패션 어시스던트로 근무했다. 그녀는 일을 하는 동시에 2010년도부터 “Into the Gloss,”라는 뷰티 블로그를 운영했다. 특히 “Into the Gloss”를 띄운 본격적인 계기인 더 탑 쉘프(the top shelf)라는 코너는 실제 여성들이 실제로 쓰는 코스메틱 제품을 광고 없이 소개하는 일종의 인 마이 파우치(in my pouch) 컨텐츠였다. 어시스던트 생활을 하며 얻은 인맥 덕에 칼리 클로스와 같은 셀럽들이 그녀의 블로그의 인터뷰에 참가하며,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렇게 이미 쌓아놓은 팬층을 토대로, 그녀는 사람들에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이...

2024.03.26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다녀온 후, 그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오늘로부터 딱 두 달 전인 1월 21일, 나는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에 다녀왔다. 그 날 나는 서울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미학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그 경험을 글로 기록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두 달이 지난 지금 그 기록을 다시금 바깥으로 꺼내어 이 글을 보게 될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렇게 우리가 공유한 공통 감각은 서로를 모르는 우리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이어지는 글은 그 기록을 한 번 더 다듬어 여러분께 공유하는 글임을 알린다. 서울미술관을 관람한 일은 내게 기행문(紀行文)을 떠올리게 했다. 기행문은 문학용어 중 하나로 여행을 통해 얻은 체험이나 감상을 중심으로 기술한 문학을 일컫는다. 기행문에서 화자는 긴 여정 끝에 마주한 장면에서 감탄하고는 한다.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에 감탄사를 내뱉거나, 눈물을 토해내면서 말이다. 즉 여정의 끝은 카타르시스, 바로 ‘승화’다. 만약 기행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라면, 나의 서울미술관 방문기도 가히 기행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나는 서울미술관에서 기행문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을까? 4층으로 이루어진 미술관, 전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높아지는 층처럼 감상자의 감정도 고조된다. 관람의 마지막인 석파정(石坡亭). 감상하는 대상이 인공물에서 자연물로 전환될 때 궁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얻게 되는 그야말로 절정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2024.03.24
나의 프랑스 미술관 탐방기 - 오르세 미술관의 Van Gogh

   나는 프랑스에 온 뒤로 몇 번의 전시를 관람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미술관이 많고, 파리와 거리가 가까운 덕에 미술관에 들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몇 전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이곳에 기록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이야기해 볼 전시는, 오르세 미술관의 Van Gogh à Auvers-sur-Oise - Les derniers mois이다. 해당 전시는 2월 4일에 막을 내렸으나, 나에게 사소하지만 무거운 충격을 선사한 전시이기에 꼭 글을 남기고자 했다. 해당 전시 명을 한국어로 바꾸어 보자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반 고흐: 마지막 달月들> 정도일 거이다. 이 전시는 반 고흐가 죽기 전 두 달 동안 거주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작품을 모아뒀다. 그는 1890년 5월 20일에 이 도시에 이사했고, 7월 29일 사망했다. 전시가 다룬 기간이 고작 2달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전시는 풍부한 작품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이유는 고흐가 이 지역에 머무른 70일이라는 짧은 시기 동안 무려 74점의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명하디유명한 작가의 죽기 전 마지막 작품들이라니! 전시관은 작품을 감상하러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고흐의 전매특허와 같은 두터운 붓질에 분할된 색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형태를 파괴하지는 않지만, 작...

2024.03.16
가끔, 삶으로부터 안전거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광고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 이미지를 실현해 줄 마법사를 원한 적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디렉팅한 이 아이디어를 그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면 이게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있을 텐데. 40쪽의 PPT 마지막 장에 교수님의 최애 데이비드 오길비의 명언을 집어넣으며 성공적인 광고에 대한 고찰에 사로잡힌 적이 몇 번인지 이제는 셀 수도 없다. 오길비는 광고는 과학이라고 했고, 번벅은 광고는 예술이라고 했다. 그리고 교수님은 광고는 과학과 예술의 조화라고 하셨다. 아무렴 뭐든 당연한 말씀이다. 광고를 전공하며 느낀 것이 있다면 광고는 과학이지만 예술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예술은 무엇보다 원색적이며 직관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역량과 상관없는 분명한 목적, 즉 소비자의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시다 유니의 마법은 그래서 광고인에게 매력적이다. 착시를 이용한 원색의 이미지, 오브제의 다양한 질감 등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부각시키기에 차고 넘친다. 주로 무게감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가진 기업들이 그의 작품을 선호하는 듯 보였는데, 이는 요시다 유니의 작품이 간결하게 떨어지는 묵직한 색감으로 단절과 연속을 반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섭도록 맞아떨어지는 대비와 착시 이미지들은 일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나 <비바리움(2019)>을 연상...

2024.03.05
새로 만들어져서 조화를 이룬다는 것

 어떤 가공물들은 처음부터 그곳에 자리했던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되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져 갑자기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닌, 저 너머 들판이나 호수처럼 항상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그렇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그런 대상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의 환경 및 사람들과 어우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모난 종처럼 튀어나오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스럽게 자리하는 모습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러한 가공물까지 자연스러운 한 풍경 중 일부로 인식하게 된다.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는 과정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무언가 만들어질 때마다 우리는 그 모습에 감탄하곤 한다. 본 오피니언에서는 이와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 중 한 사람과 그의 설치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출처: edoardotresoldi   에두아르도 트레솔디(Edoardo Tresoldi)는 건축을 통해 사람과 풍경의 대화를 시적으로 끌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 건축은 표현의 수단이자 공간을 읽어내는 결정적인 역할로 자리한다.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예술 학교를 졸업한 후 조소, 무대 디자인 분야에서 일했으며, 2013년부터는 공공장소 또는 다른 곳에서 설치 미술 작업을 진행했다.주로 와이어 매쉬를 이용해 제작하는 그의 작품에서는 건축물의 투...

2024.03.03
도쿄에는 스시만 있나? 예술도 있다, 그것도 잔뜩!

  ‘도쿄 여행’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스시, 야경, 쇼핑, 온천…. 거리도 가깝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다녀올 수 있는 편한 여행지라서 한국 사람들에게 도쿄는 인기 많은 여행지이다. 그런데 도쿄가 의외로 예술 여행을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란 걸 아는가? 나 역시 작년에 도쿄를 처음 갔을 때는 익히 알려진 루트로 신주쿠, 시부야, 아사쿠사 등의 명소만 둘러보며 식도락 여행을 즐겼다. 어쩌다 보니 올해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 도쿄를 재방문하게 되었는데, 도쿄가 예술을 즐기기 좋은 도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술 애호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 도쿄에 대해 알아보자.   유럽까지 못 간다면 도쿄로! - 도쿄에서 만나는 서양미술   일본 미술 시장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고 유서가 깊다. 반 고흐를 비롯한 많은 서양 예술가가 실제로 일본을 좋아하기도 했고, 역사적으로 서양 예술가들이 많이 거쳐 간 곳이기 때문에 일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양 미술 작품도 꽤 방대하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작품을 들여오는 기획전도 보통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유명 작품을 가져온다. 미술 애호가들은 유럽까지 멀리 갈 것 없이 도쿄에서 좋은 전시가 열리면 원정 관람을 떠나기도 한단다. 제일 먼저 추천하고 싶은 곳은 도쿄의 대표적인 서양미술관인 국립서양미술관이다. 모네, 마네, 고갱, 고흐, 드가, 르누아르, 피카소 등...

2024.02.18
팝업 스토어는 왜 인기를 얻게 되었는가

 그동안 글에서 다양한 웹툰, 웹소설, 드라마 등등 콘텐츠 작품에 대해 다뤘었는데, 오늘은 이와 관련된 조금 특별한 공간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콘텐츠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외부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팝업 스토어’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떠오르는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 구글 트렌드 검색_팝업 스토어  팝업 스토어는 IT업계에서 짧은 기간 특정 장소를 빌려 운영하는 오프라인 마켓으로, 소비자들이 오프라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직접 체험하거나 굿즈를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는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상품을 전시 및 판매하기도 좋아 널리 쓰이는 마케팅 전략으로 3년 사이 시장이 급속도로 커져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기에 각종 기업, 영상 매체, 게임 등 다양한 곳에서 팝업 스토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평소 내가 관심이 깊은 웹툰/웹소설 업계 사례만 다뤄보고자 한다.웹툰, 소설, 영화 등 스토리 IP(지식재산권)을 다루는 콘텐츠 업계에서는 팝업 스토어라는 실제적인 공간을 통해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직접적으로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작품과 소비자의 접점을 넓히는 기회로 기존 팬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독자층 유입이라는 또 다른 홍보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마루는 강쥐 부산 팝업 스토어 포스터  그렇다면...

2024.02.17
게임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에 대해

 클라우스/카린에게는,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해당 게임 내 요소 및결말 관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게이머 입장에서 '무언가 키워낸다'는 것만큼 이입하기 쉬운 목표가 또 있을까? 내가 가장 처음 접한 게임은, 지금은 서비스 종료된 주니어 네이버의 동물농장이었다. 엄마는 강아지, 고양이 얘기만 꺼내도 질겁했고, 어린 나는 모니터 속 알록달록한 동물 친구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다.  돌고래, 시츄, 고양이... 각종 동물 캐릭터들과 더불어 다양한 미니게임과 아기자기한 아이템, 그리고 다 키운 동물을 본래 모습인 인간으로 돌려놓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나를 육성 게임에 빠져들게 하기 충분했다.추억의 게임 동물농장과 같이,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 또한 일종의 육성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부모가 되어 클라우스(남자아이) 혹은 카린(여자아이)를 입양해 양육한다.  그러나 마이 차일드 레번스보른은 여타 육성게임과는 좀 다르다. 아무리 금이야 옥이야 키운다 하더라도 아이가 대통령이나 왕자, 공주가 되는 등의 멋있는 이벤트를 볼 수는 없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대신 좀 더 현실과 맞닿은 메세지를 건넨다.     특이한 주인공  처음 이 게임의 제목을 봤을 때, 가장 생소했던 것은 레벤스보른이라는 단어였다. 막연히 독일어로 된 단어일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치 체제 시절 독일이 낳은 인간 교배장을 일컫...

2024.02.10
AI는 미적 다양성을 위협하는가 아니면 도움이 되는가?

 레브 마노비치(Lev Manovich)는 예술가이자 작가이자 디지털 문화 이론가로, 글 「AI Aesthetics」에서 현대의 사회와 문화에 AI의 영향과 한계 및 효용성을 고찰하며 ‘문화적 분석(Cultural Analytics)’에 대해 설명한다. 논지는 크게 AI와 문화 생산, AI와 문화 분석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전자를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AI가 미적 다양성을 위협하는가 아니면 도움이 되는가?”이다.      마노비치는 먼저 AI(인공지능)의 초기 목적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획득하는 것임을 밝히면서, 현재엔 다양한 산업, 학술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수준에서도 어디서나 존재하는 AI의 편재성과 활용도를 언급한다. 특히 전자기기의 보급과 네트워크의 발달은 AI의 확산과 발전에 기여했으며, AI 기능이 초기 인식의 자동화를 넘어 ‘초인식(super-cognition)’이라 불리는 능력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사진 분야에서 AI는 특정 조건에 맞춰 원하는 사진을 선택하는 기능과 이미지를 보정 및 생성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나 역시 어도비의 라이트룸을 사용하면서 ‘자동 보정’ 기능을 종종 이용하며 갤럭시의 갤러리 앱은 사진에서 인물을 꾹 누르는 인터페이스 작용을 통해 인물과 사진을 분리해 낸다.      관건은 이러한 AI가 미적 다양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이다. AI가 제시하는 ‘더 나은’ 이미...

2023.11.29
안도 다다오의 건축 철학을 품은 다큐멘터리

 어떠한 분야의 정점에 도달한 사람들의 삶은 누군가에게 존경과 귀감의 대상이 되며 다큐멘터리의 형태로 제작이 된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 강렬한 동기부여가 되고 건강한 도파민이 분비된다. 대체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철학과 가치관을 살펴보며 나의 가치관과 철학을 돌아보고 견고히 만들어 갈 수 있다.무기력하거나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찾아보는 다큐멘터리 리스트가 있다. 일전에 아트인사이트에 오피니언을 작성한 영화 <디올 앤 아이>와 전설적인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Oasis)를 주제로 다룬 다큐멘터리 <슈퍼소닉>, 전설적인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 등이 있다.      최근에 앞서 소개한 동기부여와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다큐멘터리 리스트에 추가할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바로 2019년에 개봉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 다큐멘터리이다. 이번 오피니언의 주제이기도 하다.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전시관인 원주에 위치한 '뮤지엄 산'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작년 12월 3일까지 안도 다다오의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국내에서 진행된 대규모 개인전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통해 안도 다다오를 다룬 다큐멘터리...

2024.01.04
다시 '새롭게' 돌아온 사진 트렌드 - 네 컷 사진

 아싸! 오늘은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맛있는 음식은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녹여보고, 또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진한다. 가끔은 코인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기도 하다가 자리를 옮겨 술 한 잔을 기울인다. 그러다보면 시간은 발이 달린 듯 금방 헤어질 시간을 향해 다가간다. 하지만 이대로 만남을 마무리 하기엔 제법 아쉽다. 그런 우리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사진 기계가 몇 대 놓여있는, 셀프 사진관이다. 3년 전쯤부터 이런 셀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부스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기억을 천천히 따라가 보면, 처음 셀프 사진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포토 부스 이름은 ‘인생네컷’이었다. 하루의 특별한 추억을 네컷에 담는다는 의미가 사람들에게 크게 와닿았던 걸까. 인생네컷은 급속도로 지점을 늘려갔고 현재 전국 각지에서 포토 부스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   Back to the Past, 스티커 사진   판도라의 상자에서 소재 하나를 꺼내볼까 한다. 분명 이 글을 읽는 몇몇 독자들은 ‘그랬었지’ 하며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정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런 셀프 사진기 자리를 대신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스티커사진’이다. 줄여서 스사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스티커 사진은 지금의 네 컷 사진처럼 다양한 사진을 찍고, 직접 인화할 사진을 고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큰...

2023.12.06
아름답지 않지만 아름다운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 세계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고 잘 그렸다고 칭찬하고,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한다. 그렇다면 20세기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어떤가? 그의 유명하다는 그림을 볼 때도 선뜻 그런 마음이 드는가?   프랜시스 베이컨, <회화 1946>, 1946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은 유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다른 많은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대표작 <회화 1946>를 함께 보자. 괴물의 형상을 한 어떤 존재는 비웃는 듯이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검은 우산을 쓴 괴물의 형상 뒤로는 해부된 채 뼈와 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가축이 드리워져 있다. 앞으로는 흰색 펜스가 둘리어 가까이 가면 안 될 것 같은 공포감을 준다. 베이컨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불편한 마음이 든다. 직접적으로 폭력적인 모습을 담아내지는 않지만, 그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가죽이 벗겨진 소, 동물도 인간도 아닌 어떤 존재, 그리고 이들이 뒤틀리고 포효하는 듯한 모습은 이를 둘러싼 폐쇄된 공간 안에서 괴롭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그림 중 아래의 그림 <루치안 프로이트에 대한 세 개의 습작>은 201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했다. 당시 한화 1,500억 원 대의 가격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아름답지도 않고, 부정적인 감정만을 불...

2023.11.22
다른 시대와 장소의 예술을 향해 걷다 - 독일 미술가와 걷다

독일 미술가와 걷다   [독일인은 구름을 사랑하며, 선명하지 않고 생성하는 중이며 어렴풋하고 촉촉하며 가려진 모든 것을 사랑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중 어느 한 국가의 이름을 들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그곳의 풍경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또는 그 나라의 전반적인 역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국가가 가장 번창했던 나날을 또는 가장 비참했던 시기를 그릴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한 장면은 그 나라의 사실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강한 고정관념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대다수 사람이 독일이라는 나라를 들었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매사 정확하고 정직한 자세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독일인의 성격, 세계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 그리고 씁쓸하지만 지울 수 없는 역사의 비극이었던 2차세계대전 정도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일상의 삶에서도 항상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배워야 할 모범의 대상으로 또는 지나친 강박 주의로 비치기도 한다. 니체와 칸트 같은 독일 철학가들의 사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지난 역사의 과오를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독일인의 모습, 다소 거칠게 들리는 언어까지, 이런 모습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바라보는 독일의 특징이다. 하지만 독일 출신의 미술가 또는 그들의 작품에 대해 누군가 물었을 때 익숙한 듯 말...

2023.11.03
로마, 피렌체, 살레르노의 여기, 이곳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첫 장거리 비행이면서 처음으로 해외에서 일주일 넘는 시간을 보냈다. 연차를 내기 힘든 K 직장인이라서 연차 다섯 개를 어디다 이어 붙일지 열심히 고민하다가 항공권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10월 초중순으로 결정했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 당일치기와 1박을 섞어서 누가 봐도 한국인 관광객다운 꽉 찬 일정을 채우고 돌아왔다.돌아와서 기억과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기대하지 않았는데 멋있었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관광지를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어디까지나 '덜' 알려진 곳이라 다른 관광지에 비해 관광객 수가 상대적으로 적을 뿐이지, 정말 사람이 없는 곳은 단 한 곳밖에 없지만 말이다. 이렇게나 좋은데 왜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었던 곳을 로마, 피렌체, 살레르노 도시별로 한 나씩 소개하려고 한다. 1. 로마 - 국립 현대미술관  고대의 전통과 르네상스 문화를 가지고 있는 로마에서 뜬금없이 현대미술이냐 할 수 있겠지만, 내 취향은 현대미술이다. 로마는 로마대로 좋고, 현대미술은 현대미술대로 좋은 법.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대리석 조각은 라오쿤뿐이라 보르게세 미술관을 지나치고 발길이 닿은 곳은 국립 현대미술관이었다.      장엄한 외관에 세련된 내부, 그리고 굉장한 작품 수를 자랑하는 곳이다. 전시관에 들어서고 처음 느낀 감정은 '박력'이었다. 넓은 공간과 높은 층고, 그 커다란 벽을 빼곡히 채운 건 회화 작...

202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