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로미오 몬테규와 줄리엣 캐퓰릿이 가문 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사랑을 하지만 결국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되는 작품이다. 이 희곡을 바탕으로 발레 문법에 맞게 각색하여 만든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1935년에 작곡된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발레 음악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많은 안무가들이 자신만의 해석과 안무, 연출을 시도해 왔다. 원작이 중세 이탈리아의 베로나 광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전 발레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고전 발레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무용수들의 감정과 서사에 집중한 드라마 발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인 ‘발코니 파드되’(Balcony pas de deux)와 두 가문의 대립을 표현하는 데 보통 사용되는 ‘기사들의 춤’(Dance of the knights)이 유명하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러시아(소련)의 이보 소타나 라브로프스키가 안무한 버전으로 공연되었지만, 이를 존 크랑코, 케네스 맥밀란, 누례예프, 유리 그리고로비치, 프레조카주, 노이마이어 등 다양한 발레 안무가들이 개정해서 무대 위에 올렸다. 이 글에서는 유명하고 상대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크랑코의 버전, 맥밀란의 버전, 마이요의 버전, 매튜 본의 버전을 비교 및 분석한다. 크랑코의 버전은...
지금의 한국 클래식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인물은 누굴까. 가장 ‘뛰어난’이라고 하면 갑론을박이 오고 갈 테지만, 가장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에 관해서는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바로 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이다. 콩쿠르 이후 임윤찬의 인기는 말 그대로 신드롬 같아서 그를 통해 클래식에 입문했다는 팬들도 많다. 뛰어난 실력뿐 아니라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스타성도 겸비한 그는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러 마땅할 정도이다.밴 클라이번에서 그의 연주 영상은 당연히 나의 마음도 끌어당겼기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그의 연주를 실황으로 들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얼마 전 다녀온 서울시향의 <얍 판 츠베덴의 새로운 시작: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에서였다. 공연은 임윤찬과의 협연하는 1부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그리고 2부에는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으로 이루어졌다.공연이 시작하고 임윤찬이 등장하자 마치 연예인을 본 것처럼 신기한 기분이 들었고, 그의 연주가 너무나 기대되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강약 조절과 섬세한 트릴 등은 너무나 좋았지만, 기대처럼 큰 감동을 받지 않은 나 스스로에게 조금 놀라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음원에서도 임윤찬의 베토벤보다 라흐마니노프를 더 좋아했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은 사그라든 기대와 함께 시작된 2부의 말러. ...
금호아트홀 연세는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안 백양누리에 위치에 있다. 앞서 소개한 콘서트홀 두 곳은 2000석을 상회하는 대규모 공연장이지만 금호아트홀 연세는 좌석 수 390석의 실내악과 독주회를 위한 공연장이다. 좌석간 편차가 적은 홀이기 때문에 이전의 콘서트홀 리뷰 방식처럼 세세하게 구역별 차이를 짚어보지는 않겠지만, 서울에서 피아노를 듣기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에 소개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 금호아트홀의 좌석은 A열부터 N열까지 14줄로 되어 있고 줄 간격이 넓은 편이다. 금호아트홀 연세는 어디를 앉아도 상당한 수준의 음향을 보장한다. 우선 객석이 복층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아 천장이 높지 않고, 지하에 위치한 소규모 공연장이기 때문에 악기의 소리가 꽉꽉 들어찬다. 하프 소리도 좋고 바이올린 소리도 좋지만 역시 피아노가 가장 좋다. 여담으로 공연장이 보유한 피아노의 관리 상태도 좋은 편이다. 231012 김다솔 피아니스트 리사이틀 너무 큰 콘서트홀들은 음향의 퀄리티보다도 객석에 도달하는 음’량’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실내악과 리사이틀 위주의 소규모 공연장에서는 벽면에 부딪혀서 도달하는 반사음향 이전에 객석에 전달되는 음의 크기 자체가 만족스러울 확률이 높아진다. 금호아트홀 연세의 경우에는 반사음향과 직접음 둘 모두가 흘륭하다. 아주 작은 소리도 선명하게 전달되며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금호아트홀 ...
한창 Y2K가 문화예술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더니 요즘 패션계에서는 올드머니라는 게 대세인가보다. 이건 무슨 말인가 싶어서 찾아보니까 클래식한 멋이 있는 우아한 복장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 분야에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면 다른 분야와 거시적인 것에도 영향이 가기 때문에, 앞으로의 문화예술은 클래식의 힘이 돋보이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예측을 해보았다. 클래식, 나는 클래식이 좋다.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멋은 유행을 타지 않고 계속해서 그 우아함을 뽐내기 때문이다. 그게 가장 돋보이는 건 영화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고전명작'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은 클래식이 가진 매력을 현재까지도 내뿜지 않은가. 이 매력이 문득 생각나서, 오랜만에 클래식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를 하나 보았다. 오드리 헵번이 열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토리로 보기엔 난해한 감이 적지 않다. 주인공 홀리는 파티마다 등장하는 콜걸이고, 그런 홀리가 초면부터 편하게 대하는 사람은 이제 막 윗집으로 이사 온 가난한 작가 폴이다. 둘은 너무 뜬금없이 사랑에 빠지고, 뜬금없이 사랑이 깨지며, 뜬금없이 다시 이어진다. 그 이유는 홀리의 강박적인 신분 상승 욕구. 돈이 많은 사람이면 결혼부터 꿈꾸는 홀리는 폴의 진심 가득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부자들만 만나고 사랑하려 한다. 그 이면에는 홀리의 너무나도 공허한 내면이 ...
우리는 흔히 예술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 거라 기대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평론가가 풀어놓은 해설이나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고, 전시에 가서도 도슨트나 작품 해설 가이드를 열심히 듣는다. 예술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을 거라 믿고, 그 의도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서양 음악사를 공부하고 작곡가에 대해 찾아보면서 음악을 이해하려고 한다. 가사도 없어서 모든 해석이 열려 있는 클래식 음악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듣기에 참 막막하다. 그래도 배경지식을 알고 들으면 음악에서 어떤 메시지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된다. 이를테면, 베토벤이 평등을 지지하고 혁명가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왠지 그의 음악에서 평등을 지지하는 메시지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예술에 의미 부여를 하려는 시도는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정치계에서도 번번이 있어 왔다. 히틀러가 바그너 음악을 아주 좋아했고, 민족 우월주의와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고자 바그너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실제로 바그너는 유대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가 바그너의 음악을 감상하는 데 영향을 미칠까? 예술가의 사상이나 예술 밖에서의 행위가 그의 창작물을 평가할 때 고려되어야 하느냐의 문제는 최근까지도 해결되지 ...
서울 강남의 어느 대로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외국의 자동차 전시장이 유독 눈에 띄는 이 대로변은, 압구정역과 압구정로데오역 사이에 위치 해있다. 퇴근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도로는 분주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차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곳 대로변의 차들을 유심히 보자니, 오늘날 차는 대부분 둥근 디자인으로 출시되는 듯하다. 예전처럼 각이 진 차량의 디자인은 쉽게 찾기 어렵다. 그러던 중 클래식과 레트로가 적절히 섞인, 각진 모양의 차 한 대를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 만난다. 과거를 만난 듯한 이루 말할 수 없는 반가움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이곳. <포니의 시간> 전시회가 열리는 ‘현대 모터 스튜디오’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직원분의 안내를 받고 가장 높은 층으로 이동한다. 여느 다른 전시회들과는 다르게, 가장 높은 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관람하도록 동선이 구성되어 있다. 가장 높은 층에서는 전시회의 배경에 대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 콘텐츠들로 구성되어 있다. 70~80년대 사람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은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전시회의 시작을 연다. 더불어 그 시대의 경제, 문화 등 생활상을 책, 영상, 음악, 미술 콘텐츠 등으로 가볍게 접할 수 있다. 그 뒤로는 본격적으로 현대자동차의 ‘포니’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제작되었는지를 관람할 수 있다. 특히 몰입도를 위해 다양한 콘텐...
“대체 클래식은 무슨 재미로 들어?”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하면 자주 받게 되는 질문이다. 대중음악에 비해 너무 긴 분량, 가사도 없어서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음악, 옛날부터 같은 레파토리만 반복해서 연주하는 전통, 부담스러울 만큼 진지하고 엄중한 실황 공연의 분위기… 확실히 클래식이 대중음악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불친절한 건 사실이다. 나도 클래식을 즐겨 듣게 된 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클래식 초보자다. 얼마 전까지 같은 질문을 했던 사람으로서, ‘초보자가 알려주는 클래식 즐기기 가이드’를 써보고자 한다. 아마도 앞으로 클래식에 더 조예가 깊어질수록 감상법도 달라지겠지만 (어쩌면 그때 가서 보면 지금의 가이드가 부끄러울 만큼 초보적일지 모르지만),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는 사실 초보자가 제일 잘 알 수도 있다. 사람들이 클래식에 대해 무엇을 제일 어려워하는지 가장 가까운 시기에 느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고수들이 보면 한없이 얕을 수는 있겠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의 감동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 가보겠다. 1) 선곡 : 파고 들어가기 제일 먼저, 무슨 곡을 들어야 할까? 사실 이 문제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맞는 방법이 다를 것이라서 한 가지 방법을 추천해 주기가 어렵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클래식은 집중하거나 잠들기 위해 듣는 잔잔하거나 웅장한 음악’이라는 편견부터 버...
2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정상화 선생님의 전시를 기억한다. 너무 좋아서 두 번 다녀왔기 때문이다. 정상화 작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단색화 작가로, 캔버스를 여러 각도로 접어서 작품 표면에 변주를 꾀한다. 그런 그가 갤러리 현대에서 최근 또 한 번 큰 규모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잘 구워진 브라우니를 자르는 것 같다. 먼저 캔버스 앞면에 색을 칠하고,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작품이 마르면 이를 뒤집은 뒷면에다 끝이 납작한 도구를 찍어 누른다. 이렇게 하면 캔버스 앞면에 말라있던 페인트가 깨진다. 이 작업은 일정한 간격으로 캔버스 전체에 퍼진다. 가로세로가 반듯한 바둑판 모양일 때도 있고, 간격이 조금 더 넓으면 오래된 건물의 타일 바닥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대각선으로도 균열이 생기면 전체적인 패턴은 더욱 복잡해진다. 다시 캔버스를 뒤집어 앞면을 본다. 이 과정에서 어떤 칸에서는 물감이 아예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페인트가 깨지며 생긴 틈으로는 광목의 색과 질감이 그대로 보인다. 이 위에 다시 페인트칠을 한다. 그 후에 뒤집는다. 뒤쪽에서 또 캔버스를 꾹꾹 찍어 눌러가며 앞면의 마른 캔버스에 균열을 준다. 뒤집는다.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의 작업실에는 물감이 깨지며 내는 도독, 도독 소리만이 울린다. 그의 작품은 하나의 공간 같다. 세월의 흐름에 주름지고 떨어져 나간 피부는 ...
지난달 부천아트센터가 개관했다. 개관공연을 통해 일반 관람객들에게 오픈되기 전부터 음향이 엄청나게 좋다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로 국내에서 손에 꼽을 만한 수준이라 할 만 하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인천이 더 좋다) 부천아트센터에서는 지금까지 두 번의 공연을 보았다. 새로 지은 홀에 대한 얘기에 앞서 그동안 다녀본 수도권 주요 콘서트홀들의 음향과 특징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들을 차례로 적어보려 한다. 먼저, 나는 주로 피아노 곡을 즐겨 듣는 만큼 피아노 소리 위주로 음향을 판단한다. 물론 교향곡을 안 듣는 것은 아니지만, 교향악을 연주할 때 악기군 간의 블렌딩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홀 보다 피아노 독주회에서 피아노 소리가 선명하게 울리는 홀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대부분의 한국 클래식 애호가들이 처음으로 가게 되는 클래식 음악 전용홀이다. 가장 많이 가게 되는 곳도 이곳이고, 아마 높은 확률로 생에 마지막으로 방문하게 될 클래식 전용홀도 이곳이 될 것이다. 죽기전에 서울 시내에 이보다 더 좋은 콘서트홀이 생길 것 같지는 않기에. 가장 무난한 음향을 가지고 있는 홀이다. 전달력이 특별히 좋지는 않지만 음이 왜곡되지도 않는다. 너무 건조하지도 않고 너무 울리지도 않는다. 쉽게 말해 버프도 디버프도 없다. 나처럼 좀 더 울림이 있는 촉촉한 음향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살짝 ...
개인이 보는 세상 같은 것을 경험하더라도, 어떤 부분을 인식하느냐에는 각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풍요의 세상을 맞이하더라도 그 속에서 우울을 포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격변과 고난의 시간 속을 유영하는 와중 빛나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포착하는 사람이 있곤 하다. 요컨대, 어떠한 대상에 관한 관념, 의식, 기억, 기분 등이 개인마다 상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피사체를 예술적 감각을 발휘하여 표현하는 화가는, 그 직업의 특성상 이러한 특징이 더욱 현저하게 드러난다. 이번 글에서 소개하는 전시의 주인공인 라울 뒤피는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 고초의 시대를 겪으면서도 평생에 걸쳐 삶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그려낸 화가로, ‘기쁨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파블로 피카소는 “라울 뒤피의 그림은 항상 나를 행복하게 한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거트루트 스타인은 “라울 뒤피는 즐거움 그 자체이다.”라고 말했듯이, 여러 작가는 물론이고 세간에도 ‘희망을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정평이 난 작가라고 볼 수 있다.그런 그의 회고전이 얼마 전 국내에서 개최되었다.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된 전시로, 국내 대형 회고전이다. ‘회고전’이니만큼,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같이 걸어가며, 생전 그려온 다양한 분야의 작업물을 머금을 수 있었던 뜻깊으면서도 재밌는 시간이었다. 전시의 내용이 꽤 길고 심도 있기에, 관람하면...
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상황은 몇 번이나 존재할까. 일단 카타르시스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 보자.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심리학적 관점에서 “자기가 직면한 고뇌(苦惱) 따위를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강박 관념을 해소시키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깊은 생각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일을 한다. 내 고뇌의 해소 방법은 걷기이다.일부러 모르는 곳에 가서 처음 보는 풍경, 알지 못하는 골목 골목을 지나치며 걷는다. 두 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걸으면 어느샌가 몸이 무거워지고, 이 이상 걸으면 다음 날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걷다 보면 쾌감과 해소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 감정도 카타르시스, 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내가 기억을 할 수 있는 때부터 지금까지, 명확하게 카타르시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경험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다. 그중 가장 최근의 카타르시스는 연극 ‘레드’를 보던 중에 찾아왔다. ‘레드’는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씨그램 빌딩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연극이다. 공연에서는 가상의 조수 ‘켄’을 등장시키고, 갈등과 논쟁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다.[씨그램 빌딩 사건이란? - 1958년, 마크 로스코는 3만 5천 달러의 엄청난 계약금으로 뉴욕 씨그램 빌딩 안의 포시즌스 레스토랑 벽화를 주문 받는다. 1959년, 미켈란젤로의 벽화를 보고 레스토랑의 벽화가 속물적인 장소의 장...
9월 2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아티스트 라운지 9월 공연으로 <강효정의 바로크 레볼루션>이 개최되었다. 아티스트 라운지는 예술의전당에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주목받는 젊은 아티스트들의 연주에 편안한 해설을 곁들여 매달 다른 콘셉트로 진행되는 음악회이다. 이번 공연에는 르네상스부터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연주하는 바로크음악 단체 ‘알테 무지크 서울’이 참여했다. 알테 무지크 서울은 2009년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인 강효정이 창단한 단체이다. 이번 연주 프로그램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저음 악기인 비올라 다 감바와 바로크 첼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 프로그램 - 텔레만, 서곡 모음곡 D장조 TWV.55:D6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 G장조 BWV.1007 바흐,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 제2번 D장조 BWV.1028 르벨, 카프리스 중 ‘춤곡의 특성들’ 마레, 스페인풍의 라폴리아 예술의전당 제공 암전이 되고, 연주자들이 무대 위로 들어섰다. 모두 바로크 시대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다만, 헤어 같은 경우는 가발을 쓰지 않고, 원래 자신의 머리로 스타일링 하였다. 아마, 가발을 쓰고 연주하기에는 힘들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크 악기와 바로크 시대의 의상들과 함께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자 마치 바로크 시대 왕궁 음악회에 참여 받은 느낌이 들었다. 현재 일...
남다른 호흡과 음악성으로 한국 실내악의 위상을 드높이는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온 17년 차 피아노 삼중주단 '트리오 제이드'가 오는 8월 20일, 제4회 정기연주회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 오른다. 결성 이후 세계 유수의 콩쿠르를 석권하며 음악성을 인정받고 이후 솔로이스트로서도 국내외에서 각광받는 연주자로 입지를 굳혀온 트리오 제이드의 박지윤, 이정란, 이효주가 이번에는 동유럽 체코의 음악을 꺼내 들었다. 탁월한 해석력과 연주력으로 호평 받았던 프렌치 레퍼토리들을 비롯, 2016년 슈베르트 전곡 연주와 2019년 베토벤 전곡 연주 시리즈를 통해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입증함과 동시에 클래식 무대의 다양성에 힘을 더해온 이들이 결성 16주년을 맞아 선택한 주제는 바로 '보헤미안'이다. 1부에는 체코의 작곡가 요제프 수크와 안토닌 드보르작을 조명한다. 드보르작이라는 보헤미아의 거성을 만나기 전, 드보르작의 음악 계보를 잇는 음악가로 평가받는 당대의 세계적인 바이올린 비루투오조이자 드보르작의 각별한 제자이며 사위였던 요제프 수크. 그의 피아노 삼중주를 위한 '엘레지' 작품 23으로 대장정의 시작을 연다. 이어서 체코의 민족성의 뿌리를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로 승화시킨 동유럽 대표 작곡가 드보르작을 전체 프로그램의 허리에 배치했다. 드보르작의 복잡한 심경과 갈등, 긴장이 담겨 어둡고 깊이 ...
힉 엣 눙크! 무슨 뜻일까? 얼핏 보면 발음이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영어 'Here and Now'를 생각하면 수월해지는 '힉 엣 눙크(Hic et Nunc)'.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이라는 뜻을 가진 이 페스티벌은 비정형성(非定型性)을 특징으로 하는 차별화된 클래식 음악 축제이다. 클래식 음악이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꾸준히 해석의 역사를 써가고 있지만, 현재도 지속적으로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며 창작의 역사도 쓰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그 현장을 응축해서 담아내는 것이 '힉엣눙크! 페스티벌(이하 힉엣눙크!)'의 비전이자 미션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신곡 초연과 과감한 창작의 현장을 그대로 들여오기도 하고, 젊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음악가를 자신 있게 뽑아서 추천하며, 고전 음악을 주제로 테크놀로지와 타 장르 예술이 결합하는 현장을 발굴하기도 한다. 무정형성과 무경계성은 힛엑눙크!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자 다른 수많은 음악 축제들과 구분 짓는 확실한 태그이다. '힉엣눙크! 페스티벌'은 현대음악제를 표방하지는 않으나 창작의 역사에 늘 주목하는 음악 축제이다. 아울러 수백년동안 내려오는 고전음악을 21세기의 환경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선구자적인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2022년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모차르트, 베토벤 등과 같은 이미 현존하지 않은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연주하는 예술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에도 클래식 음악은 많은 현존 작곡가들에 의해, 시대적 흐름과 새로운 음악사조를 반영한 다수의 창작품들로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앙상블블랭크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많은 작곡가들이 지금도 "클래식음악"을 작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클래식음악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특히, 전 세계의 35세 미만의 젊은 작곡가들을 대상으로 한 앙상블블랭크 작곡 공모를 통하여 선정된 작곡가의 작품들이 이번 무대에서 세계 초연된다. 살아 숨쉬는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들이다. 또한 앙상블블랭크의 위촉으로 새롭게 쓰여진 따끈따끈한 곡들도 세계 초연된다. 그 어느 공연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새롭게 살아있는 작품들이다. 앙상블블랭크는 살아있는 작곡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공모하고 연주함으로써 젊은 작곡가들의 활동의 기회를 확대하고 세계적 음악의 추세와 미학의 다양성을 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단순한 창작발표회가 아닌, 국내 작곡가와 더불어 세계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한 공연에 소개하는 앙상블블랭크의 창의적 무대연출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앙상블블랭크는 현대음악과 현대예술,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 퍼커...
오는 7월 10일 일요일 14시,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 주최 [막스 리히터 스페셜] 공연이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개최된다. 이번 공연은 전 세계를 비롯하여,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막스 리히터의 대표곡을 선보인다. 디카프리오 주연의 [셔터 아일랜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와 [눈이 부시게]를 비롯한 각종 드라마에 삽입되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막스 리히터의 대표작 [On The Nature Of Daylight]을 국내 초연으로 연주한다. 이와 함께 비발디의 [사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22개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한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를 우리나라 젊은 클래식 아티스트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의 협연으로 들려준다. 그 외 작곡가 하이든, 라모의 작품을 더하여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하이브리드 프로그래밍으로 기획의 신선함을 더했다.막스 리히터의 세계적 히트곡 [On The Nature Of Daylight]의 한국 초연 - 영국 가디언지가 뽑은 21세기 최고의 클래식 앨범으로 선정된 [블루 노트]의 수록곡인 이 곡은 당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폭력 메시지를 담은 이 앨범 중 막스 리히터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계기가 된 그의 대표작이다. 2006년 발표 이후 현재까지 무려 8편이 넘는 영화에 삽입되었고 2019년, 배우 김혜자 주연의 드라마 [눈이 부시...
오는 7월 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한국 음악계에서 활약하는 두 실력파 앙상블팀, 현악사중주단 아벨 콰르텟의 윤은솔과 피아노듀오 신박의 박상욱이 듀오무대로 만난다.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 우승, 제네바 국제 콩쿠르 한국인 최초 3위 저력의 실내악단 아벨 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와 ARD 국제 음악콩쿠르 피아노듀오부문 1위에 빛나는 피아노듀오 신박의 피아니스트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이번 듀오연주가 이목을 모으고 있다. 1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앙상블팀을 유지해오며 갈고닦은 앙상블 구현에 대한 높은 음악성과 해석력, 높은 차원의 이해도를 바탕으로 독일과 보헤미안, 북유럽에 이르기까지 바이올린 낭만 레퍼토리의 보석들을 엄선하여 선보인다. 한국과 해외의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무대 및 해외 저명 음악제, 독주 무대를 이어오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던 두 연주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비엔나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윤은솔과 박상욱은 유럽에서 긴 시간 지내며 흡수하고 체화 시킨 본토의 낭만주의 정서를 객석의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보겠다는 포부가 담긴 연주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듀오편성의 작품들 중, 긴 시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여러 문화권 작곡가들의 작품을 엄선하여 올릴 예정이다. 1부와 2부를 각각 모두 '로망스와 소나타'로 구성하였는데 낭만주의시대 음악 고유의 서정성과 감수성를 백분 ...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정수가 담긴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이 오는 6월 10일부터 10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1952년 프랑스어 및 영어 초판본, 출판 당시 편집자 및 예술가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하여 작가의 생전 인터뷰, 소장했던 라이카 카메라를 포함하는 컬렉션을 소개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작품 관람은 물론, 1952년 출간된 이래 사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산이 되어 버린 사진집 <결정적 순간>을 탄생시킨 하나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이다. 편집자이자 당대 최고의 컬렉터였던 테리아드,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을 지은 사진작가이자, 출판사 대표인 딕 사인먼, 거동이 불편한 와중에도 책의 커버아트와 타이틀을 손수 그려 넣어준 앙리 마티스와 주고받은 편지와 일화 등 역사적인 사진집이 나올 수있었던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직접 설명하는 자신의 작업과 이 책의 관계에 대한 슬라이드 쇼 렉처 영상(ICP, 1973)은 이 책에 관...
지난해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와의 라흐마니노프 2번과 3번 협주곡 음반 발매로 유럽 음악계에서 호평을 받으며 자신의 입지를 확연히 구축한 피아니스트 조재혁. 매해 인터내셔널 음반을 지속적으로 발매하면서 영국 카도간홀,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홀,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홀 등, 연주자들에게는 꿈과도 같은 저명한 공연장에서의 무대를 차곡차곡 바이오그래피에 추가하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어느새 세계적인 아티스트로서 위상을 달리하는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무언가 종류가 다른 기쁨을 느낀다. 피아니스트가 어쩌면 저렇게 다재다능할까, 감탄이 터져 나오던 그의 해설 음악회와 방송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특히 지금 피아니스트 조재혁의 행보는 더욱 감회가 새로우리라. 굵직한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의 단골 협연자이자 이제 세계 주요 공연장의 시즌북에서 그의 이름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넉 장에 달하는 인터내셔널 음반을 포함한 여섯 장의 디스코그래피에, 곧 출시가 예정된 모차르트 음반까지. 세계 음악계에서 보여주는 그의 광폭 횡보는 이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독일 하노버에서 녹음한 피아니스트 조재혁의 쇼팽 앨범이 발매와 동시에 <쇼팽>이라는 동명의 타이틀로 전국 투어를 한다. <쇼팽>은 피아니스트 조재혁만의 첫사랑이자 영원한 마음의 고향 같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들로 그가 월드 투어에 이어 한국에서의 첫 전...
<기획 노트> ⓒ(재)김해문화재단 김해시/김해문화재단이 제작한 창작오페라 <허왕후>가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다시 한 번 웅장한 무대를 선보인다. 창작 오페라 <허왕후>는 2000년 전, 가야사의 시작을 알리는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조명한 오페라다. 철기와 각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가락국을 방문한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은 청년 김수로의 열성과 합리적인 자세에 반하고 이어 김수로는 활발한 해상무역과 수준 높은 제철기술, 민주적인 통치를 바탕으로 찬란한 철기문화 국가를 탄생시킨 왕이 된다. 대본 김숙영, 작곡 김주원이 역사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하여 가야의 역사와 김수로왕, 허왕후가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 그리고 사랑을 오페라에 담았으며, 우리말로 작곡된 허황옥 아리아 '해맑은 웃음 뒤에 강인함이'와 김수로 아리아 '백성의 마음을 아는 왕이 되겠노라' 등의 시적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를 갖춘 아리아들을 통해 생생한 가야 시대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허왕후>는 2020년 2월 사업을 시작하여 2021년 4월,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초연되었고, 같은 해 대구오페라하우스(9월,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와 강동아트센터(10월, 2021 서울오페라페스티벌)에서도 무대를 선보여 김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 제작의 좋은 표본이 되고 있다. 김해문화재단 관계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