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
43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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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로 구현한 한국 전통미술의 다양한 면모들

'인터미션'이라는 단어는 공연 분야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다. 연극 속 인물의 서사에 단단히 몰입했다가도, 잠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음 챕터를 흡수할 준비를 하는 것이 관람객이 인터미션을 마주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이 인터미션을 전시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단편극을 한데 모아, 단편소설집처럼 한데 엮어두었다면? 우리가 잠시 여행을 떠날 이 단편극의 배경이 머나먼 옛날이라면? DDP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시나리오를 구현한 미디어아트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부니 별이 빛난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간송미술관의 국보급 소장품들을 생생한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대형 스크린으로 미디어아트 특유의 웅장한 영상미를 그대로 살려내면서도, 미디어아트만이 구현할 수 있는 장면들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시작이 1관의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간송의 혜안을 상징하는 국보로, 둥그런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정가운데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앞으로 전시장 안에서 펼쳐질 이야기의 모든 근본이 되는 한글이 훈민정음으로부터 쏟아져내려와 펼쳐지고, 이윽고 다시 빨려 들어간다. 언뜻 통로처럼 보이는 공간 역시 전시장이다. 겸재 정선의 여정이 담긴 '해악전신첩'이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있어, 정선을 따라 걷듯 금강산을 곁에 둔 채 공간을 느껴볼 수 있다. 해악전신첩 너머로는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202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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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가우디의 구엘공원, 카사바트요, 카사밀라 그리고 사그라다 대성당

마지막 여행지였던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우리는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숙소에 도착해서야 당장 내일 관광할 만한 것들을 급하게 찾아보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가우디. 안토니오 가우디는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로, 스페인 건축학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아 건축했다는 것. 이 정도의 정보만 안고 향한 구엘 공원은. 발걸음의 속도를 줄여 한국어 투어 가이드를 엿듣고 싶어질 만큼 흥미로웠다. 구엘이 가우디와 얼마나 끈끈한 관계이고, 본래 공원이 아닌 주택 단지 설립 프로젝트였으며, 언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이 되었는지 등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나를 사로잡은 건 그저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흙바닥. 불어오는 바람에 흙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으나, 그럼에도 걸음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기발한 가우디의 아이디어들이다. 딱딱한 직사각형의 벤치 자리를 뺏은 동그란 구 모양의 조형물, 나무줄기 어쩌면 파인애플을 닮은 기둥, 크고 작은 돌을 편견 없이 쌓아 올린 돌담. 그 위에 본인을 뽐내고 있는 야자수 나무들의 조화는 사랑스럽다. 메인 광장을 감싸고 있는 뱀 벤치는 인체에 맞게 구불구불 설계되어 편안함을 제공한다. 자연을 닮은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가우디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채롭게 빛나는 모자이크 타일이 눈에 띄는데, 이는 트렌카디스 기법이다. "깨뜨리...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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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 퓰리처상 사진전

저널리스트라는 꿈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성적표의 장래희망 칸은 항상 이 단어로 채워져있었다. 1학년 장래희망 : 기자 2학년 장래희망 : 기자 3학년 장래희망 : 기자 내가 기자의 꿈을 가지게 된 계기는 바로 2014년, 중학교 3학년 때 큰 충격을 안겨줬던 한 사건이다. 전 국민이 함께 슬퍼하고 기도했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이다. 당시 많은 언론사에서 사고 이후 상황에 대해 많은 보도를 이어갔다. 그들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사고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 과정 속에서 제대로 된 팩트 체크 없이 신속하게 모든 정보를 전달하면서 유가족들과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렸고, 상처를 안겨주었다. 결국 많은 국민들이 언론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 역시 언론의 책임감에 대해 큰 실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실망감은 곧 다른 의미로 바뀌었다. 단순히 실망하고 고개를 돌리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직한 언론, 책임감 있는 언론의 중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대학에 진학한 나는 미디어에 대한 많은 강의를 들었다. 사회 속에서 미디어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과 자세, 팩트체크의 중요성, 언론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오보와 가짜 뉴스(Fake News)의 차이'에 대한 글을 쓰며 언론의 모습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만들어갔다. 많은...

2025.01.03
7
베를린의 유대인 박물관에 다녀오고

베를린에 다녀왔다. 같은 독일인데도 편도 8시간이라니, 새삼 한국이 얼마나 작은 나라인가를 실감한다. 큰 도시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 따위 없는 편이지만, 베를린은 달랐다. 베를린으로 떠나기 며칠 전부터 괜히 히틀러와 나치 그리고 유대인 관련된 유튜브를 틀어놓곤 했다. 역사 심지어 세계사와는 더욱 친하지 않은 나지만. 분단국가 그리고 이방인으로 타국에 살고 있어서일까. 동독 서독 통일 그리고 유대인 학살 관련 내용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오전 10시 반 유대인 박물관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한 나는. 신호등 앞에서 둘 중 어느 건물이 유대인 박물관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청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어딘가 친숙한 바로크 양식 건물, 그리고 이곳저곳 그어져 있는 은색 금속 패널의 이질적인 건물. [“The official name of the project is ‘Jewish Museum’ but I have named it ‘Between the Lines’ because for me it is about two lines of thinking, organization, and relationship.”] - Daniel Libeskind 그 중에서도 1989년 베를린시에서 주최한 "Extension of the Berlin Museum with a Jewish Museum Department" 세계 공모전 속에서 탄생한 리벤...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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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상 2024에 대한 다소 주관적인 리뷰

2024년 10월 25일부터 내년 3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가 진행된다. 전시에는 윤지영, 권하윤, 양정욱, 제인 진 카이젠 작가 총 4명의 후원 작가가 참여한다. 올해를 대표하는, 특히나 그것을 대표하는 장소가 한국의 대표적인 국공립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다면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되는 4명의 작가는 전방위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보여야 할 의미의 무게에 짓눌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국립미술관은 미술에 깊은 관심과 더불어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 오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현대미술 작가라는 직업에 알맞게 자신과 자신의 작업이 이 공간에 놓인 이유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은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단순히 국현미라는 태그를 따라온 관객도, 기술적이고 조형적인 찬란함 혹은 손에 잡히는 대부분이 공장제인 지금에 손으로 이룬 고도의 기술을 살펴보고 싶은 이들도, 이 욕망이 혼합되어 불분명한 대다수가 전시장을 찾는다. 서문에서 전시의 전경을 찾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가벼운 이유로 들어온 전시장은 깊은 동굴의 습기 같은 무게에 눌려있었다. 실제로 윤지영 작가의 작업을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의 작업은 비디오나 빛 이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암실이 조성되었으며, 제인 진 카이젠 작가는 ‘오로지’ 영상만 사용했기에 블랙 큐브 정도의 조도를 ...

2024.12.06
카미유 클로델은 해방되었을까?

 로댕만큼 실력 있었지만, 평생 그의 그림자에 가려져 자신의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고 생각한 조각가가 있다. 로댕의 제자이자, 예술 동반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이 바로 그녀의 이름이다. 클로델은 이미 성공한 조각가였던 로댕을 조수로서 처음 만나고, 곧 그의 예술적 협력자이자 동시에 연인이 된다. 하지만 로댕은 이미 만나고 있던 연인이 있었고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 것이 클로델과 로댕의 관계가 끝난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클로델은 로댕에게 또 다른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로댕을 존경했지만, 동시에 그의 명성에 자신의 예술성이 가려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예술적 독립을 갈망하게 된다. 이런 복합적 이유가 그녀를 계속해서 불안하게 했고, 결국 정서적 문제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조각 <생명의 물결>  그런 그녀의 정서적 불안함이 무색하게 그녀의 작품은 스승만큼이나 유려하다. 그녀의 대표작인 ‘생명의 물결’은 왈츠를 추는 두 인물을 통해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두 인물은 서로에게 매우 몰입하고 있으며, 동시에 물결처럼 운동성이 있는 관계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파도처럼 너울 치는 여성의 드레스를 통해 카미유 클로델 특유의 섬세한 조각술 역시 목격할 수 있다. 이는 두 인물에 내재한 강한 동적 에너지를 암시한다. 로댕과 밀접한 예술적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로댕과 클...

2024.10.15
모호함이 선명함으로 다가올 때 발현되는 빛이 있다 - 제15회 광주 비엔날레를 방문하며

  제15회 광주 비엔날레를 관람했다.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제목으로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사실 내 흥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사전 지식 없이 처음 마주하는 그대로 작품들을 느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타이틀 이상의 자세한 조사는 하지 않고 기대 없이 광주로 향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관람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느낌과 영감들을 많이 선사하는 기회가 되었다. 분주한 학기 중 소중한 예술 향유의 시간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솔직하게, 전시를 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난해하다’였다. 대부분의 전시회가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최근 봤던 적지 않은 전시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해석이 어려운 작품들의 연속이었다. 그림은 물론, 크고 작은 조형물들까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것일지 한참을 바라보며 고민하게 되었다. 곧바로 이해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한 태도에서 벗어나 처음 먹었던 마음대로 작품 자체를 느끼려 노력했을 때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먼저 ‘판소리’라는 주제가 독특하게 다가왔다. 하나의 문학 장르이기도,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이기도 한 판소리. 그러나 정말 ‘판소리’의 역사나 형식만을 고리타분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소리’라는 두 필수적 요소를 이용하여 그 안...

2024.10.14
베이징 예술의 중심, 798 예술구(798艺术区)

시간이라는 권력   남용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졌다. 기약은 있어도 명백한 '거주함' 앞에서, 매번 휘둘렸던 시간을 이젠 내가 어찌해볼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서 4개월간의 어학연수 생활. 유치원생들과 나란히 하교를 한 후 남는 시간들은 베이징의 미술관으로 흘러들어간다. 나의 도시 서울에서는 전시회 나들이를 과업 취급하더니 이제서야 예술을 찾는 이중적 면모에 자조하지만, 그 입꼬리가 끝내 호선을 그리기를 바라며 첫 번째 행선지인 798 예술구로 향해보았다. 양쪽으로 즐비한 갤러리와 노천카페,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화방.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허세 섞인 느긋함과 결국 떠나야 하는 이방인이라는 조급함 사이, 생경한 템포의 걸음을 걷는다. 눈에 띄는 갤러리 문은 어디든 두드려보고, 공간과 작품을 눈에 담고, 팸플릿을 수집해 돌아와 온통 모르는 글자뿐인 전시 서문을 번역하는데 들인 시간은 평소 같았음 형편에 맞지 않는 사치였겠으나, 시한부 권력자 인생에서는 '나를 위한 선물'쯤으로 가벼이 넘길 수 있을 듯하다. 난 저명한 예술가들의 나라 프랑스도, 자본과 현대미술로 대표되는 미국도 가본적 없다. 이제 겨우 우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본 참이지만, 베이징 또한 예술 여행을 떠나와도 좋을 도시라는 증거를 모으고 또 이렇게 글로 펴내보려 한다.   베이징 예술의 중심, 798 예술구(798艺术区)...

2024.09.20
올해로 3번째 생일을 맞이한 '키아프리즈'의 성장일기

국제 갤러리에 출품된 김윤신 작가 작품들. 사진 직접 촬영  올해로 어느새 3번째를 맞이한 프리즈-키아프(키아프리즈) 아트페어를 두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공통 의견이 있다. '키아프가 프리즈했다'는 말이다.키아프는 아트페어 동반자이자 세계적 미술축제인 프리즈를 적절히 벤치마킹하고, 동시에 국내 갤러리 부스 퀄리티를 높여 이런 평가를 받아냈다. 그랜드볼룸에 마치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과 같은 마스터피스존을 구성했고, 플러스를 통해 떠오르는 작가들을 조명했다.프리즈의 경우 이전 회차에서 보여줬던 600억 원대 피카소 회화, 수십억 원대의 샤갈 회화 등과 같은 대작은 적었다. 어깨를 가벼이 하는 대신 다채로움을 살렸다. 신진 작가 작품이 늘고, 아시아 작가의 비중을 높였다. 키아프는 해외 갤러리를 다수 들여오고, 프리즈는 한국 갤러리를 늘리며 함께 나란히 변화했다.올해도 7만여 명이 찾은 키아프리즈는 그림을 구매하기 위해 행사를 찾는 컬렉터만큼이나, 유수한 작품들을 관람하기 위해 모인 '관객'의 비중이 높다. 즉 대중이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전시장으로서의 역할을 도맡고 있단 의미다.그렇기 때문에 키아프리즈엔 관객이 페어를 통해 만나게 될 '경험'을 보다 섬세하게 큐레이팅할 무언의 의무가 주어지기 마련이다.관객의 시각에서, 3돌을 맞이한 키아프리즈가 지난 1, 2회와 비교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2024.09.17
인생은 경쾌하게, 라울 뒤피처럼!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에 커다란 벽면에 그려진 색채가 너울 치는 그림, <전기의 요정> 앞에는 사람이 늘 북적인다. 본 그림은 작년 예술의전당 라울 뒤피전에 실제로 오지 못했지만, 라울 뒤피의 가장 대표적 작품이다.      그는 이 그림을 파리박람회를 기념해 의뢰받았다. 역대 최고 규모의 박람회였으며, 파리는 주제를 ’전기’로 내걸었다. 라울 뒤피는 파리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벽화를 그리기로 했다. 동시에 하늘에는 주제성에 맞춰 전기의 요정을 그리고 땅에는 전기를 사용하는 다양한 건축물과 시설들이 그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리 퀴리, 에디슨 등 역사 속 주요한 인물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주제성과 동시에 이 그림은 그의 화풍 역시 잘 드러내고 있다. 필자는 라울 뒤피의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그림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붓질은 자유롭고 역동적이다. 선이 뚜렷하거나 사물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경계를 넘나드는 가벼운 터치를 보여준다.      빛의 예술가이기도 한 라울 뒤피는 사용하는 색감도 항상 화사하다. 꽃은 그가 자주 그린 대상 중 하나였으며, 화사한 빛으로 그려진 뒤피의 꽃은 마치 꽃잎이 피어나는 순간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관객은 자신의 공간이 진한 봄의 분위기로 물든 경험을 한다.      그가 자주 그린 풍경화 중,...

2024.09.16
예술과 사람이 모이는 공간, 런던 바비칸 센터

 어떤 건물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가장 먼저 런던에 있는 바비칸 센터가 떠오른다. 순전히 친구의 추천으로 방문했다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안은 채 돌아간 기억이 남아있다. 1년 후, 다시 바비칸 센터에 방문해 여전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상했다. 건물 하나를 보려고 런던을 가다니. 대체 어떤 점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그 이유와 함께 바비칸 센터를 소개한다.     바비칸과의 첫 만남   처음 방문했을 때는 정보가 없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바비칸 센터를 향하면서 이런 빌딩 숲속에 무엇이 있을까, 기대 없이 입장했다. 처음에는 카펫이 깔린 극장 홀이 나타났다. 영화관, 공연장, 도서관이 층층이 있는 공간을 지나 외부로 나가면 야외 정원이 나온다. 바비칸 센터의 여러 건물이 이 정원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중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거친 콘크리트 건물들에 숨은 반전 요소다. 공간을 마주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인공 연못이 높은 건물들과 대비되어 공간이 더욱 커보여 압도됐다. 모던한 홀을 지나고 계단을 올라 환한 야외 공간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개방감과 신선함. 처음 경험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에 조금씩 피어난 식물들과 아파트의 테라스들, 사람들의 대화 소리들이 이 공간의 살아있음을 일깨웠다. 코가 시릴 정도의 바람에도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오래된...

2024.08.29
리옹 현대미술관 첫 방문기

   지난 주말, 개관 4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리옹 현대미술관(macLyon)에 다녀왔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3가지로, 각각 실비 셀리그의 개인전, 앙투안 드 갈베르의 컬렉션, 영국문화원과 리옹 현대미술관의 협업 기획전. 거두절미하고 '프랑스 아방가르드'라는 미술 용어가 납득되는 전시였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직역하면 '전위적인'이라는 뜻으로, 미술사적으로 기존의 전통과 관습을 탈피한 프랑스의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미술을 통칭한다.      실비 셀리그, 《돌아오지 않는 강》 1층 실비 셀리그의 개인전 《돌아오지 않는 강》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실비 셀리그는 프랑스 니스 출신의 여성 작가로 회화, 조각, 텍스타일 등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2022년 열린 제 16회 리옹 비엔날레에서 이름을 알린 작가는, 첫 미술관 전시인 이번 개인전에서 140미터 길이의 회화 〈돌아오지 않는 강〉을 중심으로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선보였다. 기이하고 엽기적인 시그니처 캐릭터가 일관되게 등장하는 것이 특징으로, 이를 주인공로 한 만화 형식의 회화 연작이 인상적이다. 상업적 조형물 같기도, 잔혹동화에 등장하는 크리처 같기도 한 형상의 조각 작품은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섬뜩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앙투안 드 갈베르 컬렉션, 《명령》 2층 앙투안 드 갈베르...

2024.05.30
공간에 숨을 불어 넣는 조경, 그리고 정영선.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다녀왔다. 정영선은 한국의 1세대 조경가이자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이다. 과연 조경을 전시하는 것이 가능할까? 작은 전시관에서 조경이 담고 있는 ‘예술’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을까? 전시를 알아보고 직접 찾아가기 전까지 들었던 의문이었다. 보통은 작가가 자신의 창작물 그 자체를 갤러리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시이다. 반면 조경은, 자연적인 땅에서 시작된다. 즉 자연을 캔버스 삼아 광활하게 펼쳐지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경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실내 전시를 통해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경선에게 조경이란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 삼는 종합과학예술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시를 관람한 후의 나는 이에 동의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사실은 이전에는 이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었으며, 앞으로도 공감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정도로 나는 조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이번 전시가 조경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경이로운 작업이며 그 과정 또한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작은 규모의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시가 특별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경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2024.05.23
경이롭게 느껴지는 그의 상상력에 대한 질문은 전시에서 답해준다.

 지난 3월부터 타나카 타츠야 작가의 MINIATURE LIFE · MITATE MIND가 시작됐다. 전시는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로 상상력을 발휘해 작은 세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대상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유하는 ‘미타테’ 라고 표현했다. 이 단어가 전시의 핵심이다.그의 세상 속에서 사물들은 원래 가진 특성 그 자체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형태는 같지만 크기와 배치에 변화를 주어 다른 것이 된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 미니어처 세상 속에서는 다른 것을 의미한다.     타나카 타츠야 작가에게 섬이라는 개념은, 아이스크림으로 정의할 수 있고 밥그릇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또는 빵이나 과일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솟아 있는 동그란 형태의 사물이라면 섬으로 정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눈앞에 놓인 일회용 컵 뚜껑을 보며 섬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꽂혀 있는 빨대는 섬에 있는 나무라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책상 위에 떠 있는 나만의 미니어처 섬을 정의해본다.반대로 그에게 테이프라는 사물은, 달팽이가 될 수도 있고 레드카펫이 될 수도 있고 소변기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어떤 사물이든 개념이든 ‘무언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사물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말장난하는 제목으로 재치 있게 지었다. 제목에 언어유희를 사용한 것처...

2024.05.17
관종의, 관종을 위한, 관종에 의한 전시

 지난 주말, 부산여행을 떠난 김에 부산현대미술관에 방문했다. 진행 중인 기획전은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 《능수능란한 관종》, 《마크 리: 나의 집이었던 곳》. 가장 윗층에서부터 차례로 세 전시를 모두 관람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은 《능수능란한 관종》이다. 이유인 즉슨, 최근 3년 간 본 전시 중 가장 '요상한'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라는 평범한 표현으로는 부족한 '요상한' 기획은, 말마따나 '능수능란한 관종'과 같았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신민의 거대한 모형 작품과 거울샷을 찍어야만 할 것 같은 작품 캡션, 그리고 미로형 동선을 빼곡히 채운 23팀의 작품까지. 전시장 내의 모든 요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소리치는 듯 했다.   정치와 예술    서문에 따르면, 본 전시는 현대 사회에서 관심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시대 예술의 관점에서 탐구한다. 예술, 광고, 정치 등의 영역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택하는 방법을 조명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모순,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창의성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전시장 내부에는 '예술'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 통용되는 주제가 제시된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관람을 이어가던 도중, 문화사회주의 연대기를 논하는 구간이 등장했다. 한 눈에 봐도 ...

2024.04.26
(구)일민미술관 인턴의 추천 코스

   광화문 근처를 지나가다 대형 전시 포스터에 눈길을 빼앗겨 본 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일민미술관을 방문해 본 적도 있으신가요?일민미술관에 대한 제 첫 기억은, 상경 후 처음으로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아가던 와중입니다.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에 온 저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문화 예술을 즐기기 위해 서울의 미술관들을 '도장깨기'하며 스무살을 보냈습니다. 유명한 국공립 미술관/박물관만을 찾아다니며 서울 곳곳을 탐험하곤 했는데, 일민미술관의 존재도 모를 시절에 우연히 미술관을 발견했습니다.   광화문 역 출구가 너무 많았던 탓에 교보문고로 바로 연결되는 4번 출구가 아닌 5번 출구로 나갔습니다. 출구 바로 앞 고풍스런 건물을 마주하곤 예쁜 생김새와 외벽의 현수막에 감탄하고 지나쳤던 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난해하기만 했던 현대미술에 흥미가 생기면서 처음으로 일민미술관을 방문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의 접근성 좋고 눈에도 잘 띄는 미술관이었음에도, 관심이 방문으로 이뤄지기까지는 왜 그렇게나 오래 걸렸을까요. 이전 전시들을 놓친 아쉬움을 여러분은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민미술관 방문 코스를 소개합니다. 전시가 주 목적이 아닐 지라도, 첫 방문 이후엔 미술관의 매력에 빠져 다음 전시를 기대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1 광화문 직장인들의 줄서는 맛집: 라멘 시미즈    이...

2024.04.18
미술관 나들이 코스, 대신 짜드립니다.

 지난 가을, 인턴으로 아트선재센터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아하는 동네의, 좋아하는 미술관으로 출근한다는 사실이 설레어 매일 들뜬 마음으로 출근하던 게 생생합니다. 대부분의 요일에는 점심을 거르고 부랴부랴 미술관으로 가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출근길에 있는 '우드 앤 브릭'에 들러 빵을 사서 먹으면서 걷곤 했습니다. 며칠 전, 함께 인턴으로 근무했던 친구로부터 '우리의 길빵(길에서 빵 먹기) 스팟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추억거리 하나를 잃은 기분이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트선재센터를 둘러싼 또 다른 맛집, 숨은 플레이스들을 기록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언젠가 아트선재센터를 방문하게 된다면, 아래 추천 코스를 따라가 보세요.   #1 간단한 점심 한 끼: 마음을 담아내면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북촌 맛집, 이름하야 '마담면'입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미술관 직원들도 자주 찾는다고 해요. 깔끔한 한그릇 식사에 감칠맛 나는 반찬들로 구성된 간단하고 정성스런 메뉴를 판매합니다. 꽤 가격대가 있는 근처 식당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서까래와 한옥 기둥 등 한국의 정서를 담은 내부 인테리어는 북촌 감성을 한껏 느끼게 해 줍니다. 고풍스런 북촌 길을 지나 만난 한옥 건물에서 따뜻한 점심 ...

2024.03.27
글로시에(Glossier.)가 Gen G를 만드는 법

 미국 gen Z를 강타한 뷰티 브랜드 글로시에(Glossier.). 나 또한 뉴욕 여행을 준비하며 무조건 가보고 싶었던 스팟 중 하나가 바로 글로시에 매장이었다. 특히 뉴욕에서는 소호와 브루클린에 매장이 존재하고, 나는 그 두 매장을 모두 방문하여 상품들을 구매했다. 이 글을 통해 그 경험으로 얻은 감상을 정리하려 한다.   글로시에(Glossier.)의 시작 : people first and products second    내 감상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일단은 글로시에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 이 생소하고 트렌디한 브랜드는 어디서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을까. 글로시에 창업주인 에밀리 웨이스(Emily Weiss)는 뉴욕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W 매거진에서 패션 어시스던트로 근무했다. 그녀는 일을 하는 동시에 2010년도부터 “Into the Gloss,”라는 뷰티 블로그를 운영했다. 특히 “Into the Gloss”를 띄운 본격적인 계기인 더 탑 쉘프(the top shelf)라는 코너는 실제 여성들이 실제로 쓰는 코스메틱 제품을 광고 없이 소개하는 일종의 인 마이 파우치(in my pouch) 컨텐츠였다. 어시스던트 생활을 하며 얻은 인맥 덕에 칼리 클로스와 같은 셀럽들이 그녀의 블로그의 인터뷰에 참가하며,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렇게 이미 쌓아놓은 팬층을 토대로, 그녀는 사람들에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이...

2024.03.26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다녀온 후, 그 경험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오늘로부터 딱 두 달 전인 1월 21일, 나는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에 다녀왔다. 그 날 나는 서울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미학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그 경험을 글로 기록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두 달이 지난 지금 그 기록을 다시금 바깥으로 꺼내어 이 글을 보게 될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렇게 우리가 공유한 공통 감각은 서로를 모르는 우리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이어지는 글은 그 기록을 한 번 더 다듬어 여러분께 공유하는 글임을 알린다. 서울미술관을 관람한 일은 내게 기행문(紀行文)을 떠올리게 했다. 기행문은 문학용어 중 하나로 여행을 통해 얻은 체험이나 감상을 중심으로 기술한 문학을 일컫는다. 기행문에서 화자는 긴 여정 끝에 마주한 장면에서 감탄하고는 한다.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에 감탄사를 내뱉거나, 눈물을 토해내면서 말이다. 즉 여정의 끝은 카타르시스, 바로 ‘승화’다. 만약 기행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라면, 나의 서울미술관 방문기도 가히 기행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나는 서울미술관에서 기행문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을까? 4층으로 이루어진 미술관, 전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높아지는 층처럼 감상자의 감정도 고조된다. 관람의 마지막인 석파정(石坡亭). 감상하는 대상이 인공물에서 자연물로 전환될 때 궁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얻게 되는 그야말로 절정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2024.03.24
나의 프랑스 미술관 탐방기 - 오르세 미술관의 Van Gogh

   나는 프랑스에 온 뒤로 몇 번의 전시를 관람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미술관이 많고, 파리와 거리가 가까운 덕에 미술관에 들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몇 전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이곳에 기록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이야기해 볼 전시는, 오르세 미술관의 Van Gogh à Auvers-sur-Oise - Les derniers mois이다. 해당 전시는 2월 4일에 막을 내렸으나, 나에게 사소하지만 무거운 충격을 선사한 전시이기에 꼭 글을 남기고자 했다. 해당 전시 명을 한국어로 바꾸어 보자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반 고흐: 마지막 달月들> 정도일 거이다. 이 전시는 반 고흐가 죽기 전 두 달 동안 거주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작품을 모아뒀다. 그는 1890년 5월 20일에 이 도시에 이사했고, 7월 29일 사망했다. 전시가 다룬 기간이 고작 2달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전시는 풍부한 작품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이유는 고흐가 이 지역에 머무른 70일이라는 짧은 시기 동안 무려 74점의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명하디유명한 작가의 죽기 전 마지막 작품들이라니! 전시관은 작품을 감상하러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고흐의 전매특허와 같은 두터운 붓질에 분할된 색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형태를 파괴하지는 않지만, 작...

2024.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