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만큼 실력 있었지만, 평생 그의 그림자에 가려져 자신의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고 생각한 조각가가 있다. 로댕의 제자이자, 예술 동반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이 바로 그녀의 이름이다. 클로델은 이미 성공한 조각가였던 로댕을 조수로서 처음 만나고, 곧 그의 예술적 협력자이자 동시에 연인이 된다. 하지만 로댕은 이미 만나고 있던 연인이 있었고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 것이 클로델과 로댕의 관계가 끝난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클로델은 로댕에게 또 다른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로댕을 존경했지만, 동시에 그의 명성에 자신의 예술성이 가려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예술적 독립을 갈망하게 된다. 이런 복합적 이유가 그녀를 계속해서 불안하게 했고, 결국 정서적 문제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조각 <생명의 물결> 그런 그녀의 정서적 불안함이 무색하게 그녀의 작품은 스승만큼이나 유려하다. 그녀의 대표작인 ‘생명의 물결’은 왈츠를 추는 두 인물을 통해 인간관계의 복잡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두 인물은 서로에게 매우 몰입하고 있으며, 동시에 물결처럼 운동성이 있는 관계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파도처럼 너울 치는 여성의 드레스를 통해 카미유 클로델 특유의 섬세한 조각술 역시 목격할 수 있다. 이는 두 인물에 내재한 강한 동적 에너지를 암시한다. 로댕과 밀접한 예술적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로댕과 클...
제15회 광주 비엔날레를 관람했다.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제목으로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사실 내 흥미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사전 지식 없이 처음 마주하는 그대로 작품들을 느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타이틀 이상의 자세한 조사는 하지 않고 기대 없이 광주로 향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관람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느낌과 영감들을 많이 선사하는 기회가 되었다. 분주한 학기 중 소중한 예술 향유의 시간이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솔직하게, 전시를 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난해하다’였다. 대부분의 전시회가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최근 봤던 적지 않은 전시 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해석이 어려운 작품들의 연속이었다. 그림은 물론, 크고 작은 조형물들까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것일지 한참을 바라보며 고민하게 되었다. 곧바로 이해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한 태도에서 벗어나 처음 먹었던 마음대로 작품 자체를 느끼려 노력했을 때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먼저 ‘판소리’라는 주제가 독특하게 다가왔다. 하나의 문학 장르이기도,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이기도 한 판소리. 그러나 정말 ‘판소리’의 역사나 형식만을 고리타분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소리’라는 두 필수적 요소를 이용하여 그 안...
시간이라는 권력 남용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졌다. 기약은 있어도 명백한 '거주함' 앞에서, 매번 휘둘렸던 시간을 이젠 내가 어찌해볼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서 4개월간의 어학연수 생활. 유치원생들과 나란히 하교를 한 후 남는 시간들은 베이징의 미술관으로 흘러들어간다. 나의 도시 서울에서는 전시회 나들이를 과업 취급하더니 이제서야 예술을 찾는 이중적 면모에 자조하지만, 그 입꼬리가 끝내 호선을 그리기를 바라며 첫 번째 행선지인 798 예술구로 향해보았다. 양쪽으로 즐비한 갤러리와 노천카페,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화방.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허세 섞인 느긋함과 결국 떠나야 하는 이방인이라는 조급함 사이, 생경한 템포의 걸음을 걷는다. 눈에 띄는 갤러리 문은 어디든 두드려보고, 공간과 작품을 눈에 담고, 팸플릿을 수집해 돌아와 온통 모르는 글자뿐인 전시 서문을 번역하는데 들인 시간은 평소 같았음 형편에 맞지 않는 사치였겠으나, 시한부 권력자 인생에서는 '나를 위한 선물'쯤으로 가벼이 넘길 수 있을 듯하다. 난 저명한 예술가들의 나라 프랑스도, 자본과 현대미술로 대표되는 미국도 가본적 없다. 이제 겨우 우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본 참이지만, 베이징 또한 예술 여행을 떠나와도 좋을 도시라는 증거를 모으고 또 이렇게 글로 펴내보려 한다. 베이징 예술의 중심, 798 예술구(798艺术区)...
국제 갤러리에 출품된 김윤신 작가 작품들. 사진 직접 촬영 올해로 어느새 3번째를 맞이한 프리즈-키아프(키아프리즈) 아트페어를 두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공통 의견이 있다. '키아프가 프리즈했다'는 말이다.키아프는 아트페어 동반자이자 세계적 미술축제인 프리즈를 적절히 벤치마킹하고, 동시에 국내 갤러리 부스 퀄리티를 높여 이런 평가를 받아냈다. 그랜드볼룸에 마치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과 같은 마스터피스존을 구성했고, 플러스를 통해 떠오르는 작가들을 조명했다.프리즈의 경우 이전 회차에서 보여줬던 600억 원대 피카소 회화, 수십억 원대의 샤갈 회화 등과 같은 대작은 적었다. 어깨를 가벼이 하는 대신 다채로움을 살렸다. 신진 작가 작품이 늘고, 아시아 작가의 비중을 높였다. 키아프는 해외 갤러리를 다수 들여오고, 프리즈는 한국 갤러리를 늘리며 함께 나란히 변화했다.올해도 7만여 명이 찾은 키아프리즈는 그림을 구매하기 위해 행사를 찾는 컬렉터만큼이나, 유수한 작품들을 관람하기 위해 모인 '관객'의 비중이 높다. 즉 대중이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전시장으로서의 역할을 도맡고 있단 의미다.그렇기 때문에 키아프리즈엔 관객이 페어를 통해 만나게 될 '경험'을 보다 섬세하게 큐레이팅할 무언의 의무가 주어지기 마련이다.관객의 시각에서, 3돌을 맞이한 키아프리즈가 지난 1, 2회와 비교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에 커다란 벽면에 그려진 색채가 너울 치는 그림, <전기의 요정> 앞에는 사람이 늘 북적인다. 본 그림은 작년 예술의전당 라울 뒤피전에 실제로 오지 못했지만, 라울 뒤피의 가장 대표적 작품이다. 그는 이 그림을 파리박람회를 기념해 의뢰받았다. 역대 최고 규모의 박람회였으며, 파리는 주제를 ’전기’로 내걸었다. 라울 뒤피는 파리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벽화를 그리기로 했다. 동시에 하늘에는 주제성에 맞춰 전기의 요정을 그리고 땅에는 전기를 사용하는 다양한 건축물과 시설들이 그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리 퀴리, 에디슨 등 역사 속 주요한 인물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주제성과 동시에 이 그림은 그의 화풍 역시 잘 드러내고 있다. 필자는 라울 뒤피의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그림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붓질은 자유롭고 역동적이다. 선이 뚜렷하거나 사물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경계를 넘나드는 가벼운 터치를 보여준다. 빛의 예술가이기도 한 라울 뒤피는 사용하는 색감도 항상 화사하다. 꽃은 그가 자주 그린 대상 중 하나였으며, 화사한 빛으로 그려진 뒤피의 꽃은 마치 꽃잎이 피어나는 순간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관객은 자신의 공간이 진한 봄의 분위기로 물든 경험을 한다. 그가 자주 그린 풍경화 중,...
어떤 건물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가장 먼저 런던에 있는 바비칸 센터가 떠오른다. 순전히 친구의 추천으로 방문했다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안은 채 돌아간 기억이 남아있다. 1년 후, 다시 바비칸 센터에 방문해 여전한 두근거림을 느꼈다. 이상했다. 건물 하나를 보려고 런던을 가다니. 대체 어떤 점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그 이유와 함께 바비칸 센터를 소개한다. 바비칸과의 첫 만남 처음 방문했을 때는 정보가 없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바비칸 센터를 향하면서 이런 빌딩 숲속에 무엇이 있을까, 기대 없이 입장했다. 처음에는 카펫이 깔린 극장 홀이 나타났다. 영화관, 공연장, 도서관이 층층이 있는 공간을 지나 외부로 나가면 야외 정원이 나온다. 바비칸 센터의 여러 건물이 이 정원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중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거친 콘크리트 건물들에 숨은 반전 요소다. 공간을 마주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인공 연못이 높은 건물들과 대비되어 공간이 더욱 커보여 압도됐다. 모던한 홀을 지나고 계단을 올라 환한 야외 공간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개방감과 신선함. 처음 경험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에 조금씩 피어난 식물들과 아파트의 테라스들, 사람들의 대화 소리들이 이 공간의 살아있음을 일깨웠다. 코가 시릴 정도의 바람에도 건물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오래된...
지난 주말, 개관 4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 리옹 현대미술관(macLyon)에 다녀왔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3가지로, 각각 실비 셀리그의 개인전, 앙투안 드 갈베르의 컬렉션, 영국문화원과 리옹 현대미술관의 협업 기획전. 거두절미하고 '프랑스 아방가르드'라는 미술 용어가 납득되는 전시였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직역하면 '전위적인'이라는 뜻으로, 미술사적으로 기존의 전통과 관습을 탈피한 프랑스의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미술을 통칭한다. 실비 셀리그, 《돌아오지 않는 강》 1층 실비 셀리그의 개인전 《돌아오지 않는 강》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실비 셀리그는 프랑스 니스 출신의 여성 작가로 회화, 조각, 텍스타일 등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2022년 열린 제 16회 리옹 비엔날레에서 이름을 알린 작가는, 첫 미술관 전시인 이번 개인전에서 140미터 길이의 회화 〈돌아오지 않는 강〉을 중심으로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선보였다. 기이하고 엽기적인 시그니처 캐릭터가 일관되게 등장하는 것이 특징으로, 이를 주인공로 한 만화 형식의 회화 연작이 인상적이다. 상업적 조형물 같기도, 잔혹동화에 등장하는 크리처 같기도 한 형상의 조각 작품은 전시장 곳곳에 배치되어 섬뜩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앙투안 드 갈베르 컬렉션, 《명령》 2층 앙투안 드 갈베르...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다녀왔다. 정영선은 한국의 1세대 조경가이자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이다. 과연 조경을 전시하는 것이 가능할까? 작은 전시관에서 조경이 담고 있는 ‘예술’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을까? 전시를 알아보고 직접 찾아가기 전까지 들었던 의문이었다. 보통은 작가가 자신의 창작물 그 자체를 갤러리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시이다. 반면 조경은, 자연적인 땅에서 시작된다. 즉 자연을 캔버스 삼아 광활하게 펼쳐지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경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실내 전시를 통해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경선에게 조경이란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 삼는 종합과학예술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시를 관람한 후의 나는 이에 동의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사실은 이전에는 이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었으며, 앞으로도 공감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정도로 나는 조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이번 전시가 조경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경이로운 작업이며 그 과정 또한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작은 규모의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시가 특별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경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지난 3월부터 타나카 타츠야 작가의 MINIATURE LIFE · MITATE MIND가 시작됐다. 전시는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로 상상력을 발휘해 작은 세상을 보여준다. 작가는 대상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유하는 ‘미타테’ 라고 표현했다. 이 단어가 전시의 핵심이다.그의 세상 속에서 사물들은 원래 가진 특성 그 자체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형태는 같지만 크기와 배치에 변화를 주어 다른 것이 된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 미니어처 세상 속에서는 다른 것을 의미한다. 타나카 타츠야 작가에게 섬이라는 개념은, 아이스크림으로 정의할 수 있고 밥그릇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또는 빵이나 과일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솟아 있는 동그란 형태의 사물이라면 섬으로 정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눈앞에 놓인 일회용 컵 뚜껑을 보며 섬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꽂혀 있는 빨대는 섬에 있는 나무라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책상 위에 떠 있는 나만의 미니어처 섬을 정의해본다.반대로 그에게 테이프라는 사물은, 달팽이가 될 수도 있고 레드카펫이 될 수도 있고 소변기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어떤 사물이든 개념이든 ‘무언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사물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말장난하는 제목으로 재치 있게 지었다. 제목에 언어유희를 사용한 것처...
지난 주말, 부산여행을 떠난 김에 부산현대미술관에 방문했다. 진행 중인 기획전은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 《능수능란한 관종》, 《마크 리: 나의 집이었던 곳》. 가장 윗층에서부터 차례로 세 전시를 모두 관람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은 《능수능란한 관종》이다. 이유인 즉슨, 최근 3년 간 본 전시 중 가장 '요상한' 전시이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라는 평범한 표현으로는 부족한 '요상한' 기획은, 말마따나 '능수능란한 관종'과 같았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신민의 거대한 모형 작품과 거울샷을 찍어야만 할 것 같은 작품 캡션, 그리고 미로형 동선을 빼곡히 채운 23팀의 작품까지. 전시장 내의 모든 요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소리치는 듯 했다. 정치와 예술 서문에 따르면, 본 전시는 현대 사회에서 관심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시대 예술의 관점에서 탐구한다. 예술, 광고, 정치 등의 영역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택하는 방법을 조명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모순,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창의성에 주목한다. 이에 따라 전시장 내부에는 '예술'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 통용되는 주제가 제시된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관람을 이어가던 도중, 문화사회주의 연대기를 논하는 구간이 등장했다. 한 눈에 봐도 ...
광화문 근처를 지나가다 대형 전시 포스터에 눈길을 빼앗겨 본 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일민미술관을 방문해 본 적도 있으신가요?일민미술관에 대한 제 첫 기억은, 상경 후 처음으로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아가던 와중입니다.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에 온 저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문화 예술을 즐기기 위해 서울의 미술관들을 '도장깨기'하며 스무살을 보냈습니다. 유명한 국공립 미술관/박물관만을 찾아다니며 서울 곳곳을 탐험하곤 했는데, 일민미술관의 존재도 모를 시절에 우연히 미술관을 발견했습니다. 광화문 역 출구가 너무 많았던 탓에 교보문고로 바로 연결되는 4번 출구가 아닌 5번 출구로 나갔습니다. 출구 바로 앞 고풍스런 건물을 마주하곤 예쁜 생김새와 외벽의 현수막에 감탄하고 지나쳤던 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난해하기만 했던 현대미술에 흥미가 생기면서 처음으로 일민미술관을 방문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의 접근성 좋고 눈에도 잘 띄는 미술관이었음에도, 관심이 방문으로 이뤄지기까지는 왜 그렇게나 오래 걸렸을까요. 이전 전시들을 놓친 아쉬움을 여러분은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민미술관 방문 코스를 소개합니다. 전시가 주 목적이 아닐 지라도, 첫 방문 이후엔 미술관의 매력에 빠져 다음 전시를 기대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1 광화문 직장인들의 줄서는 맛집: 라멘 시미즈 이...
지난 가을, 인턴으로 아트선재센터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아하는 동네의, 좋아하는 미술관으로 출근한다는 사실이 설레어 매일 들뜬 마음으로 출근하던 게 생생합니다. 대부분의 요일에는 점심을 거르고 부랴부랴 미술관으로 가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출근길에 있는 '우드 앤 브릭'에 들러 빵을 사서 먹으면서 걷곤 했습니다. 며칠 전, 함께 인턴으로 근무했던 친구로부터 '우리의 길빵(길에서 빵 먹기) 스팟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추억거리 하나를 잃은 기분이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트선재센터를 둘러싼 또 다른 맛집, 숨은 플레이스들을 기록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언젠가 아트선재센터를 방문하게 된다면, 아래 추천 코스를 따라가 보세요. #1 간단한 점심 한 끼: 마음을 담아내면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북촌 맛집, 이름하야 '마담면'입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미술관 직원들도 자주 찾는다고 해요. 깔끔한 한그릇 식사에 감칠맛 나는 반찬들로 구성된 간단하고 정성스런 메뉴를 판매합니다. 꽤 가격대가 있는 근처 식당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서까래와 한옥 기둥 등 한국의 정서를 담은 내부 인테리어는 북촌 감성을 한껏 느끼게 해 줍니다. 고풍스런 북촌 길을 지나 만난 한옥 건물에서 따뜻한 점심 ...
미국 gen Z를 강타한 뷰티 브랜드 글로시에(Glossier.). 나 또한 뉴욕 여행을 준비하며 무조건 가보고 싶었던 스팟 중 하나가 바로 글로시에 매장이었다. 특히 뉴욕에서는 소호와 브루클린에 매장이 존재하고, 나는 그 두 매장을 모두 방문하여 상품들을 구매했다. 이 글을 통해 그 경험으로 얻은 감상을 정리하려 한다. 글로시에(Glossier.)의 시작 : people first and products second 내 감상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일단은 글로시에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 이 생소하고 트렌디한 브랜드는 어디서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났을까. 글로시에 창업주인 에밀리 웨이스(Emily Weiss)는 뉴욕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W 매거진에서 패션 어시스던트로 근무했다. 그녀는 일을 하는 동시에 2010년도부터 “Into the Gloss,”라는 뷰티 블로그를 운영했다. 특히 “Into the Gloss”를 띄운 본격적인 계기인 더 탑 쉘프(the top shelf)라는 코너는 실제 여성들이 실제로 쓰는 코스메틱 제품을 광고 없이 소개하는 일종의 인 마이 파우치(in my pouch) 컨텐츠였다. 어시스던트 생활을 하며 얻은 인맥 덕에 칼리 클로스와 같은 셀럽들이 그녀의 블로그의 인터뷰에 참가하며,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렇게 이미 쌓아놓은 팬층을 토대로, 그녀는 사람들에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이...
오늘로부터 딱 두 달 전인 1월 21일, 나는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부암동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에 다녀왔다. 그 날 나는 서울미술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미학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그 경험을 글로 기록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두 달이 지난 지금 그 기록을 다시금 바깥으로 꺼내어 이 글을 보게 될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렇게 우리가 공유한 공통 감각은 서로를 모르는 우리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이어지는 글은 그 기록을 한 번 더 다듬어 여러분께 공유하는 글임을 알린다. 서울미술관을 관람한 일은 내게 기행문(紀行文)을 떠올리게 했다. 기행문은 문학용어 중 하나로 여행을 통해 얻은 체험이나 감상을 중심으로 기술한 문학을 일컫는다. 기행문에서 화자는 긴 여정 끝에 마주한 장면에서 감탄하고는 한다.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에 감탄사를 내뱉거나, 눈물을 토해내면서 말이다. 즉 여정의 끝은 카타르시스, 바로 ‘승화’다. 만약 기행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라면, 나의 서울미술관 방문기도 가히 기행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나는 서울미술관에서 기행문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을까? 4층으로 이루어진 미술관, 전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높아지는 층처럼 감상자의 감정도 고조된다. 관람의 마지막인 석파정(石坡亭). 감상하는 대상이 인공물에서 자연물로 전환될 때 궁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얻게 되는 그야말로 절정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나는 프랑스에 온 뒤로 몇 번의 전시를 관람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도 미술관이 많고, 파리와 거리가 가까운 덕에 미술관에 들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몇 전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이곳에 기록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이야기해 볼 전시는, 오르세 미술관의 Van Gogh à Auvers-sur-Oise - Les derniers mois이다. 해당 전시는 2월 4일에 막을 내렸으나, 나에게 사소하지만 무거운 충격을 선사한 전시이기에 꼭 글을 남기고자 했다. 해당 전시 명을 한국어로 바꾸어 보자면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반 고흐: 마지막 달月들> 정도일 거이다. 이 전시는 반 고흐가 죽기 전 두 달 동안 거주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작품을 모아뒀다. 그는 1890년 5월 20일에 이 도시에 이사했고, 7월 29일 사망했다. 전시가 다룬 기간이 고작 2달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전시는 풍부한 작품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이유는 고흐가 이 지역에 머무른 70일이라는 짧은 시기 동안 무려 74점의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명하디유명한 작가의 죽기 전 마지막 작품들이라니! 전시관은 작품을 감상하러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고흐의 전매특허와 같은 두터운 붓질에 분할된 색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형태를 파괴하지는 않지만, 작...
광고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 이미지를 실현해 줄 마법사를 원한 적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디렉팅한 이 아이디어를 그대로 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러면 이게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있을 텐데. 40쪽의 PPT 마지막 장에 교수님의 최애 데이비드 오길비의 명언을 집어넣으며 성공적인 광고에 대한 고찰에 사로잡힌 적이 몇 번인지 이제는 셀 수도 없다. 오길비는 광고는 과학이라고 했고, 번벅은 광고는 예술이라고 했다. 그리고 교수님은 광고는 과학과 예술의 조화라고 하셨다. 아무렴 뭐든 당연한 말씀이다. 광고를 전공하며 느낀 것이 있다면 광고는 과학이지만 예술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예술은 무엇보다 원색적이며 직관적이어야 한다. 자신의 역량과 상관없는 분명한 목적, 즉 소비자의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시다 유니의 마법은 그래서 광고인에게 매력적이다. 착시를 이용한 원색의 이미지, 오브제의 다양한 질감 등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부각시키기에 차고 넘친다. 주로 무게감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가진 기업들이 그의 작품을 선호하는 듯 보였는데, 이는 요시다 유니의 작품이 간결하게 떨어지는 묵직한 색감으로 단절과 연속을 반복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섭도록 맞아떨어지는 대비와 착시 이미지들은 일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나 <비바리움(2019)>을 연상...
어떤 가공물들은 처음부터 그곳에 자리했던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되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져 갑자기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닌, 저 너머 들판이나 호수처럼 항상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그렇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그런 대상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의 환경 및 사람들과 어우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모난 종처럼 튀어나오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스럽게 자리하는 모습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러한 가공물까지 자연스러운 한 풍경 중 일부로 인식하게 된다.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는 과정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무언가 만들어질 때마다 우리는 그 모습에 감탄하곤 한다. 본 오피니언에서는 이와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 중 한 사람과 그의 설치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출처: edoardotresoldi 에두아르도 트레솔디(Edoardo Tresoldi)는 건축을 통해 사람과 풍경의 대화를 시적으로 끌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 건축은 표현의 수단이자 공간을 읽어내는 결정적인 역할로 자리한다.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예술 학교를 졸업한 후 조소, 무대 디자인 분야에서 일했으며, 2013년부터는 공공장소 또는 다른 곳에서 설치 미술 작업을 진행했다.주로 와이어 매쉬를 이용해 제작하는 그의 작품에서는 건축물의 투...
‘도쿄 여행’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스시, 야경, 쇼핑, 온천…. 거리도 가깝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다녀올 수 있는 편한 여행지라서 한국 사람들에게 도쿄는 인기 많은 여행지이다. 그런데 도쿄가 의외로 예술 여행을 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란 걸 아는가? 나 역시 작년에 도쿄를 처음 갔을 때는 익히 알려진 루트로 신주쿠, 시부야, 아사쿠사 등의 명소만 둘러보며 식도락 여행을 즐겼다. 어쩌다 보니 올해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 도쿄를 재방문하게 되었는데, 도쿄가 예술을 즐기기 좋은 도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술 애호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 도쿄에 대해 알아보자. 유럽까지 못 간다면 도쿄로! - 도쿄에서 만나는 서양미술 일본 미술 시장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고 유서가 깊다. 반 고흐를 비롯한 많은 서양 예술가가 실제로 일본을 좋아하기도 했고, 역사적으로 서양 예술가들이 많이 거쳐 간 곳이기 때문에 일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서양 미술 작품도 꽤 방대하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작품을 들여오는 기획전도 보통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유명 작품을 가져온다. 미술 애호가들은 유럽까지 멀리 갈 것 없이 도쿄에서 좋은 전시가 열리면 원정 관람을 떠나기도 한단다. 제일 먼저 추천하고 싶은 곳은 도쿄의 대표적인 서양미술관인 국립서양미술관이다. 모네, 마네, 고갱, 고흐, 드가, 르누아르, 피카소 등...
2023년이 지나가고 2024년 청룡의 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꼭 하는 조사가 있다. 바로 트렌드 조사이다. 올해는 어떤 트렌드가 세상을 장악할까라는 부푼 기대를 가지고 조사를 시작한다. 후에는 트렌드가 자리 잡기까지 어떤 조짐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뒤돌아보며 지난 한 해를 정리했다.가장 유명한 트렌드 책으로 언급되는 트렌드 코리아는 내년의 트렌드 내용을 담아 10월쯤 출간된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출간되자마자 읽지 않고, 새로운 해의 1월에 읽는다. 이유는 아직 올해도 제대로 마치지 않았는데 내년을 마주 한다는 게 너무 앞서나가는 느낌이기도 하고 1월에 읽어야 진정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이번 연도에도 이전에 그래왔듯이 트렌드 조사를 했는데 그중 흥미로운 키워드를 발견했다. 뉴리티지라는 키워드이다. 뉴리티지란 New(새로운)와 Heritage(유산)이 결합된 단어로 헤리티지가 새로운 놀이가 된다는 것이다.작년 한 해 디저트 분야에서는 할매니얼 간식인 약과, 쑥 음료 등이 인기를 얻었으며, 패션 분야에서는 올드머니 룩이 열풍이었다. 우리는 뉴리티지를 이미 작년부터 겪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과거의 것에 열망하고 소비하는 것일까.영국의 복식학자인 제임스 레이버에 따르면 유행이 10년, 20년 지났을 때는 우스꽝스럽고, 한물간 유행으로 느끼지만 30년 이상이 지나면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느...
어떠한 분야의 정점에 도달한 사람들의 삶은 누군가에게 존경과 귀감의 대상이 되며 다큐멘터리의 형태로 제작이 된다.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 강렬한 동기부여가 되고 건강한 도파민이 분비된다. 대체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철학과 가치관을 살펴보며 나의 가치관과 철학을 돌아보고 견고히 만들어 갈 수 있다.무기력하거나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찾아보는 다큐멘터리 리스트가 있다. 일전에 아트인사이트에 오피니언을 작성한 영화 <디올 앤 아이>와 전설적인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Oasis)를 주제로 다룬 다큐멘터리 <슈퍼소닉>, 전설적인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 등이 있다. 최근에 앞서 소개한 동기부여와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다큐멘터리 리스트에 추가할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바로 2019년에 개봉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 다큐멘터리이다. 이번 오피니언의 주제이기도 하다.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전시관인 원주에 위치한 '뮤지엄 산'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작년 12월 3일까지 안도 다다오의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국내에서 진행된 대규모 개인전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통해 안도 다다오를 다룬 다큐멘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