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리뷰] "미야오 - MEOW" 기대했던 테디 걸그룹, 오묘한 시작점 MEOW ★★★ '투애니원'과 '블랙핑크'가 데뷔와 동시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던 이유는 멤버들의 뛰어난 비주얼과 실력, 그리고 대형 기획사 YG의 후광이 크게 작용했지만, 이들의 음악적 뿌리와도 같았던 '테디'의 지분 또한 막대했다. 실제로 2000년대와 2010년대는 그가 곡을 썼다 하면 메가 히트를 기록할 정도의 전성기였고, 2010년대와 2020년대 YG를 대표하는 두 걸그룹의 성공 신화를 이끄는데 상당 부분 일조했다. 그렇다면, '테디'가 작곡가가 아닌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걸그룹의 과연 어떤 모습일까. 더블랙레이블로 거취를 옮긴 이후 그는 오랫동안 걸그룹 데뷔를 준비했으며, 화제의 연습생들이 멤버로 거론되면서 정식 데뷔 전부터 K팝 팬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최근까지 '블랙핑크'의 히트곡을 다수 만들었던 '테디'가 음악 프로듀싱에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이 됐기에 최근 그의 부재로 인해 YG가 채워주지 못했던 곡에 대한 만족감을 새로 데뷔할 팀에게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민희진'의 '뉴진스'가 데뷔 앨범부터 토끼 캐릭터를 팀의 상징으로 삼아 브랜딩과 MD 사업에 성공한 것처럼 '테디'의 걸그룹은 고양이를 택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에서 착안한 '미야오(MEOVV)'라는 이름이 그룹명이 되었고, 어릴 적부터 유명했던 '엘라'를 ...
[앨범 리뷰] "쯔위 - abouTZU" 반전 매력의 양면성 쯔위 [abouTZU] '트와이스'의 재계약 이후 멤버들의 개인 및 유닛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보컬 멤버들의 솔로 데뷔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팀의 핵심 보컬이자 중심축인 '나연'과 '지효'의 솔로 데뷔는 예상할 수 있었지만, 세 번째 주자로 막내인 '쯔위'가 나서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나 예상을 못했던 것과는 별개로 '쯔위'의 솔로 앨범이라는 기획만으로도 신선하고, 궁금증을 자극하기는 한다. 그룹 내에서 매번 자신의 파트를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는 것은 물론 종종 고음 파트를 담당할 때도 있는 멤버이지만, 서브보컬 포지션 이상의 역량을 보여준 적이 드물기 때문에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을 깨는 행보의 연속이다. '쯔위'의 솔로 앨범 소식 자체도 새로웠는데, 타이틀곡 'Run Away'는 꽤나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박진영'이 직접 가사를 쓴 이 곡은, 한 마디로 굉장히 JYP스러운 곡이다. 아마 이 노래를 '박진영'이 직접 불렀거나 JYP 출신의 '선미', 혹은 그가 지난해 방송을 통해 프로듀싱한 '골든걸스'에게 주었더라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것이다. 레트로 디스코 풍의 사운드는 그의 히트곡 'When We Disco'를 떠오르게 하고, JYP와 '선미'가 듀엣으로 했을 법한 뽕끼 가득한 멜로디를 '쯔위'의 담백한 가...
[싱글 리뷰] "QWER - 가짜 아이돌" 어그로 없이도 좋았잖아? 가짜 아이돌 ★★☆ 지난 봄, '고민중독'이라는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막연히 좋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 곡이 5개월 내내 음원 차트 톱텐을 지킬 정도로 대성공을 거둘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멤버들의 특성상 팀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편이고, 밴드와 아이돌의 경계에 있는 그룹은 항상 양측 팬들 사이에서 욕을 먹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QWER'이 마냥 쉽지 않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데뷔곡 'Discord'에 이어 '고민중독'까지 연달아 흥행에 성공한 것은 결국 좋은 음악의 힘이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말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9월 23일, 두 번째 EP 앨범의 발매를 확정한 'QWER'은 컴백을 앞두고 범상치 않은 제목의 신곡 '가짜 아이돌'을 선공개했다. '고민중독'이 풋풋한 설렘을 담은 하이틴 감성을 표현했다면, 이번 신곡은 유쾌하고 통통 튀는 느낌에 가깝다. 의외로 밴드 사운드의 파워는 약해졌고, 코러스와 브리지 외에는 전반적으로 밴드 세션이 가볍게 사용됐다. J-Rock의 감성도 이전보다 많이 옅어졌고, 대신 팝적인 요소가 두드러졌다. 개인적으로는 보컬 파트보다 밴드 사운드로만 채운 브리지의 간주 구간이 훨씬 좋다. 결국 이들이 진정으로 빛날 수 있는 지점은 곧 강렬함이 살아있는 록 사운드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한두 번만 들어도 코...
[앨범 리뷰] "온유 - FLOW" 지금 온유의 새로운 흐름 온유 [FLOW] SM을 떠나 신생 기획사 그리핀엔터테인먼트에서 솔로 아티스트로 새로운 여정에 나선 '온유'의 첫 앨범이다. 지난 4월, 함께 SM과 재계약하지 않은 멤버 '태민'이 최근 빅플래닛메이드엔터에서 새 솔로 앨범을 발매하며 음악적 변화를 보여준 바 있다. 그렇다면 SM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솔로 앨범을 준비한 '온유'의 음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온유'의 솔로 디스코그라피에는 하나의 규칙적인 패턴이 있다. 보컬리스트로서의 기량을 강조한 감성적인 트랙과 아이돌로서의 매력을 살린 댄서블한 곡을 교차해 선보인다는 점이다. 솔로 데뷔곡 'Blue'는 가창력이 돋보이는 재즈 알앤비 곡이었고, 'DICE'는 통통 튀는 신스팝,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O (Circle)'은 서정적인 감각의 알앤비 곡이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따른다면, 이번에는 댄스곡이 나올 타이밍인데, 역시나 새 앨범 [FLOW]의 타이틀곡은 '온유'의 솔로곡 중 가장 리드미컬하고 후킹한 곡이다. 이지리스닝과 그루비한 퍼포먼스를 더해 '온유'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온유'의 솔로 타이틀곡 스타일은 아마도 산뜻한 신스팝 계열의 'Hola!'나 감미로운 보컬 중심의 발라드 곡 'Shape of My Heart'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타이틀곡으로 선택된 ...
[싱글 리뷰] "보이넥스트도어 - 부모님 관람불가" 첫사랑 소년에서 유쾌한 악동으로 부모님 관람불가 ★★★ 9일, 세 번째 미니앨범 [19.99]로 돌아오는 '보이넥스트도어'의 선공개 곡이다. 지난 1년간 첫사랑 3부작 시리즈를 마무리한 이들의 다음 챕터는 갓 스물을 맞이한, 혹은 성년을 앞두고 싱숭생숭하기도, 긴장되기도, 한껏 들뜨기도 한 열아홉 끝의 소년들이다. 실제로 멤버들 중 막내인 '운학'이 한국 나이로 곧 스물을 앞두고 있는 만큼 멤버들의 실제 서사를 반영한 기획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첫사랑에 빠져 웃고 울던 소년들은 치기 어린 악동이 되어 한밤중의 일탈을 꿈꾼다. 멤버 '명재현', '태산', '운학'이 직접 가사를 쓰고, 작곡에 참여한 신곡은 트랩 비트의 힙합 곡으로, '부모님 관람불가'라는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다. 랩 플로우와 화법에서 장난기와 삐딱함, 반항기가 한껏 차오른 듯하지만 실상은 소소한 장난과 일탈에 불과한 가사는 마냥 귀엽기만 하다. 굳이 탈선을 한 경험이 없더라도, 어렸을 적 부모님께 누구나 한 번쯤 야단을 맞았을 법한 일상적인 소재들을 가사에 담아 공감의 재미 또한 살렸다. 2절 벌스를 묵직하게 잡아주는 '재현'과 '운학'의 날카로운 랩핑이 단연 돋보이고, '리우'의 청량한 보컬은 알싸한 조미료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한다. 힙합 뮤지션 '지코'의 프로듀싱 영향으로 '보이넥스트도어' 역시 힙합을 기반으로 활...
[싱글 리뷰] "피프티피프티 - Starry Night" 새로운 하모니와 함께 안정적인 출발 Starry Night ★★☆ 하이브와 민희진의 갈등이 터지기 이전, K팝 엔터 업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피프티피프티' 전속계약 분쟁 사태. 이들의 기획사인 어트랙트 전홍준 대표와 외부 프로듀싱을 맡았던 더기버스 안성일 간의 갈등으로 '피프티피프티' 멤버들은 데뷔 1년도 채 되지 않아 소속사를 향해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오랜 법적 공방 끝에 '키나' 한 명만이 어트랙트에 잔류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그룹의 타이틀을 잃게 된 나머지 멤버들은 여전히 소송을 이어가고 있지만, '피프티피프티'는 '키나'를 중심으로 발 빠른 멤버 재편성에 나섰다. <알 유 넥스트?>에 참가했던 '문샤넬'과 '예원'부터 음악 유튜버 출신의 '하나', 그리고 어트랙트 연습생 출신의 '아테나'까지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고 있는 멤버들을 대거 포섭했고, 사실상 리브랜딩에 가까운 형태로 '피프티피프티'의 2기를 꾸렸다. 이름만 동일할 뿐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Cupid'로 활동했던 그룹과는 전혀 다른 팀이 된 셈이다. 하지만 원년 멤버들로 활동할 당시 그룹의 이름과 노래만 알려졌을 뿐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는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매력적인 음악만 가져와 준다면, 멤버 교체로 인한 리스크는 의외로 크지 않을 수도 있...
[싱글 리뷰] "나우어데이즈 - Why Not?" 아직은 낯선 데이즈팝 Why Not? ★★☆ 지난 4월, [NOWADAYS]로 데뷔한 큐브엔터테인먼트의 5인조 신인 보이그룹 '나우어데이즈'의 두 번째 싱글이다. 데뷔작만으로는 어떤 장르의 음악을 지향하는지, 정체성의 발판에 어떠한 콘셉트를 두고 있는지 한 번에 감이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싱글 [NOWHERE]을 듣고 나니 적어도 음악적으로는 힙합을 기반으로 삼고, 비주얼적으로는 악동과 소년의 경계에 있는 듯한 이미지를 줄타기 하듯 보여주는 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룹의 청사진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앞으로의 행보까지 속단하는 건 일러 보이긴 하다만. 타이틀곡 'Why Not?'은 데뷔곡 'OoWee'처럼 파워풀한 힙합 리듬을 가져왔고, 펑키한 요소를 더하는 형태로 변화를 시도했다. 한껏 흥을 올리는 브라스 세션과 8비트 효과음, 그리고 타격감 좋은 신스 사운드는 유쾌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악동 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좋은 장치들이다. 익숙하지 않은 의성어로 된 제목을 내세웠던 전작과 달리 '미쳐 팔짝'이라는 귀에 쉽게 꽂히는 한국어 가사를 약간의 변주와 함께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기억에 남을 만한 지점을 심어둔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여전히 '나우어데이즈'의 색깔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첫 앨범에서도 느꼈지만, 이들은 5세대로 통하는 보이그룹들 사이에서도 후...
[앨범 리뷰] "르세라핌 - CRAZY" 백만 볼트짜리 정면돌파 LE SSERAFIM [CRAZY] 코첼라 라이브 실력 논란, 하이브와 민희진의 지속적인 갈등 속 불가피하게 소환됐던 일련의 이슈들을 연달아 겪었던 '르세라핌'의 상반기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EASY'가 빌보드 핫 100 진입이라는 쾌거를 이루고, 후속곡 'Smart'까지 쌍끌이 흥행에 성공했던 터라 여러 긍정적인 성과들을 이어받지 못한 외부적인 상황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한번 미쳐보겠다는 태세로 후속 앨범을 빠르게 가져왔다. 하지만 과연 '르세라핌'이 꽤 차가워진 대중의 시선을 뚫고, 대담하게 미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미친다는(positive) 건 다시 말해 정신을 놓을 만큼 즐긴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이 또한 뻔뻔하리만큼 잘하는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의도에 부합하는 설득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미친 척'을 표현하는 데 그친다면, 제아무리 'CRAZY'라는 키워드를 강조한다 할지라도 전달력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클럽 댄스 음악만큼 온몸을 던져 미치기 좋은 장르도 없다. '르세라핌'이 'CRAZY'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장르는 바로 하우스 기반의 EDM이다.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이들의 대표곡 중 하나인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의 댄서블한 트...
[싱글 리뷰] "제로베이스원 - GOOD SO BAD" 기분 좋은 새 출발 GOOD SO BAD ★★★☆ [You had me at HELLO] 이후 무려 3개월 만에 발매되는 '제로베이스원'의 새 앨범이다. 2023년 7월 데뷔 후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무러 네 장의 EP를 발매한 셈인데, 2년 6개월로 활동 기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누구보다 공격적으로 음반 활동에 임하고 있는 듯하다. '청춘 3부작'이라는 요소가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지난 앨범을 끝으로 한 챕터가 마무리되었고, 네 번째 EP [CINEMA PARADISE]를 통해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다. '영화'와 '로맨스', 그리고 판타지적 요소를 조금 가미해 변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까진 지난 시리즈와 어떠한 차별점을 둘 계획인지 방향성이 명확하게 두드러지진 않는다. 이번 앨범에서 제일 눈에 띄는 이름은 단연 타이틀곡 프로듀싱에 참여한 작곡가 '켄지'다. 그는 줄곧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과의 작업만을 고집하다 2020년에 들어 '있지', '엔믹스' 등 타 소속사의 아이돌 그룹과도 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로베이스원'도 그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켄지'가 쓴 '제베원'의 신곡이라니. 평소보다 이들의 신곡에 귀를 더 기울일 수밖에 없어졌다. 타이틀곡 'GOOD SO BAD'는 '켄지'의 주력 장르 중 하나인 일렉트로 신스팝 곡...
[싱글 리뷰] "청하 - 알고리즘 (Algorithm)" 드림팀과 함께 리즈시절로 복귀 알고리즘 (Algorithm) ★★★ 모어비전 이적 후 가수 인생 2막에 돌입한 '청하'의 두 번째 싱글이다. 전작 'EENIE MEENIE'가 새로운 환경에서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를 담아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힙합을 택했다면, 신곡 'Algorithm(알고리즘)'은 2010년대 후반 '청하'의 전성기 시절을 소환한다. '청하'에게서 익숙한 무드를 불러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존재는 '블랙아이드필승'이다. 빠른 템포의 비트와 시원한 신스 사운드, 그리고 '청하'의 청량감 넘치는 하이노트가 이끄는 곡의 구성은 그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Roller Coaster'를 단번에 떠오르게 한다. '롤러코스터'에 '벌써 12시'까지 '청하'를 대표하는 곡을 모두 만든 장본인인 만큼 합이 좋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 피리 소리 같은 신스 음의 활용으로 포인트를 준 구간이나 튠을 섞은 키보드 연주로 훅의 에너지를 끌어올린 것도 좋았다. (+) 사이보그틱한 의상이나 몇몇 안무 동작은 '몰라'로 활동하던 1999년의 '엄정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역시 뮤직비디오에 괜히 등장하신 게 아니다.) '청하'를 대표하는 시원시원한 하우스 뮤직, '블랙아이드필승'의 후킹한 멜로디, '라치카'와 '킹키'의 퍼포먼스까지. 한 마디로 믿고 보고, 듣는 '청하'의 드림팀이...
[앨범 리뷰] "NCT 재현 - J" 짙은 농도로 퍼질 재현의 감성 재현 [J] 좋아하는 음악 한 곡 추천을 부탁했더니 취향 수집품을 한데 모두 꺼내놓은 격이다. '재현'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한 그의 첫 번째 솔로 정규 앨범의 제목 'J'. 온전히 '재현'의 목소리만으로 채운 첫 음반은 그만의 향기와 감성이 가득하다. 섹시하면서도 묵직한, 따뜻하지만 때로는 차가운 '재현' 고유의 색을 극대화하는 데 알앤비만한 장르는 없을 것이다. 이미 'Try Again', 'Forever Only' 같은 솔로곡과 '도재정' 유닛 앨범을 통해 그의 보컬과 알앤비의 상성을 여러 차례 입증한 바가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SM은 솔로 알앤비 보컬리스트의 명가로 통하는 곳. '태연', '백현', '디오', '카이', '슬기' 등 SM 소속 아이돌 그룹마다 최소 한 명씩은 거쳐갔듯 '재현' 역시 알앤비 솔로 앨범의 계통을 잇는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같은 장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할지라도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아티스트마다 천차만별인 법. '재현'은 타이틀곡 'Smoke'를 필두로 그만의 스타일을 원 없이 선보이며 자신만의 장르 해석법을 A부터 Z까지 자신 있게 펼쳐놓았다. 특히 'Smoke'는 사운드의 변주를 통해 '재현'의 성숙함과 퇴폐미부터 부드러움까지 모든 매력을 관통해 지나간다. 적당한 무게감을 가진 트랩 리듬의 베이스는 무심한 듯 툭툭 내뱉...
[앨범 리뷰] "오마이걸 - Dreamy Resonance" 10년차 오마이걸의 초심 찾기 오마이걸 [Dreamy Romance] 지난 10년간 '오마이걸'의 활동곡들 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곡들이 '살짝 설렜어', 'Dolphin', 'Dun Dun Dance'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록 이들의 시작점이 몽환적인 사운드와 동화적인 감성에서 비롯되었다 한들, 성적 면에서 압도적인 대중성을 인정받은 곡은 단연 이 세 곡이었다. 물론 '살짝 설렜어'의 리드미컬함도, 'Dolphin'의 상큼함도, 'Dun Dun Dance'의 청량감도 좋다. 하지만 '비밀정원'과 '다섯 번째 계절', 그리고 데뷔 초 이들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CLOSER'와 같은 곡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오마이걸'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이는 오랜 팬들은 물론 앞서 언급한 대표곡들로 이들을 인지한 사람들도 모를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오마이걸'은 그룹의 특색보다는 대중성에 초점을 두고 타이틀곡을 선정해 왔는데, 아마 많은 사람들은 몽환과 서정성이 깃든 '오마이걸'의 음악을 마치 애착인형 쥐듯 한 손에 꼭 움켜쥐고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Dreamy Resonance]는 데뷔 10년 차를 맞이한 이들이 그 기대에 부응하듯 팀의 근본을 찾아 되돌아가고자 하는 앨범이다. 'Dolphin'을 시작으로 줄곧 타이틀곡에...
[앨범 리뷰] "태민 - ETERNAL" 영원을 위한 주체성의 확립 태민 [ETERNAL] '태민'이 16년간 몸담았던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나 빅플래닛메이드엔터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것은 꽤나 의외였다. 평생 한 기획사에만 머물 수는 없는 법이겠지만 지금까지 SM과 음반의 퀄리티 면에서 최고의 상성을 보여왔던 아티스트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이적은 특히 예상 못했다. 보통 대형 기획사에서 최상의 서포트를 받다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소속사로 터전을 옮긴 경우 실망을 초래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 발매되는 '태민'의 신보에 대해서도 약간의 우려가 있었다. 대대적인 변화에는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과감한 선택을 내린 이유는 아티스트로서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된다. 이는 앨범 전 트랙의 크레딧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태민'은 지난 10년간 솔로 활동을 하며 종종 가사를 직접 쓴 적은 있지만, 작곡까지 참여한 곡은 '낮과 밤'이 유일했다. 반면 이번 EP [ETERNAL]에서는 전 수록곡 작곡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프로듀싱에 전적으로 참여했다. 프로덕션 측에서 세공해 준 완벽한 브랜드를 특유의 아우라로 공고하는 것 대신 다소 불안정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키를 잡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것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둔 셈이다. 프로덕션 팀이 달라진 만큼 음악적으로도 변화가 생겼다...
[싱글 리뷰] "캣츠아이 - Touch" 부드럽지만 한 방이 있는 사운드 Touch ★★★ 하이브와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합작 오디션 <The Debut: Dream Academy>를 통해 결성된 6인조 미국 현지화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의 데뷔 EP 앨범이 공개됐다. 지난 6월 선공개한 '라이언 테더(Ryan Tedder)' 프로듀싱의 'Debut', 그리고 더블 타이틀곡 'Touch'와 'My Way'를 포함해 총 다섯 곡을 수록했다. 프리 데뷔곡 'Debut'은 제목 그대로 '캣츠아이'의 시작을 알린 출사표와도 같은 곡이었다. '푸시캣돌스'나 '피프스 하모니' 같은 추억의 팝 걸그룹들을 떠오르게 하는 2000년대 틴 팝 스타일로, 하이틴 드라마 속 치어리딩 주제가로 쓰일 법한 느낌이 강했다. (왜 나는 '엠마 스톤'의 'I Broke My Arm' 밈이 떠오른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하이브가 미국에서의 음원 성공 경험이 많은 탓에 미 현지화 그룹의 선두주자인 JYP의 '비춰(VCHA)'보다는 좀 더 팝 시장에 적합한 곡이긴 했다. 하지만 K팝스러운 음악을 소화하는 다국적 아이돌 그룹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을 완전히 상쇄하진 못했고, 묘하게 촌스러운 감각도 묻어났다. 반면 메인 타이틀곡 'Touch'는 선공개곡과는 완전히 노선을 달리한 곡이다. 팝에서는 '핑크팬서리스', K팝에서는 '뉴진스'와 유사한 타입의 부드럽고...
[앨범 리뷰] "엔믹스 - Fe3O4: STICK OUT" 조금 더 별나도 좋을 엔믹스 엔믹스 [Fe3O4: STICK OUT]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 공간에 떨어진 '엔믹스'는 이들처럼 세상으로부터 탈락된 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한계도, 편견도 없는 믹스토피아를 향해 본격적으로 나아간다. 별나고 별난 개성 때문에 외면받고, 상처 입었지만 이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진면모가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한껏 드러내는(STICK OUT), 단단한 자아와 당찬 기개가 곧 'Fe3O4'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의 핵심이다. 전작과 연계성을 가진 앨범인 만큼 타이틀곡 '별별별(See that?)'은 올드 스쿨 힙합 장르를 가져와 마치 'DASH'의 연장선에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과 'H.O.T'의 '전사의 후예'가 연상되는 90년대 붐뱁 힙합의 클래식과도 같은 리듬을 가져와 전작보다 올드 스쿨한 감각이 훨씬 진해졌다. 대신 믹스팝의 형태를 구성한 방식은 크게 다르다. 'DASH'는 브리지 구간에 이르러서야 팝 펑크로 변주를 가미해 비교적 소극적인 '믹스'를 시도했던 반면 '별별별'은 2절을 통째로 컨트리풍 사운드로 채워 직관적이고 뚜렷한 전환을 선보인다. 웅장함을 불어넣는 백보컬과 두꺼운 베이스, 감정을 덜어낸 듯 건조하고 시니컬한 톤을 유지하는 보컬과 랩으로 1절을 달린다면, 2...
[싱글 리뷰] "리사 & 로살리아 - NEW WOMAN" 존재 자체만으로 새로움 NEW WOMAN ★★★★ 8년 만에 '리사'가 제대로 보인다. 'ROCKSTAR'는 그저 맛보기에 불과했다. 팝의 스테레오타입을 멋스럽게 벗어던지며 '재탄생'을 선언한 'NEW WOMAN'은 그가 당당히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된 밑바탕에 아티스트적인 감각과 음악적 역량이 새겨져 있었음을 증명하는 곡이다. 그에겐 결코 독보적인 스타성과 거대한 글로벌 팬덤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라인업부터 굉장히 화려하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 '맥스 마틴(Max Martin)'과 '아리아나 그란데'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일리야 살만자데(ILYA)'가 프로듀싱에 이름을 올렸고, 싱어송라이터 '토브 로(Tove Lo)'가 송라이팅에 참여했다. 여기에 2020년대 라틴 뮤직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로살리아'의 피처링까지. 참여진만 놓고 평가하기엔 이르지만, '리사'의 본격적인 솔로 앨범 제작을 위해 엄청난 팀이 만들어졌음은 분명하다. 'NEW WOMAN'이라는 제목처럼 벌스에 등장하는 '리사'의 목소리부터 새롭다. '블랙핑크'의 곡에서는 양념처럼, 이전의 솔로곡에서는 줄곧 래퍼로서 단편적으로 소비되어 왔던 그의 보컬이 이번에는 와일드한 랩부터 청아하고 여린 음성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빛깔을 꺼내 보인다. 쫄깃한 랩핑이 익숙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다가도 ...
[싱글 리뷰] "프로미스나인 - Supersonic" 분기점 이후 달라진 여름의 맛 Supersonic ★★★ 이제 '프로미스나인'은 여름에 빠지면 섭한 걸그룹이다. 매번 긴 공백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2021년부터 단 한 해도 빠짐없이 일종의 법칙처럼 여름 활동을 고수하고 있다. 그 사이에 마땅한 대표곡이 탄생하지 못한 탓에 한 계절을 대표하는 아이돌이라는 인식 자체는 흐릿하긴 하나 개인적으로는 여름을 떠올렸을 때 꼭 생각나는 걸그룹 중 한 팀이다. 1년 2개월이라는 긴 공백기 후 공개되는 신보가 단 세 곡뿐인 싱글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나 이들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가요계로 돌아왔다. 데뷔 후 처음 발매한 정규앨범이었던 전작 [Unlock My World]는 '프로미스나인'에게 새로운 분기점과도 같은 음반이었다. 꽤 오랫동안 쌓아온 팀만의 고유성이 옅어졌고, 전반적으로 모노톤의 색깔을 가진 사운드로 과감하게 시도한 음악적 변신을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타이틀곡 '#menow' 한정으로는 대중성과 팀의 이미지를 고려한 타협의 여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만 어찌 됐든 음악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의 결심을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신곡 'Supersonic' 기존의 '프로미스나인'이라면 도전하지 않았을 법한 유의 사운드다. 코러스 멜로디와 가사가 후킹하고, 'Stay This...
[싱글 리뷰] "전소미 - Ice Cream" 상큼하게 여름 타파 Ice Cream ★★ 지난해, 'Fast Forward'로 솔로 데뷔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던 '전소미'가 여름을 맞아 한 템포 가볍게 쉬어간다. 프로모션 기간이 단 3일 밖에 되지 않았고, 전체 가사가 영어로 된 곡인 데다 미국 차트 집계 시간에 맞춘 금요일 13시 발매를 택한 것을 보면 작정하고 컴백을 위해 준비한 신곡 같지는 않다. 매번 앨범 발매 텀이 길다 보니 공백기의 여파를 조금 줄이고, 글로벌 팬덤을 대상으로 이 계절에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원을 하나 정도 내자는 취지로 발매한 싱글이 아닐까 싶다. '테디', '알티(R.Tee)', '24' 등 타이틀곡에서 자주 호흡을 맞췄던 더블랙레이블 소속 프로듀서들의 비중이 줄어들고, 처음 작업을 같이하는 해외 작곡가들이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며 '소미'의 전형적인 EDM 댄스 팝 분위기를 탈피하는데 성공했다. 'DUMB DUMB', 'Fast Forward' 같은 대표곡들의 경우 드롭 파트로 채운 코러스의 존재감이 강했던 반면, 신곡 'Ice Cream'은 상대적으로 멜로디컬한 데다 보컬이 돋보이는 구간이 많다. 하지만 최근 '전소미'가 선보인 음악들과 장르적인 차이가 있을 뿐 결과물 자체가 신선한 건 아니다. 도입부터 풍성하게 가득 채운 브라스와 특유의 쫄깃한 음색에서는 그가 종종 커버하곤 했던 '메건 트레...
[앨범 리뷰] "스트레이 키즈 - ATE" 힘을 빼고도 색을 잃지 않는 노련함 Stray Kids [ATE] 최근 4세대 보이그룹 사이에서 나타나는 재밌는 양상이 한 가지 있다. 누구보다 강렬한 콘셉트와 그룹의 정체성을 강화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팀들이 좀 더 노골적으로 이지리스닝 권법을 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가장 최근 활동을 시작한 '엔하이픈'의 신곡 'XOXO'는 극강의 부드러움을 가진 팝 사운드이고, '엔시티 127' 역시 그들의 기준에선 가벼운 축에 속하는 '삐그덕'을 타이틀로 선보였다. 하드 리스닝의 대표주자라 봐도 무방한 '에이티즈'마저도 캐치한 훅에 트랙에 힘을 뺀 'WORK'로 색다른 맛을 선사한 바 있다. '스트레이 키즈' 역시 이들과 같은 방향성을 따르듯 '마라맛'으로 칭해져 온 EDM/힙합 사운드에 약간의 여유를 더하고, 톤을 시니컬하게 잡으며 전보다 더 빠르고, 더 쉽게 이들의 음악에 매료되도록 전략을 짰다. 'Chk Chk Boom'은 근래 들었던 '스트레이 키즈'의 타이틀곡 중 제일 가볍고 캐치하다. 라틴풍 힙합과 EDM 계열의 뭄바톤 리듬은 기존 이들의 곡들과 유사한 지점이 있지만, 보컬과 랩, 그리고 트랙에 파워를 덜어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특히 여유로운 힙합 리듬과 전자음 리프만으로 진행되는 벌스는 미니멀하고, 나른하게 읊조리는 음성으로 이어지는 코러스로의 빌드업 과정...
[앨범 리뷰] "NCT 127 - WALK" 삐그덕은 뒤틀림이 아닌 멋 NCT 127 [WALK] 핵심 멤버 '태용'의 부재(군입대로 인한), 부상으로 퍼포먼스에 참여할 수 없게 된 '태일'까지 멤버들의 공백이 연달아 발생한 탓에 컴백에 앞서 빈자리가 느껴지진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엔시티 127'은 늘 그랬듯이 주변의 상황 따위는 의식하지 않은 채 그들만의 길을 걸어간다. 타이틀로 내세운 '삐그덕'은 마치 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이 척박하거나 울퉁불퉁할지라도 그 또한 우리의 멋이라며 삐그덕 삐그덕 걸어가겠다는 여유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나타내는 것만 같다. 전반적으로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보단 2000년대의 올드 스쿨한 감성과 힙합 사운드에 초점이 맞춰졌다. 인트로 곡 'Wall to Wall'부터 장엄한 가스펠 힙합으로 앨범의 분위기를 무겁게 세팅하고, 엇박자로 복잡한 리듬을 자유자재로 타는 '마크'의 랩핑이 사운드를 압도한다. '도영'과 '태일'의 소울풀한 보컬도 무게감을 더하는데 한몫했지만, 8년간 '엔시티'의 힙합 색을 주도해 온 '마크'와 '태용'이 곡의 주역이 되어 힙합 콘셉트 앨범의 신호탄을 확실하게 쏜다. 단, 타이틀곡에 한해서는 힙합을 조금 가볍고 여유롭게 풀어내려고 한 의도가 엿보인다. 1990년대-2000년대에 유행했던 붐뱁 리듬을 차용한 타이틀곡 '삐그덕'은 올드스쿨한 감각 대신 이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