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감동을 주는 영화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영화들을 보고 나면 대체 감독의 머릿속엔 뭐가 들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안 좋은 의미로 말이죠. 설정 같은 데에서 충격을 받기도 하고, 상상을 초월한 반전으로 영화에 대해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합니다. 관람한 영화들 중에 설정과 반전이 놀라웠던, 큰 충격을 준 작품을 뽑아봤습니다. 소개하는 영화의 특성을 고려해 스포일러는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레퀴엠(Requiem For A Dream, 2000) 충격 포인트: 마약 볼 수 있는 곳: OTT 대여 및 개별 구매 마약에 중독된 해리는 엄마의 보물 1호까지 팔아서 약을 구입해 심하게 빠져듭니다. 해리의 친구는 물론이고 여자친구인 마리온 또한 마약에 심하게 중독되어 가죠. 해리의 엄마 사라는 TV 프로그램에 중독되어 있는데,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을 때 이웃의 도움으로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아 역시 중독되어 갑니다. 마약과 다이어트 약에 중독되는 건 현저한 차이가 있겠지만, 무엇이 됐든 과하면 안 좋은 건 당연해요.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이들이 처음부터 마약이나 다이어트 약이라는 그 자체에 중독된 건 아니었어요.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마약과 다이어트 약을 접했다가 꿈이 욕망으로, 중독으로 변한 것이었죠. 영화는 주요 등장인물 네 명이 멀쩡하던 시기부터 ...
2023년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마음에 깊이 남은 외국 영화 10편을 뽑아봤습니다. 순위가 아닌 개봉일 순입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The First Slam Dunk, 2022) 볼 수 있는 곳: 극장 상영 중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죠. 어릴 때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전혀 몰랐었는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말의 뜻을 곱씹을 정도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2023년 1월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추억이 담겨 있기에 너무나 좋았던 영화입니다. 학창 시절에 완결까지 열심히 봤던 만화책, TV에서 해주던 당시의 만화 영화까지 정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궁금했던 것도 있습니다. 다만 이미 원작을 통해 접한 적 있는, 일명 '산왕전'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봤습니다. 경기가 어떻게 끝날지 이미 알고 본 건데도 말이에요. 원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 송태섭이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과거 회상과 동시에 현재의 경기를 오가며 보여주는데, 이게 엄청 재미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원작자의 연출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슬램덩크>를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추억을, 모르는 세대에게는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 출연 미등록 개봉 2023.01.04. 바빌론(Babylon, ...
영화 <패러렐 마더스> 정보 기본 정보 원제 : Madres paralelas 수입 : 찬란 배급 : (주)스튜디오디에이치엘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 페넬로페 크루즈, 밀레나 스밋, 이스라엘 엘레할데, 아이타나 산체스히혼 외 제작 국가 : 스페인 장르 : 멜로/로맨스, 스릴러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상영시간 : 123분 개봉 : 2022년 3월 31일 줄거리 사진작가 야니스는 법의학자 아르투로를 모델로 사진을 찍은 후, 증조부의 유해 발굴에 대한 조언을 얻다가 그와 가까워져 연인 사이가 된다. 1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했던 둘의 관계는 야니스의 임신으로 변화를 맞이했다. 아픈 아내가 있는 아르투로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야니스는 이미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르투로가 아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자, 야니스는 그와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기를 낳을 작정이었다. 자신의 엄마가 그랬고, 할머니가 그랬듯 말이다. 그렇게 아르투로와 헤어지고 혼자 출산을 하게 된 야니스는 같은 병실을 쓰는 아나와 가까워진다. 싱글맘이 된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아직 미성년자인 아나와 가까워졌고, 마침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딸을 출산한다. 그런 공감 때문인지 두 사람은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르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 후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야니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유명한 연극배우 엘리자베스는 공연 도중 갑자기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실어증으로 인해 요양원에 입원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담당 간호사로 배정된 알마를 만난다. 알마는 간호사가 된 지 이제 막 2년 차에 접어들었고, 약혼자와 함께 할 미래를 꿈꾸는 긍정적인 여인이었다. 알마는 의욕에 넘쳐 엘리자베스를 낫게 해주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녀의 실어증은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엘리자베스의 담당 의사가 그녀에게 병원을 떠나 한적한 자신의 별장으로 요양을 떠나라고 제안한다. 엘리자베스를 위해 간호사 알마도 동행할 수 있게 해주겠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두 여인은 삭막한 병원에서 벗어나 바닷가의 바람을 맞으며 별장에서 얼마 동안 머무르게 된다. 그러다 알마는 말이 없는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굉장히 독특했다. 네거티브 필름으로 영화의 움직임을 보여줬고 동물의 피를 짜내거나 사람 손바닥에 못이 박힌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죽음에 이른 듯한 사람들이 이불을 덮고 가만히 누워있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뒤이어 예쁘게 생긴 한 소년이 등장해 어떤 여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을 보여줬다. 알 수 없는 의미들로 가득했던 오프닝이었다. 그 후에는 곧바로 알마와 엘리자베스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시켰다. 엘리자베스에게 갑자기 나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헝가리. 알도는 당시에는 드물었던 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아내와 아기를 잃고 혼자 살아가며, 때때로 보육원에 방문해 물건을 기증하는 등의 선행을 한다. 그것 외에는 알도에게 특별할 것 없는 나날이었다. 어울리는 사람도 딱히 없고 이웃과의 교류도 없어 보였지만 알도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듯 보였다. 그러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온 10대 소녀 클라라를 만나면서부터 알도의 인생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클라라 역시 알도와 비슷하게 전쟁으로 인해 부모가 행방불명 되었고, 여동생 죽었다고 했다. 아마도 유일한 친척이었을 고모할머니와 살고 있었던 그녀는 트라우마로 인해 예민했고 가끔은 제멋대로 행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도를 만나면서 가까워지게 되면서 클라라는 변해갔다.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남았다. 가족이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건 죄책감이 들었다. 부모는 자식들과 분리되어 나치에게 끌려가면서 어린 딸을 언니인 클라라에게 부탁했을 텐데, 동생보다 언니이긴 해도 아직 어린 나이였던 그녀는 동생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도 할 수 있었던 게 없었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클라라는 학교에서는 삐뚤어진 태도를 보였고 고모할머니와 사는 집에서는 반항적인 모습을 보였다.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갔다가 만난 알도에게 역시 비슷한 행동을 ...
물건들이 마구 어질러진 집에서 사는 남자는 아침인 듯 이른 시간에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딱히 볼 일이 있어서 나간 건 아니었지만, 해가 진 이후에도 돌아다니다 버스에서 깜빡 잠이 들었고 운전기사가 종착역이라며 깨워서 눈을 떴다. 눈을 뜬 남자는 자신이 어디를 가려고 했는지, 이름이 뭔지 기억하질 못했다. 유행병과 같은 기억상실증이 남자에게도 찾아온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운전기사는 구급차를 불렀고, 남자는 구급차 안에서 응급요원의 말대로 주머니를 뒤져 신분을 알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질 않았다. 결국 남자는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기억을 잃은 남자는 괴로워할 법도 했지만 기억하는 게 없어서인지 평온하기만 했다. 병원 의사들이 그의 기억력을 시험하다 결과에 낙담해도 개의치 않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자의 기억은 돌아올 기미가 없고 찾아오는 가족도 없자, 병원 측에서는 무연고자 기억상실증 환자가 새 인생을 살 수 있는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어느 날부턴가 사람들이 갑자기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힌 것도 아니고 큰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것도 아닌, 그저 두통처럼 기억상실증이 문득 찾아오게 됐다. 차를 몰고 가다가 방금 내렸는데 자신이 이 차를 운전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다행스러운 건 전염성이 있는 병은 아니라서 누군가는...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독일군이 프랑스까지 밀고 들어와 파리는 봉쇄되고 있었다. 게오르그 역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는데, 친구가 어떤 부탁을 하면서 그 대가로 돈을 주겠다고 했다. 유명 작가 바이델에게 그의 아내와 멕시코 영사관이 보낸 편지 두 통을 전해주는 쉬운 부탁이었다. 근처 호텔에 투숙 중인 바이델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오면 돈을 바로 주겠다는 말에 게오르그는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호텔에 도착하자, 바이델이 욕조에서 자살한 흔적을 치우고 있는 호텔 주인을 마주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친구를 만났던 카페로 돌아간 게오르그는 검문 중인 군인을 보고 달아나 쫓기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몸을 숨기고 있던 다른 친구의 쪽방에 도착한 게오르그는 그 친구에게서 또 다른 부탁을 듣는다. 죽어가는 남자를 데리고 그의 가족이 있는 마르세유로 함께 가 달라는 것이었다. 마침 마르세유로 가려고 했던 게오르그는 친구에게 돈을 받고 그와 함께 몰래 기차에 올라탄다. 기차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게오르그는 바이델의 호텔방에서 가져온 가방 속에 들어있던 원고와 부탁받은 두 통의 편지를 읽는다. 마르세유에 도착하자 검문이 깔려있었고, 함께 온 남자는 죽어 있었다. 가까스로 도망친 게오르그는 남자의 아들 드리스를 만나 친구가 되고,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듯한 여자와 여러 번 마주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언제쯤인지 정확히 명시되진 않...
할머니 집에서 지내고 있는 열 살 마르쿠스는 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슨 사연인지 엄마, 아빠는 마르쿠스와 함께 이곳에 오지 않아 혼자뿐이었고, 여기선 학교에도 다니지 않았으며, 친하게 지낼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잔소리만 하며 맨날 밖에서 놀 바에는 로베르츠 아저씨의 정비소에 가서 일이나 하라고 했다. 로베르츠는 아내는 물론 자신의 아버지에게도 폭력적으로 행동할 만큼 거친 사람이라 당연히 마르쿠스에게도 퉁명스러웠다. 마르쿠스는 로베르츠에게 일을 배우기보다 화가인 아빠처럼 그림을 그리는 게 훨씬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끔 어울리던 에밀리가 숲에서 실종되자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마르쿠스는 에밀리의 엄마에게 추궁을 당하면서 졸지에 사악한 사이코패스로 소문이 난다. 아니라고 하는 손자의 말을 할머니조차 믿어주지 않는 와중에 마르쿠스는 깊은 숲에 혼자 사는 뱃사람 할아버지를 만나 친구가 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웨이브×전주국제영화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영화는 울창한 숲에서 홀로 발길을 옮기는 마르쿠스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약속은 약속이지"라는 말을 혼자 읊조리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섬뜩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운을 풍기는 이유가 곧 드러났다. 숲 한가운데에 있는 구덩이에 빠진 에밀리가 마르쿠스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는데도 아이는 멜로디를 붙여 부르는 노래에 구해줄지 말지 선택을 맡겼...
고등학교 졸업반 마샤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대학에 갈지, 아니면 취업을 할지 정하지 못한 상황인데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마샤는 겉으로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그저 친한 친구 야나, 세니아와 함께 보내는 이 순간을 즐길 뿐이다. 그리고 몰래 짝사랑 중인 같은 반 사샤를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불안한 시기를 보내는 건 마샤뿐만이 아니었다. 야나와 세니아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가장 친한 서로에게도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샤가 좋아하는 사샤 또한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고민 중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웨이브×전주국제영화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상태가 바로 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의 학생일 것이다.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정하지도 못했는데 이제 곧 학생이 아니라서 사회로 내몰리게 됐다. 학교와는 다를 것이 분명한 사회에 대한 불안감이 그들을 뒤늦은 방황의 길에 접어들게 했다. 국가마다 법이 달라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몰래 흡연을 하고 부모님이 들어오지 않을 친구네 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노는 걸 보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렇게 모여있을 땐 각자의 고민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 있거나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17세기 말, 어느 해안가의 외딴섬에는 작고 전통적인, 그러면서도 가난한 마을이 있었다. 그곳에 사는 남자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맏이인 알란 역시 아빠를 도와 물고기를 잡았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기술이 없어서인지 원하는 만큼의 수확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알란은 엄마와 아빠, 어린 두 동생과 함께하는 현재에 만족하는 듯했다. 앞으로 더 배워나가면 되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 가난한 섬에서는 자급자족에 한계가 있어서 때때로 마을 사람들은 가족들을 위해 부유한 사람에게 팔려간다. 그들의 노동력을 얼마 되지 않는 곡식 따위로 쳐줬지만, 그 정도만 있어도 남은 가족들은 당분간 끼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알란의 아빠 역시 가족을 위해 떠나기로 했다. 아빠는 알란에게 가족을 대신 보살펴주라면서, 2년만 있으면 돌아올 거라는 말을 남겼다. 그 후 알란은 아빠 대신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웨이브×전주국제영화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영화의 배경이 된 마을은 주변이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여 너무나 아름다웠다. 고요한 그 작은 마을에서 자연을 곁에 두고 살아가면 몸도 마음도 잔잔하게 평화로워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먹을 게 없었고 섬이라는 한계로 인해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알란의 아빠와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노예 계약을...
2086년 6월 20일. 한 남자가 자신이 지구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그저 살아만 있었노라고, 그래서 마지막 인간이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2년 전인 2084년 4월에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당시에 그는 임신한 여동생과 함께 있었다. 런던이 홍해로 가라앉기 전 파리에 도착한 그와 여동생은 몸을 숨길 안락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두 사람은 썩은 시체로 인해 끔찍한 냄새가 풍기지만 먹을 수 있는 캔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는 허물어진 건물 벽 너머에 숨어있는 공간에 얼마 동안 머물게 된다. 하지만 캔은 금세 바닥이 나버렸기에 임신 중인 동생을 먹이기 위해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간다. 그러다 동생의 뱃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했던 아이들 무리를 마주쳐 잔혹한 일을 겪은 후, 남자는 정처 없이 떠돌다 사람들을 "호출"하는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그곳에서 남자는 늙어 죽어가는 노인을 만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웨이브×전주국제영화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남자는 아마도 세상이 이렇게 종말에 이르렀을 때 태어난 듯했다. 그래서인지 노인을 만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라는 것을 처음 보게 됐을 때 사람들이나 동물이 벽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영상을 신기해하며 나중엔 푹 빠져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에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아...
핵전쟁 위기가 코앞에 있었던 1960년. 소련에 거주하는 정보총국 대령 올레크 펜콥스키는 조국의 중대한 기밀을 빼돌려 서방 국가에 알리고자 한다. 발각된다면 반역자로 낙인찍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목숨까지 장담할 수 없는 데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흐루쇼프가 전 세계를 큰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올레크는 주의에 또 주의를 더해 소련에 여행을 온 미국인에게 자료를 전달했고, 그 자료는 대사관을 통해 CIA로 흘러들어갔다. 거기에 영국의 MI6가 손을 보탰다. 하지만 자신들의 요원을 소련으로 보내기엔 너무 위험한 시기였다. KGB의 정보력이 무시무시한 수준이라 요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CIA와 MI6가 합의를 거쳐 모스크바에 정보 운반책으로 선택한 사람은 사업가인 그레빌 윈이었다. 냉전시대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전 세계가 소련과 미국의 신경전으로 인해 이제 겨우 수습해나가고 있는 전쟁의 여파를 다시금 무너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핵 전쟁이 터지기 전에 무엇이든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각각 미국과 영국의 정보국 CIA와 MI6가 손을 잡은 것만 봐도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위기를 일개 사업가로 막겠다는 것부터 너무 당황스러웠다. 요원의 정보가 알게 모르게 빠져나갔을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 차선책이 훈련받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
제2차 세계대전. 탱크 "퓨리"를 이끄는 대장 워대디는 최근 부하를 한 명 잃었다. 오랫동안 좁은 탱크 안에서 적에 대항해 함께 싸웠던 동료를 잃었다는 사실에 다른 부대원들은 슬픔에 잠겨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워대디는 감상에 젖을 시간 따위는 없다는 듯 그들을 종용해 부대로 돌아갔다. 워대디는 상사에게 함께 떠난 전차부대 대원들은 모두 사망하고 자신들만 남았다며 덤덤하게 보고를 했다. 그들이 부대로 돌아간 사이에도 전쟁은 이어지고 있었기에 잠깐 숨을 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다시 작전을 나가야만 했다. 작전을 나가기 전 여러 준비를 하던 워대디의 탱크에 공석을 채워줄 신병 노먼이 배속된다. 노먼이 입대한지 8주밖에 되지 않았고 신실한 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워대디는 강압적인 태도로 노먼과 부대원들을 데리고 전쟁터로 향한다. 적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전쟁이 수많은 이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쟁을 가까이에서 보고 듣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전쟁을 직접 체험하는 군인들은 더욱 심각한 상태에 있었다. 그들이 동료의 죽음을 보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 다른 것에는 무감한 듯 느껴지기도 했다. 새 병사 노먼이 배속됐을 때는 그를 놀리며 희롱했고 탱크에 탔을 땐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서 윽박을 질렀다. 그래도 노먼에게 한 행동은 그나마 양반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건 독일인들이 사는...
무당파의 마지막 무사로 알려진 리무바이는 더 이상의 수련은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산한다. 곧바로 자신이 오랫동안 흠모했던 여인 수련을 찾아간 그는 북경에 가야 한다는 그녀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의 청명검을 태대인에게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리무바이에게 청명검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수련은 그를 회유해보지만 리무바이의 결심은 굳건했다. 그래서 그녀는 운송해야 하는 물건과 청명검을 싣고 북경으로 향했고, 태대인에게 검을 전달한다. 그러고선 자고 가라는 태대인의 말에 하룻밤 머물 거처를 안내받던 중 그의 또 다른 손님인 용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옥대인의 딸 용은 곧 혼인을 앞두고 있던 양갓집 규수였는데, 청명검과 리무바이에 관한 수련의 말을 들은 그녀는 자신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무사의 인생을 동경하는 듯했다. 수련이 어린 아가씨를 잘 다독인 뒤 헤어진 그날 밤, 도둑이 나타나 청명검을 훔쳐가 버렸다. 영화는 리무바이의 청명검을 두고 일어난 사건을 따라 흘렀다. 리무바이가 검을 선물하고, 위장을 했지만 딱 봐도 용이었던 도둑이 검을 훔치고, 수련이 눈치를 채고 용을 떠보고, 리무바이가 검을 되찾아오고 다시 훔쳐 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검 하나 때문에 난리법석을 떤 것이었으나 등장하는 캐릭터의 개개인을 살펴보면 운명의 굴레를 짊어지고 있었고, 그걸 쉽사리 벗어던질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록키 산맥에 위치한 작은 마을 "도그빌"에 그레이스라는 아름다운 여자가 갑자기 나타났다. 늦은 밤 마을을 떠돌며 혼자 사색에 잠겨있던 자칭 작가인 톰이 그녀를 발견했다. 겁에 질린 그녀를 살피기도 전에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톰은 그레이스를 폐광에 잠시 숨게 했다. 그러고선 차를 타고 온 갱들이 여자를 찾자 모른 척 잡아뗐다. 갱들이 연락처를 남기고 떠난 이후 톰은 놀란 그레이스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가 도그빌에 온 것이 운명이라 생각한 톰은 작은 마을이라 위험하지만 그녀를 이곳에 살게 하며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톰은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을 회의에 소집해 그레이스를 소개해 주며 사정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낯선 이의 존재가 발각되기 쉬운 작은 마을인데다가 그녀가 나타나기 전에 들린 총소리로 인해 사람들은 그레이스를 받아들이는 것을 꺼려 한다. 톰이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자 그들은 일단 2주 동안만 그녀를 마을에서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 2주 뒤에 그녀가 여기에 남을지, 떠날지는 역시나 회의로 결정이 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도그빌에 머물게 된 그레이스는 그곳에서 지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일을 도우며 선의를 베푼다. 도그빌은 굉장히 폐쇄적인 마을이었다. 차가 없으면 마을 밖을 나가기가 어려웠다. 도그빌에 하나뿐인 상점이 물건값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받아도 그들에겐 별다른 방도가 없을 정도였다. 도그빌에 ...
석고로 번성을 이뤘던 도시 "엠파이어"에서 남편 보와 살던 펀은 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사람들이 떠나 거리가 텅 비게 되자 그녀 역시 그곳을 떠났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자식조차 없는 그녀는 어느 한곳에 거주하며 살아가기보다는 소박한 짐을 모두 실을 수 있는 밴을 타고 여기저기 떠도는 유목민이 된다. 정처 없이 떠도는 길 위에서의 삶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사이클에 맞춰 움직이며 계절별로 일손을 구하는 곳에서 단기로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종종 마주쳐서 이제는 동지라고 부를 수도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영화 도입에 보여준 장면은 펀이 어떤 사람에게 잡다한 물건을 넘기는 모습이었다. 본인의 물건을 파는 줄 알았는데 그에게 돈을 주던 걸로 봐서 아마 보관하도록 맡기는 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이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비워내는 것은 길을 향해 떠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길을 떠나는 펀의 모습을 보며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는 건가 하는 걱정부터 했다. 그녀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우선이었고, 아무리 최소한의 금액만으로 생활할지라도 차를 몰고 돌아다니려면 일정 부분의 유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우려였다는 걸 바로 보여줬다. 아마존 같은 큰 회사에서 단기로 일하고, 캠핑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계절에는 캠핑장 관리직으로 일했다. ...
어느 날 문득, 빌은 여기서는 살 수 없다고 아들 웨스에게 말한다. 웨스는 잠결에 들은 말에 의아해했지만 이내 이해하는 듯 보였다. 날이 밝자 부자는 얼마 되지 않는 짐을 꾸려 차에 싣고 먼 길을 떠났다. 빌은 대학 동창이자 현재는 사립학교 교장으로 있는 폴이 도와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폴은 수학 교사인 빌이 학교에서 일할 수 있게 배려해 줬고, 웨스 역시 전학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낯선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집을 계약해 부자는 일단 그곳에서 살게 된다. 웨스는 낯선 학교에서 적응을 하며 필수라고 하는 운동부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다 프랑스어 수업을 같이 듣는 타 학교 학생 레이시의 숙제를 도와주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그녀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빌은 곤란한 상황에 처한 동료 교사 카린의 부탁으로 친한 척하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카린은 자신에게 추근거리는 다른 교사와 달리 다정하고 깔끔한 태도를 보이는 빌에게 호감이 생기고, 빌 역시 카린의 호감에 제법 기분이 좋다. 살던 곳을 떠나 먼 곳으로 충동적인 이사를 하자는 아빠 빌에게 10대 아들 웨스는 충분히 반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웨스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빌과 웨스는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년 전, 빌의 아내이자 웨스의 엄마 지니는 병을 진단받고 6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내...
잡지사에서 일하는 마흔두 살 레스터는 매일이 똑같고 지루하기만 하다. 그에게 삶의 낙이라는 게 없어진 지 너무나 오래됐다. 사랑해야 마땅한 아내 캐롤린과 딸 제인은 레스터를 루저, 실패자로 낙인을 찍어 한심하게 여겼다. 레스터는 캐롤린과 제인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마음으로 쳇바퀴 같은 나날을 반복한다. 그러다 캐롤린에게 끌려 제인의 학교 행사에 갔던 날, 레스터는 딸의 친구 안젤라에게 한눈에 푹 빠져버리고 만다. 제 자식이라 아직 어려 보이기만 한 제인과는 다르게 안젤라는 성인 뺨치는 뇌쇄적인 외모를 너무나 잘 활용했다. 끈적한 눈빛과 몸짓에 매료된 레스터는 집에 놀러 온 안젤라가 제인과 대화하는 걸 엿듣기도 했고, 때론 안젤라를 상대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상상을 하며 꿈을 꾸기도 한다. 그때부터 레스터의 삶은 무력에서 활력으로 바뀐다. 요즘 시대엔 한창일 때라고 말할 나이지만 영화가 제작됐을 1999년의 마흔두 살은 중년의 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캐롤린과는 뜨거운 시기가 오래전에 지나버려서 부부라는 이름의 가족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같은 침대에 누워 함께 잠을 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에게 스킨십을 하는 게 더 놀랄 일이었다. 여기에 하나뿐인 딸은 아빠를 싫어한다고 볼 수 있었다. 영화 오프닝에 제일 먼저 등장한 제인은 아빠가 자신의 친구를 음흉...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고향 카이리로 온 뤄홍우는 죽은 친구 백묘가 떠오른다. 노름빚에 쫓겨 다니던 백묘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의 사과 수레를 끌어주었다. 백묘는 사과를 줘홍위안에게 팔 생각이라고 했다. 그런 백묘가 갱도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뤄홍우는 그에게 받은 썩은 사과를 치우다가 총을 발견했다. 뤄홍우는 카이리에서 사라진 줘홍위안 대신 그의 애인 완치원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녀와 깊이 사랑에 빠진다. 뤄홍우는 완치원과 사랑했던 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록색 책에 담긴 이야기와 그녀와의 사랑을 혼동하기도 한다. 뤄홍우는 그녀와 닮은 어머니의 사진을 들고 완치원을 찾아 여기저기 헤맨다. 뤄홍우는 종종 그녀가 나오는 자각몽을 꿨다. 나이가 몇인지, 본명은 뭔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그녀를 그는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듯했다. 머리가 희끗해진 현재에도 젊었을 적 한때 사랑했던 여자를 꿈에서나마 만나는 걸 보면 뤄홍우에게 그녀는 영원한 사랑인지도 몰랐다. 현재의 뤄홍우가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꿈뿐이었고, 꿈인지 회상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그녀와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교차로 진행됐다. 꿈과 과거의 구분이 모호했던 이유는 뤄홍우에게 그녀는 언제까지나 젊고, 초록빛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장면은 뤄홍우의 머리카락이 희끗할 ...
10대 소년 찰리는 아빠와 살기 위해 얼마 전에 새로운 곳에 왔다. 단출한 짐을 방에 부려놓고 해도 뜨기 전에 한적한 시골 마을을 한 바퀴 뛰고 오자, 아빠와 가끔 만나 집에서 잔다는 직장 동료가 아침을 차려주었다. 아빠와 그 아줌마가 회사로 출근을 한 뒤에 찰리는 온전히 혼자가 됐다. 동네를 둘러보다 경마장으로 향한 찰리는 경기가 없어서 말은 구경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후 늦은 밤이 되어서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음날, 찰리는 어제와 같이 동네를 달리다가 도움을 요청하는 델 아저씨를 만난다. 타이어를 갈아야 하는데 손을 다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던 델 아저씨가 10달러를 준다고 하길래 도와줬다. 마땅히 할 일이 없던 찰리는 도울 일이 있느냐고 묻고는 말 조련사인 델을 따라가 말을 훈련시키고 여러 잡일을 하는 등의 일을 해서 돈을 번다. 이후 찰리는 델과 함께 일하며 그의 말 "린 온 피트(피트)"에게 애정을 쏟는다. 상황에 따라 열다섯, 열여섯, 혹은 열여덟 살까지 말하던 찰리의 진짜 나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딱 봐도 어려 보이는 외모에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던 찰리는 분명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였던 건 확실했다. 아빠와 살기 전에 있었던 곳에서는 학교에 다니며 풋볼 선수로도 뛰었던 걸 보면 지금도 다녀야 했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찰리는 당분간 학교에 다니지 않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