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해봤자야." "사람들은 다 똑같애." 나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과는 가급적 거리를 두고 있어. 저 말은 자신의 게으름이나 부족함이나 잘못에 대한 면피로도 곧잘 쓰이고,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거나 남들이 뚜벅뚜벅 걸어나가려고 하는 걸 발목 붙잡으며 초를 치는 사람들의 말일 테니까." #임경선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에서 어제 하루도 성실히 살았다. 나는 거의 매일 읽고 쓰고 고치고 제안하고 질문하고 답하기를 반복하는데 이것도 10년 간 쉬지 않고(아이 출산하고 난 다음 한 달은 빼고...) 했더니 단순한 계획이 아닌 습관이 되었다. 습관의 힘으로 북레터며 편집일이며 에세이쓰기연습 수업까지 진행하는데, 이게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다. 이번 주처럼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꼈을 때가 그렇다. 하지만 죽을 병 아니면 다 극복할 만하다. 몸의 신호를 받아들이고, 낮잠을 조금 잤다. 벤시몽 단화가 내 발목에 안 좋았는지 며칠째 발바닥부터 복숭아뼈까지 아파서 파스와 진통제를 달고 살지만, 금요일이 되니 정말 미세한 통증만 남았다. 그렇다고 주말에 무리해서 걷고 싶지는 않다. 뭐든 무리하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든 대충 대충하는 것만큼 나쁜 것도 없다. 위의 임경선 작가의 말처럼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애, 쉬엄쉬엄 살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절대 사람 사는 거 ...
산책 나가기 전에 남기는 글. 시인의 산문집은 뭐랄까.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좋은 문장이 많은 것이다. 오늘은 이 부분에 밑줄을 팍팍 그었다. (나는 책은 거칠게 다룰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만들 때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구두점과 자간까지도 그냥 넘어가지 않지만 이미 출간된 책은 밑줄도 팍팍 치고 책 귀퉁이도 접고 메모도 남기고 온전히 내 마음대로 책을 재편집한다). 이 책을 되팔 생각도, 누군가에게 빌려줄 생각도 없어서 더 천천히 읽고 덮고 다시 읽는다. 그 시절의 나를 누군가는 '문학소녀'라 칭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말은 멸칭처럼 느껴져서 사용하고 싶지 않다. 세상모르고 문학에만 빠져 꿈을 꾸는 그런 이미지는 기득권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기득권 남성들에 의해 소비당하기 때문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어린 여성은 누구보다 현실적이고 냉소적이며 회의에 가득차 있다는 것을 그들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회가 원하지 않는 여성이니까. '문학소녀'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낙인 같다.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중에서 나도 큰 돈을 쓰지 않고 혼자 있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고(씹어먹었고), 소음이 너무 많아서 음악만 들었던(귀에서 이어폰을 빼질 않았던) 시절을 '문학소녀'라고 표현하는 일을 관두었다. 그때의 글은 상상력이 발휘되었다기보다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지금 내가 오히려 '소녀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