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책추천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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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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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에 매달리게 된다-

오랜만에 전공서를 읽듯이 천천히, 밑줄을 긋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되풀이해 읽거나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바로 나만의 스승이자 모든 이의 스승, 세잔에 대한 페터 한트케의 에세이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이 나를 자꾸 앉아있게 한다. 왜인지, 그냥 나만의 장난감을 갖고 싶어서 징징대는 어린아이처럼 그의 글에 매달리게 된다. 어제는 여섯 시간 동안 페터케와 세잔과 데이트하며 11월 세 번째 북레터를 완성했다. 독일에서 산다는 생각은 여전히 내게 가능하다. 왜냐하면 매일매일 활자를 읽는데 그처럼 '꾸준한' 사람들이 많은 곳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홀로 떨어져, 아무도 모르게 읽는 은밀한 종족이 그처럼 많은 나라는 없다.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 중에서 북레터에 담지 못한 '밑줄 그은 문장'이 참 많은데 -이 책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플로베르의 문장배열을 대했을 때만 유일하게 느꼈던, 그런 강렬한 탐구요"에 휩싸이게 만든다. 오늘처럼 구름이 잔뜩 끼고 어두운 날에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사실, 북레터를 마감하고 나면 잠시 동안 그 책을 멀리 하고 싶어지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은 게 신기하다. 이렇게 매일매일 활자를 읽는데 매번 다르게 다가오는 책들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러고 보면 스무 살 이후로 '이놈의 책' 때문에 친구를 애써 만들지 않고 왁지지껄한 모임에 가지 않게 되었다. 출판사에...

2020.11.19
나는 괜찮지 않다-

새벽 두 시가 가까워져가고 나는 혼자 작은방에 앉았다. 남편도 시애틀로 출장을 가고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두 번째 밤. 겨우 재운 아이의 숨소리가 멀리서 들리고 나는 전혀 '괜찮지 않은' 요즘에 대해 길게 생각해보고 싶다. 물론 어서 잠을 청해야 하는 시각이지만 이상하게 오늘 새벽은 더욱 잠들기 싫다. 아마도 다음달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기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책을 쓰면 '미국 시골 마을에서 느리게 살고 있다'고 프로필을 마무리하곤 했다. 표면적인 말만 놓고 보면 누군가는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여유가 느껴지는 프로필이다. 정말 느리게 살다가,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내 삶은 통째로 사라졌다.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잠을 내 마음대로 잘 수 없고, 먹는 것도 씻는 것도 나가는 것도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영어공부를 진득하게 할 수 없고, 들어온 편집일을 마무리할 시간과 여유도 없다. 주말에 얻는 창작 시간에 겨우 글쓰기 원고를 쓰는데, 최근에 집안에 여러 이슈들이 겹쳐 그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읽고 싶은 신간은 차곡차곡 전자책으로 사두지만 끝을 본 책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다. 이곳은 아이를 맡기고 외식 한번 나갈 수 없는 '가족 하나 없는' 그런 곳이다. 친한 친구들도 멀리 살거나 아이가 있어 우리와 같이 자...

2019.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