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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문화재 여행 이야기 입니다 사진, 글, 링크 맘껏 사용 가능합니다 사진은 과거 촬영분 일수도 있습니다 강화도의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재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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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100회 방문
김취려 묘 인천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산 71 큰길에서 이정표를 보고 비포장 산길을 따라 357미터쯤가면 주차장도 있고 관리도 잘되고있는 김취려 묘가 나옵니다 비포장이지만 차로 갈만합니다 강화군청 홈페이지에서는 고려 후기의 장군 김취려의 묘이다. 그는 고려 후기 예부시랑을 지낸 김부(金富)의 아들로 본관은 언양이며, 음서(蔭敍)를 통해서 정위(正尉)에 임명되었다. 그후 1219년에는 몽골군과 동진국과 힘을 합쳐 강동성에 웅거한 거란군을 격퇴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1232년에는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 사람됨이 정직하고 검소하였으며, 아랫사람을 바르게 다스려 누구도 그를 속이지 못하였다고 한다. 고종 21년(1234) 강화에서 사망하였다. 김취려 묘지석에는 ‘공은 갑오년(고종 21, 1234) 2월 14일에 미미한 병세를 보이다가 21일에 갑자기 돌아가시니 향년 63세이다. 천자(天子)께서는 몹시 슬퍼하며 조문하고 부의를 내리셨다. 공은 복야(僕射) 조언통(趙彦通)의 따님을 부인으로 맞아들여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두시고 뒷일을 처리하게 하였다. 7월 12일에 진강산(鎭江山) 대곡동(大谷洞) 서쪽 기슭에 예장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묘지석이 발견된 곳에 강화군과 언양김씨 종친회에서 묘소를 새롭게 정비하였다. 묘역에는 원형의 봉분 앞에 망주석 한 쌍과 상석이 갖추어져 있으며, 하단 부분에 묘역을 정비하고 종친회에서 건립한 비석이 세워져 ...
이규보 묘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 121 강화군청 홈페이지에서는 고려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1168∼1241) 선생의 무덤이다. 고려의 무신정권 하에서 태어나 무신정권에 적극 협력했던 문인의 한 사람으로, 1191년(명종 19)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 최충헌(崔忠獻)에게 발탁되어,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는 「동명왕편」을 비롯한 2천여 수의 시와 산문은 대다수의 작품들이 문학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동명왕편」은 초기 고구려사 연구와 우리 민족의 자주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료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또한 몽골군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해서 대장경을 만들 때 민족수호의 충정이 담긴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을 지었다. 현재 묘역에는 상석과 장명등(長明燈:무덤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무인석·망주석과 석양(石羊) 한 쌍씩이 세워져 있다. 봉분 하단은 둘레돌이 둘러쳐 있으며 1967년 후손들이 묘역을 정화하고, 묘역의 오른편에 재실(齋室)과 왼편의 유영각(遺影閣)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묘 주변의 석물 중 문무석은 매우 고졸하여 당시 유풍을 알 수 있는 귀한 조각이며, 석양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고려시기의 조각으로 평가되고 있다. [...
석릉 주변 고분군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산183 주차는 강화석릉입구를 입력하거나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도장리 186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강화 석릉 주변 고분군 발굴조사 보고서를 보게되어 다시 한번 강화 석릉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발굴조사 내용입니다 답사 사진 중간중간에도 발굴조사 보고서 사진과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석릉은 고려 21대 왕인 희종(재위 1204~1211)의 무덤으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182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진강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능선 상에 남북길이 32m, 동서너비 20.5m 규모의 능역이 조성되어 있다. 1974년에 진행된 능역 정비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2001년 발굴조사가 실시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석릉은 총 5단으로 구성되었으며, 최상단에는 직경 4m, 높이 1.8m의 봉분을 중심으로 할석을 쌓아 조성한 곡장이 ‘⊓’형으로 둘러져 있다. 곡장의 서쪽 전면에는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석인상 1기가 세워져 있다. 2단은 남북 2.5m 규모로, 능비와 석인상 1기가 위치한다. 3단은 남북길이 6.1m 규모이며, 발굴조사 당시 1단의 석렬과 초석 및 적심시설, 다량의 기와편이 확인되었다. 4~5단은 남북길이 각 6.5m, 5m로, 별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최상단의 매장주체부는 횡구식 석실 구조인데, 규모는 길이 3.3m...
혈구산 자락 퇴미산 갈궁절터, 백제시대 횡구식 고분?(조선시대 한증막), 계곡, 암자터, 고묘군,고분군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삼성리 산186 인터넷 검색하다보니 아래와같은 내용이 있어서 답사 다녀왔습니다 한국의사지에서는 언급된적없는 폐사지이더군요 아래 자료도 같이 찾았는데 전 아무리봐도 조선시대 한증막으로 보이더군요 전문가님들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죠 전 강화군 농업기술센터(아르미애 월드)에 주차후 퇴미산을 향해 올랐습니다 농경문화관 뒷편으로 가면 퇴미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산길 오르는중에도 자기편이 보이네요 퇴미산 정상 가기 조금전에 인산리 석실분으로 가는길과 퇴미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가야됩니다 당연히 길은 없습니다 ● 갈궁사지 100여미터만 내려가도 바로 보입니다 등산로에서 조금밖에 안 벗어나 있는데도 최근에야 발견 됐다는게 더 신기합니다 대부분의 분들은 등산로로만 다닌다는 반증이지 않나싶습니다 바로 자기편과 기와편을 어렵지않게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규묘가 제법 큰 절터 였던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은 우물터로 보입니다 ● 백제시대 횡구식 고분 (조선시대 한증막 추정) 산 186 주소지가 전부 절터 이네요 백제시대 횡구식 고분이라는 곳이 보입니다 전 아무리 봐도 조선시대 한증막 인데...... 작은 계곡 바로 전에 있습니다 ● 갈궁사지 암자터 이곳은 위에 자료에도 나오지 않은 곳인데 작은 계곡을 넘어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