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추천
37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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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 강 시집 | 문학과 지성사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 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1993년에 시인으로 등단한 한강이 거의 20년 만에 묶는 첫 시집이다.조연정 해설가님의 글도 참 좋았다. 말과 동거하는 인간으로서 한강은 침묵의 그림을 그리는 시인이라고 했다. 한강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그림의 실재가 궁금하다면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를 읽기를 권하고 있다. 이 시집 안에는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이 있다. 그때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뙤약볕에 마르는 날이 간다 끈적끈적한 것 비통한 것까지 함께 바싹 말라 가벼워지는 날 겨우 따뜻한 내 육체를 메스로 가른다 해도 꿈틀거리는 무엇도 들여다볼 수 없을 다만 해가 있는 쪽을 향해 눈을 감고 주황색 허공에 생명, 생명이라고 써야 하는 날 혀가 없는 말이어서 지워지지도 않을 그 말을 해부 극장 새벽에 들은 노래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봄은 봄 숨은 숨 넓은 넋...

20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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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 박연준 | 시집 추천

박연준 | 시집 추천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박연준 재봉틀과 오븐 늙는다는 건 시간의 구겨진 옷을 입는 일 모퉁이에서 빵냄새가 피어오르는데 빵을 살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진다. 미소를 구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높은 곳에 올라가면 기억이 사라진다. 신발을 벗고 아래로 내려오면 등을 둥글게 말고 죽은 시간 속으로 처박히는 얼굴 할머니가 죽은 게 사월이었나 사월 그리고 사 월 물어볼 사람이 없다. 당신과 나를 아는 사람은 모두 죽거나 죽은 것보다 멀리 있다. 사랑을 위해선 힘이 필요해. 라고 말한 사람은 여기에 없다 만우절에 죽었다 그의 등, 얼굴, 미소를 구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사랑과 늙음과 슬픔, 셋 중 무엇이 힘이 셀까 궁금해서 저울을 들고 오는데 힘은 무게가 아니다. 힘은 들어볼 수 없다. 재봉틀 앞에 앉아 있고 싶다 무엇도 꿰매지 않으면서 누가 빵을 사러 가자고 노크하면 구겨진 옷을 내밀고 문을 닫겠다. 당신은 내 앞에 내려앉은 한 벌의 옷 사랑한 건 농담이었어, 당신이 변명하면 나는 깨진 이마 같은 걸 그려볼 것이다. 웃을게요 웃음을 굽겠습니다. 저녁엔 얇아진다. 침대에 앉아 바지를 벗고 양말을 벗으며 나를 찾는다 부풀거나 야윈, 나라는 조각들 발치에 개켜두고 찾는 것은 나, 찾는 사람도 나 책상 위에 접혀 있는 것 변기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 고양이가 핥아먹은 것 모두 다 나 무너지는 산을 등으로 막아야 하는 것도 ...

202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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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시집 추천 |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이정하

머리가 복잡하거나 영혼을 쉬게 하고 싶을 때 지금 읽는 책이 집중이 안 될 때 옆에 두고 읽는 시집 이정하 님의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가을 시집 추천 |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이정하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저자 이정하 출판 문이당 발매 2016.02.10.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1장 기대어 울수 있는 한 가슴 길 위에서 길 위에 서면 나는 서러웠다.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길이었으므로 돌아가자니 너무 많이 걸어왔고 계속 가자니 끝이 보이지 않아 너무 막막했다. 허무와 슬픔이라는 장애물 나는 그것들과 싸우며 길을 간다. 그대라는 이정표 나는 더듬거리며 길을 간다. 그대여, 너는 왜 저만치 멀리 서 있는가 왜 손 한 번 따스하게 잡아주지 않는가 길을 간다는 것은 확신도 없이 혼자서 길을 간다는 것은 늘 쓸쓸하고도 눈물겨운 일이었다. 가을 시집 추천 |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이정하 아주 잠깐 너에게서 벗어났다고 여긴 적이 있었어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어. 그걸 깨닫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 너에게서 벗어나다니, 감히 말하지만 그건 내가 죽어서 나 가능한 일이야.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길이었다’라는 시가 있어. 나희덕 시인의 [푸른 밤]에 나오는 구절이야. 그래 맞아 세상에 나 있는 수없이 많은 길 중에서 어느 한 길도 너를...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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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시 추천 |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 창비시선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우리’가 ‘나’라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다른 존재들과 함께 멀리까지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시인은 담았다고 이야기한다. [책마을] "무시 당하는 '별종'들에게 위로를" “1500년대 유럽에선 머리 긴 여자들을 ‘마녀’라고 불렀대요. ‘남들과는 다른 존재’의 목소리는 무시당하곤 했죠. 지속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선 이런 사람들까지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두 번째 시집 < n.news.naver.com 깊이 잠들었다 눈뜬 아침에는 내 인생이 오래된 영화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래된 것은 그저 오래된 것 한옥 마을 앞에서 ‘얼마든지, 얼마든지’ 약속하는 두 사람 같은 것 레트로풍의 활짝 벌어지는 주름치마를 입고 인간의 역사를 다룬 영화를 볼 때 활짝 펼쳐진 입체 그림책같이 올록볼록 솟아나는 사람과 풍경들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은유로 가득해. <오래된 영화 중에서> 밤이 검은 건 밤에는 차선을 구별하기가 힘들어지고 서로의 실루엣을 가볍게 통과하고 밤이 검은 건 우리가 서로를 마주 봐야 하는 이유야 어둠 속에서 이야기는 생겨나고 종이 한 장의 무게란 거의 눈송이 하나만큼의 무게이겠으나 무수한 이야기를 싣고 달리는 선로만큼 납작하고 가슴을 가볍게 누르는 중력만큼이나 힘센 것 한 장의 중이는 이혼을 선언하는 종지부이거나 사망신고서 찢어버린 편지이기도 하지 내가 한 장의 종이를 들고 전봇대 위로 올라가 홀로...

202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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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추천 | 문학동네 시인선 |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이병률

시집 추천 | 문학동네 시인선 |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이병률 한 사람이 남기는 것은, 오로라 당신 사라지고 당신 주변 사람들은 당신의 기물 앞에 앉아 당신의 비밀번호를 조합해나가기 시작합니다 노트북의 비밀번호를 찾는 사람들은 당신 생일부터 떠올립니다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도출해야 일이 되는 동료들은 당신의 배후를 관심 있어 합니다 통장과 카드의 비밀번호를 더듬어보던 가족들은 당신이 했던 말들의 내력을 곱씹습니다 니다 어쩌면 비밀번호가 숫자에 관련되지 않았을 거라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미래는 잡지 있습니까.라고 누군가 묻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사라지고 나자 막 잡기기 시작한 영훈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가위를 들고 몸체를 잘라나갑니다 비밀번호를 동그라미라든가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지 않고 사람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숫자를 대한 것이라고 어제로 통하는 통로를 그런 식으로 찾곤 했노라고 몇백 년 후에 누군가는 적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한 사람의 지도 조각들이 다 맞춰진다 치더라도 한 사람의 심연이 내뿜는 저 밤하늘의 마지막 전기를 만 질 수 있을까요 시집 추천 | 문학동네 시인선 |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이병률 단추가 느슨해지다 인연이 느슨해져서 꽉 물고 안 놓을 것만 같던 인연이 헐거워져서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서 밤길을 걷고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기보다는 집을 나서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싶어 밤길을 걷다 돌고 돌아서...

2023.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