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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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 아침바다 갈매기는]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배웅한다

<아침바다 갈매기는>(The Land of Morning Calm, 2024) 올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되어 뉴 커런츠상을 비롯해 3개의 상을 받은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을 보았습니다.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 신인여우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던 <불도저에 탄 소녀>의 박이웅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는 역시나 에너지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이야기가 주목하는 곳은 어딘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좀 더 가까운 현재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를 한 사건을 두고 혼란을 겪는 한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는 터전을 박차고 나와 꿈을 꿀 권리와 터전을 지켜야 할 도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든 이들을 끌어안으며,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끝에 이유는 저마다 달라도 상처 받고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인 다양한 사람들을 보듬습니다. 새로운 감독의 힘 있는 연출력, 새삼 그 진가를 드러내는 익숙한 배우들, 사려깊은 이야기가 더해져 부산국제영화에서 과연 인정받을 만한 작품성을 실감케 합니다. 동해의 한 어촌에서 나이든 선장 영국(윤주상)과 일하는 젊은 선원 용수(박종환)는 이곳에서의 삶이 버겁습니다. 이곳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용수는 계획을 세워 믿을 만한 사람인 영국에게 도움을 요청합다. 배 타러 나갔다가 용수가 사고로 실종된 것처럼 위장한 후, 그 사망 모험금으로 어머니 판례(양희경)와 베트남인 아...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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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글래디에이터 II] 복수의 전장이 혁명의 현장으로

<글래디에이터 II>(Gladiator II, 2024)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글래디에이터 II>(이하 <글래디에이터 2>)를 보았습니다. 2000년에 개봉해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은 후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포함 5개 부문을 석권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전편에 이은 무려 24년만의 속편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자아냈습니다. 전편의 신화를 쓴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이 직접 연출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이미 역사를 쓴 영화의 속편이 그것도 수십년이 지난 후 주인공을 바꾸어 등장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 것이죠. '속편의 당위성'을 관객이 납득하지 못한 사례를 최근 여러번 만난 상황에서 그 계보를 이을까 두렵기도 했던 <글래디에이터 2>는 다행히도 '나올 만한 속편'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관객이 영화에 기대하는 지점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충족시키면서, 전편과 구분되는 새롭고도 흥미로운 요소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녹여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듯이 말이죠. 로마가 칭송하는 영웅이자 최고의 검투사였던 막시무스가 복수의 사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난지 20년, 그는 시민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로마의 꿈'을 간절히 꾸었지만 그 꿈은 다시 요원한 것이 되었습니다. 쌍둥이 황제 게타(조셉 퀸)와 카라칼라(프레드 헤칭어)는 여전히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운데 정복 전쟁에 ...

20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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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학교에서 물리칠 것이 단지 귀신뿐이라면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Idiot Girls and School Ghost: School anniversary, 2024)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풍겨 나오는 국산 독립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이하 <개교기념일>)을 개봉 전 시사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2관왕(감독상,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을 차지한 이 영화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제목만큼이나 장르의 합종연횡을 거침없이 시도하며 종잡을 수 없는 모양새를 보여줍니다. 학원물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수준급의 공포 연출을 가미한 예측불허의 코미디를 구사하는 것이죠. 논리 저 너머에서 날뛰는 듯한 '대혼종'의 모습을 한 이 영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럽기는커녕 사랑스러운 것은, 이야기를 내달리는 주인공들의 매력과 심지 때문일 것입니다. 난데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주춤거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소녀들의 일관된 목소리가 담겨 있는 영화는 '갈 지' 자라도 힘차게 그리면 명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모의고사 성적에서 8등급을 벗어나지 못해 선생님으로부터 '아메바' 취급을 받는 세강여고 3학년 세 친구가 있습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씨네필 지연(김도연), 약소한 수의 구독자들에게도 진심을 다하며 습관적으로 브이로그를 찍는 인플루언서 꿈나무 은별(손주연), 촬영감독이 꿈이라 장비 잘 들고 다닐 수 있...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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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룸 넥스트 도어] 죽음의 옆방에 몸을 뉘이면 보이는 것

<룸 넥스트 도어>(The Room Next Door, 2024)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새 영화 <룸 넥스트 도어>를 보았습니다. 경력 내내 스페인어로 장편 영화를 만들어 온 알모도바르 감독이 처음 영어로 만든 장편 영화인 이 작품은 그러나, 언어만 바뀌었을 뿐 감독이 자신의 인장을 오롯이 새겨놓고 몰두하는 화두를 변함없이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주제적 요소만으로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을 만큼 다루는 소재는 논쟁적이고 논하는 주제는 무겁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는 보는 내내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그것은 아마도 지난날 '악동'이라 불렸던 감독이 이제는 '거장'으로 성숙해 가면서, 세월을 따라 함께 무르익은 시선으로 필연적인 두려움 앞에 놓인 보통의 인간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무 친밀하지도 너무 소원하지도 않은, 제목처럼 딱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 방 사람만큼의 관심을 기울이면서 말이죠. 긴 시간 파리에서 살다가 새 책 출간을 맞아 오랜만에 뉴욕에 온 작가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사인회 도중 우연히 만난 친구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습니다. 젊은 시절 뉴욕에서 같은 잡지사에서 일하며 내내 붙어 지낼 만큼 친했지만 이제는 연락이 끊긴지 오래된 옛친구 마사(틸다 스윈튼)가 악성 암에 걸려 뉴욕에서 치료 중이라는 것입니다. 잉그리드는 일정을 마친 후 그길로 곧장 마...

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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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 아노라] 낯뜨거움과 포복절도를 지나 다다른 설운 눈물

<아노라>(Anora, 2024) 지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노라>를 개봉 전 미리 보았습니다. <스타렛>,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까지 꾸준히 미국 최하층의 고달픈 현실을 미화도 비난도 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다만 연민어린 시선과 함께 조명해 온 션 베이커 감독의 이 새 영화는 성노동자를 주인공 삼아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주인공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아픈 현실을 마치 동화처럼 그려나갔듯, 이번 <아노라>는 사랑이 간절한 주인공의 내면을 따라 마치 <귀여운 여인>과 같은 신데렐라형 로맨틱 코미디처럼 이야기를 꾸며나가죠. 다만 션 베이커 감독의 이야기는 결코 현실을 벗어날 수 없고, 자연스럽게 영화는 <귀여운 여인>의 '하이퍼리얼리즘 버전'으로 뻗어나가며 관객에게 한 대 얻어맞은 듯 쓴내 나는 여운을 남깁니다. 브루클린에 사는 우즈벡계 미국인 스트리퍼 아노라, 아니 '애니'(미키 매디슨)는 가게를 찾는 남성들을 상대로 자신의 몸을 이용한 다양한 레벨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런 애니에게 어느날 손님으로 러시아 재벌2세 청년이 찾아옵니다. 바냐(마크 아이델슈타인)라는 이름의 그 청년은 미친 듯이 애니에게 어필하며 자신의 으리으리한 집으로까지 초대하고, 애니는 그런 바냐의 천진하고...

202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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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보통의 가족] 보통으로 남기 위해 남겨야만 하는 핏자국들

<보통의 가족>(A Normal Family, 2024) 허진호 감독의 새 영화 <보통의 가족>을 보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영화화된 바 있는 독일 작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제목처럼 가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제목과 달리 감정적 파고가 몹시 심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허진호 감독 작품을 떠올리면 그와 결이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대표작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감독이 보여줬던 애틋한 가족의 모습을 생각하면 <보통의 가족> 속 가족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되어 괴리감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허진호 감독의 냉엄한 연출력과 쟁쟁한 배우들의 서슬퍼런 연기 경연이 더해진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긴장감과 살얼음 아래 얼어붙은 강물처럼 수시로 정신을 얼얼하게 하는 전개로 강렬한 화두를 던집니다. 형제인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의사 재규(장동건)은 지극히 다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형 재완은 돈을 위해서라면 세간의 지탄을 받는 범죄자의 변호도 기꺼이 맡을 정도로 속물적인 반면, 동생 재규는 자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직업적 사명에 충실하려는 도덕적인 인물이죠. 그래서인지 두 형제는 살아가는 환경도 여건도 다릅니다. 재완은 으리으리한 집에서 재혼한 아내 연경(수현), 전처 사이에서 난 첫째 혜윤(홍예지), 연경 사이에서 난 둘째 딸 사랑과 남부럽지 않은 삶...

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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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와일드 로봇] 이별은 잠시일 뿐 만남은 영원하기에

<와일드 로봇>(The Wild Robot, 2024) 드림웍스의 새 애니메이션 <와일드 로봇>을 보았습니다. <슈렉>, <드래곤 길들이기>, <쿵푸팬더> 등 20여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잊지 못할 이야기들을 선사해 온 드림웍스에게 이 영화는 자체제작하는 마지막 애니메이션입니다. (이후 나오는 애니메이션들은 외주 제작사에 더 많인 의존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변화가 완성도와는 상관없을 수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보여 온, 성인 관객까지 보다 넓은 관객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쾌하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성숙한 작품 기조를 좋아했던 관객들에게는 아쉬운 소식일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와일드 로봇>은 마치 드림웍스의 '마지막 불꽃'인 것처럼 장엄한 광경과 섬세한 터치, 역동적인 볼거리와 사랑스러운 캐릭터, 그리고 감동적인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관객층의 마음을 굴복시킬 정도의 퀄리티와 매력을 모두 지닌 역작으로 나타났습니다. 가까운 미래로 보이는 어느 시기, 집안일부터 자잘한 부탁까지 구매자의 모든 것을 도와주도록 설계된 인간형 로봇 '로줌 유닛 7134'(루피타 뇽)가 배송 중 사고로 거대한 야생 섬에 불시착합니다. 구매자로부터 임무를 받아야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이지만, 사방이 동물들인 곳에서 구매자도 임무도 있을 리 없습니다. 일단은 주변을 탐색하고 학습하면서 로줌 7134는 낯선...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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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조커: 폴리 아 되] 힘보다 무거운 어둠은 가슴에 닿지 못하고

<조커: 폴리 아 되>(Joker: Folie a Deux, 2024) 스포일러 있습니다 코믹스 원작으로서는 비평적, 흥행적으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조커>의 5년만의 속편 <조커: 폴리 아 되>를 보았습니다. 전편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등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데다 순수 악의 탄생을 한편으론 억압되고 소외된 자가 폭발시키는 분노로 해석되게 하며 분분한 찬반 양론을 낳았더랬죠. 그런만큼 속편에 대한 기대는 각별히 컸고, 게다가 조커의 소울메이트라고 할 수 있는 할리퀸이 등장해 '2인조'로 활약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은 기대감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나 그 커다란 기대 끝에 모습을 드러낸 <조커: 폴리 아 되>는 비평적으로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거의 '지탄'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건 <조커: 폴리 아 되>는 길고 먼 길을 돌아 해야 마땅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 들어 마땅한 이야기가 어째서 대중의 마음에 가 닿지는 못한 것일까요. 무명의 코미디언 아서 플랙(호아킨 피닉스)이 '조커'라는 닉네임으로 나타나 유명 생방송 토크쇼 진행자를 포함한 5명(이지만 사실은 6명)을 살해한 혐의로 정신병원에 최고 수준으로 격리 수용된지 2년이 흘렀습니다. '조커'라는 가면을 벗어던진 후 한없이 초라하고 궁색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아서는 간간히 나타나는 상상을 통해서만 ...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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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장손] 큰 나무가 드리운 것은 그늘인가 그림자인가

<장손>(House of the Seasons, 2024) 설 연휴 전 개봉해 <베테랑2>에 이어서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국산 독립영화 <장손>을 이제 보았습니다. 매년 국산 독립영화를 살뜰히 챙겨본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되는대로 잊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올해의 베스트 리스트에 들어갈 만한 영화들을 꼭 한 편 이상 만나고는 합니다. 올해는 <장손>이 아마도 그 베스트 영화로 꼽히지 않을까 싶네요. 겉보기에는 남아선호사상이 기저에 깔린 전통적 가부장제와 현 세대의 구성원들이 주장하는 현대적 개인주의의 충돌에 관한 가족소동극이 아닐까 싶었던 영화는 사실 그보다도 더 근원적인 곳을 건드립니다. 전통을 부르짖는 집안에서라면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그놈의 핏줄 타령, 아들 타령, 장손 타령은 무엇의 산물이며 그 수혜와 피해는 어디에까지 미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요. 사회와 스스로 모두를 향해 통렬한 성찰의 비수를 꽂는 이 영화는 아름다우면서 쓰리고, 정다우면서도 신랄합니다. 서울에서 배우를 하고 있는 성진(강승호)네 가족은 경북의 어느 마을에서 가업으로 두부 공장을 하고 있습니다. 1대 장손인 할아버지 승필(우상전)에서 시작되어 2대 장손인 아버지 태근(오만석)을 거쳐, 이제는 3대 장손인 성진에게까지 전해지려 하는 곳이죠. 한여름날 전통을 중시하는 이 집안의 제사가 다가오고, 서울에 있던...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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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새벽의 모든] 기댐도 밀어냄도 없이, 별자리처럼

<새벽의 모든>(All the Long Nights, 2024)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의 새 영화 <새벽의 모든>을 보았습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도 선정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세오 마이코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로맨스의 범주를 넘어선 사람들 사이의 고유한 관계를 들여다 봅니다. 평범한 누구나라도 얼마든지 마음의 병을 얻을 수 있는 현실을 반영하듯 각자가 속앓이 중인 아픔을 짊어진 주인공들이 교감하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을 찾기가 더 힘든 요즘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영화는 알 수 없는 계산을 거친 끝에 그 답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들이미는 게 아니라 고요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편안하게 말 걸듯 전함으로써, 그 고유하지만 보편적인 관계의 가능성에 대해 관객이 머리로 해석하기 전에 마음으로 느끼게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한번의 위로를 건네면서요. 월경전 증후군(PMS)을 겪고 있는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는 한 달에 한 번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불시에 찾아오는 것이 커다란 고민입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에서도 그 증세로 인해 본의 아니게 난처한 상황을 일으키고, 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해 복용한 약 때문에 부작용까지 겪으면서 후지사와는 도망치듯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옵니다...

202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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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베테랑 2] 히어로의 꽃길을 뛰쳐나온 속편의 변신 혹은 배신

<베테랑2>(I, THE EXECUTIONER, 2024) 2015년 개봉해 1,3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대성공한 <베테랑>의 9년만의 속편인 <베테랑2>를 보았습니다. 전편을 성공시킨 류승완 감독과 황정민 배우를 필두로 광역수사대 팀을 이룬 전편의 배우들까지 고스란히 복귀한 가운데 빌런의 정체를 함구한 채 나타난 이 영화는, 대박 흥행을 기록한 영화의 일반적인 속편이 아닙니다. 류승완 감독과 황정민 배우의 첫 속편 영화이기도 한 이 영화는 전편의 대성공을 가져다 준 요인을 그대로 재활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전편의 대척점에 섭니다. '사이다'를 지향하는 즉각적 쾌감 대신 '고구마'를 감수하는 성찰을 택하는, 그러면서도 (감독의 말처럼 '상업영화'가 아닌) '대중영화'로서의 마땅한 요구사항들을 너끈히 충족시키는 <베테랑2>는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변신으로, 누군가에게는 실망스런 배신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서도 상업적 성공의 부산물이 아닌 독자적인 성과물로서 인정받을 만한 영화입니다. 광역수사대 서도철 형사(황정민)는 박봉에 한숨 쉬면서도 믿음직한 팀원들과 함께 오늘도 국가적 사명을 위해 온몸을 던지며 범죄를 소탕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밖에서 다이내믹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와중에도 집에는 말도 않고 말썽만 피우는 아들과 그로 인해 속이 타들어가는 아내 주연(진경)이 있어 이 또한 걱정거리입니다. 그런 가...

202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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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룩백] 어느 땐가 나의 등 뒤에도 누군가 있었을까

<룩백>(Look Back, 2024) <체인소 맨>으로 유명한 인기 만화가 후지모토 다쓰키가 쓴 동명의 단편 만화가 원작으로, 원작과 마찬가지로 공개 이후 일본 현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애니메이션 <룩백>을 보았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부름을 받아 일할 만큼 탁월한 실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이 연출은 물론 각본, 콘티,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까지 도맡은 이 영화는 60분이 채 되지 않는 러닝타임으로 장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감동의 파장은 여느 장편 애니메이션의 그것을 뛰어넘고도 남습니다. 원작자가 작품에 담았을,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옮겨냈을 뿐 아니라 그 일에 온 마음을 다해 뛰어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나고 지속되는 눈부신 연대까지 그리며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애니메이션 중 한 편으로 너끈히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후지노(카와이 유미)는 학보에 매주 실리는 4컷짜리 만화로 만화가가 되려는 자신의 꿈을 차근차근 이뤄갑니다. 후지노는 사실 집에서 그릴 때에는 수차례 그렸다 고쳤다를 반복하지만 학교에서는 불현듯 떠오른 영감으로 후다닥 거린 것처럼 굴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감탄해 하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꿈을 향한 노력이 재능처럼 인정받는 것에 우쭐해 하는 평범하고 철없는 소녀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의 제안으로 4컷 만화 한 자리를 또 ...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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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디즈니플러스)] 해석의 여지조차 불허하는 상상 너머의 상상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Kinds of Kindness, 2024) 올 초 국내에 <가여운 것들>을 선보였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새 영화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를 보았습니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공개되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송곳니> 이후 모든 작품이 국내에서 극장 개봉했던 감독의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극장 개봉 없이 디즈니플러스 공개로 바로 직행하게 되었죠. 영화를 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상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옴니버스 형식에, 그런 만큼 더욱 대담한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을 구사하는 감독의 모험적인 시도, 감독 필모그래피 중 가장 긴 러닝타임(164분)까지. <가여운 것들> 후반작업 중에 촬영된 영화답게 상업적-예술적 야심보다 창작자로서의 창의적 야심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쉽지는 않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해석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난데없는 이런 구성으로 인해 오히려 영화는 넋을 놓고 그저 따라가게 되는 마성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는 같은 배우들이 각기 다른 인물들을 연기하는 세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인 'R.M.F의 죽음'에서 로버트(제시 플레먼스)라는 남자는 레이먼드(윌렘 대포)라는 상사의 지시에 따라 몇년째 자신의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상사의 지시를 참다 못해 거부하게 되면서 인...

202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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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에이리언: 로물루스] 최고의 팬은 최고의 감독이다

<에이리언: 로물루스>(Alien: Romulus, 2024) '에이리언' 시리즈의 일곱번째 영화인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보았습니다. <에이리언 4> 이후 27년만에 리들리 스콧 감독이 직접 연출하지 않는 영화로 기대와 함께 우려를 낳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메가폰을 잡은 페데 알바레즈 감독은 '에이리언' 시리즈의 열혈 팬으로 알려져 있었던 바, 영화는 그 팬심이 고스란히 깃들어 '에이리언' 영화에 관객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에이리언' 영화가 마땅히 보여줘야 하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커버넌트> 등 21세기 들어 나온 '에이리언' 시리즈 영화들이 프리퀄 성격을 띠다 보니 세계관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정작 주인공 격인 에이리언의 활약은 미미하거나 충분치 않은 느낌을 주었는데,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그런 서운했던 시간들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에이리언이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아마 감독도, 영화 팬들도 바랐을 모습으로요. 서기 2142년, 거대 기업 '웨이랜드 유타니'의 우주 식민지 계획은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와도 같이 끝모를 노동과 착취의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부모를 광산 사고로 잃은 레인(케일리 스패니) 역시 부모가 떠난 도시에서 벗어날 날만을 기다리며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죠. 그녀의 곁에는 그녀가 남동생이라고 부르는 합성 인조인간 '앤...

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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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트위스터스] 스펙터클만큼의 책임감을 아는 재난영화

<트위스터스>(Twisters, 2024) 1996년 영화 <트위스터> 이후 28년만에 토네이도를 소재로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 <트위스터스>를 4DX로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총지휘를 맡고 마이클 크라이튼 작가가 정립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므로 28년만에 나온 <트위스터>의 느슨한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다행스럽게도 그 긴 세월의 간격만큼 눈여겨 볼 만한 진화를 보여줍니다. <미나리>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정이삭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는 훌쩍 진보한 테크놀로지가 전하는 스펙터클의 압도감은 물론, 가정된 미래가 아닌 실재하는 현실의 재난을 다루는 재난영화로서 마땅히 필요한 윤리의식 또한 갖춘 작품이 되었습니다. 과거 재난영화의 전성기에 만끽했던 스펙터클을 다시금 유감없이 재현하면서, 동시에 지금의 재난영화에게 요구되는 책임감을 함께 갖춘 영화랄까요. 5년 전 기상학도였던 케이트(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동료들과 함께 토네이도를 대상으로 야심찬 도전을 시도 중이었습니다. 화학물질을 토네이도 한가운데로 올려보내 토네이도의 동력이 되는 수분을 흡수, 토네이도를 소멸시킬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은 토네이도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했고, 그 결과 케이트는 실험을 함께 하던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맙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뉴욕 기상청에서 분석관으로 일하고 있는 케이트에게 당시 실험을 ...

20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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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행복의 나라] 돌이킬 수 없는 역사에 던져진 현재의 질문

<행복의 나라>(Land of Happiness, 2024) 10.26 사건 재판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행복의 나라>를 개봉 전 시사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2020년 <남산의 부장들>, 2023년 <서울의 봄>에 이어 이 영화까지 공교롭게도 길지 않은 시간 간격으로 10.26 사건부터 12.12 군사반란까지의 기간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오게 되었는데, <행복의 나라>는 앞서 나온 두 편의 영화들보다는 다소 결이 다른 경우입니다. 역사에 기록되었고 익히 알고도 있는 이야기들을 치밀하게 짚어가는 방식이었던 이전 영화들과는 달리, 역사의 일부였지만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 인간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죠. 사실의 전후 인과관계보다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며 역사적 비극이 남긴 상흔을 들여다 보는 이 영화는, 그래서 앞서 나온 영화들과 결을 달리 할지라도 또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질문거리를 던집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 사건이 발생하고, 요동치는 여론 속에서 생겨난 요구에 따라 암살을 행했거나 이에 가담한 자들을 위한 재야의 변호인단이 구상합니다. 그러나 상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전상두(유재명)를 필두로 한 합동수사부. 그들이 서슬퍼렇게 버티고 있는 한 재판의 결과는 불보듯 빤하기에 변호인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 가운데 재판에선 옳고 그른 것보다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하다고 누...

202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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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이오 카피타노] 떠밀려 온 바다 위 소년은 어떻게 선장이 되었나

<이오 카피타노>(Io Capitano, 2023)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배우을 수상하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 후보에 오른 이탈리아 영화 <이오 카피타노>를 보았습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연출로 세상의 그림자를 조명해 온 이탈리아의 거물 감독 마테오 가로네가 이번 영화를 통해 들여다 본 곳은 아프리카 난민 사회입니다. 꿈을 위해 '자발적 난민'의 길을 선택한 소년이 겪는 지난한 여정은 똑바로 보기 힘들만큼 처절한 현실과 애틋한 환상을 넘나드는 가운데, 그 속에서도 끝내 방향키를 놓지 않고 운명의 주인이 되어 가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현실을 고발함은 물론 시대를 초월한 인간적 감동을 안깁니다. 영화가 아니고서야 만날 수 없는 세상의 다른 풍경은 때로 영화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진실한 생각거리를 남기기도 합니다. 세네갈 소년 세이두(세이두 사르)는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사촌이자 또래 친구인 무사(무스타파 폴)와 걸핏하면 유튜브 쇼츠로 세계의 다양한 음악들을 즐기며, 일상의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곧잘 노래로 만들어 버스킹을 하기도 합니다. 엄격한 어머니와 사랑스런 동생들 등 가족들과 함께 하는 세네갈에서의 삶은 충분히 행복하지만, 역시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네갈은 너무 작은 곳입니다. 언제부턴가 무사가 세이두에게 함께 지중해 건너 유럽으로 가자고 했고, 둘은 일을 하면서 유럽으로...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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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데드풀과 울버린] MCU 이전의 우주에 보내는 러브레터

<데드풀과 울버린>(Deadpool & Wolverine, 2024) 스포일러 있습니다 세번째 데드풀 영화이자 네번째 울버린 솔로 영화, 그리고 그 둘이 처음으로 MCU에 등장하는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을 보았습니다. 나올 때마다 제4의 벽을 넘나들며 마블 세계관을 뒤흔드는 데드풀의 다음 이야기, 이미 전세계를 눈물바다에 빠뜨리며 작별한 바 있는 울버린의 재등장, 그 두 '문제적 히어로'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어느 때보다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더구나 최근 영화와 시리즈를 막론하고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 현현재 MCU의 상황과 영화 속 대사가 하필이면 딱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그 말대로 과연 '마블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지에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죠. 결론부터 말하면 <데드풀과 울버린>은 (흥행과 별개로 세계관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대중의 호응을 다시 끌어모오는 역할로서) '마블의 구세주'가 되긴 힘들 것 같습니다. 그것은 MCU라는 큰 물에 들어와서도 데드풀의 자아 인식이 여전히 변함없기 떄문일텐데, 이 사실에 한편으론 실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안도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히어로 생활을 접은 후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은 한때 어벤져스의 멤버를 꿈꾸기도 했지만 결국 중고차 딜러로서의 평범한 삶을 택합니다. 그 삶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그의 곁에 언제나 함께 하고 있고, 이전 같은 악의 위협이나 죽음의 공포 같은 건 더 ...

202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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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러브 라이즈 블리딩] 세계를 부수고 자아를 깨우는 사랑의 아드레날린

<러브 라이즈 블리딩>(Love Lies Bleeding, 2024) 최근 열린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을 보았습니다. 믿고 보는 제작자 A24 제작으로, 데뷔작이었던 호러 영화 <세인트 모드>로 호평을 받은 로즈 글래스 감독이 세간의 주목 속에 만든 이 영화는 의외로 로맨스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로맨스 장르의 편한 공식 안에서 노는 영화는 절대 아니고, 반대로 로맨스 장르의 폭넓은 감정적 자장 안에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전개로 기이한 에너지를 내뿜는 영화입니다. 보디빌딩을 소재로 퀴어 로맨스였다가, 범죄 스릴러였다가, 종내에는 바디 호러의 범주에까지 이르는 장르의 합종연횡 속에서도 영화가 내내 멈추지 않는 것은 사랑을 향한 예찬입니다. 옥죄어 오는 세계를 부수고 억눌려 있던 자아를 꺠우는 사랑에 관한 예찬이죠. 1989년, 라스베이거스에서 멀지 않은 미국 어딘가. 운동인들의 아드레날린이 한껏 분출하는 헬스장에서 루(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허드렛일을 하는 스태프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헬스장을 내내 채우고 있는 그 뜨거운 에너지가 마치 남의 일 같았던 루의 앞에 어느날 보디빌더 지망생 재키(케이티 오브라이언)가 나타납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곧 열릴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이곳에 머물게 된 재키에게 루는 암암리에 거래되던 스테로이드 약물을 매개...

202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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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리뷰 - 핸섬가이즈] 잘생김을 주장하는 그들처럼, B급을 주장하는 A급

<핸섬가이즈>(Handsome Guys, 2024) 근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장르 혼합 B급영화 <핸섬가이즈>를 보았습니다. 최근 몇년 간 여러 편의 한국영화들에서 마주해 온 '안전한 선택'들에서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나온 이 도전적인 영화는 무척 반갑습니다. 캐릭터나 스토리만 보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볼 법한 신인 감독과 배우들의 독립 장편 데뷔작을 연상시키는 영화는 사실, 베테랑 제작사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베테랑 배우들이 작정하고 노닌 결과물입니다. 영화는 너무 진심이라 촬영하고 나서 '현타'가 오긴커녕 그 신남을 주체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 배우들의 활약과 멈추지 않는 연출자의 추진력을 통해, B급 영화가 그에 걸맞은 'B범한' 에너지로 관객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제대로 갈고 닦은 창작자의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형제처럼 지내는 절친한 친구 사이인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는 바라만 봐도 상대방이 살려달라고 뒷걸음질 칠 것만 같은 외모와 달리 고운 심성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 심성을 따라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세상에 이바지하며 살고 싶어도 사람들의 시선에 오히려 마음만 더 상해서인지, 둘은 전 재산을 털어 시골 외딴 숲에 위치한 오래된 저택으로 이사를 옵니다. 오래전 한 외국인 신부를 위해 지어졌다는 그 저택은 무척이나 을씨년스럽지만, 자신들이 일구어갈 보금자리가 생겼다...

202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