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나는 이렇게 살았다'입니다. 사실 전세계 애니메이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정도의 거장이라면 이제 말년에 접어들어 이 정도 자전적 작품이 하나쯤 있어도 크게 이상할 건 없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감독의 실제 경험담은 아닙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죠. 그러나 영화 속에 상징적인 사건이나 인물들이 감독의 마음속에 새겨진 성장기의 기억들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영화가 많이 난해하다는 평인데... 제가 단순한 사람이라 그런지 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봤어요. 아니, 모든 것이 너무나 명료하게 읽혔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소년 버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습니다. 갑자기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 살게 된 주인공 소년의 심상을 표현했다고 할까요? 거기에 전형적인 성장물 스토리와 일본 특유의 괴담이 뒤섞인 모험담입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감독이 어린 시절에 경험한 과거 일본의 불안한 역사적 현실이 작품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기묘하게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철저하게 주인공 소년의 시점만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쓰려면 흔히 말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좋습니다. 다시 말하면 ...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명한 과학자가 한 말이죠. 아마 과학 분야에서는 이 말이 맞을 겁니다. 과학자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거나 증명해서 학계로부터 인정 받으면 그것으로 결말에 도달한 셈이니까요. 하지만 창작 분야에 이 말을 적용시키면 뭔가 부족한 게 있습니다. 창작이란 결과물을 만들어서 혼자만 즐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알려져서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내야만 훌륭한 창작품으로 인정을 받게 되니까요. 즉, 창작자에겐 1%의 재능과 99%의 노력, 그리고 여기에 추가로 그걸 알아주는 (혹은 좋아해 주는) 누군가의 응원이 꼭 필요한 겁니다. '후지노'는 밤을 새워서 학보에 실릴 4단 만화를 그립니다. 학급 친구들이 그걸 보며 감탄하면 별거 아니란 듯 허세를 부리죠. 친구들이 자기 작품을 알아봐 주는 순간의 희열, 그게 바로 또다시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겁니다. 영화 속에서 '후지노'는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두 번' 합니다. 첫 번째는 자기보다 뛰어난 실력자 '쿄모토'가 등장했을 때죠. 친구들의 관심이 '쿄모토'에게 쏠리고 노력만으론 재능을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후지노'는 단박에 모든 걸 포기해버립니다. 두 번째는 '쿄모토'가 죽었을 때입니다. 진심으로 자기 만화를 바라봐 주는 친구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일본 거대 괴수물의 대표작인 '고지라'가 처음으로 발표된 건 1954년이라고 합니다. 이후 수십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며 '울트라맨', '가면라이더'와 함께 일본식 특촬물의 상징적인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 잡았죠. 이번 2023년 신작에 '마이너스 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는 패전 직후 일본에 괴수의 습격까지 겹쳐 '제로보다 더한 마이너스 상태'가 됐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럴듯하죠. 이 영화가 기존 '고지라'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점은 괴수물과 역사물을 결합시켰다는 겁니다. 아이디어가 훌륭하고 설정도 좋습니다. 시나리오도 괜찮은 편이고 전체적인 완성도도 높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문제가 있는데 그건 뒤에서 다시 얘기하죠.) 당연히 일본에서 높은 흥행 실적을 기록했고 미국 시장에서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더군요.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전후 폐허가 된 도시에 살아남은 일본인들의 비극적인 현실도 그럴듯했고요. '카미카제 특공대'의 일원으로 출격했다가 도망치듯 살아서 돌아온 파일럿이 패배감에서 벗어나 일본을 구한다는 기본 줄거리도 제법 감동적입니다. 특히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의지하며 결국엔 가족을 이룬다는 결말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칭찬을 받을 부분은 특수 효과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엉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기술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만든 건 아닐 겁니다. 초...
저는 영화 리뷰를 쓸 때 제목 옆에 부제나 이것저것 부연 설명을 붙이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2024'라는 숫자를 안 붙일 수가 없네요. '호조 츠카사'의 원작 만화 '시티 헌터'는 1980년대 중반에 연재가 시작된 작품입니다. 일본 만화의 핵심이자 최대 격전장이라 할 '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되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히트를 한 작품이죠. '근육맨', '북두의 권', '세인트 세이야', '드래곤 볼', '슬램덩크' 등과 함께 일본 만화의 최고 부흥기를 이끌었던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여러 차례에 걸쳐 TV 시리즈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건 당연하고요. 하물며 홍콩, 프랑스 등에서 실사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 시리즈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하튼 이렇게 '시티 헌터'라는 제목의 영상물이 많다 보니 작품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제목 뒤에 추가 표기를 해야 하는 건 필수입니다. 그래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작품은 2024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에 해당됩니다. 서두가 길었는데요. 감상평은 길게 할 말이 없어요. 그냥 재밌습니다. 한가할 때 시간 보내기 좋고, 보고 나서도 괜히 봤다고 후회가 되는 작품은 아닙니다. 스케일이 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욕심부리지 않고 깔끔하게 만들었어요. 구성도 제법 탄탄하고요. 스토리에 큰 허점이나 오류도...
요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개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 혹은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인물의 시각에서 반복해서 보여주는 방식인데요. 20세기 후반부 포스트모더니즘이 새로운 문학 사조로 부상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이야기 구성 방식의 하나입니다. 이 방식이 이후 영상물에도 도입되어 많은 작품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 '괴물'도 이런 전개 방식을 따릅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두 소년의 이야기를 세 개, 혹은 네 개의 시각에서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게 좀 특이한 게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단순하게 여러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시선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점점 이야기가 쌓이며 깊이를 더해갑니다. 즉, 각각의 이야기들이 병렬로 놓여 있는 게 아니라, 마치 하나의 시간선 위에서 흐르는 것처럼 기승전결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아주 기묘하고 흥미로운 구성 방식입니다. 각본가와 연출가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테크닉이 최상급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영화의 내용을 얘기해 볼까요?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아주 많습니다.) . . . . . 저는 가족들과 영화를 봤는데 극장을 나설 때 딸아이가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그래서 괴물은 누군데?' 이 질문은 영화의 홍보에 쓰인 헤드 카피이기도 합니다. 근데 이런 흔한 얘기가...
최근 들어 가장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다 보고 나서 '그래, 세상에는 아직도 이렇게 재밌는 영화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2018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무려 5년이나 지나서 본 겁니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은 듣고 있었습니다. 본 사람들마다 하나같이 재밌다고 말하더군요. 모든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똑같은 말을 할 때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당연히 재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죠. 근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신 작품이니 내용을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영화의 전반부는 엉성한 좀비물이에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 본 좀비 영화가 '이블 데드'였는데... 1980년대 초에 저자본으로 만들어진 그 영화보다도 허술해요. 일본의 특촬물도 요즘은 이 정도 수준은 아니죠. 그래서 처음엔 좀 어리둥절해집니다. 좀비물 영화를 찍는 현장에 정말 좀비가 나타나고... 그래서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다는 줄거린데... 이게 일부러 조악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거든요. 그런데 보다 보면 이상하게 몰입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분명히 이게 전부가 아닐 텐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죠. 예상대로 반전이 있습니다. 전반부의 내용 전체가 영화 속의 영화였던 겁니다. 에, 그러니까 영화를 찍다가 좀비가 나타났는데 그게 또 영화... 이게 말로 하면 좀 복잡하지만 막상 직접...
세상도 순수했고 만화도 순수했고 나도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 . . 아니, 사실 이건 잘못된 말입니다. 순수했던 게 아니라 순진했던 거죠. 그리고 내가 순진하니 만화도 세상도 그렇게 보였을 뿐입니다. 그렇게 순진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 세월의 때가 묻으면 따라서 주변 모든 게 혼탁해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먼 훗날 지금 이 시대가 순수했다고 기억할 겁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겐 자신만의 순진, 혹은 순수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시절에 이 만화를 봤습니다. 건강한 몸이 있었고, 친구와 우정이 있었고, 생기와 욕망이 있었습니다. 희망도 있었고 신념도 있었죠. 2만 번 연습을 하면 나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믿음과...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는 끈기와... 이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연대감과... 그리고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무언가에 뛰어들 용기도 있었습니다. 그런 젊은 우리들은... 호감 가는 이성의 '바스켓볼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 하나에 무턱대고 농구에 뛰어들던 '강백호'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죠. '슬램덩크'는 그런 만화였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요. 수십 년 만에 극장판 영화로 돌아온 '북산고'의 젊은 영웅들을 보며 잠시나마 감동하고 눈물을 흘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 극장을 나오면 이미 우리 자신은 그때의 그 무모한 젊은이가 아님을 알게...
아... 음... 어떻게 이야기를 출발할까요. 감상을 쓰려는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네요. 그래도 한번 시작해 보죠. 기대하고 기대했던 '프로메어'를 봤습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트리거'가 지난 2019년에 제작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죠. 원래 우리나라엔 2020년에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만 2년이나 늦게 공개된 겁니다. 사실 이렇게 뒤늦게나마 극장 개봉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수입사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렌라간', '킬라킬'로 유명한 '이마이시 히로유키' 감독의 작품입니다. '가이낙스' 출신의 감독인데... '데드 리브즈'나 '팬티 & 스타킹' 같은 작품을 보면 가끔 제정신이 아닐 때가 있는 분입니다. 물론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크리에이터가 숨겨진 광기를 지니고 있다는 건 어떤 면에선 진정한 예술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분의 경우 그 광기를 좋은 쪽으로 잘 다스리면 '그렌라간'이 되고... 주체하지 못해서 선을 넘어버리면 '데드 리브즈'가 돼버리는 겁니다. '프로메어'는 어느 쪽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다 보고 나서 든 개인적인 느낌은... 이 작품의 경우 조금은 그 광기를 통제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인체의 자연발화 현상과 평행우주 이론을 섞어놓은 SF 물이지만 설정이 그렇게 중요한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소년 만화풍의 초능력 배틀과 육중...
'기동전사 건담 쿠쿠루스의 섬'은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영화입니다. 일본에서 1979년에 방영된 '기동전사 건담', 그러니까 소위 '퍼스트 건담'이라고 불리는 첫 번째 TV 시리즈의 15회를 따로 떼내어 새로 만든 뒤 극장판으로 공개한 겁니다. 수십 년이 지난 2022년에 말이죠. 그런데 이 '기동전사 건담' 15회가 참 말이 많았던 에피소드입니다. 사실 그 당시 TV 애니메이션은 전반적으로 작화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건담'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15회는 그중에서도 최악이었습니다. '워스트 오브 워스트'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작화가 망가진 한 회였습니다. 뭐, 나중에 알고 보니 제작 당시 이름 없는 회사에 외주를 줘서 작업을 했다던데... 그런 내부 사정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고요. 스토리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사실상 전체 줄거리에서 빼버려도 상관이 없는 '따로 노는 에피소드'였더든요. 굳이 미화해서 좋게 표현하면 '독립적인 에피소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하튼 그래서 제작사나 팬들 모두 언급하지 않는 버려진 한 회나 다름없었는데... '기동전사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유명 만화가, 그리고 애니메이션 감독이신 '야스히코 요시카즈' 선생이 직접 문제의 15회를 극장판으로 리메이크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이쯤 되니 사람들의 기대가 모아지는 건 당연하죠. 과연 최악의 한 회를 수 ...
제가 개인적으로 국내 개봉을 바라는 일본 영화 세 편입니다. 일반 극영화는 아니고 세 편 다 애니메이션, 혹은 특촬물입니다. *프로메어 '프로메어'는 '그렌 라간', '킬라킬' 등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트리거'가 지난 2019년에 공개한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발화 능력을 지닌 테러 집단 '매드 버니시'와 이들을 막기 위한 특수 소방대 '버닝 레스큐'의 대결을 다룬 작품입니다. '트리거' 특유의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돋보이는 액션물이라고 하죠. 후반부에는 거대 로봇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주인공 '갈로'가 '그렌 라간'의 '카미나'와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 '리오'가 여성 캐릭터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논란이 좀 있었다고 하네요. 이미 국내에 수입되어 지난 2020년에 개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무기한 연기된 작품입니다. 2022년에 다시 개봉한다는 소문은 들려오는데 수많은 화제작들의 틈 사이를 비집고 잠깐이나마 극장에 걸릴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ll 지난 2021년에 일본에서 개봉되어 화제가 된 작품이죠. '신 에반게리온' 시리즈 4부작의 완결편에 해당됩니다. 예전 TV 시리즈+극장판과 완전히 다른 결말로 사실상 신작이나 다름없는 작품입니다. 원래 '서, 파, Q'에 이어서 2013년에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무려 8년이나 늦게 도착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