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들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CG는 어설퍼 보이고, 내용도 빈약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보긴 볼 것 같다... 실제로 공개된 본작을 보니 딱 그대로였습니다. 한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은 결과물입니다. 사실 '기동전사 건담'은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그동안 별의별 작품이 다 나왔죠. 게다가 만화와 게임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정신이 없을 정도입니다. 우주 세기로 한정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콘셉트는 지온군 시점에서 그려진 에피소드라는 건데 그 또한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아이디어입니다. 길게 말할 건 없는 작품 같습니다. 장점과 단점이 정확히 구분이 돼요. 먼저 단점부터 얘기하면 앞서 말한 것들 외에도 지적할 게 더러 있습니다. 우선 제일 큰 문제는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전형적이라는 겁니다. 모두 어디서 본듯한 인물들을 여기저기서 데려다 모아놓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도입부 스토리는 비교적 괜찮은데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늘어진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는 후다닥 끝내버린 느낌이 듭니다. 차라리 중반부를 좀 줄이고 후반부를 강조했으면 훨씬 더 좋았겠다 싶어요. 하나 더 지적하면 연출이 안일한 부분이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위기 상황을 돌발적인 사건으로 해결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누군가 궁지에 몰리면 갑자기 적이 기습하거나 폭발이 일어나 그전의 갈등 상황이 흐지부지되는...
'넷플릭스'를 통해 '단다단' 1회를 봤습니다. 와!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네요. 오래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습니다. 제가 받은 느낌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소녀혁명 우테나',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1회를 봤을 때의 흥분과 쾌감이었습니다. 사실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부터 이거 뭔가 심상치 않겠다는 예감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스토리는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입니다. 일본인이 아주 좋아하는 설정 중 하나죠. 청춘 로맨스 멜로를 기본으로 하는데... 당연히 여기에 온갖 장르의 요소들을 섞었습니다. SF, 오컬트, 호러, 액션, 그리고 코미디까지... 더불어 현대인들의 우울한 정서도 살짝 가미했습니다. 세련된 캐릭터 디자인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과감한 액션 연출이 충격적으로 훌륭합니다. 또한 진행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마치 1.5배속으로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예요. 1회에서는 메인 캐릭터 두 명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데... 유령은 믿지만 UFO는 믿지 않는 소녀. UFO는 믿지만 유령은 믿지 않는 소년. 이렇게 정반대의 두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이 둘이 반대의 상황에서 서로를 인정하게 되는데요. 설정부터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아시다시피 원작 만화가 있습니다. 일본 현지에서 연재 중인 작품이라 ...
제목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나는 이렇게 살았다'입니다. 사실 전세계 애니메이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정도의 거장이라면 이제 말년에 접어들어 이 정도 자전적 작품이 하나쯤 있어도 크게 이상할 건 없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감독의 실제 경험담은 아닙니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죠. 그러나 영화 속에 상징적인 사건이나 인물들이 감독의 마음속에 새겨진 성장기의 기억들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영화가 많이 난해하다는 평인데... 제가 단순한 사람이라 그런지 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봤어요. 아니, 모든 것이 너무나 명료하게 읽혔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소년 버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습니다. 갑자기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 살게 된 주인공 소년의 심상을 표현했다고 할까요? 거기에 전형적인 성장물 스토리와 일본 특유의 괴담이 뒤섞인 모험담입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감독이 어린 시절에 경험한 과거 일본의 불안한 역사적 현실이 작품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기묘하게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철저하게 주인공 소년의 시점만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쓰려면 흔히 말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좋습니다. 다시 말하면 ...
천재는 1%의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명한 과학자가 한 말이죠. 아마 과학 분야에서는 이 말이 맞을 겁니다. 과학자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거나 증명해서 학계로부터 인정 받으면 그것으로 결말에 도달한 셈이니까요. 하지만 창작 분야에 이 말을 적용시키면 뭔가 부족한 게 있습니다. 창작이란 결과물을 만들어서 혼자만 즐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알려져서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내야만 훌륭한 창작품으로 인정을 받게 되니까요. 즉, 창작자에겐 1%의 재능과 99%의 노력, 그리고 여기에 추가로 그걸 알아주는 (혹은 좋아해 주는) 누군가의 응원이 꼭 필요한 겁니다. '후지노'는 밤을 새워서 학보에 실릴 4단 만화를 그립니다. 학급 친구들이 그걸 보며 감탄하면 별거 아니란 듯 허세를 부리죠. 친구들이 자기 작품을 알아봐 주는 순간의 희열, 그게 바로 또다시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겁니다. 영화 속에서 '후지노'는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두 번' 합니다. 첫 번째는 자기보다 뛰어난 실력자 '쿄모토'가 등장했을 때죠. 친구들의 관심이 '쿄모토'에게 쏠리고 노력만으론 재능을 따라갈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후지노'는 단박에 모든 걸 포기해버립니다. 두 번째는 '쿄모토'가 죽었을 때입니다. 진심으로 자기 만화를 바라봐 주는 친구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최근 보고 있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저는 '넷플릭스'를 통해 보고 있습니다만... 이 작품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타이틀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일본 현지에서 먼저 공중파나 케이블 채널을 통해 TV로 방영된 뒤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는 거죠. 재밌는 건 소개하려는 세 작품 모두 제작사가 만만치 않다는 점입니다. '장송의 프리렌 (매드하우스)', '던전 밥 (트리거)', '괴수 8호 (프로덕션 IG)'.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회사에서 총력을 다 해 만든 작품들이네요. 그래서 일단 공통적으로 작화 퀄리티는 나무랄 데가 없군요. 그럼 하나씩 간단히 감상을 적어보겠습니다. *장송의 프리렌 원작 만화가 있는데 저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애니메이션으로 접한 셈이죠. 그래서 처음 1화를 보면서 크게 당황했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용사 일행의 모험이 끝나고 이어서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흐릅니다. 결국 마왕을 퇴치한 용사와 성직자는 늙어서 죽고 인간보다 노화가 느린 엘프와 드워프만 남습니다. 그 후 주인공 엘프 '프리렌'이 혼자서 새로운 여정을 떠나며 본편이 시작됩니다. 이게 뭔가 싶었죠. 보편적인 판타지 어드벤처의 전개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전 판타지 소설 중에 이런 류의 작품이 없는 건 아닙니다. 노쇠한 영웅이 과거를 회상하는 구성 방식은 종종 있었죠. 그런데 이런 걸 애니메이...
1979년에 발표된 '기동전사 건담' 이후 지금까지 수 십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건담 관련 타이틀이 제작됐습니다. 골수 건담 마니아가 아니면 순서도 제대로 기억하기 힘들 정도죠. 그런데 그렇게 많은 작품 중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타이틀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도 그건 '기동전사 건담 시드'일 겁니다. (후속작 '시드 데스티니' 포함) '건담 시드'는 애초에 건담 시리즈의 부흥을 목적으로 제작된 만큼 노골적으로 자극적인 요소가 잔뜩 가미된 작품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애니메이션은 크게 성공했고 그 인기 덕분에 캐릭터 굿즈, 음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프라 판매량까지 크게 늘어났다고 하죠. 하지만 작품 자체의 평가에선 여러 가지 이유로 호평과 악평이 극단적으로 엇갈렸습니다. 어찌 됐든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엄청난 화제의 작품이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입니다. 그런 화제작의 후속작에 해당하는 극장판이 무려 20년 만에 만들어져 공개됐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기동전사 건담 시드'는 좋아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불호의 이유가 다른 분들과는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비판받는 부분이 막장 스토리와 일관되지 못한 캐릭터의 성격인데요. 그런 건 그다지 거슬리지 않습니다. 제가 별로인 이유는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꼽히던 '히라이 히사시'씨의 그림체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등장하...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2003년,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공습을 감행합니다. 대부분의 서구 열강은 미국을 지지하며 연합군을 파병했죠. 전쟁은 2011년까지 이어졌고 결국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이 주장했던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트리키아 합중국은 페르시아 제국에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로봇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연합국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보라 조사단'이 파견되지만 증거를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트리키아를 위시한 연합국은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페르시아를 침공합니다. 결국 페르시아 다리우스 14세의 왕정은 몰락하고 새로운 공화제 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21세기 초에 벌어졌던 실제 사건과 만화 '플루토'의 배경 설정입니다. 많이 비슷하죠. 아니, 대량살상무기를 대량살상로봇으로 단어만 바꾸면 거의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이라크 전쟁'이 벌어진 게 2003년, 그리고 만화 '플루토' 연재가 시작된 해도 2003년입니다. 아마도 만화는 연재가 시작되기 1,2년 전부터 기획이 시작됐을 겁니다. 그럼 작가가 역사를 예견한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2003년 이전부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줄기차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중동 지역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는 상태였죠. 그러...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 '악마군'입니다. 일본의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미즈키 시게루'는 우리나라에 그다지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데즈카 오사무'와 쌍벽을 이루는 초창기 망가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게게게의 키타로'라는 장편 호러물이 있죠. 엄밀히 말하면 '게게게의 키타로'는 호러물이라기보다는 요괴물이라고 말하는 게 옳습니다. 일본의 만화를 보면 유난히 전통 민담에 등장하는 요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데요. 사실상 이 분의 작품이 그 시조라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일본의 요괴 망가에 기틀을 닦은 셈이죠. 그림체도 독특해서 축축하고 끈적한 느낌의 요괴물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하나 더 얘기하면... 이 분은 젊은 시절 태평양 전쟁에 징집되어 한 팔을 잃은 분이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평생 한 팔로 그림을 그린 건데요. 누구보다 전쟁의 참혹함을 잘 알기에 아주 철저한 반전사상을 지닌 분이기도 했습니다. '악마군'은 '미즈키 시게루' 선생의 대표작 '게게게의 키타로' 만큼 인지도가 높은 작품은 아닙니다. 실은 저도 만화는 본 적이 없고, 과거 일본의 이런저런 책자에서 제목과 이미지 몇 장만 봤을 뿐입니다. 알고 보니 일본 현지에서는 특촬물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도 있고, 애니메이션도 제작된 바 있더군요. 그런데 저...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어른제국의 역습'을 봤습니다. 일본에서 지난 2001년에 공개된 작품이니 발표된지 무려 20년이 훌쩍 넘은 영화입니다. 이렇게 오래된 작품을 뒤늦게 찾아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몇몇 커뮤니티의 게시판 글을 읽다 보니 젊은이들 중에 이 영화를 애니메이션의 명작으로 꼽는 분들이 아주 많더군요. 그래서 도대체 어떤 영화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 역시 매우 재밌게 봤습니다. 이 영화가 명작이라는 점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솔직히 예상했던 것 이상이라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일본에서 '짱구'나 '도라에몽', '코난' 같은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은 끝나지 않는 주말드라마처럼 오랫동안 방영되고 있죠. 그리고 매년 방학 시즌에는 스페셜 극장판이 만들어져 상영됩니다. 일본 대중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한번 높은 인기를 얻은 타이틀은 그 팬덤이 아주 오래간다는 점인데요. 빠른 변화와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이해가 안 되는 문화 현상입니다. 여하튼 이렇게 만들어진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거의 다 일정 수준의 퀄리티를 유지하는데요. 간혹 그중에 돌출적인 걸작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바로 이 영화가 그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아이디어가 아주 좋습니다. 2001년도에 공개가 됐으니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발표된 건데요. 그래서...
세상도 순수했고 만화도 순수했고 나도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 . . 아니, 사실 이건 잘못된 말입니다. 순수했던 게 아니라 순진했던 거죠. 그리고 내가 순진하니 만화도 세상도 그렇게 보였을 뿐입니다. 그렇게 순진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 세월의 때가 묻으면 따라서 주변 모든 게 혼탁해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먼 훗날 지금 이 시대가 순수했다고 기억할 겁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겐 자신만의 순진, 혹은 순수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시절에 이 만화를 봤습니다. 건강한 몸이 있었고, 친구와 우정이 있었고, 생기와 욕망이 있었습니다. 희망도 있었고 신념도 있었죠. 2만 번 연습을 하면 나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믿음과...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는 끈기와... 이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연대감과... 그리고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무언가에 뛰어들 용기도 있었습니다. 그런 젊은 우리들은... 호감 가는 이성의 '바스켓볼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 하나에 무턱대고 농구에 뛰어들던 '강백호'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죠. '슬램덩크'는 그런 만화였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요. 수십 년 만에 극장판 영화로 돌아온 '북산고'의 젊은 영웅들을 보며 잠시나마 감동하고 눈물을 흘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 극장을 나오면 이미 우리 자신은 그때의 그 무모한 젊은이가 아님을 알게...
아... 음... 어떻게 이야기를 출발할까요. 감상을 쓰려는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네요. 그래도 한번 시작해 보죠. 기대하고 기대했던 '프로메어'를 봤습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트리거'가 지난 2019년에 제작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죠. 원래 우리나라엔 2020년에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만 2년이나 늦게 공개된 겁니다. 사실 이렇게 뒤늦게나마 극장 개봉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수입사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렌라간', '킬라킬'로 유명한 '이마이시 히로유키' 감독의 작품입니다. '가이낙스' 출신의 감독인데... '데드 리브즈'나 '팬티 & 스타킹' 같은 작품을 보면 가끔 제정신이 아닐 때가 있는 분입니다. 물론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크리에이터가 숨겨진 광기를 지니고 있다는 건 어떤 면에선 진정한 예술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분의 경우 그 광기를 좋은 쪽으로 잘 다스리면 '그렌라간'이 되고... 주체하지 못해서 선을 넘어버리면 '데드 리브즈'가 돼버리는 겁니다. '프로메어'는 어느 쪽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다 보고 나서 든 개인적인 느낌은... 이 작품의 경우 조금은 그 광기를 통제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인체의 자연발화 현상과 평행우주 이론을 섞어놓은 SF 물이지만 설정이 그렇게 중요한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소년 만화풍의 초능력 배틀과 육중...
'기동전사 건담 쿠쿠루스의 섬'은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영화입니다. 일본에서 1979년에 방영된 '기동전사 건담', 그러니까 소위 '퍼스트 건담'이라고 불리는 첫 번째 TV 시리즈의 15회를 따로 떼내어 새로 만든 뒤 극장판으로 공개한 겁니다. 수십 년이 지난 2022년에 말이죠. 그런데 이 '기동전사 건담' 15회가 참 말이 많았던 에피소드입니다. 사실 그 당시 TV 애니메이션은 전반적으로 작화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건담'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15회는 그중에서도 최악이었습니다. '워스트 오브 워스트'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작화가 망가진 한 회였습니다. 뭐, 나중에 알고 보니 제작 당시 이름 없는 회사에 외주를 줘서 작업을 했다던데... 그런 내부 사정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고요. 스토리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사실상 전체 줄거리에서 빼버려도 상관이 없는 '따로 노는 에피소드'였더든요. 굳이 미화해서 좋게 표현하면 '독립적인 에피소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하튼 그래서 제작사나 팬들 모두 언급하지 않는 버려진 한 회나 다름없었는데... '기동전사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유명 만화가, 그리고 애니메이션 감독이신 '야스히코 요시카즈' 선생이 직접 문제의 15회를 극장판으로 리메이크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이쯤 되니 사람들의 기대가 모아지는 건 당연하죠. 과연 최악의 한 회를 수 ...
오는 2022년 10월부터 방영 예정인 TV 시리즈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 프롤로그가 '유튜브'에 공개됐습니다. 그러니까 본편의 전일담에 해당되는 내용인데요. 의외로 20분이 조금 넘는 사실상 TV 시리즈 한 회분 정도의 분량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긴 분량의 프롤로그를, 그것도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만큼 제작진도 이번 작품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겠죠. 일단 감상한 느낌을 말씀드리면... '매우 좋다'입니다. 본편에 등장할 주인공의 비극적인 어린 시절 일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보는 사람의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여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에피소드입니다. 사실 따져보면 그다지 새로울 건 없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흔하고 보편적인 설정이 자주 쓰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이죠. 문제는 흔한 걸 흔하지 않게 보이도록 만드는 작가의 필력입니다. 여하튼 저는 장편 시리즈의 서막으로서 이번 프롤로그를 매우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메카닉 액션 장면도 깔끔하게 연출됐고요. 아무쪼록 본편의 마지막까지 지금의 퀄리티를 유지하여 오랜만에 건담 시리즈의 새로운 명작이 탄생했으면 좋겠군요.
제가 개인적으로 국내 개봉을 바라는 일본 영화 세 편입니다. 일반 극영화는 아니고 세 편 다 애니메이션, 혹은 특촬물입니다. *프로메어 '프로메어'는 '그렌 라간', '킬라킬' 등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트리거'가 지난 2019년에 공개한 오리지널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발화 능력을 지닌 테러 집단 '매드 버니시'와 이들을 막기 위한 특수 소방대 '버닝 레스큐'의 대결을 다룬 작품입니다. '트리거' 특유의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돋보이는 액션물이라고 하죠. 후반부에는 거대 로봇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주인공 '갈로'가 '그렌 라간'의 '카미나'와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 '리오'가 여성 캐릭터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논란이 좀 있었다고 하네요. 이미 국내에 수입되어 지난 2020년에 개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무기한 연기된 작품입니다. 2022년에 다시 개봉한다는 소문은 들려오는데 수많은 화제작들의 틈 사이를 비집고 잠깐이나마 극장에 걸릴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ll 지난 2021년에 일본에서 개봉되어 화제가 된 작품이죠. '신 에반게리온' 시리즈 4부작의 완결편에 해당됩니다. 예전 TV 시리즈+극장판과 완전히 다른 결말로 사실상 신작이나 다름없는 작품입니다. 원래 '서, 파, Q'에 이어서 2013년에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무려 8년이나 늦게 도착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
'넷플릭스'로 공개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버블'을 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제목 '버블'은 '거품'이란 뜻이죠. 거품... 물거품... 물방울... 뭔가 한 번에 딱 떠오르는 동화가 있을 겁니다. 네, 바로 익숙한 '그 이야기'가 이 작품의 모티브입니다. 유명한 이야기에 적당히 SF를 섞어 새롭게 다시 만든 거죠.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이야기를 개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 이 작품은 그 부분에서 성공적이었을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시나리오 작가가 스스로 도취되어 쓴 티가 납니다. 작가가 스토리에 몰입하는 건 좋지만 거기에 취해버리면 좀 곤란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화자가 너무 달뜬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면 청자 입장에서는 듣고 있기 난처할 때가 있죠. 듣는 사람은 감흥이 없는데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너무 앞서가 있다고 할까요. 물론 그게 친구들끼리 대화라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겠죠. '아, 저 친구가 지금 감정이 차올라 넘쳐 흐르는 상태구나' 하고 적당히 맞장구쳐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상업적 문화상품의 스토리일 때는 문제가 생깁니다. 하지만 이게 이 작품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실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제점 중에 하나죠. 말이 나와서 얘긴데... 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보여주는 예시로 매우 적당합니다. 우선 장...
붉은 바다. 푸른 바다. 어느 쪽의 엔딩을 원하십니까.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 파란약 이야기가 아닙니다. '에반게리온'은 크게 세 가지의 엔딩이 있습니다. 그중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만화판 엔딩은 제외하고요. 남는 건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TV시리즈에서 극장판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의 엔딩입니다. 또 하나는 '서, 파, Q, :II'로 이루어진 신극장판의 엔딩입니다. 두 개의 세계는 일종의 평행우주라고 하죠. 물론 두 작품 다 같은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시나리오입니다. 그런데 전자의 엔딩은 모든 인류가 하나로 합쳐진 붉은 바다가 펼쳐지고... 마치 태초의 아담과 이브처럼 '신지'와 '아스카' 둘만 남은 세계로 끝나죠. 반면 후자는 세계가 다시 정화되어 예전의 푸른 바다로 돌아오고... '아스카'는 영화 속 세계에, 그리고 '신지'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선택합니다. 이번 신극장판의 마지막 편을 다 보고 났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나이가 들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긍정적이고 따뜻한 쪽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니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감독은 늘 세상을 따뜻하고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전작인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 시리즈만 해도 그렇습니다. 먼 미래에도 인류는 무려 1만 2천 년 전의 약속을 지키려는 사람들...
'기동전사 건담: 섬광의 하사웨이'를 봤습니다. 국내에는 극장 개봉을 하지 않아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건담'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미노 요시유키'씨가 1980년대 후반에 세 권짜리 소설로 발표한 것을 최근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거죠. 그러니까 약 30년 만에 영상화된 겁니다. '선라이즈'와 '반다이'가 건프라 장사를 하기 싫어서 안 만들었을 리는 없고... 이렇게 늦어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하네요. 우선 주인공이 테러리스트라는 게 첫 번째 걸림돌이었고... 성적인 표현이 많으며, 메카닉이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도 문제였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원작자 '토미노' 선생이 영상화를 꺼려 했다고 하죠. 여하튼 그런 난관들을 넘어 드디어 빛을 보게 됐는데... 결과는 매우 좋습니다. 일단 작화 퀄리티가 엄청난 수준입니다. 캐릭터, 메카닉, 배경, 전투씬 등등 굳이 이렇게 디테일하게 묘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해요.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제작진 명단을 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노련한 경력 작가부터 인정받는 신예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 A급 크리에이터들이 총동원됐더라고요. 특히 중반부 도심지 기습 장면과 후반부 주역 메카들의 대결 장면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모빌 슈트'가 그저 거대한 장난감이 아니라 공포스러운 전술 병기라는 걸 실감할 수 있도록 연출했습니다. 또 유능한 파일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