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넘어설 때 으레 반복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피었다는 꽃을 보러 간다거나 지겠다는 잎을 보러 간다거나 철에 맞는 음식을 먹거나 하는, 여기에 더해 제가 반복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앓는 일입니다." 박준 시인의 <계절산문> 110쪽에 있는 글입니다.
편지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고흐와 테오'가 생각나듯이, 일기라는 단어는 카프카로 이어진다. 일기 쓰기를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긴 카프카는 "나는 일기 쓰는 것을 더 이상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나를 확인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만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젠, 일기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문보영 시인이 카프카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은 책. 문보영 시인의 에세이 <일기시대>.
김애란 작가의 글에는, 그러니까 소설은 물론이고 산문에 이르기까지 '섬세한 유전자를 지닌 파란 실핏줄'이 보이는 듯하다. 실제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것을 우리는 몸 안에 잔뜩 품고 살아가는데. 어느 날 그것들을 눈으로 혹은 촉감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김애란 자가의 글을 읽을 때면…. 어떤 예민한 촉수가 나도 모르게 작동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독서대와 나의 거리는 좁혀지고, 책 속으로 조금 더 스미듯 가까이 다가서는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