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멸망
10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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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클립] 어쩌면 멸망에게 이름이란 건

세상 모든 것에는 고유의 명칭이 있다. 책상이나 침대, 선풍기나 리모컨, 바위나 나무나 꽃같은, 뭐 그런 것. 인간은 세상의 있는 많은 것들을 지칭하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사람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모두가 사람이다. 그 중 누군가 한 사람을 부를 필요가 없다면, 우리 모두에게도 그저 '사람'이라는 명칭 하나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고있듯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수 많은 사람 중 내가 아는 '너'는 한 사람 뿐이니까. 그러니 누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름을 붙이는 까닭은 수 많은 사람 중에 '너'를 부르기 위함이다. 저 멀리에서도 누군가 부르면 돌아볼 수 있도록. 그런 의미에서 멸망에겐 다른 이름이 필요치 않았다. 신이 그저 신일 뿐인 것처럼, 멸망도 그저 멸망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어떤 누구도 굳이 멸망이 어떤 존재인지 구분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멸망은 그저 죽음이고 끝이고 그 외의 모든 나중일 뿐이었으니까. 사람들에게 멸망이란 그저 주변에 있는 사물과 다름 없는 존재였다. 우리는 책상을 책상이라 이름지었지만 책상에게 책상아, 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멸망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지칭할 용어가 필요하긴 했으나 그를 부를 이름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던 까닭에. 멸망은 한 때 사람 사이에 섞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를 불러주는 곳도 돌아갈 곳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택했다. ...

2021.06.12
[리뷰클립]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 빛의 마지막 자리, 어둠의 첫번째 자리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 빛의 마지막 자리, 어둠의 첫번째 자리 멸망에게 동경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삶'이다. 어제, 소녀신은 동경을 멸망의 현관으로 안내했다. 처음 멸망이 불쑥 동경의 현관으로 들어온 그 날처럼. 살아있는 동경에게 어느 날 불쑥 멸망이 찾아왔듯, 어둠과 끝뿐인 멸망에게 최초로 생이 찾아온 것이다. 뭐라 이름붙일 수 없는 감정을 차마 사랑이라 부르지도 못해, 멸망은 자기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붙인다. 탁동경, 하는 부름은 이제 멸망에게 생과 사랑 그 자체이다. 아마도 지금 그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그렇게 부를 이름이 사라지는 순간일 테다. 잠시 소녀신이 세상에서 앗아갔을 때의 두려움. 멸망은 그 두려움을 안고 다시 영원을 존재할 자신이 없다. 그렇기에 엔딩, 동경의 뒤에 선 멸망의 모습은 더욱 서글펐다. 이모는 동경의 인생에서 행운과 희망을 의미한다.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를 잃었을 때, 행운은 상실의 슬픔과 같은 얼굴을 한 채 나타나 동경을 안아주었다. 동경의 뒤에 선 멸망이 지금 그녀의 삶에 사랑인 동시에 멸망이라면, 이모는 동경의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첫번째 멸망 뒤에 찾아온 새로운 희망이었다. 멸망은 저만치 희망을 마주한 동경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동경. 그 중 멸망은 죽음과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빛의 마지막 자리, 어둠의 첫번째 자리. 멸망은 거기...

2021.06.02
Q. 삶을 동경하는 멸망, 둘에 대한 물음표

현재 블로그에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리뷰를 올리고 있는데요. 몇몇 분들이 멸망과 동경 사이의 계약 조건에 대한 질문들을 댓글에 주셨더라구요. 사실 저는 씽크빅 돋는 다른 리뷰어님들과 달리 감정선 따라가기 급급한 시청자라(...)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짧게 정리하는 글을 읽으면 두루두루 함께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멸망과 동경 사이의 계약 조건은 크게 세가지인데요. 1. 멸망은 동경이 죽을 때까지 100일 동안 병으로 인한 통증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그녀가 원하는 소원을 하나 이루어준다. 2. 대신 동경은 죽기 전에 세상의 멸망을 소원해야 한다. 3. 만약 동경이 세상의 멸망을 빌지 않을 경우, 동경 대신 동경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 멸망이 동경과 이런 계약을 맺은 것은, 세상을 멸망시키고 자기 존재를 없애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그는 스스로 죽을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존재이죠. 그래서 세상이 사라지면 혹시 자기도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보았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의 입장에선 별 미련 없던 세상에, 미련을 가질만한 존재가 생겼기 떄문이죠. 본래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멸망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는 각기 다른 얼굴로 보여졌기 때문에, 진짜 멸망의 얼굴을 아는 존재는 오직 신과 멸...

2021.05.26
[리뷰클립] 드라마 속 '멸망'이 읽고 있던 책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 리셋의 의미는 뭘까?

지난 회차부터 멸망이 읽고 있는 시집이 내내 눈에 띠었다.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워낙 좋아하는 시집이라 가끔 펼쳐보곤 하는 책인데, 드라마 속 멸망이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좀 새롭기도 했다. 하긴 기형도 시인이야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작가이니,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이 놀랍거나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기도 하다. 어제의 엔딩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 멸망과 저 시집을 연결해보자니 생각나는 구절들이 있어서 오랜만에 책을 꺼내 페이지를 뒤적였다. 그 중 드라마 속 멸망의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낀 시구 몇 개를 여기에 옮겨둔다.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 기형도, 시 '오래된 서적' 中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떄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 했다 (중략)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 기형도, 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中 나의 생은 미친 ...

2021.05.26
[리뷰클립] 어쩌면 너는 미래에서 온 멸망일까?

마지막 장면, 버스 정류장에서 동경을 기다리고 있는 멸망은 어딘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일부러 무심하게 동경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고, 평소보다 훨씬 무뚝뚝하게 구는 행동도 그렇고. 쓸데없는 온갖 데에 능력을 남용하며 나를 사랑하라고 능청을 부리던 지금까지 모습과는 사뭇 다른 톤의 분위기였달까. 비오는 날 인생을 한탄하는 동경의 손을 붙잡고, 굳이 멈출 수 있는 빗속을 '재미삼아' 달리는 그의 모습 역시 낯설었다. 멸망은 세상을 환멸하면 했지 재미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그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쏟아지는 비는 별 게 아니라고, 이렇게 빗속을 달려서 오면 금세 집이라고 얘기하는 그의 말 역시, 영원을 회의주의자로 존재해온 그의 입에서 나오기엔 지나치게 따뜻했다. 특히 마지막 순간,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소원을 비는 동경을 바라보며 차마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맞추는 장면도. 한숨 뭐야. 눈빛 뭔데. 이건 뭐 숨결부터 사연과 서사가 가득하잖아. 그래서 생각했다. 혹시 마지막 장면의 멸망은 현재의 멸망이 아니지 않을까. 버스정류장에서 동경을 기다리던 그는 어쩌면 동경을 미치게 사랑하고 있는 미래에서 온 멸망이 아닐까. 소녀신의 말대로 인간의 사랑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때로 하나를 위해 전부를 버릴 수 있을만큼. 그러므로 멸망을 사랑하게 된 동경 역시 결국 마지막엔 세상이 아닌 멸망을 선택하게 되는 것...

2021.05.26